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봄이 오는 길목에서 이투데이 신춘음악회 '2018 따뜻한 콘서트'가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올해는 벌써 6회 공연이지만 필자는 운 좋게도 작년 이맘때쯤에 5회 공연을 관람하고 이번에 두 번째로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송파에 살고 있는 필자는 조금 이른 시간에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퇴근시간의 지하철 9호선은 지옥철이었다. 공연시간보다 다소 이른 저녁 일곱 시 직전에 도착하여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근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는 KBS로 올라갔다.
입장하기 직전의 KBS홀 로비에는 삼삼오오 지인들끼리 모여서 반가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평소 알고 지내는 동년기자들과 가볍게 인사를 하고 티켓팅 부스에서 티켓 두 장을 받아들고 입장을 했다.
사회를 맡은 서현진 아나운서의 맑고 카랑카랑한 멘트와 함께 막이 올랐다. 'K'ARTS 발레단‘은 국내외 최고 권위의 콩쿠르에서 입상한 무용수들이 대한민국의 발레를 선도하는 발레단이라고 들었다. 2명의 남녀 무용수들이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무대를 휘젓고 있었다.
사실, 발레공연은 필자 일상의 삶속에서 꽤나 거리가 먼 예술이다. 어쩌다가 찾아온 기회나 되어야 관람할 수 있지만, 오늘의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의 환상적인 공연은 어렴풋 지난 세월 속에서 관람했던 ‘빌리엘리어트’라는 영화를 추억해 내게 했다.
삶의 벼랑 끝인 탄광의 막장에서 아들 빌리의 성공을 위해 죽을힘을 다해 살아가는 광부와 그의 아들이 빌리엘리어트의 이야기다, 엄마를 여의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광부인 아버지와 형을 둔 빌리는 우여곡절 끝에 성공하여 영국 왕립발레학교에 입학을 하게 된다. 그리고 멋진 발레리노가 된 빌리가 가족을 초청해서 공연을 펼치는데, 그 멋지게 날아오르는 앤딩 장면이 자꾸만 클로즈업 되어 왔다.
이어지는 무대는 바이올린 오케스트라였다. 바이올린의 대가 김남윤을 중심으로 한예종 졸업생과 재학생, 그리고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어린 예술영재들의 황홀한 바이올린 연주였다. 곡이 끝날때마다 관객 모두가 힘찬 박수로 환호를 했으며, 이들은 전통클래식, 올드팝, 영화음악 OST 등 다양한 분야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바이올린의 간드러지면서도 애달프고 때로는 경쾌한 선률이 리듬을 타고 객석에 울려퍼지는 순간, 칙칙한 겨울은 이미 떠나가고 있었다. 감상하는 내내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듯 한 시원함이 묻어나왔다. ‘따뜻한 콘서트’에 딱 어울리는 공연이었다.
‘포르테 디 콰트로’는 JTBC의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싱어’의 초대 우승팀으로 4인조 멤버로 구성된 팀이다. 시원시원하면서도 우렁우렁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매료되어 어깨까지 들썩이면서 감상을 했다. 선이 굵은 목소리에서 나오는 4중창은 무대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마지막 순서로 서현진 아나운서가 비주얼 가수라고 소개한 김범수가 등장했다. 지금까지 정통클래식 공연을 감상했다면 이번에는 섬세한 바이브레이션과 고저음을 오가는 가창력으로, 슬픈 가사와 멜로디를 지닌 김범수의 음악을 감상하게 되었다. “사랑이 날 또 아프게 해요 사랑이 날 또 울게 하네요 ~” 관객중에 어떤 분은 김범수의 ‘하루’를 들으면서 울컥했다고 했다.
공연은 무르익어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관객들은 공연자들과 끝까지 호흡하며 객석을 떠나지 못했다.
아직은 모질게 추웠던 금년겨울의 여운이 남아있었지만, ‘따뜻한 콘서트’ 공연을 감상하면서 칙칙한 그 여운조차 밀어내고 있음을 마음으로부터 느껴야 했다. 아내와 함께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공연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아내는 가장 인상깊은 공연은 ‘바이올린 오케스트라’라고 했으며 두 번째는 ‘포르테 디 콰트로’의 4중창을 꼽았다. 하지만 필자는 공연 모두가 의미있고 가슴속에 깊은 떨림과 여운으로 남았다고 대답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따분한 일상에서 만나게 된 ‘따뜻한 콘서트’는 잠자던 가지에 물을 올려 봄을 꽃피워 내고 있었다. 또한 아내랑 모처럼 함께 차분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어 더욱 의미가 있었다. ‘따뜻한 콘서트’를 감상하면서 겨울철의 암울했던 찌꺼기들은 훌훌 떠나보내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찬란한 새봄을 맞이해야겠다.
바야흐로 봄이다. 산으로 들로 봄꽃 나들이도 좋지만, 풍성하게 마련된 전시도 즐길 겸 갤러리 나들이를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올 한 해 눈여겨봐야 할 5가지 미술전시와 더불어 연간 일정을 함께 정리해봤다.
◇ 빔 델보예 개인전
장소 갤러리현대 일정 2월 27일~4월 8일
신개념주의(neo-conceptual) 예술작품들로 주목받는 벨기에 작가 빔 델보예의 국내 첫 전시다. 돼지 몸에 문신을 새긴 작품들을 선보이며 ‘돼지 문신’ 작가로도 불리는 그는 드로잉, 조각, 사진 등 폭넓은 장르를 아우르며 독특한 소재로 구현한 실험적인 작품들을 내놓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다양한 문양의 미학적 요소를 사물에 응용한 작품들과 일반적인 형태와 개념의 맥락을 비트는 작품 30여 점을 보여준다. 고딕 양식으로 레이저 커팅한 스틸, 손으로 조각한 타이어, 살라미 햄으로 구성한 대리석 문양의 바닥 사진 등 작가만의 유머러스한 작품세계와 전통적 요소가 맞물리는 기이한 경험을 선사한다.
>>빔 델보예 (Wim Delvoye, 1965~)
박제된 돼지의 몸에 명품 브랜드의 로고를 그려 넣으며 경악과 흥미로움의 영역을 넘나드는 작품세계로 유명해진 빔 델보예는 스위스 팅겔리 미술관(2017), 룩셈부르크 현대미술관 무담(2016), 모스크바 푸시킨 미술관(2016), 파리 루브르 박물관(2012), 로댕 박물관(2012), 베니스 구겐하임 컬렉션(2009), 리옹 현대 미술관(2003), 파리 퐁피두 센터(2000)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베니스비엔날레, 시드니비엔날레, 상해비엔날레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엔날레에 참여하며 독창적인 예술관을 펼치고 있다.
◇ 정강자: 마지막 여행은 달에 가고 싶다
장소 천안 아라리오갤러리 일정 5월 6일까지
한국 아방가르드 작가계의 선두주자이자 1970년대 대표 여성 작가인 정강자의 회고전이다. 정 작가는 개인전을 위해 1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쳤지만, 지난해 7월 위암으로 갑작스럽게 타계하며 이번 전시는 그의 유고전이자 최초의 회고전이 됐다. 올해 1월 31일 아라리오갤러리 서울(2월 25일까지)과 천안(5월 6일까지)에서 동시에 개최한 이번 전시는 작가의 생을 기리고 그의 50여 년 화업을 미술사적, 사회적으로 균형 있게 재조명하는 데 주력한다. 작가의 최근작과 더불어 아카이브 자료를 배치해 자신의 삶을 여성상과 자연물, 기하학적 형태에 투영한 작품들을 아울러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정강자 (鄭江子, 1942~2017)
홍익대학교 서양학과 졸업 후 ‘키스미’(1967)처럼 파격적인 조형작업을 비롯해 ‘투명풍선과 누드’·‘한강변의 타살’(1968), ‘기성 문화예술의 장례식’(1970)과 같은 퍼포먼스에도 참여했다. 1960~70년대 당시 젊은 예술인들의 도전이 응집된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 그룹 ‘신전(新展)’의 일원으로 한국 미술계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이와 같은 행위를 통해 여러 경계와 틀로부터 해방되고자 했으나 여성의 신체를 드러내는 작업에 대한 선정적인 시선을 감내해야만 했다.
