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진적 은퇴란?
생애 주된 일자리 퇴직 후 바로 은퇴하지 않고, 일하는 시간을 줄여 기간제 또는 주 3회 정도 일하며 근로기간을 연장하는 은퇴 기법. 즉, 퇴직과 은퇴 사이가 점진적 은퇴기간 의미. 소득공백기간과 자산 소진 속도 감소 효과가 있음.
Tip① 직장인 때부터 제2인생 설계
준비된 사람은 퇴직 후에 충격도 덜하고 재취업에 성공하는 경우가 많음. 퇴직 전후 5년이 제2의 일자리를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골든타임. 늦어도 퇴직 3년 전부터 일자리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 실천에 들어가야 함.
Tip② 재취업을 위한 사전교육
은퇴를 앞두고 관심 분야의 교육을 미리 받고 자신의 인생 후반전을 맡길 만한지 진지하게 점검. 온·오프라인 교육기관 등을 활용해, 은퇴 전 3년 정도 퇴근 후와 주말을 자기계발에 투자하는 노력이 필요함.
Tip③ 자신만의 주특기 계발
재취업을 위해서는 자신만의 주특기(지식, 기술, 인맥)가 필수. 노후에 양질의 근로소득을 얻기 위해서는 단순 근로직이나 소자본 창업보다는 한 가지 기술을 배울 것을 추천. 나만의 주특기를 스스로 찾아보고 계발해나가야 함.
Tip④ 눈높이는 낮추고 체면은 버려야
퇴직 후에는 재취업 기회도 줄고, 보수가 많은 정규직보다 저임금의 시간제 일자리가 다수. 특히 비정규직 중 시간제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80만 원선. 꼭 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눈높이를 낮추고 체면을 버리는 자세가 중요.
Tip⑤ 소득공백기를 대비하라
대부분 퇴직 후 소득은 줄지만 자녀교육비 지출은 여전. 최선의 대비책은 국민연금 수령시점까지 계속 일을 하거나 퇴직연금과 연금저축을 가교연금으로 활용하는 것. 근로기간 연금저축과 IRP 납입 시 연말정산 세액공제 혜택 부여.
OECD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의 노인부양률은 100명당 19.6명으로, 생산가능인구 5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세계 32위 수준이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2050년엔 100명당 71.5명, 2075년엔 80.1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돈을 버는 사람이면 무조건 어르신 한 명을 봉양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사회 변화 속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직업 중 하나는 요양보호사다. 그러나 장밋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이 직업에 대한 평가는 천차만별이다. 대체 어떤 일을 하길래 그런 것일까.
지난 4월 18일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은 24회 요양보호사 자격시험을 통해 4만909명의 요양보호사가 탄생했다고 밝혔다. 전체 4만5510명이 응시해 응시자 중 89.9%가 합격했다. 응시자는 23회 시험에 비해 6891명이 늘어났다.
많은 숫자가 배출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사정을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 ‘2016년 노인장기요양보험 통계연보’에 따르면, 현직 요양보호사는 31만3013명에 그쳤다. 그간 배출인원이 151만 명 이상임을 감안하면 적은 숫자다.
이에 반해 장기요양보험 등급을 인정받은 대상자는 2012년 34만1788명에서 2016년 51만9850명으로 증가했다. 한 명의 요양보호사가 약 2명의 노인을 돌봐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자격 취득자 많지만 일손은 부족
요양보호사는 노인복지시설에서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노인 등의 신체활동 또는 가사활동지원 등의 업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고용해야 하는 인력을 말한다. 요양보호사는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을 통해 자격시험이 관리되는 국가자격제도로,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되면서 도입됐다. 초기에는 일정 교육 과정만 이수하면 취득이 가능했지만, 2010년부터는 자격시험제도가 시행됐다.
요양보호사 자격증 시험은 정해진 교육기관에서 이론과 실기, 실습 교육을 각 80시간씩 총 240시간을 이수해야 응시할 수 있다. 이후 시험에선 각 60점 이상을 취득해야 합격이 된다.
요양보호사 자격 취득을 위한 교육기관은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인정된 요양보호사교육원은 2017년 기준 전국 1725개소에 달한다. 교육비는 기관마다 제각각이지만 대략 60만 원 전후로 ‘시세’가 형성되어 있다.
무료로 교육받을 수 있는 기관도 일부 있다. 요양보호사 수급에 비상이 걸린 지자체들이 대표적이다. 지난 4월 경기도 안산시는 요양보호사 자격증 무료 교육생을 모집했다. 충청북도 음성군도 비슷한 시기에 무료 교육생을 모집했다. 부산시 수영구는 일부 교육비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교육 희망자를 접수했다.
