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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이 함께 싸워야 하는 '파킨슨병'
- “우울한 얘기만 하는 것 같아 미안해요.” 파킨슨병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만난 부천시립노인전문병원 신경과 김현아(金炫我·42) 과장은 갑자기 말을 멈추고 사과한다. 설명을 하다 보니 희망적인 이야기가 별로 없다는 뜻이다. 그도 그럴 것이 파킨슨병은 전문의에게도 쉽지 않은 병이다. 의사 입장에서 바라보면 환자를 어떻게 낫게 하느냐가 목표가 아니라, 정상적인 삶을 얼마나 더 연장해주느냐가 지향점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치료는 환자의 삶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그 중심에는 환자의 가족이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파킨슨병은 뇌의 흑질(substantia nigra)에 분포하는 도파민의 신경세포가 점차 소실되어 발생하며 신체의 운동 능력에 이상을 가져오는 퇴행성 질환이다. 치매와 비슷한 병이지만 치매는 인지장애 등 기억이나 사고기능에 문제를 일으키는 반면, 파킨슨은 신체의 움직임에 장애를 일으킨다. 김현아 과장은 파킨슨병의 원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파킨슨병의 원인은 보통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으로 나눠요. 파킨슨병 환자 중 5~10% 정도는 유전이 원인인데, 이런 경우는 대부분 40대 이전에 발병하기 때문에 구분이 쉽습니다. 그 외 대부분의 환자는 60세 이상 인구 중 1% 정도에서 발병을 해요. 그래서 퇴행성, 즉 노화를 원인으로 보기도 합니다. 발병 환자를 대상으로 역학조사를 해보면 농촌지역 거주자들의 비율이 높은데, 자세히 분석해보면 살충제나 농약에 노출된 분들이 많았어요. 이런 화학물질도 요인으로 작용한 것 아닌가 추측하고 있어요.” 손떨림 증상만으로는 진단 어려워 파킨슨병의 대표적 증상은 손떨림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손떨림만 잘 관찰하면 파킨슨병을 초기에 진단할 수 있을까? 김 과장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파킨슨병 초기에 관찰되는 증상은 크게 4가지 정도가 있어요. 가만히 있어도 손이 떨리는 ‘안정떨림’과 근육이 굳는 ‘경직’, 몸의 움직임이 굼떠지는 ‘느린 운동’과 좀 구부정해지는 ‘자세불안정’이에요. 그런데 이런 증상이 순서대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어서, 손이 떨리지 않아도 파킨슨병이 이미 진행되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전과 달라진 몸의 증상이 느껴진다면 바로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인 MRI(자기공명촬영)와 같은 고가의 검진이 필요 없어요. 숙련된 전문의가 환자와 직접 대면해보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파킨슨병은 진단이 가능하니까요.” 파킨슨병의 특징은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운동 능력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다. 손떨림은 일상생활을 하는 데 문제를 일으키고, 근경직은 허리를 굽어지게 만든다. 종종 환자들이 “허리가 아프다”며 하소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자세불안정으로 일어날 때나 앉을 때 뒤로 넘어지거나 평소 즐기던 자전거도 못 타게 된다. 모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증상이다. 또 하나의 특징인 ‘느린 운동’은 몸의 움직임이 느려지는 증상이다. 종종 낙상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김 과장은 낙상이 파킨슨병 환자에게는 치명적이라고 경고한다. “낙상으로 고관절이나 다리에 문제가 발생하면 나을 때까지 누워 있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근육이 급격히 약해지거든요. 이렇게 운동 능력이 급격히 떨어지면 결국 파킨슨병 증세도 빠르게 악화되어 심각한 상황을 만들죠.” 기본적인 치료 방법은 약물치료다. 약물은 도파민이 뇌에 공급되도록 돕는 기능을 하며 치료보다는 증상 완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또 운동 능력도 평소처럼 유지될 수 있도록 돕는다. 문제는 이 약물을 장기간 복용하게 되면 흔히 얘기하는 ‘약발’이 약해진다는 데 있다. 김 과장은 이렇게 말한다. “3년에서 5년 정도 약을 복용하면 소위 온오프(on-off) 현상이 나타나요. 마치 스위치가 켜졌다 꺼지는 것처럼 약효의 지속시간이 짧아지고 급격하게 사라져요. 결국엔 약을 자주 먹게 되는데 약으로 인한 부작용도 나타나서 힘든 상황이 되죠. 이럴 경우 뇌에 전극을 심어 전기 자극을 주는 ‘뇌심부자극술’을 고려하기도 해요. 하지만 치매 증세가 있는 환자에게는 가급적 하지 않고 제한적인 환자에게만 시술합니다.” 파킨슨병은 증세가 심해지면 여러 가지 합병증을 동반한다. 목소리가 작아지고 어눌해지는 것을 시작으로 씹고 삼키는 것이 어려워지는 연하장애가 발생한다. 배뇨에도 문제가 생기고 변비 때문에 고생도 한다. 성기능 장애나 우울증, 어지럼증도 발생한다. 또 환각 증세도 일어나는데 개미 혹은 날파리가 떼로 몰려 있는 듯한 장면을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의사들은 파킨슨병의 진행 정도를 5단계로 나눈다. 마지막인 5단계까지 가는 기간은 보통 8년에서 10년 정도 걸리며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이러한 개인차에 극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가족이라고 김 과장은 말한다. 운동 중요하지만 감퇴되는 의욕이 문제 “파킨슨병 치료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재활치료입니다. 굽어지는 등을 의식적으로 펴는 훈련을 해야 해요. 관절이 굳지 않도록 보행 연습도 해야 하고요. 문제는 환자들의 감정이 조금씩 메말라가면서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점이에요. 운동 장애가 일어나지 않도록 매일 재활치료를 해야 하는데 도통 의욕이 생기질 않는 것이죠. 이때 가족들이 나서서 힘을 줘야 합니다. 매일 꾸준히 운동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가구를 재배치하거나 문턱을 없애는 등의 노력으로 환자가 좀 더 편안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줘야 합니다. 또 약을 투여했을 때 약효가 얼마나 가는지, 어떤 증상들이 일어나는지 기록해주면 의료진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파킨슨병은 결국 가족의 사랑으로 치료 효과가 좌우되는 셈입니다.” 김현아 과장은 단기적인 동기를 부여해주는 것이 환자의 거동에 많은 영향을 준다고 설명한다. “한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 환자의 발 앞에 선 하나를 긋고, 이 선만 넘어보라고 권유하면 생각보다 쉽게 넘어요. 단기적인 동기에 뇌가 반응해서 도파민이 생성되는 것이죠. 파킨슨병 환자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가족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파킨슨병은 몸이 느려지면서 생각도 함께 느려지기 때문에 가족들의 인내심을 요구하기도 한다. 