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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택연금, 이렇게 바뀐다
- 시니어에 필요한 연금제도의 하나로 주택연금이 운영되고 있다. 환경의 변화로 현행 제도가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제도 일부를 손질한다. 주택연금이 실질적 노후보장 방안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수요를 확충하고 비용 경감 등을 취지로 금융위원회가 2019년 업무계획을 발표하면서 그 윤곽이 드러났다. 공무원과 교직원, 군인 연금을 받는 대상자를 제외한 일반인이 받는 국민연금은 노후생활비로 쓰기에는 많이 부족한 편이다. 베이비붐 세대를 포함한 시니어는 노후에 쓸 수 있는 자산으로 집 한 채는 가지고 있어서 주택을 담보로 매월 일정 금액을 연금처럼 받는 주택연금에 관심이 많다. 사회보장 성격의 상품이기에 가입조건이 제한돼 있어 누구나 가입할 수 없다. 부부가 60세 이상이어야 하고 가입주택도 시가 9억 원까지 해당한다. 가입자가 그 집에서 살고 있어야 하고 요양 시설로 들어가 집을 비워도, 빈방이 있어도 세를 놓을 수 없다. 반면 퇴직 연령은 50대로 낮아지고 일자리 마련이 쉽지 않아 국민연금을 받는 60세까지 소득 공백이 길어지고 있어 현재 60세에서 50세로의 변경에 힘이 실리고 있다. 또한 주택가격의 상승으로 시가 9억 원을 기준으로 하는 현 제도로는 가입할 수 없는 주택을 소유한 노령자가 늘어났다. 가입 주택 대상을 시가 9억 원에서 공시가격 9억 원으로 현실화해, 종전의 9억 원 주택은 10억 원 이상으로 올라 가입할 수 없게 된 노령자가 많이 생겼다. 공시가격으로 하게 되면 시가 13억 원(시가의 70% 수준) 정도의 주택도 가입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13억 원 고가주택으로 가입해도 연금 산출은 9억 원을 한도로 할 것으로 보인다. 9억 원 이상의 고가 아파트로 가입해도 9억 원 아파트 가입과 같게 연금을 받게 되어 불합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받는 연금액으로만 비교하면 틀린 말은 아니다. 연금을 같은 금액으로 받게 되지만, 가입자가 사망할 때 가입 주택 처리 문제에서 차이가 난다. 사망할 때까지 받은 총연금액이 당시 주택가격에 미치지 못하면 그 차액을 자녀 등 상속자에게 돌려준다. 불합리하지 않음을 이해할 수 있다. 반대로 모자랄 경우에는 상속자에게 부담시키지 않는다. 주택연금은 사회보장상품이어서 주택가격에 맞춰 무한정 지급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혼자 거동하기 불편해지면 요양 시설로 가게 되어 살던 집을 비우게 되는 경우도 많이 생기고 활용하지 않는 집을 가진 가입자도 많음을 고려해 임대를 허용하도록 했다. 아울러 가입자가 사망했을 때 자녀 동의 없이 곧바로 배우자에게 상속할 수 있도록 편의성을 높였다. 베이비붐 세대를 비롯한 시니어는 노후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집 한 채가 노후자산의 전부인 경우가 많다. 자녀 세대들의 생활 여건도 어려워 부모가 기댈 형편이 아니다. 