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이 불투명한 지금, 부모에서 자식으로, 손주에게 자산을 배분하는 ‘세대간 원조’가 필요한 시대이다.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밝힌 부등식 자본의 수익률(r)이 경제성장(g)을 능가한다는 의미[r>g]다. 즉 자본가가 주식과 투자로 번 돈이 일반국민의 소득 성장보다 커져 격차가 확대되는 것을 의미하는 셈이다. 이런 격차의 시대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주를 위해 자산을 남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 자신의 세대만 행복을 누릴 것이 아니라 쌓은 재산은 다음 세대에게 선물해야 한다. 자산가들은 금융자산, 부동산, 현금 등 세 가지 별로 남기는 사람과 남기지 않은 사람들 두 가지로 분류된다.
정리 이태문 동경 통신원 gounsege@gmail.com
◇ 금융자산
>> 남기자 파
△ 장기투자로 자산을 늘린다
장기투자란 자신이 응원하고 싶은 기업에 투자해 그 성장과 함께 돈이 늘어나 되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장기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시작하는 시기는 이를수록 좋다. 일반적으로 일해온 사람이라면 막대한 자산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기에 그걸 더욱 늘려서 처음으로 ‘어떻게 남길까’라고 생각할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퇴직 후에도 20년 정도 인생은 계속되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생활이 불가능해질 가능성도 있다. 장기투자를 시작하면 돈이 느는 흐름을 타고 생활할 수 있어 여유를 유지하게 된다.
△ 장기투자를 후세에 남긴다
진짜 투자가는 ‘돈을 지니고 있는 게 아니라 세상에 돌린다’는 가훈 아래 일하고 기업을 응원하는 것으로 사회에 공헌하며 몇 대에 걸쳐 부를 축적해 가는 것이다. 알뜰하게 쌓아올린 돈이기에 소중하게 길러가고 싶다는 욕심도 생기는 것이다. 자산을 물려줄 때는 자손에게 그러한 교육도 함께 할 필요가 있다.
돈이 세상을 위해 일한다는 점, 자신이 그 기업을 응원하는 이유 등을 자식과 손주에게 알려줄 것. 그러면 후손들도 돈과 함께 ‘그런 식으로 살아가라’라는 당신의 마음을 소중하게 받아들여 의미 있게 돈을 쓸 것이다.
예를 들어 1000만엔이라는 돈을 상속해도 받은 쪽은 2~3년 놀며 살면 끝나 버린다. 과연 그게 좋은 상속이라고 하겠나?
그리고 어떤 투신도 소액으로 현금화할 수 있어 주식과 달리 받는 측도 쪼개서 상속세를 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자식과 손주의 부담도 배려해야 한다.
>> 안 남기자 파
△ 의미 있는 기부를 한다
돈을 소중히 키우면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고 진지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기부는 자신의 꿈과 생각, 인간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일이다. 기부를 할 때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죄 만들기’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부를 받는 곳의 활동이 시간이 걸리는 경우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사정으로 기부를 그만두면 겨우 움직이기 시작한 기부처의 활동도 중지되고 만다. 특히 기부의 도움으로 활동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낭패를 당하게 된다. 돈을 내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자기 세대에서만 기부가 끝나지 않도록 자식과 손주에게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알리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기부하면서 활동에 참가
돈이 어디서 어떻게 쓰이는지 불투명한 곳에는 기부하지 말 것. 그리고 기부하는 것만이 아니라 기부처에 노동력을 제공하면 더 의미있게 사회공헌을 할 수 있다. 가능한 범위에서 도우미 활동을 지원한다. 기부만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관여하는 것으로, 고령자도 정년 퇴직 후 평생 사회와 이어질 수 있다. 자식과 손주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면 돈만이 아니라 기부활동에 관한 생각도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 부동산
>> 남기자 파
△ 신축 아파트 경영
부동산을 똑똑하게 남기는 대표적인 방법은 신축 아파트 경영이다. 갖고 있는 자금으로 땅을 대출 구입해 아파트를 짓고, 월세로 경영하는 것이다. 어느 시대든 젊은 사람들은 도심에서 살기를 동경한다. 그런 20~30대의 젊은 세대를 겨냥한 아파트 경영은 장래에도 안정된 투자라고 하겠다.
자신은 월세 수입으로 얻은 돈에 연금을 얹어 입지 조건이 좋은 아파트를 빌리든지 사든지 해서 유유자적한 삶을 보내면 된다. 그리고 10~20년 뒤 도심에 구입한 아파트 대출을 다 갚은 시점에 손주에게 물려주면 된다. 그렇게 하면 손주에게는 월세수입이 큰 도움이 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수도 있다.
△ 좋은 대출은?
임대 병용 주택을 지어서 한쪽은 빌려주고 또 다른 한쪽에 사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월세 수입으로 대출을 갚고 남은 돈을 생활비로 돌린다. 그 경우 아파트 대출(투자대출)이 아니라 주택대출을 받을 수 있어서 더욱 낮은 금리로 융자를 받을 수 있다.
부동산 투자에서 ‘좋은 대출’이란 은행에서 돈을 빌려 입주자가 갚도록 하는 것이다. 남은 월세수입은 자신의 재산.
>> 안 남기자 파
△ 일찌감치 판다
손주에게 확실하게 월세수입이 있는 아파트를 남기길 권하고 싶지만, ?아파트 경영이란 모험은 못 하겠다’라는 사람들에게 다음 방법을 제안한다.
첫째, 지금 사는 집을 매각할 것. 입지에 따라 다르지만 알다시피 거품이 빠지고 나서 토지가격이 상승할 기미는 없다. 오히려 내려갈 가능성이 더 높다. 지금 매각해서 역 앞 아파트로 이사하는 쪽이 무난하다.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빈부의 격차가 확대되는 것은 자본주의의 원리라고 말했는데, 일본에서 현재 두드러진 것은 ‘토지의 격차’다. 값이 오르는 토지와 떨어지는 토지로 양극화됐다.
팔 것을 생각한다면 도심에 사는 사람은 혹시 상승할지도 모르는 토지가격의 변동을 조사하고, 교외와 지방에 사는 사람은 서둘러 매각하길 권한다.
△ 빌린다
입지가 좋은 집이라면 누군가에 빌려주고 자신은 역 앞 아파트에 살자. 20만엔 정도로 빌려주고 10만엔에 역 앞 아파트를 빌리면 남은 10만엔이 생활비다. 다만 ‘아무도 빌리지 않겠지’라고 판단되는 곳이라면 빌려주기 위한 지혜가 필요하다.
