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별 약속이 없어 집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약속이 많을 때는 일 주일 내내 외출할 때도 있어 그럴 때는 몸이 피곤하니 불만이었는데 이렇게 너무나 여유시간이 많으니 이상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편하기도 하다.
소파에 앉았다가 팔걸이를 베개 삼아 길게 눕기도 하면서 하루 종일 보고 싶은 드라마를 찾아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한가로워도 되는 걸까? 하는 조바심이 난다.
필자 자신이 너무 나태한 것 같아 걱정되기까지 했다.
친구와의 약속이나 여행갈 일이 있어 이른 시간 집을 나서본 적이 있다.
새벽 버스 안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타고 있어 놀랐다.
다른 때 같으면 필자는 아직 꿈속에 빠져있을 시간이지만 그 시간에 부지런한 많은 사람이 일터로 나가는 모습은 필자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만들기도 했다.
너무 한가하게 있다 보니 예전에 보았던 명화 ‘빠삐용’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영화 ‘빠삐용’은 불어로 나비라는 뜻이다.
이 영화는 픽션이 아닌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로 살아남은 저자가 쓴 책을 기초로 만들어졌으며 행복이 무엇이고 인생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해주었던 정말로 재미있는 영화였다.
가슴에 나비문신을 한 주인공이 아내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된다.
‘앙리’(스티브 맥퀸)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만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다.
악명 높은 감옥에서 가혹한 강제노역을 하다가 누명을 벗기 위해 탈옥을 감행한다.
그러나 탈옥에 실패하여 더 무서운 죠셉 섬의 독방에 2년간 갇히게 된다.
너무나 무서운 지옥의 감옥 독방에서 그는 지네와 바퀴벌레로 연명하며 겨우 살아남아 다시 감옥으로 돌아온다.
그곳에는 채권 위조범으로 잡혀 온 ‘더스틴 호프만‘ 이 있다.
그는 엄청난 재력가이지만 아내가 그를 배반하고 변호사와 공모해 영원히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게 되는 비운의 주인공이다.
무서운 감옥에서 주인공 ‘스티브 맥퀸’은 ‘더스틴 호프만’을 도와주며 우정을 쌓는다.
그 후에도 계속 탈옥을 시도한 대가로 5년간 독방에 갇히는 등 고난을 겪는데 결국에는 상어와 험한 파도로 둘러싸여 절대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악마도’에 이송된다.
이곳은 죄수들이 그 섬 안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살 수 있다. ‘드가’(더스틴 호프만)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염소도 기르고 밭을 가꾸며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려 한다.
그러나 ‘앙리’(스티브 맥퀸)는 여전히 자유를 꿈꾸며 탈출 방법을 찾고 있다.
당국에서도 탈출이 불가능한 이 외딴 섬에 대해서는 감시를 하지 않는다. 그만큼 그 섬을 벗어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이미 머리는 백발이 되고 이도 다 빠져버렸지만 ‘앙리’는 절벽에 서서 야자 열매 포대를 떨어뜨리며 해류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 섬을 빠져나갈 수 있는 해류가 되는 때를 알아낸 그는 ‘드가’에게 같이 탈출하자고 하지만 이미 너무나 많은 고난을 겪은 그는 그냥 여생을 이곳에서 지내겠다고 탈출을 포기한다.
굳은 포옹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앙리’는 해류가 나가는 때를 맞춰 야자 열매 포대와 함께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드디어 그렇게 열망하던 탈옥에 성공하여 자유를 찾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대충 내용은 이렇지만 그림같이 아름다운 배경과 인간들의 음모와 배신이 얽힌 너무나도 멋진 대작이다.
주인공의 꿈속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명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주인공이 서 있는 위쪽 언덕에 배심원 여러 명이 앉아 그를 심판하고 있다.
‘앙리’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러나 배심원들은 그를 가리키며 “너의 죄는 살인이 아니라 인생을 낭비한 죄, 시간을 낭비한 죄다”라고 판결을 내린다.
이 장면은 두고두고 필자 마음속에 아프게 가라앉아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을 낭비한 죄, 라는 말을 생각하니 가슴이 뜨끔해진다.
오늘 이 시간 필자가 이렇게 빈둥거리고 있는 것도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두려운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시간을 낭비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좀 더 자신의 내면을 가꾸고 좋은 일을 할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깊이 해 본다.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 선진국, 스웨덴! 그들의 삶에 뭔가 특별한 것은 없을까? 바로 ‘독립’이다. 어린아이, 청년, 노인 할 것 없이 모두 독립적 삶을 추구한다. 스웨덴 고등학생의 대학진학률은 50%가 채 안 된다. 많은 청소년이 드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배낭여행을 떠난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는 노인들도 자녀에게 기대지 않는다. 고독이 삶을 힘들게 해도 죽을 때까지 스스로 살아간다. 자식을 위해 평생 고생하거나 연로한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없는 살림을 쪼갤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가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 나 몰라라 하는 비정한 사회일까? 그런 사회의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행복할까? 영국 신경제재단(NEF)에서는 매년 세계 140개국을 대상으로 행복지수를 조사해 발표한다. 2016년 스웨덴의 행복지수는 7.6으로 4위, 대한민국의 행복지수는 6.0으로 40위다. 그 비결은 뭘까? 역시 스웨덴인의 독립적 삶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독립은 서로 간섭을 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간섭을 하지 않으니 갈등의 요소가 사라진다. 그러니 행복할 수밖에.
대한민국 액티브 시니어들이 간절히 원하는 삶도 바로 스웨덴식 독립 인생 아닐까! 자녀 부양하느라 나이 들어서까지 허리 휘지 않아도 되고, 자녀 도움 없이도 살아가는 데 걱정이 없는 노후! 스웨덴 사람들이 이런 노후를 살아갈 수 있는 데에는 연금을 필두로 한 사회보장제도가 잘되어 있기 때문이다.
액티브 시니어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기반이 탄탄해야 함을 뜻한다. 사회보장제도가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독립적이고 활기찬 노후를 보내기 위해서는 자조노력 연금을 중심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는 연금생활플랜(Pension Life Plan, PLP)을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
액티브 시니어란?
액티브 시니어로서의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뜻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시니어는 연장자를 의미하니 결국 관건은 액티브에 달렸다. 단어의 구체적 의미가 애매모호하거나 헷갈릴 때는 어원을 살펴보면 된다. 온라인 어원사전(Online Etymology Dictionary)에 따르면 액티브의 어원은 라틴어 액티부스(activus)다. 액티부스는 액투스(actus)의 형용사형이니 액투스의 의미를 살펴보면 액티브의 용례를 알 수 있다. 액투스는 행위(a doing), 운전(a driving), 자극(impulse), 활기참(a setting in motion), 역할(a part in a play)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고대에 요즘 같은 자동차는 없었을 테니 운전이 의미하는 바는 말을 타거나 마차를 모는 행위를 뜻할 것이다. 자극은 감각이나 마음에 반응이 일어나도록 어떤 작용을 가하는 것을, 역할은 연극에서 어떤 배역을 담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원으로부터 알 수 있는 액티브 시니어의 뜻은 우선 행위, 즉 적극적인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소파에 기대거나 누워 TV를 친구삼아 시간을 축내는 정적인 삶이 아니라 적극적인 야외활동은 물론 타인과의 교류를 즐기는 동적 삶이어야 한다. 나이 들어 말을 타거나 마차를 몰려면 상당한 체력을 요한다. 육체적 건강은 액티브 시니어의 필수조건이다. 육체적으로 건강해야 동적 삶을 추구할 수 있고, 나아가 병원비 등 의료비를 대폭 아낄 수 있다. 자극은 정신적 건강함이 필요함을 뜻한다. 육체적으로 건강하더라도 정신적으로 쇠약하면 마력이 뛰어난 고급 승용차를 주차장에 파킹해놓고 자랑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육체와 정신이 모두 건강할 때 활기찬 삶이 따라올 뿐 아니라, 자연스레 사회적 역할도 주어지기 마련이다. 무대 위의 주연배우는 아닐지라도 극의 재미를 더하는 감초역할 정도는 맡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액티브 시니어란 육체적·정신적 건강함을 기반으로 일정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연장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동안 고생한 인생에 보답하는 데 초점을 맞춘 나 혼자 즐기는 삶은 그것이 아무리 동적이고 활기찬 삶이라 할지라도 액티브 시니어로서의 삶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필자는 이를 소극적 액티브 시니어라 부르고자 한다. 그동안 쌓아온 경험자산을 사장시키지 않고 살려가며 어떤 형태로든 사회와 교감을 나누며 의미를 찾는 삶이야말로 전형적인 액티브 시니어의 삶이다. 필자는 이를 적극적 액티브 시니어라 부르고 싶다. 그냥 즐기는 삶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즐기는 사람이 진정한 액티브 시니어다.
