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에서 친구는 중요한 존재다. 노후에는 더욱 그렇다. 늘그막까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건강한 친구가 있다면 금상첨화다. 건강을 잃고 일찍 저세상으로 간 녀석과 병마에 시달리는 친구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늘 함께할 수 있는 건강한 친구는 큰 자산이다. 건강을 위해 보약 한 재를 지어줘도 아깝지 않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한때 인기를 누렸던 어느 개그맨은 “친구가 중요합니다. 오래도록 함께 가야 하니까 그 친구의 건강을 위해 보약 한 재 지어주세요~”라고 말해 사람들에게 웃음을 줬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생각할수록 의미가 있는 말이다.
‘세계가치조사’라는 연구기관에서 노후 행복의 요소로 다섯 가지를 발표했다. 가족관계, 돈, 일, 건강 그리고 친구다. 백세 시대가 모두에게 행복한 것은 아니다. 어렵고 힘든 일도 많다. 노후생활비가 부족하거나 가족관계가 원만하지 않아도 그렇고 소일거리 없이 무료한 시간을 보낼 때도 즐겁지 않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외로움이다. 이럴 때 친구가 옆에 있어주면 위로가 된다.
미국 배우 트레이 파커(Trey Parker)는 “인생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은 가족과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들을 잃게 되면 당신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따라서 친구를 세상 어떤 것보다 소중히 여겨야 한다”라고 말했다. 친구가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친구가 적은 사람보다 친구가 많은 사람이 더 장수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친구에게 보약 한 재를 지어줘서라도 오래 옆에 있게 할 필요가 있다.
친구가 왜 그렇게 중요할까? 배우자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민을 친구에게는 털어놓을 수 있어서가 아닐까? “부산 갈 때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은?”이라는 질문에 “친구와 함께 가는 것”이라는 재치 있는 답변도 있다. 친구와 수다를 떨다 보면 순식간에 부산에 도착한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미국의 하버드대학교와 캘리포니아대학교 교수가 1만여 명의 사람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3단계 거리에 있는 사람들까지 행복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분석해냈다. 친구와 친구의 친구 그리고 그 친구의 친구의 친구, 즉 나와 4단계에 있는 사람까지 삶에 영향을 준다는 의미다. 친구가 행복할 때 나도 행복해질 가능성은 15% 더 높아지고 친구의 친구는 10%, 4단계에 있는 친구는 6%나 된다고 한다. 친구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으로 이어지기에 친구의 건강을 챙겨볼 필요성이 있다. “친구에게 보약 한 재 지어주세요!”라는 개그맨의 말이 삶의 교훈으로 다가오는 날이다.
아침 출근 시간대. 서울 한복판 도로에서 갑자기 시내버스가 멈춰섰다. 얼마 후 승객들이 차창 밖을 내다보고는 일제히 손뼉을 친다. 운전기사와 승객 모두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시내버스는 다시 목적지를 향해 출발한다.
시내버스를 타고 강의 장소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운전기사가 빨리 가려고 선로를 바꾸는 순간 미처 보지 못한 외제 승용차 옆면과 살짝 부딪쳤다. 승용차 운전기사가 버스 기사에게 다가와 다짜고짜 큰 소리를 지르며 항의한다.
일반인이 보기엔 별것 아닌 사고였으나 비싼 외제 차라 잘못을 한 버스 기사가 물어 줘야 할 금액이 만만찮아 보였다. 버스 기사는 어쩔 줄 몰라 한다. 바쁜 승객들도 사건이 빨리 해결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때였다. 중절모를 쓴 나이 지긋한 노인이 외제 차 뒷좌석에서 내려 운전기사를 나무라더니 버스 기사에게 “괜찮으니 어서 손님들 모시고 그냥 가세요”라고 말한다. 버스 안의 승객들에게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숙인 후 다시 승용차를 탔다. 그러자 버스 승객들이 일시에 “와아~”하며 박수를 보냈다. 대인(大人)의 면모에 모두들 존경심이 일었던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노인 인구는 750만 명에 이른다. 나이 듦의 상징은 여유로움과 배려하는 마음이다. 그래야 존경을 받는다. 아무리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때그때 지혜로 발휘되지 못하면 쓸모가 없다. 버스 승객들의 박수를 받은 중절모의 노인과 같은 분이 있는가 하면 소인(小人)의 행동거지를 보여주는 사람도 더러 본다. 그분이 탄 고급 외제 승용차마저 더 친밀해 보였다. 나이가 더 들어도 그 노인의 행동과 생각을 닮고 싶다.