특히 걷기, 수영, 체조 등이 환자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데 가족들의 도움 없이는 지속적으로 하기 힘든 운동이다. 의료용 대마초, 국내에서는 불법 최근 유튜브에서 한 편의 동영상이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파킨슨병 환자가 의료용 대마초(Medical Marijuana)를 흡입한 후 약 5분 만에 운동 능력과 대화 능력이 완벽하게 정상인처럼 돌아오는 것을 보여준 영상이다. “저도 그 영상을 봤어요. 3기 정도로 추정되는 환자였어요. 의료용 대마초는 그 물질이 뇌세포에 달라붙어 일시적으로 도파민 역할을 대신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실제로 이런 효과 때문에 미국의 일부 주(州)에서는 의료용 대마초 사용을 허용하고 있죠. 그러나 의학적으로는 의료용 대마초의 장기적 효과나 부작용 등에 대해 아직 연구가 진행되고 있을 뿐 명쾌한 연구결과는 없습니다. 국내에서도 학계를 중심으로 연구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있지만, 의료용 대마초 사용 자체가 국내에서는 불법이기 때문에 적극적이지는 않아요. 하지만 다양한 신약 연구가 이뤄지고 있어 곧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 2017-08-07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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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학 선생님들의 ‘제자 사랑’
- 서둔야학을 함께 다니던 동급생들 중에 남몰래 사모하는 선생님을 한 분씩 숨겨둔 아이가 서너 명 있었다. 우리들은 당시 한창 감수성 예민한 16~17세의 꿈 많은 소녀들이었다. 선생님들도 20대 초반의 맑고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들이었으니 그분들을 연모하는 일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필자 또한 그들 중의 하나였는데 그 당시의 애탔던 심정을 어찌 말과 글로 다 옮길 수 있으랴.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생들은 하나같이 모두 선하고 순수했다. 지금 사람들에게서는 그 맑고 고운 심성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라 그랬을까? 흙은 선하고 정직한 것이니까. 야학 선생님들은 헐벗고 굶주린 아이들을 가르쳐보겠다고 자신들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으면서, 또 배우는 학생으로서 소중한 시간을 쪼개어 우리들의 선생님이 되어준 분들이었다. 그야말로 순수와 열정의 덩어리였다. 정성을 다해 공부를 가르쳐준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우리들이 소중한 사랑을 알게 해줬다. 부모님들이 생활고 때문에 베풀지 못했던 사랑과 관심을 보여준 것이다. 필자는 당시 야학 선생님들이 부모님보다도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선생님들은 항상 웃는 얼굴이었고, 우리들에게 언제나 따뜻하고 친절했다. 필자는 초등학교 때부터 선생님들을 무척 따르는 아이였는데 서둔야학 선생님들과의 인연은으로 그 절정을 이루었다. 이제까지의 인간관계에 있어서 최고로 찬란했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때 야학 선생님들은 필자의 전부였다. 마음을 빼앗기는 정도가 아니라 넋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선생님들이 필자를 뿌리째 흔들어놓았던 것이다. 필자는 힘든 일이 있어 고민하다가도 야학에 가면 다 잊어버리고 ‘벙글벙글’ 웃었다. 선생님들만 보면 그저 너무 신이 나고 좋았다. 마치 태어난 지 5~6개월이 지난 아기가 엄마 얼굴만 보면 무조건 방긋방긋 웃는 모습과 똑같았다. 이후로 필자는 야학 선생님들보다 더 존경스럽고 마음을 바쳐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아마도 영원히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가 살아갈 때 무엇이든 처음이라는 의미는 상당히 깊고 소중하다. 필자 삶에 있어서 빛깔 고운 첫정을 고스란히 바친 대상은 바로 야학 선생님들이었다. 그 색깔은 때로 파스텔 색조 같은 아련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여름날의 흑장미처럼 강렬한 향기가 나기도 한다. 야학 선생님들은 교사가 아닌 신과 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가르쳤다. 교육자로서의 자격은 종이로 만든 증서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 현직 교사로 근무하는 필자 또한 야학 선생님들의 10분의 1만큼의 사랑도 제자들에게 쏟지 못한다는 자책감이 있다.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영어 공부, 수학 공부가 아니라 사랑이다. 모든 교육은 인간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교육자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어 여야 한다. 진실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사랑할 자신이 없는 교사들은 스스로 교단에 서 내려와야 한다. 교직을 천직으로 알아야 하고, 교육이 국가의 백년대계임을 인지해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
- 2017-08-0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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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버이 살아실 제 섬 길 일란 다하여라
- 사랑하는 상대가 누구인지 중요한 건 누구나 공감한다. 연인이거나 혈육이거나 부모 자식 간이거나 당연히 사랑하는 대상이다. 조금씩 다른 느낌이 있을 뿐이다. 라는 책을 펼치며 대뜸 제목부터 거부감이 들었다. 필자가 살아온 세상에서는 부모의 사랑 여부를 따져보거나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에 의문을 갖는 일은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시니어 세대에서는 말이다. 혹시나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자라나고 있는 어린아이들이나 요즘 젊은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개인주의적이고 물질만능주의의 현실에서 부모를 판단하는 기준 또한 변화한다는 사실을 주변 이야기나 기사를 통해 가끔 듣고 본다. 그러나 결국 이 세상에서 조건 없는 사랑으로 자신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사람은 오직 부모뿐이다. 특히 부모님을 떠나보낸 사람이라면 더욱 절절히 느끼는 부분이다. 필자는 연로하고 쇠약하여 아무리 거동을 하지 못해도 안방에 누워만 계시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이 또한 자식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생각일지도 모른다. 살아생전 마음껏 사랑하지 못하고 당연한 듯 사랑만 받고 또 요구하며 철없이 살아왔다. 이런 미안함을 안고 평생 살아가야 할 아픔만 남았다. 존재만으로도 삶의 중심을 굳건히 잡아주던 구심점이 사라진 허전함을 미리 알지 못한 우매함을 부질없이 탓해본다. 새삼 송강 정철의 시조가 절실하게 읽히는 오월이다.