세 명의 벽돌공이 일을 하고 있다. 길을 지나가던 나그네가 잠시 쉬면서 물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가까이 있던 벽돌공이 말한다. “네, 벽돌을 쌓고 있습니다.” 옆에 있던 다른 벽돌공은 이렇게 말한다. “네, 저는 벽돌로 집을 짓고 있습니다.” 멀찍이서 일을 하던 벽돌공이 땀을 훔치며 말한다. “저는 지금 하느님의 성전을 짓고 있습니다.” 동일한 작업을 하고 있는 세 사람의 답이 이렇게 다르다. 나그네가 세 사람의 말을 음미하며 속으로 읊조린다. ‘음, 벽돌을 쌓고 있는 벽돌공은 지금 생업에 종사하고 있음이며, 집을 짓고 있는 벽돌공은 직업에 종사하고 있음이며, 하느님의 성전을 짓고 있는 벽돌공은 천직에 종사하고 있음이로구나!’ 그렇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그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굉장히 다른 가치를 낳는다. 같은 시니어라도 여전히 생업에 매달려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천직을 찾아 의미 있는 인생을 보내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미 생업에서 물러나 액티브 시니어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시니어라면 천직에 한번 도전해볼 만하지 않을까.
경제적 기반부터 챙기자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넉넉해야 영욕을 안다.” 중국 춘추시대에 환공을 도와 제나라를 패권국으로 만든 관중의 말이다. 한마디로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어야 예절을 차리고 영광스러움과 욕됨을 안다는 뜻이다. “내 코가 석자”라는 우리 속담과 비슷한 의미다.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이 받쳐주지 않으면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액티브 시니어의 삶은 요원하지 않을까. 테레사 수녀 같은 삶을 일반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일반 서민에게 ‘등 따시고 배부른 삶’은 액티브 시니어의 전제조건이나 다름없다.
액티브 시니어가 은퇴 후 천직을 찾아 의미 있는 삶을 즐기기 위해서는 호구지책에 연연하지 않는 경제적 기반이 필요하다. 스웨덴의 시니어들이 독립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은 든든한 사회보장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제도는 스웨덴처럼 든든하지 못하다. 게다가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엔 어느 정도 돈을 모았다 하더라도 과거처럼 이자로 생활하는 금리생활자(rentier)가 될 수 없다. 사회보장과 사적 보장을 상황에 맞게 조합한 연금생활자(pensioner)로 호구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금리생활자의 해는 저물고, 연금생활자의 태양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은퇴 후 액티브 시니어의 삶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요소는 수입 상실, 예상치 못한 지출, 질병 리스크 등이다([그림1] 참조). 은퇴 후에도 일상생활을 영위하게 해주는 수입은 필수다. 예상치 못한 갑작스런 지출에도 효과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생활은 일그러지고 액티브 시니어의 삶은 망가지기 시작한다. 질병은 말할 필요가 없다. 질병 그 자체도 문제이지만 질병에 따른 지출도 경계해야 한다. 질병은 우리 몸만 갉아먹는 게 아니라 생활비도 갉아먹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이런 위협 요인까지 이겨낼 수 있도록 경제적 기반을 단단하게 마련해야 한다. 필자는 은퇴 후 맞닥뜨리게 되는 경제적 문제를 연금 중심으로 대처하고 액티브 시니어의 삶을 꾸준히 이어가게 해주는 체계적 계획을 연금생활플랜, 이 계획을 실천할 수 있도록 잘 짜는 것을 ‘PLP(Pension Life Plan) 디자인’이라 부르고자 한다.
‘연금생활플랜’ 어떻게 디자인할까?
‘연금생활플랜’ 디자인의 핵심은 [표1]과 같은 현금흐름표를 만드는 것이다. 먼저 본인과 배우자, 자녀의 나이를 입력하고, 각 연도의 지출항목을 입력한다. 지출은 기본생활비·주거비·교육비·보험료·기타 지출·일시적 지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본생활비는 각자가 생각하는 적정 생활비를, 교육비는 자녀 및 본인과 배우자의 교육비를, 보험료는 건강보험료 및 민영보험료 등을, 일시적 지출은 자녀 결혼비용 등을, 기타 지출은 경조사 비용 등을 입력하면 된다. 자녀가 독립했는데 무슨 교육비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액티브 시니어 정의에서 강조한 바 있는 정신적 성장과 삶의 자극을 위해서는 평생교육이 필요하다. 평생교육을 받다 사귀는 새로운 친구는 삶의 소중한 보너스다. 그리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경험자산을 리뉴얼해야 한다. 은퇴 후 평생교육에 들어가는 돈은 비용이라기보다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지출항목을 입력했으면 이제 수입을 계산해 입력할 차례다. 이 부분은 좀 복잡하다. 우선 각자가 가입해 있는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으로부터 얼마의 수입이 발생할지 계산해야 한다. 이는 금융감독원의 ‘연금포털’을 이용하면 의외로 쉽게 해결된다. 여기에다 기초연금을 더하면 기본적인 연금소득은 파악할 수 있다. 이것만으로 지출을 감당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많은 사람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 공사 연금소득만으로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는 경우에는 다른 방법을 고민해봐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추가적인 근로소득을 만들어내는 것과 주택을 활용해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액티브 시니어들은 이 정도만 하면 생활비는 충분히 조달할 수 있지 않을까. 기타 수입에는 만기된 적금액이나 곗돈, 경조사 수입 등을 기록하면 된다.
연금 외의 금융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액티브 시니어라면 이 금융자산을 활용해 현금흐름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일시납즉시연금이나 월지급식펀드, 월지급식예금 등 연금성 상품을 활용하면 일시금에서 매월 현금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런 상품은 구조가 복잡하므로 전문가에게 자문해서 도움을 받는게 좋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세제상 불이익을 받거나 경제적으로 원하지 않는 손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세목별 내용은 [표2]의 수입상황표에 기록하면 된다.
현금흐름을 만들 때는 두 가지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사망할 때까지 일정한 현금흐름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질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각자 라이프스타일이 다르고 추구하는 삶의 행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은퇴생활 초기에 보다 적극적인 삶을 추구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균일한 삶을 원할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은퇴 후 삶의 비전을 생각하면서 생애 현금흐름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말이다.
다른 하나는 본인 사망 후 배우자의 여생까지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우스갯소리로 배우자에 대한 마지막 복수로 본인의 사망과 동시에 현금흐름을 단절시키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다는 말이 있다. 역으로 말하면 이는 배우자의 여생에도 현금흐름이 쭉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반증이다.
