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살바도르 달리 : Imagination and Reality
일정 4월 3일까지 장소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디자인 전시관
20세기 가장 위대한 화가이자 스페인 초현실주의 대가인 살바도르 달리(1904~1989)의 국내 최초 대규모 회고전이 이달 20일까지 열린다. 달리의 유화 및 삽화, 대형 설치작품, 영화와 애니메이션, 사진 등의 걸작 140여 점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레플리카(복제품)가 아닌 ‘진짜 원화 작품’ 전시다.
전시는 아홉 개 섹션으로 나눴으며, 달리의 유년 시절부터 전 세계의 주목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기까지의 시기별 작품 특성을 조명했다. 또한 달리와 영향을 주고받았던 인물과 개인적인 순간들도 함께 소개한다. ‘예술이 인생을 지배해야 한다’는 달리의 신념을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달리의 부모는 그를 ‘죽은 형의 환생’으로 여겼다. 온전히 자신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달리는 정신분열 증상을 겪었고 괴짜가 됐다. 진짜 그를 봐준 사람은 아내 갈라뿐이었다. 달리는 평생 그녀만을 사랑했다. “나의 어머니, 아버지, 피카소, 심지어 돈보다도 갈라를 더 사랑한다”고 말할 정도. 달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갈라와 관련된 작품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는 달리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기억의 지속’은 없다. 그 아쉬움은 ‘다가오는 밤의 그림자’(1931), ‘시간의 속도’(1931), ‘무제 : 맑은 날씨의 지속’(1932) 등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 4.4
일정 3월 27일까지 장소 부산시립미술관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이 최근 관람해 화제를 모은 전시다. 프랑스 현대미술 거장 크리스티앙 볼탕스키(1944~2021)는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중 파리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그는 홀로코스트 또는 쇼아(Shoah)의 작가, 죽음의 작가라 불린다. 볼탕스키는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를 직접 경험하진 않았지만, 사진과 설치미술, 사운드, 조명 등으로 집단의 역사와 기억, 애도와 추모 등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평생 ‘죽음’을 주제로 다뤄온 작가는 전시 제목 ‘4.4’도 직접 지었다. 그가 태어난 해인 ‘1944년’을 뜻하는 동시에 인생을 4단계로 나눌 때 ‘생의 마지막 단계’를 뜻하기도 한다. 그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공들인 이 전시가 그의 예술 여정의 마침표가 됐다.
●Book
◇뇌과학자의 엄마, 치매에 걸리다(온조 아야코·지호)
일본의 뇌과학자 온조 아야코의 어머니는 예순다섯의 이른 나이에 알츠하이머성 치매 진단을 받는다. 10년 넘는 시간 동안 뇌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온 딸에게는 더욱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고 죄책감마저 든다.
이에 저자는 치매로 고통받는 이들과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점점 모든 것을 잃어가는 엄마를 2년 반에 걸쳐 관찰했다. 매일의 사건, 기분, 감정 전부를 기록했다. 특히 ‘기억을 잃으면 그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닌 걸까’, ‘치매에 걸리면 사람다움을 잃는가’와 같은 의문에 두려움을 느끼며 치열하게 파고들었다.
저자는 치매란 어떤 뇌질환이고, 망상·배회·공격성 등 정신행동 증상은 왜 나타나는지 뇌과학과 심리학 등 다양한 연구 논문을 근거로 풀어냈다. 그리고 문제 예방법으로 ‘기억 메워주기’, ‘산책하기’와 같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사소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을 택했다. 저자는 엄마가 요리할 때 기억을 상기시켜 성공적으로 마치도록 도왔고, 아버지는 아내와 산책을 했다. 이는 엄마의 병을 낫게 하진 못했지만 얼굴에 미소를 되찾게 했다. 더불어 엄마는 소파에 앉아 있던 상태에서 벗어나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났다.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기억은 잃어가지만 감정이 남아 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치매에 걸렸어도 결국 감정이 건재한 이상 사람다움을 유지할 수 있고 여전히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태리 아파트먼트(마시모 그라멜리니·시월이일)
현재로부터 60년 후인 2080년 12월이 배경인 소설이다. 할아버지가 손주들에게 코로나 팬데믹에 대해 들려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작가는 미래에서 보면 현 상황도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위로를 독자에게 건넨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박영서·들녘)
저자는 ‘조선은 복지 국가’였다고 주장하며 조선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본다. 백성을 구휼하려는 통치자의 의지는 ‘단 한 명의 백성도 굶어 죽지 않게 하라’는 목표로 축약된다. 저자는 조선 복지 정책의 핵심을 사람에 대한 존중과 사랑, 즉 인(仁)이라고 분석한다.
◇용감한 구르메의 미식 라이브러리(알렉상드르 스테른·윌북)
1978년생 파리지앵인 작가 알렉상드르 스테른은 미식가로서 세계를 돌며 희귀한 맛을 찾아 대중에게 알려왔다. 이 책은 세계 5대륙 155개국에서 골라 모은 700가지 맛을 정리한 것이다. 한국 음식은 김치·홍어·소주·번데기·호떡·팥빙수 등을 추천했다.
●Stage
◇또! 오해영
일정 3월 9일 ~ 5월 29일
장소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스콘1관
연출한은결
출연 손호영, 장동우, 재윤, 레이나, 양서윤, 길하은, 허순미 등
2020년 초연된 뮤지컬 ‘또! 오해영’이 돌아온다. 이 뮤지컬은 2016년 방영된 에릭·서현진 주연 동명의 tvN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다. 오해영이라는 동명이인의 두 여자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도경의 오해에서 시작된 로맨스를 그린다.
특히 뮤지컬 ‘또! 오해영’은 두 오해영이 가진 결핍을 채워주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성장 스토리로 재구성, 응원이 필요했던 이들에게 큰 힘이 되는 힐링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또한 벤의 ‘꿈처럼’, 정승환의 ‘너였다면’ 등 기존 원작의 OST는 물론 신곡을 추가해 드라마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이번 공연에서는 ‘박도경’ 역에 초연에 이어 손호영이 참여하며, 새롭게 장동우, 재윤(SF9)이 합류한다. 박도경은 외모도 능력도 완벽하지만 까칠한 성격에 예민함까지 가진 남자다. 마음이 가는 일은 절대 멈추지 않는 씩씩한 보통 여자 ‘오해영’ 역에는 레이나, 양서윤, 길하은이 함께한다.
◇잃어버린 얼굴 1895
일정 3월 5일 ~ 3월 20일
장소 서울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연출 이지나
출연 차지연, 하은서, 김용한, 최인형, 이동규, 윤태호, 이혜수 등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는 단 한 장의 사진도 남기지 않은 명성황후의 미스터리한 삶에 픽션을 더해 재탄생한 작품이다. 기존 작품과 달리 명성황후가 여성으로서 느낀 아픔과 슬픔, 인간으로서 가진 고민과 욕망에 집중해 그의 삶을 그려낸다.
더불어 연극, 음악, 무용이 혼합된 서울예술단만의 독창적 장르인 창작가무극의 정수를 맛볼 수 있으며, 2013년 초연 이후 다섯 번째 시즌을 맞았다. 명성황후 역에 배우 차지연이 다시 돌아오며, 새로운 황후로 서울예술단 단원 하은서가 합류해 기대감을 높였다.
◇리지
일정 3월 24일 ~ 6월 12일
장소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연출 김태형
출연 전성민, 유리아, 이소정, 김려원, 여은, 제이민, 김수연, 연정 등
여성 4인조 록 뮤지컬 ‘리지’가 초연 2년 만에 돌아온다. 미국의 미제 사건 ‘리지 보든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1892년 성공한 장의사 앤드류 보든과 그의 부인 에비가 집 안에서 잔인하게 도끼로 살해되면서 둘째 딸 리지가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고, 재판을 통해 숨겨진 비밀과 진실이 드러난다. 초연 당시 지루할 틈 없는 전개와 6인조 라이브 밴드의 파워풀한 록 기반 넘버, 여성 캐릭터들 간의 연대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이번에는 우주소녀 연정이 리지의 친구 앨리스 역을 맡아 뮤지컬에 첫 도전해 기대를 모은다.
미 연준의 테이퍼링 임박,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중국발 규제 쇼크가 겹치며 부동산, 주식, 코인 등 자산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팔리지 않는 부동산을 제값보다 많이 받고 빨리 처분할 수 있는 방법인 홈스테이징에 대해 알아본다.
홈스테이징은 적은 돈을 투자해 집을 최대한 빨리, 더 비싼 돈을 받고 파는 연출 수단이다. 벽을 허물고 구조를 바꾸는 리모델링보다 가벼운 개념이다. 인테리어와도 비슷하지만 홈스테이징은 집을 상품으로서 판매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점이 다르다. 기존 가구와 소품을 재배치하고 페인트 색이나 실내 톤을 조정해 실내 공간을 재단장한다. 모든 과정의 핵심은 ‘가성비’다.
홈스테이징은 닷컴 버블이 붕괴한 2000년대 초반 미국과 캐나다에서 틈새 산업으로 등장했다. 경기 부양을 위해 낮춘 금리에 부동산 투자 붐이 일었고, 이후 거품이 꺼지며 집을 팔고 싶지만 팔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작은 변화만 줘도 주택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홈스테이징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지만, 미국이나 일본 등 해외에서는 보편화돼 있다. 미국에서는 홈스테이징 전문가가 어엿한 직업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2017년 말 기준 663명이 홈스테이징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9년 미주한국일보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미국 전국부동산중개인협회(NAR)가 소속 회원 에이전트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홈스테이징을 거친 매물이 구매자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 것으로 드러났다. 약 83%의 구매자가 홈스테이징 매물로 미래에 거주할 보금자리를 상상하는 데 도움을 받는다고 대답했다. 존 스머비 NAR 회장은 “주택 구입 결정에 재정적인 조건은 물론 감정적 영역도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홈스테이징 후 22%의 판매자가 1~5%의 가격 상승을, 7%의 판매자가 11~22%의 가격 상승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홈스테이징은 집을 상품으로서 돋보이게 만드는 작업이다. 이 집을 선택했을 때 미래에 어떻게 살지 상상할 수 있도록 내부를 정리하고 단장한다. 이때 활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우선 사람의 시선이 모이는 곳에 포컬 포인트(Focal Point)와 같은 장치가 필요하다. 고객의 시선을 고려해 이동하는 통로에는 가구나 집기들을 낮게 배치하고, 벽면으로 갈수록 높은 책장이나 수납장, 장식장을 두어 매물이 상품으로서 잘 보일 수 있도록 한다.
인테리어 액세서리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볼 수 있는 요소다. 쿠션, 화병, 액자, 장식 소품, 캔들, 인테리어 부자재 등 종류가 다양하다. 감각과 센스가 필요한 영역이지만, 집을 처음 방문한 고객의 시선에서 어디에 눈길이 갈지 생각해보자. 액세서리 하나로도 깔끔하거나 고급스러운 느낌을 줄 수 있다. 직접 시도하기 부담스럽다면 홈스테이징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도 방법이다.
[TIP] 공간별 레이아웃하는 방법
공간 레이아웃은 가구를 효과적으로 정리하고 배치하는 작업이다. 각 공간별로 어떤 가구를 어디에 두는 게 좋을까?
1 침실 침대의 배치가 가장 중요하다. 정확히는 침대 매트리스나 이불의 크기를 신경 써야 한다. 침대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공간이 넓거나 좁아 보이기도 하고, 적당한 소품을 사용하기 어려운 구도가 나오기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침대를 한쪽 벽으로 몰아두고 생활하지만, 홈스테이징을 할 때는 방 중앙에 배치한다. 침대를 기준으로 좌우대칭 구조로 배치하면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2 거실 거실은 청소, 정리, 공간 연출 상태에 따라 고객의 구매 여부가 확연히 갈리는 공간이다. 좁은 거실이라도 어떤 가구를 어느 위치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더 넓어 보이기도 하고, 이색적인 분위기를 조성할 수도 있다. 거실 레이아웃에는 소파를 주로 활용한다. 소파 배치를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 홈스테이징에서는 ㄷ자형, L자형, 분산형을 활용한다. 심플하고 현대적인 거실을 원한다면 L자형과 직렬형, 벽난로나 TV가 있는 단란한 거실에는 분산형이 어울린다.
3 부엌 부엌은 트렌드에 따라 레이아웃이 비교적 많이 변화하는 공간이다. 오래된 주택의 부엌은 공간이 작거나 거실과 아예 분리돼 있는 등 형태도 가지각색이다. 레이아웃은 매물에 따라 달라지지만 식사하는 공간 보다 조리하는 공간이 부각될 수 있게끔 연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공간 레이아웃은 가구를 효과적으로 정리하고 배치하는 작업이다. 각 공간별로 어떤 가구를 어디에 두는 게 좋을까?
침실
침대 매트리스나 이불의 크기를 신경 써야 한다. 침대와 소품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공간의 크기가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침대는 한쪽 벽으로 몰아두고 생활하지만, 홈스테이징을 할 때는
방 중앙에 배치한다. 침대를 기준으로 좌우대칭 구조로 배치하면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거실
거실은 청소, 정리, 공간 연출 상태에 따라 고객의 구매 여부가 확연히 갈리는 공간이다. 거실 레이아웃에는 소파를 주로 활용한다. 홈스테이징을 할 때는 ㄷ자형, L자형, 분산형을 활용한다. 심플하고 현대적인 거실을 원한다면 L자형과 직렬형, 벽난로나 TV가 있는 단란한 거실에는 분산형이 어울린다.