가족 돌봄에도 유리해 관심 늘어
요양보호사는 시니어의 관심을 받고 있는 직업 중 하나다. 은퇴 시기가 되면 배우자나 부모가 치매 등 질병으로 인해 보호가 필요한 상황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요양보호사 교육 과정이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데다, 가족을 돌보는 실질적인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가족요양비의 존재도 가족을 돌봐야 하는 이들에겐 매력적이다. 장기요양보험 수급자가 요양보호사 자격을 가진 가족 등으로부터 방문요양에 상당하는 장기요양급여를 받을 때 등급과 관계없이 월 15만 원을 지원하는 제도다. 정부는 올 초 가족요양비와 가족인요양보호사제도도 개선해 가정에서 부모를 돌볼 수 있도록 해 시설 수요를 줄일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학력 제한이나 자격 획득이 어렵지 않은 것도 장점이다. 수요가 많아 눈높이를 낮추면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다. 때문에 조선족이나 고령자의 지원도 적지 않다. 거동이 어려운 노인을 돕는다는 직업적 자긍심이나 보람도 요양보호사로 활동하는 데 힘이 된다.
근로환경 열악, 수입 좇으면 못해
그렇다면 실제 근무 환경은 어떨까. 현장에선 요양보호사가 전문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녹록지 않다고 말한다.
요양보호사의 근무 방식은 크게 두 가지. 집으로 찾아가 돌봄서비스를 실시하는 재가요양보호사가 전체의 약 70%에 이른다. 시설요양보호사는 나머지 30%에 해당한다. 상당수의 재가요양보호사는 단시간 비정규직, 시설요양보호사는 기간제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일자리의 불안정성이 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근무 방식도 쉽지 않다. 비교적 수입이 좋은 입주요양보호사는 부가적인 요구사항이 많아 힘들다고 한다. 한 요양보호사는 “기본적으로 어르신에 대한 가사 지원이 업무 영역에 포함되지만 실제로는 5~6인 가족 전체 살림을 도맡아주기를 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부적절한 성적 요구가 성희롱으로 번지는 사례도 있다”고 설명한다. 수입이 좋은 입주 자리는 많지 않기 때문에 요양보호사 입장에선 ‘을’이 될 수밖에 없다. 근무 강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매주 토요일에 퇴근했다가 일요일에 출근하는 입주요양보호사는 월 급여를 200만~250만 원 수준으로 받는다. 그러나 주 3회 몇 시간씩 들리는 재가요양보호사의 수입은 몇십만 원 수준에 불과하다.
시설에 근무하는 요양보호사들이라고 해서 근무 환경이 속편한 건 아니다. ‘퐁당퐁당’과 ‘주주야야휴휴’가 대표적이다. 퐁당퐁당은 24시간 근무와 휴일이 반복되는 방식이고, 주주야야휴휴는 주간근무 2일, 야간근무 2일, 휴일 2일을 번갈아 반복하는 방식이다. 요양원에서 주간근무만 고집하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실질소득은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경우가 상당수다. 야간근무 시간 중 4~6시간을 수면을 위한 휴게시간으로 지정해 임금을 줄이는 방식은 요양보호사들이 악습으로 지적하지만 사라지지 않고 있다.
요양보호시설의 한 관계자는 “노인장기요양보험으로부터 수가를 지원받기 때문에 설립 요건부터 운영에까지 제약은 많고 수익성이 낮은 편”이라고 설명하고 “때문에 일부 시설에서는 인건비나 식비 등 절약이 가능한 부분에서 이윤을 남기려는 경향이 있다. 운영에 가족 참여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열악한 조건을 반영하듯 서울시에서는 어른신돌봄종사자 종합지원센터를 설립해 이들을 위한 노동상담 등 노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임금이나 퇴직금 문제뿐만 아니라 성희롱 등도 주된 상담 분야다.
따라서 요양보호사들은 돈이 목적이 아닌, 사회에 공헌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나쁜 태도로 근무하게 되면 비인간적으로 변할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의사표현이 어려운 환자들을 상대하다 보면 종종 그런 일도 생긴다. 병원에 비해 보는 눈이나 관리자도 적은 사각지대에서의 근무가 잦은 만큼 스스로의 자긍심이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이 현장 경험자들의 조언이다.
얼마 전에 어느 여성 국회의원이 발언 중에 비정규직 급식 요원을 ‘밥 하는 아줌마’로 비하했다고, 매스컴의 공격을 받고 발언자가 당사자들인 급식요원 앞에서 공개 사과하고 곤욕을 치룬 일이 있었다.