그래서 노후생활비를 스스로 마련하려 애쓰고 있지만 돈을 벌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주택연금이 노후생활비 보완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으나 여건의 변화로 금융위원회의 2019년 업무계획은 노령자의 노후생활 안정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 2019-03-15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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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향기
- 봄이 오면 생각나는 여인이 있다. 문학기행에서 만난 그녀가 한 이야기가 꽤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뚜렷하게 기억난다. “여성은 여성다워야 한다. 예쁘고 아름답게 보여야 한다. 보이지 않는 속옷에서도 여성의 향내가 나야 한다. 나는 속옷은 세숫비누로 세탁한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 당시 일흔 살을 넘긴 나이였지만, 음성과 행동이 우아했다. 젊은 시절에는 신세대 여성으로 사교계 모임에 초대를 받곤 했다는 그녀는 여성의 본성과 고고한 성품을 지키려는 마음이 강했다. 그녀는 시인이었고, 동요도 지었고, 시조도 읊었다. 직접 그린 그림을 곁들인 시화집도 여러 권 냈다. 예전에 썼던 자신의 동요를 한 글자도 틀림없이 줄줄 외곤 했다. 한 문학지 동호인들이 함께 떠난 문학기행에서 그녀를 만났는데 벌써 10여 년이 흘렀다. 그날 산속의 숙소 뜰 작은 연못에 핀 수련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 있던 그녀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카메라 렌즈가 다가가자 그녀는 나비처럼 사뿐히 자세를 취했다. 사진을 인화해 우송했더니 감사의 쪽지와 함께 자작 시집 한 권을 보내줬다. 고운 난을 친 삽화와 함께 온갖 정성을 다해 쓴 헌정 친필 사인에 감동했던 기억이 새롭다. 최근 책장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그 책을 발견했다. 제목은 ‘버섯의 향기’. 100가지 버섯에 대한 각각의 시와 직접 그린 버섯 삽화가 실려 있다. 듣도 보도 못한 버섯 이름이 많았다. 붉은 사슴뿔 버섯, 파상 땅 해파리 버섯, 송편 버섯, 푸른 손등 버섯, 주름안장버섯, 꾀꼬리버섯, 접시 껄껄이그물 버섯, 넓적 콩나물 버섯, 연지버섯, 고무 버섯, 독우산 광대버섯, 아교뿔버섯, 질산무명버섯, 꽃 흰 목이버섯, 치마버섯, 부채 버섯, 주걱 간 버섯, 금 버섯, 장미주걱 목이버섯, 혓바늘 목이버섯, 흰목이 버섯, 화 병무 버섯, 깔때기버섯, 붉은 목이버섯, 참 버섯, 한입버섯, 투구버섯, 노란달걀 버섯, 주발버섯, 독송이, 할미송이, 긴대안장버섯, 말똥버섯, 벚꽃 버섯, 꽃 접시 버섯, 볏짚 버섯 등등. 그 많은 버섯을 관찰해 시를 쓰고 각각의 버섯을 직접 세심하게 그렸다. 그것도 색감을 이용해서 말이다. 한 권의 시집이지만, 그 노력과 정성은 태산을 덮고도 남을 듯싶다. 나뭇등걸이나 오솔길 후미진 곳을 더듬는 버릇이 취미라고 서문에 쓰고 있을 정도로 버섯에 대한 그녀의 호기심은 대단해 보였다. 2007년 8월에 출간된 신순애 제3시화집이다. 강산이 한 번 변한다는 세월이 흘렀다. 그녀는 지금도 공주 같은 미소를 띠며 오솔길에서 버섯을 찾고 있을까. 속옷은 세숫비누로 손수 빤다고 했던 그분에게서는 특별한 향기가 있었다. 나도 그 후로는 속옷을 세숫비누로 빠는 버릇이 생겼다.