>>손성동(孫盛東)
한국연금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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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 역임. 현재는 ‘한국연금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1인기업가를 꿈꾸고 있다. 공식블로그 ‘꿈꾸는 은퇴와 연금’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부산 동아대와 동서대에 출강하고 있다.
한때 “칼질하러 가자”고 하면 그날은 ‘경양식집에 가서 돈가스 먹는 날’이었다. 요즘은 도시락 반찬이나 분식 정도로 생각하는 음식이 돼버렸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좋은 날 귀하게 먹던 고급 외식 메뉴였다. 멋스럽게 차려입고 나가 돈가스를 썰며 기분을 내던 그 시절의 추억을 재현한 맛집 ‘모단걸응접실’을 찾아갔다.
‘모단걸응접실’은 그 이름에서부터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조선 후기 ‘모단걸’이라 불렸던 신여성들이 서양문물을 즐기던 고급 살롱을 모티브로 했다. 가게 입구에는 ‘우린 내일 큰일을 할 거잖아요. 오늘 꼭 만나요. 그때 먹었던 음식과 술을 준비할게요. 기다릴게요’라는 문구가 보인다. 비장함마저 느껴지는 이 메시지를 읽고, 지하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비밀스러운 아지트로 향하는 듯한 오묘한 기분마저 든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강렬한 청록색 벽과 체스 무늬 바닥, 고풍스러운 샹들리에, 그리고 앤티크한 소파와 테이블이 앙상블을 이룬다. 예스럽지만 세련된 경양식집 특유의 매력이 잘 드러나는 공간이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더불어 테이블마다 놓인 와인 잔과 포크·나이프·스푼이 돈가스의 품위를 더한다. 왕돈가스를 비롯해 함박스테이크나 비후가스 등 메인 메뉴를 주문하면 식전 빵과 수프가 나온다. “빵으로 드릴까요? 밥으로 드릴까요?”라는 정겨운 멘트는 들을 수 없지만, 빵과 밥 모두 즐길 수 있다(밥은 메인 메뉴와 함께 제공). 후춧가루를 톡톡 뿌려 나온 따뜻한 수프에 빵을 곁들여 먹어도 좋지만, 이곳에서는 더 특별하게 즐길 수 있다. 채 썬 양배추에 마요네즈와 케첩을 버무려 만든 옛날식 샐러드, 일명 사라다가 함께 나오기 때문이다. 모닝빵을 반으로 갈라 사라다로 속을 채우면 추억의 사라다빵으로 즐길 수 있다.
메인 메뉴 옛날 왕돈가스(9500원)는 김치와 단무지가 함께 차려진다. 최신식 패밀리레스토랑에서는 보기 힘든 경양식집만의 독특한 구성이다. 케첩 뿌린 반달 모양 감자튀김과 흰쌀밥은 돈가스와 한 그릇에 담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투박한 차림에 더욱 정감이 간다. 새로운 조리법을 쓰는 것보다는 추억의 맛에 초점을 맞췄다. 돈가스 1인분에는 국내산 최상급 돼지 등심 250g이 사용된다. 질 좋은 재료로 만든 든든한 돈가스 한 접시는 예나 지금이나 훌륭한 외식 메뉴로 사랑받고 있다.
돈가스와 함께 경양식 대표 메뉴로 손꼽히는 오리지널 함박스테이크(1만2000원)를 찾는 이들도 많다. 진한 갈색 데미글라스 소스 위에 노란 반숙 달걀을 덮은 도톰한 함박스테이크가 입맛과 눈길을 사로잡는다. 돈가스와 함박스테이크가 함께 나오는 모단걸 세트(4만8000원)와 모단보이 세트(3만6000원)는 샐러드와 음료까지 즐길 수 있는 실속 구성이다. 음료 대신 1만2000원만 추가하면 와인 1병으로 변경할 수 있다. 분위기를 내고 싶은 날, 와인 한잔하며 여유롭게 식사하는 것은 어떨까? 식사보다는 알코올 위주로 즐기고 싶다면 바(bar) 자리를 추천한다. 높은 바 의자에 앉으면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와인을 비롯한 맥주, 보드카, 위스키, 칵테일 등 다양한 주류를 판매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가게 된다면 치즈 왕돈가스(1만1000원), 카르보나라 함박파스타(1만9000원), 고르곤졸라 버섯 크림 떡볶이(1만6000원) 등 퓨전 메뉴를 즐겨보는 것도 좋겠다.
주소 (샤로수길점) 서울시 관악구 관악로 14길 11 (가로수길점) 서울 강남구 신사동 539-1
모단걸응접실은 샤로수길점과 가로수길점 두 곳에서 운영 중이며, 실내 인테리어와 분위기, 메뉴는 동일하다.
손성동 한국연금연구소 대표 ssdks@naver.com
A(65세)씨는 요즘 원치 않는 혼족 생활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 모임에 열심히 나갔으나 지금은 발길을 뚝 끊은 상태다. 한때 동기회 회장까지 맡았던 그는 몇 년 동안 일체 연락도 하지 않은 채 두문불출하고 있다. 친구들 모임에 나가면 즐겁지만 식사비와 가벼운 음주 비용마저 두렵기 때문이다. 지금 그에게 유일한 친구는 TV뿐이다. 그는 지금 강남의 10억 정도 하는 아파트에서 소파를 침대 삼아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TV를 보고 있다. 밖에 나간 아내가 빨리 들어오지 않아 분을 삭이면서.
대기업 부장으로 재직하다 55세에 퇴직한 A씨는 그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아내와 함께 고품격 해외여행은 물론 뮤지컬 관람 등 문화생활을 즐겼다. 이른바 액티브 시니어로서 그동안 고생한 보람을 맘껏 누렸던 것이다. 그러나 고가의 아파트도 있으니 어찌 되겠지 하는 맘으로 5년을 즐기는 동안 어느새 저축해놓은 돈이 동나버리고 말았다. 그 허전함과 불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정했던 아내와의 사이는 벌어지기 시작했고 A씨는 집 안에 틀어박혀서, 아내는 밖으로 나도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A씨가 다시 액티브 시니어로서 활기찬 노후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주택연금 가입하면 얼마나 받을 수 있나?
A씨가 가택연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주택을 활용하는 방법밖에 없다. 10년 동안 일을 쉰 65세의 은퇴자에게 재취업의 길은 멀기 때문이다. A씨는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를 처분해 주택연금에 가입할 수 있는 9억원 이하의 아파트로 이사하면 1억원 정도의 여유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A씨가 9억원짜리 아파트로 이사한 뒤 바로 주택연금 신청을 하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주택연금 월 수령액은 신청 당시의 연령과 주택가격, 지급방식, 보증료 크기 등에 따라 다르다. 만일 A씨가 매월 일정한 금액을 종신지급받는 조건으로 가입할 경우 월 227만4000원 정도를 받게 된다([표 1] 참조). 현재 A씨는 국민연금으로부터 매월 약 70만원을 받고 있으므로 국민연금과 주택연금을 합치면 300만원 정도의 생활비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생활비를 250만원 정도로 낮추면 7억짜리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고, 200만원까지 낮추면 5억짜리 아파트로 이사할 수도 있다. 월 생활비를 250만원으로 낮추면 3억 정도의 여유자금을 확보할 수 있고, 200만원으로 줄이면 5억원의 여유자금을 손에 쥘 수 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액티브 시니어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주택연금 신청자 얼마나 되나?