살고 있는 집을 매각해 그 집을 빌려 살 수도 있다. 해외에 살고 있는 딸 내외가 귀국해서 살 집을 사전에 구입해 두는 경우이다. 교섭하기에 따라서는 딸 내외가 귀국하기 전까지 싸게 빌려 살 수도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그런 경우도 있다.
△ 기부한다
전국에 빈집이 820만호나 있는 시대. 인구감소의 사회가 도래하기에 향후 빈집이 증가할 것은 틀림없다.
아무리 집과 토지를 무상으로 기부한다고 해도 지방자치단체와 NPO법인으로부터 ‘필요없다’는 답변을 받는 것도 각오해 둘 필요가 있다. 어느 시의 경우 집을 기부한다고 신청해도 이미 빈집이 1만호나 돼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한다. 해체비용도 들고, 빈터로 만들면 고정자산세가 6배가 된다. 기부를 생각한다면 서둘러 결정하라.
“손녀 일링(당시 7세)에게는 대학 졸업 시까지의 학자금으로 내 주식의 배당금에서 1만 달러를 준다. 아들 일선은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 자립해서 살아가거라. 딸 재라에게는 유한중·공고 안의 (내) 묘소와 주변 땅 5000평을 물려준다. 아내 호미리는 딸 재라가 노후를 잘 돌봐주기를 바란다. 내 소유 주식 14만 941주는 전부 ‘한국 사회 및 교육원조 신탁기금’에 기증한다."
1971년 봄에 별세한 유한양행의 창업주 유일한(柳一韓·1895 ~1971) 선생이 남긴 유언장의 일부이다. 유일한은 9세 때 미국으로 가서 고학으로 대학을 졸업한 후 식품회사를 세워 크게 성공했다. 1926년 31세의 나이로 한국으로 돌아와 안정적인 교수직을 마다하고 가난과 병으로 신음하는 동포들에게 좋은 일자리와 약을 제공하는 것이 더 급하다면서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이런 유일한을 우리들 대부분은 청빈한 기업가로만 알고 있지만 온몸을 던져 독립운동에 헌신한 분이기도 하다. 독립운동가 박용만이 미국 네브라스카주에 세운 ‘한인소년병학교’를 다닌 이후 투철한 애국심과 민족 사랑으로 일생을 살았다. 일제의 압박이 거세진 1930년대 후반에는 미국에 거주하면서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산하 한인국방경위대 ‘맹호군(猛虎軍)’의 창설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특히 1941년 일본의 진주만 폭격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미군 전략정보처(OSS)의 한국 담당 고문으로 활약했다. 1945년에는 재미한인들을 훈련시켜 국내에 침투시키는 ‘냅코 계획(Napko Project)’의 행동대원으로 직접 참여했다. 기업 경영은 물론 필요하다면 조국과 동포를 위해 온몬을 던지려 했던 유일한의 애국심과 충정, 그의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영원할 것이다. 정부는 뒤늦게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유일한 외에도 우리는 예부터 내려오는 부자들의 훌륭한 전통과 아름다운 선행을 많이 알고 있다. 10대 300여년을 이어온 경주 최부자댁, 정직과 신의로 돈을 벌어 가난을 구제한 거상(巨商) 김상옥, 조선의 첫 여성 CEO 겸 자선가 김만덕, 일제강점기 시절 평양의 고결한 여성부자 백선행 등이다.
“저한테는 기부가 자손들에게 물려줄 유산입니다.”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의 1호 회원인 남한봉 유닉스코리아 회장의 말이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억 원 이상 고액기부자들을 가리키는 일종의 ‘명예의 전당’이다. 2007년 12월 남 회장이 첫 번째 회원으로 가입한 이후 2010년대 들어 매년 2배씩 늘어나면서 회원 수가 839명(2015년 6월 현재)에 달하고 있다. 기업인이 427명으로 절반을 넘고 전문직 86명(10.3%), 자영업자 48명(5.7%)의 순이고 기업체 임원과 공무원, 스포츠인, 방송·연예인도 찾아볼 수 있다. 돈 많은 부자만 있는 것도 아니다.
2014년 11월 627번째 회원으로 가입한 김방락 선생(68)을 만나보자. 특전사 부사관을 거쳐 군무원으로 30년 넘게 근무하다가 은퇴한 후 10년 남짓 한 대학의 경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지금도 그다지 넉넉하지는 않지만 어려웠던 때를 생각하면서 경비생활 10여 년 동안 번 돈을 모두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공무원 연금(200만원)과 베트남 참전수당(22만원)으로 생활비를 하고 경비원 월급 120만원은 모두 기부하는 셈이다. 휴가라고는 군무원 때 30년 재직 기념으로 5일을 다녀온 게 전부란다. 제주도도 못 가봤고 외국은 베트남 파병 때 간 것밖에 없다.
외국으로 눈을 돌려보자. 미국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부자로 죽지 않기 위해’라는 소신대로 은퇴 후 여생을 기부 등 사회헌신으로 살다가 미국 부자의 롤 모델이 되었다. 이 같은 전통을 이어받아 부자 서열 1, 2위를 다투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기부금액에서도 수위를 다투고 있다.
뿐만 아니라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가 수조원대의 기부를 하는 등 떠오르는 신흥부자들도 기부대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왈리드 빈 탈랄 왕자가 320억 달러(36조원)에 달하는 개인 재산 전부를 기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럼 열심히 벌어서 사회에 기부하고 환원하는 것만이 최선이고 잘 하는 일일까? 아니다. 사람마다 생각과 철학이 다르다는 점에서 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다. 기부와 마찬가지로 상속 또한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삶의 동기이자 보람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가운데서 열심히 일해 번 돈을 자손들에게 물려줌으로써 그들이 나와는 달리 좀 더 윤택하고 안정된 삶을 살았으면 하는 부모로서의 바람을 누가 탓할 수 있을까?
다만 남과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돌아보자고 권할 수는 있을 것이다. 배고프고 아픈 사람들을 돌아보다 보면 더 많은 좋은 일들이 생겨날 것이고 거기서 남다른 보람과 성취감을 얻는 부자들이 많아질수록 따뜻하면서도 살기 좋은 세상으로 바뀌어갈 것이다. 따라서 기부 또는 봉사를 강권하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동참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소득 및 재산수준이 높아질수록 고민에 빠지게 된다. 가진 돈, 늘어나는 돈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돈의 관리(how to manage)는 크게 3 How, 즉 ‘어떻게 투자할 것인가(how to portfolio), 어떻게 쓸 것인가(how to use), 어떻게 물려줄 것인가(how to pass down)’로 나눌 수 있다. 이 세 가지를 강조하는 것은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할 경우 우리의 삶이 ‘유종의 미(有終之美)’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은퇴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죽지 않는 사람도 없다. ‘다 쓰고 죽어라(Die Broke)’의 저자 스테판 폴란이 주장한 바와 같이 영원히 살 것처럼 돈에 연연하지만 말고 나와 내 가족은 물론 한 걸음 더 나가 사회와 국가의 삶의 수준과 의미를 향상시키는 일에 돈을 쓸 줄 알아야 한다. 아닌 말로 일본사람들처럼 돈을 움켜쥐고만 있으면 나와 내 가족을 넘어 그 사회와 경제도 병들고 불행해질 뿐이다. 투자도 하고 그러면서 손해도 보고 이익도 보고 쓸 건 쓰고 물려줄 건 물려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돈으로부터 해방되면서 진정한 삶의 재미와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다시 한 번 ‘공자도 부러워할 5자’를 외치고 싶다. 5자가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니~. “놀자, 쓰자, 주자(베풀자), 웃자, 걷자.”