옛날 우리 모두가 못 살던 시절, 서울의 웬만한 중산층 가정이면 거의 대부분 ‘밥하는 아줌마’인 가정부를 집에 두고 살았다. 다만 한 식구라도 먹는 입을 줄이기 위해 빈곤한 농촌에서 어린 딸을 서울로 올려 보내 흔히들 말하는 상주하는 식모살이를 시켰다. 당시엔 식모라고 불렀으나 언제부터인가 파출부나 가정부로 변하더니 요새는 가사 도우미로 명칭이 바뀌어서 조선족들이 그 일을 많이 하고 있는 걸로 안다.
그 시절 추석이나 음력 설 때가 되면 가정부 언니들이 자기 시골집에 다녀온다고 해서 주인이 차비랑 시골 식구 선물 꾸러미를 안겨서 잘 다녀오라고 보내면 나가서 돌아오지 않고 행방불명되어 사라지는 일도 있고 또 다른 집으로 스카우트 당하는 일도 있었다. 우리 친정도 물론 필자가 결혼 할 때까지도 아줌마가 계셨고, 또 결혼 후 시댁에서 시집살이를 할 때도 살림을 돌봐 주는 도우미가 언니가 있었다.
금자 씨는 시골에서 초등학교 졸업을하고 어려서 우리 시댁에 들어와서 우리 시어머니 시중을 들며 자란 시댁의 도우미 언니였다. 금자씨는 46개 띠인 필자와는 띠 동갑으로 58 개띠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13살 때 우리 집으로 들어와서 28살에 결혼하는 날까지 15년을 우리와 함께 살았다. 금자 씨의 한문이나 영어 등의 중등 교육은 시어머니가 학습지를 배달 받아서 직접 시키셨다. 금자 씨가 어느 정도 자라서는 시어머니 대신 우리 집 가사 일을 책임지게 되었다. 사실 금자씨의 도움이 없었다면, 가사나 육아에 꽝인 필자가 그 시절로는 드물게 결혼 후에도 워킹 맘으로 활동을 하면서, 승진을 하고 또 총수 비서실장의 꼬리표를 달 수 없었을 것이다.
금자 씨가 나이 들어 결혼 적령기가 되자, 필자는 당시 시동생이 사장으로 있던 중소기업인 의료기 회사의 기술 사원과 선을 보고 두 달만에 결혼을 시켰다. 데이트는 주로 아파트 앞 정원에서 만나 외식은 압구정동 맥도날드에서 했다. 신랑은 가방 끈은 짧지만, 손재주와 머리가 좋고 A/S 기술도 좋아 회사에서 매우 촉망 받았던 의료 기구 기술자였다. 머리가 좋아 공부를 잘했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대학을 포기 했다고 수줍게 말하는 청년이었다.
필자의 아들을 내 대신 키워 준 금자 씨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던 필자는 마치 본인의 결혼처럼 설레고 신이 나서 가구 시장을 함께 돌아다니며 혼수 감을 준비했다. 물론 비싼 물건을 사서 주지는 못했지만 당시 유행하던 티크 장롱과 설합장을 구입했다.
금자 씨 부부는 시어머니가 해준 미아리 방 한 칸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고 나중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난 후에는 동대문 지하상가에 조그만 의료 소모품 및 의료 기구 상회를 차렸다.
점차 사업이 안정되고 애들이 자라자 부부는 자연스럽게 자녀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금자 씨의 아들은 아빠를 닮았는지 전교 일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공부에 두각을 나타내더니, 그 어렵다는 의대를 입학하고 거기서도 우수해서, 요즘 제일로 쳐준다는 안과를 선택하여 수련의를 마치고, 동료 의사인 방사선 여의사를 만나 얼마 전에 결혼했다.
이제 금자 씨는 의사 아들에다 의사 며느리까지 둔 시어머니가 되어, 모든 사람의 부러움을 받으며 남들이 그토록 바라는 행복한 사람이 됐다. 금자 씨, 그대가 부러워요.