- 2019-03-1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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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덕이 밭’
- 봄의 문턱이다. 머지않아 새싹이 돋을 게다. 이즈음이면 시니어가 많은 관심을 갖는 게 텃밭이다. 인간은 죽으면 누구나 한줌 흙으로 돌아간다. 흙과 가까이하고 싶은 마음은 일종의 귀소본능이다. 더구나 햇볕을 쬐며 안전한 먹거리를 직접 가꾸며 소일할 수 있으니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삭막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더 그러한 꿈을 꾸기 마련이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빅데이터를 이용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를 살펴보니 일, 여행, 친구, 홀로, 텃밭이었다. 내게 사진을 배우는 시니어와 함께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를 거쳐 낙산공원을 찾았다. 이곳에서 역사 속의 텃밭, ‘홍덕이 밭’을 보았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삼전동에서 항복하면서 봉림대군이 청나라 볼모로 잡혀갔을 때 봉림대군 시중을 들기 위해 궁인 홍덕이라는 여인이 따라갔다. 그녀는 청나라 심양에서 직접 가꾼 채소로 담근 김치를 밥상에 올렸다. 볼모에서 풀려 본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봉림대군(효종)은 홍덕이의 김치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낙산 중턱의 밭을 그녀에게 주어 채소를 가꾸게 했다. 임금의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텃밭이 된 셈이다. 서울시는 낙산에 ‘홍덕이 밭’이라는 지명이 전해지고 있는 데 착안해 낙산 공원 중턱에 ‘홍덕이 밭’을 만들어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홍덕이의 텃밭이 있었던 낙산은 숲이 우거지고 깨끗한 약수터가 있는 산책로다. 기이한 암석, 울창한 수림, 맑은 물이 있는 절경이다. 이런 곳에 마련된 '홍덕이 밭'은 청정 지역이라서 안전한 먹거리 생산이라는 텃밭의 조건을 충족한다. 예나 지금이나 텃밭은 우리의 건강한 일상을 책임져주고 있다.
- 2019-03-05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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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정엄마
- 딸이 둘이다. 애지중지 키웠다. 큰딸이 시집을 갔다. 언젠가는 품 안에서 떠나야 함을 알면서도 시집가던 날 왜 그리도 가슴이 허전한지. 늦가을, 바람 부는 언덕에서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듯 마음 한구석이 알게 모르게 텅 비어갔다. 맏딸이라 더욱 그랬을 게다. 학교를 졸업하고 5년 정도 직장을 다녀 어디에 내놓아도 자기 일을 스스로 해나갈 수 있으리라 믿지만, 시집가던 날 기쁨에 앞서 왜 그리도 걱정이 많았는지. 부모의 마음이다. 엄마의 마음이다. 다른 엄마도 마찬가지겠지. 자식은 늘 어리게만 보인다. 여든이 넘은 나의 친정어머니가 환갑이 지난 나를 지금도 걱정하는 것을 보아 그렇지 싶다. 밥이나 제대로 해 먹고 다닐지, 남편을 잘 챙길 수 있을지. 반찬은 잘 만들어 남편에게 사랑을 받을까? 걱정이 한둘이 아니다. 나만 걱정하는 엄마일까? 나는 음식 만들기를 좋아한다. 시집보낸 딸도 내 성격과 솜씨를 닮아서인지 요리를 하는 내 곁에서 눈썰미 있게 지켜보며 곧잘 하였는데 괜한 걱정이란 생각이 들다가도 또 은근히 걱정한다. 오늘은 김치라도 담아 줄 요량으로 딸에게 전화했다. 아니나 다를까 단칼에 담아 주지 말라 한다. 담아다 줄 테니 먹으라고 다시 이야기하자 화를 낼 듯이 거절한다. 얄밉기도 하다. 여느 집의 딸도 그러겠지만, 제 아버지와 내게 늘 살갑게 해 주었다. 직장에서나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에는 기억해두었다 우리 내외를 그곳에 데리고 가곤 했다. 효성스런 딸이다. 출가한 딸이 더 생각나는 이유다. 