- 2017-05-1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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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 브라보마이라이프 동년기자 2기 출범식에서 의례적인 선물처럼 건네받은 책이 바로 기시미 이치로가 쓴 라는 책이다. 바쁜 일상과 맞물려 책은 한동안 거실 한 귀퉁이에 처박혀 버렸고 잊을만한 시간에 ‘독후감’ 이라는 것을 써야 한다는 당부의 말이 떠올라 먼지를 뒤집어 쓰고 책상밑에 팽개쳐 졌던 책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첫장을 넘기면서 격한 공감과 함께 책 속으로 빠져들면서 단숨에 한 권을 통독해 버렸다. 아들러 심리학의 권위자인 기시미 이치로가 ‘나이 든 부모와 어떻게 지낼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직접 자기 삶에서 체득한 심리학적 고찰을 바탕으로 제시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며 '나이 든 부모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화두는 개인을 넘어 사회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저자인 기시미 이치로는 젊은 나이에 뇌경색을 앓아 재활 중에 죽음을 맞이한 어머니를 목전에서 경험하고 삶의 궤도가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나이를 지나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자신에게 인생이란 어떤 것인지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어떤 것인지 사유(思惟)하는 계기를 경험한다. 부모님 두 분을 병수발 했던 저자이기에 현실에서 직접 맞닥뜨리게 되는 사소한 부분을 언급할 때 크게 공감하게 된다. 별것 아닌 일이지만 우리가 실제로 부딪치게 되는 것은 항상 작고 사소한 것들임을 감안하더라도 경험담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저자는 어머니의 병수발과 아버지의 치매로 인해서 ‘나이든 부모’ 와 살며 그들을 이해하는 일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당부한다. 매우 뻔 한 소리 같지만 실제로 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조언이라는 것을 조금만 읽어보면 알게 된다. 부모님도 몸이 아파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생활하는 것이 처음이고, 그런 부모님을 지켜보며 직, 간접적으로 간호해야 하는 자식들도 처음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래서일까 고령화 사회로 접어드는 우리 사회에서도 더 이상 병간호에 대한 책임을 가족에게만 지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아픈 사람도 그 사람을 지켜봐야 하는 가족 누구도 죄인이 아니지만 사랑으로 시작한 일이 한 가정을 파탄 내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게 된다. 결국은 가족이라고는 하나 그것 또한 인간관계이다. 후회를 하지 않게 되게끔 ‘하루하루 이 사람과 사이좋게 생활하자’ 라고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 존경입니다.(P.104). 병이 든 상태가 가장 낮은 위치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P.117). 자식 눈에 아무것도 안하고 하루를 보내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부모님의 현재가 불행한 것은 아니니까요.(P.127),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일본의 철학자 기요카즈는 그의 저서 『끊을 수 없는 생각』에서 “무언가 하지 않고도 그저 가만히 옆에 있어주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우리 사회는 잊고 있다” 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말에 극히 공감이 가는 것은 나에게 있어 2년 전 10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신 어머님을 떠올리게 된다. 어머님은 90의 중반까지는 비교적 정신적으로 건강 하게 사셨으나 그 이후에는 오락가락하는 정신과 육체적인 피폐로 인해 병원과 요양원 신세를 지게 되셨다. 불완전한 모습의 어머니이지만 살아 계실 때에는 마음의 많은 위안이 되었고 형제, 자매들을 잇는 끈이 되어주셨다.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허탈함에 우울한 감정이 지속되기도 하였거니와 형제, 자매를 이어주던 끈도 끊어지고 말았다. 본문에서 아버지에게 “하루 종일 이렇게 주무시기만 하니 제가 안와도 되겠네요.”라고 하자 아버지는 “그런 게 아니야, 네가 옆에 있으니까 안심하고 잠드는 거야”(P.147),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생산성으로만 가치를 측정하는 이 사회가 낳은 문제이기도 하다. 부모님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후회’ 다. 언제나 더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해 드려야지 싶다가도 내 기분에 따라 행동은 확연히 달라진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화는 보통 지르고 난 뒤에 후련한 마음이 드는 경우가 있는데 반해, 부모님과의 갈등은 내가 화를 내고 돌아서는 순간부터 후회가 밀려온다는 것이다. 화를 낸 상대는 나지만 속이 후련하기 보다는 “조금만 더 참을걸. 하는 죄책감이 물밀 듯이 밀려온다. 순간적으로 화가 끓어오르더라도 부모님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면 가능한 권력 싸움에서 물러나야 한다. 사이가 좋아지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P.173). 누군가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면, 상대의 표면적인 말과 행동만 받아들이지 말고 좋은 의도를 발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P.180). 진지하되 심각해지지 말라 부모님을 간병하는 일은 진지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심각해 질 필요는 없다. 진지한 것과 심각한 것은 다르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부모님을 보살필 때에는 다치지 않도록 온 신경을 집중해서 배려할 필요가 있다. 간병이 힘들다고 미간에 주름잡고 한숨을 쉴 필요는 없다. 그런 심각한 표정을 짓는데 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간병하는 일이 얼마나 큰일인지 부모님이 알아주었으면 하고 바라기 때문이다. 둘째는 다른 형제들이 간병의 고단함을 알아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물론, 간병이 큰일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내색할 필요는 없다. 간병이 힘든 일이란 걸 다른 이에게 과시하기 시작하면 간병하는 사람은 진지해 지기 보다는 심각해지고 만다. 여건상 103세에 세상을 뜨신 어머니께서 생전에 계실 때는 나는 한참 사회활동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하루 온종일 두서너 평의 작은방에서 보내셔야 했던 어머니는 가끔씩 전화를 하셨다. 대화 내용은 뻔했다. 어머니의 생각 속에 잠겨 있는 말들을 반복해서 하시곤 했는데, 한창 일처리에 바쁜 상황에서 계속해서 어머니의 얘기를 들어 드릴 수는 없었다. 얼마나 답답하고 아들이 그리웠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은 수없이 했으나 현실은 바쁘다는 핑계로 대충 얼버무리고 끊곤 했다. 그 때를 생각하면 뒤늦게 후회가 참 많이 된다. 그 상황에서 어머니의 얘기를 들어드리는 일 말고 더 급한 일이 무엇이었을까? 뒤늦은 반성을 해 보지만 어머니는 이미 안계시니 그립기 짝이 없다. 이제 어머니의 나이를 향해 쏜살같이 흘러가고 있다. 그러니 어차피 사람은 늙어 갈 수밖에 없고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라는 화두는 결국은 나의 문제로 대두 되고 있다. 이 한권의 책을 통해서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사회는 물론 우리 모두가 자각하여야 할 듯하다.
