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숲 생태 해설가로 활동하며 ‘생강’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다. 생강(生薑-ginger)의 어원은 정력, 기력이며 신이 내린 정력제라고 할 만큼 효과가 있다. 공자가 생강을 좋아했다고 잘 알려졌으며, 다산 정약용 역시 생강차를 즐겨 마셨다고 전해진다.
생강은 새앙과의 풀이다. 채소 중 뿌리채소며, 약용과 식용으로 쓰이는 다년생풀에 속한다. 지하경이 굵어져서 다육한 괴상(塊狀)이 되며, 특유한 향과 매운맛이 있어 사람들이 애용한다. 이러한 특징으로 음식의 맛을 내는 조미료로 많이 쓰이는데, 생강차는 감기 예방에도 좋다.
생강나무는 봄에 노란 꽃을 피우며 가지와 잎에서 생강 냄새가 난다. 산후 풍에 좋다고 하는 이 나무는 밭에서 나는 뿌리채소인 생강과는 모양이 다르다. 그러나 생강향이 난다는 이유로 '생강나무'라는 이름을 얻게 됐으니 참 신기하기도 하다.
생강나무 가지와 잎을 따서 문질러 보면 상큼한 생강 냄새가 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른 봄에 잎보다 먼저 노란 꽃을 피우는데 산수유나무와 꽃 색깔이 비슷해 혼동하기 쉽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을 읽으면서 생강나무와 동백꽃과 황매목(黃梅木)이 같은 나무인 것을 알았다. 지난해 3월 김유정 생가를 관광차 찾았을 때, 그 노란 꽃향기가 짙게 풍겼던 기억이 있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여기서 알싸하고도 향긋한 냄새는 바로 생강나무를 말한다. 소설 속 이 꽃이 생강나무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느 산골 마을 소년과 소녀의 순박한 사랑을 토속적으로 쓴 ‘동백꽃’ 속, 알싸한 그 노란 생강 냄새가 콧속으로 스며오는 듯하다. 아마 소설의 배경인 산골 농촌에도 생강은 밭에서 자랐을 것이고, 생강나무 역시 뒷동산에 피어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로 마냥 줄달음치면서 건강에 좋다는 생강차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우리 집 텃밭의 생강의 모습과 추억이 아련하다. 죽마고우들과 뛰어놀던 뒷동산에 노란 생강나무가 아스라이 떠오른다. 생강의 향긋한 내음이 넘실거리며 풍겨오는 듯 아롱거린다.
도보여행은 조금 특별해야 한다. 많은 곳을 바쁘게 보는 것보다는 좀 더 느리고 여유로운 여행, 사람이 무조건 많은 관광지보다는 자연을 충분히 즐기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여행, 단순히 사진만 찍고 돌아서기보다는 그 지역의 풍경과 삶을 음미할 수 있는 여행. 그래서 시니어 전문 테마여행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링켄리브와 함께 준비했다. 천천히 길 위를 걸으며 문화와 예술, 눈부시게 아름다운 정경을 만끽할 수 있는 일곱 색깔의 여행지, 시니어가 걷기 좋은 길이다.
북유럽
Sweden
스톡홀름 감라스탄 옛길
스웨덴 수도인 스톡홀름의 감라스탄 지역은 약 800년 전에 조성된 거리로 중세의 건축물과 왕실의 고풍스런 건물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펼쳐져 있다. 느린 걸음으로 천년 세월을 견딘 돌길을 걷고 있으면 북유럽 고유의 정경이 그림 같다. 물의 도시 스톡홀름이라는 명성답게 감라스탄 주변으로 헬게안스홀멘 등 작은 섬들이 물 위에 떠 있다.
Norway
3대 피오르 트레킹
수만 년 동안 빙하가 조각한 장엄한 협곡을 ‘피오르’라 부른다. 노르웨이는 특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오르가 많기로 유명한데, 이 중 대표적인 3대 피오르(시에라볼텐, 프레이케스톨렌, 트롤퉁가)를 등산하는 트레킹 코스는 살면서 꼭 한 번 걸어볼 만한 길이다. 걸음마다 진귀한 꽃이 꼬리를 물고, 등반 끝에는 마치 지구가 아닌 것 같은 피오르가 황홀하게 펼쳐진다.
Denmark
코펜하겐 아트 스트리트
감라스탄이 북유럽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길이라면 코펜하겐 도심의 예술 거리는 북유럽 감각의 현재와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따뜻한 감성과 소박하지만 값진 행복을 의미하는 덴마크의 휘게 라이프는 바쁘게 살아온 한국의 시니어에게 삶과 행복의 진정한 의미에 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코펜하겐의 디자인센터, 세계적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들의 공방, 가구 갤러리를 걷다 보면 북유럽 문화 예술 및 라이프스타일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서유럽
Italy
토스카나 사이프러스의 정경
프로방스가 예술가들이 흠모했던 곳이라면 전 세계 문인과 작가들이 찬사를 보낸 지역은 이탈리아의 토스카나다. 태양의 땅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따뜻한 햇살이 막힘없이 펼쳐진 들판 위로 쏟아져 내리고, 그 사이를 가로지른 길 양옆으로 길게 뻗은 사이프러스 나무가 그늘을 드리운다. 잘 익은 와인과 한없이 넓은 와이너리, 풍성한 올리브나무가 천국을 상상하게 한다.
남부 절경의 해안마을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를 시작으로 해안을 따라 들어선 작은 마을들(소렌토, 아말피, 포시타노)은 두 눈으로 보고 있어도 믿기 힘든 절경을 선물한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아찔한 절벽과 가슴 탁 트이는 수평선이 펼쳐진다. 절벽 위에 아기자기하게 지은 마을들을 반나절씩 걷고 나면 카프리 해의 맑은 바람이 다정하게 땀을 식혀준다.
France
프로방스 작은 예술마을 길
프랑스 하면 가장 먼저 파리를 떠올리지만 사실 수많은 예술가와 명사가 사랑하고 마지막 여생을 보냈던 지역은 따로 있다. 프랑스의 찬란하고 눈부신 남쪽 땅 프로방스. 고흐부터 피카소, 샤갈, 마티스, 세잔에 이르기까지 예술의 영감을 얻고 말년에 정착했던 곳이다. 아를, 액상프로방스, 생폴드방스, 그라스 등 작고 동화 같은 마을을 걷고 있으면 따뜻한 남프랑스의 바람이 온몸을 감싸고 삶의 영감은 더욱 풍성해진다.