추억을 되돌릴 수 있는 이야기나 물건은 삶에 기쁨을 준다. 내게도 그런 추억거리가 하나 있다. 바로 빛바랜 사진 한 장이다. 신혼여행지 제주도에서 우리 부부를 태우고 다닌 택시기사가 찍어준 사진 한 장이 그중 하나다. 공개하기 부끄러워지기도 하나 일흔에 접어드니 부끄러움보다 추억의 소중함이 더 깊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도 같고 가슴도 설렌다. 그 곱던 얼굴에 주름이 늘어난 아내를 떠올리며 더 많은 사랑을 주지 못한 후회의 물결이 인다.
꽤 세월이 흘렀다. 올해 4월 15일이면 우리가 함께 산 지 만 40년이 된다. 1979년 4월 15일, 우리는 스물아홉, 스물넷 꽃다운 나이에 결혼했다. 대부분 외국으로 신혼여행을 가는 오늘날과 달리 그 시절의 신혼부부들은 제주도를 주로 갔다. 우리 부부도 그랬다. 제주도에 가서 택시 한 대를 빌려 여행 기간 내내 돌아다녔다. 당시의 택시기사는 신혼여행 전문 사진가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정평이 나 있었다. 좋은 장소에서 신혼부부의 자세까지 잡아주며 사진을 찍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한두 번 그렇게 찍고 나면 부끄러움도 없어졌다. 택시기사가 메가폰을 잡은 내 인생 드라마 장면이 하나둘 카메라에 담겼다. 당시 택시기사는 꽃이 만발한 유채꽃밭 한가운데 우리 부부를 영화배우처럼 세우고 키스하는 모습을 연출한 뒤 “자 찍습니다. 하나둘 셋!” 하고 외치며 셔터를 눌렀다. 영화감독이 외치는 “액션~ 큐!”였다. 그렇게 남겨진 사진이 일흔 살 문턱에 선 나에게 더없이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그날 우리를 둘러싼 유채꽃 빛깔이 더욱 얼굴을 붉게 만들었다.
허니문베이비로 태어난 큰아들 녀석이 장가를 가서 선물로 안겨준 큰손자가 초등학교 2학년이고 둘째도 다섯 살이나 되었는데, 신혼여행 사진 한 장이 아직도 마음을 설레게 한다. 열정과 꿈이 부풀었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일기도 한다. 옛 모습을 보며 행복한 미소를 떠올리게 하는 이 사진은 내 인생의 보물이다. 나이 들면서 차곡차곡 쌓아둔 물건들을 하나둘 정리하고 있지만, 이 사진은 오래도록 남겨두고 싶다.
괜찮은 일반 카메라, 즉 DSLR 카메라를 살까 말까? 많은 고민을 했지만 선뜻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사진작가 활동을 한 지도 꽤 됐고 현재 쓰고 있는 장비가 많이 낡았다. 해상도 역시 요즘 나오는 스마트폰 카메라에도 뒤지고 망원 렌즈까지 떨어뜨려 망가졌다. 작품 사진을 촬영하려면 화질이 뛰어난 카메라가 필요하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 고급 카메라를 사기가 망설여진다. 촬영 장비의 성능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이 실질적 이유다. 값도 비싸지 않고 우수한 장비가 머지않아 시장에 나올 것도 같다. 새로운 기기가 출시되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장비도 쓸모없게 되는 시대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최근에 보조용으로 사용하던 콤팩트 카메라의 배터리와 저장 메모리에 문제가 생겨 새로 구입해야 했다. 충무로와 남대문에 있는 카메라 상가를 헤집고 다녔으나 살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제조회사 대리점까지 방문했으나 마찬가지였다. 해당 제품을 생산하지 않아 구할 수 없다며 점원이 들려준 한마디가 시대 변화가 얼마나 빠른지 실감하게 했다. “배터리와 메모리칩을 구하는 것보다 신제품을 사는 게 더 낫습니다. 그 카메라는 해상도가 스마트폰보다 못합니다.” 내가 쓰던 카메라가 4년 전 아들 녀석이 선물해준 것이라서 일상 촬영에는 손색이 없는 장비라서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사진의 대중화와 함께 카메라 장비 또한 일반인이 사용하기 편리한 스마트폰 카메라가 대세다. 일상 사진을 찍는 데는 기능과 해상도를 비롯해 성능이 놀랍게 발전한 스마트폰 카메라도 충분하다. 작품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내가 사용해왔던 카메라의 해상도는 900만 화소다. 그런데 요즘 스마트폰의 해상도는 1300만이나 된다. 중국에서는 2000만 화소의 스마트폰 카메라 출시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고급 카메라 중에는 1억 화소 등장을 예고하는 기종도 있다. 스마트폰에 장착된 카메라 렌즈도 한 개에서 다섯 개로 바뀌는 등 기능이 나날이 바뀌고 있다.