주택연금은 2007년 7월에 도입된 이후 가입자 수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누적 가입자 수는 2012년 말 1만1393명에서 2016년 말에는 3만4444명으로 증가했다. 매년 주택연금에 가입하는 신규 가입자 수는 2012~2015년 5000~6000명 선에서 2016년 처음으로 1만 명을 넘어서기에 이르렀다([그림 1] 참조). 2016년 신규 가입자 수(1만309명)는 2015년보다 58.9% 증가한 수치다. 이처럼 지난해 주택연금 신규 가입자 수가 크게 늘어난 것은 ‘내집연금’ 3종 세트 출시와 가입요건 완화 덕분이다. 주택연금이 고령층의 주요 노후준비 수단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한편 2007년 7월 주택연금 출시 이후 2016년까지 주택연금 가입자의 평균 연령은 71.9세, 평균 주택가격은 2억8300만원, 월 평균 수령액은 98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 유형은 아파트가 84.0%로 가장 많았고, 주택 규모는 85㎡(약 25.8평) 이하가 78.9%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집연금’ 3종 세트란?
‘내집연금’ 3종 세트는 2016년 4월 25일 출시된 상품으로 다음 3개의 주택연금을 묶었다. ① 일시인출 한도를 70%로 늘여 만 60세 이상 고령자의 주택담보대출을 상환하고 주택연금을 이용할 수 있게 한 ‘주택담보대출 상환용 주택연금’, ② 40~50대가 보금자리론을 이용하다가 향후 주택연금으로 전환할 때 최대 연 0.3%p의 전환장려금을 지급하는 ‘주택연금 사전예약 보금자리론’, ③ 1억5000만원 이하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60세 이상 고령자에게 월 지급금을 최대 15% 더 많이 주는 ‘우대형 주택연금’.
첫째, 주택담보대출 상환용 주택연금은 부부 중 한 명이 만 60세 이상이고 부부 기준 9억원 이하 1주택 소유자 또는 다주택 보유자의 경우는 보유주택 합산 가격이 9억원 이하이면 가입할 수 있다. 합산 가격이 9억원을 초과하는 2주택자는 3년 이내에 비거주 주택을 처분하는 조건으로 가입 가능하다. 주택연금에 가입할 때는 주택가격의 1.0%를 가입비 형태로 초기보증료를 납부해야 하며, 매년 연금지급 총액의 1.0%를 연보증료를 납부해야 한다. 보증료는 월 지급금 보장 및 미래손실 충당을 위한 재원으로 사용된다. 보증료는 연금지급 총액에서 자동 공제되므로 직접 납부할 필요는 없다.
연금지급 한도의 70%까지 일시에 인출해 주택담보대출 상환에 활용할 수 있다. 일시 인출한도 금액은 주택가격과 연령에 따라 다르므로 주택금융공사에 문의하면 쉽게 알 수 있다. 만일 인출한도 전액을 사용했음에도 주택담보대출 전부를 상환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최대 1000만원 한도 내에서 서울보증보험의 내집연금연계신용대출을 이용할 수 있다. 부부 모두 사망하거나 주택소유권을 상실했을 경우, 그리고 1년 이상 거주하지 않을 경우에는 주택연금이 종료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종료 시점에 주택가격이 연금수령 총액보다 많을 경우에는 남는 부분이 자녀에게 상속되므로 주택연금 가입 후 주택가격이 오르면 손해 보는 것 아니냐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연금수령 총액이 주택가격보다 많으면 부족분에 대한 청구는 하지 않으므로 혹시라도 자녀에게 빚으로 떠넘기면 어떻게 하나 걱정할 필요도 없다.
둘째, 주택연금 사전예약 보금자리론은 40~50대 중·장년층이 주택연금 가입을 미리 약속할 경우 이자 혜택을 주는 연금상품을 말한다. 주택금융공사가 취급하는 장기 주택담보대출로 보금자리론을 빌려 집을 살 때 주택연금에 가입할 것을 약속하면 연금전환 시점까지는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다가 전환 시점이 되면 빚을 일시에 상환한 뒤 남는 돈을 연금으로 수령하는 방식이다. 부부 중 한 명이 만 40세 이상이고 무주택자 또는 부부 기준 9억원 이하 1주택 보유자일 경우 이용할 수 있으며, 주택 소유자 또는 배우자가 만 60세가 된 후 희망하는 시기에 주택연금으로 전환할 수 있다. 주택연금 전환가능 여부는 전환신청 당시의 주택연금 가입요건에 따라 결정된다. 만일 전환신청을 했는데 가입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에는 주택연금 가입이 거절될 수 있다. 초기보증료는 주택가격의 1.5%, 연보증료는 연금지급 총액의 0.75%다. 주택연금 종료 사유는 주택담보대출 상환용 주택연금과 동일하다.
이 주택연금은 금리를 0.15%p 우대해준다. 또 은행에서 만기 일시상환식 변동금리부 주택담보대출을 이미 받은 사람이 보금자리론으로 갈아타면서 주택연금 가입을 약정하면 추가로 0.15%p를 우대받아 총 0.3%p의 금리 인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우대이자는 60세 연금 전환 시점에 전환 장려금으로 일시에 받을 수 있다. 가령 만기 일시상환식 변동금리부 은행 대출을 가진 45세 B씨(3억원 주택 소유)가 보금자리론으로 갈아타고 주택연금 가입을 예약하면 주택연금으로 전환되는 60세에 296만원을 받는다. 사전예약 보금자리론에 가입한 뒤 주택연금으로 전환할 경우 조기상환 수수료는 면제된다. 단 주택연금 전환 이후 해지할 경우에는 면제된 조기상환 수수료를 납부해야 한다.
셋째, 우대형 주택연금은 부부 기준 1.5억원 이하의 1주택 보유 고령자의 노후생활비 지원을 위한 연금상품으로 일반 주택연금보다 월 지급금이 8~15% 정도 많다. 대출한도의 45% 이내에서 필요에 따라 수시인출을 할 수 있는 것도 이 상품의 장점 중 하나다. 기존 주택담보대출이 대출한도 45%를 초과하는 경우에는 자기자금으로 초과하는 금액을 상환한 뒤 우대형 주택연금에 가입할 수 있다. 자기자금이 부족할 경우에는 주택담보대출 상환용 주택연금을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 상품의 초기보증료는 주택가격의 1.5%, 연보증료는 연금지급 총액의 0.75%다. 주택연금 종료 사유는 앞의 두 상품과 동일하다.
주택연금 가입 방법
주택연금에 가입하려면 ‘상담→가입신청→주택연금 약정 및 실행’이라는 3단계를 거쳐야 한다. 상담은 콜센터(1688-8114)를 이용할 수 있고, 가까운 주택금융공사 지사나 은행 지점을 방문해 받을 수도 있다. 방문상담을 할 경우에는 예약상담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예약을 하지 않고 그냥 방문하면 오래 기다리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예약상담은 홈페이지(www.hf.go.kr)나 콜센터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가입신청 단계에서는 필요서류 제출 및 주택연금 보증신청이 진행된다. 필요 서류는 신분증, 주민등록등본 2부, 주민등록초본 1부, 전입세대열람표 1부, 가족관계증명서 1부, 인감증명서 2부 등이다. 가입신청을 하기 전에 거래할 은행을 정하고 대출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있는 은행에서 주택연금에 가입할 경우 조기상환 수수료가 면제된다. 주택연금 약정 및 실행 단계는 주택금융공사에서 은행으로 보증서를 발급한 뒤 고객이 거래은행을 방문해 주택연금 약정을 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 연금이 통장으로 들어온다.
주택연금 이용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은?
주택연금은 노후준비가 부족한 고령자들이 노후 생활비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연금을 수령하다 중도에 해지하면 초기보증 수수료를 날리게 되므로 배우자와 자녀 등 주택의 이해관계자들과 충분한 의견을 나눈 뒤 신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07년 7월 주택연금 도입 이후부터 2016년 말까지 주택연금에 가입했다 중도에 해지한 사람은 총가입자(3만9429명)의 12.6%인 4985명이나 된다.