글 최성환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식들에게 절대 재산을 물려주지 말라. 물려주면 그때부터는 자식들이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요즘 나이든 자산가들 사이에 이런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돈이라도 갖고 있어야 자식들이 자주 찾아와서 노년이 외롭지 않을 거라는 생각일 것이다.
이 말을 들으면서 한 일본인 친구로부터 들은 말이 생각났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의 큰어머니는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67세의 사촌형에게 재산을 상속했다고 한다. 92세라고 하면 일본인의 평균수명을 생각할 때 특별히 오래 살았다고도 할 수 없는 나이이다. 그런데, 92세 고령자라면 그 배우자 또한 비슷한 수준의 고령자일 것이고, 자녀들도 젊어야 50대 후반이나 환갑을 넘은 나이일 것이다. 즉, 일본의 노인이 세상을 떠날 경우에는 갖고 있던 재산이 거의 확실하게 노인에게 상속된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사회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老老(노노)상속이 일본에서 그렇게 큰 문제가 된다는 것인가? 돈이 노인들 수중에서만 돌고 경제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젊은 세대에게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미래의 꿈을 가진 벤처비즈니스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큰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20여년의 일본의 장기 경제불황은 ‘돈 쓰지 않는 부자 노인’과 ‘돈이 없어 소비하지 못하는 가난한 젊은 세대’라는 이중적인 사회구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현재 일본의 60대 이상의 고령세대는 일본 전체 가계금융자산의 70%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노인은 지금과 같이 100세까지 살아야 하는 시대에 언제 어떤 고생을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현금을 움켜쥐고만 있다. 본인도 쓰지 않을 뿐 아니라 자녀들에게 물려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수익성이 높은 곳에 투자를 하지도 않는다.
돈 가진 세대가 소비도 안 하고 투자도 안 하니 경제 또한 활성화되지 않는다.일본의 정책당국은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많은 정책적 노력을 해왔다. 특히, 노인들 수중에서 잠자고 있는 돈이 젊은 세대에게 이전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세제 우대제도를 도입했다. 부모가 자녀들의 주택 구입자금, 교육자금, 결혼·출산·육아비용 등에 원조를 할 경우 일정 금액 한도 내에서 증여세를 면제해주도록 한 것도 이런 정책적 노력의 일환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아직은 고령세대가 보유한 자산이 그다지 많지 않다. 전체 가계금융자산 중 60세 이상의 고령세대가 보유한 비율은 30%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715만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세대로 편입된 이후이다. 그때쯤이면 고령세대가 보유하는 가계금융자산의 비율은 50~60%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때까지 정책당국의 대응책이 나오지 않고 고령세대의 인식도 바뀌지 않는다면 한국판 老老상속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 정부의 정책도 자산가들의 마음가짐도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산가들은 자신들이 그 동안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자신들의 능력이나 노력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지난 30~40년 동안 우리 경제가 고성장을 지속하면서 자산가격이 계속 상승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고성장시대의 혜택을 받은 세대로서 사회공헌 조직을 만들거나 기존의 사회공헌단체에 기부활동을 함으로써 그동안 받은 혜택을 사회에 환원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녀들에게 재산을 상속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을 가진 자산가라면, 그 재산을 자녀에게 상속은 할 것인지, 한다면 언제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100세에 세상을 떠나면서 70세 된 자녀에게 상속을 한다면 그 재산이 생산적인 곳에 쓰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자녀가 조금이라도 젊을 때, 자신의 몸값을 높이는 데에 투자하거나 꿈이 있는 사업에 투자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자녀의 장래를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나 훨씬 더 바람직할 것이다.
재산상속과 자녀들의 효도문제에 대해서도 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어릴 때부터 자녀교육을 잘 시켜서 자녀들 스스로가 부모 공경하는 마음으로 찾아온다면 모르지만 돈을 미끼로 찾아오게 만든다면 그 노년이 얼마나 비참해지겠는가? 차라리 노부부 둘만 남았거나 사별해서 혼자되었을 경우에라도 외로움에 견딜 수 있는 능력, 고독력을 키우는 편이 보다 현실적이지 않겠는가?
보유재산으로 사회공헌활동을 하거나 자녀들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하고 싶어도 노부부가 몇 살까지 살게 될지 또는 노후생활비가 얼마나 들지를 예측할 수 없어서 지원을 망설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우선, 현역시절에 가입해둔 3층 연금(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이나 즉시연금, 주택연금, 농지연금 등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기본생활비 정도를 보장받을 수 있겠는지를 먼저 계산해 볼 필요가 있다. 계산해본 결과, 이들 연금으로 기본생활비를 보장 받을 수 있다는 판단이 선다면, 나머지 재산 중 일부는 안심하고 사회공헌 활동 또는 자녀 지원에 쓸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느 경우이든 고령세대 자산가들에게는 재산 축적과 사용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재산을 움켜쥐고만 있으면 이것은 국가경제를 불황에 빠뜨릴 뿐 아니라 그 불황의 여파는 다시 자신과 자녀들의 불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 강창희 트러스톤 연금포럼 대표
뜨거운 8월 어느날 이틀간 우리은행 PB센터를 통해 선정된 자산가 5명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자산, 상속, 증여세, 자손, 부의 대물림, 부의 복지 등 민감한 내용에 관한 대화여서 모두가 익명을 요구했다. 이들 중에서 이인용 회장(가명)의 상속에 관한 철학과 통찰력을 들여다보는 블라인드 토크(Blind Talk)로 담았다.