- 2017-05-1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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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해방 뒤의 허전함
- 이 경숙 가난에서 조금 벗어나자 해외여행에 눈 뜨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출장으로 해외에 나갈 기회가 있었지만, 여자는 쉽지 않았다. 대학 동창들은 모일 때마다 조금씩 정기적으로 저금하기 시작했다. 물론 돈을 모으는 것도 시간이 걸렸지만, 남편들에게 미리 허락을 받기 위한 작업(?)도 필요했다. 그 시절 비행기가 익숙하지 않던 때라 일화가 많았다. 어느 목사님이 신도들의 초청으로 미국 LA에 가게 되었는데 비행기에서 음식을 내올 때마다 모두 거절했다. 물 외엔 아무것도 마시지도 먹지도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탈진해서 거의 쓰러질 지경이 되었다. 신도들은 기내에서 음식을 드시지 않고 왜 굶으셨는지를 여쭈었다. “ 신자들이 어려운 중에 돈을 모아서 나를 미국에까지 보내주는데 미국 음식을 먹으면 얼마나 비싸겠냐. 돈이 많이 나올까 봐 참았다” 우리도 경비를 모으는데 거의 2년 이상이 걸렸다. 동남아시아 2개국을 가는 패키지여행을 계획하고 남편들의 최종 허락을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친구 6명 중 허락을 수월하게 얻은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피나는 서비스와 인내를 통해 ‘쥐 눈물’ 같은 선처를 얻어낸 것이라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한 명은 허락을 얻지 못해 싸우다 싸우다 친정으로 가버렸는데도 남편이 버텨 여행을 포기하기도 했다. 결국, 어렵게 5명이 공항에 모였다. 그런데 하나같이 남편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환송(?)을 나왔다. 함께 가는 일행도 확인하는 것 같았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지 겉으로 웃으며 속으로 우는 모습이었다. 조심하겠다, 잘 다녀오겠다. 거듭 다짐하며 수속을 마치고 우린 드디어 해방되었다. 그 해방은 남편의 잔소리, 아이들로부터 휴가, 부엌에서의 일탈을 의미했고 자유인으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 같아 달콤했다. 표정이 확 바뀌었다. 도도녀, 생기발랄하게 환호했다. “자유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5박6일이었다. 즐겁게 즐겁게···· 꿈같은 이틀이 지났다. 사흘을 넘기지 못했다. 슬슬 전화통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앞에 놓인 산해진미도 아름다운 경치도 뭔가 부족해 보였다. 마음을 잡아당기는 것들이 있었다. 아이들이 보고 싶고 남편의 가슴이 그리웠다. 밥은 잘 먹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잠은 잘 자는지, 점점 물어보는 종류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펄떡거리던 동력이 떨어져 가고 계기판에 빨간 불이 깜빡거리듯 초조감이 몰려오기도 했다. 잘 있다는 것을 서로 확인해야 맑은 웃음을 웃었다. 가족이란 언제나 같은 출발점으로 돌아와 선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나 좋은 경치를 볼 때나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모이는 출발점이다. 도망치듯 떠났으나 오히려 더 강하게 회귀하듯 돌아가 더 깊은 사랑으로 더 큰 품으로 안고 싶어지는 헤어짐이었다.
- 2017-05-08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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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관 답사기] 영인문학관 '文人戀情, 문인을 향한 연정 쌓이다'
- 이런 사랑이 또 있을까 싶다. 편한 것이 좋고, 느린 것은 싫고. 오랜 것은 쉬이 버려버리는 요즘 세상, 옛 추억을 곱게 간직하고 진정한 사랑으로 그리워하는 문인들의 안식처가 있다.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이 바로 그곳. 문학관을 가득 메운 모든 공기와 기운은 이 세상 모든 문인에게 보내는 연정이다. 컴퓨터 모니터 앞, 최첨단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숨을 깊게 내쉬어보고 싶다면 바람 잔잔히 와 앉은 그곳에 가보시라. 세상 모든 문인을 기억하는 ‘영인문학관’ 문학관이라고 하면 한 예술가의 작품세계와 삶, 역사를 풀어놓은 곳이라고 인식하겠지만 영인문학관은 성격이 조금 다르다. 시와 소설 등을 쓰고, 찬란하건 아니건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모든 문인이 잊히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장치 같은 곳이라고나 할까? 건국대학교 국문학과 명예교수이자 문학평론가,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의 부인인 강인숙 관장은 문학을 향한 남다른 사랑으로 문학관을 건립했다. 그녀는 유실 위기에 처했던 문인들의 원고와 다양한 소품을 오래전부터 수집해왔다. 집 안에 점점 쌓여가는 원고, 한 시대를 살았던 문인의 손때 묻은 물건들이 버거울 때도 있었지만 강 관장의 퇴직금과 3년 치 급료 등으로 기금을 마련해 2001년 영인문학관을 개관했다. 다수의 작가를 두루 살피는 마음으로… 개관 이후 전시의 대부분이 기획전시로 이뤄지고 있다. 다른 문학관이나 개인 박물관이 상설전시로 이뤄지고 있는 반면 이곳은 기획전시로 시공간을 채운다. 전시때마다 작품이 바뀌는 것뿐만이 아니라 자리 배치, 전시 운용까지 새로 조직해야 하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인문학관이 한 명이 아닌 다수의 문인을 두루 살피는 문학관이기에 기획 전시의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해왔던 전시만 봐도 그렇다. 다양한 작가의 면모를 찾아볼 수 있게 해준 개관전시 , 등이 그랬고 김상옥과 최인호 등 단독전도 영인문학관에서 기획했다. 취재 차 방문했던 날은 영인문학관 제38회 전시회인 (5월 말까지 전시)이 열려 각계 인사들과 문인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움직이는 벽에 쓴 시-문인병풍전’ 이번 문인병풍전은 소설가 김동리, 박두진, 조병화 등 작고한 문인병풍을 비롯해 정진규, 이근배, 이제하 등 원로 문인의 필체와 문학세계를 엿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 전시회 행사에 앞서 만난 강인숙 관장은 새로 시작되는 전시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현대 병풍과 옛날 병풍을 모아서 전시를 하는 겁니다. 