엄마가 시간도 되고 하여 김치를 담가 주려는데 왜 싫어하는지를 물어보았다. 딸이 얘기한 몇 가지 이유에 이해가 간다. 그 내용은 이렇다. 김치를 담그는 엄마의 수고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가 그 첫째 이유이고 둘째는 능숙하지는 않지만, 스스로가 김치를 그런대로 담을 수 있어서란다. 마지막 이유는 이러했다.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친정엄마 솜씨로 만든 맛 좋은 반찬에 남편이 입맛 들여지면 자기가 한 요리가 입맛에 맞지 않게 된다는 논리였다. 맞는 말이다. 엄마 음식이 그리워지면 친정에 와서 먹으면 된다고 덧붙인다. 친정엄마가 힘들지 않도록 하려는 배려 깊은 마음에 얄밉기도 하고 서운했던 마음 한구석이 사라진다. 맛있는 것을 만들게 되면 딸이 늘 마음에 걸리는 엄마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서운해지기도 하나 나름으로 딸을 제대로 키웠다는 생각에 자위한다. 생각이 깊고 어른스러운 딸이 대견해진다. 딸과 사위가 시쳇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살고 있다. 딸의 생각이 틀리지 않고 엄마를 위하여 그렇게 하더라도 맞벌이로 직장을 다니기에 반찬이라도 만들어 주고 싶은 게 엄마다. 어느 날 딸이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게 되었다. 딸이 마음에 또 걸린다. 딸이 퇴근해 집에 올 때쯤에 맞춰 검정 봉지에 넣어 딸의 아파트 현관문 바깥 손잡이에 걸어두고 얼른 돌아왔다. 엄마의 마음을 걸어 두었다. 오늘도 나는 평범한 친정엄마가 되었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아들만 둘을 둔 남자다. 부부 동반하여 만난 친구의 부인들이 나누는 딸들에 대한 얘기에 나도 동화되어갔다)
- 2019-02-26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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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로 그린 수채화
- 사진가들은 추운 겨울이면 성에가 낀 화훼농가 비닐하우스 또는 창틀 너머에 있는 아름다운 꽃을 탐낸다. 이른 아침의 추위에도 상관하지 않고 손을 호호 불어가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성에 너머로 은은하게 보이는 아름다운 꽃이 한 폭의 수채화를 닮아서다. 나는 사진이나 사진처럼 보이지 않는 작품을 탐구한다. 성에가 낀 모습의 사진은 이른 아침 아니면 촬영하기가 쉽지 않다. 부지런한 사진가만이 셔터를 누를 수 있다. 꽃집이나 화훼농원의 주인이나 일하는 직원의 도움을 받기 위해 평소에 인간관계도 맺어놓는다. 성에는 그 자체로 다양한 문양이나 형상도 좋지만, 다른 피사체와도 잘 어울린다. 그러나 성에도 있고 그 뒤쪽으로 다양한 색깔을 가진 꽃이나 유사한 피사체가 있는 장소를 발견하기 어렵다. 또 해가 뜨거나 바깥 기온이 올라가면 성에가 녹아내리므로 일정 시간대, 즉 이른 아침에 촬영을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성에 사진은 들여다볼수록 매력이 있다. 내부의 따뜻한 기온과 외부의 차가운 기온 차이로 만들어지는 성에는 마치 애절한 사랑을 가로막고 있는 유리벽 혹은 비닐 벽에 부딪혀 동동 발을 구르는 여인의 애잔한 마음처럼 보인다. 그 내면의 세계를 잔잔한 감동의 이야기로 엮어가는 사진가의 상상은 하나의 작품이 되기도 한다. 매크로렌즈를 사용하면 좋겠지만, 갖추지 못해 일반 렌즈로 촬영했다. 성에가 낀 유리창이나 비닐하우스 뒤쪽에 꽃이나 고운 빛깔의 화분을 놓아두고 바깥에서 바싹 붙어 촬영하면 그럴듯한 작품이 된다. 추운 바깥에서 촬영하는 게 싫다면 연출해서 찍는 방법도 있다. 색이 고운 그림이나 꽃(조화도 괜찮다)을 준비해놓고 유리 한 장을 구해 물을 뿌린 뒤 밤새 바깥에 둔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성에가 낀 유리를 실내로 가져와 준비해둔 그림이나 꽃을 뒤편에 두고 촬영하면 된다. 실내에선 성에가 금방 녹아내리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 사진 작품도 다른 예술 작품이 그러하듯 사실을 찍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작가의 메시지를 적극 담아낼 수 있다.