아시아
Japan
기적의 알펜루트
일본의 알프스라 불리는 알펜루트는 봄가을에 각기 다른 정경으로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오죽하면 기적의 알펜루트라 불릴까. 봄에는 자그마치 높이 22m의 설벽이 30km에 걸쳐 펼쳐지고, 가을에는 온갖 단풍이 세상을 가득 물들인다. 잠시이지만 이 길을 한 번이라도 걸어본 사람은 알펜루트를 잊지 못해 다시 방문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시니어를 위한 테마여행사 ‘링켄리브’
느림의 미학이 있는 여행, 삶의 여유와 행복을 즐길 수 있는 여행을 지향하는 국내의 대표적인 테마여행사 링켄리브는 시니어를 위한 다양한 여행을 기획, 진행하고 있으며 그동안 아무나 쉽게 떠날 수 없었던 여행들을 선보이고 있다. 시니어가 걷기 좋은 도보여행,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여행, 역사와 문화와 예술이 있는 테마여행, 유명 작가와 함께 떠나는 여행 등이 특히 주목받고 있다.
‘걷기’가 열풍을 넘어 생활이 됐다지만 지역마다 생겨난 ‘길’을 제대로 찾아 걷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혼자 걷다 보니 계획했던 길을 찾지 못할 때가 있고 결국 ‘중도 포기’란 말로 마침표를 찍기 마련. 어디든 아무 곳이나 막 걷는 것이 아니라 완주의 기쁨을 느끼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꼭 주목하기 바란다. 매년 봄가을 함께 걷는 행복과 즐거움을 알기 위해 100명의 사람이 뭉친다. 바로 서울둘레길 100인 원정대다. 건강을 위해 걷고 행복한 삶을 찾아 떠나는 이들과 길을 나섰다.
춘풍 맞으며 자연과 맞닿은 길을 걷다
봄꽃이 피기 시작한 어느 주말 아침, 서울둘레길 100인 원정대(이하 100인 원정대)가 서울 지하철 6호선 화랑대역 4번 출구 앞 공원으로 속속 모이기 시작했다. 함께 걷기로 한 곳은 서울둘레길 2코스(용마산·아차산)로 12.6km, 5시간 10분이 걸리는 난이도가 그리 높지 않은 곳이었다. 3월 17일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서울둘레길 걷기를 시작한 100인 원정대는 6월 9일 서울둘레길 8코스인 북한산 구간을 끝으로 마무리한다. 묵동천, 망우산, 용마산, 아차산을 연결해 걷기 길을 조성한 2코스는 서울둘레길 중 풍광이 뛰어나 추천하는 이들이 많았다. 애국지사 묘역인 망우묘지공원과 아차산 보루 등 역사와 문화유산이 어우러진 곳이기도 하다.
걷기에 앞서 원정대원들이 둘레길 우체통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섰다. 서울둘레길 스탬프북에 도장을 찍기 위해서였다. 도장으로 스탬프북을 다 채우면 서울둘레길 완주 증명서를 발급받게 된다고. 요즘에는 스마트폰에 스탬프북 애플리케이션이 있어서 도장을 찍기 위해 줄 설 필요가 없다. 그래도 도장은 직접 찍어야 제 맛. 보라색 다양한 문양의 도장으로 채워지는 원정대의 스템프북을 옆에서 보고 있자니 부럽기까지 했다.
인원 체크를 끝낸 진행요원과 원정대원들은 간단하게 몸을 풀고 난 뒤 묵동천을 따라 걷는 것으로 서울둘레길 2코스 완주길에 올랐다. 시냇가를 지나고 밭도 지나다 보니 진달래가 곳곳에 피어 원정대의 발길을 잡아끌기도 했다. 경의중앙선 양원역을 지나 중랑캠핑숲에서 잠시 쉰 원정대는 망우묘지공원 산책로를 밟았다. 10개 조로 나뉜 100명의 원정대원은 트레킹 전문가와 함께 속도를 맞춰가며 걷는다. 초보자에게 100인 원정대를 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안전하게 완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건강을 걷기로 챙길 수 있을까요?
100인 원정대는 2014년 가을 서울둘레길 개통에 맞춰 대원을 선발하기 시작해 올봄 여덟 번째 기수를 맞았다. 서울시와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 주관으로 봄가을 두 번 100인 원정대를 모집한다.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세대가 모여 매주 토요일 지정한 코스를 함께 완주한다. 첫 만남은 어색하지만 헤어질 때가 되면 가족만큼이나 가까워진다고. 서로 도우며 넘은 산이며 들에 추억이 쌓이다 정도 든다. 사실 100인 원정대가 생겨난 이유는 간단했다. ‘새로운 걷기 길 홍보’다. 4년이 지난 지금은 홍보를 넘어 시민 복지와 건강에 초점을 맞춰 원정대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이번 기수의 경우 건강 측정도 함께 진행했다. 걷기 전, 걷는 중간, 둘레길 완주 뒤 체중과, 체지방률, 근골격량, 기초대사량을 측정해 건강이 개선된 우수대원에게 시상도 계획했다. 결과는 100인 원정대 8기가 활동을 마무리하는 6월 9일 이후 공개한다. 100인 원정대를 통해 서울둘레길에 애정을 갖게 된 대원은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에서 아카데미 교육을 이수한 뒤 리본 달기를 비롯한 다양한 자원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된다. 오는 9월이 되면 9기 100인 원정대를 선발한다. 원하는 사람은 서울두드림길 홈페이지(gil.seoul.go.kr)를 참조하면 된다.
※ 라이프@이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소개하고 싶은 동창회, 동호회 등이 있다면 bravo@etoday.co.kr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2018년 5월 14일, 곤지암에 있는 화담숲으로 그이와 함께 봄나들이를 갔다. 2016년 10월에 블로거협회 벗들과 가을 단풍을 즐긴 곳이다. 그때 단풍이 너무 고와서 봄에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었다.
동백꽃은 으레 탐스런 모양의 붉은색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처음 본 쪽동백나무는 꽃송이가 작으며 하얀색이었다. 필자가 좋아하는 은방울꽃은 오월에 피어난다. 혹시나 하고 초록 이파리를 살펴보니 귀여운 얼굴을 살포시 내밀고 있다. 야호! 정말 반가웠다. 타원형의 선명한 초록색 잎에 만든 듯이 예쁜 하얀색 꽃이 얼마나 앙증맞은지 모른다. 무리 져서 피어난 하얀 조팝나무도 환상적이었다. 너무 아름다워 필자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화담숲은 나무 데크로 완만하게 산책길을 만들어놓았다. 어린이나 다리 힘이 부족한 시니어도 안전하고 여유롭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 가족, 연인 등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하기에도 더없이 좋은 장소가 아닌가 싶다.
오래전 한택식물원에 갔을 때였다 바위틈에 피어 있는 체리 빛 패랭이꽃이 얼마나 예쁘던지 눈물이 다 났다. 그런데 3년 전에 갔을 때는 나무에 벌레들이 많아서 벤치에 앉기가 곤란할 정도였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 느껴져 실망스러웠다.