이인용 회장은 1950년 생으로 올해 65세.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 중인 현역 기업인이다. 연매출 2000억 원가량의 식품 가공과 무역업을 하고 있는 그는 기업의 자녀 승계 문제에 대하여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등 저명인사들이 재산의 사회적 환원을 말하고 있지만,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는 것을 의아해하고 반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그러나 이 회장이 생각하는 ‘환원으로서의 재산’은 확고한 경험과 철학 위에 서 있었다. 이인용 회장은 딸 둘과 막내인 아들을 모두 출가시켜 손주 다섯 명을 둔 자식 부자다. 그는 자식들의 기업 승계에 대하여, “본인들 중에서 취미가 있고 능력이 있다면 하는 것이고, 아니면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기업을 운영하려면 그에 걸맞은 능력과 흥미가 있어야 해요. 기업체는 유기체적인 것이기에 경영이 잘 안 되면 연관된 모든 식구들에게 피해가 가니까요.”
이 회장은 맨주먹으로 사업을 일군 자수성가형 기업가다. 혼자서 모든 것을 일으켰다는 보람과 자부심이 재산 철학의 근저를 이루고 있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만큼은 자식들에게 주겠지만, 그 이상은 자식들의 힘이 아니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힘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그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자식들에게는 재산보다는 낚시하는 방법을 알려줘야죠. 그게 큰 유산이에요. 그것조차 못 받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요.”
이 회장은 자신의 친구들 중 부모의 유산을 물려받아 그걸 잘 유지하는 경우가 한 3%나 될까 싶다고 말한다.
“숫자로 보면 부모의 재산을 제대로 유지하는 사람이 30명 중 한 명이에요. 대부분 50대 중반이 되면 부모의 유산을 다 탕진해요. 그걸 봐도 준비나 교육 없이 능력이 안 되는 자녀에게 가업승계를 한다거나 유산을 물려주는 건 그리 현명한 생각은 아닌 것 같아요. 특히 돈이 좀 있는 집안의 자식들은 아무래도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니 없는 사람들 형편을 몰라요. 자신이 가진 돈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죠. 그 생각 자체가 잘못된 거예요.”
돈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해야
이 회장의 돈에 관한 흔들리지 않는 철학은 젊은 시절과 지금, 돈을 벌게 되면서부터 바뀐 것이지 않을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젊은 시절의 돈의 의미와 지금의 돈의 의미가 달라졌는지를 물어봤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돈에 관한 신념이 수집이나 탐욕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알게 해줬다.
“저는 어렵고 악착스럽게 돈을 버는 것보다는 일하는 것 자체가 좋았어요. 일을 하다 보니 돈이 따라왔습니다. 제 자식들에게도 네가 좋아해서 열심히 일하면 돈은 알아서 따라온다고 가르칩니다.”
그의 돈에 대한 엄격함의 근거는 돈이 아닌 일 자체의 가치에 삶을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일하느라 바빠서 자식들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했다고 술회했다. 그래도 자식들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고, 자식들 또한 그런 아버지를 존중하고 지금도 아버지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고 있는 건 이 회장의 삶이 그릇되지 않았다는 걸 알려준다.
현금보다는 재산 낚는 방법을 알려줘야
“자식들에게 아쉬운 점? 많죠(웃음). 제가 좀 더 시간을 할애해서 세상 사는 노하우를 가르쳐줬으면 지금보다 더 잘 살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는 단순히 돈을 주는 것보다 ‘노하우’를 전수하는 편이다. ‘물고기’ 대신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 부모 세대가 물려준 부를 효과적으로 늘리고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내심 남아 있는 아쉬움을 줄이기 위해 그가 자식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국가 재정과 가계는 다르다고 곧잘 말합니다. 국가 재정은 예산을 세워놓고 세금을 모아서 운영하는 것이죠. 반면 가정은 자신이 일을 해서 버는 수입에 의해 운영해야 합니다. 그 차이를 생각하지 않으면 가계는 마이너스가 돼요.”
세금이란 이미 준비되고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돈을 받는 것이다. 반면 가정은 본인의 역량으로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해야 유지할 수 있는 것에 가깝다. 이 회장이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J씨는 일본에서 거주하다가 2012년 3월 말경에 사망하였다. 상속인으로 배우자 K씨와 장남 A씨, 장녀 B씨, 차남 C씨가 있었다. J씨는 일본에서 재산을 모으지 못했고 오히려 빚만 있는 상태였다. 장녀 B씨는 2012년 6월 5일, 배우자 K씨와 장남 A씨는 상속포기기간을 3개월 연장 받은 후 2012년 8월 27일 도쿄 가정법원에 상속포기 신청을 하였다. B씨의 상속포기 신청은 2012년 8월 8일 수리되었고, 배우자 K씨와 장남 A씨의 상속포기신청은 그 해 9월 13일 수리되었다. 이에 반해 차남 C씨는 상속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J씨는 대구 동구와 경북 영천시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차남 C씨는 이 부동산의 소유권 이전등기를 마쳤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배우자 K씨와 장남 A씨는 “차남이 자신만 상속받기 위해 대한민국 부동산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일본에서 상속포기를 하게 한 다음 이전등기를 했다”며 자신들의 상속분에 해당하는 지분에 대해 C씨를 상대로 소유권이전 말소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다. K씨와 A씨의 청구는 인정될 수 있을까.
위 사례에서 배우자 K씨와 장남 A씨가 일본 법에 따라서 상속포기를 하였는데 그 상속포기가 유효하여 배우자 K씨와 장남 A씨가 상속인이 될 수 없는지, 아니면 대한민국 민법에 따라 3개월 내에 상속포기 신청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J씨 사망 3개월이 지난 후에도 대한민국에서 상속포기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상속인의 지위가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J씨가 일본에서 사망한 후 그 배우자와 장남, 장녀가 상속포기신청을 하였으므로, 상속포기 절차에 대한 관할 법원 및 상속포기에 관해 어느 나라의 법률을 적용할 것인가가 문제된다. 즉 K씨와 A씨가 대한민국에 있는 상속재산에 대하여 대한민국 법원에 별도의 상속포기 신청을 하여야만 하는지가 문제되고, 대한민국 법률에 따라 3개월 내에 상속포기를 하여야 하는지가 쟁점이 된다.
K씨와 A씨는 “도쿄 가정법원에 한 상속포기신청은 국제사법 제17조 제5항이 행위지법의 적용을 배제하고 있는 ‘물권 그 밖에 등기해야 하는 권리를 정하거나 처분하는 법률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J씨가 소유한 대한민국의 부동산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즉 K씨와 A씨의 상속포기는 일본에 있는 재산에 대해서만 효력이 있고, 대한민국에 있는 재산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대구고등법원은 “국제사법상 상속에 관한 준거법은 사망한 J씨의 본국 법인 대한민국 민법이 원칙이지만, 법률행위 방식인 행위지법은 일본의 법에 의한 것도 유효하기 때문에 원고들(K씨와 A씨)이 일본 법원에 신청한 상속포기도 유효하다”고 밝히고 “따라서 원고들은 모두 상속포기 기간 내에 상속포기 신청을 했으므로 상속포기 기간인 3개월이 지난 뒤에 상속포기를 했다는 주장은 이유 없다”고 덧붙였다.