예전 것은 낙관이 병풍의 시작과 끝에만 있었는데 요즘 병풍에는 각 폭마다 낙관이 찍혀 있죠. 예전 병풍은 반듯하고 흐트러짐 없이 글을 써내려갔는데 요즘 병풍은 들쭉날쭉 흔들흔들한 것이 다 의도된 거죠. 병풍 예술이 바뀐 거예요.” 전시회를 위해 많은 작품을 대여했지만 조병화, 김동리, 박두진의 병풍은 강 관장 소유의 병풍이다. 그런데 전문 소장이 된 것처럼 병풍 상태가 아주 좋았다. “내가 아주 보관을 잘해요. 예전에 부채를 보내주신 분이 20여 년 만에 와서 보더니 전문화랑보다 보관을 잘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래서 또 하나 그려주시더라고.” 문인 사랑꾼(?)에 내려진 숙명 ‘사명감’ 강인숙 관장은 새 기획전시를 여는 첫날임에도 불구하고 다음에 있을 전시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찼다. 오는 6월 15일에는 2007년 별세한 무용평론가이자 시인 김영태의 10주기를 맞아 ‘김영태 편지전’을 기획하고 있다. “이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시인 마종기한테 보낸 편지를 100여 통 주고 가셨어요. 그 편지만 해도 전시실 안이 가득 찰 거예요.” 김영태 시인은 암 투병 3년 동안 무용 관련 자료는 무용계로, 사진들은 사진 자료가 필요한 곳으로 보냈다. 그리고 그가 마종기 시인과 나눴던 편지는 강인숙 관장을 찾아갔다. “내가 좀 신용이 있거든요(웃음). 김 시인도 수소문해서 저에게 보내준 겁니다. 잘 간직할 사람이라고 생각하셨나봐요. 내가 그렇게 받았으니 보답을 해야죠.” 편지 내용을 읽어보니 그냥 편지가 아니었다. 작품을 읽고 감상을 써 보낸 것이었다. 올해부터는 1년에 한 번씩 문인 관련 특별전을 하려고 한다. “내가 안 할 수가 없어요. 내가 안 하면 아무도 안 해요. 문인들에게 제가 갚아야 해요.” 강 관장은 많은 문인에게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는 진정한 사랑꾼이었다. 문학을 향한 열정과 사랑을 흠뻑 담아낸 영인문학관은 그저 ‘감동’이었다. 개관시간 10:30 ~17:00 입장료 성인 5000원 학생 3000원 주소 서울 종로구 평창30길 81
- 2017-05-05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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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나가는 사람에게는 이유가 있다 PART6] 올바른 습관 신통방통! 운 좋아지는 습관에 도전하다
- 운에 관한 이야기를 논하다 보니 정말 어떻게 하면 운 좋은 사람 대열에 들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성공적 삶을 살고 있는 분야별 대가, 아름다운 가정에서 근심 걱정 없이 사는 이들을 만나다 보면 공통점이 느껴진다.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임에도 이구동성 하는 말과 행동이 있다는 것. 일본의 정신경영 대가 니시다 후미오의 저서 과 , 미국의 에리카 J. 초피크와 마거릿 폴이 함께 쓴 , 지금까지 만난 취재원의 인생이야기를 바탕으로 ‘운 좋은 습관 만들기 5일 행동강령’을 구성해보았다. ◆1일차◆ “긍정적인 말과 표현을 하자” 2014년 개봉된 시니어 본격 로맨스 다큐멘터리 영화 를 보면서 긍정적 표현과 말의 힘을 느꼈다. 영화 속에서 소녀 감성 89세 강계열씨가 남편과 대화할 때 사용되는 단어와 문장은 긍정적인 표현으로 이뤄져 있다. 행동 또한 사랑이 넘쳐난다. 운이 좋아지는 습관을 만들어주는 31일간의 행동강령으로 구성된 의 3일 차에서 주목하는 것이 바로 ‘긍정적인 말’이다. ‘말은 마음(혼)을 만들기 때문에 무섭다.’ 책에서 인용한 이 말은 일본인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말이다. 부정적인 말을 사용함과 동시에 안 좋은 이미지가 떠오르고 나쁜 감정으로 빠져버리기 쉽다. 마치 불쾌한 경험을 했거나 어디선가 그 일이 이뤄진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함께 있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결과는? 당연히 좋을 리 없다. 차가운 분위기가 흐르고 말을 못 걸 뿐 아니라 며칠을 지속하다 보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하나 고민스럽다. 장난처럼 들리겠지만 정말 한 끗 차이다. 더 많은 문장을 생각해보길. 일상생활에서 내가 쓰는 말이 어떤지 말이다. 무엇보다 긍정적인 말을 사용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안정적이다. 흔들리지 않고 자신감이 넘친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와 취재원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이 선택한 말을 손으로 옮기면서 그 사람의 인상, 심상 등을 생각하게 된다. 안정적인 목소리와 함께 긍정적인 단어 사용은 상대방에게 신뢰와 믿음을 주고 다시 만나고 싶게 만든다. 누군가에게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은가? 긍정적인 표현이 첫 번째 단추가 될 것이다. ☞솔루션 부정적인 말, 긍정적인 말로 바꿔 말하자. 입버릇처럼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훈련이다. 말을 내뱉기 전에 자기가 할 말을 곱씹어 보고 천천히 말을 한다. 밉다, 싫다, 짜증, 아니다. 불쾌하다, 재수 없다 등만 일상에서 쓰지 않도록 주의하자. ◆2일차◆ 상대방을 감동시키자 니시다 후미오의 책 의 내용은 정말 간단하다. 하루에 한 번씩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행동이 일상에 좋은 기운을 불어넣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삶을 개선해나가는 성공 법칙이라고 소개한다. 성공을 위해 뭘 배우고, 어떤 사람을 찾아가는 것 말고 먼저 남을 위하는 습관을 들이라는 것. 배려하고 좋은 행동을 하려는 마음은 소소한 변화에서 집단적 실천까지 불러일으킨다. 선한 일을 생각하거나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안정되고, 인체 면역력이 높아지는 효과를 ‘테레사 효과(The Mother Theresa Effect)’(하버드의대 보고서·1988)라고 부른다. 테레사 수녀가 명상록에서 밝힌 일화, 즉 9000명분의 식사가 똑 떨어졌을 때 빵을 한 가득 실은 트럭이 오는가 하면, 죽어가는 아이에게 절실하게 필요했던 약이 기증 품목에 들어 있었던 사례는 너무 유명하다. 하나님의 사랑만으로 가능했을까? 테레사 수녀의 헌신적인 봉사와 사랑이 불러온 긍정적인 효과다. 최근 식품업체 ‘오뚜기’에 대한 국민적 성원도 테레사 효과의 일면이다. 