"살아있는 것들은 늘 관심과 사랑을 주며 보살펴야만 한다."
아마도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의 삶에 영원한 것은 없다. 결국은 자금력이다. 다른 곳에 편의성, 볼거리 등 더 좋은 환경의 식물원이 생기니 경쟁력이 떨어져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을 것이다.
화담숲은 자연과 기획한 사람의 작가정신이 잘 어우러진 곳이다. 오밀조밀 만들어진 여러 곳의 폭포와 계곡에서 쉬지 않고 물이 흘렀다. 청아한 물소리가 계속 이어지며 귀와 마음을 씻어줬다.
사람만 이름이 있는 게 아니라 꽃들도 제각각 이름이 있다. 뭉뚱그려 꽃이라고 하지 말고 제 이름을 불러보자.
쪽동백나무, 하늘으아리, 매발톱꽃, 금낭화, 미쓰 김 라일락 등 토종꽃들과 은방울꽃, 조팝나무, 아이리스, 양달개비, 마거리트 등 서양의 다채로운 꽃들이 고유의 빛깔과 향내를 내뿜고 있었다. 나무에 달려 있는 꽃만 꽃이더냐! 떨어져 누운 꽃잎 또한 예술이었다.
화담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의미로 구본무 회장의 아호다. 화담숲의 운영비는 연간 150억 원이나 드는데 입장 수입은 80여 억 원정도라서 매년 적자운영을 하고 있지만 구본무 회장은 사회공헌 차원에서 운영한다고 했다. 화담숲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구 회장의 철학이 녹아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화담숲의 기획력이 돋보인 것은 옛것의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풍경 때문이다. 출구 쪽에 조성해놓은 야트막한 기와담장과 장독대가 정겨웠다. 화담숲 중간쯤에서 천천히 돌아가고 있는 물레방아는 옛이야기를 도란도란 들려주는 듯싶었다.몇십 년이 된 분재에 영양제를 주는 방식도 눈에 거슬리지 않았다. 튼실한 자금력으로 소소한 부분까지 신경을 쓴 게 눈에 보였다. 걷는 내내 '정말 좋은 곳이다.' '조경을 정말 잘해놓았구나' 하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다.
" 와아! 은방울꽃이다!"
"정말 너무너무 예쁘다!"
꽃들에게 반해서 감탄사를 연발하는 필자에게 그이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꼭 유치원 애 같아!"
기꺼이 전속 사진기사가 되어준 자상한 그이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힐링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
지역마다 명산(名山)이 우뚝하다. 대전은 보문산이 유명하다. 이밖에 봉황산과 식장산, 장태산, 만인산, 갑하산, 구봉산, 천비산, 우산봉, 금수봉, 빈계산 등도 명함을 내민다. 이 중 보문산은 ‘도심의 허파’라는 별칭답게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장점까지 지니고 있다.
보문산은 보물이 묻혀있다 해서 ‘보물산’으로 부르다가 ‘보문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보문산의 대표적인 문화유적으로 보문산성이 있는데 여기에 오르면 대전 시내가 모두 보인다. 전망대에 오르면 지역 프로야구팀인 한화이글스의 경기를 내려다볼 수 있다. 과거엔 케이블카도 운행되었지만 철거한 지가 오래되어 흉물만 남아 있다. 등산로와 약수터가 가득하여 빈 물통 하나만 들고 올라도 든든하다. 봄에는 진달래와 벚꽃이 많이 피어나고 가을에는 단풍이 더욱 아름답다. 보문산은 또한 보리밥으로 유명하다. 과거 보리밥은 없는 사람들이 주로 먹었던 음식이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건강식으로 사랑받기에 이르렀다. 보리의 원산지는 티베트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소 2,500년 전부터 보리를 재배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는 설도 있다.
신선한 푸성귀와 각종의 나물, 그리고 비지와 된장찌개까지. 여기에 고추장과 참기름을 두어 방울 떨어뜨려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비면 맛있는 보리밥이 완성된다. 보리(밥)는 혈관에 낀 때인 콜레스테롤을 잘 벗겨낸다고 한다. ‘동의보감’에서도 ‘오랫동안 보리밥을 먹으면 풍(風) 기운이 동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니 믿을 수밖에. 보리는 또한 고혈압 예방과 당뇨 개선에도 효과가 있다고 하니 즐겨 먹고 볼 일이다. 오랜 변비로 고생하는 사람은 보리밥을 꾸준히 먹으면 도움이 된다고 하니 보리는 참으로 신통방통한 녀석이 아닐 수 없다. 다만 방귀를 시원하게 뀔 수 없는 장소에 가기 전에는 보리밥을 먹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도 있으니 주의하시라!
가끔 내리는 비가 성급하게 여름으로 치달으려는 대지를 달래주는 덕에 봄 날씨가 겨우 연명하고 있다. 화사한 꽃이 만발한 따뜻한 봄날에 걸맞은 싱그러운 영화 한 편이 도착했다. 프랑스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이다. 원제는 ‘Back to Burgundy’로 그저 와인의 명산지인 부르고뉴로 돌아왔다는 말인데 영화 수입사가 설명적인 제목을 덧붙이는 바람에 멋이 사라졌다.
역시 문화 장사꾼인 프랑스인답게 자신들의 장기인 와인과 아름다운 자연을 버무려 멋진 안구 정화 장면을 선사한다. 스토리도 일과 사랑 그리고 가족애를 결합해 매우 건전하다. 요즘 소재결핍에 시달려 만화에 의지하는 할리우드 영화들에 지친 전통적인 영화팬들에겐 이런 진부한 듯 보이는 소재가 오히려 신선한 감동을 준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프랑스 영화다운 자부심일 터이다.
자줏빛을 띤 붉은색을 뜻하는 영어 ‘버건디(burgundy)’는 부르고뉴 지역에서 나는 와인을 통칭하는데 이 지역은 가족 경영을 중심으로 하는 와이너리로 유명하다. 그중 한 와이너리를 경영하는 자상하지만 고집스러운 아버지 밑에 삼 남매가 등장한다. 큰아들 장(피오 마르마이)은 10년 전 세계 일주를 핑계로 집을 나갔다. 둘째인 딸 줄리엣(아나 지라르도)은 어쩔 수 없이 가업을 잇고 있고 막내 제레미(프랑수아 시빌)는 결혼 후 처가 월드에 시달린다.