◇ 니키 드 생팔 개인전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일정 6월 30일~9월 25일
프랑스 여류 작가 니키 드 생팔의 작품 120여 점을 소개하는 대규모 특별 전시다. 프랑스 파리 스트라빈스키 분수의 공공미술로 잘 알려진 그의 대담성과 순수함을 드러내는 입체조형물 및 회화, 판화 등으로 구성된다. 화려한 컬러와 독특한 구조가 돋보이는 그의 후기 입체작품들을 폭넓게 전시할 계획이다.
>>니키 드 생팔 (Niki de Saint Phalle, 1930~2002)
여성지 ‘보그’와 ‘엘르’, 사진 주간지 ‘라이프’의 사진 모델로도 등장했을 만큼 매혹적인 외모를 지닌 니키 드 생팔은 유년 시절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며 겪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미술을 시작했다. 이 때문에 ‘슈팅 페인팅’(1961) 등 그의 작품은 페미니즘 성향이 두드러지며 여성을 주제로 한 조형물이 많은 편이다. 그가 만들어낸 뚱뚱한 여성 조각인 ‘니나’ 시리즈를 비롯해 여성의 몸을 과장해 표현한 작품에는 여성으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한 분노와 고발 의식이 담겨 있다.
◇ 윤석남 개인전
장소 학고재갤러리 일정 9월 예정
2013년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린 ‘나는 소나무가 아닙니다(I’m Not a Pine Tree)’ 이후 5년 만에 열리는 윤석남의 개인전이다. 홍콩 아트바젤(세계적인 미술품 아트페어) VIP 책자 전면에 소개되는 등 국내외적으로 예술성을 인정받은 그의 독창적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큐레이터들의 극찬을 받은 설치미술 ‘핑크룸’(1998)이 갤러리 한 층을 가득 채울 예정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민화 기법을 통해 제작한 그의 신작 발표가 예고돼 기대감을 끌어올리고 있다.
>>윤석남 (尹錫男, 1939~)
한국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세’(1919)의 극작가 겸 영화감독인 윤백남의 셋째 딸로 태어나 해방 이전까지 만주에서 살았다. 1954년 아버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6남매를 홀로 키우며 인고의 세월을 살아온 어머니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그는 줄곧 ‘어머니’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로 불리고 있다. 40대에 늦깎이 화가로 데뷔했지만 ‘어머니의 이야기’(1995), ‘부엌’(1996), ‘허난설헌’(2005) 등 꾸준히 작품을 내놓으며 여든의 나이에도 여전히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다.
◇ 마르셀 뒤샹 전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일정 2018년 12월~2019년 4월 예정
국내에서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리는 마르셀 뒤샹의 전시다.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작가의 주요 작품 및 아카이브는 물론, 마르셀 뒤샹을 소재로 한 사진, 드로잉, 미국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만 레이(Man Ray, 1890~1976)를 비롯한 당대 작가들의 관련 작품까지 총 110여 점을 소개한다. 특히 변기를 독창적으로 재해석한 뒤샹의 대표작 ‘샘’(1917)을 이번 국내 전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도쿄국립박물관을 시작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 이어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립미술관으로 이어지는 순회전이다.
>>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 1887~1968)
프랑스 화가 자크 비용(Jacques Villon, 1875~1963)과 조각가 레이몽 뒤샹 비용(Raymond Duchamp-Villon, 1876~1918)의 동생으로 인상주의, 포비즘, 큐비즘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선보였다. 입체파의 균열된 형태, 사진과 영화의 스톱 모션 등 자연의 시공간에 관한 지배적 관념을 뒤엎는 아방가르드 회화 ‘계단을 내려오는 나체 2’(1912)는 당시 예술평론가들 사이에 논란을 일으켰을 만큼 독특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에도 여성으로 분장하고 찍은 사진 ‘로즈 세라비’(1921), ‘심지어,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1923) 등 파격적인 예술세계를 보였으며, 다다이즘의 대표 작가로 손꼽힌다.
◇ 2018 상반기 전시 일정
3월 '이정진: 에코-바람으로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3월 8일~7월 1일
'예술가 (없는) 초상'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미술관 3월 20일~5월 20일
김용익 개인전 ‘Endless Drawing’ 국제갤러리 3월 20일~4월 22일
'한국서예사특별전: 명재 윤증'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3월 29일~5월 20일
4월 이반 나바로 개인전 'THE MOON IN THE WATER’ 갤러리현대 4월 19일~5월 27일
5월 '내가 사랑한 미술관: 근대의 걸작'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5월 3일~10월 14일
'강요배 개인전' 학고재갤러리 5~6월 예정
6월 육근병 개인전 ‘생존은 역사다’(가제) 아트선재센터 6월 15일~8월 5일
◇ 2018 하반기 전시 일정
7월 '박이소: 기록과 기억'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7~12월 예정
'조선민화걸작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7월 5일~8월 26일
'이창수 개인전' 학고재갤러리 7월 예정
8월 '프란시스 알리스 개인전' 아트선재센터 8월 31일~11월 4일
9월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 2018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9월 6일~11월 18일
11월 아키 사사모토 ‘항복점(Yield Point)’ 아트선재센터 11월 23일~2019년 1월 13일
'제국의 황혼, 근대의 여명: 근대전환기 궁중회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11월~2019년 2월 예정
12월 '한국현대미술대가: 한묵'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12월 4일~2019년 3월 10일
대동강 얼음도 풀린다는 우수 절기도 지나고 개구리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도 흘렀다. 제주도를 비롯한 남녘에서의 봄꽃 소식도 겨우내 얼었던 가슴을 녹이는 듯하다. 한파로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이 어느덧 물러나고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움틈의 계절이 조금씩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한 겨우내 추위에 움츠렸던 나무와 풀뿌리는 봄을 알리는 절기에 입김을 쏘이며 세상을 나들이할 준비를 한다. 봄이 오는 길목이다. 겨우내 얼었던 산골짝 얼음 사이로 졸졸 흘러나오는 물줄기 소리에도 봄이 밴다. 꽁꽁 얼었던 농수로가 녹아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물위에 동그라미 그리며 오리 떼가 모여 조찬회를 즐긴다. 눈 녹은 낙엽 덤불을 헤집고 사랑을 부르는 장끼의 정겨운 울음에도 봄은 묻어난다. 알게 모르게 서서히 봄이 다가옴이다. 우리는 대체로 나뭇잎이나 풀의 새싹이 연둣빛으로 고개를 내밀 때 봄을 느낀다. 봄의 상징, 새싹이 그렇게 보인다. 과연 봄은 연둣빛으로 시작될까? 아니면 또 다른 빛깔로 시작을 알릴까? 어떤 빛깔로 다가올까?
얼었던 대지가 녹을 즈음이면 산야의 나무 색깔이 확연하지는 않아도 무언 지 모를 변화를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그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변화의 모습은 과연 무엇일까? 아침 산책길로 택한 주변의 나지막한 산을 오르고 내리며 유심히 살펴본다. 앙상한 가지가지마다 색감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움틈을 미리 알려주는 신호가 있음이다. 처럼 어떤 큰 변화는 여럿의 작은 변화의 징조 끝에 다가온다. 계절의 바뀜도 그렇지 않을까? 어느 순간에 확 바뀌지 않는다. 작은 변화들이 서서히 이어져 나타난다. 대체로 초록의 새싹 돋음에서 봄을 느낀다. 봄의 시작은 새싹의 초록 기운일까? 필자는 봄의 시작은 초록이 아닌 검은 기운임을 느낀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느껴지는 빛깔은 분명 검은 빛이다.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보아도 분명 검은 색조를 띈다. 나무 둥치들을 보면 완연히 그렇다. 느티나무, 소나무, 참나무, 산 벚꽃 나무 등 대부분이 검은 색조를 보인다. 고개를 들어 먼 산을 다시 바라본다. 산불이 났던 산처럼 검게 보이지 않는가? 스카이라인에 선을 긋는 나뭇가지는 불탄 흔적처럼 보인다. 실루엣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나 검은 색감이 바탕을 이룬다. 언제 저곳에 산불이 났었나 하고 여길 정도로 검은색을 드러낸다. 늘 푸르다는 소나무의 침엽도 검은 색에 가깝다. 봄은 한 해의 시작이고 사계절의 출발점이다.