주택 소유자가 사망한 뒤 배우자가 계속 연금을 받으려면 배우자가 채무를 인수해야 한다. 배우자가 채무인수 및 소유권 이전 등기를 완료할 때까지 주택연금이 일시적으로 정지되기 때문이다. 주택연금에 가입할 때 사전에 채무를 넘겨받는다는 약정, 즉 사전채무인수약정을 맺으면 주택 소유자 사망시 추가 약정을 맺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다. 소유권 이전 등기는 소유자 사망 후 6개월 이내에 해야 한다.
주택연금 이용 중 이사를 할 경우에는 담보주택을 변경해야 주택연금을 계속 이용할 수 있다. 단, 이사하려는 주택가격(평가액)에 따라 월 지급금이 달라지거나 정산을 해야 할 수도 있으므로, 사전에 주택금융공사에 문의해보는 게 좋다.
>>손성동(孫盛東) 한국연금연구소 대표
삼성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 역임. 현재는 ‘한국연금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1인기업가를 꿈꾸고 있다. 공식블로그 ‘꿈꾸는 은퇴와 연금’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부산 동아대와 동서대에 출강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과 쇼핑하는 사람들로 즐비한 서울 명동거리. 북적북적 정신없는 그 거리를 뒤로하고 한적한 남산 꼭대기를 한번 바라보자. 그리고 시선을 아래로 두고 천천히 걷기 시작하면, 소소한 즐거움으로 가득한 ‘재미로’를 발견할 수 있다. 만화를 좋아하는 어린 손주와 함께 간다면 더욱 기분 좋은 나들이가 될 것이다.
지하철 4호선 명동역 3번 출구로 나가면 만남의 광장처럼 벤치가 있는 작은 쉼터가 있다. 바로 그 가운데 ‘명동 만화의 거리-재미로(ZAEMIRO)’ 지도가 보인다. 명동 퍼시픽호텔 왼쪽으로 들어서 명동 주민센터를 지나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 이르는 길이 그려져 있다. 2013년 남산 아래 작은 골목에 조성된 이 길은 건너편 쇼핑거리에 비교해 사람이 많지 않아 산책 삼아 걷기에 한적하고 좋다. 편의점, 미용실, 식당 등 가게마다 간판이나 벽면 등에 만화 주인공 캐릭터가 그려져 있고, 그 사이사이에도 캐릭터 조형물이나 만화벽화 등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뽀로로’부터 추억 속 만화 캐릭터까지 만나볼 수 있다.
1. 서울애니메이션센터
국내 최초의 애니메이션 전용극장으로 국내·외 다양한 애니메이션 작품을 상영하는 서울애니시네마가 있는 곳이다.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과 관련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기획 전시실과, 각종 도서 및 영상자료를 살펴볼 수 있는 정보실, 애니메이션을 배워보고 체험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과 캐릭터 체험장 등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 중구 소파로 126, 02-3455-8341~2, 월요일 휴관.
2. ABC문방구
‘재미로’는 걸어서 30분 이내로 둘러볼 수 있는 코스인데, 중간 지점인 ‘ABC문방구’까지 오르막길로 돼 있다. 이만큼 올라오면 재미로 골목을 한눈에 담아볼 수 있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남산이 가장 가깝게 보인다. 학창시절 등굣길에 문방구에 들렀던 추억을 되새기며 한 번쯤 들어가 장난감과 학용품 등을 구경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손주와 함께 갔다면 잠시 쉬어갈 겸 기념 삼아 작은 선물을 사주는 것도 괜찮겠다.
3. 재미랑
만화 박물관 ‘재미랑’은 지하 1층 코믹극장, 1층 안내·판매 숍, 2층 전시갤러리, 3층 커뮤니티 공간 등으로 이뤄져 있다. 가장 눈여겨 볼 곳은 맨 위층 만화다락방과 옥상정원이다. 마루처럼 꾸며진 만화다락방에서는 신발을 벗고 편하게 만화책을 읽을 수 있고, 옥상 정원에서는 시원한 바람을 쐬면서 골목 전경을 구경하기 좋다. 서울 중구 퇴계로20길 42, 02-779-6107, 공휴일·월요일 휴관.
4. 웹툰공작소
다양한 웹툰 관련 상품을 둘러보고 구입할 수 있다. ‘아이언맨’, ‘슈퍼맨’, ‘원피스’, ‘드래곤볼’ 등 인기 캐릭터의 피규어를 전시해 놓은 공간을 찾는 마니아가 많다고 한다. 웹툰 작가를 꿈꾸는 아이들을 위해 태블릿으로 직접 웹툰 그리기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더불어 피규어, 핀버튼 만들기 프로그램도 즐길 수 있다. 서울 중구 퇴계로20길 24, 070-7796-7086, 월요일 휴관.
5. 남산커피집
편안한 분위기에 아기자기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드립커피 전문점이다. 바리스타 수업을 진행하는 공간으로도 쓰인다. 카페 왼쪽으로 나가 서울애니메이션센터로 향하다 보면 한국대표만화 40선 캐릭터가 그려진 옹벽이 눈에 띈다. ‘공포의 외인구단’, ‘꺼벙이’, ‘맹꽁이서당’ 등 반가운 그림들이 벽면을 채우고 있다. 서울 중구 퇴계로20길 57, 02-776-6580.
아주 어렸을 적, 사건 하나. 어머니가 새로 사다 놓은 값비싼 크림을 얼굴에 찍어본 것도 모자라 온몸에 남김없이 발라 버렸다. 당시 어머니는 기가 막혔는지 혼내지 않고 예쁜 척 화장대 위에 앉아 있는 어린 딸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기록했다. 어린 것이 예쁜 것은 알아서. 그런데 나이가 들어도 사람 마음은 다 똑같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예쁘네”란 소리에 미소 짓고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며 산다. 예뻐지는 놀이터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가고 싶지 않을까? 여전히 아름다움을 찾고 싶은 당신을 위해 준비한 공간,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이하 플래그십 스토어)다.
주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산대로 45길 18(도산공원 정문, 대리주차 가능) 운영 시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둘째 주 월요일, 설·추석 당일 휴무)
도슨트 투어 서비스(02-541-9270) 오후 3시, 6시 2회(소요시간 약 30분) 스파 예약안내 설화수 스파(지하1) 02-541-9272, 설화수 발란스 스파(4층) 02-541-9273
1층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으로는 설화수 브랜드의 역사, 변천사를 확인할 수 있는 ‘헤리티지 룸’이 있다.
동양의 귀한 원료를 담은 약재함을 형상화한 이곳에서는 설화수 브랜드의 가치를 느끼고 경험할 수 있다.
입구 오른쪽으로는 설화수 브랜드 매장이 있다. 계절별 인기 상품과 신상품을 가장 먼저 공개하는 곳이다.
특히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만 판매하는 제품들이 전시돼 있다. 플래그십 스토어 한정 제품에는 궁중비누,
향(포프리, 향초)제품, 옛 입술연지 통을 형상화한 립밤 등이 있다.
2층이야말로 플래그십 스토어의 인기 장소이다.
곳곳에 배치된 소파 앞 테이블에는
설화수의 스킨케어와 메이크업 제품이 가득 차 있다.
뭐든 발라 보고 경험해 볼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
이곳에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전문상담사에게 제품과 관련한 자세한 문의도 가능하다.
선물 포장을 해주는 ‘기프트 서비스 존’에서는
우리 고유의 느낌이 나는 보자기 포장을 주로 한다.