부엌
부엌은 트렌드에 따라 레이아웃이 비교적 많이 변화하는 공간이다. 오래된 주택의 부엌은 공간이 작거나 거실이 아예 분리돼 있는 등 형태도 가지각색이다. 레이아웃은 매물에 따라 달라지지만 식사하는 공간보다 조리하는 공간이 부각될 수 있게끔 연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생각의 관성(慣性)
직장 문을 나선 지 꼭 2년이 지났다. 정확히 말하면 안식년을 포함해서 만 3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그동안 평소 바람대로 양지바른 곳에 앉아 햇볓을 쬐기도 하고,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그림 같은 경치 속으로 빠져들기도 했으며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한 달 동안의 기숙사 생활 같은 것도 체험해봤다.
그런데 그동안 겪은 이런저런 경험 중에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었다. 예를 들면, 출근 시간에 회사 방향으로 자동차를 몰고 가다 중간에 옆길로 빠져 체육관을 향한다거나 회사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 등이다.
동도 트지 않은 이른 아침에 도심을 향해 질주하는 차량들을 보면 “아! 나도 저렇게 정신없이 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착잡한 마음도 들었고, 아침 운동을 위해 체육관 쪽으로 방향을 틀어 작은 길로 들어서면 갑자기 세상에서 밀려난 듯한 묘한 상실감이 일던 기억도 난다. 내가 지나는 길에는 차량도 별로 없었다.
남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자전거를 타고 도심과 반대 방향으로 달릴 때 역시, “이제야 내 시간을 찾았다” 하는 생각과 함께 슬며시 끼어든, 마치 다른 세상에 편입된 것 같은 기분은 한동안 어쩔 수 없었다. 눈 뜨면 밥 먹고 회사 가는 일을 수십 년 동안 반복하다 보니 아침이면 몸과 마음이 자동으로 반응했던 것이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관성(慣性)의 법칙이란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모든 물체는 현재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 정지한 물체는 계속해서 정지한 채로 있으려고 하며 운동하던 물체는 계속해서 등속, 직선 운동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정해진 시간에 일정한 방향으로 내달리다 보니 방향만으로도 낯선 환경이 실감났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방향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자 이번에는 속도가 문제였다. 어느 날 오전, 소파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내가 이 시간에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을 안 하면 뭔가라도 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갑자기 나를 허둥대게 만든 것이다. 평소 누려 보지 못한 시간이 주어졌는데도 고마워하긴 커녕 불안감에 자리를 털고 일어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행동하며 바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백팩 메고 공부도 하러 다니고 배움길에서 새롭게 만난 친구와 함께 생전 해보지도 않던 일 등도 하다 보니 언제 3년이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세월이 후딱 지나갔다.
그런데 만 3년의 세월이 지나자 이제야 겨우 생각의 속도가 늦춰지기 시작함을 느낀다. 속도의 관성이 서서히 약해지자 비로소 그간의 내 행동에도 눈을 돌릴 여유가 생겼다.
지금도 매일 아침 출근 시간이면 일어나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면 하는 것도 별로 없이 하루해가 금방 가던 실망스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소중하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멍 때리는 하루가 있어도 그날에 연연하지 않는다.
익숙한 생각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겠지만 나 자신은 물론이고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바뀌었으니 생각의 관성도 바꿀 필요가 있지 않을까? 퇴직 후 삶의 기준을 전반기와 같이 할 수는 없으니 시간이나 생각과 마찬가지로 행동도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내 경우는 우선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다.
과거에는 나쁜 일이 발생하면 ‘왜 하필이면 나에게 그런 일이 발생했을까?’ 하는 생각에만 집착해 불쾌해하고 짜증을 냈다면 지금은 ‘새옹지마(塞翁之馬)’로 흘려버리는 일이 실제 많이 늘어났다. 운전을 하다가도 전방의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 있으면 초록색 불이 켜 있을 일만 남았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편하게 이끌려 하고, 연속해서 초록색 불이 켜 있으면 오늘의 뜻하지 않은 행운에 감사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리려고 한다.
물론 약속 시간에 늦었을 경우는 거리의 신호등을 모두 내 차에 맞췄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그럴 일은 이제 별로 많지 않다.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으니 조금만 일찍 출발해 세상 구경하면서 걸으면 운동도 되고 기분도 좋아진다. 좋은 생각의 관성은 나를 기분 좋게 하고 행복하게 이끈다. 결국 생각의 관성을 잘 만들어 내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요즘 뜻하지 않은 계기로 캘리그라피(Calligraphy)를 배우기 시작했다. 컴퓨터의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폰트와 달리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캘리그라피는 글자의 의미 외에 그 자체로 제작물의 내용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어 방송의 타이틀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도구다. 그래서 거의 모든 것이 디지털화된 방송국에서도 이것만은 사람이 직접 붓으로 글씨를 쓴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기존의 문화센터 수업이 끊겼다가 새롭게 개강을 하게 되자 당시 여러 가지 조건이 캘리그라피와 맞아 시작을 하게 된 것이다.
캘리그라피에 조금씩 눈을 뜨게 되자 그림에도 곁눈질이 간다. 이전에 봤던 판화가 이철수 님이 그린 촌철살인의 문장과 글씨체 그리고 단순하면서도 눈길을 확 끌어당기는 그림을 흉내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림을 배우면 나도 흉내를 낼 수 있을까?
그림이라고는 국민학교 시절에 파스텔을 도배하다시피 그린 것으로 가작(佳作)을 받은 게 최고의 결과였다. 과연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그림을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단지, 반(班)에서 나보다 잘 그리는 친구들이 많았고 그래서 나는 그림에 소질이 없나 보다 생각하고 지레 포기했을 뿐인 것이다.
내가 지금 그림을 그려서 공모전에 출품할 것도 아니고 작가가 되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뭐가 두려워서 시도조차 못한단 말인가? 지금이라도 시작해서 꾸준히 해보자는 쪽으로 생각의 방향을 바꾸고 느긋하게 마음 먹으니 전에 없던 용기도 생긴다. 혹시라도 아나? 내가 이쪽에 소질이 있다면 나는 생각지도 않던 작가가 되는 것이다.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면 몸도 마음도 덩달아 상쾌해진다^^
안 된다고 생각하면 될 일도 안 된다. 이래서 포기하고 저래서 포기하면 남은 시간에 무엇을 하면서 살 것인가? 인생 2막을 시작하는 지금이, 지난 세월이 덧없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이만하면 잘 살았다고 자족하는 지금이 생각을 바꾸기 위한 적기(適期)라고 생각한다.
좋은 생각과 좋은 습관은 나를 계속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할 것이고 나쁜 생각과 나쁜 습관은 나를 계속해서 부정적인 방향으로 몰아갈 것이다.
생각은 나를 점점 강하게도 만들고 약하게도 만든다.
바로 관성(慣性)의 힘이다.
•수상소감 - 우수상 산문 김영창
“우리는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것이지, 우리의 인생을 그만둔 것이 아니다.”
글쓰기는 퇴직 이후에 시작한 것인데 첫 공모전 출품에 상까지 받게 되니 용기백배입니다. 코 로나19가 진정되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축하 파티를 해야 하거든요.
정보를 얻기 위해 몇 가지 뉴스레터를 구독하는데 거기에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 소식이 올라와 있더군요. 제가 우리 인생학교 카톡 동기방에도 소식을 퍼 날랐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서로 만나지도 못하고 카톡에서만 글을 주고 받는데 혹시라도 동기 중 누가 당선이라도 되면 단톡방이 왁작거리지 않겠어요? 제가 지금 동기회장이라 어떻게든 분위기를 살려야 하거든요. 덕분에 목적을 100% 달성했습니다.
책을 읽을 때면 항상 발췌를 해가면서 읽었어요. 다 읽고 나면 핵심이 되는 문장을 인용한 후 거기에 제 생각을 엮어서 독후감을 마무리 하곤 했지요. 다 쓰고 보니까 뭔가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인용한 문장은 거의 대부분 빼어난 문체이거나 깊이가 있는 글이거든요. 이렇게 요약한 글은 외부에서 강의를 할 때도 자주 인용을 한답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교육 프로그램 중 ‘1인 창직과정’이 있었어요. 그때 맥아더스쿨의 정은상 교장 선생님이 매주 한 권의 책을 소개하고 독후감을 올리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정말 요약만 했지요. 그러다가 “이러지 말고 조금 더 다듬은 문장을 만들어 보자”하고 시작한 게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블로그를 만들었으니 빈 공간을 채울 콘텐츠도 필요하고 해서 산문 형태의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걸 읽어 본 창직 동기들이 용기를 주더라고요. 당신 글에 공감 가는 게 많다고요. 제가 칭찬에 특히 약한 팔랑귀라서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단편적인 생각들을 모아 보려고 합니다. 지금은 제 인생에서 가장 변화가 극심한 때거든요. 언제 까지고 다닐 것 같은 회사를 나왔지, 마땅한 일도 없지, 늙어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면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고 무기력하게 살고 싶지는 않고. 퇴직 후 인생2막을 시작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저와 같은 생각이 아닐까 싶어요. 글을 통해 솔직히 토로도 하고 용기와 격려를 주고받는 그런 글을 쓰고 싶습니다.
글을 쓸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신 정은상 선생님과 창직 동기들 그리고 우리 인생학교 중부2기 동기들을 꼽고 싶습니다. 이 분들은 모두 제가 퇴직 이후에 만난 사람들이지만 누구보다 제 삶에 용기와 격려를 많이 해 주신 분들이거든요. 아! 또 한 분 있네요. ‘눈부시게 아름다운 노후’의 저자, 헤닝 쉐르프님에게도 감사드립니다.
‘헉! 이거 뭐지? 혹시 그날 아람이가 얘기했던 게 이건가?’
누리는 미술관의 다섯 번째 전시실 모퉁이에 걸린 그림을 보다가 놀라 뒷걸음질 쳤다.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마침 까만색 유니폼을 입고 목에는 스태프 라고 쓰인 표를 달고 있는 남자가 느린 걸음으로 5전시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저 아저씨! 저 그림 좀 이상해요.”
“응? 뭐가?”
“그러니까 저게...”
하면서 누리가 다시 그림을 보니 그림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멀쩡했다.
검은 머리를 단정하게 뒤로 묶고 갸름한 얼굴에 눈에는 슬픔이 가득 담긴 채 마치 맞은편에 있는 남자 그림을 바라보는 것 같은 모습. 조금 전 누리가 봤던 그 놀라운 모습이 아니었다.
“저- 그게 저 그림이... 아, 아니에요.”
직원은 누리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더니 다시 천천히 걸으며 다음 전시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림을 보는 게 아니라 전시실에 상태를 살피는 거 같았다.
누리는 자기가 착각을 한 걸까 생각하면서도 이상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이번 전시를 오픈하던 날, 아람이가 했던 말이 떠오르자 자기가 본 것이 착각이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누리는 다시 그 여자그림 앞으로 가려다가 그만 두었다. 무슨 괴기 영화나 환타지 영화에서 본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싶으면서 지금 이 순간을 함께 해줄 사람이 그리웠다. 아람이랑 얘기를 하고 싶었다.
전시 개회식은 일주일전 목요일 오후 5시에 있었다.
할머니는 미술관을 놀이터 드나들 듯 좋아하는 누리 때문에 미술관에 자주 가시게 됐다. 그러다가 지난 가을부터 미술관에서 하는 도슨트 교육을 받으셨다. 도슨트는 미술관에서 관람객에게 전시에 대한 여러 정보와 전시물,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해주는 봉사자라고 한다. 그날 할머니가 누리에게 전시 오픈식에 참석해서 작가들을 만날 거라고 함께 가자고 하셨다. 누리는 미술관엔 자주 가서 그림과 조각들을 보았지만, 작가들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었다. 더구나 오픈식이 끝나면 맛있는 다과 파티도 있다는 할머니 말씀에 누리는 냉큼 할머니를 따라 나섰다. 그렇지만 아람이는 시큰둥했다.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아람이와 누리는 불과 32분 차이로 세상에 나왔다.
아람이는 12월 31일 밤 11시 49분, 누리는 다음 해 1월 1일 0시 21분.
부모님은 출생신고를 하면서 잠깐 같은 날로 올릴까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결국 병원에서 기록한 그대로 출생신고를 해서 아람이는 학교도 한해 먼저 들어갔다. 4학년이 된 아람이는 걸핏하면 3학년 보다 4학년이 되니 할 일이 너무 많다며 유세를 부렸다.
쌍둥이지만 둘은 비슷한 것보다 다른 면이 훨씬 많다.
아람이는 책을 좋아하고, 누리보다 덩치는 작지만 야무져서 누나답다는 얘길 많이 듣는다.