이들을 다시 한자리에 모은 건 아버지의 죽음이다. 세 남매는 그사이 폭등한 땅값으로 엄청난 상속세가 나오는 데 반해 정작 와이너리의 수익성은 1% 내외로 쪼그라들어 있는 현실과 마주한다. 서로 다른 기억으로 상처를 간직한 세 남매는 눈앞에 마주한 현실적인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뜻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선택은 그들 자신의 힘으로 최고의 와인 만들기에 도전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종류의 스토리는 흔하다. 흔한 소재를 특별하게 살리는 힘은 디테일에 있다. 이 영화는 7년의 제작 기간과 1년의 촬영 기간을 거쳐 완성되었다. 그만큼 프랑스 시골 마을의 사계가 충실하게 담겨 있다. 영화는 인간관계와 와인의 숙성과정을 병행시키며 사랑과 갈등을 밀도 있게 그린다. 이런 사실성이 설득력을 만들어 영화에 몰입하게 한다.
이 영화에서 와인은 인생의 은유이다. 땅을 팔 것인가 말 것인가 옥신각신하면서도 세 남매는 누가 서툴게 잔가지를 쳐내는 꼴을 못 본다. 인간의 DNA는 이처럼 무섭다. 그저 포도알을 터뜨려 만든 술인데도 와인마다 향이 다르다. 셋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그러나 숙성이 오랠수록 향이 진하듯 그들도 서로의 다름을 사랑으로 성숙시킨다. 장의 혼잣말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와인처럼 사랑도 시간이 필요하더라. 시간이 흐른다고 상하는 건 아니었어.”
우리말에 ‘삭다’와 ‘썩다’가 있다. 두 단어는 같은 뿌리이면서 반대의 의미를 지닌다. 와인은 오랜 시간 두어도 썩지 않고 삭아 뛰어난 향과 맛을 만든다. 사랑도 썩지 않고 곰삭아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려면 발효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발효가 일어나려면 긍정적인 시선과 따뜻한 마음이 필수적이다. 와인에서 배운 사랑이다.
아니나 다를까. 시사회로 본 지 며칠이 지났는데 관객들 반응이 대단하다. 어벤저스 류에 지친 관객들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와인의 얼룩은 천연섬유에 묻었을 때 유난히 지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들의 가족애가 가슴에 오래 남을 듯하다.
큰 창 사이로 봄볕이 드는 넓은 복도 한편. 간이의자에 한 남자가 앉아 있다. 트렌치코트에 중절모를 쓴 그는 시간을 쪼개서 뭔가를 읽고 있다. 가방 안에는 공부해야 할 읽을거리와 책이 가득해 보인다. 정지한 듯 몰두해 있는 모습, 옛 러시아 영화의 롱테이크 장면처럼 깊고 안정된 정적이 흐른다.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다물었던 입술이 엷게 미소 짓는다. 아동문학계를 대표하는 현역 동시 시인이자 영원한 선생님 신현득(申鉉得·84). 벚꽃 만발하던 주말 오후의 데이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인터뷰 당일 생각보다 날씨가 꽤 추웠다. 봄꽃은 만발한데 새벽녘 눈까지 내렸다. 4월호 층층나무동시모임 취재로 만나 뵀던 신현득 시인을 인터뷰 지면을 통해 다시 모시기로 했다. 신현득 시인은 우리나라 아동문학계의 산 증인이자 스승이기에 얘기를 좀 더 들어보고 싶었다. 어린이의 마음으로 제자들과 함께 익어가는 모습이 아름다운 신현득 시인이다.
“동시는 재미가 있어요. 불가능이 없는 세계입니다. 말하자면 온갖 세상에 있는 것들. 살아 있거나 또는 생명이 없어도 언어를 가지고 표현할 수 있어요. 가령 컵이면 컵이 말을 하고 생각을 한다는 가정 하에 시를 구성합니다. ‘시원한 물이 담겼다’, ‘아이고 시원하다’. 이게 지금 컵이 느끼는 거예요. 뭐가 됐건 행동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주고 난 다음에 사유하는 겁니다.”
동시가 뭐냐고 물어보니 여러 가지 예를 들어가며 설명을 한다. 얼굴에 화사한 기운이 도는 것을 보니 이미 마음은 아이로 돌아간 모양이다. 탁자에 놓인 컵을 보다가도 흐드러지게 핀 개나리를 보다가도 시상을 이야기한다. 꽃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의견을 묻기도 한다.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심상으로 표현하고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영락없는 동시 시인이다.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신현득 시인은 60여 년의 세월을 동시 짓는 현역 작가로 살고 있다. 물론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도 거르지 않고 있다.
“어려서부터 문학을 좋아했고 아이도 좋아했어요. 안동사범학교를 나와서 곧바로 초등학교 교사가 됐는데 아이들과 생활하고 늘 보고 듣고 하니까. 노는 모습이 귀엽잖아요. 예쁜 모습을 하나씩 메모하다 보니까 시를 쓰게 됐지. 어린애들, 예술 아니에요? ‘아기는 시다’라는 말이 있어요. 어린애들은 말하는 것도 시이고 동작도 시이고 모습도 시이고 그래요. 아이들 모습이 희한해요.”
아동문학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그에 대한 좋은 평가가 끊이지 않았다. 등단 이후 10년이 조금 지나 1971년에는 세종아동문학상의 영예를 안았다. 지금은 이런저런 상들이 많지만 당시만 해도 아동문학상 수상은 의심할 여지없이 좋은 글을 쓰는 시인으로 인정을 받는 중요한 지표였던 셈이다. 신현득은 20년 만에 교사를 그만둔 뒤 소년한국일보에서 15년간 기자생활을 했다. 이후 단국대, 서울예대, 한양여대 등 대학 강단에서 세계 아동문학사, 한국 아동문학사, 창작론을 가르치며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신현득은 한국 아동문학계의 큰 물줄기인 소파 방정환과 윤석중 선생의 계보를 잇는 인물이기도 하다. ‘어린이날 노래’를 비롯해 ‘새 신’, ‘고추 먹고 맴맴’ 등의 노랫말을 지은 윤석중 선생은 신현득 시인에게 가장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고마운 스승이다.
“윤석중 선생의 추천으로 신춘문예에 뽑혔어요. 선생 사무실에 자주 다니고 얘기도 많이 듣고요. 수시로 만나 봬면서 많은 공부를 했어요.”
스승을 잘 모신 덕일까? 지금껏 스승과 제자의 끈을 놓지 않고 함께 공부하는 층층나무동시모임이 13년째 이어오니 말이다. 이외에도 동시를 쓰는 시인들 다수가 신현득 시인의 제자임을 자처한다.
