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얄궂은 인연을 운명으로 받아들여
떨리는 손 끝을 마주잡은 사이
어머니도 누이도 아닌 촌수
세상에서 제일 가깝다가도
붙잡을 수 없게 멀어지는 여자
이 무슨 악연일까 얄미울 때도 있지만
내가 뒷바라지해온 김 씨 집안 식구들과
내가 길들여온 남매 자식들을
누구보다 아끼고 껴안아 주는 여자
그러고 보니 지금껏 나와 가장 많이
찌개 냄비 속에서 숟갈 부딪쳐 온 여자
내가 채워주지 못한 허전한 가슴을
저 혼자 쓸어 담고 메꿔 온 여자
약으로 처방할 수 없는 섭한 마음을
이불 돌돌 말고 돌아누워 삭힌 여자
무정한 내가 그래도 버팀목이었을까
아까워 내다버릴 수 없는 원수였을까
돌봐줘야 할 불쌍한 전우였을까
다가올 앞 세월도 같이 할 여자
검버섯 피어나는 살 비벼 갈 이 여자를 위해
계약직 비정규직 일터로 아침 열고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