기본 포장 외에도 예물이나 어르신을 위한 포장 등
고급 선물 포장 서비스를 하고 있다.
3층 ‘컬처 라운지’는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문화공간이다. 문화 수업이나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강의형 공간과 VIP 고객들의 휴식 공간인 ‘VIP 라운지’가 마련돼 있다. 3층에서는 뷰티 클래스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 클래스를 정기적으로 열어 많은 사람과 소통할 계획이다.
지하 1층의 설화수 스파는
설화수 화장품에 쓰이는 한방성분을 이용해 몸과 마음의 안정적인 조화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안티에이징 고급 한방 스파준다.
옥, 백자 등을 사용해 최적의 안티에이징 효능을 느낄 수 있다.
영업시간 10:00~21:00
공간 룸 5개 (VIP룸 1개, 커플룸 1개, 싱글룸 3개)
이용가격 170분 / 65만원, 90분 / 23만원
4층 설화수 밸런스 스파는
한방 요소들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흐트러진 심신의 균형을 맞추고
부위별 차별화된 집중 케어를 통해 빠른 시간 내 깊은 활력을 불어넣는다.
도산공원의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며 스파를 즐길 수 있는 것이 이곳의 매력이다.
영업시간 10:00~21:00
공간 룸7개 (VIP룸 1개, 싱글룸 4개, 풋룸 2개) 이용가격 60분 / 12만원
‘플래그십 스토어’ 옥상라운지
도산대로의 평화로운 정취와 푸른 도산공원의 풍광을 한눈에 담으며 일상의 재충전을 할 수 있는 힐링 공간이다. 브라이덜 샤워, 패밀리 이벤트 등 VIP 고객의 이벤트 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다. 친구와 연인,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멋진 공간이다.
책 속에서 사람이 난다는 말도 있다. 책과 함께하는 습관은 남달라 보이기도 하고, 한 권의 책이 사람들의 인생을 우지 좌지 하기도 한다.
요즈음은 젊은이들이 카페에서 공부를 하고 책을 본다. 예전처럼 독서실이나 도서관이 아니다. 음악이 살아있고 비싼 커피와 분위기가 있어야 더 머릿속에 잘 들어가는 모양이다. 하기야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스타벅스나 카페 빈 같은 카페에는 누구나 노트북을 지니고 홈 워크(숙제)를 하거나 책을 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널려진 책들의 현주소
어느 집이나 책들과의 전쟁이다. 이사할 때마다 소동이 벌어진다. 어느 것을 버려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부부싸움이 나기도 하지만 결국은 다 박스 속으로 다소곳이 들어간다. 당연히 책이 들어간 박스가 가장 무겁다. 책에 대한 넘치는 욕심이었지만 결코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 위안을 갖기도 한다.
필자에게도 아이들이 자라가면서 한 권 두 권 쌓이는 책들이 수없이 짐이 되어갔다. 사전에서부터 학습서, 각종의 어학 책, 문학 책들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종류의 다양한 책들이 여기저기 공간을 차지했다. 물론 서재 방을 만들어 한 곳으로 몰아 놓을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필자는 사방이 책으로 가득한 서재와, 음악과 커다란 스크린이 함께하는 감상실을 갖는 것이 꿈이었다. 책은 늘 영혼을 풍성하게 해주니 가난이 무섭지 않았고, 음악은 듣고 있으면 마음을 치유해주니 더 없는 삶의 약이었다. 또 하나, 그 안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소중한 바람이었다.
이사를 다니고 결국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그동안 간직해온 수많은 책들을 시댁에 맡기고 떠났다. 거기에는 고급 오디오 세트와 그 옛날의 레코드 원판, 엘피 판 그리고 백판 등 몇 트렁크를 고이 모셔놓았다. 필자의 남편도 음악에는 조회가 깊어 취미가 같았고, 집에만 들어오면 음악을 틀어 감상하는 것이 생활의 시작이며 공동의 관심사였다.
*북 카페로 변신을
오랜 세월 후 고국으로 돌아와보니 모든 것들이 온데간데없어진 것이다. 필자가 직접 관리를 못했으니 어디 하소연을 할 데도 없다. 미국에서도 이삿짐을 싸면서 미국에서 사온 오디오 세트와 가장 먼저 귀한 책들을 챙겨왔다. 지금은 나름대로 간직한 책들과 구형 오디오, 흘러간 메모리 음악이 담긴 CD들이 필자의 소중한 재산이다.
아이들이 남겨놓은 책들과 필자의 책들이 정신없이 널려져 있다. 거실의 한쪽에 다행히도 공간이 있었다. 필자는 오디오가 자리 잡고 있는 거실 옆으로 빈 공간에 책방을 만들었다. 음악과 책과 그림이 어우러지는 카페를 만들기로 했다. 언제라도 음악이 흐르는 분위기 속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즐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이름하여 멋진 북 카페를 만드는 것이다.
집 꾸미기를 좋아하는 필자는 남편과 함께 한쪽 벽면에 선반을 직접 만들었다. 그리고 장르별로 책들을 분리하며 정리를 했다. 예를 들면 여행에 관한 책들은 한 곳으로 몰아놓아 언제라도 꺼내어 볼 수 있는 간편함이 있도록 했다. 그 옆에는 여행을 하면서 수집해온 소품으로 군데군데 디스플레이를 해놓았다.
창가에는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편안하게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도록 넓은 소파도 마련해놓았다. 영락없는 카페가 되었다. 언제든지 책과 함께하는 분위기가 넘치는 북 카페가 만들어졌다. 이제 모든 것들은 분위기가 좌우하는 세상이고, 무엇보다 책을 읽고 싶은 충동적 분위기가 최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하면, 그곳이 가장 먼저 발길을 유혹하는 열린 공간이 되었다. 꾸며 놓은 책들과 소품들이 마치 훌륭한 카페 같다며, 이 책 저 책에도 관심을 보이면서 모두가 최고라고 했다.
분위기가 흐르는 필자의 북 카페에서는 오늘도 은은한 음악과 함께 마음의 글을 써 내려간다.
“바람 부는 날이면
언덕에 올라
넓은 들을 바라보며
그 여인의 마지막 그 말 한마디
생각하며 웃음 짓네”
모던포크송인 New Christy Minstrels의 “Green green’을 번안한 투코리안즈가 불러 공전의 대히트를 하였던 “언덕에 올라”의 첫 구절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로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야 하지만, 가끔은 홀로 있고 싶어질 때도 있다. 가사처럼 그리운 여인이 그리워지면 바람 부는 언덕에 올라 추억에 젖을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의 간섭이나 방해를 받지 않고 혼자 조용히 지낼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 뭔가에 몰입하고 싶을 때, 골치 아픈 일을 잊고 싶을 때 그런 공간이 있다면 생활에 활력을 줄 것이다. 바로 아지트다. 특히 삭막하면서도 콘크리트로 지어진 감옥 같은 도심 생활에서는 더 그렇다.
◇도심에 가까운 시골에 이층집 짓고
필자는 그런 공간으로 집안 2층에 마련된 침실 하나를 활용하고 있다. 지금은 아예 전용공간으로 굳어졌다. 2인용 침대 하나와 컴퓨터 책상이 붙어 있는 책장이 벽면에 세워져 있다. 창문으로 내다보면 서남쪽에 고봉산이 눈에 들어오고 지금은 누렇게 익어가는 논이 가을을 느끼게 한다. 저녁이면 창틀 사이로 초승달이 들어 앉고 보름이면 둥근 달이 친구 하자며 찾아온다. 처음에는 우리 부부의 침실이었다. 일산신도시 가까이 있는 전원풍의 마을에 자그마한 집을 지어 2년 전에 도심 아파트에서 이곳으로 옮겨왔다. 대지 100평에 건물 면적 17평으로 2층으로 하여 꽤 너른 옥탑방이 달렸다. 실상은 이 옥탑방을 필자의 작업실로 할 예정이었다. 전기세 등 관리비가 더 들게 되어서 가능하면 비용을 줄일 목적으로 2층 거실을 대신 사용해왔다. 1층은 주방과 거실로 평소 이곳에서 생활한다. 2층에 방 두 개를 들였고 그중 하나는 부부 침실로 사용하였다.