시식사원 전원 정규직 전환, 심장병 어린이 돕기 사업, 1500억원의 상속세 완납 약속 등으로 ‘갓(God)뚜기’라는 별칭까지 얻고 ‘이젠 오뚜기만 먹겠다’는 소비자들도 늘어났다. 이들은 결코 어떤 효과를 생각하고 한 행동이 아니다. 한결같은 선행을 이어나갔고 시간이 흘러 긍정적인 효과로 다가온 것일 뿐이다. ☞솔루션 1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던 사람의 장점을 생각해볼 것. 2 진심을 다해 인사할 것. 3 연애하라. 그리고 더욱 사랑하려고 노력하라. 상대에 대한 좋은 마음이 쌓여 행동으로 옮겨지면 운 좋은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3일차◆ ‘부정적 생각이 엄습할 때 3초의 룰’ 사람이 살다 보면 실패도 있고, 기분 나쁜 일, 견디기 힘든 일도 당하게 된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풀이 죽고, 화를 내고, 한숨을 내쉬고, 눈살을 찌푸린다, 그리고 심지어는 운다. 니시다 후미오는 에서 이런 동작과 표정은 뇌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더욱 각인시킨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힘든 상황이 닥치더라도 의식적으로라도 부정적인 표정과 동작을 취하지 말기를 조언한다. 그 비책이 바로 ‘3초의 룰’이다. 불쾌한 일이 있어났을 때 그 일을 잊기 위한 신호를 정해두는 것이다. 최면에서 깰 때 ‘레드선’ 하면서 일어나는 것과 비슷하다. 표정, 동작 또는 말도 좋다. ‘3초의 룰’은 부정적으로 흘러갈 감정선을 긍정의 에너지로 변환해준다. ☞솔루션 : 에잇! 물러꺼라~! 나쁜 생각, 나쁜 상황이여!! 나만의 스타일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밟고 지나갈 수 있는 룰을 만들어 사용하라. 행동, 말, 동작 뭐든 좋다. 예) 손뼉을 친다, “아무 일 아니야!”라고 말한다. 또는 발을 구른다든지, 물을 마신다든지 한다. 가능한 한 간단한 것이 좋다. ◆4일차◆ 당당하고 씩씩하게 걷자 20대 초, 한 연극배우가 연극배우와 뮤지컬 배우를 구분하는 방법을 알려준 적이 있다. 뮤지컬 배우는 딱 봐도 ‘내가 배우야’라는 걸 강조하듯 세련된 옷을 입고 구름 위를 통통 튀듯 당당하게 걷는다, 머릿결을 찰랑거리면서 누군가를 만나면 ‘솔’ 음에 목소리를 맞춰 리듬감 있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연극배우는 잦은 연습으로 트레이닝복을 입고 무대가 아닌 이상 화려함은 내려놓고 걷는다. 한 사람의 의견이었지만 납득이 가는 내용이었다. 노래와 춤을 추고 큰 무대에서 관객을 아우르는 공연을 주로 하는 뮤지컬 배우와 대사를 통해 섬세한 연기를 해내는 연극배우의 표현 방식 차이에서 오는 행동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실생활에서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뮤지컬 배우의 걸음걸이를 권하고 싶다. 어깨를 쫙 펴고 턱도 좀 살짝 올리고 웃으면서 당당하게 걷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치유를 느낀다. 심각하게 힘든 일이 있었다면 더 어깨를 펴고 걷는다. 이 또한 의식적으로 해야 한다. 무엇보다 당당하게 걷는 사람은 폼도 나고 다른 사람에게 신선한 느낌을 준다. ☞솔루션 : 당당하게 걷기 전에 할 일 어깨와 등, 무릎을 쫙 편다. 목도 크게 한 번 돌려준다. 얼굴 표정도 중요하다. 한껏 당당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내 몸 구석구석에 말한다. “컨디션 최고!”라고. ◆5일차◆ ‘내면아이’ 존중하고 사랑하기 최근 등 인간의 심리를 소개한 다양한 책들이 출간되었다. 그중 공감하면서 실생활에 적절히 대입해봤던 것이 에서 말하는 실천이었다. 책 한 권의 내용을 짧게 설명하는 데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인간 누구에게나 내면아이와 내면어른이 존재한다. 내면아이가 내면어른으로부터 방치되거나 혹은 억압당했을 때 분노나 고통의 표현은 과격해질 수 있고 피해의식으로 표출될 수 있다. 반면 내면아이를 사랑으로 보듬고 훈련시키면 놀라운 능력과 자기 발전의 원동력을 주기도 한다. 내 안의 또 다른 나가 아니라 둘 다 나라는 것. 둘의 관계가 좋으면 좋을수록 살아가는 데 무리가 없다. 간혹 말을 내뱉기 전 ‘이 말을 하면 실수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는 말이 있지 않았나 생각해보자. 그런 일이 없다면 다행이지만 혹 그랬다면 이는 내면아이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해 생기는 일일 수 있다. ‘내면아이’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면 이에 관한 책을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내면아이가 가진 순수하고 맑은 정신은 ‘막돼먹은 아이’로 혹은 ‘창조적이고 획기적인 실천성’으로 표출된다. 가장 어려우면서도 반드시 알아야 할 나. 내 안에 꿈틀거리는 아이가 있다고 느껴지면 말을 걸어보길 바란다. ☞솔루션 내면아이 깨우는 세 가지 방법 1 글을 써서 대화한다. 그것이 부정적일지라도 글로 써서 뭐가 문제인지 생각해본다. 2 혼자서 역할놀이를 하듯 내면아이와 큰 소리로 대화한다. 이상한 짓이라고 생각하지 말 것. 말도 안 되는 투정처럼 일을 그르쳤던 상황이 있었다면 꼭 필요한 과정이다. 3 그리고 마음껏 말하도록 내버려둬라. 음성언어로 내뱉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운 좋아지는 습관에 대해 찾아보고 글을 쓰다 보니 느끼는 것은? 운이 좋고 나쁜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이나 현상이 혼자만의 생각으로 한순간에 부정적이거나 또는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 너무 의미심장하게 운 좋은 습관을 만들려고 노력할 필요 없다. 어제 에스컬레이터를 탔으면, 오늘은 계단으로 가보자. 내게 가까운 작은 선택과 실천이 어느새 반짝반짝 빛나는 운을 가져다줄 것이다. 힘든 상황이 닥치면 의식적으로라도 부정적인 표정과 동작을 취하지 말기를 조언한다. 그 비책이 바로 ‘3초의 룰’이다. 불쾌한 일이 있어났을 때 그 일을 잊기 위한 신호를 정해두는 것이다
- 2017-02-2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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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관 답사기] 김수영 문학관