시작은 검은색으로 나타나나 보다. 산 정상에 올라 산 아래 널따란 들녘을 바라본다. 눈앞에 펼쳐지는 아늑한 대지 또한 검은빛으로 눈에 다가온다. 씨앗을 품은 땅도 잉태의 색깔, 검정으로 변하고 있다. 봄을 맞는 땅의 기운인지 모른다. 지나간 여름, 가을, 겨울을 되돌려 생각해 본다. 여름철과 가을의 대지 그리고 겨울, 해동하는 요즈음의 땅의 색조는 분명 다르다. 그 땅은 그 땅임이 분명한데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흙의 색감이 조금씩 다르다. 봄이 오는 길목에는 유난히 검게 보인다. "펄 벅" 여사의 "대지"에도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태동의 색은 분명 검은색인 듯하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꽤 오래전에 어머니께서 하셨던 말이 떠오른다. 큰 형이 장가를 가고 한집에 살게 되었다. 예전의 대가족 제도다. 1년쯤 지났을 때 형수의 얼굴을 유심히 보시던 어머니께서 밝은 표정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네 형수의 얼굴이 검은 기가 도는 걸 보니 손주가 생길 모양이다” 어머니 말씀대로 형수는 조카를 가졌었다. 인간에게도 잉태의 알림은 검은빛이다. 임신이 가능한 나이에 이르는 처녀의 피부도 검은 색조를 띈다. 아이를 가진 아내의 얼굴이 다소 검게 변함을 느껴 본 적이 없는가? 유심히 관찰한 경험이 있다면 분명 느꼈지 싶다. 검게 변함은 태동을 알리는 신호다. 귀중한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다. 한밤중보다도 날 새는 새벽녘이 더 어둡다. 같은 이치다. 새로운 날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여서 그렇다.
눈을 들어 다시한번 앞산을 본다. 봄의 기운을 안은 나무들 검게 보인다. 눈을 들어 먼 들판을 바라본다. 검푸른 대지의 기운이 꿈틀거린다. 금세 아지랑이 피어오를 듯하다. 뒷산을 오르며 내려 본 나무 나무들, 검은 기운 터질 듯하니 멀지 않아 연둣빛 새싹이 돋겠네. 봄은 검은빛으로 다가온다.
봄바람 살랑살랑 불어오는 요즘. ‘방콕’이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분들 계신가? 부부가 혹은 가족끼리 또는 동성 친구끼리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곳, 게다가 ‘먹방’까지 기대할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볼까 한다.
경춘선 기차여행[김유정역]_실레마을 이야기길 따라 점순이를 만나다
7호선과 경의중앙선이 교차하는 만남의 장, 상봉역. 춘천 가는 기차는 대성리, 가평을 지나 출발한 지 72분 만에 멈춘다. 내린 곳은 근대문학 ‘봄봄’, ‘동백꽃’의 산실, 실레마을이 있는 김유정역. 역사 맞은편으론 ‘비단으로 병풍을 두른 산’, 금병산이 포근하게 안아준다. 역사를 빠져나와 약 5분 정도 걸었을까. 버선발로 마중 나온 ‘점순이’를 만난다.
“그새 좀 컸는가? 반갑단 말보다 다짜고짜 키부터 재 보는데 잘 봐야 내 겨드랑 밑에서 넘을락 말락. 또 고갤 숙일밖엔 도리가 없다. 딸이 더 자라야 성례를 시켜줄 수 있다며 차일피일 미루고 일만 시키는 장인, 아버지를 못마땅해하면서 나를 충동질해대는 점순이, 반발하다가도 끝내 이용만 당하는 나는 정말 어리석은 머슴이던가. 빙장님, 올가을엔 꼭 성례를 시켜줘요. 더 이상은 못 참아요. 장인의 약속을 반신반의하며 뒷골 콩밭으로 향한다. 아침부터 부슬부슬 내린 비로 안 그래도 고즈넉한 잣나무, 소나무 숲 사이 길은 더없이 폭신폭신. 그 순간이다. 왁자지껄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그녀들이 다가오는 게 아닌가. 결코 머물 수 없는 눈웃음의 그녀들이.”
아주 치명적이었던 들병이들 ‘눈웃음 길’을 스치듯 빠져나오면서 그 들병이 꾐에 빠졌던 근식이가 걷던 그 ‘한숨사연 길’을 돌아본다. 오죽하면 자기 집 솥을 훔쳤을까? 세월의 무게만큼 겹겹이 쌓인 잣나무 가지들을 밟고선 심호흡 여러 번에 팔다리도 죽죽 펼쳐본다. 오전 10시에서 12시 사이에 가장 많이 뿜어낸다지 아마. 이윽고 마주한 두 갈림길. 어느 쪽을 택할 텐가? 동백꽃(생강나무) 길 따라 정상도 좋겠고 산골나그네 길 따라 터벅터벅 걸어도 좋겠고. 오늘은 기어코 산골나그네가 병든 남편을 끌고 사라진 으슥한 산 저편으로 가볼 텐가?
김유정역 실레마을에선 김유정문학촌을 구경하고 난 다음 둘레길인 ‘실레마을 이야기길’을 반드시 한 바퀴 산책해야 한다. TV 프로그램 ‘알쓸신잡’의 그곳, 인쇄박물관이 지척에 있는데 많은 분들이 모르고 그냥 지나치고 만다. 김유정 선생이 귀향해 야학을 일으켰던 곳, 금병의숙(錦屛義塾)에서의 인증샷도 의미 있겠고 기차카페로 개조된 폐김유정역에서 타임킬링도 가성비 있다. 인근엔 레일바이크 장도 있고. 또 '먹방'도 빠질 수 없으리. 춘천 하면 닭갈비 아닌가? 역전에서 ‘점순네’를 찾으시라.
꽃 피고 새 우는 고궁 산책[창덕궁]_덕혜옹주가 남긴 마지막 메모를 찾아서
4월 어느 날. 마침 하늘빛은 미세먼지를 걷어내고 바깥 기운도 그리 차갑지 않다. 어제 생일을 챙겨주지 못한 아내를 위해 함께 집을 나섰다. 막상 어디로 가야 하나? 눈치를 살피는데 그냥 ‘가까운 곳’으로 가잔다. 더 어려운 숙제라고? 아름드리 회화나무가 반겨주는, 다리품 많이 팔지 않아도 되는, 5대 궁궐 중 유일하게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창덕궁은 어떨까.
1405년 태종 때 제2의 왕궁으로 창건되어 임진왜란 이후 불타버린 경복궁을 대신한 곳. 마지막 임금 순종 때까지 약 270여 년간 왕조의 정궁 역할을 한 곳. 그나마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고 ‘시크릿 가든’인 후원이 있어 자연과의 조화미와 전통의 조경미를 만끽한 적 있으신지. 그러나 오늘의 관심사는 따로 있다.
바로 낙선재! 경복궁의 건청궁이 그러하듯 창덕궁 내 단청을 하지 않은 유일한 곳. 여인의 '비운' 같은 게 서려 있다고나 할까? 일본에 볼모로 끌려갔다가 우여곡절 끝에 고국으로 돌아온 고종의 외동딸 덕혜옹주가 말년을 보낸 곳(정확히는 낙선재의 우측 끝에 있는 수강재). 두리번두리번 돌아서 드디어 만난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어쩌면 혼신의 힘으로 써내려간 것일까. 그녀의 마지막 편지(메모)에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옹주는 1989년 4월 12일, 향년 77세로 이곳 낙선재에서 운명한다. 새들이 우짖고 꽃들이 피어나는 4월이면 다시 찾아오고 싶은 곳. 올봄에 방문하신다면 한 가지 추가할 곳이 생겼다. 작년 말에 재개관한 창경궁 대온실이 바로 그곳. 후원 쪽으로 가면 이웃한 창경궁과 연결되는 출입구가 있는데 지척이니 함께 둘러보면 ‘엄지 척’ 장담할 수 있다.