◇2층 침실에 컴퓨터 들여놓고 쓰다 보니
어느 겨울날 난방비 절감을 위하여 2층 거실에 있던 컴퓨터를 침실로 옮겼다, 필자의 작업공간이 옮겨진 셈이다. 또한, 침실을 우리 부부가 잘 사용하지 않게 된 이유도 한몫했다.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건강관리에 좋다는 황토로 만든 소파 겸 간이침대를 1층 거실에 들여놓았다. 겨울이면 전기로 난방을 하여 뜨끈한 온돌 역할을 하였다. 아내는 이곳을 좋아하게 되었다. TV를 보거나 친구들과 밤늦게 통화를 하기도 하며 필자의 간섭이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는 장소가 되어 선호하게 되었다. 특히 2층을 올라오는 입구에 중간 문이 만들어져 있어 그 문을 닫으면 1층과 2층은 별개의 장소로 바뀐다. 한 지붕 아래 두 개의 아지트가 있는 셈이다. 나이가 들수록 서로에게 자유 시간을 주는 삶이 바람직하다. 졸혼(卒婚)이라는 시류가 있음도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은 부인들의 욕망인지 모른다.
◇한 지붕 아래 아내와 필자의 아지트가 각각
필자는 사진작가다. 촬영한 사진을 컴퓨터에서 작업을 긴 시간 하여야 한다. 그리고 글쓰기와 강의를 위한 강의안을 만들기 위하여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작업할 땐 외부로부터 방해 받지 않기를 바란다. 작업실이 필요한 이유다. 그뿐만 아니라 밤 늦게 작업하는 핇자로 말미암아 아내가 불편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필자 또한 안사람의 눈치나 간섭을 받지 않는 공간이 필요하다. 2층 침실을 이렇게 활용하다 보니 서로에게 편해졌다. 잠자리를 아직은 별실로 쓰지는 않지만, 한 지붕 아래 아내가 편한 공간, 필자에게 편한 공간이 따로 있게 되어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식사 준비가 되면 아내는 문자나 전화로 알림 하여 미소 짓게 한다. 작업하다 눈이 피로하면 창밖을 내다보면 자연 풍광이 눈을 시원하게 한다. 졸리면 곁에 있는 침대에 눕기도 한다. 아무렇게나 어질러 놓아도 간섭하지 않아서 좋은 점도 있다. 집안의 작업실, 필자의 아지트다.
올해 8월은 참 무더웠습니다. 낮에는 ‘하늘의 불타는 해가 쇠를 녹인다’는 글귀가 실감될 만큼 폭염이 혹심했고, 밤에는 기록적인 열대야가 이어졌습니다. 게다가 리우올림픽까지 열려 12시간 차이 나는 지구 반대편의 경기를 시청하느라 밤잠을 설쳐야 했습니다. 잠의 중요성을 알게 해준 계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9월, 글 읽기 좋고 잠자기 좋은 계절입니다. 원래 글과 잠은 상극인데, 이 둘을 함께 생각하게 하는 자연질서와 그 변화가 오묘합니다. 졸지 않으려고 머리카락을 대들보에 묶고 허벅지를 송곳으로 찌르며 글을 읽었다는 현량자고(懸梁刺股)의 고사가 있습니다. 중국 전국시대의 종횡가(縱橫家) 소진(蘇秦)은 ‘송곳으로 넓적다리를 찔러 피가 발까지 흐르도록’ 열심히 글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뭔가를 성취하려 하거나 남보다 앞서고 싶은 사람은 잠을 줄여야 합니다. 어떤 분야든 최고 수준의 실력자가 되려면 1만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1만 시간의 법칙’에도 잠을 줄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하루 3~4시간밖에 자지 않았다거나 발명왕 에디슨은 친구와 점심을 먹으면서도 잤다는 이야기는 효율적인 잠의 중요성을 알려줍니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는 남들보다 덜 자고 남들보다 더 일한 아침형 인간의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습니다.
핀란드에는 ‘잠꾸러기의 날’인 7월 27일, 가족 중 가장 늦게 일어나는 사람에게 물을 끼얹거나 바다나 호수에 빠뜨리는 풍습이 있습니다. 17세기부터 내려오는 이 풍습은 잠과 게으름을 경계하면서 하루를 함께 시작하자는 독려의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숙면(熟眠) 안면(安眠) 정면(靜眠) 쾌면(快眠)이며 게으르게 잠만 자는 타면(惰眠), 노곤해서 잠을 많이 자거나 계속 조는 기면(嗜眠), 잠이 잘 오지 않는 실면(失眠), 잠을 자지 못하는 불면(不眠)을 조심해야 합니다. 술꾼들이 헤어나지 못하는 취면(醉眠) 습관도 경계해야겠지요. 흔히 “잠이 보약”이라거나 “잠이 약보다 낫다”(Sleep is better than medicine.)고 말합니다. 건강 장수에 중요한 것 세 가지로 쾌식 쾌변과 함께 쾌면을 꼽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시인 박희진(朴喜璡·1931~2015)의 ‘잠을 기리는 노래’는 5개 연으로 이루어진 제법 긴 시입니다. 마지막 연은 이렇게 돼 있습니다. ‘오라 잠이여, 목숨의 자양이여, 한껏 부드러이/씨거운 살의 목마름을 풀어주곤 어둠과 함께 사라지는 감로수./너를 마셔야 피가 잘 돌아/슬픈 연인들이 얼싸안은 팔다리엔/진한 모란의 향기가 흐르고,/아기들은 자라나니 너의 품 속에서,/밤에 자라나는 식물들처럼./또 새우등의 늙은이에겐/백발을 하나 더 늘게도 하나,/미래를 점치는 슬기의 꿈을 베풀기도 하는 너,/잠이여 오라.’
잠은 휴식이면서 평화입니다. 프랑스 화가 앙리 루소의 작품 ‘잠자는 집시’(1897)에는 사막에 누워 잠든 집시여인과, 여인이 죽었는지 자는지 살피는 사자가 그려져 있습니다. 루소는 작품의 부제에 ‘아무리 사나운 육식동물이라도 지쳐 잠든 먹이를 덮치는 것은 망설인다.’고 썼습니다.
누구든지 잠자는 모습은 평화롭고 성스럽기까지 합니다. 순진하고 무구한 어린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소파 방정환은 잠자는 어린이의 얼굴에서 사랑스러운 하느님의 얼굴을 만납니다. 그의 ‘어린이 예찬’을 읽어 봅니다. “어린이가 잠을 잔다. 내 무릎 앞에 편안히 누워서 낮잠을 달게 자고 있다. (중략) 고요하다는 고요한 것을 모두 모아서, 그중 고요한 것만을 골라 가진 것이 어린이의 자는 얼굴이다. 평화라는 평화 중에 그중 훌륭한 평화만을 골라 가진 것이 어린이의 자는 얼굴이다. (중략) 어린이의 잠자는 얼굴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고운 나비의 날개, 비단결 같은 꽃잎, 이 세상에 곱고 부드럽다는 아무것으로도 형용할 수 없이 보드랍고 고운, 이 자는 얼굴을 들여다보아라.”