위 사례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일본(타국)에 살다가 사망한 경우 상속인들이 일본 법원(타국 법원)에 상속포기를 신청했다면 우리나라에 있는 부동산 등 재산에도 상속포기의 효력이 미친다는 점을 밝힌 판결이다. 따라서 위 사례의 경우 K씨와 A씨가 일본에서 한 상속포기 신청의 효력은 유효하다. 이에 따라 C씨가 유일한 상속자로서 대구 동구와 영천시에 있는 부동산을 상속받았으므로, K씨와 A씨가 C씨를 상대로 한 소유권이전등기 말소청구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라는 유명한 희곡을 쓴 테네시 윌리엄스는 “돈 없이 젊은 시절을 보낼 수는 있지만 돈 없이 노후를 보낼 수는 없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 대부분은 인생 전반부에 부지런히 돈을 모은다. 돈을 갖고 있는 것은 일종의 재량권을 갖고 있는 것과 같다. 돈에는 힘이 있다. 다름 아닌 물건을 살 수 있는 구매력이다. 돈을 갖고 있는 사람은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 받을 권리를 갖는다. 말하자면 돈은 상대방의 행동을 일으킨다. 돈을 갖고 있는 사람 쪽에 주도권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돈이란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긍정적인 부분이 더 많다. 그러나 아무리 돈이 많아도 죽을 때 가져가지는 못한다. 어떻게든 써야 한다. 어떻게 해야 돈을 잘 쓰는 것일까? 지금까지 사람들은 열심히 번 돈을 고스란히 자식에게 물려주곤 했다. 하지만 그것만이 ‘돈 잘 쓰는 방법’의 전부는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머리가 필요하고 돈을 잘 쓰기 위해서는 가슴이 필요하다고 했다.나이가 든 뒤에야말로 바로 그 가슴이 필요하다.
때는 이때, 집집마다 증여 붐
자산은 남겨도 되고 남기지 않아도 된다. 장·단점이 각각 있어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다만 어느 쪽을 선택하든 자식과 손주에게 자신의 의사를 일찌감치 밝혀 제대로 준비하거나 계획을 세우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왕에 상속한 재산이라면 후손들이 자산을 불려주기를 바라는 게 인지상정. 그러나 자녀 모두가 사업 수완이 뛰어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실제 최근 20년 사이 국내 재계 서열 30위 내 그룹들의 부침은 컸다. 30위 안에 이름을 올렸던 그룹의 절반 이상이 경영 승계 후 법정관리 등으로 순위에서 자취를 감췄다.
최근에는 세법을 비롯해 다양한 규제법이 강화돼 부와 경영권 모두를 온전히 대물림하기는 힘들어졌다. 가업 상속의 측면에서 “소유와 경영 모두를 지배하기는 앞으로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이상건 상무도 “향후 기업의 지배구조는 유럽의 ‘소유와 경영의 분리’ 방식을 따라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KB 2015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부자의 경우 ‘보유 자산을 누구에게 상속 또는 증여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자녀’라고 응답한 비율이 98.4%로 가장 높았다. 이어 배우자 72.7%, 손자녀 15.5%, 형제자매 2.6% 순이었다. 주목할 점은 손자녀의 비중이 지난해 조사의 29.4%에서 크게 하락했다는 사실.
상속 및 증여 방법에 대해서는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본 부자 중 71.4%가 ‘자산 일부는 사전 증여하고 일부는 사후 상속하겠다’고 응답해 대다수가 상속과 증여를 함께 고려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전부 사후 상속하겠다’(20.7%)와 ‘전부 사전 증여하겠다’(6.9%)는 응답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2014년과 비교해서는 ‘전부 사후 상속’의 비율이 8.1%포인트 감소한 반면 ‘자산의 일부 증여, 일부 상속’ 비중은 10.9%포인트 증가하여, 사후가 아닌 자녀가 필요로 하는 시점에 일정 부분의 재산을 나누어주려는 인식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더 현명하게 자식과 손주들에게 돈을 남기는 방법’에 관한 고민 역시 최근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프라이빗뱅커(PB)가 상속·증여와 관련해 상담해주는 ‘노블 아카데미’가 입소문을 타면서 지방에서도 상담 요청이 크게 늘었다. 4대 시중은행에만 상속·증여 관련 상담 문의가 올 들어 5월까지 2000건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국민·우리·신한은행 등은 증여 상담 등을 제공하는 이른바 ‘가문 관리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증여와 상속에 대해 고민하는 자산가들의 공통 질문은 ‘어떤 재산을 언제, 누구에게, 어떻게 물려줘야 할까’다. 정답은 무엇일까?
역삼동에 사는 박영희(가명·63·여) 씨의 지론은 그 문제에 관한 정답의 하나가 될 듯하다. 펀드와 주식과 임대업이 주 수입원으로 50억 원대 자산가인 박씨는 스물세 살 된 외동아들에게 어차피 물려줄 거면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아파트와 건물을 증여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말한다. “증여세를 줄이는 기본 원칙은 ‘현재 평가액이 가장 낮은 재산’이나 ‘향후 가치 상승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재산’부터 증여하는 것”이라며 “현금 증여보다 부동산을 직접 증여하는 것이 절세 효과가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살아생전에 돈을 쓴다
“돈 아니면 물려줄 게 없다는 생각에 답답하다.”
“65세까지는 모으고 그 후에는 다 쓸 생각이다.”
“내일이 아닌 ‘지금’을 위해 쓰고 싶다.”
“자산의 50%는 자녀를 위해 남겨두고 싶다.”
“남은 인생 좀 즐기겠다는데 자식 눈치 볼 필요 있나?”
“기부하고 싶다. 마지막을 아름답게 정리하고 싶다. 사회 환원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자식 결혼할 때 집 문제까지는 해결해주고 싶다.”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겠다. 해외 봉사 활동을 가장 하고 싶다.”
“필요한 곳에 쓰도록 살아 있을 때 물려주고 싶다.”
돈을 남기느냐, 다 쓸 것이냐 하는 질문에 자산가들은 다양한 의견들을 내놓는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예전에 비해 ‘살아생전에 모은 돈을 다 쓰겠다’는 생각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쓰죽회’라는 모임이 있다. 70대 이상 부자 어르신들이 ‘재산을 자식이 아닌 자신을 위하여 다 쓰고 죽자!’라는 취지로 만들었다. 그 모임이 최근에 해체했다고 한다. 지갑을 여는 사람만 여는 모임의 관행 때문에 서로 불편해지자 하나 둘 모임에서 빠지기 시작해 결국 해체까지 이른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모임이 만들어졌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유형적 재산뿐 아니라 삶에서 터득한 경험과 지혜라는 무형적 재산까지 남김없이 쓰고 인생을 마무리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아닌 게 아니라 요즘 부모들은 자신만의 여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다. 취미나 문화 활동 등으로 행복한 삶을 추구하며 노후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노후를 자식에게 기대는 이전 세대들과는 다르다.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줄 생각도 상대적으로 적다. 자산가들도 장수위험(Longevity Risk)이나 연금 고갈 등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지갑을 잘 열지 않는 추세다.