- 2019-02-2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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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학동 비결(秘訣)
- 지리산 청학동은 나의 고향이다. 유소션 시절을 삼신봉 아래에서 보냈다. 근래에는 자주 들리지 못하지만 정신적 터전이다. 당연히 청학동과 관련한 자료에 관심이 많다. 그중 하나가 풍수지리설로 유명했던 옥룡자 도선 스님(827~898)이 쓴 ‘청학동 비결(秘訣)’이다. ‘조선비결전집’에 수록돼 있다. 일제강점기에 민간에 널리 유포된 비결들을 입수해 연구 가치가 있거나 보존 의미가 있는 것들을 묶은 책이 조선비결전집이다. 이러한 자료들을 통해 현재 지리산 청학동이 명실상부하게 자리매김했다. 이 비결에는 청학동의 산세 등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우리나라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는 청학동에 얽힌 전설을 한 번 읽어봄직하다. 한세상 제때 만나기를 기다리는 보배로운 세 고을이 있다. 선을 쌓은 사람이 이곳에 들어가서 후세를 기를 것이다. 그중 하나가 청학동이다. 운세가 길(吉)하여 천년이 되면 하늘의 문창성을 지키고 땅은 흑서(黑鼠)가 흥하고 오성(五星)이 모여든다. 때가 되면 세 가지 기이한 빛이 봉우리를 비추어 삼대(三坮)가 분명해진다. 땅은 넓어 평탄하고 북쪽이 높고 동쪽이 낮으며 남쪽으로 통한다. 남쪽의 백운산 세 봉우리가 우뚝 솟았다. 임좌병향(壬坐丙向)으로 혈(穴)이 낮다. 운이 전해지면 갑좌(甲坐)가 다음의 길지(吉地)다. 주위가 사십 리며 석문이 그곳을 가로막고 있다. 아름다운 이곳이 천년의 기반으로 이 나라와 함께 길이 보전되리라. 비록 작은 나라에 있지만, 중국의 명승지보다 훨씬 나은 곳이다. 그곳이 개벽이 될 때는 황계(黃鷄)가 하늘에서 울 때다. 이곳에서 나는 것은 하늘 가득한 것이 떨어지는 땅이라. 이곳을 지켜 20년이 되면 석문(石門)이 우레 소리를 내며 깨어지고 30년을 살면 사마(駟馬)가 땅에 드나들 것이니 공명이 세상을 덮는다. 청학이 세상을 더욱더 높게 날면 많은 공경(公卿)과 재상(宰相) 그리고 명사(名士)와 현인(賢人)이 배출되리라. 공문(孔門)에 사숙(私淑)한 자는 누구인가. 국가의 사부가 그것을 맡으리라. 기내(畿內)의 사람들이 최고의 명승으로 만들어 별천지가 되리니 천지개벽이 일어나리라. 선학(仙鶴)이 골에서 날아오르니 유(柳) 씨의 복지(福地)요. 학의 등에 타고 피리를 부니 강(姜) 씨의 복지(福地)요. 금 거북이 진흙 속으로 들어가니 권(權) 씨의 복지(福地)요. 선학이 알을 품으니 정(鄭) 씨의 복지(卜地)요. 청학이 밭에 내려앉으니 서(徐) 씨의 천지(穿地)요. 학이 옥녀에게 내려오니 황(黃) 씨의 복지(福地)요. 달리던 노루가 어미를 돌아보니 김(金) 씨의 소지(召地)요. 선인(仙人) 춤추는 소맷자락 같으니 이(李) 씨의 응지(應地)요. 매가 꿩을 쫓아 내려가니 방(方) 씨의 복지(卜地)요. 황룡이 배를 업고 가니 하(河) 씨의 유지(留地)요. 옥등(玉燈)이 벽에 걸렸으니 천(千) 씨의 필지(必地)요. 다섯 신선이 둘러앉아 바둑을 두니 박(朴) 씨의 복지(卜地)요. 소가 학림에 누워 잠자니 장(張) 씨의 유지(留地)요. 선학이 쫓아서 가니 허(許) 씨의 복지(福地)요. 소가 학림에 누웠으니 노(盧) 씨의 수지(守地)요. 상서로운 붕이 하늘에 날개를 펼쳤으니 작은 달이 10필(疋), 오운(五雲)이 싸우며 여인이 관을 쓰고 벼슬을 한다. 풀이 풍성한 들판에 사슴이 놀고 소(丑) 좌편에 가로 누워 있도다. 청학이 서편으로 날아가니 산새가 크게 응하도다. 대숲에서 봉황이 우니 10일을 날마다 길하리라. 한가운데 신선의 베개가 있으니 원형이정(元亨理定)이 마한(馬韓)에 갖추어졌도다. 선학(仙鶴)이 좇아서 가버리니 청학이 하소연하는 것 같도다. 하소연도 말고 상소도 말고 오직 후인(後人)을 기다리며 조화를 미루어볼지라. 건곤(乾坤)에 기운이 가득 모이니 복점(卜占)으로 그 주(主)를 지키리라. 전해 받고 조응(照應)하니 상서로움을 맡아 인재를 배출한다. 복록과 길상(吉祥)이 서좌(西坐)로 향하니 가장 아름답고 그다음에 길하도다. 사람들이 오직 이곳을 찾으니 신풍(神風)을 한(恨)하도다. (참고자료: 향토지 ‘청암’, 하복조 편저)