“나는 싫은데 제자들한테 떠받들리고 있어요. 내 영향을 받아서 시인이 됐다거나 수상을 했다거나 할 때마다 제자들 연락을 받죠. 그럼 축하도 해주고 격려도 하고 그래요. 금년에도 제자 두 사람이 상을 받았어요. 행복을 빌어주죠. 제자들한테 잘해주려고 애는 쓰지만 실제로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웃음)”
1분 1초가 바쁜 80대 현역으로 산다
요즘 신현득 시인은 일생일대 중요한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본인의 일과 생활, 모든 생각을 정리해놓고자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60년 동안 신현득이라는 시인이 ‘이렇게 해서 시를 이루어갔다’ 하는 그런 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신현득 동시 시법’이라고 가제를 일단 붙여놨어요.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언제 완성할지는 모르지만 될 수 있으면 금년 내로 완성하려고 합니다.”
자신만의 노하우를 담은 책을 쓰고 싶지만 사실 하루하루가 너무 바쁘다는 신현득 시인. 애초에 세계아동문학사를 한번 써보겠노라고 집필을 시작했는데 생각한 분량의 절반 정도 쓰고서 접어둔 상태다. 밀려오는 원고 청탁과 해야 할 일들 때문에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는 순간도 소홀히 대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법보신문에 동시 해설 연재를 하고 있어요. 거기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달라고 했으니까 무한정이지. 대외적으로도 청탁이 많아요. 지금 일곱 군데에서 원고 청탁을 해왔습니다. 문예지 같은 데에서는 작품을 내놓아라, 안 그럼 칼럼을 써라.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할 일거리를 챙기면서 뭘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간추립니다. 작품은 지하철에서 구상하고 씁니다. 일기도 꼭 지하철에서 씁니다. 지하철에서 안 쉬어요. 쉬질 않아요. 여유도 없고요.”
그럼 잠은 언제 자냐고 물으니 일하다가 졸리면 잔다고. 안 졸리면 계속 일을 한다고 했다. 이 바쁜 와중에도 문예지를 받아들면 앞에서부터 끝까지 읽고 난 뒤 문예지를 보낸 곳에 꼭 이메일로 잘 봤다고 회신 메시지를 남긴다. 책을 냈다며 보내오는 사람들에게도 모니터링을 해준다 했다.
일상에 동시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벼운 이야기를 해볼까 싶어서 다소 사적인 질문을 해봤다. 가족이랑 주로 뭘 하시는지? 시를 쓰는 것 말고 좋아하는 다른 것이 있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영화나 연극은 좀 보시는지, 최근에 여행을 해보셨는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 취미생활이건 여행이건 “할 시간이 없다”였다. “워커홀릭이시네요”라고 말을 건네니 “나만치 바쁜 사람은 없을 거 같아” 하며 식 웃는다.
“나는 딱 한 가지밖에 안 해요. 동시와 관련한 건 내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거기에 재미를 느끼고 좋아하니까 몰입합니다. 그 외에는 없어요. 시를 쓰니까 건강한 겁니다.”
생각을 하는 것이 바로 건강이고 자신을 위해 먹는 한약재라고 말했다. 시를 쓰니까 건강도 좋고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린다고 신현득 시인은 말했다.
언제 쯤 쉬실 수 있을 거 같아요?
바쁜 이야기를 쭉 하다 보니 느리던 말투에 속도가 붙어 있었다. 언제쯤 쉬실 것 같냐는 질문에 무덤덤하게 생사의 이야기가 수면 위로 올랐다.
“아직 생각을 안 해봐서 몰라요. 죽으면 쉬는 거지. 그땐 뭐 더 일할 수 없으니까요. 100세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말입니다. 사실 죽음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을 안 해봤어요. 불교 신자라 윤회사상을 믿으니까요. 이 세상에 났다가 좋은 일 하면 또 좋은 세상에 태어나고, 여기서 착한 일 하면 또 좋은 세상에 태어나고, 나쁜 일 하면 지옥에 가고요. 죽고 난 다음에는 어떨 것인가 하는 건 지금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묘비에 쓸 글귀 또한 생각할 틈이 없다고 했다. 인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매일 해내고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다.
“제가 만약 논문을 써야 한다면 글을 쓰기 위해서 공부도 해야 하고, 찾아서 정리할 자료들이 많잖아요. 글 쓸 준비는 다 해놓고 내가 쓰지도 않고 죽고 가버리면 낭패잖아요. 누가 그 일을 하겠습니까? 내가 다 못해놓고 죽을까봐서 겁이 나요. 지금 제가 준비하고 있는 것이 다음 세대에게 꼭 필요한 거란 말이죠.”
후세에 작은 것 하나라도 남기고 싶은 마음에 하루하루가 1분 1초가 너무 아까웠음을 이제야 토로한다. 잠 잘 시간까지 아끼고 깨어 있는 매 순간 무엇인가 해야만 하는 신현득 시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가 없으면 안 되지. 이 세상에 동심만 있다면 다툼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겁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댁까지 모셔다 드리겠다고 하니 아동문학학회가 있다며 경희대학교로 간다고 했다. 오전에 제자들과 함께하는 동시문학 모임을 끝내고 기자와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학회에 간다는 신현득 시인. 학회를 마치면 또 학회 사람들과 저녁식사를 할 거라고 말했다. 운전을 할 줄 아는지 물으니 지금까지 쭉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살았다고 했다. 우리 시대에는 자가용을 모는 일이 흔치 않았으니 이렇게 누군가 차를 태워주거나 아니면 대중교통이 내 자가용이라고 말이다. 경희대학교에 가까워질수록 개나리며 벚꽃이 절정의 모습으로 하늘거리고 있었다. 그가 말했듯 차 안에서 한시도 쉬지 않는다. 차가 신호등에 걸려 잠시 멈출 때마다 기자에게 줄 자신의 시집에 조심스럽게 사인을 했다. 시상이 떠오를 때는 창밖을 쳐다보며 아이 같은 목소리로 이러면 어떨까 저러면 어떨까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동시를 쓰지 않았다면 신현득 시인은 80여 년 인생을 재미없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차에서 내려 미소에 존경을 담아 인사를 했다. 돌아서서 도서관으로 걸어가는 신현득 시인의 모습을 바라봤다. 건강하세요. 오래오래….
어딜 가도 꽃잔치가 한창이다. 희거나 붉거나 노란 꽃송이들 우르르 일으켜 세우는 봄의 힘. 그걸 청춘이라 부른다. 자연의 청춘은 연거푸 돌아온다. 인간의 청춘은 한 번 가면 끝이다. 조물주의 디자인이 애초에 그렇다. 청춘은 전생처럼 이미 아득하게 저물었다. 바야흐로 생애의 가을에 접어든 사람에겐 말이다. 그러나 인생의 가을을 절정으로 가늠하는 사람에겐 여전한 봄. 싱싱한 태도와 관점이 청춘의 사촌인 회춘(回春)을 데려다 주기도 한다는 점에서 인생이란 흥미진진한 극장!