얼마 전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동료들은 은퇴 후 다시 다니는 직장이라 대부분 협력회사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 근무자에 대한 차별이 있지만 이것저것 가릴 처지도 못 되고 은퇴자로서 일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자위(自慰)하면서 근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부 심정 홀아비가 알아준다는 말이 있듯이 동료들끼리 서로의 형편을 이해해주고 의지하면서 일하다 보니 마음 맞는 사람끼리 자연스럽게 자주 만나게 되었다. 그러다가 친목도 다지고 정보도 공유하면서 지내보자는 의미로 ‘요산요수(樂山樂水)’라는 모임까지 만들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회원이 “날씨도 더운데 퇴근길에 시원한 막걸리나 한잔 합시다”라며 단체 카톡방에 글을 올렸다. 소위 번개를 친 것이다. 특별한 상황이 없다면 땀 흘려 일하고 퇴근길에 막걸리 한잔 하자는데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아홉 명의 회원 중에 네 명이 모였다. 다른 회원들은 3교대 근무라는 특수 상황 때문에 야간 근무나 오후 근무를 해야 했기에 참석할 수 없었다. 필자는 당일까지 작성 처리해야 할 기사가 있어 참석을 하지 못하고 귀가하자마자 저녁도 대충 먹고 책상에 앉아 컴퓨터 자판과 씨름했다.
잠시 후 카톡 오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궁금해서 슬며시 휴대폰을 열어보니 가관이었다. 막걸리 집에서 한상 가득 차려놓고 먹고 마시고 건배하는 장면 등을 실시간으로 찍어 올리면서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자극적인 말들을 쏟아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고 ‘좋은 시간 되시라’는 댓글도 달아줬다.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노골적으로 미참석자들을 자극하는 멘트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흥에 겨워 그러는 거겠지 하며 이해를 했다. 그러나 도를 넘어 유치할 정도의 수준에 이르자 슬그머니 속이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만난 사람끼리 기분 좋게 한잔 마시고 담소를 나누면 될 일이지 근무하느라 참석 못한 사람들을 계속 자극해서 뭐하겠다는 것인가? 그중 연장자인 한 회원도 한마디 한다. “오늘 번개에 못 온 놈들 약오르지? 약오르면 지금이라도 달려오면 돼!” 이게 할 소리인가? 더운 날씨에 힘들게 근무하는 회원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는 행동이었다. 참으로 너무한다 싶어 화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특히 ‘요산요수(樂山樂水)’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입장에서는 더욱 참기가 힘들었다. ‘참으로 나잇값도 못하는 사람이네, 본인은 기분 좋아 지껄이는 말일지 몰라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참석 못한 회원들을 조금이라도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렇게 행동해서는 안 되지!’ 속에서는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욕설이 가득했다. 그러나 가까스로 참고 내뱉은 한마디는 “개코같은 소리, 자중하세요”였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덮어버렸다.
카톡 들어오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지만 더 이상 대꾸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또 한 번의 카톡 소리가 들려와 확인해 보니 사과 멘트였다. 필자 역시 죄송하다며 사과를 했다. 화가 나서 부지불식간에 내뱉은 한마디. 시간이 지나니 좀 더 참을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너무 심한 말을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어 사전까지 뒤적여 ‘개코같은 소리’의 의미를 찾아봤다. (상태나 모양이) 하찮고 보잘것없다는 의미로 쓰이는 형용사였다. 필자가 회원들에게 던진 ‘개코같은 소리’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는 여러 가지였다. 어쨌든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없었던 마음속 말들을 그 한 문장에 함축시켜 일갈(一喝)해버림으로써 그날의 사건은 다행스럽게 일단락되었다.
지난 호까지 우리는 5070 액티브 시니어 은퇴재무설계에서 큰 축의 하나인 자산관리를 살펴봤다. 이번 호부터는 3회에 걸쳐 소비에 대해 집중 분석하고자 한다. 소비는 생산에 대비되는 말로 생활의 두 수레바퀴 중 하나다. 5070세대의 자산관리가 생산시기에 축적한 잉여물의 유지 및 보관에 초점을 맞춘 재무설계의 한 측면이라면, 소비관리는 그 잉여물을 합리적으로 사용해 사용연한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춘 재무설계의 다른 측면이라 하겠다. 자산관리와 소비관리는 동전의 양면이자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저울추다.