세종마을 도보여행_이 골목 저 골목 헤매기 좋아라
세종마을은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사이에 있는 청운효자동과 사직동 일부 지역을 말한다. 경복궁 서편에 있다 하여 북촌에 대비해 ‘서촌’으로 소문난 곳이다.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입구를 나와 대로를 따라 걷노라면 이윽고 우리은행 건물이 나타난다. 도보여행은 여기서부터 ‘딱’이다.
좌측 골목길로 접어들면 세종마을의 주요 목적지 중 하나인 ‘이상의 집(터)’이 나온다. 백부의 권유로 건축과에 입학한 시인은 1929년 3월, 수석으로 졸업하는데 화가의 꿈을 늘 간직하고 있었다고. 얼핏 카페 같은 이곳엔 비밀의 문이 있는데 그곳을 통하면 잠시나마 그와 호흡할 수 있다. 한 걸음 두 걸음 올라선 다음 이내 날개를 펼쳐 오래된 기와지붕 위로 훨훨 날아올라보라. 이걸 놓치고선 여길 다녀갔다 말할 수 없으리.
할머님과 며느님께서 푸근한 미소와 여유로 차근차근 귀엣말하시듯 이곳저곳 소상히 들려주셨던 ‘이야기가 있는 헌책방’이 다음 코스다. 고인이 된 창업주 할아버지가 결혼하면서 부부의 가운데 이름을 따서 상호로 정했다는 곳, 대오서점이다. 분수를 아는 즐거움 정도로 해석되는 가훈 이야기, 다락방 사연, 풍금 이야기, 드라마 ‘상어’의 주인공(손예진과 김남길) 뒷담화(둘은 흥행작 ‘해적’에서 다시 인연을 이어간다)까지 줄줄 풀어놓으셨는데 그동안 세월이 좀 흘렀나보다. 없던 액세서리 진열대도, 사진 촬영금지 팻말도 보이고 그새 입장료(2500원)도 훌쩍 인상됐다. 오늘따라 주인장도 안보이고 대신 시니어 알바께서 맞이해준다. 가수 아이유가 앨범사진을 찍었다는 상업적 내음 물씬 나는 설명엔 노코멘트할밖에.
좀 걷다 보면 공통으로 생각나는 건 뭐? 때맞춰 신기하게 나타난 곳이 ‘통인시장’이다. ‘골라먹는 맛과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곳’이다. 잡도리 쉼터 파라솔 아래에서 ‘셀프’로 즐기기도 편하다. 먼저 1인 5000원 하는 도시락을 구입하면 되는데 엽전 열 냥을 제공하니 하나에 500원인 셈. 그 복잡한 골목길에서 기다랗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라면 재미. 박노수미술관을 지나서 수성계곡 물소리를 벗 삼아 기린교를 건너는 상상도 분명 힐링이다. 다리품을 팔아 ‘시인의 언덕’에 오르면 북한산은 물론 북악산 아래 청와대, 경복궁 일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교통 편리한 역세권에 세종대왕, 정철을 비롯해 수많은 다양한 인물들이 살다 간 흔적이 이리도 집약된 곳 또 어디에 있을까? 종로구에 신청하면 해설사와의 동반 투어도 가능하니 봄날엔 놓치지 마시라. 서촌에 바람이 부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인가? 봄날은 가고 있다.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이었다. 몇십 년 만의 강추위가 엄습했고 제주도를 비롯한 전라도 지역에도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사람들은 맹추위에 몸을 움츠리고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영국의 낭만파 시인 셀리가 읊었던 “이 겨울이 지나면 봄은 멀지 않으리~”라는 시 구절처럼 봄이 다가왔다. 이제 움츠렸던 몸을 활짝 펴고 봄을 만끽하며 활발하게 활동할 시기다. 메마른 대지 위에 조물주가 만들어놓은 꽃의 정원으로 떠나보자.
제1추천지 : 접근성이 좋은 서울대공원에서 테마별로 즐거움 만끽하기
필자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울대공원을 한때 자녀들을 데리고 갔던 동물원으로만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서울대공원은 동물원뿐만 아니라 다양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첫째는 동물원이다. 지금은 볼 수 없는 호랑이, 사자 등 맹수와 세계 각국에서 들여온 희귀동물로 가득하다. 세계 각국의 동물들을 이곳에서 다 볼 수 있다. 천천히 여유를 갖고 동물의 고향과 각각의 성향과 습성 등을 살펴보고 관찰하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1984년 5월 1일 개장한 이래 29개 동물 막사에 332종 2700마리의 동물이 있다.
둘째는 식물원이다. 진귀한 꽃들이 많다. 봄꽃들의 화려한 자태를 볼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이다. 꽃향기는 덤이다. 봄은 꽃들의 잔치가 화려하게 열리는 계절이다. 2017년 5월에는 600여 종의 식충식물로 꾸며진 식충식물관도 개관을 했다. 식충식물은 향, 색, 꿀 등으로 먹이를 유인하는데 끈끈이형, 포획형, 흡입형, 유도형 등이 있다. 날카로운 덫으로 순식간에 파리를 낚아채는 파리지옥, 끈끈이주걱, 벌레잡이제비꽃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셋째는 둘레길이다. 둘레길은 힐링할 수 있는 좋은 코스다. 맑은 공기와 꽃향기를 맡으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봄 향기에 흠뻑 취할 수 있는 장소다. 호수 둘레길, 동물원 둘레길, 숲속 愛 힐링 코스가 있다. 호수 둘레길은 분수대 광장에서 호수 주변을 한 바퀴 돌아오는 산책로여서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즐길 수 있다. 가볍게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며 잠깐 커피 한잔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봄에는 벚꽃,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다운 길이다. 동물원 둘레길은 제법 길다. 청계산 자락인 이 길은 2013년도 서울시에서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단풍길 81개소’에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봄에는 벚꽃이 만발하고 아름드리나무들이 가득한 곳이다.
서울대공원을 추천한 이유는 동물원뿐만 아니라 테마별로 즐길거리가 있고 사계절의 아름다움까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벚꽃이 화려하게 피는 봄에는 나들이하기 좋은 최고의 명소로 꼽힌다. 벚꽃 축제, 튤립 축제, 장미 축제도 열려 축제의 명소로도 알려져 있다.
제2의 추천지 : 고창 청보리밭
청보리밭 축제는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열린다. 봄을 꽃의 계절로만 보는 것은 봄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푸른 언덕 위에 펼쳐진 청보리의 싱싱함을 느끼고 풋풋한 내음을 맡다 보면 젊음의 에너지가 솟아오름을 느낄 수 있다. 영화 ‘도깨비’의 촬영지이기도 해서 해마다 수만 명의 관람객들이 찾아온다. 청보리밭을 걸으며 청보리 향에 취하다 보면 도시의 소음에 지친 심신이 어느새 맑아진다. 또한 이곳에서는 푸른 청보리밭과 함께 유채꽃도 즐길 수 있다. 우아한 모습을 자랑하는 유채꽃의 샛노란 자태가 눈부실 정도다.
고창 청보리밭을 추천하는 이유는 이곳과 함께 가까운 곳에 있는 선운사 동백꽃을 함께 볼 수 있어서다. 또 먹거리가 풍부하다는 장점도 있기 때문이다. 하루 시간을 내어 청보리밭을 거닐고 선운사에 들러 동백꽃까지 감상한다면 시간과 경비가 아깝지 않을 것이다. 주변에는 오래된 장어 요리집도 있다.
제3의 추천지 : 수안보 벚꽃 축제와 온천 축제
수안보는 충주시 수안보면에 있는 온천 지구다. 왕의 온천이라 불리는 이곳은 태조 왕건과 숙종은 물론 현대의 역대 대통령들도 즐겨 찾았던 곳이다. 53℃의 적당한 수온과 각종 미네랄까지 포함돼 있어 장수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매년 4월 중순 벚꽃의 개화 시기에 맞춰 온천 축제와 벚꽃 축제가 함께 열려 온천욕도 하고 벚꽃까지 즐길 수 있다. 천변으로 길게 늘어선 벚꽃길은 오랜 역사를 말해주듯 아름드리나무들로 이루어져 있다. 화사하게 핀 벚꽃길을 걷노라면 향기는 물론 눈꽃을 맞으며 황홀감에 젖어들게 된다.