누리는 활발하고 덜렁거리는 편이다. 그렇지만 게임이나 그림 그리는 것, 만들기는 아람이보다 선수다. 그래서 할머니와 엄마는 ‘금손 누리’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오픈식 때, 아람이가 미술관 건너편에 있는 학원에서 수업이 일찍 끝났다며 미술관으로 왔다. 전시 담당 큐레이터가 인사를 하고 전시 기획의도를 알려주는 동안 할머니는 메모장을 들고 제일 앞쪽 자리로 가서 앉으셨고, 누리는 다과가 차려지는 쪽 가까이 앉았는데 아람이는 지루했는지 혼자 전시실로 들어갔다.
문화재단 대표이사가 활짝 웃으며 조선 왕릉이 세계문화유산의 반열에 오른 것은 역사적인 사건이라며 오랫동안 얘기 했다. 그다음엔 그 왕릉 중 8기가 우리 시에 있으니 큰 자랑거리라고 시장이 더 길게 길게 얘기했다. 누리가 보니 가슴에 꽃을 달고 한쪽에 쭈-욱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작가들 같았다. 작가들도 지루한지 얘기하는 시장을 보다가 바닥을 보다가 자기 손을 맞잡았다가 했다. 그때 얼굴빛이 빨갛게 상기된 아람이가 누리 옆으로 오더니,
“누리야, ‘류원’이란 화가는 어디 있어?”
하고 물었다. 행사 식이 끝나면 재빨리 좋아하는 케잌을 먼저 집으려고 음식물들이 있는 상을 보고 있던 누리는
“나도 몰라. 아직 작가들은 인사 안 했어. 저쪽에 있는 사람들 중에 있을 거야.”
하며 작가들 쪽을 가리켰다.
그때, 드디어 누구에게 감사하고, 또 누구에게 감사하고, 또, 또 누구에게 감사말씀을 전하는 바라고 말하던 시장님 얘기가 끝나고 작가들 인사 차례가 되었다.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어떤 인물과 관계된 것인지 어떤 방법과 의도로 제작한 것인지를 짧게 얘기했다. 그런데 여덟 명의 얘기가 다 끝났는데 ‘류원’이란 작가는 없었다.
사회를 보던 큐레이터가 말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는 총 11명인데 그중 세 분은 개인 사정과 해외 전시에 참여하느라 못 왔으니 양해바랍니다.”
아람이는 실망하는 표정이 되었다.
“왜 그러는데?”
누리가 이상하다는 듯 묻자,
“글쎄- 내가 잘 못 본 걸 수도 있어서......”
하다가 누리를 빤히 보며 물었다.
“너 다음에 또 올 거니?”
누리는 전시가 열리는 동안 적어도 두세 번은 관람을 하곤 했다.
집에서 10분 거리인데다가 시립 미술관이라서 입장료도 저렴하다.
또 미술관 간다고 하면 엄마는 늘 입장료에 1,000원을 더 얹어 준다.
그러니 누리에게 미술관 관람은 그야말로 1석 2조, 아니, 1석 3조도 넘는 거다.
“당연하지. 오늘은 사람들이 많아서 제대로 볼 수도 없을 걸.”
“그럼 다음에 올 때 5 전시실에 있는 ‘류원’이란 화가 그림 좀 자세히 봐줘. 정말 이상했거든.”
“뭐가?”
“그건 네가 그림 보고난 다음에 얘기 할 게.”
‘그래. 아람이도 그날, 분명 나랑 같은 걸 봤을 거야.’
마음이 급해진 누리는 여섯 번째, 일곱 번째, 그리고 마지막 전시실도 그냥 지나쳐 집으로 내달렸다.
현관문 번호단추를 빠르게 눌렀다. 운동화는 벗겨져 날리듯 흩어졌지만 그건 쳐다볼 생각도 없었다.
“아람아, 아람아 너 그거 봤지?”
급하게 자기를 찾는 누리를 보면서도 아람이는 소파에 앉아 동화책을 읽다가 느긋하게 한 마디 했다.
“저런~ 누나라고 불러야지. 3학년 꼬마야.”
“웃기지마. 너 그거 봤지, 맞지?”
“음- 너, 지금 미술관 갔다 온 거구나?”
“그래. 그 ‘류원’이란 화가가 그린 여자 그림 봤어.”
“어땠는데? 너도 이상했어?”
“있잖아. 꼭 ‘헤리포터’ 영화에서 본 그림들처럼 움직이고 나한테 말을 거는 같았어.”
“그래? 내가 볼 때도 그랬어. 근데 그거 너 혼자 봤어? 무슨 말을 했어?”
“몰라. 무서워서 뒤로 물러섰더니 원래대로 안 움직이는 그림이 됐어. 넌?”
“나도 잘 모르겠어. 갑자기 그림이 움직이면서 말하는 거 같아 얼른 밖으로 도망쳤지. 다른 사람이 하나도 없었거든.”
“나는 거기 직원 아저씨한테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림이 그대로 안 움직이는 거야. 그래서 미쳤다는 소리 들을까봐 그냥 한참 동안 서 있다가 너랑 얘기하려고 얼른 온 거야.”
“마법 그림인가? 그런 게 정말 있는가봐. 그치?”
아람이가 일어나며 말했다.
“이상해, 이상해. 우리 지금 가 보자.”
“안 돼. 지금 가도 소용없어. 미술관은 6시까지만 연단 말이야.”
아람이가 다시 소파에 앉으며 무슨 큰 결정이라도 내리는 듯 누리에게 나직이 말했다.
“우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우리끼리 비밀을 풀어 보자.”
“무슨 비밀?”
“그림 속 여자는 왜 우리에게 말을 건 것인지, 정말로 그림이 움직이는 게 우리 눈에만 보인 건지.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왜 있잖아, 동화나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거. 우리가 그 여자의 원한이나 비밀을 푸는 순수한 아이들로 선택된 걸지도 모르잖아.”
아람이는 야무지게 말했지만, 누리는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종잡을 수가 없었다.
“누리야, 우선 이번 전시의도를 알아야 하고 ‘류원’이란 화가는 왜 그런 그림을 그렸는지 알아야 해.”
“그건 어렵지 않아. 전시가 설명된 리플릿도 있고 10시, 11시, 오후 2시, 3시엔 전시를 설명해 주는 선생님들도 있거든. 아, 이번부터 할머니도 미술관에서 도슨트 하니까 할머니한테 물어보면 간단하겠다.”
“아냐. 그럼 재미없지. 우리가 선택됐으니까 우리가 해결하는 거야. 어른들에겐 비밀로 하고.”
아람이는 다시 눈동자를 굴리며 입술을 옴찔거리며 생각을 모으느라 애썼다.
“그래. 우선 전시 리플릿부터 보자. 너 갖고 있지?”
“물론이지. 난 여태껏 전시 리플릿은 다 모았다니까.”
누리가 자랑스러운 얼굴로 뒷주머니에서 리플릿을 꺼내 놓았다.
아람이와 누리는 머리를 나란히 하고 전시 설명이 담긴 네 면으로 된 리플릿을 읽었다.
앞면엔 전시 제목과 대표 작품 사진, 전시 날짜가 적혀있고, 안쪽 두 면에는 전시 내용과 사진 두 개가 있었다.
왕릉의 전설
-조선 왕족들의 미술관 행차-
은 조선왕조 500년을 이끌어 왔던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가장 화려한 삶의 중심에 있었으면서도, 권력과 명분 획득을 위한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혹독한 고독과 괴로움을 겪어야 했던 증언자들이기도 하다. 이들 왕족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처절한 주인공으로 8인을 선정하고 각 존재들에 대한 시각적 대화를 시도하는 작가 11명의 작품을 소감형식으로 구성한 전시이다.
전시의 소재가 된 왕족은 인수대비, 폐비 윤씨, 인종, 소현세자, 숙종, 희빈 장씨, 의빈 성씨, 그리고 철종이다.
왕릉이라는 신들의 정원에는 그들이 마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전설이 전해온다.
인간의 삶이 언제나 그러하듯 온전하게 충족되지 못한 애절한 마음은 후손인 우리의 심정을 흔들어 생각을 일으킨다.
사실 조선왕조의 역사적 의의가 갖는 무게에 비해 현대인들의 그에 대한 관심은 가벼웠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그 표현 중심에서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인간의 본질적 욕망과 치열한 꿈의 허상을 새로운 예술적 형식으로 보여줄 것이다.
여기까지 읽고 나자 누리가 투덜거렸다.
“이게 뭔 말이야아~? 난 짜증나.”
“어른들한테 보여주는 거라 그래. 어쨌든 조선시대 왕족들 얘기를 그린 작품이란 말이지 뭐.”
“그럼, 류원이란 화가는 누구 얘길 그린 걸까?”
누리가 마음이 급해져서 뒷장으로 넘겼다.
뒷면에는 참여 작가 11명의 이름과 간단한 작품 내용이 있었다. 문경은, 태인주, 노장현, 박영훈, 류원, 신희경, 백승민, 최원범, 우정석, 김화준, 이민숙. 누리와 아람이는 류원 작가 옆에 있는 글만 소리 내어 읽었다.
“류원은 신비한 전설 속 이야기를 끊임없이 제작하고 있는 작가이다.
이번 전시에는 고양시 서삼릉에 있는 정조의 후궁 의빈 성씨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그동안 작가가 그려오던 기법에서 크게 벗어난 새로운 시도를 엿볼 수 있다.”
“의빈 성씨 얘기라고?”
아람이는 의빈 성씨를 아는 거 같은 표정이었다.
“그게 누군데? 너 알아?”
“응.”
“어떤 사람인데?”
아람이가 좀 뻐기는 표정으로 누리에게 말했다.
“누나, 아니 '누님 알려 주시옵소서.'하면 가르쳐 주-지.”
“야! 겨우 32분 먼저 태어났다고 그 소릴 듣고 싶냐? 나 같으면 그냥 친구먹자고 하겠다.”
“싫음 말구.”
“어-휴!”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궁금증이 풀릴 열쇠인 것만 같아서 누리는 ‘이번만’하는 맘으로 더 과장되게 아양을 떨었다.
“누님, 저는 의빈 성씨가 누구인지 매우, 매우, 매우 궁금하옵니다. 알려 주시옵소서.”
“좋다! 내 알려주지. 잠시만 기다리거라.”
그러더니 아람이는 누리에게 의빈 성씨가 누구인지 얘기는 않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왜? 가르쳐준다면서 왜 가?”
아람이는 책 한 권을 들고 나오며 말했다.
“내가 좀 똑똑한 편이기는 하지만 그걸 다 외우는 건 아니쥐이. 여기 봐-.”
아람이는 ‘조선왕조실록’이란 만화책권을 펴서 195쪽에 있는 ‘제 22대 정조 가계도’를 손가락으로 톡톡 가리켰다.
거기엔 정조 밑으로 ‘효의왕후 김씨(1753~1821)- 후사 없음’ 이라 적혀 있고, 그 다음 줄엔 ‘의빈 성씨(1753~1786)-1남, 문효세자 일찍 죽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림 속 여자가 이 사람이구나. 그런데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거야?”
“이거 봐. 의빈 성씨는 겨우 서른네 살에 죽었어. 그러니까 뭔가 사연이 더 있을 거야. 이 책에서 보면 화빈 윤씨가 미워한 거 같거든.”
아람이는 입을 야무지게 다물더니 말했다.
“그래서 화빈이 의빈 성씨를 죽였대?”
“아니. 그런 건 없어. 그렇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원한이 있어서 우리한테 말을 걸었는지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알아내야지. 그림 속 여자가 우리한테 하려고 하는 말도 뭔지 알 수 있고, 영혼을 달래줄 수도 있겠지.”
“하~ 아람아! 내가 보기엔 넌 이상한 책을 너무 많이 읽은 거 같아.”
“뭐라구? 너도 그림이 움직이면서 말하는 거 봤다며? 얼마나 억울하면 그림이 말을 다 하겠니?”
“엄마랑 아빠한테 물어 보자. 아니 이따가 할머니한테 물어 보는 게 낫겠다.”
“안 돼, 안 돼. 하지 마! 이렇게 재밌는 사건이 우리 평생에 얼마나 있겠어? 어쩌면 이건 우리 생애 최고로 짜릿한 비밀을 만들 수 있는 기회란 말이야.”
“치~ 비밀 만들고 싶은 거야?”
“동화를 읽다보면 비밀이나 엄청난 사건이 생겨서 주인공이 재미난 경험을 하는데, 우린 언제 그런 일이 생기겠어? 만날 똑같은 날이니... 그러니까 너랑 나, 둘이서만 이 문제를 풀어보자고. 내가 너한테 슬라임 전부 다 줄게.”
“진짜? 앗~싸~. 그러지 않아도 만들고 싶은 게 있어서 엄마한테 사달라고 조르려고 했는데... 좋아! 어떻게 하면 돼?”
“우선, 의빈 성씨에 대한 자료를 더 찾는 거야. 그리고 미술관에 가는 거야. 사람들이 없는 시간에.”
“사람들이 없는 시간을 어떻게 알고? 5 전시실에서 사람들이 나가길 기다려야 하나?”
“그렇지! 자, 이제 자료를 어떻게 찾는다? 도서관에 가야 할까?”
“에이 바보! 컴퓨터로 인터넷 검색을 하는 게 빠르지.”