3040세대는 사회의 핵심 노동계층이자 가계의 수입을 책임지는 주축들이다. 이에 비해 5070세대는 사회의 부양계층이자 가계의 소비계층으로 서서히 이행하면서 노년을 대비하는 사람들이다. 5070세대 중에는 여전히 일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머지않아 노동시장에서 물러나야 한다. 싫어도 어쩔 수 없다. 이건 거의 자연의 법칙이다. 순리대로 사는 게 행복의 첩경이다. 5070세대의 은퇴재무설계가 일 중심에서 합리적 소비로 방향을 바꿔야 하는 이유다. 5070 은퇴재무설계가 합리적 소비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는 이유를 3가지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제한적인 수입
5070세대 중에는 수입 측면에서 지금 인생의 정점을 찍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고 봐야 한다. 명퇴라는 미명하에 멀쩡한 자리에서 물러나 파트타이머 및 비정규직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거나 또 다른 곳에서 정규직으로 일한다 하더라도 임금피크제 적용의 주요 타깃이 이들이기 때문이다. 가계는 소비보다 수입이 많아야 그 잉여물을 자산으로 축적해 미래의 다양한 이벤트에 대비할 수 있다. 즉 ‘자산=수입-지출’ 공식을 생각해보면 된다. 5070세대는 자산 축적의 핵심 수단인 수입이 줄어드는 국면에 진입한 사람들이다. 주 수입원도 근로 및 사업소득에서 점차 연금 및 이전소득으로 전환되는 이행기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쌓아온 자산의 감소를 최소화해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자산이 소진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지출 관리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출은 크게 소비 지출과 비소비 지출로 구성된다. 비소비 지출은 ‘조세+연금+사회보험+기타 비소비 지출’로 구성된다. 기타 비소비 지출에는 이자비용, 경조비 등 가족 간 이전, 기부금 등이 포함된다. 지출에서 비소비 지출을 뺀 나머지가 소비 지출이다. 한마디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들어가는 의식주 관련 지출, 사회활동에 들어가는 교통비·교제비, 보건 및 통신비 등이 소비 지출의 주요 항목들이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 의하면, 2016년 4/4분기 현재 가계지출에서 소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76.1%다. 지출의 4분의 3 정도가 소비 지출인 셈이다. 이는 지출 관리의 핵심이 바로 소비 지출에 있음을 뜻한다.
줄여야 하는 자산 감소의 속도
성인 자녀의 경제적 독립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노년 부모의 재무적 자립이다. 성인 자녀가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면 부모는 등골이 휜다. 반대로 노년 부모가 재무적으로 자립하지 못하면 자녀의 가계에 생채기가 생기고 형제애와 부부애에 금이 갈 수 있다. 이를 바라는 부모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재무적 자립은 액티브 시니어의 삶을 살아가는 초석이 되어야 한다.
3040세대가 경제적 독립을 성취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수입과 지출의 격차를 확대해 자산을 더 크게 늘리는 것이다. 수입이 줄어드는 5070세대가 재무적 자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출이 수입을 초과하지 않도록, 초과하더라도 그 폭을 최소화하는 데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 목표는 분명하다. 돈과 생명이 벌이는 죽음의 경주에서 생명이 먼저 결승 테이프를 끊도록 만드는 것이다. 최소한 장례비 정도는 남겨둬야 하지 않겠나. 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은 자산이 감소하는 속도를 줄이는 것이다. 그 해답은 바로 합리적 소비에 있다.
행복한 인생을 위해
소유의 크기와 행복의 크기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소비 행동을 보면 갸우뚱해질 때가 많다. 현대 사회학의 거장인 장 보드리야르는 저서 를 통해 사람들의 이러한 이율배반성을 날카롭게 파헤쳤다. 소비는 단순한 생존 수단의 구매가 아니라 관계의 능동적 양식이라고 보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세탁기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과 함께 행복, 위세 등 요소로서의 역할도 한다. 이 후자야말로 소비의 고유한 영역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생활의 필요 때문에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 만족을 위해 소비한다는 의미다.
경제적 측면에서 성장가도에 있는 3040세대는 주관적 만족에 자극을 받아 또 다른 성장에 도전장을 내민다. 하지만 5070세대는 주관적 만족을 위한 소비를 지속할 여력이 부족하고, 성장 궤도에서 내려온 이상 필요에 기반한 소비습관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만족에 기반한 소비에서 필요에 기반한 소비로의 순조로운 이행’이 필요한 지점에 서 있는 사람들이 바로 5070세대다. 5070세대의 소비 관리는 무조건 소비를 줄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줄일 곳은 줄이되 늘릴 곳은 늘려야 한다. 100세 시대에 5070세대는 아직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 가능성을 추구하기 위해 늘릴 곳은 과감하게 소비를 늘려야 한다. 이는 5070세대에 맞는 생활의 리듬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라는 말처럼 인생에서도 말년에 웃는 사람이 행복한 인생을 산 사람들이다. 5070세대에게 합리적 소비를 강조하는 궁극적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고도성장 경제에서 저성장 경제로 구조적 전환이 이뤄질 때 여기저기서 많은 어려움과 갈등이 일어난다. 가계도 마찬가지다. 가계수입이 증가하던 국면에서 줄어드는 국면으로 진입하면 많은 고통이 뒤따른다. 합리적 소비습관 들이기는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방법이자 노후의 안정적 삶을 지켜주는 파수꾼이다. 궁극적으로는 행복한 인생의 주춧돌을 놓는 일이다.