행사기간에는 행진 퍼레이드, 각종 축하공연, 이 고장 명물인 꿩고기 시식회도 열린다. 다채로운 볼거리와 힐링온천 그리고 아름다운 벚꽃이 더욱 풍요로운 봄의 축제를 선사한다. 벚꽃 축제, 온천 축제가 열리는 수안보는 전국 어디에서든 승용차로 오기 적당한 거리에 있다. 문경 옛길을 걸으며 등산도 할 수 있다. 30년 전통의 꿩 요리가 유명하며 올갱이 해장국, 칡냉면, 물만두 전골집 등 맛집도 많아 식도락을 느끼기에도 제격이다.
초등학교 친구인 옥자가 자신이 근무하던 서울대학교 농대 교양학과 사무실의 사환자리를 필자에게 물려주었다. 기회를 준 옥자가 참으로 고마웠다. 필자가 근무하던 자동차 노조 사무실은 한 달 봉급이 5000원이었지만 농대는 절반밖에 안 되었다. 그래도 그곳에 더 있다가는 숨통이 막혀버릴 것 같았기에 과감하게 사표를 냈다.
'인생은 선택이다.'
단 하루를 살아도 맑은 공기를 나눠 마실 수 있는 사람들하고 같이하고 싶었던 것이다. 필자는 진흙탕에서도 살 수 있는 미꾸라지가 결코 아니었다. 물이 탁해지면 금방 숨이 끊어져버리고 마는 은어였다.
농대는 야학 시절 음악회나 연극이 있을 때 수시로 드나들던 곳이다. 농대 캠퍼스를 유난히 좋아했는데 그곳에 근무하게 된 것이다. 필자는 뛸 듯이 기뻤다.
마음속에 ‘농대 교수님들은 필자가 그리도 좋아하는 서둔 야학 선생님들의 선생님들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무조건 교수님들을 좋아하고 존경했다. 교양학과 교수님들은 한 분 한 분이 참으로 학구적이고 매너가 부드러운 신사들이었다. 필자에게도 늘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교양학과 과장님은 영어를 담당하신 조성지 교수님이었다. 키가 크고 체구가 당당하시며 혈색이 좋으신 조 선생님은 필자가 붙여드린 ‘영국 신사’라는 별명이 너무 잘 어울리는 분이었다. 인간성까지 좋으신 조 선생님은 흐트러진 구석을 절대로 보이지 않았다. 학자로서 교재연구를 착실히 하면서도 글쓰기를 즐겨 생활수필을 써서 신동아 등의 잡지에 기고하기도 했다.
원래 열렬한 기독교인이었으나 나중에 가톨릭으로 개종하신 조 선생님은 ‘가톨릭이야말로 진짜 종교다’라고 역설하시곤 했다. 고향이 이북인 조 선생님은 근검절약의 표본이시기도 했다. 구두 뒤축이 다 닳으면 왼쪽과 오른쪽 구두의 굽을 바꿔 달아서 신으시는 등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절대로 지출을 하지 않았다.
필자에게 심부름을 보낼 때는 1원짜리로 세어서 왕복 14원을 주실 때도 있었는데 처음에는 ‘체구 큰 남자 어른이 잘아도 너무 잘다’라는 생각도 했지만 근검절약하시는 모습을 늘 보면서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 절약하고 사셔서 그런지 자제분들을 꽤 많이 두었음에도 모두 대학교를 보냈다.
점심에는 주로 라면을 드셨다. 필자는 라면을 끓여드리곤 했다. 뚱뚱하신 체구에 땀을 뻘뻘 흘리며 라면을 드시는 모습을 뵙기가 안타까워 옆에서 부채질을 해드리기도 했다. 선생님은 처음에는 사양하시다가도 필자가 고집을 부리면서 부채질을 해드리면 어린애같이 좋아하셨다.
"내가 애란이 덕분에 너무 호강한다."
고교 시절, 필자는 적어도 세계문학전집만큼은 다 읽어야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농대 도서관과 학교에서 책을 빌려다 놓고 틈만 나면 책 속에 빠져 있곤 했다. 그때 조 선생님이 넌지시 지적해주셨다.
"애란아, 책은 그만 보고 공부에 더 신경을 써야 하지 않니?"
그날 밖에서 다른 선생님들과 점심식사를 하신 조 선생님이 싱글벙글 웃으시며 들어오더니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며 말씀하셨다.
“이거 우리 약혼 시계야.“
껄껄 웃으시며 시티즌 손목시계를 필자 손목에 맞게 조절해서 채워주셨다. 60대 노교수님 얼굴에 어린애같은 순진함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난생 처음 차보는 손목시계의 차가운 감촉이 퍽 신선한 느낌으로 와 닿았다. 시계는 얼마 안 가 고장이 났지만 조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만은 기억 속에 그대로 살아남아 있다.
“꼭 베일을 쓴 신부 같네.”
필자가 근무하는 곳을 아름답게 꾸미고 싶었다. 사무실 탁자에 언제나 꽃을 꽂아 놓고 싶었으나 너무 가난했기에 여의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화원에서 흰 국화와 아스파라가스를 싸게 구입할 수 있었다. 커피 병에다 정성껏 꽂아놓았더니 교수님들이 즐거워하시며 하신 말씀이다.
교양학과 교수님들은 대개 인품이 훌륭하셨다. 그중에서도 선하신 데다 겸양의 미덕까지 갖춘 이상철 철학 교수님은 철저한 학자이셨다. 이 교수님은 앉으나 서나 책만 봤다. 책을 너무 좋아하는 바람에 눈을 혹사시켰기에 그즈음 의사가 처방을 내리기를 “책을 그만 봐야 한다. 안 그러면 시력을 아주 잃어버릴 수 있다”라고 했다.
교수님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분은 책을 안 읽고 살 수 없는 분이셨다. 차라리 밥을 먹지 않는 게 그보다 덜 고통스러웠을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은 좋은 눈을 갖고도 책 한 권 읽지 않고 방탕하게 세월을 보내는데, 열심히 연구하시는 분의 눈은 왜 나쁜 것일까. 안타까웠다. 이 교수님은 세상 물정은 하나도 모르고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하는 백면서생인 데다가 세속적인 영달도 바라지 않는 듯했다. 필자가 좋아하는 전형적인 학자 타입의 남자였다. 독신주의자이셨던 교수님을 보면서 막연하게 이런 분 뒷바라지를 하며 생을 보내는 것도 행복하고도 보람 있는 삶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독어 교수님은 릴케의 시 ‘가을날의 기도’를 번역하신 송영택 시인이었다. 배가 튀어나온 송 선생님은 흘러내리는 허리띠를 연신 치켜 올리는 습관이 있었다. 날렵한 몸매에 순수한 눈빛을 가진 윤동주 시인을 기억하고 있던 필자에게 배 나온 시인은 아무래도 이상해 보였다.
가장 젊은 국어과 홍윤표 교수님은 정의감과 의협심이 투철하신 분이었다. 순수와 열정을 갖춘, 날카로운 지성과 달콤한 감성을 동시에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교수님은 필자만 보면 “이빨 두 개 내놔라, 이빨 두 개 내놔” 하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필자 이름이 ‘배비장전’에 나오는 기생 애랑과 이름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교수님의 악의 없는 농담에 한바탕 웃곤 했다.
교수님의 아버님은 평소에 “사람을 믿어라, 사람은 근본적으로 착하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당시 돈으로 어마어마한 3000만 원(?)인가를 사기당한 후부터는 “사람을 믿지 말아라” 하셨다고 한다. 그래도 교수님은 사람을 믿고 싶고, 믿을 것이라고 하셨다. 천사가 따로 없었다. 필자 눈에 비친 교수님은 천사 같은 분이었다. 안경 쓴 남자 천사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교양학과 사무실이 있던 농대 신관은 가운데가 사각 공간으로 설계되어 있었는데 그곳에 잔디가 파랗게 심어져 있었다. 늦은 봄이면 초록색 잔디 위에 노란 민들레가 여기저기 소담스럽게 환히 피어 있어서 너무도 아름다웠다. 창문을 열고 내다보면 아침마다 방긋 웃던 샛노란 민들레의 미소가 필자에게 행복감을 듬뿍 안겨주곤 했다. 그런데 5월 어느 날 아침, 창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본 필자는 참담해졌다. 어제까지 피어 있었던 민들레들이 모두 날카로운 낫에 베어져서 한쪽에 모아져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베어져버린 민들레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기 좀 보세요. 베어진 민들레들이 마치 여인네의 퇴색한 옷자락 같아요.”