- 2019-02-20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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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삶을 바꿔준 인턴 활동
- 삶의 변화는 하나의 사건이 전환점 역할을 한다. 전 반생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낼 수 있게 한 계기가 인턴(Intern) 활동이었다. 3개월 일정이었으나 후반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14년에 우연한 계기로 한 사진관에서 사진 촬영 방법을 익히는 인턴 직원으로 일을 했다. 사진 재능을 이웃과 사회를 위해 기부하는 의미 있는 삶을 살게 한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에 평생직장으로 여겼던 회사에서 한창 일할 나이인 47세에 퇴임했다. 금융위기로 재취업은 어려워 음식점 창업을 비롯한 다양한 업종을 전전하며 내로라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한 채 10년의 세월을 보냈다. 동네 사진교실에서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을 무렵에 ‘재단 법인 사회연대은행’에서 한국산업은행의 후원으로 진행된 ‘사회공헌 아카데미’에 참가했다. 이 기관에서 수료생에게 하고 싶은 분야의 인턴으로 일할 수 있는 업체를 연결해주었다. 때마침 사진관 한 업체가 인턴을 뽑았다. 장애인이 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데 착안해 설립한 장애인 전문 사진관 “바라봄 사진관(대표 나종민)”에서 3개월 동안 인턴으로 일하게 되었다. 사진을 배우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활동비도 받았다. 장애인 시설이나 양로원 행사, 봉사활동 등에서 나 대표와 함께 촬영 봉사를 하면서 사진 솜씨를 늘리는 반면 가치 있는 삶의 방법으로서 재능기부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이를 계기로 인턴 기간이 끝난 후 서울대학병원과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장애자 프로그램, 제주 ‘몽생이 그룹홈’ 청소년들의 전쟁기념관 관람 등의 모습을 촬영하는 재능기부를 이어갔다. 사진 촬영이 필요한 기업이나 기관 행사에 무료 또는 유료로 촬영 요청을 받고 활동했다. 이러한 과정은 사진 기술을 더 발전시키는 기회가 되었다. 좋은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스스로 필요한 강좌를 듣고 관련 서적으로 공부를 하며 노력을 기울였다. 대한민국 사진 대전(국전) 입선, 부산일보 전국 사진 대전과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 주최 ‘8만 시간 디자인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는 원동력이 되었고 공인 사진작가 명함도 달게 되었다. 사진관 인턴 경험은 마치 전문의 자격을 받기 위해 임상 실습을 받는 수련의(修練醫)가 거치는 ‘인턴’ 과정과 같았다. 아울러 사회 공헌 활동이 후반생의 가장 가치 있는 삶이며 그 방법으로 재능기부가 있음을 깨닫고 이를 후반생 삶의 목표로 정했다. 일흔의 나이에도 늘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는 원동력을 가져다 준 인턴 활동은 내 인생의 전환점 역할을 톡톡히 했다.