3대째 서울 영등포 로터리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장수원(69·가명) 원장은 그런 현상을 대변하는 좋은 예. 장 원장은 “자식들이 재산 상속을 바라지 않고 가진 돈으로 즐겁게 살라고 한다”며 “쓰다가 남으면 아들 형제에게 상속하겠다”고 말한다. 더불어 “금쪽같은 손주 네 명에게 적금이나 보험을 들어주고 있다”고 자식보다 손주 사랑에 더 각별하다.
유산기부자 늘어… 상속보다 기부를 선택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대신 기부를 선택하는 자산가도 없지 않다. 모 건설업체의 A 대표는 얼마 전 두 명의 자식에게 “재산의 20%만 상속하겠다”고 천명했다. 스스로 돈 버는 재미를 느끼고 성공을 체험하는 데 일정 금액 이상의 유산은 오히려 악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려준 재산이 오히려 자식을 망칠 수 있음을 경계한 것이다.
나눔국민운동본부 정경희 사무국장은 “2011년부터 시스템이 갖추지 않은 상태에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을 시작해 지금은 회원이 1000여 명 이상”이라며 “재산의 3분의 1만 가족에게 남기고 나머지는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혔다.
“2013년부터 시작한 ‘참행복나눔운동’이라는 사단법인에는 유산기부 서약식을 쓰거나 이미 기부하신 분들만이 커뮤니티가 이뤄지고 있어 유산기부자의 사회적 현상으로 봅니다. 자식을 결혼시키고 보니까 돈은 탐내면서도 부모에게 효도를 하지 않거든요. 연금제도가 생기면서 재산을 좀 더 가치 있게 쓰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유산기부자가 늘게 된 요인인 듯 합니다. 전직 장관 출신, 종교인, 교수, 고위 공직자, 과학기술 분야에 계신 박사들도 있고 대기업 회장을 지낸 분들이 있습니다.”
기부는 돈이 많아서 하는 것도 아니고 또 금액의 많고 적음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유산기부의 모범적 행동이 기부문화와 사회발전에 바람직한 변화를 일으키는 사회적 유산이 되고 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왈리드 빈 탈랄 왕자가 전 재산 약 36조 원을 기부하겠다고 발표해 지구촌의 화제가 되고 있다. 알 왈리드 왕자는 세계 34위의 부자로 30여 년 전부터 자선사업을 해왔으며 이미 3조9000억 원을 기부했다.
기부에 관하여는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를 빼놓을 수 없다. 사회적 비난을 무릅쓰고 세계적 갑부가 된 그는 55세 때 불치병으로 1년의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투병 중에 록펠러는 선행의 길로 들어서며 기적적으로 건강을 되찾아, 장학사업과 자선사업에 정열을 쏟으면서 98세까지 장수했다. 그는 “인생 전반기 55년은 쫓기며 살았지만, 후반 43년은 참된 행복과 기쁨 속에서 살았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록펠러 이후에도 카네기, 헨리 포드, 워런 버핏 등의 거액 기부자가 이어지면서 자선과 기부는 미국 사회의 전통이 되고 있다. 카네기는 베푸는 삶의 기쁨을 알고부터는 “부자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면서 재산 대부분을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빌 게이츠 역시 재단을 만들어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어떤 부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구경거리를 남겨주는 데 자신의 돈을 활용하기도 한다. 뉴욕의 프릭 컬렉션(Frick Collection)은 개인의 재산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좋은 예다. 프릭 컬렉션은 실업가 헨리 클레이 프릭의 수집품을 소장하고 있는 곳으로, 맨해튼 주택가 속의 저택이 그대로 미술관이 돼 있다.
유태인들은 ‘쓸 수 있는 돈을 가진 것은 좋다. 바르게 쓰는 법까지 알고 있으면 더욱 좋다’는 진리를 속담을 통해 남기고 있다. 어떻게 써야 바르게 쓰는 것일까?
인생의 끝자락이 아름다운 사람이 최후의 승자다. 일출보다 일몰이 더 멋있게 인생을 마감하는 것이 아름다운 삶이다. 최후의 승자가 되려면, 일몰이 더 멋있어지려면, 자신의 자산을 어떻게 써야 할까에 관한 고민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잘 쓰며, 잘 늙어가는 것은 잘 죽기 위한 작은 힌트가 아닐는지 열대야 잠 못이루는 한 여름 밤 문득 깨닫게 된다.
*돈을 남긴 사람들
마이클 잭슨 2221억 6080만 원
로빈 윌리엄스 55억 5000만 원
파블로 피카소 6조 8499억 5800만 원
야나세 다카시(柳?嵩) 3702억 6800만 원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 2조 2696억 650만 원
*돈을 남기지 않은 사람들
앤드루 카네기가 도서관 건립에 쓴 금액 3872억 2266만 원
알프레드 노벨이 스웨덴과학아카데미에 기부해 노벨상을
제정하게 한 금액 46억 3185만 원
성룡이 자선기관에 기부한 금액 3566억 5245만 원.
사후에 아들에게 재산을 남기지 않고 모든 걸 기부하겠다고 선언.
A씨는 2010년 8월 6일 사망하였다. 유족으로는 배우자인 B씨와 자녀 C씨와 D씨가 있었는데, C씨와 D씨는 2010년 9월 27일 법원에 상속포기 신고를 하여 그 해 11월 19일 신고가 수리되었다. C씨에게는 E씨와 F씨 등 남매가 있다. A씨에 대한 채권을 가지고 있는 G씨는 E씨와 F씨에게 “A씨의 채무를 상속했으니 그 채무를 변제하라”고 요구하였다. E씨와 F씨는 G씨의 요구에 응해야 할까?
위 사례에서 A씨의 자녀인 C씨와 D씨는 상속을 포기하였으므로, 배우자인 B씨가 상속인인 것은 분명하다. C씨의 자녀인 E씨와 F씨가 상속인이 되는지 여부가 쟁점이다. 즉 배우자인 B씨가 단독으로 상속인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E씨와 F씨가 B씨와 공동상속인이 되는지 여부가 초점이다. 만일 E씨와 F씨가 공동상속인이 된다면 E씨와 F씨가 어떻게 G씨의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지가 문제된다.