2018년 CES(세계전자산업박람회)에서 디지털이미징 분야 최고혁신상을 받은 ‘라이트 카메라 L-16’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스마트폰과 크기가 비슷해 주머니에 넣을 수 있으며 일반 카메라 망원렌즈를 대신하는 눈이 10개가 달렸다. DSLR 품질의 성능과 기능을 담은 최초의 멀티구경 컴퓨테이셔널 카메라(multi-aperture computational camera)다. 여러 초점거리에서 장면의 세부사항을 캡처한 다음 정교한 알고리즘을 통해 10개 이상의 이미지를 단일 고해상도 사진으로 결합하는 기술이 들어간 카메라다. 52메가 화소(픽셀) 이상을 사용하면 줌, 아웃이 문제가 없으며 28mm, 70mm, 150mm 카메라 모듈 중에서 가장 적합한 조합을 지능적으로 선택하게 해 편리하다. 카메라와 관련한 기술은 어떻게, 얼마만큼 빠르게 변할지 예측이 어렵다.
좋은 화질의 작품과 상업용 사진을 위한 고급 카메라가 필요할 때도 있으나 휴대하기 불편하고 구매 비용이 부담스럽다면 사용하기 편리한 새로운 기기를 선택해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DSLR 기능과 고화질의 해상도를 자랑하는 스마트폰이나 새로 선보인 컴퓨테이셔널 카메라도 괜찮은 듯싶어 일반 카메라 구매를 미루기로 했다. 큰돈 들여 산 뒤 돌아서자마자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얼어버린 호수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의연하게 서 있는 연밥 하나가 시선을 끈다. 마지막 꽃잎을 떨어뜨리고 벌집 같은 얼굴을 내밀고 소곤소곤 이야기하던 연밥이다. 마른 줄기 하나에 의지한 채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사색에 잠겨 있다. 한 점 조각품이다. 카메라 뷰파인더에 들어온 연밥의 모습을 보며 일흔 살에 접어든 내 얼굴을 떠올려본다.
40세 이후에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던가. 꽃다운 나이에는 누구나 아름답다. 꿈도 많고 청순함과 젊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둘 늘어나는 욕심에 청순함은 때묻고 팽팽하던 살결은 어느 사이 굴곡진 주름으로 변해간다. 맑았던 눈동자도 흐려지고, 작은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50대 중반쯤, 고향 ‘청학동’을 다녀오다가 만난 너무도 고운 자태의 칠순 할머니를 보고 나도 저렇게 늙어야지 다짐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그 연배의 길목에 서 있다. 이후에도 편안한 얼굴을 만나면 그 각오를 다지곤 했다. 미소 머금은 얼굴,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얼굴은 보기만 해도 평화로워진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일이면 다 보시(布施)라 할 수 있다. 불교 경전에서는 무재칠시(無財七施), 즉 재물이 없어도 누구나 보시할 수 있는 일곱 가지를 가지고 있다고 가르친다. 밝은 미소로 상대를 대하는 것도 그중 하나로 들고 있다.
나도 그런 사람으로 늙어가고 싶다. 굵은 주름살이 삶의 지혜로 보이면 좋겠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어주는 은신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말을 느리게 해도 은근히 힘이 실려 있는 목소리를 갖고 싶다. 젊은 날에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일들에도 남모르는 사정이 있을 거라며 한 번 더 생각하는 여유를 지니고 싶다. 겨울 호수에서 본 연밥 한 송이에서도 인생의 지혜를 배우고 생각하는 날이다.
"아버지! 이렇게 아버지를 찾아와 문안드리고 모시는 것도 이젠 우리 세대가 끝이에요."