지난해에는 나라가 온통 뒤숭숭하고 시끄럽더니 급기야 ‘장미대선’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나라를 발전시키고 국민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해달라는 온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국민이 정치권을 걱정하는 기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로 인해 국민의 삶마저도 피폐해져버렸다.
그리고 장미대선에서 한 번의 패배를 경험했던 진보 성향의 후보가 오뚝이처럼 일어나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당선된 후에는 인천국제공항을 깜짝 방문해 후보 시절에 약속했던 비정규직 철폐 공약의 일환으로 공기업의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바꾸라는 서슬 퍼런 지시를 내렸다. 그동안 소 닭 보듯 무관심했던 기관장들은 허리를 깍듯이 굽혀 읍소하며 전원 정규직화하겠다는 답변까지 내놓았다. ‘비정규직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 멋지다. 그동안 노골적으로 차별받아온 비정규직 직원들의 가슴을 뻥 뚫어준 그 약속은 가뭄 속 단비 같은 희망으로 다가왔다.
필자도 비정규직으로 근무한다. 정규 직원으로 40여 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을 한 후, 반백이 성성한 나이에 대기업 협력회사에 우연히 취직을 하게 되었다. 인천공항 물류단지 내에 있는 회사다. 사실 60대 초반의 나이에 정년퇴직을 쉰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보나 개인적으로 보나 아까운 일이다. 뚝배기 장맛처럼 깊은 맛을 낼 수 있는 질 좋은 노동력을 사장시켜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백세시대에 말이다.
하지만 사회 분위기가 그런 걸 어찌하랴. 최저임금에 주말은 물론 공휴일조차 보장되지 않는 협력회사의 사정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마저도 하기 싫으면 말라는 식의 분위기가 시니어들을 더 주눅 들게 만든다. 그렇다. 싫으면 사직서를 던지면 될 일이다. 하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기 빠듯했던 젊은 시절, 자녀들의 뒷바라지에 허리가 휘도록 고생만 해왔던 시니어들은 은퇴 준비도 제대로 못한 채 이렇듯 비정규직 현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나이 먹는 것도 서러운데 이렇듯 차별받는 세상에서 신세가 처량하기만 하다.
지난겨울 출퇴근길에서 만난 건설 현장의 잡부들은 모두 머리가 희끗희끗한 비정규직 시니어들이었다. 그들은 이른 새벽부터 작업 현장에 도착해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떨어가며 작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폐드럼통에 폐목재로 장작불을 피워놓은 것이 이들이 몸을 녹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렇게 부지런을 떨고 성실하게 일해도 작업 현장에서 무시당하기 일쑤다. 급여는 최저임금. 휴일도 제대로 없는 열악한 환경이 이들의 살아가는 현실이며 현주소다.
진보 대통령의 등장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가 얼마나 개선될지는 아직 두고 볼 일이지만 노동자들은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붙잡고 있다. 인천공항공사에 직속해 있는 비정규직 직원들이야 기관장이 대통령과 약속을 했으니 정규직 전환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수많은 협력회사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은 아직 암담하기만 하다. 그러한 약속들이 아직 피부로 와 닿지 않는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래도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최저임금의 적정한 상승이다. 그것만이라도 해결되어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하루빨리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는 간절한 생각은 필자도 비정규직 노동자이기 때문일까?
아내
얄궂은 인연을 운명으로 받아들여
떨리는 손 끝을 마주잡은 사이
어머니도 누이도 아닌 촌수
세상에서 제일 가깝다가도
붙잡을 수 없게 멀어지는 여자
이 무슨 악연일까 얄미울 때도 있지만
내가 뒷바라지해온 김 씨 집안 식구들과
내가 길들여온 남매 자식들을
누구보다 아끼고 껴안아 주는 여자
그러고 보니 지금껏 나와 가장 많이
찌개 냄비 속에서 숟갈 부딪쳐 온 여자
내가 채워주지 못한 허전한 가슴을
저 혼자 쓸어 담고 메꿔 온 여자
약으로 처방할 수 없는 섭한 마음을
이불 돌돌 말고 돌아누워 삭힌 여자
무정한 내가 그래도 버팀목이었을까
아까워 내다버릴 수 없는 원수였을까
돌봐줘야 할 불쌍한 전우였을까
다가올 앞 세월도 같이 할 여자
검버섯 피어나는 살 비벼 갈 이 여자를 위해
계약직 비정규직 일터로 아침 열고 나간다
대한민국은 2016년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앞두고 경제가 역주행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장기 불경기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국정이 마비되어 세상 밖을 내다보기 보다는 우리는 자꾸 안으로, 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시야가 좁아진 탓에 몇 달째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서민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이 상황은 고용시장 한파로 이어지고 있으며, 일자리 씨가 말라가고 있어 금년 겨울은 더 추울 분위기이다.