- 2019-02-1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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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달이 된 황진이의 얼레빗
- 대학 시절 한시(漢詩)에 매료된 적이 있다. 시를 짓기보다 읽고 감상하는 데 치중했다. 지리산 청학동 태생이라 서당을 보고 자란 영향 때문일 게다. 한시에는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한자도 있어 옥편을 찾아 읽곤 했다. 뚜렷이 생각은 나지 않으나 ‘물 졸졸 흐른다’는 뜻의 한자를 비롯해 시구에 어울리는 여러 가지 의성어 글자가 있었다. 신기하게 여겨졌고 재미를 붙이는 계기가 됐다. 제법 많은 한시를 외웠으나 지금은 시의 내용만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황진이의 ‘詠半月(영반월)’도 자주 암송했던 시다. 화담 서경덕을 사모하는 마음을 견우직녀의 이야기에 비유해 읊은 감성적 시다. 기다리던 화담이 오지 않는 외로운 밤이 깊어가고 그리움만 쌓인다. 황진이는 거문고를 뜯다가 창밖을 내다본다. 어스름 밤하늘에 한 조각의 반달이 눈에 들어온다. 명경 앞에서 다소곳이 앉아 임을 기다리는 처자의 머리를 곱게 단장해주던 얼레빗을 닮았다. 버선발로 달려나가 마중할 화담이 오지 않으니 몸단장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얼레빗도 더는 필요하지 않으니 하늘에 던지고 싶다. 황진이는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읊조린다. 詠半月(영반월) 誰斷崑崙玉(수단곤륜옥) 누가 곤륜산의 옥을 쪼개어 裁成織女梳(재성직녀소) 직녀의 머리빗을 만들었나 牵牛一去後(견우일거후) 견우가 한 번 떠나간 후 愁擲碧空虛(수척벽공허) 수심에 젖어 머리빗 하늘에 던졌네 옥황상제의 딸이었던 베 짜는 직녀는 소를 모는 동네 총각 견우를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져 맡은 일을 게을리하자 옥황상제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둘이 떨어져 살게 했다. 다만 1년에 단 한 번, 칠월 칠석 밤에 오작교에서 만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견우를 만나고 돌아온 직녀는 1년 후 다시 만날 때까지 몸을 치장할 이유가 없어졌다. “지아비가 집에 없으면 몸단장을 화려하게 하지 않는다.” 직녀는 머리를 빗던 반월형 얼레빗을 허공에 던져버렸다. 그 얼레빗은 반달(半月)이 되었고, 황진이의 시 ‘영반월(詠半月)’ 시상이 되었다. 화담 서경덕을 사모하는 자신의 처지가 직녀와 비슷하다는 생각에 이르자 황진이는 자기가 쓰는 얼레빗을 반달에 비유해 자신의 속내를 한 편의 시에 절절하게 담아냈다.