아람이는 민망한 듯,
“아하하... 그렇구나. 근데 조금 있으면 엄마랑 아빠 집에 올 시간이야. 그니까 일단 오늘은 숙제 하는 척 하면서 이 책을 보고, 내일 학교 갔다 와서 찾아봐야지.”
“와~ 철저하네. 난 그냥 내일 학교 끝나고 곧장 미술관에 가서 의빈 성씨랑 단판을 내고 싶구만...”
다음 날 오후, 누리는 학교 운동장에 땀을 흘리며 친구와 축구공으로 놀고 있는데 아람이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누리야, 누리야아~~ 지금 미술관 가자~~”
“너네 누나도 미술관 좋아하냐? 이상한 남매야. 나도 이제 학원 가야겠다.”
하며 친구가 교문밖으로 나갔다.
“나 입장료도 없단 말이야.”
누리는 아람이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야! 내가 누구냐? 초대권을 할머니한테 두 장 받았어. 그리고 인터넷 검색은 아까 점심시간에 도서실에서 해놨고.”
“역시! 짱인데.”
“학습지 선생님 올 시간 맞추려면 빨리 갔다 와야 해. 뛰자~”
1 전시실에서 4 전시실까지는 건너뛰고 5 전시실로 들어간 아람이와 누리는 다른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의빈 성씨의 그림 앞으로 다가갔다.
아주 잠깐, 그림은 그림인 채로 있었다. 그런데 그림 앞 1m 정도로 바짝 다가가자 그림이 움직이며 말을 걸었다.
“어서오세요.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헉! 정말요? 왜요?”
누리가 깜짝 놀라 물었고, 아람이도 서둘러 말했다.
“무슨 사연이 있으신 거죠? 혹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셨나요?”
“아~ 글쎄... 왜 그렇게 생각지?”
“내가 다 찾아봤어요. 이름은 성덕임이고, 정조 임금님이 무척 사랑했고, 아들인 문효세자는 다섯 살에 죽고, 딸도 태어나서 첫돌도 안 돼서 죽었잖아요. 또 세 번째 아기를 낳기 두 달 전에 죽은 것도 알아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 아닌가요?”
“어머나! 나에 대해서 많은 걸 공부했구나? 고맙다. 그렇지만- ”
그때, 세 사람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5전시실로 들어 왔다.
“아니, 이게 누구야? 우리 아람이랑 누리네! 책가방도 메고 있는 걸 보니 학교에서 곧장 왔구나?”
“네, 할머니.”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며 그림을 돌아보니 그림은 다시 멈춰 있었다.
아람이와 누리는 눈을 맞추고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망설였다.
그런데 그림이 다시 움직이며 말을 시작했다.
“정조 임금님과 나는 금슬 좋은 부부였지요. 정조 임금님은 내가 죽은 후 저를 애도하는 글을 많이 써 주셨지요. 저는 지금도 그분이 그리워 이렇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답니다.”
눈이 휘둥그레진 누리와 아람이와는 달리 할머니와 다른 두 분은 웃으며 그림을 향해 인사했다.
“수고가 많아요. 박선생님!”
다시 또 놀란 누리가 물었다.
“할머니! 어떻게 된 거에요?”
“이런 작품은 누리도 처음 보지? 이런 작품을 ‘인터렉티브 아트’라고 하는 거야. 테크놀러지가 결합되어 관객을 만나야 완성되는 작품. 관객들이랑 얘기도 나눌 수 있어.”
“그럼 그림 안에 AI라도 들어 있는 거예요?”
이번엔 아람이가 물었다.
할머니가 바닥의 한 부분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그건 아니고 여기 이 지점에 사람이 서면 센서가 작동해서 관람객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그림 뒤에 숨어 있는 분이 말을 하는 거지. 그러면 디지털로 된 그림이 움직이는 거야.”
“그림 뒤에 있는 분은 우릴 볼 수 있어요?”
“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보지는 못 해. 컴퓨터를 앞에 놓고 검색어를 치면서 여러 가지 질문에 답도 해야 하니까. 하하, 내가 비밀로 해도 될 걸 너무 많이 알려준 건가?”
그제야 아람이와 누리는 모든 게 이해되었다. 그러면서도 누리는 디지털 그림이 너무나 감쪽같아 놀라웠고, 아람이는 신비한 경험을 놓친 거 같아 크게 서운했다.
나중에 아람이와 누리에게 둘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얘기 듣고, 할머니는 즐겁게 웃으며 말했다.
“애들아! 할머니는 너희들 덕분에 미술관에서 새로운 걸 많이 배우고 또 그걸 여러 사람과 나눌 수 있어서 참 좋구나. 더구나 그림 하나가 호기심을 자극해서 이렇게 배워나가는 아람이랑 누리를 보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
•수상소감 - 우수상 동화 배홍숙
“동화나 그림책을 쓸 땐 내 생각이 신기해 기분이 좋아져요”
감사합니다.
블로그에 동화를 몇 편 써 두고 공개는 안했는데,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에 처음 응모해서 이렇게 상을 받으니 많이 기쁩니다.
독서 동아리 회원이 공모전이 있다고 단톡방에 링크를 걸어주셨어요. 그 분도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응모 부문에 동화가 있어 용기를 내봤습니다. 어쩌면 50대 이상이 참가하는 거라면 동화 부문 응모자가 적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면서…
글쓰기 관련 책을 보기도 하고, 강의도 가끔 듣습니다. 함께 독서동아리 활동을 하는 친구들과 가족, 제가 하는 모든 활동이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적극적인 글쓰기엔 특별한 동기가 필요한 거 같아서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 이후에 다른 공모전이 있나 살펴보고 있습니다.
어떤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고 요청이 온다면 글쓰기에 더 큰 동기부여가 될 것 같네요.
내가 쓴 에세이는 항상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화나 그림책을 쓸 땐, 내가 해낸 생각들이 신기해서 기분이 좋아지고요.
그래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동화나 그림책 글을 계속 쓰면서, 감동을 주는 좋은 수필도 쓰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공모전 정보를 주셨던 선생님, 잘못된 파일 경로를 수정하라고 알려주신 담당자에게 감사드리며, 독서동아리 친구들과 어린 시절에 많은 얘기를 들려주셨던 엄마와 외할머니, 응원해 주는 식구들에게도 감사함을 전합니다.
지난주에 작은 우체통 하나가 놀이터에 생겼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인 은지가 좋아하는 노란색이었고 작은 집 모양의 우체통이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나는 마음 우체통이에요. 누구와도 말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말을 편지로 써서 보내주세요. 비밀도 보장해주고 답장도 해드려요.’ 라는 설명이 우체통 아래에 붙어 있었습니다. 안내문을 슬쩍 읽고 난 은지는 며칠 째 낯선 우체통 앞을 그냥 지나쳐 집으로 갔습니다.
은지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엄마가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은지 왔구나. 학교 수업 잘 했어?”
은지는 무심한 듯 “네.”라고 답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엄마는 실망했지만 다시 목소리를 높여서 은지의 방을 향해 물었습니다.
“은지 좋아하는 피자해 놨는데 먹을래?”
은지는 이번에도 짧게 “아뇨.”라고 대답했습니다.
엄마는 한 숨을 쉬며 무슨 일을 해야 할 지 생각하다가 정원으로 나갔습니다.
‘볕이 참 좋네.’ 엄마는 두 팔을 벌리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하늘을 쳐다보고 난 후, 멀리 보이는 놀이터의 우체통에 눈길을 주었습니다.
빨랫줄의 빨래가 바람에 펄럭였습니다. 엄마는 은지의 바지와 원피스와 티셔츠를 걷어서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소파에 빨래를 놓고 맨 위에 있던 청바지부터 개키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낡아서 입지 못하겠네.’ 엄마는 실밥이 터지고 무릎 부위가 두 주먹만큼 뚫린 바지를 옆으로 치웠습니다. 새 바지를 사 주면 은지가 좋아할 거라는 상상을 했습니다. 새엄마라서 헌 옷만 입힌다는 오해를 받을까봐 걱정도 되었습니다. 나머지 옷들도 차례대로 개키면서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은지가 마음을 열까, 어떻게 해야 은지의 말수가 늘까.’
은지 엄마는 삼 년 전에 교통사고로 은지 곁을 떠났습니다. 그 충격으로 다섯 살이었던 은지는 말을 잃었고, 다행히 작년부터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아빠의 노력이 컸습니다. 아빠는 일주일에 두 번씩 회사에 조퇴를 하고 은지를 심리상담 센터로 데리고 갔습니다. 거기서 은지는 아빠랑 함께 미술치료를 받았습니다. 상담 선생님이 소풍가는 사진을 그리라고 하면 은지는 자신과 아빠 사이에 엄마를 그려 넣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림 속의 엄마는 아빠나 은지보다 두 배로 컸습니다.
“은지, 이건 뭐야?”
“엄마소예요.”
“이건?”
“엄마나무예요.”
동물을 그리건, 식물을 그리건, 늘 은지의 도화지엔 엄마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아빠는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두 시간씩 은지와 놀아주었습니다. 아빠가 퇴근해서 오기까지 세 시간 동안은 은지를 위해 돌봄이 선생님이 와주셨습니다. 은지가 유치원에서 끝나면 돌봄이 선생님이 데리러 가서 같이 손을 잡고 집으로 왔습니다. 돌봄이 선생님은 은지가 종이접기를 했고, 사과를 두 쪽 먹었고, 기분이 좋아 보인다는 등 그날그날의 일을 은지 아빠에게 상세히 전달했습니다. 은지 아빠는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 같아서 안심이 되었습니다. 은지도 돌봄이 선생님을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삼 년을 지낸 은지는 돌봄이 선생님과 친해졌습니다. 은지의 아빠도 선생님과 친해졌습니다. 주말에 세 사람이 함께 놀이동산에 놀러가기도 했습니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은지 아빠와 돌봄이 선생님은 결혼을 했습니다.
“은지야, 선생님과 결혼해서 같이 사는 건 어때?”라고 아빠가 물었을 때 은지는 애매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은지는 결혼식 날, 꽃분홍 드레스를 입고 빨간 융단위에 꽃을 뿌리는 역할을 잘 해냈습니다. 하지만 새엄마와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아빠가 은지와 놀아주는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아빠는 밀렸던 회사 일을 해야 했습니다. 아빠 대신 엄마가 동화책도 더 읽어주고 많이 놀아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은지, 잘 자. 자다가 무서운 꿈꾸면 언제든지 안방으로 와.”
엄마가 은지의 잠자리를 봐주고 떠날 때 하는 말이었습니다. 엄마가 방의 불을 끄고 나가면 은지는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나란히 누워 있을 아빠와 엄마를 생각하면 아빠를 빼앗기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엄마가 좋은 사람이란 걸 알면서도, 엄마가 아빠한테 잘 하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되고 아빠가 엄마한테 잘 할 때는 골이 났습니다. 선생님으로서 하루에 세 시간씩 돌봐줄 때와 엄마로서 매일 함께 지낼 때와는 느낌이 달랐습니다.
엄마가 된 선생님은 집이 지저분하다며 이것저것 버리자고 했습니다.
“아빠가 바빠서 대청소할 시간이 없었나봐.”
은지는 싫었습니다. 친엄마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을 하나도 버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은지 마음을 엄마뿐 아니라 아빠도 알 지 못했습니다.
“싫어, 싫어.”
떼를 쓰는 은지에게 아빠가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은지가 고집이 심하네. 너무 오래 되고 망가져서 쓸 수가 없다고. 더 좋은 걸로 사줄게.”
은지는 문을 쾅 닫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한참을 울었습니다. 은지는 점점 아빠와 엄마가 섭섭했습니다. 은지가 말을 잘 하지 않아서 답답한 아빠와 엄마는 잠들기 전에 은지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러다가 엄마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다음날, 엄마는 인터넷으로 주문한 재료를 이용하여 우체통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삼 일 후에 예쁜 우체통이 식구들 모르게 만들어졌습니다. 엄마는 사람들이 없는 틈을 이용해서 우체통을 놀이터에 있는 큰 나뭇가지에 얹어놓았습니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노란 우체통으로 놀이터가 환해졌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좋아했습니다. 표현을 하지 않아서 은지의 마음을 알 수 없던 엄마가 슬쩍 물었습니다.
“놀이터에 이상한 물건 있는 거 봤어?”
“네.”
“예쁘지?”
“네.”
그뿐이었습니다. 엄마는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은지가 학교에 간 사이에 한 번씩 놀이터로 가서 자물쇠를 열었습니다. 편지가 한 통, 두 통씩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편지마다 정성들여 답장을 썼습니다. 편지 내용은 여러 가지였습니다. 동생이나 친구 흉보는 편지도 있었고 욕을 써 넣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중 엄마에 대한 불만의 편지가 제일 많다는 점에 은지 엄마는 놀랐습니다.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고, 엄마는 가족 중에 잔소리하는 역할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아이들의 마음을 전보다 더 잘 알게 되어서 기뻤습니다. 엄마는 편지가 늘어날수록 답장을 써야할 시간도 늘었지만 막상 기다리던 은지의 편지는 없었습니다.