일자리가 늘어나도 시원치 않은 판에 끝없이 이어지는 내수경기 침체로 인해 일자리는 한없이 줄어들고 있고, 자영업자는 매출이 줄어 아우성이다. 이 여파는 바로 서민들에게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지난 12월 19일 자료에 의하면 273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하반기 현장 동향’을 점검한 결과 상반기에 비해 전반적인 경영 상황이‘악화됐다’는 중소기업이 44.6%로 조사됐고, 그 원인으로‘내수불황 장기화’를 가장 많이 꼽았다. 80% 이상이 이런 경영위기 상황이 2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우리나라는 전체 근로자의 87.7%가 중소기업에 근무하고 있어 이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인데 어떻게 2년을 참아야 할지 답답하다.
고용의 중심인 중소기업의 일자리 불꽃을 어떻게 다시 지필 수 있을까? 일자리를 이어줄 주체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언제쯤 일자리가 다시 활성화될 수 있을까?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국가에 질문을 하고 싶다.
먼저 일자리에 있어 가장 심각한 부분이 청년 일자리이다. 왜냐하면 청년의 미래가 대한민국의 미래니까... 청년실업률(15세~29세)은 11월 기준으로 8.2%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이후 17년 만에 가장 높은 실업률이다.
지난 12월 21일 열린 '2017 경제위기 극복 대토론회'에서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은 "노동시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어느 정도 격차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방 원장은 "그나마 상호 간에 이동이 활발하다면 괜찮은데 한국은 없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의 차이가 크다 보니 대기업, 공기업, 정규직에 취업하기 위한 대기 행렬만 길어져 청년 실업을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해석이라는것이다.
한편 50대 이상의 중장년층 일자리 문제도 전반적인 제고가 요구된다. 이는 단순히 일자리 지표로만으로 해석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사회복지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국가 세금으로 메우는 것은 한계가 있고, 어느 시점에는 국가 운영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2017 정유년은 대기업 보다는 고용, 일자리 문제를 중소기업에서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선 중소기업을 살려야 한다. 중소기업으로 크며, 일자리(취업, 창업)의 불씨가 되는‘벤처, 스타트업, 1인창업, 여성창업’성공률도 획기적으로 올라가야 한다.
“아앙! 아앙!”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이 울음이 들려온다. 사고가 난지 알고 뛰어가 봤다. 필자는 아파트 동 대표 일을 보기 때문에 아파트 내 사건 사고가 없나 늘 관심이 있다. 엘리베이터 안에 같은 아파트에 사는 베트남 젊은 아낙이 있고 그녀의 5살 아들이 때를 쓰고 울고 있다.
“아이가 왜 울어요?” 하고 물어보니 더듬거리는 우리말로 아버지가 일하러 가는데 따라가려고 때를 쓰며 울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 어머니는 아이를 달래는 것은 거의 포기하고 남들의 눈을 의식해 강제로 집으로 데려가려고만 한다.
필자와는 베트남 아낙은 물론 그녀의 남편과도 말을 주고받는 사이다. 30대 초반의 베트남 아낙이 말하길 한국 사람이 하는 한국말은 다 알아 듣는데 본인이 한국말을 하면 한국 사람이 잘 못 알아듣는다고 한다. 악센트 자체가 달라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말 같은 발음을 하기어렵다고 하소연이다. 아이가 점점 커가면서 말을 가르쳐야 하는데 본인의 발음이 한국적이지 못해 걱정이라고 했다.
아이 아버지는 비정규직으로 일하기 때문에 출퇴근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우는 아이에게 아버지가 일하러 지금 나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달래야 할 텐데 베트남 출신 엄마는 그런 말을 우리말로 아이에게 설명하기에는 능력이 모자라는지 포기하고 있다. 완력과 나도 못 알아들을 한 두 마디 말로 아이를 집으로 끌고 가려하고 아이는 반대로 뛰쳐나가려 한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를 목마 태우고 아파트 단지를 돌고 있는 모습이라든가 아이와 어린이 놀이터에서 같이 놀아주던 모습을 종종 보면서 참 자상한 아이 아버지구나 라고만 생각했다. 아이에게 엄마대신 우리말을 배워주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오늘 그 일이 있고 나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말을 배워야 할 때는 발음이 정확한 엄마와 수 백 번의 반복되는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달랑 아버지만 한국 사람이고 그 아버지가 일 때문에 자주 집을 비워야 한다면 아이가 말을 배울 때 아주 어렵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넉넉하다면 어린이집이나 기타 유사한 곳에서 다녀서 말을 해보는 기회가 많을 텐데 대부분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하다. 집에서 엄마랑 지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우리말 배우는 시간이 줄어든다. 말이 늦어지면 또래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덩달아 공부가 뒤 처지게 된다.