- 2019-02-1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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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간 포착
- 인천 앞바다 관광 유람선에 올라 파도가 이는 바다를 바라보니 작고한 서영춘 코미디언이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떳어도 고뿌(컵) 없으면 못 마셔요!”라며 웃음을 주던 말이 떠오른다. 아무리 좋은 풍광도 카메라 없이는 남겨둘 수 없다. 유람선 실내는 신나는 음악과 함께 흥에 겨운 승객들이 춤사위로 요란스러웠다. 갑판 위에 올라 드넓은 바다를 바라본다. 웅장한 인천대교가 위용을 드러내고 유람선 꽁무니를 따라 날고 있는 갈매기 떼는 승객들이 갑판 위 난간에 기대어 던져주는 새우깡을 먹으려 달려든다. 순식간에 먹잇감을 포획해가는 갈매기 모습이 신기한 듯 사람들은 감탄을 한다. 과자를 하나라도 더 먹으려는 갈매기들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유람선을 쫓아온다. 그래, 먹이를 낚아채는 순간을 사진에 담아보자. 찰나의 장면이라 쉽지 않다. 이럴 때는 셔터 속도를 단축할 수 있는 고급 기종의 카메라가 부러워진다. 내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승객 중 한 분이 먹이 던져주는 역할을 자청한다. 고마움을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분에게 새우깡을 주는 손의 위치를 미리 정해준 뒤 초점을 수동으로 맞추고 먹이를 채어갈 갈매기를 기다렸다. 주변을 흐리게 하기 위해 최단 거리로 좁히며 다가섰다. 갈매기의 깃털과 눈의 선명도를 높이려 렌즈 조리개는 8로 정했다. 렌즈 구경을 더 좁혀도 되지만 갈매기의 순간 동작을 정지화면으로 만들려면 셔터 속도를 허용 범위 안에서 높여야 했다. 그분에게는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능청을 떨며 거듭 부탁을 했다. 고맙게도 한참을 응해줬다. 삼각형, 대각선 구도를 머릿속으로 구상하며 연속 촬영을 해 한 장의 사진을 남겼다. '순간 포착‘이라는 제목도 붙었다. 사진 촬영에 도움을 준 분은 전남 목포에서 관광 온 단체의 일행이었다. 자기들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을 하려는 속셈을 직감으로 알았으나 내가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촬영이 끝난 후 일행 사진을 여러 장 찍어서 보내줬다. 너무 감사하다는 답신이 왔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서로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 2019-02-1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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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소리 허락제
- 잔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말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대화의 기술이 필요하다. 전 중앙대학교 여교수 한 분이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잔소리 허락제'를 제안했다. 부부간 또는 자녀와 대화를 나눌 때 사용하면 좋을 듯하다.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상대에게 잔소리 좀 하려고 하는데 지금 해도 괜찮은지 미리 물어본 후, 즉 허락을 받은 후에 하라는 소리다. 당연히 상대가 허락하지 않으면 다음 기회로 미뤄야 한다. 부부나 자녀와의 관계에서 잔소리의 사유는 수도 없이 많지만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해야 한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나 어떤 일을 기분 좋게 하고 있는데 잔소리를 듣게 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교류하며 산다. 가족으로는 부부가 있고 부모 자식이 있다. 이웃과 친구를 비롯해 다양한 사람들도 나를 에워싸고 있다. 그중 가장 가까운 관계는 부부다. 인생의 마지막까지 함께할 소중한 관계이지만 대화가 원활하지 못해 더러 헤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 시작은 아주 사소한 데 있음을 본다. 가족 관계가 원활하지 못하면 불행해진다. 부부 사이의 대화가 중요한 이유다. 40~50대의 이혼율이 높다고 한다. 경제적 어려움과 성격 차이 등 여러 사유가 있겠지만 소통의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럴 때 ‘잔소리 허락제’를 부부 대화 기법 중 하나로 사용해보면 도움이 될 듯하다. 이제부터 잔소리는 시도 때도 없이 할 것이 아니라 특정한 날 시간을 정해서 하자. 그리고 반드시 상대방이 해도 좋다고 허락했을 때 시작하자. 상대가 대화를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거나 다른 일로 언짢은 상태라면 더더욱 피해야 한다. 오히려 역효과만 가져오는 잔소리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불 난 집에 부채질하는 상황은 만들지 말자. 인간은 대체로 자신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설령 보인다 해도 모르는 척하기 일쑤다.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의 단점을 더 잘 보고 그것을 꼬집어주는 걸 좋아하는 본성 때문이다. ‘잔소리 허락제’는 상대에게 허락을 받으려고 말하는 순간, 화가 난 마음이 누그러질 뿐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기도 해 대화가 한결 쉽게 풀리는 장점이 있다. 나도 이 방법을 활용할 생각을 하니 벌써 웃음부터 나온다. 아내와의 대화가 절반은 성공할 것 같다.
- 2019-02-11 08: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