우체통 앞을 지나치던 은지가 이번엔 걸음을 멈추더니 뒤를 돌았습니다. 우체통을 한참 쳐다보다가 가방을 열어서 노란 편지봉투를 꺼냈습니다. 두 손으로 우체통에 밀어 넣었습니다. 톡,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습니다. 미루던 숙제를 끝낸 것처럼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그때부터 은지는 답장이 올 날만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거짓말처럼 하늘나라 엄마의 답장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지런히 걸어서 집에 도착했습니다. 거실 창으로 엄마가 지켜보고 있단 사실을 은지는 몰랐습니다.
“은지,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이네.”
엄마가 은지의 표정을 살폈습니다. 이번에도 은지는 “네.”라고만 답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나는 새엄마가 좋으면서도 싫어요. 친구들이 새엄마 생겼다고 소곤거리는 것도 싫고, 새엄마와 종일 뭐하고 지냈냐고 아빠가 묻는 것도 싫고, 새엄마가 친엄마의 물건들을 내다 버리는 것도 싫어요. 점점 싫은 게 많아져서 싫어요.’
엄마는 은지가 학교에 간 사이에 편지를 꺼내 읽었습니다. 은지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해 미안했습니다. 고민하다가 답장을 썼습니다. 며칠 후 편지는 우편배달부를 통해 은지 집에 도착했고,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편지를 은지의 책상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와서 편지를 발견한 은지는 기뻤습니다. 은지는 노란 편지봉투를 뜯고 편지를 꺼내서 읽었습니다.
‘은지, 편지 잘 받았어요.
나도 은지처럼 어려서 싫은 것 투성이었어요. 엄마도 싫고, 아빠도 싫고, 친구도 싫고, 학교 가기도 싫고. 우리 통하네요. 그런데 싫은 걸 표현 안하고 참고 있으면 상대방이 몰라요. 내가 화가 나서 엄마한테 참았던 말을 쏟아 부었어요. 엄마는 이래서 싫고, 저래서 싫어! 듣고 난 엄마가 놀라면서 말했어요. 진작 말하지, 맘을 몰라줘서 미안하다고.
은지도 싫은 것들에 대해서 엄마한테 말해보면 어때요? 예를 들어, 은지가 물건을 버리기 싫은 이유를 설명하면 엄마가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요? 말로 하기 힘들면 편지를 남기는 건 어떨까요?’
편지 끝에 세 잎 클로버가 그려있었습니다. 전에 엄마가 세 잎 클로버의 의미를 말해준 적이 있습니다. 네 잎 클로버는 귀해서 ‘행운’의 뜻이 있고,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의 의미가 있으니, 네 잎 클로버 하나보다 세 잎 클로버가 많을수록 좋다고.
은지는 세 잎 클로버를 보니 행복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편지를 보낸 사람의 이름은 없고, ‘마음 우체통으로부터’라고만 적혀있었습니다. 누가 보내준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은지는 답장을 쓴 사람이 하늘에 있는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만한 나이였습니다. 은지는 편지를 책상 서랍 깊은 곳에 숨겨두었습니다. 답장에 있는 대로 하진 않더라도, 남의 흉을 본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은지는 또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답장을 기다렸습니다. 마치 은밀한 비밀 모의를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었습니다. 학교 갈 준비를 마친 은지가 낡은 청바지를 찾았습니다.
“너무 낡아서 며칠 전에 버렸는데......"
은지가 엄마를 노려보면서 소리 질렀습니다.
“미워, 미워. 내가 제일 아끼는 바진데......”
“미안해, 은지야, 도저히 입을 수 없는 상태야. 더 좋은 걸로 사줄게.”
은지는 막무가내였습니다. 마음 우체통의 답장처럼 엄마한테 청바지를 아끼는 이유를 말하지 않은 게 은지는 후회되었습니다.
엄마는 겨우 은지를 달래서 학교로 보내고 주민센터로 급히 전화를 걸었습니다. 헌옷 가져가는 트럭이 은지 동네 옷을 조금 전에 가져갔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엄마는 차키를 들고 달려 나갔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다 발목을 삐끗했습니다. 절룩거리면서 차로 가서 올라탔습니다. 차에 시동을 걸고 주민센터에서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급한 사정이 생겼으니 차 좀 멈춰주세요. 금방 도착합니다. 제발 사정이 있어서 그러니 기다려주세요.”
엄마는 마음이 초조했습니다. 운전을 하면서 서럽게 울던 은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엄마가 그리워서 은지가 물건들을 못 버리게 한 거구나.’ 뒤늦게 은지의 마음을 알게 된 엄마는 부끄러웠습니다.
엄마는 힘들게 헌옷을 수거해 간 차를 발견하고 무사히 은지의 낡은 청바지를 찾아왔습니다. 곱게 접어서 편지를 쓰던 서재의 책상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바지를 찾아오느라 오전을 다 소비해버렸기 때문에 답장은 밤에 잠을 줄이고 써야 했습니다. 당장은 밀린 청소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땀을 흘리면서 부지런히 청소를 마친 엄마는 은지가 오길 기다렸습니다.
은지가 현관 도어락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엄마가 서재에서 바지를 뒤에 감추고 나왔습니다. 화가 풀리지 않은 은지는 신발을 함부로 벗어던졌습니다. 인사는커녕 엄마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엄마가 낡은 바지를 내밀었습니다. 은지는 얼굴 표정이 바뀌더니 깡충깡충 뛰었습니다. “그렇게 좋아? 맛있는 간식 만들어 줄게.”
엄마가 돌아서다말고 신음 소리를 내며 어쩔 줄 몰랐습니다. 아까 옷을 찾으러 가다가 삐끗한 발목이 아팠습니다. 그때 서재에 있던 엄마의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울상이 된 엄마가 말했습니다.
“은지야, 휴대폰 좀 갖다 줄래?”
은지는 얼른 서재로 달려갔습니다. 책상위에서 벨소리가 나고 있었습니다. 휴대폰을 집으려는데 책상위에 쌓여있는 온통 노란색의 편지봉투와 편지지가 보였습니다. 익숙한 글씨체였습니다. 편지 끝에 세 잎 클로버도 그려져 있었습니다. 은지는 놀랐습니다. 잠시 생각에 빠져있는 은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못 찾았니?”,
“가요.”
은지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휴대폰을 엄마에게 주었습니다. 벨소리가 멈췄습니다. 엄마는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고 나서 은지에게 물었습니다.
“청바지가 너무 찢어졌는데 입을 수 있겠어?”
은지가 밝은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저도 입을 수 없는 거 알아요. 하지만 그래도 갖고 있을래요.”
“그 바지를 은지 방의 벽에 멋지게 걸어 두는 건 어떨까? TV에 나오는 언니, 오빠 방을 보면 연예인 사진이나 천 조각을 붙여두는 것처럼.”
“너무 멋진 생각이에요.”
은지는 손뼉을 치며 잇몸이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었습니다.
며칠 후에 엄마는 은지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엄마, 감사해요. 제가 엄마의 비밀을 알아버렸거든요. 이제 아빠 몰래 엄마랑 저만 비밀을 나누는 거예요. 앞으로 잘 할게요. 친엄마도 내 엄마고, 새엄마도 내 엄마에요. 저는 엄마가 둘이라서 두 배로 행복해요.’
편지 끝에는 세 잎 클로버가 빼곡히 그려있었습니다.
그 후로도 마음 우체통은 거기에 있었고, 여전히 은지는 편지를 쓰고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낡은 청바지가 벽에 걸려있는 자기만의 방에서.
ㆍ수상소감 - 쏠드상 동화 박상미
“성인이 돼 읽은 동화, 신선하면서도 잊고 있던 사실을 일깨워 줘”
기쁘면서도 어리둥절합니다.
몇 년 전에 서랍 정리를 하면서 어쩌다 한 번씩 써 놓은 이십여 년 전의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읽다보니 가슴이 답답해졌어요. 내 맘조차도 상세히 적어 내려가지 못한 어설픈 문장들, 막연하고 추상적인 단어들의 나열,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한정적 어휘나 표현 방식. 일기장을 덮고 나니 글에 시멘트가 발린 느낌이었어요.
내 몸에 음식을 잘 넘어가게 하는 기관인 식도가 있듯이, 내 감정을 체하지 않고 잘 넘어가게 하는 방법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지요. 글쓰기 강의를 신청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직장 근무시간을 피해서 들을 수 있던 장르는 소설밖에 없었습니다. 얼떨결에 단편 소설을 읽고 쓰기 시작했지요. 처음엔 소설을 쓴다는 행위가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불편했지만, 쓰고 보니 유치하면서도 신기했어요. (초등학교 때 아이들 모아놓고 꾸며낸 얘기를 해줄 때는 거짓말 한다는 의식이 없었거든요.) 그러면서 책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고, 소설 한 권, 한 권이 나올 때마다 작가가 얼마나 진통을 겪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미술도, 음악도 마찬가지겠지만 글쓰기도 ‘주기’가 있어서 어떤 느낌이 오면 글이 술술 나오는 듯하다가, 한 줄도 못 쓰고 몇 주를 흘려보내기도 하고, 심지어 글 쓰는 실력이 후퇴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1년에 4편의 단편을 쓴 적도 있지만, 작년부터는 코로나로 인한 우울과 두 번에 걸친 수술로 인해 다리가 아프니까 근력도 빠지면서 몸 전체가 병들어가는 느낌이었어요. 직장을 그만둔 터라 시간은 많은데 글이 써지기는커녕 오히려 머리에 박스를 뒤집어쓴 기분이었습니다. 소설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만 가진 채 애꿎은 텔레비전 리모컨만 눌러댔지요. 그러다가 예능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고, ‘우체통’ 이란 모티프를 건지게 되었고, 동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쓰기를 시작한 이래로 동화를 쓰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던 터에, 이만교 작가 수업을 들으면서 몇 편의 동화를 읽게 되었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서 이만교 작가님께 감사 말씀 드립니다.) 성인이 되어 읽은 동화는 신선하면서도 잊고 있던 사실을 일깨워주었어요. 동화 속에는 무한한 상상의 세계가 있고 불가능이 없는데, 동화를 읽고 자란 어른이 된 나는 왜 상상력이 줄어들고 있을까. 줄어든 상상력 자리에 편견과 선입견이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군다나 필명을 ‘상상’이라고 지었는데.
가장 인상에 남은 동화는 미셀 누드슨의「도서관에 간 사자」였습니다. 읽는 내내 웃음이 나왔어요. 편견을 허물고 융통성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 규칙을 만들 때 예외를 둘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내용. 읽고 나서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읽을 수 있는 동화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생각이 연장되다 보니 한 편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때 써놓은 작품과 이번에 응모할 작품을 초등학교 3학년 조카한테 읽어보라고 했지요. 응모작인 ‘마음 우체통’은 재미있고 주인공의 마음이 잘 전달되는데, 전에 써놓은 작품은 덜 감각적이라는 답이 돌아왔어요. “감각적이란 게 무슨 말인지 설명해줄래?”라고 물었더니 조카가 대답했어요.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소리는 귀에 대고 듣는 것처럼, 묘사는 진짜 보는 것처럼 써야 한대요.” 입이 벌어졌지요. 내가 조카 나이 때 그런 생각을 못했거든요. 소설 수업에서 과제물로 썼던 동화는 슬그머니 서랍 안에 넣어두고, 조카의 칭찬을 받은 최근 작품으로 응모를 하게 되었습니다. 조카는 수상 소식을 듣고 신기해했어요. 고모가 유명한 동화작가라도 된 듯.
이제 조카는 나의 1호 평론가가 되었답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동화를 계속 쓰고 싶습니다.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가 읽고 나서 기분이 좋아지는……
같이 소설 공부하는 문우가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공고를 보고 ‘여기에 당선되는 사람들은 좋겠다’는 생각만 하고 말았지요. 잊고 지내다가 응모 기간 일주일을 남겨두고 느닷없이 동화 소재거리가 생각났고, 몇 시간 만에 써 내려갔습니다. 시간을 투자하고 힘들게 만든 곡보다, 갑자기 악상이 떠올라서 몇 분 만에 쓴 곡이 의외로 인기가 더 많은 경우가 있다는 작곡가의 말이 떠올랐어요. 문제를 아무리 해결하려고 해도 풀리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예상과 반대로 빨리 풀리기도 하는 삶의 과정과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을 하든 포기하지만 말고 꾸준히 하자고 오늘도 나 자신을 독려합니다. 그러다 보면 나의 뮤즈를 만날 수 있으니까요.
시니어 문학이 자리를 잡아갈 수 있도록 장(場)을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떻게 해야 관람객을 더 끌어들일 수 있을까? 이는 미술관 운영자들의 공통 관심사다. 정성껏 성찬을 차렸으나 풍미를 즐겨줄 객이 드물다? 이건 참 난처해 고민할 수밖에 없다. 머리를 쥐어짜 새로운 아이디어를 고안해야 한다. 다양한 맥락을 살펴 개발한 매력적인 콘셉트로 미술관의 흡입력을 키워야 하는데, 구하우스(Koo House)는 특별한 대안을 찾아냈다. 여느 미술관에서 볼 수 없는 흥미로운 게 이 미술관에 있다.