다른 교수님들도 있었지만 특별히 홍 교수님께 인정을 받고 싶었다. 필자의 계산이 들어맞은 것인지 교수님께서 감탄했다.
“야! 박 양 표현력이 대단하구만”
따가운 햇볕에 지친 나무들이 ‘자울자울’ 졸고 있는 듯한 어느 날 오후였다. 모처럼 시간을 내어 홍 교수님과 같이 서호 둑을 거닐었다. 햇살이 온 천지에 내려앉아 눈이 부셨고 호수의 잔물결은 가장자리에 박혀 있는 돌들을 가볍게 쓰다듬고 있었다.
"지방에 산재해 있는 비어 중에 배를 가리키는 비어로 ’배때기‘, ’배때지‘ 등이 있다니까 여대생들이 어찌나 배를 잡고 웃던지 강의를 계속할 수가 없었어요."
교수님은 강의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말씀해주셨다. 그때 재미있게 들으며 웃던 필자의 눈에 호수 둑 밑에 피어 있는 자그마한 노란 꽃이 들어왔다.
"어머, 저 꽃 참 예쁘다."
무심결에 감탄했더니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박 양, 내가 저 꽃을 따다 줄까요?"
가지고 있던, 책이 들어 있는 자그마한 손가방을 필자에게 맡기시고는 조심조심 내려가 그 꽃을 따다 주셨다. 그 장면은 필자로 하여금 물망초의 전설을 연상시켰다. 나를 잊지 말라 했다는 슬프디슬픈 전설이.
교수님은 따다 주신 꽃을 소중하게 받아 들고 필자는 기쁨에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생각하는 것은 자유라 했다.
그날 홍 교수님은 너무나도 멋진 기사님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값진 것은 역시 사람의 인품이다. 교양학과 교수님들은 필자가 근무하는 3년 동안 늘 화목한 모습을 보여주셨고 갈등을 겨자씨만큼도 보여주신 적이 없다. 주간으로 나오던 대학신문 또한 필자에게 좋은 선생님이 돼주었는데 훌륭한 소설평이나 칼럼 등은 반드시 그날 일기에 적어두고 몇 번씩 반복해서 읽었다. 참으로 훌륭한 집단에서 보낸 세월이었다. 그래서 취업을 앞둔 제자들에게 필자는 늘 이렇게 강조한다.
“돈 몇 푼 더 받는 곳보다 분위기 좋은 직장을 골라서 가라. 그래야 배울 것이 많고 좋은 배우자를 만날 확률도 높다.”
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 땅에도 또다시 봄이 온다네
그렇습니다. 봄바람이 붑니다. 춘삼월 다시 돌아오니 산에 들에 또다시 바람이 붑니다. 처녀, 총각 가슴에도 봄바람이 붑니다. 그 봄바람 따라 봄 야생화들이 다시 또 피어납니다. 복수초, 노루귀, 제비꽃, 변산바람꽃, 중의무릇, 현호색, 양지꽃, 개별꽃, 광대나물 등등. 그런데 이런 봄꽃이 한두 송이가 아니라 수백, 수천 송이씩 떼로 피어 온통 꽃밭이 되는 보물섬이 있습니다. 야생화 애호가들은 그곳을 꽤 오랫동안 제 지명이 아닌, 보통명사 ‘서해 꽃 섬’으로 불러왔습니다. 가능한 한 이름을 감춤으로써 찾는 발걸음을 줄여, 야생화 자생지 훼손을 최소화하자는 선의가 담긴 고육책이었습니다. 하지만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있듯 비밀의 정원은 소문나지 않을 수 없었고, 급기야 인기 TV 예능 프로그램 등에도 소개되면서 국내 최고의 야생화 자생지로 전 국민에게 알려지기에 이르렀습니다.
안산시 단원구 풍도가 바로 그곳입니다. 풍도의 야생화 탐사는 선착장이 내려다보이는 비탈면에 형성된 마을 뒤 해발 177m의 후망산을 오르면서 시작됩니다. 배를 타고 풍도까지 가는 동안 과연 꽃이 피었을까 의심하던 조바심은 후망산 오르막 길섶에서 광대나물과 개별꽃, 개지치 등 작은 풀꽃들이 하나둘 깨알 같은 꽃봉오리를 연 걸 보며 눈 녹듯 사라집니다. 그리고 마을이 끝나고 숲이 시작되면 곧바로 복수초가 건배라도 하듯 황금 잔을 여럿 모은 채 길손을 맞이합니다. 봉인 해제된 비밀문서의 페이지마다 은밀한 정보가 가득하듯 후망산 오솔길마다, 산등성이마다, 골짜기마다 귀한 봄 야생화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원래 단풍나무가 많아 ‘풍도(楓島)’라 했으나, 1894년 청일전쟁의 시발이자 일본이 청나라 함대를 기습해 대승을 거둔 ‘풍도해전(豊島海戰)’을 기념하기 위해 섬을 불법 점거한 일본이 ‘풍도(豊島)’로 고쳐 불렀다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섬. 봄이면 섬 전체가 야생화 군락지라 할 정도로 다양한 꽃이 풍성하게 필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 없는 고유종도 2개나 간직하고 있습니다. 종전에 변산바람꽃으로 구별 없이 불리다 깔때기 모양의 꽃이 크고 형태가 다소 다르다는 이유로 변산바람꽃의 신종으로 분류된 데 이어 ‘풍도바람꽃’이란 별도의 국명으로 등재된 게 그 하나요, 붉은대극과 유사하지만 잎이 좁고 총포 내에 털이 밀생한다고 해서 ‘풍도대극’이라 불리는 게 또 다른 하나입니다. 이들의 별도 국명과 관련, 미세한 차이를 내세워 새로운 종으로 분류하는 게 타당한지 의문이라는 주장이 있기도 합니다.
어쨌든 봄바람 부는 3월 내내 풍도에는 이들 외에도, 샛노란 복수초와 분홍·보라·흰색의 노루귀, 순백의 꿩의바람꽃 등 색색의 야생화가 곳곳에서 무더기 무더기로 피어 화사하고 아찔한 색의 향연을 펼칩니다. 그럼에도 현지 주민 및 야생화 동호인은 “5~6년 전만 해도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여러 종의 야생화가 섬 전체에서 지천으로 피어났었다”면서 “해마다 야생화 군락이 크게 줄고 있어 안타깝다”고 입을 모읍니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특정 기간 야생화 자생지의 출입을 금지키로 하는 등 대책을 세우고 있습니다.
◇ Where is it?