잠은 망각이기도 합니다. 괴테의 ‘파우스트’ 제2부는 해 질 무렵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잠이 든 파우스트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파우스트는 이 잠을 통해 제1부에서 저지른 잘못과 양심의 가책을 망각함으로써 새로운 인간으로 되살아납니다. 그 잠은 망각을 통한 치유와 갱생의 잠입니다. 괴테는 파우스트가 신생을 맞는 계기로 잠과 망각이라는 중요한 장치를 설정했습니다. 치유와 갱생을 얻지 못하고 깨어나지 못하는 영면(永眠)은 곧 죽음입니다.
미국작가 워싱턴 어빙의 단편소설 ‘립 반 윙클’은 20년 동안 잠을 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영국의 조지 3세가 통치하던 시절 사냥하러 산에 갔던 사람이 이상한 경험을 한 후 낮잠을 한숨 자고 마을에 내려와 보니 모든 것이 변해 있었습니다. 아내는 이미 죽었고, 세상은 조지 워싱턴이라는 대통령의 시대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아내의 죽음은 제국주의 영국의 몰락을 뜻한다는데, 어쨌든 립 반 윙클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에 크게 뒤떨어진 사람을 일컫는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글을 쓰면서 알았지만, 우리 속담에 “소대성이처럼 잠만 잔다”는 게 있습니다. 18세기 후반에 등장한 영웅소설 <소대성전(蘇大成傳)>에 자신을 알아주던 승상이 죽자 실의에 잠긴 소대성이 모든 일을 폐하고 잠만 자는 데서 파생된 말입니다. 소대성은 시련을 딛고 도술을 익혀 나라에 큰 공을 세우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인물입니다. 그의 잠은 립 반 윙클의 잠과 다릅니다. 무엇인가를 예비하면서 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리는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수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고초려를 통해 제갈량을 모신 유비가 세 번째 찾아갔을 때 제갈량은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 낮잠은 유비의 인물 됨됨이와 자신에 대한 성의를 재보기 위해 미리 계획된 행위라는 해석이 유력합니다.
어떻게 잠을 자고 무슨 꿈을 꿀 것인가. 청년에게는 청년의 왕성한 잠과 화려한 꿈이 있고 시니어들에게는 또 그들과 다른 잠과 꿈이 있습니다. 시니어들의 잠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건강과 휴식입니다. 중요한 만큼 더욱 더 잘 계획되고 정리돼야 합니다. 짧고 깊게, 혹시 길더라도 깊게 자야 합니다.
청마 유치환의 시 ‘바위’는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로 시작해서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두 쪽으로 깨뜨려져도/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로 끝납니다. 불의에 항거하면서 위선 앞에서 당당하고 진리와 진실을 덮는 권력에 떳떳한 인간의 절대의지를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 시를 겸손과 절제를 강조하는 수사(修辭)로 읽고자 합니다. 유치환의 ‘바위’는 시니어들의 삶에 중요한 메시지가 아닌가 합니다. 짧고 깊게, 꿈꾸더라도 노래하지 않고 평안하게 새로운 계절 가을을 맞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임철순(任喆淳)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고려대 독문과,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졸.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
이사대우 논설고문 역임, 현재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한국1인가구연합 이사장.
한번 맛을 보면 익숙해지는 것일까? 때로는 아깝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자식들이 주는 선물이니 두말없이 받아들이고, 덥석 따라나섰다. 푹신한 침대에 누워보니 신세계가 따로 없다.
사람이 간사한지라 좋은 맛을 보니 더 나은 것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필자도 알뜰한 사람이라 불필요할 곳에는 쓸데없이 낭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필자의 젊은 시절에는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사람들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에 젊은이들은 그렇지가 않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어지간하면 고생은커녕 명품을 찾았고, 영화관도 명품 관을 선호했다. 이제는 어느덧 필자의 시대가 서서히 기울어가고 자식들의 세계가 펼쳐지는 만큼, 필자도 적당히 부모 의견을 접고 자식들을 따르기로 했다.
엊그제, 이번에는 소위 말하는 부의 상징, 강남으로 온 가족이 함께했다. 작은 사위가 모처럼 휴가를 맞이해 함께 한자리였다. 다섯 명의 외출 비용은 만만치가 않았다. 강남의 한복판에서 코스요리로 식사를 하는 값은 상당했다. 그러나 비싼 만큼 화려한 부의 가치는 고급스러웠다. 역시 강남은 여기저기 부가 흘러넘쳤다. 특별히 저녁식사는 작은 딸이 쏘기로 했다.
큰딸의 몫은 식사를 하고 난 후, 영화관으로 예매를 하는 것이었다. 모처럼 온 가족이 함께하는 영화였다. 반대편 자그마한 단독 건물 안에 고급스러운 영화관이 있었다. 강남은 모든 것들이 달랐고, 명동에 있는 영화관보다 값도 더 비쌌다. 물론 시설 면에서나 분위기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었다. 입구 카페에서 필자가 좋아하는 눈꽃빙수를 먹었다. 서둘러 건물 지하 5층으로 내려가니, 잘 가꿔진 레스토랑과 조용하고 엄숙한 영화관이 관객을 맞이했다.
미리 대기한 안내원의 상냥한 안내에 따라 영화관 안으로 들어갔다. 어둑어둑한 실내에는 당황스럽게도 템퍼로 된 고급스러운 침대가 두 개씩 나란히 펼쳐져 있다. 정갈하게 멋지게 꾸며져 아늑하게 다가왔다. 필자는 신기함에 신발을 벗고 덜렁 누워보았다. 몸이 쑤욱 들어간다.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마음에 부자가 따로 없고, 마치 귀족이 된듯한 느낌이 들었다.
푹신하게 받쳐주는 침대에 몸을 그대로 누워, 눈으로만 영화를 보니 시원한 천국이 곁에 있었다. 물론 음료와 고급 과자도 함께 준비되어있다. 궁금증에 살짝 일어나 주위를 가만히 돌아보았다. 그 커다란 영화관에는 달랑 15군데, 30명의 젊은 남녀가 쌍쌍이 나란히 이마를 맞대고, 전 좌석이 꽉 차서 누워 있었다. 대부분은 돈을 잘 쓰는 젊은이들 같았다.
도대체가 이곳이 영화관이라는 사실에 필자는 또 한번 놀람을 금치 못 했다. 안락한 소파도 부족해, 침대로 그것도 템퍼로 준비되어있었다. 사람들 부의 세계는 어디까지인지, 상영시간이 겨우 2시간밖에 안 된다는 것이 필자에게는 아깝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번에는 영화가 조금 지루해서 잠이 왔지만, 억지로 라도 잠을 자지 않고 값을 치룬만큼 편안함을 만끽했다.
잘 나가는 딸들을 둔 덕분에 필자 부부는 가끔씩 사치스러운 호강을 했다. 한국에 부의 세계는 하나하나 미국과는 또 다른 새로운 맛을 보여주었다. 참으로 빈과 부의 차이, 강남과 강북의 세상은 어쩌면 엄청난 정도의 척도를 걷고 있었지만, 한 번쯤은 마음을 바꾸면, 누구나 그 맛을 체험해볼 수도 있기에 부의 세계는 아주 가까이에 있는 것이기도 했다.
빈과 부의 차이, 비록 물질이 아닌 그 마음의 차이는 어쩌면 자신이 창출해내는 것이기도 했다. 비록 현실은 어렵더라도 가끔씩은 마음을 바꾸어 우아하게 부의 세상에, 젊은이들이 찾는곳에, 잠시 시간을 내어 과감하게 발을 내디뎌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마음이 부자면 이 더위에 그 어떤 것도 부럽지 않고, 평화로울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