책 안 읽고 그림 감상 안 하는 스마트한 무뇌 사회. 이렇게 사이버 세상의 풍속을 야박하게 깎아내리는 관점이 흔하다. 이를 무모한 견해라 할 수 있으랴. 그러나 감성과 감각의 충전 기회를 갖지 못해 목말라하는 이들이 많다. 미술 작품은 어렵다는, 심지어 괴롭다는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쉽고 편한 미술관을 찾지 못해 불만인 이들도 많을 것이다. 구하우스는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미술관’을 표방하며 2016년에 개관한 사립미술관이다.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냇가에 있다. 냇물 저 건너로는 시퍼런 산야가 넘실거린다. 자연에 슬쩍 한 자락 걸친 미술관이다.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미술관’은 사실 모든 미술관이 추구하는 이상적 방식이다. 편리와 안락감을 좋아하는 고객의 니즈를 모를 바보가 어디 있겠나. 그러나 다분히 정형화된 관습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구하우스는 흔한 틀을 깼다. 미술관을 아예 ‘집’처럼 구성했으니까. 건물부터 그다지 튀는 것 없이 평범한 편이다. 설계자는 2014년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건축가 조민석 씨. 그는 개성과 품격을 겸비한 구하우스 건물을 지었다. 그러나 기발하거나 묘한 미감을 살리는 데 초점을 맞춘 건축은 아니다.
전시실의 구색도 색다르다. 휑한 화이트 큐브 일색에서 벗어나 가정집 분위기를 애써 돋우었다. 전시실에 붙은 이름도 대담하다. 리빙룸, 다이닝룸, 라이브러리, 베드룸, 패밀리룸 등으로 명명했으니 말이다. 이름만 집처럼 달고 있는 게 아니다. 전시장의 꾸밈새 역시 이름에 걸맞은 내용물로 채웠다. 한마디로 내 집 안을 술렁술렁 편하게 돌아다니는 기분으로 작품 감상의 용무를 볼 수 있는 미술관이다. 곳곳에 놓인 의자나 소파는 대부분 작가들의 창작품이지만 편하게 앉아 쉴 수 있다. 괜히 사람 기죽이는 근엄한 미술관과 딴판이니 흥미롭다. 그렇다면 전시 작품의 질도 가정적이라서 소박할까? 아니다. 별 감흥 없는 범작들이 내걸린 전시장처럼 섭섭한 게 없는데, 이 미술관의 작품들은 흔히 격조가 넘친다. 최현진 학예실장의 얘기는 이렇다.
“집처럼 편한 분위기와 자연스러운 전시 방식을 도모했다. 관람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문턱 낮은 미술관! 이게 우리의 콘셉트다. 그런데 작품의 내용에는 다들 놀란다. 의외로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이 많아서다.”
이름난 작가들의 작품이 흔하다
그림을 볼까. 1층 전시장의 절반쯤 되는 공간에서 현재 특별한 기획전이 펼쳐지고 있다. 구하우스의 12회 기획전 ‘데미안 허스트-새로운 종교’전이다.(11월 21일까지) 데미안 허스트는 1991년 첫 개인전에서 상어의 시체를 유리관에 담은 기괴한 작품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작가다. 현재 허스트의 작품 가격은 피카소의 작품 값을 뺨칠 기세로 맹위를 떨친다. 구하우스의 이번 전시회에서는 의약품을 소재로 한 그의 연작을 만날 수 있다. 의학이 종교의 아성을 딛고 ‘새로운 종교’로 기능하는 추세를 은유한 작품들이다. 대리석으로 조각한 거대한 해열진통제엔 ‘성체’(聖體)라는 제목을 붙였다. 미사 전례에 쓰이는 면병(麪餠)을 연상시키는 이 발칙한(?) 조각은 현대 의약품이 예수의 피와 살에 육박하는 성물임을 암시한다. 의약에의 과도한 의존을 풍자한 반어법일 수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의약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의도로 기획한 전시회다.
구하우스는 설립자인 구정순 관장의 컬렉션을 기반으로 삼은 미술관이다.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그는 수십 년간 모은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 400여 점으로 구하우스를 세웠다. 데미안 허스트의 기획전에 나온 작품들 외의 모든 작품이 그의 소장품이다. 재미있는 건 이름난 작가들의 작품이 흔하다는 점이다. 주로 현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컬렉션이기도 하다. 찻잔이나 인테리어 장식물 등 소소한 공예품도 양념으로 곳곳에 진열해 디테일을 완결했다. 볼 것 많고 즐길 것 풍성한 미술관이니, 무심코 왔다가 팔짝 뛸 듯이 반색하는 관람객들이 많다는 학예실장의 얘기가 그럴싸하다.
관람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전시장은 라이브러리라고 한다. 1층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옆에 있는 이곳엔 프랑스의 조각가 자비에 베이앙의 작품 ‘모빌’이 있다. 근대건축의 아버지 르코르뷔지에를 오마주한 작품이다. 라이브러리의 구색이 완연해 ‘집 같은 미술관’을 표방한 구하우스의 지향을 직감할 수 있는 이 전시장의 안짝엔 침대와 화장실을 설치한 소공간이 있다. 이 역시 유명 작가의 작품이다.
1층 벽면 하나를 통째로 채우다시피 한 대형 작품 ‘Pictures at an Exhibition’은 이 시대 최고 작가의 하나로 꼽히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사진 드로잉 작품이다. 미술관의 작품을 볼 때 작가 이름표에 너무 마음을 빼앗기는 건 옹졸한 짓일 수 있다. 작가의 이름을 몰라도 감흥의 파장은 일렁거리기 때문이다. 내 취향과 안목으로 고른 작품이면 걸작이지 않겠는가. 그러나 대가가 괜히 대가이랴. 영혼까지 뒤흔드는 그 뭔가를 그리고서야 대가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구하우스에서 데이비드 호크니를 만난 즐거움이 크다.
2층 전시장에도 거장들의 작품이 즐비하다. 피카소, 앤디 워홀, 백남준, 줄리안 오피, 막스 에른스트 등의 작품을 보느라 숨이 차다. 눈을 들이박고 봐야 할 작품들이다. 능란한 화가의 솜씨는 마법을 닮아 손바닥만 한 그림에도 백 가지 세계를 담는다. 좁쌀 한 알에 만화경을 후벼 넣는다. 그걸 주마간산 격으로 볼 수밖에 없는 짧은 안목에 속이 켕긴다.
전시장의 가지런한 동선은 고즈넉한 정원으로 이어진다. 막판엔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설치한 별관에 닿는다. 터렐은 ‘빛의 예술가’다. 빛을 ‘묘사하는’ 게 아니라 빛을 ‘사용해’ 만든 작품으로 명성을 날린 화가다. 빛을 버무린 몽환적인 동영상으로 관객을 명상에 빠트린다. 터렐의 작품을 막바지에 보게 한 건 기똥찬 한 수다. 관람객에게 자신의 내면을 그림처럼 바라보게 하는 명상의 시간을 제공하니까. 전시장 그림들을 포식한 뒤 나오는 디저트가 이렇게 맛있다.
까르르 웃는 소리, 뭐라 외치는 높고 맑은 아이들 목소리가 저 아래 공원에서 들려온다. 그 소리가 창문을 열게 한다. 미세먼지 때문에 잘 열지 않는 창을 목을 빼고 내려다본다. 아이들이 마주 앉아 그네도 타고, 잔뜩 매달려 빙글빙글 빨리빨리 돌아가고도 있다. 겁이 나는데, 아니 걱정이 되는데 아이들은 겁도 없이 타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며 잘도 돌아간다.
우리 아파트는 가족공원을 안고 있어서 좋다. 오명가명 아이들 노는 모습, 젊은 부부가 아이들 노는 걸 바라보는 모습을 보는 게 참으로 좋다.
우리 손자 두 녀석은 이제 이 공원에 오지 않는다. 4,5학년 때 브라질에서 한국으로 온 형제, 이젠 고등학생이 된 것이다. 농구나 축구를 하러 친구들과 더 큰 공원으로 가거나 혼자 방에서 게임을 한다. 우리 집에 와서도 꾸뻑 인사 후 그냥 그대로 게임에 빠진다. 가끔 옆에 앉아 아이의 휴대폰을 조심조심 들여다본다. 옛날 전차에서 신문을 읽을라치면 옆 사람이 종종 같이 읽으려 하는 듯해 무척 싫었던 기억이 나서다. 할 수 있으면 배우고 싶기도 하고 도대체 어떤 것이길래 정신없나 들여다보지만 노상 총을 들고 달려가는 전쟁터, 금방 돌아앉고 만다.
너덧 살 때 우리 집에만 오면 틀림없이 “하니1), 우리 꼭꼭 숨어라 하자!” 눈 반짝이던 녀석들, 고작 거실에 방 둘, 샤워실이 있는 화장실, 부엌 지나 뒤로 가면 빨래터, 작은 식모방이 있고 작은 화장실이 하나 더 있어서 숨을 곳은 뻔한데 두 녀석은 숨바꼭질하자 했다.
내가 벽에다 얼굴을 박고 “하나 두우울 세에에엣 네에에에엣 다아서어어엇…” 하는 동안 옷장 안, 침대 아래, 커튼 뒤, 식탁 아래, 의자 뒤, 둘이 엉겨 붙어 같이 숨느라 바쁘다. 아무리 그래도 하니는 어디 숨었는지 금방 안다. 한 번도 숨기 놀이 같이한 적 없는 하지도 애들이 잘 숨나 열심히 본다. 소파 옆에 잘 숨도록 슬쩍 가려줄 줄도 안다.
하니, 이윽고 “간다!” 외친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알뚤도 꼭꼭 알란도 꼭꼭” 노래도 한다. 그러고는 괜히 엉뚱한 곳으로 가서 “어! 여기 아니네! 어디 숨었지? 방귀도 뀌지 말고 웃지도 말고 꼭꼭 숨어라” 한다. 침대 밑에 납작 엎드린 두 녀석, 들킬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에 숨 멈추고 있을 때 하니는 일부러 저 뒤 빨래터로 가서 큰 소리로 “아이고! 없잖아?” 했었지.
다시 내려다보니 군인들 서너 명이 씩씩하게 걸어간다. 외출 나온 모양이다. 유쾌하게 웃더니 갑자기 놀이기구로 간다. 애들 틈에 끼어 빙빙 돌아간다. 군인인 걸 잊은 듯! 입대 전 학생으로 돌아간 듯! 문득 우리 손자들 같아서 재미있고 반갑다.
“여보!” 할아버지를 부른다. 우리 내외는 군인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말없이 내려다본다. 할아버지도 안다. 왜 불렀는지. 우리 두 아이들, 몇 년 후 군인이 될 것이고, 휴가 나와 하니 하지를 찾아와 “충성!” 하며 경례를 붙일 것이다. 여드름이 사라진 얼굴은 거무튀튀 건강한 색깔이고, 어깨는 반듯해져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진짜 사나이가 된 아이들이 눈물겹도록 대견하고 또 대견할 것이다.
창문을 닫고 돌아선다. 미세먼지가 생각난 것이다. 잠시 그 군인들은 어디로 갔을까 생각해본다. 어디든 다섯 명이 넘으면 안 된다는 걸 알 테지? 이게 노파심이다. 어린애들과 섞여 빙빙 회전놀이기구를 즐긴 기분으로 이 친구 저 친구 다 모이라 하고 만나러 가는 건 아니겠지?
나는 오랜 팬데믹으로 인해 졸업식도 없이 고등학생이 되어버린 아이들이 너무도 측은하다. 내가 중학교 졸업하던 날, 우리 식구는 아버지 따라 중국집에 짜장면 먹으러 갔었지. 행복이란 별게 아니었지. 아, 그래. 그 짜장면! 얼마나 맛있었던가!
그리고 기대에 차서 고등학교에 간 첫날, 담임선생님을 뵙고, 새 친구들을 만나고, 자리를 정하고, 새 교과서를 받아올 때, 난 아주 다른 느낌을 받았었지. 어른의 세계로 한 발짝 들어선 기분 아니었던가? 집에 와선 스스로와 한 굳은 약속도 써 붙이고, 책상 정리도 새로 했었지. 그렇게 새날을 향해야 한다는 나는 현실을 모르는 구시대 노인일까?
그도 그럴 것이 비대면이라는 놀라운 수업으로 백석의 시, 충담사의 찬기파랑가, 서경별곡 그리고 훈민정음해례본, 아관파천을 배운다니 기가 막혔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가 프린트한 것을 보고는 그 난해한 콘텐츠에 그만 놀라버렸다. 우리 아이들이 이 엄청난 한자어 낱말들을 과연 알까? 선생님은 잘 설명해주셨을까? 이 역시 노파심이리라.
얘들아, 사실 신라 향가나 고려 속요 모른다고 무슨 일이 있는 것 아니야. 그렇지만 책 읽은 얘기, 영화 본 얘기, 어젯밤 꾼 꿈 이야기를 나눌 친구는 만나야지. 멀리 있어도 옛날 그 어느 날에 공부하자고 한 약속을 잊지 않고 있는 친구, 그런 친구를 나도 고등학교 때 만났단다. 아, 그러니까 얘야, 너와 내가 한 약속이 또 생각나는구나.
알뚤, 네가 5학년 때였지? 할머니와 나눈 약속, 빨간 차!