신을 발견했다. 새파랗던 청춘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어느새 어중간한 중늙은이로 변해버린 게 아닌가. 흉포한 세월의 간계에 부질없는 삿대질을 해대는 대신, 그는 올 것이 왔다는 투로 태연히 응하기로 했다. 과학교사였던 그에겐 매사 과학적 사고를 하는 버릇이 있다지. 어차피 거역할 수 없는 숙명엔 대번에 순응하자는 게 그의 과학적 인생관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게 인색한 조물주가 주입한 숙명에 짓눌리지 않는 길이라는 지론 또한 그의 과학이렷다. 윤 씨는 교장을 찾아가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모종의 일을 꾸미기 시작했다. 그 모종의 일이란 반전 평화운동이나 조국의 통일운동 같은 웅장한 사업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의 내밀한 영혼과 관련됐을 수도 있을 그 모종의 일이란 귀촌이었다. 귀촌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었더란다. 사실 그건 오크통에 숙성시킨 와인처럼 그가 오랫동안 무르익힌 숙원이었다. 적당한 때가 오면 시골에 들어가 살겠다는 포부. 귀촌으로 인생 가을을 회춘의 계절로 누리겠노라는 열망. 그는 포부와 열망 자체가 믿을 만한 길잡이인 걸 알아차리고 귀촌을 단행했다. 미련도 불안도 없이 사표를 던졌다. 마치 담 밖에서 부르는 연인의 음성에 이끌려 집을 나서는 사람처럼 스윽 도시를 벗어났다. “남들이 뜯어말리더라고요. 그 어중간한 나이에 시골 가서 무슨 재미를 보겠느냐, 웬 생고생을 자청하느냐, 그런 소리들을 했어요. 그러나 은퇴 이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미리 생각해왔던 저에겐 귀촌이 움직일 수 없는 답이자 길이었어요. 이미 오래전부터 귀촌에 매력을 느끼고 모색해왔으니까. 다만 타이밍을 기다렸을 뿐인데, 예순 나이에 접어들 즈음, 이제 때가 왔다, 더 미룰 수 없다, 그런 판단을 했죠.” “평생 생활고에 쫓기다 옥살이까지 했던 세르반테스. 그가 ‘돈키호테’를 써 성공한 게 예순 무렵이었죠.” “저의 꿈은 소박해요. 일테면,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살고 싶다, 그런 거….” “선생께서 미리 간파한 귀촌의 매력 요소란 어떤 것들이죠?” “일단은 제 취향과 잘 맞을 거라 봤어요. 딱히 도시에 환멸 같은 걸 느끼진 않았지만, 마음은 자주 시골로 흘러갔어요. 텃밭을 가꾸고, 나무를 기르고, 앞산 뒷산을 산책하고, 그런 한적한 생활에 대한 선망이 많았어요. 생활비를 줄일 수 있을 거라는 점에도 호감을 느꼈어요. 시골의 싼 땅값도 매력 요소라 봤고요. 이래저래 귀촌으로 은퇴 이후 노년의 삶을 한결 생동감 넘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네요.” “살터를 잡는 일부터 착수했겠죠?” “광주 인근 나주나 담양에 터전을 마련하려고 많이 돌아다녔지만 마땅치 않았어요. 우연히 이곳 이 마을을 발견한 건 행운입니다. 땅값도 쌌어요. 광주의 아파트 한 채 값이면 땅 사고 집짓고, 그럭저럭 충분하리라는 예상대로, 이후 과정은 일사천리로 잘 진행되었죠.”
원주민보다 귀촌 가구가 더 많은 마을
귀촌을 작심한 이후 불과 반년 안짝 만에 집짓기까지 마치고 이사를 했다. 윤태홍 씨의 아내 이숙연(57) 씨가 동지애를 발휘해 한껏 조력한 성과였다지. 이 씨 역시 교사 출신이다. 영어를 가르쳤었다. 부부 교사였으니 연금을 합산하면 쏠쏠하리라. 부부가 보유한 나름의 물적 토대는 귀촌의 돛을 미는 순풍 역할을 했을 테다. 500여 평 부지를 사 번듯한 2층집을 짓는 데엔 처음의 예상대로 아파트 한 채 값이 들어갔단다. 이후 집 뒤편 산자락에 있는 묵정밭을 추가로 사들였다. 날 보러 와요, 라고 어여삐 노래한다. 윤 씨네 집 둘레에 피어난 봄꽃들이 말이다. 봄 아니고 꽃 아니더라도 헌칠한 마을이다. 높고 낮은 산들이 어깨를 겯고 둥글게 둥글게 원을 그리며 한바탕 춤을 추어대는 그 복판에, 혹은 꽃잎들 환하게 벌어진 그 안통 화심(花心) 부위에 마을이 들어앉았다. 저 아래 초록빛 호수 위로는 아지랑이 아롱거린다. 전쟁이 터지더라도 감쪽같이 무사할 듯 외진 맛이 있는 반면, 볕 바른 양달 일색이라 으슥한 구석 없이 포근하다. 대를 이은 농투성이로 살았던 원주민들은 대부분 도시로 흩어져 나갔다. 바야흐로 귀촌·귀농 전성시대라 해야 하나. 지금 이 마을을 이룬 24가구 중 70%가 도시에서 유입된 귀촌 가구들이라는 게 아닌가. 어떤 이들이지? “저와 같은 퇴직자들, 자영업을 하다 들어온 사람, 예술인, 광주로 출퇴근하는 건설업자 등 다양합니다. 원주민보다 외지인이 더 많아 텃세, 그런 건 없어요. 원주민들 자체가 순후하지만, 다들 편하게 어울려 지냅니다.” “이사 뒤 가장 먼저 공들여 한 일은 무엇이었죠?” “제가 소나무를 무척 좋아합니다. 광주 아파트에 살 때도 화분에 소나무를 길렀어요. 소나무를 바라보면 왜 즐거움이 샘솟을까, 그 이유를 잘은 모르겠지만 그놈들을 애호했어요. 정원 둘레에 소나무를 심어 가꾸고 싶다는 염원은 사실 귀촌 동기에 속합니다. 해서, 공들여 소나무부터 심기 시작했어요.” “소나무로 뜰을 둘렀으니 솔향이 은은할 테고, 달빛이 솔가지를 타고 흐를 테고, 수시로 운치를 즐기시겠다.” “소나무뿐일까. 모든 자연 환경이 아름답죠. 그러나 제가 풍경을 즐기는 일에 능하진 못합니다. 낭만적인 성향의 인물은 전혀 아니라서.(웃음)” “그럼 어떤 성향?” “흠. 원만한 성품이랄까? 눈앞에 주어진 일에 단순하게 매달리는 기질이고요, 부지런히 내가 할 일을 찾아 나서는 성격이기도 하죠. 딱히 안 해도 될 일을 굳이 찾아 열심히 매달리곤 했어요. 귀촌 이후 아로니아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도 그런 성격 탓이죠.” 윤 씨는 800평 규모의 아로니아 농사를 짓는다. 이왕에 사들인 널따란 묵정밭을 그냥 놀리기란 대지의 여신에게 결례되는 일이거니와, 시골의 적막 속에 찻물이나 마시며 도 닦는 사람처럼 고요하게 눌러앉아 지내기란 고문처럼 고역스러워서였겠지. “농원을 보여주실래요?”라고 부탁하자 나른하던 그의 표정에 갑자기 생기가 돈다.