우리 민법 제1019조 제1항은 ‘상속인은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로부터 3월 내에 상속포기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의 의미에 대하여 대법원은 ‘상속개시의 원인이 되는 사실의 발생을 알고 이로써 자기가 상속인이 되었음을 안 날을 의미한다’고 판시하였다. 즉 피상속인의 사망 사실을 알고, 피상속인의 사망으로 인해 자신이 상속인이 된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는 경우를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이라고 보는 것이다.
대법원은 위의 같은 사례에서 E씨와 F씨가 B씨와 공동상속인이 된다고 하면서도 일반인의 입장에서 피상속인의 자녀가 상속을 포기하는 경우 그들의 자녀인 피상속인의 손자녀가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공동상속인이 된다는 사실까지 안다는 것은 오히려 이례에 속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E씨와 F씨가 상속포기를 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나지 아니하였으므로 상속포기를 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결하였다. 즉 E씨와 F씨가 B씨와 공동상속인이 된다는 점은 인정하되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E씨와 F씨가 상속포기 신고를 통해 채무를 면제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대법원의 판결이 반복된다면 향후 피상속인의 손자녀가 상속포기를 하지 않는 경우에 상속포기의 기회가 남아 있다고 인정될 경우가 줄어들게 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반복된 판례를 통해 일반인들도 상속포기에 대한 지식이 높아질 것이고, 일반적인 상식에 이르게 된다면 대법원으로서는 상속포기 신고를 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보호할 필요성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향후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피상속인의 손자녀가 상속포기를 하지 않는 경우 이외에는 그 구제가 매우 어렵게 될 것이다.
위와 같은 대법원의 판례에 비추어 향후 어떠한 방식으로 상속포기를 할 것인가. 적어도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모든 직계비속, 그리고 상속인 자격이 있는 사람은 모두 상속포기 신고를 해야 할 것이다. 과거 피상속인의 배우자가 한정승인을 하고 자녀들은 상속포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위 판례에 비추어 보면 피상속인의 손자녀는 피상속인의 채권자로부터 상속채무 변제의 요구를 받게 된다. 예상치 못한 법적 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는 상속포기신고 절차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들도 딸도 있는 A씨가 사망했다. 자녀들 중에서는 둘째 딸 B씨가 가장 자주 A씨를 찾았다. 지방 살림을 정리하고 서울로 와 아버지를 부양하면서 살기도 했다. B씨는 다른 형제들보다 더 많은 상속분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형제자매 중 유일하게 생활비와 병원비를 보탠 자식이나 아버지를 모시고 생활하며 제사를 모신 자식, 주말과 휴일에 찾아와 돌본 자식, 부모의 치료비와 약값을 부담한 자식은 그러하지 않은 다른 자식보다 더 많은 상속분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위의 예와 같은 경우, 즉 공동상속인 중에서 상당한 기간 동거, 간호, 그 밖의 방법으로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하거나 피상속인 재산의 유지 또는 증가에 특별히 기여한 자에게 다른 상속인보다 더 많은 재산을 나누어 주는 것을 기여분(寄與分)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부모의 생활이나 투병, 재산 형성에 기여한 자식은 다른 상속인보다 상속분이 더 인정돼야 한다. 그런데도 법원은 얼마 전까지도 기여분을 잘 인정하지 않았다.
2013년 이래 기여분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고 있다. 위에서 본 B씨의 경우 상당한 기여분을 인정받아 A씨의 대부분의 재산을 상속받았고, 그 외 사례에서도 기여분이 인정되고 있다. 기여분 인정에 대한 변화는 부모 봉양이나 부양이 당연한 의무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조금은 안타까운 부분도 있다.
그러면 기여분은 어떻게 산정될까? 기여분의 금액이나 비율이 특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여의 시기, 방법, 정도와 상속재산의 액 기타의 사정을 참작한다. 기여분이 인정되는 경우 상속재산은 기여분을 제외한 재산이된다. 상속인이 피상속인의 자녀로 C씨, D씨 2명이며 상속 개시 당시 상속재산이 1억 5000만원, C씨의 기여분이 3000만원이라면 기여분을 공제한 1억 2000만원이 상속재산이 된다. 따라서 위 상속재산 1억 2000만원을 2분의 1하여 각각 6000만 원을 상속받게 되어 C씨는 기여분과 상속재산을 합한 9000만원, D씨는 6000만원을 상속받게 된다.
상속인으로서 기여분을 많이 받는 경우 다른 상속인의 유류분을 침해하지 않는지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상속인이 모두 피상속인의 자녀로 E, F, G 3명이고, 상속재산 가액이 1억 5000만원인데 E에게 1억 2000만원의 기여분이 인정된 경우 F, G 각각의 유류분(법정상속분 2분의 1에 해당하는 2500만원)을 침해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기여분은 유류분과 관계가 없는 것으로, 기여분의 가액이 상속재산의 상당한 금액에 해당되더라도 유류분을 침해하지 않는다. 단지 기여분의 가액을 결정할 때 유류분 역시 고려의 대상이 될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기여분은 향후 부모를 부양하는 자녀들의 지위를 인정해 주는 제도로 정착될 개연성이 농후하다. 과거에는 부모에 대한 봉양이나 부양을 당연한 의무로 인식하였으나 현대 사회에서는 그러한 의무를 이행하는 것을 강제하거나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도록 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부모 부양의 의무를 이행하는 자녀를 다른 자녀들과 동일하게 대우하는 것이 법적으로 타당하다고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인 만큼 법원이 부양 의무를 이행하는 상속인에게 상당한 기여분을 인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례1> A씨는 생명보험 계약을 하면서 보험계약자는 A씨, 피보험자는 A씨로 하고 보험금 수익자는 배우자인 B씨로 하였다. 그 뒤 A씨가 사망한 후 배우자 B씨가 보험금을 받았다. 이에 대해 A씨의 채권자들이 보험금은 상속재산이므로 자신들에게 채권을 변제하라고 요구하면 B씨는 거부할 수 있을까 없을까?
생명보험이나 상해보험에 가입하는 경우 보험금의 수익자를 배우자나 자녀들로 정하는 경우가 많다. 보험가입자가 사망하면 보험계약에 따라 보험금 지급청구권을 갖게 되는데, 그 보험금 지급청구권이 상속재산에 포함이 되는지 궁금해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상속재산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따라 상속인들 간의 상속재산 분배의 효과가 다르고 제3자, 특히 피상속인의 채권자에 대한 대항 여부가 문제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갑’이 자신을 피보험자로 하여 생명보험에 가입하면서 배우자인 ‘을’을 수익자로 지정하였다면 ‘을’은 ‘갑’이 사망하는 경우 보험금 전액을 받은 후 나머지 재산도 법정상속분에 따라 받을 수 있다. 보험금이 상속재산이 아니라 을의 고유한 재산이라면 갑의 채권자는 상속을 이유로 B씨에게 채권 변제를 요구할 수 없게 된다.