베트남 아낙도 우리말이 서툴다보니 아파트 내에서도 남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다문화 지원센터가 있다고는 해도 아직은 태부족인 것 같다. 국제결혼이 이제 신기한 모습이 아니다. 늘어나고 있는 다문화 가정에 많은 관심을 쏟을 때다. 특히 저소득층이나 우리말을 가르칠 가족과 함께 살지 못하는 아이가 더 걱정이다.
각자 결혼 동기야 어떠하든 간에 다문화 가정이란 실체가 있는 이상 그들도 우리의 이웃으로 품어가야 한다. 남의 일이라고 먼 산 불구경할 일이 아니다. 거기서 태어난 2세가 우리 땅에 제대로 정착하여 세금도 내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모두의 따뜻한 관심이 필요하겠다.
탄탄한 연기력과 강렬한 개성으로 관객을 사로잡은 두 배우, 류승룡과 이성민을 한 작품을 통해 만날 수 있게 됐다. 김광태 감독의 판타지 호러 영화 ‘손님’은 마을의 권력자 ‘촌장’ 역을 맡은 이성민과 마을에 찾아온 ‘손님’ 역의 류승룡 사이의 팽팽한 대결구도를 통해 예사롭지 않은 긴장감을 선보인다. 단순한 대립이 아닌 공존과 배척, 신뢰와 배신을 입체적으로 오가는 두 배우의 불꽃 튀는 액션과 연기는 작품의 공포와 재미를 배가시킬 예정이다.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MOVIE interview>>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모티브를 따오고, ‘손님’이라는 단어를 ‘두려움’이라는 뉘앙스로 전환시켜 영화로 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시나리오를 구상할 즈음, 사회적으로 ‘고용’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고 있었습니다. 비정규직, 인턴제도, 청소년 아르바이트 등 ‘이건 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평소 관심 있던 동화·전설 ‘피리 부는 사나이’가 ‘약속’과 ‘고용’을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그릇에 담아 앞으로 더 심각해질 이 문제를 관객에게 어필하고 싶었습니다. 제목인 ‘손님’은 중의적인 의미로 이방인, 타자, 약자, 소수자들을 의미하는데 ‘고용’과 ‘약속’의 피해자들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숨겨진 의미는 영화에서 확인해 보셨으면 합니다.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얻어갈 수 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한국 사회는 ‘집단’을 유독 강조, 강요한다고 느꼈습니다. 수많은 종친회(혈연), 동창회(학연)와 향우회(지연) 같은 모임들은 구분과 구별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라는 테두리를 만들어 ‘앞만 보고 가야 한다’만을 생각하며 뛰어 왔는데, 그 과정에서 테두리 밖의 타인을 배척하지는 않았는지, 개발과 발전 그것이 면죄부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봤으면 합니다.
주인공을 맡은 두 중년배우 류승룡과 이성민의 활약이 영화에는 어떤 시너지로 표출됐나요?
류승룡씨는 익살스럽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떠돌이 악사, 이성민씨는 마을의 권력자지만 그 역할에 피로감을 느끼는 촌장 역할입니다. 류승룡씨는 ‘난타’ 경험이 있어 음악적 감각이 굉장히 뛰어납니다. 그래서 3곡의 주요 피리 연주를 대역 없이 직접 소화했습니다. 이성민씨는 처음 하는 악역임에도 지켜보는 스태프들까지 공포감을 느낄 정도로 무시무시하면서 멋진 악당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관객들은 부드러움과 딱딱함, 따뜻함과 차가움의 충돌을 몸으로 느낄 것이며, ‘극단과 극단을 오가는’ 두 배우의 최고 연기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관객들에게 영화 ‘손님’의 관전 포인트에 대해 조언 부탁드립니다.
류승룡, 이성민, 천우희, 이준 등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즐거움이 가장 클 것이라고, 감독 이전에 관객으로서 장담합니다. 그리고 시·청각적으로 중년 관객들의 기억 속에도 있을, 그 시대가 잘 재현된 배경에 낯선 판타지와 아름다운 음악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통해 오늘날의 우리 사회를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