강박과 속박 없이 맘껏 즐기는 일상
4월의 아로니아나무들은 미처 깨어나지 못해 둔하다. 윤 씨 홀로 살뜰한 눈매로 나무의 싹눈을 이리 쳐다보고 저리 들여다보고, 마치 현미경으로 박테리아균의 신비한 동향을 살피듯 진지하다. 귀촌 1년 만에 농부로 변신한 그는 3년여가 더 흐른 현재는 영락없는 농사꾼이다. “텃밭농사도 그렇고 농사라는 거 진짜 재미있습디다. 아로니아 농사에 관한 한 별로 어려울 것도 없더라고요. 워낙 강한 작물이라서요. 병충해에 강하거든요. 극단적으로 농약 살포를 자제하더라도 농사를 망치진 않아요.” “수익성은?” “하향세가 뚜렷해요. 재배 농가가 급증해서죠. 재작년엔 2000만 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지만 작년엔 반 토막 났어요. 작물 전환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체리나 굵은 대추로 바꿀까 해요.” “선생은 과학을 전공했어요. 농사에도 과학을 적용하시나?” “농사도 응용과학이지 않겠어요? 그 점에서 제겐 농사가 유리하죠. 제가 가장 싫어하는 두 가지가 있는데요, 고집스럽게 말만 앞세우고 행동은 없는 처신, 그리고 자기합리화입니다. 그런 쓸모없는 것들을 경계하고, 과학적인 사고에 따른 주도면밀함과 준비성으로 살아가는 게 좋다고 봐요. 자랑은 아니지만, 제게 몸에 밴 과학적 실천은 있다고 봅니다.”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와 다탁에 마주앉는다. 그의 아내가 주방에서 다과를 가져와 탁자에 놓고 원래의 자리였던 저편 의자에 다시 앉는다. 말수가 드물다. 그림자처럼 조용한 거동. 묵언수행을 하는 도류처럼, 식물처럼, 시종을 일관해서 고요하다. 말보다 내밀한 침묵의 웅변이란 게 있겠지. 세상에서 할 말을 이미 다해버렸거나, 말이 아닌 은근한 눈빛으로 부부애를 나누기에 숙달됐을 수도 있겠지. 아니면 부부간에 언쟁이라도 있었나? 흔하디흔한 게 부부싸움이지 않던가. 그러나 윤 씨 말하길, “우리에겐 그 흔한 부부싸움이 아예 없다”고 한다. “부부싸움이 되질 않아요. 왜냐? 집사람이 전혀 대꾸를 안 하거든요.(웃음)” “저런! 남편을 숫제 포기하셨을까?”
“대꾸를 하거나 제동을 걸어봤자 먹히지 않아서겠죠. 때로 저 사람이 나에게 관심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섭섭한 생각도 들지만, 사실은 천성이 그래요. 소리 없이 남편을 도와주고 믿어주고 챙겨주고, 숨 쉬는 공기처럼 제겐 고마운 존재죠. 제가 그걸 모를 정도의 멍청이는 아닙니다.(웃음)” “귀촌이라는 급격히 바뀐 환경에 남편은 빠르게 적응하는 반면, 아내는 적응이 더딘 경우가 드물지 않죠.” “배려가 필요하겠죠. 상대의 성향을 존중하는 자세 말이죠. 저는 제법 활달한 편입니다. 외부 활동이 잦아요. 반면 아내는 이웃의 단짝 친구와 어울리거나, 집에서 혼자 조용히 머무는 걸 즐겨요. 그런 아내를 위해 도서관엘 자주 들러 소설책들을 빌려다 줍니다.” 배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메마른 공유지를 적시는 단비. 윤 씨의 성정은 담백함이 넘쳐 무색무취에 가깝다. 그러나 아내에게 쓰는 마음은 나긋하거나 촉촉하겠지. 부부가 불화하고서도, 아내를 고려하지 않고서도, 시골생활을 무사히 누릴 묘한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귀촌 4년 차. 윤 씨는 더 바빠졌다. 오라는 곳도 가야 할 곳도 많아졌다. 그는 이걸 생동하는 삶의 징표로 본다. “제가 일찌감치 서예와 사진에 열을 냈어요. 이젠 꽤 조예가 생기고 동호인 모임들에도 빠지질 않아요. 귀촌 공부도 여전합니다. 이미 예전에 집짓기 학교나 각종 귀촌 교육 프로그램을 섭렵했지만 지금도 열심히 찾아다녀요. 한문 고전 강독 모임에도 참여해요. 때론 몸이 둘이라도 부족할 지경이에요. 귀촌에 만족합니다. 강박과 속박 없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비로소 맘껏 즐기며 사니까. 이보다 나은 삶이 어디 있을꼬.” 귀촌으로 자유를 얻었다는 얘기다. 상처가 없는 지평, 자유를.
봄이 왔다. 농부들이 바빠지는 농사철이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도 농사를 짓는 곳이 있다. 도시텃밭에서 상자를 이용한 농사다. 대부분 건물의 옥상이나 아파트 베란다 같은 곳에서 관상용으로 취미 삼아 농사를 짓는다. 아파트 건축 후 남은 자투리 텃밭도 있다. 텃밭을 개인이 관리하고 농사짓는 것은 정서면에서도 좋다. 다만 지자체에서 ‘도시농부’ 또는 ‘자투리 텃밭’이라는 이름을 달고 개발하여 지역주민에게 한 평이나 두 평정도의 아주 작은 농토를 분양하고 관리를 해 주는 것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지자체 도시텃밭은 주민들에게 인기가 좋아 경쟁이 심하다. 도시민들이 여가를 이용해 직접 농사를 지어보게 함으로써 여가선용도 되고 건강도 도모하면서 가족끼리 농사짓는 기쁨도 맛보라는 의미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자투리땅이라도 농사는 농사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낭만에 젖어 아무나 덤벼들기는 어렵다.