대부도에서 남서쪽으로 24km 떨어져 있는 풍도는 섬 둘레 5.4㎞, 전체 면적 1.84k㎡에 불과한 작은 섬으로 현재 60여 가구, 100여 명의 주민이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평상시 섬을 드나드는 수요가 그리 많지 않아 하루 1회 여객선이 왕복 운항할 뿐이다. 오전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을 떠난 여객선은 대부도 방아머리항을 거쳐 풍도에 닿았다가 당일 곧바로 되돌아오기 때문에, 야생화를 찬찬히 살펴보려면 최소한 1박을 해야 한다. 다만 3월이면 야생화를 찾는 이들이 전국에서 찾아와 단원구 탄도항이나 당진의 도비도항, 서산 삼길포항 등지에서 단체로 낚싯배 등을 빌려 아침 일찍 섬에 들어 한나절 돌아본 뒤 오후에 되돌아 나오곤 한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마음만 동동 구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셔요. 이번 호에는 시인 장석주님이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경기도 북부에 있는 파주 교하로 거처를 옮겨 첫겨울을 맞았어요. 교하의 평평한 들을 덮은 한해살이 초본식물이 서리를 맞고 시들어 헐거워진 무릎을 꺾으며 가을이 끝나고, 곧 겨울이 닥쳤지요. 지구의 자전축이 태양에서 먼 쪽으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북반구에 햇빛이 약해지고 동절기가 온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올겨울은 유난히 눈도 잦고 한파도 자주 몰아쳤어요. 한파경보와 폭설주의보에 귀를 기울이며 겨우내 실내에 갇혀 겨울을 납니다. 기온이 영하 20℃ 이하로 떨어지는 혹한이 이어질 때 한강 하구 일대는 북극의 바다처럼 얼음덩이로 뒤덮였어요. 강가에서 건물 잔해처럼 나뒹구는 얼음덩이들이 펼치는 낯선 풍경을 하염없이 보다가 돌아오는 날도 있습니다. 노숙자가 동사했다는 비보가 전해진 날 한뎃잠을 자다가 얼어 죽은 길고양이도 드물지 않았지요. 고라니나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이 언 땅에서 먹잇감을 찾지 못해 인가까지 내려옵니다. 이래저래 겨울은 네 발로 움직이는 동물이나 두 다리로 걷는 사람에게 두루 견디기 힘든 시련과 역경의 계절이지요.
사람이나 동물만 이 혹한을 견딘다고 생각하지만 풀과 나무도 한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묵묵하게 겨울을 납니다. 나무는 어떻게 이 겨울을 견디고 살아남는 걸까요? 나무의 내부는 많은 수분이 있어 얼 수도 있을 텐데, 나무가 영하 20℃의 추위에도 얼지 않고 겨울을 난다는 게 신기하지요. 낮이 점점 짧아지면서 빛이 약해지는 신호를 받고 나무들은 월동 채비를 해요. 활엽수는 잎을 다 떨궈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하지요. 그리고 “세포벽의 투과성이 극적으로 증가해서 순수한 물은 흘러나오고 세포 안에 남은 당, 단백질, 산이 농축”된다고 해요(호프 자런, ‘랩 걸’). 아무 불순물이 없는 순수한 물은 얼지 않지요. 부동액이 얼지 않는 이치가 그것이지요. 살아 있는 유기체 거의 모두가 그렇듯이 나무 내부는 물로 채워진 상자이지만 그 액체가 순수한 상태여서 얼음 분자가 결정을 형성하지 못한다지요.
식물의 씨앗이 보여주는 기다림은 탄성이 나올 정도예요. 가을로 접어들며 초목들은 수백 개에서 수만 개의 씨앗을 제 발치께에 떨어뜨리는데, 씨앗은 단단한 껍질로 둘러싸여 배아가 함부로 자라지 못하는 구조이지요. “씨앗 안의 배아는 자라기 시작하면 일단 허리를 굽히고 기다리던 자세를 곧게 펴서 오래전부터 기다려온 형태를 정식으로 띠기 시작한다. 복숭아씨, 혹은 참깨씨나 겨자씨, 호두씨 등을 둘러싼 딱딱한 껍질은 이런 팽창을 방지하려고 존재한다”(호프 자런, ‘랩 걸’). 씨앗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부터 배아는 딱딱한 껍질 속에서 긴 기다림을 시작하지요. 운이 좋으면 1년 만에 싹을 틔워 식물의 한 생애를 펼치지만 많은 씨앗들이 기회를 엿보다가 사라지지요. 중국의 토탄 늪지에서 나온 어떤 연꽃 씨앗의 배아는 2000년 만에 과학자의 도움으로 껍질이 벗겨지자 싹을 틔워 놀라게 했습니다. 연꽃 씨앗은 싹을 틔우려고 무려 2000년을 기다렸던 셈이지요.
씨앗은 껍질을 깨야만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을 수가 있지요. 씨앗은 생의 순환을 겪기 위해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저 울울창창한 숲은 작은 씨앗의 기다림에서 시작된 것이지요. 초목들은 지구상에서 공룡이 멸종하고 지구가 몇 번이나 빙하기를 거치는 동안에도 죽지 않고 살아서 도처에 숲을 이루며 번성했어요. 그 번성이 작은 씨앗의 분투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요. 아름드리 떡갈나무도 배아에서 싹을 틔워 자라난 결과일 뿐이지요. 그러나 무수한 씨앗들은 운이 나빠 싹을 틔울 단 한 번의 기회를 잡지 못한 채 죽음을 맞아 사라지지요. 우리도 기다림 속에서 도약의 기회를 엿본다는 점에서 씨앗과 별반 다를 바가 없지요.
식물이 환경에 순응하며 인고와 복종과 침묵으로 일관하는 걸로 알지만 식물만큼 자기 숙명과 싸우는 존재는 드물지요. 붙박이로 자라는 식물이 침묵 속에서 싸움을 펼치는 까닭에 그 격렬함을 미처 눈치 채지 못할 뿐이죠. 식물은 땅속으로 뿌리를 뻗고 물과 자양분을 끌어다 줄기로 퍼 나르지요. 지금 이 순간에도 매화나무는 혹한을 견디며 꽃눈을 두툼하게 키우고, 튤립 같은 구근 식물은 땅속뿌리에서 싹을 틔울 준비가 한창이지요. 매운 추위라야 봄꽃이 더 화사하게 피어나는 법이지요. 화사한 봄꽃들이 혹한과 싸워 이긴 승리의 전리품이 아니라면 무어란 말인가요!
우리는 식물이 환경에 맞서 싸우는 저 용기와 지혜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현호색, 복수초, 양지꽃, 노루귀, 산달래, 변산바람꽃, 개불알꽃, 제비꽃, 패랭이꽃, 민들레 같은 야생 풀꽃조차 한자리에 붙박인 채 저를 짓누르는 숙명과 맞서지요. 그렇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동백, 모란, 작약, 산수유, 풍년화, 목련, 영산홍, 개나리, 진달래, 매화나무, 벚나무, 살구나무, 앵두나무, 배나무같이 가지를 뻗어 꽃을 피우는 초목도 맹추위 속에서 꽃 피울 준비를 하고 있어요. 가만히 들어봐요. 초목이 속삭이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요. 헤르만 헤세는 ‘봄의 말’에서 그 말을 받아 적었어요. “어린애들은 알고 있다. 봄이 말하는 것을.//살아라, 자라라, 꽃피라, 희망하라, 기뻐하라, 새싹을 내밀라.//몸을 던지고, 삶을 두려워하지 말라!” 어느덧 입춘 지나고 우수입니다! 기세등등하던 겨울은 물러나고 곧 누리에 봄이 오겠지요!
파주 교하에서 첫겨울을 나며 오래 소식이 끊긴 당신을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 젊은 날의 혼돈과 기쁨은 아득히 멀어졌습니다. 당신이 뿌리를 내리고 사는 곳은 따뜻한가요?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잘 살기를 바랍니다. 생명을 가진 유기체의 살아냄은 태반은 기다림으로 이루어집니다. 기다림은 침묵과 혼돈을 견디는 인고의 시간이지요. 독일 철학자 니체가 “춤추는 별 하나를 탄생시키기 위해 사람은 자신들 속에 혼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말할 때의 그 혼돈! 기다림이라는 씨앗 속의 배아인 혼돈이 체념의 내성(耐性)을 만듭니다. 하지만 당신, 잊지 말아요. 생명은 춤추는 별이 그러하듯이 불가능한 필연으로서 꿋꿋하게 제 앞의 불확실함을, 제 안의 혼돈을 견디며 살아남음의 영광을 취한다는 것을. 삶의 광휘는 오직 혼돈을 견딘 결과로서 눈부십니다. 당신의 처지가 나쁘다면 좋은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꿋꿋하게 기다리기를, 부디 불행에 꺾이지 말고 끝까지 견디고 잘 살기를 바라요. 잘 있어요, 당신.
>>장석주 시인
스스로 산책자 겸 문장 노동자라 일컫는다. 매일 사과 한 알을 먹고 산책하며 침묵과 고요, 단순한 것과 느린 것, 바다와 대숲을 좋아한다. ‘마흔의 서재’, ‘철학자의 사물들’, ‘일요일의 인문학’,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베이비부머를 위한 변명’ 외 여러 권의 책을 썼다.