“너네 빨간 차, 참 예쁘다. 이 담에 이런 차 할머니한테 사줄래?” 내가 말했더니 넌 얼른 그러겠다고 했어. 그 이후 가끔 묻곤 했지. 넌 그때마다 빨간 차 하니한테 사주겠다고 했어.
나는 이제 그 약속을 더 묻지 않는다. 고등학생이 된 네가 지금도 기억할 것을 알아서다. 대학생에서 군인으로, 사회인으로 성장해, 나를 앞세우고 빨간 차 보러 가는 날을 상상해본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게 언제일까는 군더더기.
언제가 아니면 어떠니. 넌 약속을 했고, 코로나 괴물은 도무지 사라질 줄 모르는데. 그리고 빨간 차는 내 마음속 주차장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으면 됐잖니.
1) 큰 손자가 아기 때 할머니를 ‘하니’라고 불렀다. 아기는 ‘할머니’라 말한 것이지만 어른들 귀에는 ‘하니’로 들렸다. 할아버지도 ‘하지’라고 불렀다.
안경자·이찬재 41만 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를 보유한 시니어 인플루언서 부부로, SNS에 손주 사랑을 담은 글과 그림을 올려 화제를 모았다. 그림 에세이 ‘돌아보니 삶은 아름다웠더라’를 펴냈다.
코로나19 시대의 여가 활동으로 ‘캠핑’(Camping)이 인기를 끌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이은 5인 이상 집결 금지 같은 사회적 조항으로 사람들은 친구, 연인, 가족 등 소수정예로 팀을 꾸리거나, 홀로 자연으로 들어가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면서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충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캠핑 자체를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등산, 트레킹, 사이클, 카약, 낚시, 서핑 등의 아웃도어 활동을 결합하는 식으로 다채롭게 진행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같은 캠핑도 전혀 다른 캠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코너에서는 때와 상황에 따라 즐길 수 있는 캠핑 ‘4대 주자’ 자전거캠핑, 오토캠핑, 차박캠핑, 백패킹의 특징에 대해 알아봤다.
자전거캠핑 | 걸어서 가기에는 먼 곳을 무동력으로 가고 싶을 때
자전거의 몸체에 짐받이 가방과 패니어백, 혹은 자전거 몸체에 연결한 트레일러에 아영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싣고 산악 임도, 해안, 자전거길 등을 이동하다가 어딘가에 텐트를 치고 즐기는 캠핑을 말한다. 바이크캠핑, 투어링캠핑이라고도 부른다. 오지와 같이 한적하면서도 차량 진입이 어려운 곳, 자동차로 가기에는 가깝고 도보로 가기에는 애매한 주변 여행지를 찾아가는 데 자전거는 효과적인 이동 수단이다.
자전거캠핑에서 가장 중요한 장비는 두말할 필요 없이 ‘자전거’다. 즐겁고 쾌적한 자전거캠핑을 위해서는 자전거캠핑에 적합한 자전거를 준비해야 한다. 생활형 자전거, 산악자전거(MTB), 로드자전거, 하이브리드, 미니벨로, 전기자전거 중에서 캠핑 장소와 주로 형태, 이동 거리에 따라 크게 산악자전거, 로드자전거, 투어링 전용 자전거, 산악과 로드 중간 형태인 하이브리드를 선택할 수 있다.
자전거 다음으로 중요한 장비가 ‘복장’이다. 1박 이상 장거리 자전거캠핑을 할 때는 장시간 자전거 주행을 해야 하므로 기능과 안전을 고려한 라이딩용 복장을 추천한다. ‘쫄쫄이바지’로 통하는 ‘자전거 패드바지’는 폴리에스테르 재질이라 구김이 없고 건조가 잘되며, 자전거 안장과 밀착되는 부위에 두꺼운 패드가 붙어 있어 엉덩이 통증을 상당히 줄여준다. ‘저지’로 불리는 자전거 상의는 등 뒤에 주머니가 있어 휴대폰 등의 수납이 가능하다.
자전거캠핑은 온전히 사람의 힘을 동력으로 이동하는 만큼 수납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지만, 반드시 챙겨야 하는 장비라면 자전거용 멀티툴, 휴대용 펌프, 예비용 튜브, 체인 커넥터 같은 갑작스러운 고장에 대비한 미캐닉 장비다. 이외에 헬멧, 선글라스, 바람막이, 장갑, 버프, 모자, 두건, 팔토시, 랜턴, 비상식량, 스마트폰 충전기, 구급약품, 비상식량, 텐트, 침낭, 매트리스, 캠핑용 조리도구, 휴대용 식기와 수저, 다용도 나이프 등이 있다.
오토캠핑 | 자연 속에서 집이 주는 안락함을 누리고 싶을 때
차량에 각종 야영 장비를 싣고 떠나 캠핑장과 유원지 등 지정된 사이트에서 취사와 숙박을 하는 캠핑이다. 차량을 이용해 움직이므로 장비 수용에 제한이 없고, 차량 바로 옆에 사이트를 구축할 수 있으므로 캠핑 장비를 힘들게 옮기는 수고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캠핑 초보자라면 오토캠핑을 통해 캠핑에 재미를 붙이는 편이 좋다. 만약 캠핑에 필요한 장비가 없다면 캠핑 업체에서 텐트, 침낭, 취사도구 일체를 제공하는 ‘글램핑’을 즐기는 방법도 있다.
오토캠핑에 필요한 주요 장비는 가볍고 견고한 텐트, 계절에 맞는 침낭, 땅에서 올라오는 냉기와 습기를 차단해줄 매트리스, 햇빛을 가리고 비와 바람을 막아줄 타프, 캠핑용 조리도구 스토브와 연료, 휴대용 식기와 수저, 다용도 나이프, 랜턴과 이동식 랜턴(보조배터리), 갑작스러운 기온 변화에 체온을 지켜줄 기능성 의류, 만약의 비상사태에 대비한 구급약품이 있으며, 캠핑용 테이블과 의자, 그릴, 키친테이블, 아이스박스도 있으면 유용하다.
최근 들어 캠핑카, 캠핑 트레일러를 이용한 오토캠핑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다. 매번 따로 수고롭게 텐트를 치고 접지 않아도 차량 안에서 편리하게 취사와 숙박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4000만~1억 원을 호가하는 만만치 않은 캠핑카 가격이 단점이겠다. 11인승 이상 승합차를 캠핑카로 개조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또한 비용은 1000만~2000만 원 정도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카라반 전문 커뮤니티 ‘더 카라반’(thecaravan.co.kr)에서 확인하자.
캠핑카를 대여할 경우 보름 전 사전 예약을 통해 대여 업체 차고지를 방문하거나 홈 렌털 서비스를 이용한다. 렌털료는 1박 2일 기준 국산차 35만~50만 원, 수입차 45만~80만 원이다. 대여 조건은 만 26세 이상, 운전 경력이 최소 1년 이상 운전자. 대인, 대물, 자손 종합보험은 기본으로 가입돼 있으나 자차보험은 빠져 있다. 안전운행수칙 교육 업체에서 1시간 이상 교육을 받아야 한다. 캠핑장 정보는 한국관광공사의 ‘고캠핑’(gocamping.or.kr)을 추천한다.
차박캠핑 | 드라이브하다가 원하는 곳에서 멈추고 싶을 때
오로지 자가용 한 대에서 즐기는 캠핑을 말한다. 부담스러운 가격의 캠핑카,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 확보가 어려운 캠핑장 등이 차박캠핑에서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번거롭게 텐트를 치고 접을 일도 없다. 또 캠핑카처럼 부피가 크지 않아 기동성도 좋다. 산, 들, 바닷가 등 차를 세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머물면서 야외 활동을 즐길 수 있으며, 오토캠핑처럼 취사도구를 이용해 제대로 조리해 먹기보다는 가볍게 때우거나 현지 맛집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차박캠핑이 반드시 SUV 차량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차량 뒷자리인 2열 시트 등받이를 접었을 때 트렁크와 이어지는 면이 수평으로 평평한 상태라면 경차, 소형승용차로도 차박캠핑을 즐길 수 있다. 평평한 바닥에 누웠을 때 본인 키보다 살짝 넉넉한 공간이면 된다. 필요에 따라 자동차 후미에 카트리퍼 혹은 도킹 텐트를 연결해 공간을 확장하기도 하는데 비용은 20만~50만 원 전후다. 차량 지붕 위에 설치하는 루프톱 텐트는 수백만 원 상당이다.
차박캠핑에 필요한 주요 장비는 쿠션감 있는 자충매트리스, 침낭 혹은 집에 있는 가벼운 이불, 외부에서 들어오는 한기를 막아줄 은박매트, USB로 연결 가능한 차량용 전기매트, 랜턴과 이동식 랜턴(보조배터리), 구급약품, 계절에 따라 모기장과 핫팩, 그리고 취사할 경우 캠핑용 테이블과 의자, 캠핑용 조리도구 스토브와 연료, 휴대용 식기와 수저, 다용도 나이프, 아이스박스 등이 있다. 필요하다면 카트리퍼 혹은 도킹 텐트, 루프톱 텐트, 타프도 구비한다.
차박캠핑의 장점으로 기동성을 꼽을 수 있지만 아무 데서나 차를 세우고 야영할 수는 없다. 법에 따라 전국의 도립, 시립, 군립, 국립공원, 국유림 임도, 사유지, 해안 방파제에서는 야영할 수 없다. 휴게소나 주차장에서 차박캠핑을 하더라도 불을 사용해 취사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차박캠핑 성지로는 당진 왜목마을, 충주 목계솔밭, 강릉 순긋해변과 안반데기, 홍천 모곡밤벌유원지, 여주 달맞이광장, 부산 오랑대공원, 태안 몽산포해수욕장, 부안 모항해수욕장이 있다.
백패킹 | 두 발로 정처 없이 걷다가 하룻밤 쉬고 싶을 때
야영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넣은 배낭을 등에 짊어지고 산, 숲, 트레일, 해안 등을 이동하다가 어딘가에 텐트를 치고 즐기는 캠핑을 말한다. 백패킹의 가장 큰 매력은 인적 드문 고요하고 신비로운 자연에서 잠들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장비를 짊어지고 이동해야 하기에 배낭을 최대한 가볍게 만드는 이른바 BPL(BackPacking Light)이 관건. 이동에 제약을 주지 않는 선에서 장비와 식량을 꾸려야 한다. 장거리 트레킹의 경우 배낭 무게는 여행의 질을 좌우한다.
배낭을 가볍게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최소한의 짐만 추리니 자연스럽게 백패킹 이후 나오는 쓰레기 또한 줄어든다. 내가 머문 자연의 자리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 바로 LNT(Leave No Trace)다. 백패킹 문화가 발달한 서양과 달리 우리나라의 백패킹 인프라는 아직 부족한 편이지만, 자연을 소중히 여기며 그 속에서 잠시 쉬어간다는 생각은 백패커라면 가져야 할 공동의 마음일 것이다.
백패킹에 필요한 주요 장비는 트레킹 위주의 백패킹을 할지, 야영 위주의 백패킹을 할지에 따라 다소 달라지지만 크게 운행 장비, 주거 장비, 취사 장비로 나눌 수 있다. 트레킹 중심의 백패킹이라면 무게가 중요하다. 오래 걸으며 산행하기 위해서는 편한 트레킹화와 배낭을 기본으로 스틱, 헤드램프, 랜턴, 텐트, 침낭, 매트리스, 모자, 취사도구, 식량 등이 필요하다. 야영 위주 백패킹의 경우 이동 거리가 짧기에 소화 가능한 캠핑 장비를 추가할 수 있다.
백패킹에서 가장 중요한 트레킹화와 배낭에 대해 좀 더 설명하면, 우선 트레킹화는 평소 신는 신발보다 한두 치수 크게 신을 것을 권한다. 등산용 양말이 두껍기도 하고 피로로 인해 발이 붓기 때문에 너무 딱 맞으면 산행을 지속할 수 없다. 배낭은 여름철이라면 50~60L급, 겨울철에는 80~90L급 배낭에 수납한다. 역시 법에 따라 전국의 도립, 시립, 군립, 국립공원, 국유림 임도에서는 야영할 수 없으며, 자연휴양림 혹은 야영장에서 야영할 수 있다.
현대차 ‘포레스트’, 자동차를 넘어 움직이는 집으로서의 가치
현대자동차 소형 트럭 포터Ⅱ를 기반으로 한 캠핑카 ‘포레스트’가 최근 핫한 캠핑카로 떠오르고 있다. ‘포레스트’는 어디에서도 캠핑할 수 있는 편안하고 넓은 실내 공간을 갖춰 ‘움직이는 집’이라는 콘셉트로 4인 가족이 사용할 수 있는 캠핑카다. 국내 캠핑카 등록 대수는 2014년부터 5년간 약 5배 증가했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따른 여가 활동 수요와 캠핑카 개조 규제 완화로 캠핑카가 늘고 있다. 정부는 연간 6000대 차량이 캠핑카로 개조되면서 1300억 원 규모 시장이 생겨날 것으로 전망했다.