농사를 지으려면 농토는 기본이고 씨앗이나 모종이 있어야 한다. 농작물이 잘 자라게 하기위해 퇴비도 듬뿍 넣어야 하고 비료도 필요하다. 친환경 농사를 위해 농약을 치지 않으려면 수시로 손으로 벌레를 한 마리 한 마리 잡아야 한다. 삽이나 괭이, 호미, 등 농기구도 필요하다. 가물 때는 물도 줘야 하고 장마 때는 배수로에도 신경 써야 한다. 잡초도 없애주고 농작물이 넘어지지 않게 버팀목도 세워줘야 한다. 또, 농사는 시기가 있으니 영농일지를 써가면서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자질구레한 일들 때문에 농사를 지어보지 않은 사람에겐 어렵다. 농군학교에 다녔어도 농사 전문가로부터 지도와 도움을 받아야 한다.
다행이도 이런 관리와 지원, 지도를 지자체에서 해주고 있다. 대부분 비슷하겠지만 어느 지자체에서 자투리 텃밭 분양공고를 봤는데, 6㎥에 2만 원을 받고 씨앗과 퇴비를 주겠다고 한다. 삽이나 괭이 등 농기구도 빌려준다. 단 호미는 각자 사라고 한다. 지자체에서 농토를 갈아엎어서 구획을 정리해주고 각종 지원을 해준다. 담당 부서가 있고 이 일을 맡아서 하는 담당 공무원이 있다. 겨우 2만 원을 받으며 이런 지원을 해주는 것은 손해 장사다. 지자체의 손해에는 다른 사람이 낸 세금이 들어가서 형평을 맞춘다.
귀농하는 농부들의 첫 번째 애로사항이 농사를 지어도 팔 곳이 없다는 것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 중 시골의 일가친척으로부터 농산물을 사 달라는 전화를 받아보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직접 지은 농산물을 팔지 못해 애타하는데 도시농부를 만든다는 낭만으로 지자체가 세금을 쏟아 붓는 도시텃밭은 재고해야 마땅하다.
대기업이 참기름 들기름까지 짜서 파니까 재래시장 상인들이 해 먹을 것이 없다고 한다. 예전에는 큰 동네마다 수동식 국수 기계를 갖춘 국수 공장이 있었고 아이스케이크 공장, 정미소도 있었다. 이제는 산업화와 경영 효율화에 밀려 다 없어졌다. 시골의 면 소재지에 가 봐도 지역민을 위해 생산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겨우 미장원, 이발소나 일용잡화를 파는 구멍가게만 있을 뿐이다. 5일마다 열리는 재래시장은 지역의 축제장이었지만 대형마트에 밀려 거의 사라졌다. 농촌에도 피와 같이 돈이 돌게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농촌의 농산물을 도시에서 소비해 주지 않으면 팔 곳이 없다. 지자체에서 관리해주고 그저 세금만 잡아먹는 도시텃밭이라면 그만 문을 닫아야 하지 않을까? 고추, 상추, 가지는 시장에 가서 1000~2000원만 주면 한보따리 살 수 있다. 입술이 없으면 잇몸이 시린 법이다. 농촌이 죽으면 도시도 죽는다. 지자체에서 도시 텃밭자리에 꽃동산을 만들고 도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꽃을 가꾸게 하면 좋겠다. 대형마트를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경제 논리에 반해서 하루정도 문을 닫는 날을 만든 것이 본보기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보랏빛, 흰색, 노란색, 분홍색 저마다 뽐내고 있다. 겨우내 금방 말라 죽을 것만 같던 나무도 어느새 연두색 잎사귀로 뒤덮여 몸체가 안 보일 지경이다. 점점 짧아져 쥐꼬리만 한 봄이지만, 그래도 역시 봄은 좋은 계절이다. 이런 천지가 그 유혹에 안달 난 우리를 자꾸 밖으로 끌어낸다.
그 기운에 기대어 겨우내 몸 사리느라 못 만난 친구를 만났다. 이런저런 살아온 이야기 끝에 친구가 말했다.
“지난 주말 우리 며느리가 친구들이랑 시내 호텔에서 하룻밤 논다고 우리 아들한테 손주를 맡기고 나갔단다. 그래서 아들이 손주만 데리고 우리 집에 왔더라고. 그게 뭐 요새 트렌드라나 뭐라나.”
이 친구도 시어머니 노릇 하려 이 말을 하나 하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그 뒷말은 잇지 않았다. 그가 내게 마음을 숨기거나 교양이 있어서가 아니다. 며느리가 안 듣는 데서 며느리를 흉보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요즘 트렌드이기 때문이다. 명색이 고등교육을 받은 세대가 시어미가 되었다고 모여앉아 며느리 흉보는 모습이 옹졸해 보였는데 바람직한 변화이지 싶다.
언뜻 우리의 꽃다웠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엄한 시어머니 밑에서 숨죽이며 살지 않았던가. 목구멍까지 치미는 말도 억지로 꿀꺽 삼키며 지내지 않았던가. 그 기간은 착한 며느리 코스프레를 하며 지낸 듯하다. 매일매일 평소 자신의 모습인 양 연기하며 지냈으니 그 억울함은 얼마나 컸나!
자가 발전한 참았던 분이 어디로 터지겠는가. 남편은 무방비상태에서 애꿎게 폭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부부 사이에는 전쟁이 시작되고 영문 모르는 남편은 이 싸움에서 이길 수도 휴전의 방법도 알 길이 없다. 아내는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멍청한 남편이 야속하기만 하다.
결혼할 때는 서로 지나치게 잘 맞아 아무 말 안 해도 내 마음을 알아줄 줄 알았더니 갈수록 눈치가 발바닥이다. 하지만 정작 억울한 것은 남편이다. 멍하니 아내만 바라보다 센 펀치를 한 대 맞은 셈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항상 여린 연두색 잎사귀일 것 같던 그녀가 이제는 사철나무 두꺼운 고무나무 껍질이 된 것이다.
여자로서 이런 일이 반복되며 그 꽃다운 시절을 다 보내고 말다니. 하지만 다 잃은 것은 아니다. 그 덕에 ‘세상에 더 없는 며느리’, ‘착한 새언니’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러나 그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무엇이든 그 값어치는 우리가 그것을 위해 내놓으려고 하는 인생의 분량과 같다“라고 했다던데. 과연 인생의 반을 대가로 바칠 만한 것이었을까?
문득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영화배우 최은희가 남긴 말이 귓가에 맴돈다. 무슨 대단한 유언이 아니라 자신의 영결식장에 가수 김도향이 부른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틀어 달라는 요청이었다.
스치는 봄바람 속에 흔들리는 꽃마저 예쁘다. 꽃이 만발한 동안 그 귀한 시절을 만끽했으면 좋겠다. 그때 하루하루가 얼마나 좋고 아까운지 알았으면 좋겠다. 결코, 우리와 다르게 지내는 젊은 세대를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너희가 정녕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