- 도시 숲을 헤치고 빠른 속도로 버스가 달린다. 희미하게 햇살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한다. 짙은 갈색 나무 끝이 파란 하늘 배경으로 흔들흔들, 구름의 속도로 움직인다. 작은 버스정류장에 내려 차갑고 신선한 공기와 마주하며 이정표를 따라 걷는다. 곧 다다른 곳은 김수영 문학관. 문체의 자유를 넘어 진정한 자유세계를 위해 끊임없이 저항하고 아파했던 순수시인 김수영의 세계가 구름이 가는 속도만큼 잔잔히 흐른다. 북한산 신선한 공기가 김수영과 어우러지다 중·고등학교 시절 김수영에 대해 그저 ‘한국문학의 대표적 자유시인’ 정도로만 밑줄을 치고 그대로 외운 기억이 있다. 시간이 흘러 다시금 김수영의 글을 읽어보니 자유라는 표현에 한계가 있음을 새삼 느낀다. 세련된 문장도 문장이지만 소재의 다양성과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우울한 시대를 희망차게 살아보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고나 할까? ‘진보’라는 말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그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갔을까 하는 궁금증마저 든다. 그런 김수영을 기리는 문학관이 북한산 둘레길이 이어지는 도봉구 한적한 길가에 자리하고 있다. 시를 쓰며 살았던 그의 본가와 묘, 시비 등이 있는 도봉구에 2013년 11월 김수영 문학관이 문을 연 것이다. 도봉구에서 운영하는 김수영 문학관은 개관 이후 한 달에 1500명, 연간 1만8000명이 다녀갈 정도로 도봉구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문화시설이 없던 동네에 사람들이 찾아들고 활력이 넘치는 곳을 만든 이가 시인 김수영이다. 김수영 문학관은 5층 건물에 1층과 2층이 전시관으로 꾸며졌다. 제1전시실(1층)은 김수영 연보를 시작으로 한국전쟁, 4·19혁명, 5·16 군사정변 등 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경험하며 써낸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김수영의 삶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상영물을 관람할 수 있다. 또한 시를 낭독하고 녹음할 수 있는 작은 공간도 있다. 이외에 관람객이 참여해 만드는 시작 코너와 김수영에게 편지를 쓰는 공간으로 전시실을 알차게 구성했다. 무엇보다 김수영의 시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꾸며놓은 것이 이곳의 매력이다. 원문 전시와 함께 활자화시킨 시를 서랍장 형식으로 만들어놓았다. 원문을 본 뒤 서랍을 열면 희미하게 보이던 원문의 모든 글귀를 쉽게 읽을 수 있다. 제2전시실은 김수영의 산문과 번역서, 일상 유물 등이 전시돼 있다. 어느 한 집안의 벽면처럼 김수영의 어릴 적 모습에서부터 가족들과 찍은 사진 등 소소한 기록들이 펼쳐져 있다. 김수영의 서재도 이곳에 옮겨놓았다. 전시장에 소개된 글은 김수영이 서재에서 어떤 모습으로 생활했을지를 짐작하게 한다. ‘한 편의 시나 산문이 완성되면 김수영 시인은 항상 아내 김현경을 찾았다. 그러면 집안 살림을 하든 다른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하던 일손을 멈추고 달려가야만 했다고 한다. 서재에 들어서면 김수영 시인은 빽빽하게 쓴 시의 초고를 건넸고, 그 시를 정리해서 원고지에 깨끗하게 정서하는 것이 김현경의 못이었다고 한다. 김수영 시인은 시를 쓰는 작업을 마치면 ‘산고(産苦)’를 겪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서재 오른쪽으로는 김수영이 살아생전 남긴 번역서 등을 전시해놓았다. 왼쪽으로는 시인의 서적을 열람할 수 있는 공간으로 아늑함을 더했다. 이외에도 3층은 구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작은 도서관과 아동열람실, 4층에 대강당, 5층은 휴게 공간이다. 김수영 유족이 함께하는 ‘김수영 문학관’ 김수영 문학관은 도봉구에서 직접 관리를 하지만 유족들의 보살핌과 사랑으로 운영되고 있다. 문학관에서 일하는 김은씨는 김수영 시인의 조카다. 수학선생으로 교편을 잡고 있다가 문학관의 명예관장이자 고모인 김수명(83)씨의 부름을 받고 문학관에 들어왔다. 김수명 명예관장은 김수영의 다섯째 동생이다. 문학관에 전시된 전시물 대부분을 기증했다. 40년 동안 두 번의 이사를 거치면서도 김수영의 모든 육필원고 등을 싸들고 다닐 정도로 오빠와 작품에 대한 사랑이 대단했다. 마침 취재를 갔던 날 김수명 명예관장을 만날 수 있었다. 여든셋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힘찬 목소리에 에너지가 넘쳤다. 그녀는 “김수영을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면서 특히 “아이들에게 자극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김수영 시인의 시 세계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날씨가 풀려가고 봄의 기운이 느껴지는 어느 날 문득 김수영 문학관을 찾아가보자. 자유 그 이상의 세상을 꿈꾸던 천상의 자유시인 김수영이 문학관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관람 정보 휴관 매주 월요일, 설날 및 추석 당일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5시 40분 관람료 무료 주소 서울특별시 도봉구 해등로 32길 80 TEL 02-2091-5673
- 2017-02-0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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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사랑] 첫사랑은 우두 자국 같은 것
- 우리 세대는 화려한 영화의 시대였다. 종로, 을지로, 충무로는 물론이고 프랑스 영화를 보기 위해 반은 겉멋으로 프랑스문화관을 드나들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중에 지금도 필자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영화 두 편이 있다. 하나는 알랭 들롱이 주연한 이고, 또 한 편은 라이언 오닐과 알리 맥그로우가 함께 나온 다. 풋풋했던 젊은 시절의 알랭 들롱은 바다를 닮은 푸른 눈동자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선과 악의 분위기가 교차하는 미묘한 눈빛으로 푸른 바다 위 하얀 요트에서 작열하는 태양을 올려다보는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는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눈이 오는 하버드대학 교정에서 아이들처럼 눈싸움을 하며 즐거워하던 장면과 배경 음악을 잊을 수 없다. 는 훗날 훈남 배우 맷 데이먼을 내세워 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됐지만, 가슴에 새겨진 알랭 들롱의 강렬한 눈빛을 이길 수는 없었다. 얼마 전 의 실재 인물의 거짓이 드러났다. 