"그럴 게다!"
환갑을 넘긴 아들이 여든 중반을 넘긴 아버지를 매주 일요일이면 찾아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의사인 아들이 환자들을 치료하느라 바쁠 텐데도 이렇게 찾아와 주니 아버지는 내심 기쁘고 고맙다.
"아버지! 저희는 자식에게 기댈 생각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시대가 바뀌어 그럴 자식이 없기도 하지만요. 늙으면 아예 요양원 갈 생각하고 미리 준비해둬야겠어요. 죽어서도 제삿밥 얻어먹을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하고요."
"시대가 그런 걸 어떡하겠니? 오히려 그게 마음 편한 일이지 않겠니?"
세월은 흐르고 시대는 변한다. 자식 사랑은 내리사랑이라 우리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들도 베푼 사랑을 되돌려 받기를 바라지 않는다. 자식에 대한 기대는 내리사랑의 역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베푼 사랑을 받고 자란 자식은 또 그 자식에게 사랑을 베풀고 그렇게 세대를 이어가는 게 내리사랑이기 때문이다. 정성과 희생으로 키운 자식들이 서운하게 할 때도 있지만 부모의 책임이라 여기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생각하면 힘들어진다. 부모 자식 간에 불협화음이 생기는 원인이 된다. 나이 들수록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커지고 불효를 뉘우치듯 자식들도 언젠가는 마음 아파하지 않을까? 우리가 젊었을 때 어른들은 “네놈들도 자식 낳고 키워보면 부모 마음 알게 될 게다”라고 말했다. 세월과 함께 그 말씀의 뜻을 서서히 알게 됐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고 주는 것임을 말이다.
사랑의 본질은 무엇일까? 희생이고 무조건임을 몸으로 깨달았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그러셨다. 늘 자식 생각만 하고 살았다. 당신 인생은 뒷전이었다. 치아가 모두 손상되어 잇몸으로 사시던 부모님. 틀니를 해드릴 형편이 되었을 땐 이미 늦어버린 후였다. 후회만이 마음을 크게 짓눌렀다. 자식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우리 부모 세대와 달리 남은 인생도 생각하고 노후자금도 미리 챙겨두려 하고 있으니 세상의 변화는 우리 세대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늙어 거동을 못하면 요양원으로 보내는 것이 당연시되는 시절이다. 나 스스로도 그렇게 할 생각을 굳히고 있다. 전국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생긴 요양 시설이 이를 증명한다. 세월의 흐름에 탑승함이 마음 편하게 여생을 마치는 일일 듯하다. 세상의 변화를 어찌 거스를 수 있을까. 유비무환이라 했다. 더 나이 들어 기억이 감감해지기 전에 노후 준비 하나둘 준비해두자.
금강산 1만2000봉을 그린 걸까? 산봉우리마다 흑백의 조화, 여백의 미(美)가 담겨 있다. 붓에 먹물을 묻힌 화가가 하얀 화선지 위에 힘 있는 필체로 그린 수묵화 한 폭이 연상된다. 일산 신도시 대로변에 설치된 자전거 보관대 위에 비를 막기 위해 비스듬하게 올려놓은 투명 플라스틱 덮개에 생긴 형상이다. 흙먼지가 비바람에 밀리고 깎이며 만들어진 자국이다. 화가 그렸다 해도 저리 정교할 수 있을까? 근처를 지나던 바람[風]이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붓을 들고 숱한 나날 한 획 한 획 그리다 이제야 완성했지 싶다. 자주 지나던 길이었으나 오늘에야 이 모습을 발견했다. 때마침 석양이 덮개 위에 내려앉는 시간이어서 호롱불 켜진 창문에 비치듯 아련하게 시선을 끌었다. 자연이 그려낸 작품 한 점이다. 카메라에 초점을 맞추고 셔터를 눌렀다. LCD 화면에 나타난 화상은 여지없는 수묵화다. 또 한 컷의 이야기를 카메라로 쓴다. ‘바람이 그린 수묵화’.
사진의 소재는 어디에나 있다. 간혹 사진을 찍으려 여럿이 함께 가면 혹자는 찍을 것이 없다고 투정하기 일쑤다. 그럴 수 있다. 그 사람의 눈엔 찍을 거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을 때 아름다운 풍경만을 소재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숲만 보면 작은 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숲속을 헤집고 들어가면 나무와 작은 풀 한 포기도 아름답게 다가온다. 사물을 넓게, 크게 보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작은 부분도 살펴봐야 한다. 다양한 형상들을 만날 수 있다.