해마다 봄이 다가올 무렵이면 사람들은 꽃을 보러 나서기 시작한다. 홍매화를 보러 절 마당을 찾고, 진달래나 철쭉, 산수유, 튤립... 등등 쉬지 않고 피어나는 봄꽃들을 찾아 사람들은 멀리멀리 떠나곤 한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그 먼길을 다시 돌아오면 결국 그 모든 꽃들이 서울에도 있다는 사실이다.
고궁에 기품 있는 홍매화가 있고 도심 한 복판 사찰의 기와 위에 산수유가 노랗다. 버스만 타도 진달래가 가득 피어난 산이 있고 지하철역을 나서면 푸짐한 개나리 동산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아름다운 고택의 담벼락에 피어난 능소화를 찾아 남녘으로 달려가지 않아도 된다. 가까운 공원에 능소화 터널이 있고, 동네 구청 화단에, 가까운 향교 돌담에, 심지어는 도로변에도 꽃담을 이루어 능소화의 전설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먼 남쪽의 산하에, 그 들판에, 고즈넉한 사찰과 함께, 그 마을 뒷산에서 또는 그곳의 숲에서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은 누가 뭐래도 사실이다. 스님의 맑은 미소가 봄볕처럼 따사로운 절 마당에 피어난 홍매화가 더없이 아름답다. 몽글몽글 빛나는 대웅전 뜰의 빛망울이 분홍빛 진한 홍매를 돋보이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야생화가 언 땅을 뚫고 나왔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광명의 구름산에 야생화가 지천이다. 남양주 쪽의 운길산과 청노루귀의 검단산이 있다. 차를 몰고 영흥도와 구봉도 쪽으로 잠깐 달리면 겨우내 낙엽더미 속에 묻혀있다가 고개를 내민 노루귀를 볼 수 있다. 아직 녹지 않은 눈 속에서 피어난 노오란 복수초가 환하다. 보물찾기 하듯 찾아낸 손톱만 한 야생화와의 조우가 짜릿하다. 반나절만 나서면 봄의 전령사들을 만날 수 있고 바다가 보이는 자연 속의 봄꽃을 귀한 손님처럼 맞을 수 있다.
겨우내 땅 속에 묻혀있다가 강인한 생명력으로 존재감을 보여주느라 애썼다고 눈인사를 하고 싶은 순간이다. 그 산비탈에 엎드려 봄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수줍은 바람꽃을 향해 렌즈 초점을 맞추며 행복하다. 렌즈를 통해서 바라보는 자연의 섭리와 변화를 만끽하는 기쁨에 감사한 시간이다. 반갑게 마주보고 고맙게 담아내고 조심히 남겨두고 발걸음을 옮긴다.
머잖아 꽃망울을 터트리며 개화를 알릴 매화나무도 추위 속에 싹을 틔우는 게 보인다. 온갖 풍상을 겪어 고목이 되어버린 나무에 봉오리가 맺혀있다. 비로소 나무의 굴곡진 꺾임의 멋도 눈에 들어온다.
굳이 멀리 떠나지 않아도 가까이에 봄이 있고 봄꽃이 싹을 틔우고 있다. 봄볕 드는 버스 창가에 앉아 꽃을 보러 가는 기분을 누려볼 수 있다. 봄 하늘은 푸르고 찬 공기는 상쾌하다. 매년 이런 계절을 맞으며 이 땅에 사는 맛을 비로소 즐겨본다. 뒤늦게 내가 사는 세상이 고맙고 애틋하다.
추위를 견디고 피어난 꽃들이 향기도 좋다고 한다. 매섭던 겨울이 지나고 해마다 이렇게 돌아오는 봄에 다투어 피어나는 봄꽃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네 인생은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살았던 돈암동과 이후 이사하여 오랫동안 살고 있는 정릉을 지나는 길로 아리랑 고개가 있다.
몇 년 전까지는 2차선 도로로 좁은 길이었는데 4차선 넓은 길로 확장되면서 아주 깔끔하고 시원한 길이 되었다.
4차선으로 넓히면서부터 심은 벚꽃나무가 아직은 그리 크지 않아서 꽃잎이 풍성하진 않지만 봄이 되면 돈암동 초입부터 1.5킬로미터에 이르는 아리랑 고개에 벚꽃축제도 열리고 있다.
지나다니며 본 벚꽃축제는 좀 안타까울 만큼 꽃잎이 빈약해서 웃음이 났지만, 시간이 갈 수록 든든하고 멋진 벚꽃나무가 되어 언젠가는 어느 곳의 벚꽃보다 풍성한 예쁜 꽃으로 명실공히 아리랑 고개 벚꽃축제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아리랑 고개 중간쯤에는 예전부터 환갑잔치하는 장소로 유명한 신흥사라는 곳도 있었지만 지금은 개발되어 없어졌다고 한다.
필자는 중. 고등학교 학창시절에 그 근처에 있는 보현사라는 절 옆의 독서실에 자주 공부하러 다니기도 해서 친밀하게 느껴지는 동네이다.
아리랑고개라는 명칭을 갖게 된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전해오는데 1935년 일제 강점기 때 그곳에 있던 고급요정의 이름으로 민요 아리랑의 곡명을 사용했다는 것과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영화인 아리랑을 촬영한 곳이기 때문에 그렇게 붙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민족영화인 아리랑은 춘사 나운규 선생의 항일정신을 잘 나타낸 작품이며 일제 강점기에 국가를 찾겠다는 구국일념으로 보아 아리랑고개의 유래로 더욱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영화 아리랑은 항일운동을 하다가 감옥생활을 한 나운규 선생이 25세 때 감독 각본 주연까지 맡아 만들었으며 민족의 아픔과 굽히지 않는 항일정신을 표현하였다고 한다.
1926년 10월에 종로의 단성사에서 흑백 무성영화로 개봉되었으며 구성진 변사의 설명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는데 영화를 통해서 민족혼을 불살랐던 아리랑의 필름은 남아있지 않는다니 안타깝기만 하다.
영화내용 중에서 오빠가 일본 순사에게 끌려가며 부르는 아리랑이 하이라이트라 하는데 바로 그 장면을 촬영한 장소가 이 아리랑 고개라 한다.
영화 아리랑의 극적인 장면을 촬영한 배경인 이곳을 1997년 영화의 거리로 지정하였다.
그 거리를 걸으면 인도 바닥에 설치된 동판을 볼 수 있다. 10미터 간격으로 박혀있는 네모난 동판은 세어보진 않았어도 166개나 된다는데 헐리우드처럼 손도장이나 발 도장 같은 게 아니라 방화 (국산영화)와 외화의 이미지가 담겨있다.
어느 것은 영화배우의 얼굴이 새겨져 있어 밟다가 깜짝 놀라며 좀 미안해진 경험도 있으며 ‘서편제’나 ‘미워도 다시 한 번’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 한국영화 포스터와 ‘벤허’ ‘죠스‘같은 외국영화의 포스터가 동판으로 박혀있다.
테마공원으로 ‘나운규 소공원’도 있고 아리랑 고개 정점에는 아리랑 시네마극장과 정보도서관이 있어 전통과 역사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거리로 동네 사람들에게 휴식을 줄 수 있는 인기 좋은 거리가 되었다.
스카이웨이로 들어가는 입구이기도 한 아리랑 고개는 조금 심하게 경사가 진 도로이다.
필자는 기어를 조작해야하는 수동 차를 운전하고 있어서 경사진 그곳의 신호에 걸려 서 있을 때면 뒤로 미끄러질까봐 항상 조마조마하기도 하다.
그래도 수십 년을 지나다닌 아리랑 고개 이거리가 필자에겐 친숙하기도 하고 역사적인 배경도 있는 곳이라 자랑스럽게 생각되는 동네이다.
모르고 지나다닐 때보다 거리의 명칭에 대한 유래를 알고 나면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앞으로 아리랑 고개가 봄이면 벚꽃도 더욱 탐스럽게 피어나고 사계절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