알리 맥그로우가 연기한 그녀는 래드클리프 여대를 나온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는 필자 마음속에서 여전히 아름다운 영화로 남아 있다. 첫사랑은 그런 것이다. 만해 한용운 시인은 ‘님의 침묵’에서 마음에 각인되어 잊을 수 없는 첫사랑의 기억을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이라고 읊었다. 서정주 시인도 ‘국화 옆에서’라는 시를 통해 국화를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라고 노래했다. 첫사랑은 알랭 들롱의 눈빛처럼 강렬하고, 의 눈싸움처럼 다정하고, 국화꽃처럼 향기롭게 필자 마음속에 남아 있다. 첫사랑은 마치 우두 자국과 같다. 어린 시절 우리는 몇 가지 예방주사를 맞곤 했다. 지금은 그럴 리 없지만, 의료기술이 낙후했던 시절에는 우두 주사가 제일 말썽이었다. 그래서 대부분 어깨에 희미한 우두 자국을 낙인처럼 지니게 되었다. 첫사랑도 우리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면 그것은 첫사랑이 아니다. 첫사랑은 대개 일방적이다. 그래서 첫사랑은 늘 안타깝고 수줍어서 다가갈 수 없는 그 어디쯤에 있다. 물론 쌍방통행의 무르익은 사랑이 어쩔 수 없는 저항에 부딪혀 이루지 못한 첫사랑도 있다. 첫사랑은 신이 인간에게 번성의 필요충분조건인 사랑의 마법을 알게 하려고 놓아준 사랑의 예방주사다. 예방주사를 맞으면 병에 걸리지 않듯이 첫사랑의 열병이 진짜 사랑으로 번지면 그것은 이미 첫사랑이 아니다. 어린 시절에는 거의 모르고 지나가버린 정유년을 60년 만에 다시 맞았다. 김용택 시인은 ‘첫사랑’이라는 시를 통해 “인생은, 사랑은 시든 게 아니라네/ 다만 우린 놀라움을 잊었네/ 우린 사랑을 잃었을 뿐이네”라고 읊었다. 정월 아침 새해라는 새하얀 눈길에 첫 발자국을 찍으며 마음속에서 희미해진 첫사랑의 우두 자국을 찾아보자. 풋풋했던 시절 수줍은 첫사랑의 설렘이 사그라져가는 우리 삶의 열정을 되살려줄지 누가 알겠는가.
- 2017-01-3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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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에 생긴 일] 미제 사탕 ‘참스’와 우리들의 크리스마스
-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연말연시에 할 일도 많고 바빠지겠지만, 크리스마스 생각을 하면 어린 시절의 추억에 가슴이 촉촉해지고 그리운 마음이 차오른다. 필자는 딸만 셋인 집의 맏딸이다. 아버지는 딸 셋을 큰 사랑으로 키워주셨다. 그런데 집안의 장남으로 딸만 두었다는 게 좀 문제가 되기도 했나보다. 당시만 해도 남아 선호사상이 만연했을 때라 엄마는 아들을 낳지 못한 설움을 톡톡히 받으셨다고 한다. 작은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을 아버지에게 양자로 주겠다는 제의까지 할 정도로 엄마에게 아들 없는 압박이 심했는데 아버지는 일언지하에 거절하시고 딸만으로도 행복하다며 엄마를 보호해주셨다. 그래서 사촌 동생이 필자의 친동생이 되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아버지는 세 딸에게 무엇이든 다 해주려고 노력하셨다. 낭만적인 성격의 아버지 덕분에 우리는 어릴 때부터 크리스마스에 대한 환상을 갖고 예쁜 상상력을 키울 수 있었다. 딱히 종교가 있으신 건 아니었지만 어린 세 딸의 손을 잡고 시내 교회로 종소리 들으러 가는 걸 즐기셨으며 동화책도 많이 읽어주셨다. 아버지가 말씀하신 ‘크리스마스에는 루돌프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산타 할아버지가 오셔서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다’는 상투적인 이야기도 그땐 얼마나 근사했는지 착한 아이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했다. 필자가 대여섯 살 되었을 무렵의 어느 크리스마스 날, 아버지는 산타 할아버지가 머리맡에 걸어둔 양말 속에 선물을 주고 가신다며 양말을 걸어놓으라고 창문에 길게 줄을 매달아주셨다. 두 살 터울이었던 두 동생보다 더 큰 선물을 받겠다며 아버지의 큰 양말을 찾았지만, 필자가 원하는 선물이 들어갈 만한 양말은 없었다. 동생들은 양말을 걸었지만, 필자는 엄마의 흰 버선을 빨래집게로 집어 걸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크게 웃으시며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 욕심 부린 마음을 꾸짖지 않고 웃음으로 대해준 아버지의 환한 모습이 무척 그립다. 크리스마스 날, 필자는 잠에서 깨어 줄에 매단 버선부터 확인했다. 그 속에는 12가지 색 크레용이 들어 있었다. 뛸 듯이 기뻐했던 당시의 기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아쉽게도 그다음 해부터는 산타 할아버지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우리에게 줄 선물을 몰래 감춰놓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모른 척 동생들에게는 말하지 않고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즐겼다. 선물은 다양했고 양말에 넣을 수 없는 선물은 머리맡에 두셨는데 맛있는 과자와 사탕 통이었다. 당시에는 미제 물건들이 많았다. 초콜릿과 ‘참스’라는 미제 사탕은 우리가 정말 좋아하던 선물이었다. ‘참스’ 캔디는 둥근 통 위쪽 알루미늄 뚜껑을 고리를 잡아당겨 열게 되어 있었다. 고리를 잡아당기면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달콤한 사탕 향기가 퍼져 나왔다. 미제 사탕이 없어질 무렵 해태제과에서 비슷한 제품을 만들었다. 디자인도 똑같고 뚜껑 여는 방식도 같았지만 ‘치익’ 하며 퍼지던 달콤한 향도 없었고 맛도 달랐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꼭 사탕 맛이 달랐다기보다는 아버지가 사주시던 추억의 사탕이 아니라서 그렇게 느꼈다는 생각이 든다. 교직에 계셨던 아버지에게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카드가 많이 왔다. 모양도 다양하고 그림도 멋졌던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며 동화처럼 예쁜 세상을 상상했고 환상적인 미래를 꿈꾸며 자랐다. 우리 자매들에게 세상을 아름다운 눈으로 바라보라고 가르치셨던 아버지는 5년 전 하늘나라로 가셨다. 필자도 이제는 손녀 손자의 선물을 고르는 나이가 되었다. 아버지와의 예쁜 추억처럼 손녀 손자에게도 필자가 훗날 그리움의 존재로 기억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따뜻한 희망을 품어본다.
- 2016-12-12 1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