수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 옆 자전거 보관대는 관심 밖의 사물이다. 흙먼지가 쌓여 형성된 모습을 수묵화로 보는 사람은 드물다. 일상에서 사진 소재를 찾으며 나는 모든 사물을 신중히 바라보게 됐다. 그리고 이제는 버릇이 됐다. 무엇인가를 갈구하면 이루어진다. 흙먼지가 만들어낸 자국을 수묵화로 둔갑시키는 나는 이 분야의 고수가 아닐까?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하면 요양 시설을 이용하는 시대다. 고령 인구가 750만 명에 이르고 부모와 자식의 동거 비율이 줄어들어 요양 시설에 대한 의식도 개선돼 선호하는 인구가 점차 느는 추세다. 전국에 21,775개의 요양 시설이 들어선 것을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요양 시설이 생기기는 하지만 자세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안전한 시설을 고르는 것이 만만치 않다. 이런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전국 요양 시설과 요양사의 전문성, 서비스, 평가 등급을 비교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케어닥’이 지난달 말 출시됐다. 케어닥을 스마트폰 플레이스토어에서 다운받아 설치하면 전국의 모든 요양 시설을 한 번에 검색할 수 있다. 시설 비교, 요양 시설 이용자의 관리 유의사항, 돌봄과 진료 내용뿐만 아니라 시설 이용 후기나 평판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시설의 등급만으로는 알 수 없던 각 요양 시설의 의료 사고 유무, 욕창 발생 증감, 환자 1인당 의사. 간호사. 병간호 인력의 수, 등급 변화 등의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전국 요양 시설의 36.4%가 부실 등급판정을 받았다. 구체적 부실 내용을 보면 ‘안전사고’가 38.1%, ‘보건 위생’이 36.6%, ‘노인 학대’가 19.9%를 차지해 시설을 선택할 때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성이 있다. 입원 후에도 계속하여 관리 사항을 챙겨야 한다. 노인 요양에 관한 검증된 정보나 서비스에 대한 집적된 내용이 없어 각종 민원과 소비자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이런 문제점은 결국 요양 시설 이용자의 부담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발 품을 팔거나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아 선택했다면 이제는 스마트폰 앱으로도 요양 시설을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외계인(?)을 만났다. 신기하여 조심조심 다가가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LCD 화면에 담긴 형상이 영화 ‘E.T’ 속의 외계인 모습을 닮았다. 아침 산책길에서 만난 일상의 작은 소재에서 한 컷의 사진을 만들어냈다.
사실은 마을 주변을 흐르는 농수로 얼음 위에 쓰러진 갈대 줄기가 얼음에 갇혀 만들어진 모습이다. 으스러진 갈대의 줄기 한둘이 흐르는 물결에 흔들리다 간밤 추위에 꽁꽁 얼어붙어 새로운 형상을 만들었다. 신기한 모습 부분만을 집중하여 화면에 담았다. 자세를 낮추어도 보고 위치를 좌우로 옮기면서 구도를 잡았다. 뒤집어 촬영도 해보았다. "우와~ 이것 봐라! 멋진 형상이잖아. 그래 이렇게 하면 두 눈을 가진 영락없는 외계인 모습이네!" 마음속에 기쁨이 솟아오른다. 발견의 즐거움이다.