또한 ‘갑’이 사망해 ‘을’이 보험금을 수령하였는데 ‘갑’에 대하여 채권을 갖고 있는 채권자가 ‘을’에게 상속을 원인으로 보험금에 대해 권리를 주장하더라도 ‘을’은 고유재산임을 이유로 위 채권자의 청구를 거부할 수 있다. 그러니까 위의 사례에서 B는 보험금이 고유재산임을 근거로 A의 채권자들의 채권변제 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
사례2> A씨가 남편 B씨를 피보험자로 하고, A씨 자신을 보험수익자로 하여 생명보험을 체결하였다. 보험계약자이면서 보험수익자인 A씨와 B씨가 동시에 사망한 경우 보험금 수익자는 누구일까?
우리 상법 제733조 제1항에서는 보험계약자가 보험수익자를 지정 또는 변경할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만일 보험계약자가 보험수익자를 지정하지 아니하고 사망하는 경우에는 피보험자를 보험수익자로 하고, 보험수익자를 변경하지 않고 사망한 경우에는 보험수익자의 권리가 확정되는 것이 원칙이다(제2항). 보험수익자가 보험 존속 중 사망한 때에는 보험계약자는 다시 보험수익자를 지정할 수 있으나 지정권을 행사하여 다른 사람을 보험수익자로 지정하지 아니하면 보험수익자의 상속인을 보험수익자로 한다(제3항). 보험계약자가 지정권을 행사하기 전에 보험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는 피보험자 또는 보험수익자의 상속인을 보험수익자로 한다(제4항).
그런데 보험계약자이자 보험수익자와 피보험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대법원은 상법 제733조 제3항 후단에 준하여 보험수익자의 상속인이 보험수익자가 되고 이는 보험수익자와 피보험자가 동시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에도 같다고 본다. 보험수익자의 상속인이 피보험자 사망이라는 보험사고가 발생한 때에 보험수익자의 지위에서 보험자에 대하여 가지는 보험금 지급청구권은 상속재산이 아니라 상속인의 고유한 재산이라고 본다.
단 대법원은 보험금 지급청구권을 상속재산이 아니라 상속인의 고유한 재산이라고 하면서도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8조 제1항의 ‘피상속인의 사망으로 인하여 받는 생명보험 또는 손해보험의 보험금으로서 피상속인이 보험계약자인 보험계약에 의하여 받는 것은 상속재산으로 본다’는 규정을 헌법이나 실질적 조세법률주의에 위반된다고 보지는 않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살다가 사망에 이르게 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이 있는데 법률적으로 사람의 사망은 상속의 문제를 남긴다.
우리 민법 제1005조에서 ‘상속인은 상속 개시된 때부터 피상속인의 재산에 관한 포괄적 권리의무를 승계한다’고 규정하여 상속이 재산상의 지위를 승계하는 것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사람의 사망으로 상속이 개시되며 사망한 사람을 피상속인이라고 한다. 사람만이 피상속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피상속인의 사망 시에 피상속인의 재산을 승계하는 사람을 상속인이라 한다. 상속인이 되기 위해서는 피상속인의 사망 시에 생존해야 하거나 태아로 존재하고 있어야 하므로 피상속인보다 먼저 사망한 사람은 상속인이 되지 못한다. 상속이 개시된 때라 함은 사람이 사망한 때를 말하며, 상속의 대상이 되는 상속재산은 피상속인이 사망 당시에 가지고 있던 적극재산 및 소극재산(예를 들어 채무)이 포함된다.
우리 민법은 상속을 받을 수 있는 사람, 즉 상속인을 한정하고 있다. 즉 민법 제1000조 제1항에서는 1.피상속인의 직계비속(자녀·손자·손녀 등), 2.직계존속(부모, 조부모 등), 3.피상속인의 형제자매, 4.피상속인의 4촌 이내 방계혈족(삼촌, 고모, 외삼촌, 이모, 고종사촌, 이종사촌)으로, 제1003조에서 배우자를 그 상속인으로 하고 있다. 자녀의 경우 혼인 중의 자와 혼인 외의 자가 있을 수 있는데 이 경우 동등하게 상속분이 인정된다. 배우자는 혼인신고를 한 법률상의 배우자를 말하며 사실혼 배우자의 경우 상속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배우자는 그 직계비속과 동순위(1순위)로 공동상속인이 되고, 직계비속이 없는 경우 피상속인의 직계존속과 공동상속인이 되며, 피상속인의 직계비속도, 직계존속도 없는 경우에는 단독상속인이 된다.
배우자의 경우에는 다른 상속인과 달리 혼인의 무효, 취소로 인하여 여러 상황이 발생한다. 법률상의 배우자라 하더라도 사망한 배우자와 혼인이 무효로 되는 경우에는 상속권을 잃게 되지만, 부부 일방의 사망 후에 혼인이 취소된 경우에는 혼인취소의 효력이 소급하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상속권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이다(대판 1996. 12. 23. 95다48308). 부부 일방이 이혼소송을 제기한 후 소송계속 중에 사망한 경우에는 소송은 종료되어 다른 일방의 배우자는 상속권을 갖는다. 사실상 이혼 중에 당사자 일방이 사망한 경우에도 판례는 다른 일방이 배우자로서 상속권이 있다고 본다(대판 1969. 7. 8. 69다427).
중혼의 경우, 예를 들어 ‘갑’이 ‘을’과 협의이혼한 후 ‘병’과 재혼하였는데, 나중에 ‘갑’과 ‘을’ 사이에 (협의)이혼 취소판결이 이루어져 ‘갑’과 ‘병’ 사이의 혼인이 중혼이 된 상태에서 ‘갑’이 사망한 경우 ‘을’과 ‘병’이 모두 배우자로서 상속권을 갖는 것으로 본다. ‘갑’과 ‘병’의 혼인이 취소되어도 소급효가 없으므로 ‘병’ 역시 배우자로서 상속권이 있다고 보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
상속인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한정되며, 상속인이 없는 상태에서 특별연고자는 가정법원에 상속재산의 전부 또는 일부의 분여를 청구할 수 있다(민법 제1057조의 2). 특별연고자의 분여청구가 없거나 분여하고 남은 재산이 있을 때에는 그 재산은 국가에 귀속하게 된다(민법 제1058조).
양승동(梁勝童)
연세대 법대, 대학원졸. 사법연수원 32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 역임. 현재 법무법인 지암 변호사, 양천사랑복지재단 고문변호사 겸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