노출과 구도를 다시 잡고 셔터를 누르고 또 눌렀다. 재미있는 사진 하나를 만들었다. 카메라로 이야기를 쓰는 나는 상상의 나래를 폈다. 외계인이 간밤에 지상에 내려와 놀이하다가 농수로에 빠져 얼어붙었나 보다. 카메라로 이야기를 쓰는 나는 상상의 나래를 폈다. “외계인의 초상화”라 이름 붙였다. 누구 한 사람 눈여겨보지 않는 일상의 작은 물체에서 새로운 형상 발견하기를 좋아한다. A를 B로 바꾸어보는 생각이다. 세상사 보기 나름이라고 했듯이 사진 소재도 보는 각도에 따라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많은 사진작가나 취미로 하는 사람이 사진 촬영의 명소를 찾아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로도 나가기 일쑤다. 그런 곳에서 좋은 작품을 얻을 수 있으나 우리의 일상에서도 나름의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어떻게 사물을 보느냐가 중요하다. 꾸준한 훈련으로 그 분야에 우뚝 설 수 있다. 생각하는 마음과 보는 시각에 따라 똑같은 피사체에서 남다른 사진을 만들고 이야기를 카메라로 쓸 수 있다. 사진의 묘미다.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가까이 자리한 알과 핵 소극장으로 ‘오아시스세탁소습격사건(극단 모시는 사람들)’ 공연관람을 위해 향했다. 이 작품의 작가인 김정숙 연극 연출가의 초대로 브라보마이라이프 매거진 동년 기자들과 함께 했다. 아담한 무대에는 깨끗하게 포장된 옷들이 가득 걸려 있고 무대 좌우엔 수선과 다림질을 하는 코너로 꾸며졌다. 우측에 설치된 커다랗고 낡은 옛날식 세탁기가 눈에 들어온다.
실내 전등이 꺼진 암흑의 소극장에 침묵이 잠시 흐른다. 침묵을 깨는 남녀 신음을 시작으로 무대 조명이 들어오며 ‘오아시스세탁소습격사건’의 막이 올랐다. 1, 2층 전 좌석을 메운 관람객의 숨소리가 멈춰졌다. 무대에는 여러 가지 피켓을 든 환자들의 항의와 함께 세탁소 주인 강태국(조준형 분)과 여주인 장민숙(문상희 분)의 하소연 섞인 이야기가 개그 못지않은 대사로 펼쳐진다. 극 중 내내 다양한 캐릭터를 가진 배우들의 연기가 관객을 웃음바다에 빠지게 하면서 잔잔한 감동과 현실을 풍자하는 대사로 관중을 몰입하게 했다. 세탁철학을 지닌 주인장은 무명 배우에게 옷을 무료로 빌려주는 정이 넘치는 이웃 아저씨다. 남편에게 서운함도 있으나 남편과 아들을 사랑하는 여주인 민숙, 사고뭉치 배달꾼 소팔 등 늘 세탁소는 왁자지껄하다.
30년째 대를 이어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아시스세탁소와 주인 강태국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다. 큰 재산을 가진 이웃 안 씨 할머니가 임종에 앞서 마지막으로 남긴 ‘세탁’이란 말을 듣고서 세탁소에 맡겨진 빨래 속에 재산을 숨겨 놓았다고 믿는 안 씨네 가족이 세탁소를 찾아오며 극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안 씨 큰아들은 재산을 찾을 수 없게 되자 발견한 재산의 50%를 보상금으로 내건다. 주인장 강태국을 제외한 극 중 인물 모두는 그 재산을 찾기 위해 어느 날 야심한 밤에 동물로 둔갑하여 세탁소를 습격한다. 세탁소는 아수라장이 된다. 이를 지켜본 강 씨는 더러워진 빨래를 세탁하듯 오염된 인간의 마음을 세탁하기 위해 이들을 세탁기에 넣고 돌린다. 깨끗이 세탁된 이들은 하얀 옷을 입고 등장하고 가 씨가 빨랫줄에 널어 말리며 극은 막을 내린다. 1시간 반이 언제 지나갔는지 싶었다. 넉살 좋은 배우들의 연기에 웃다가 극 내용에 눈물을 찔끔 짜기도 했다. 가슴이 훈훈해지기도 했다. 특히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마지막 부분의 설정이 연극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세탁소에서 빨래를 세탁하듯 물질만능주의로 동물처럼 변한 인간을 커다란 세탁기에 넣고 세탁을 한 후 하얀 옷으로 갈아입힌 사람다운 인간을 빨랫줄에 널어 말리며 현대인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는 모습이 극의 대미를 장식했다.
‘오아시스세탁소습격사건’은 권호성 연출로 12월 30일까지 대학로 소극장 알과 핵에서 공연된다. 2003년에 예술의 전당에서 초연된 이래 수많은 공연이 이루어졌고 동아연극상 희곡상, 연극협회 우수연극상 등을 수상하며 대중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작품이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하였다. 일상적 삶의 현실을 바탕으로 상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구성과 풍자로써 우리에게 시종일관 웃음을 주면서 잔잔한 감동 그리고 희망의 따사한 메시지를 남긴다. 지금도 연극 무대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또 보아도 좋은 연극으로 기억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