포레스트는 스마트룸, 스마트베드를 적용해 실내 공간을 전동 방식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했다. 스마트룸을 사용하면 차량 뒷부분이 800㎜ 연장되고, 확장된 부분은 침실로 활용할 수 있다. 스마트베드 기능으로 침실을 두 층으로 나눌 수도 있다. 포레스트는 2열 승객석에 상황별로 다양하게 활용 가능한 가변 캠핑 시트를 탑재해 내부 공간 활용도를 끌어올렸다. 가변 시트는 주행 중에는 시트, 캠핑 시에는 소파, 잘 때는 침대 용도로 쓸 수 있다. 또한 캠핑지에서 샤워실, 화장실 등의 공공시설을 이용할 때 겪는 사생활 침해 등 불편을 고려해 독립형 샤워부스, 실내 좌변기를 선택사양으로 적용할 수 있다. 차량 내 각 창문에 커튼이 설치됐다.
또한 태양광을 전기로 바꿔주는 태양전지 패널도 사양으로 선택할 수 있으며, 대용량 배터리 및 효율적인 충전 시스템을 적용해 캠핑 중 배터리 방전에 대한 걱정을 줄였다. 이밖에 현대차는 포레스트 내에 냉난방기, 냉장고, 싱크대, 전자레인지 같은 각종 편의사양을 제공해 고객들이 집과 같은 안락함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다양한 캠핑카 기능은 포레스트의 직관적인 터치식 통합 컨트롤러로 제어 가능하며, 블루투스 연결을 통해 스마트폰으로도 작동할 수 있다.
조산사 엄순자(68, 청주 엄조산원) 원장은 40년 경력의 베테랑이다. 그간 받아낸 신생아 수가 자그마치 7000여 명에 달한다. 이 바닥에서 그녀를 능가할 고수가 드물다. 세상은 요상하게 돌아가 인명을 경시하는 풍조까지 만연하지만, 출산만큼은 훼손될 수 없는 성역이다. 만약 자비로운 신이 존재한다면 신생아가 출현하는 순간엔 친히 출장을 나와 참견하고 싶어 할 테다. 세상에 태어나는 새 생명은 여하튼 무탈해야 하며, 사랑을 받아야 하며, 축복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고귀한 출산을 조력하는 조산사란 신성한 직업이다.
엄순자 원장이 조산사로 일하기 시작한 건 20대 중반부터다. 아기를 받는 일에 딱히 매력을 느껴 선택한 직업은 아니었다지. 간호대학을 졸업했으니 간호사로 취업하는 게 순서였으나 그녀는 조산사를 택했다. 환자들을 상대하는 간호사보다 산모들을 돕는 조산사 일이 한결 수월할 것 같아 택한 길이었다. 그게 평생의 외길이 될 줄은 몰랐더란다. 또 조산사 일에 그토록 빠르고 깊게 심취하게 될 줄도 몰랐다. 생명의 출산에 간여하며 신비감과 경이로움, 그리고 보람과 성취감으로 자족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일종의 열광적인 몰입을 했던 모양이다.
처음 한동안 그녀는 산부인과 병원에 취직해 조산사 일을 했다. 경험과 실력을 키운 수련기였다. 그러다 28세에 독립해 조산원을 개업했으며 이후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조산원은 청주시의 구시가지 대로변에 있다. 번듯한 4층 건물이다. 1991년에 부지를 사들여 지은 집이다. 출산율이 높았던 과거에 누린 조산원의 성업(盛業)을 증명하는 건물이다. 예전엔 조산원이 많았다. 그러나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하나둘 사라져 이제는 눈을 씻고 찾아도 도무지 볼 수 없다. 산부인과 수의 격감과 마찬가지로 조산원의 퇴출이 가속됐던 거다. 대한조산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16개소의 조산원이 남았을 뿐이다. 엄조산원은 충청 지역에 남은 유일한 조산원이다.
“산모를 가장 많이 받았던 건 1980년대였다. 한 달에 평균 40여 건, 최대 62건을 받기도 했다. 하루에 7명의 아기를 받아낸 진기록도 있다.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줄어도 너무 줄었다. 월 2, 3건의 일이 있을 뿐이니까. 많아야 5건이더라. 그러나 이 나이에 여전히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 게다가 과거와 다르게 여유시간이 충분한 덕분에 산악자전거를 즐길 수 있어 너무 좋다. 예전엔 휴일도 밤낮도 없이 24시간을 대기 상태로 지냈거든.”
분만은 ‘피와의 전쟁’
조산원 내부를 볼까. 약간의 의료기기들이 보이는 진료실과 둥근 욕조를 설치한 수중분만실, 소파가 놓인 상담실, 그리고 여러 개의 정갈한 방으로 이루어졌다. 진료실만 아니라면 일반 가정집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색이라 편안하고 따사롭다. 그러나 수천 명의 산모들이 이곳에서 격심한 산통을 치르며 출산했을 걸 생각하자니 마치 태풍이 훑고 지난 자리를 바라보는 것처럼 애잔하다. 무참한 진통을 거쳐 마침내 기쁜 순산을 한 산모들의 눈물과 희열이 서린 공간이라는 점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다.
“내과나 외과 의사는 한 사람의 치유를 도모하지만 조산사가 돕는 건 두 생명이다. 산모와 아기, 두 생명을 동시에 조력한다는 점에서 조산사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한결 엄중하다고 느낀다. 귀한 일을 한다는 자부심도 가지고 있다.”
베테랑 조산사는 초심자와 어떻게 다른가?
“분만은 한마디로 ‘피와의 전쟁’이다. 분만 과정에서 가장 위험한 게 산모의 과도한 출혈이다. 노련한 조산사는 이 출혈을 최소화할 줄 안다. 산모의 상태를 미리 정확하게 판단하고 상황을 예측, 한 템포 빠르게 대처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출혈이 전혀 없는 출산도 가능한가?
“출혈은 회음부 열상(裂傷)이나 태반이 떨어진 자리에서 야기된다. 그런데 드물게나마 분만 직후 피 한 방울 안 흘리는 산모들이 있다. 이걸 우리는 ‘자연출산의 꽃’이라 부른다. 이런 출산을 볼 때면 나는 대단한 기쁨을 느낀다. 조산사의 기량과 산모의 훌륭한 의지가 합세해 만들어내는 작품이기 때문이지.”
출혈이 심해 위급한 경우엔 어떤 조처를 하지?
“완전한 자연출산을 추구하는 조산원은 산부인과 병원과 달라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지 않다. 의료 시스템에 의지하는 분만은 자연출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출혈이 너무 심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수축제를 주사해 응급조치를 하거나 연계된 산부인과 병원으로 이송한다.”
감당하기 어려운 돌발 상황은 없었나?
“유능한 조산사는 산모의 배만 보고도 태아의 체중을 정확히 알아내거나 출산일을 오차 없이 예측한다. 이처럼 숙달된 기능을 발휘하기에 돌연한 사고가 발생할 수 없는 거다. 게다가 조산원에 오기 전에 산모들은 산부인과에서 초음파 검사 등으로 충분한 사전 점검을 한다. 따라서 애초에 문제 발생의 소지가 없다. 매우 드문 경우지만, 산모나 태아의 상태가 아주 좋지 않을 때엔 아예 받지 않는다.”
신조차 실수를 한다지? 가령 당신의 실수로 발생한 사고는 없었는지, 그걸 묻는 거다.
“그런 사고가 났다면 지금까지 어떻게 문을 열고 있겠나?(웃음) 전반적인 상태가 좋은 산모들이 조산원을 찾아오고, 상태가 위험해 제왕절개 등이 필요한 산모들은 산부인과로 간다. 조산원에선 사고 가능성 자체가 거의 없다는 얘기다.”
일체의 난폭한 분만을 배제해
조산원은 산부인과와 달리 전적으로 자연출산을 한다. 그게 자연에서 왔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나그네인 인간의 생태에 알맞아서다. 자연출산이란 가정에서 분만을 했던 그 옛날의 출산 관습을 본으로 삼는 방식이다. 옛적의 마을엔 아기를 잘 받는 할머니들이 하나쯤은 흔히 있었다. 고대부터 존재한 ‘산파’가 쪼르르 달려와 출산을 돕기도 했다. 그러다 산부인과 병원의 출현과 활갯짓으로 풍속이 싹 바뀌었다. 대체로 1970년대부터 대부분의 산모들이 산부인과 의사의 기술과 의료 시스템에 출산을 맡기기 시작했다. 엄순자 원장은 이와 같은 풍습의 정착에 애석함을 느낀다. 자연출산으로 회귀하는 게 섭리에 맞다고 본다.
“여러 나라의 조산사들이 모이는 국제학술세미나에 참석해보면, 선진국에선 병원에서의 출산보다 자연출산을 선호하고 지원하는 경향이 뚜렷한 걸 알겠더군. 그러나 우리나라는 다르다. 이미 오래전부터 임산부의 99%가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낳았으며, 지금도 99%가 그렇게 한다.”
산부인과 출산을 선호하는 이유는?
“갖가지 의료 장비와 약물이 완비돼 더 안전하다고들 본다. 촉진제 주사나 무통 주사로, 또는 마취를 통해 한결 편한 분만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거다. ‘하다 하다 안 되면 까짓 것 제왕절개로 낳지 뭐! 괜히 조산원에서 생고생할 게 뭐야?’ 다들 그런 생각을 한다. 조산원보다 저렴한 비용도 고려하는 것 같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는 판단은 합리적인 것 같다. 아닌가?
“안전하기는 조산원도 사실상 마찬가지다. 조산원과 산부인과의 가장 다른 점은 조산원은 응급상황 외에는 약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지. 무통 주사나 촉진제가 산모와 아기의 건강에 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조산원에선 흡입분만도 하지 않는다. 일체의 난폭한 분만을 배제한다. 이러한 특장이 자연출산의 미덕이며, 산모는 물론 아기의 인권과 건강한 심신을 보장하는 방법이다. 자연출산의 이러한 지향에 대한 공부와 이해, 철학이 있는 산모들이 조산원을 찾아오는 것이고.”
산모들이 심적 부담을 크게 느끼는 ‘굴욕 3종 세트’라는 게 있더라.
“면도를 통한 사전 제모, 관장, 내진, 이 세 가지에 산모들은 심한 수치심과 두려움을 느낀다. 조산원에선 이것들을 하지 않는다. 분만 직전 미리 회음부를 절개해두는 행위도 하지 않는다.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가장 자연스러운 출산을 구사하는 거다.”
아기가 나오자마자 번호표를 매단 바구니에 담아 신생아실로 옮기는 산부인과의 방식은 이해하기 어렵다.
“조산원에선 산모와 신생아를 떼어놓지 않는다. 캥거루 케어라고, 분만 직후 아기를 엄마의 배 위에 밀착시켜 스스로 젖꼭지를 찾게 하고, 긴 스킨십을 하게 해준다. 이 과정에는 아빠도 적극적으로 참여시킨다. 이와 같은 가족적 유대 맺기는 출산의 전 과정을 통해 지속되고 강화된다. 산모와 아빠가 함께 물에 들어가 출산하는 수중분만을 통해 이 유대감은 극에 달한다. 수중분만을 하는 케이스는 많지 않지만.”
요즘은 산부인과에서도 ‘자연주의 출산’을 표방한다.
“일부 병원에서 그리하지만 여차하면 용이한 분만을 위해 관행적인 의료 시스템을 바로 동원하는 걸로 알고 있다. 조산원의 자연출산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진통이 격하게 오더라도 호흡법으로 고통을 줄여주며, 끊임없이 기다린다. 병원에서처럼 서두르지 않는다는 거!”
그녀는 아기 낳기를 충분히 뜸들이고서야 제대로 밥이 익는 일에다 빗댄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기. 이게 건강한 출산의 비결이란다.
“산모의 안전과 건강은 물론, 이상적인 상황에서 아기가 나올 수 있도록 차분히 기다려줄 줄 알아야 건강한 출산이 가능하다. 이 기다림의 과정에서 실로 신비한 경험도 했다. 가령 역아(逆兒, 거꾸로 자리 잡은 태아)의 경우 산부인과에선 제왕절개 수술을 하게 마련이지만, 나는 역아가 스스로 바른 자리를 잡을 때까지 기다려준다. 한번은 무려 6일간 기다리자 드디어 태아가 자세를 바로잡더라. 참으로 경이로웠다.”
산모도 조산사도 꾹꾹 눌러 견디는 기다림이 있고서야 신생의 환한 아침이 온다. 아프고 서러워도 기다릴 줄 알아야 사랑이라 했던가. ‘전쟁’에 가깝다는 출산의 압박감을 기다림으로 완화해 이윽고 평화로운 지평에 도달하는 이치. 이 기다림의 묘미야말로 삶의 전반적인 문제를 처리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이거 아나? 뱃속의 아기는 천재라는 거!”
정말로?
“산부인과에선 산모의 골반이 좁아 아기의 머리가 빠져나오지 못할 경우엔 별수 없이 제왕절개 수술을 한다. 그러나 내 경험에 따르면,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아기가 결국은 자력으로 빠져나오더라. 좁은 골반의 폭에 맞춰 아기 스스로 제 머리통을 길쭉하게 늘려 무사히 빠져나오는 거다. 그러곤 바로 머리 모양이 원상회복된다. 이게 천재가 아니고선 가능치 않은 일이라는 얘기다.(웃음)”
어떤 상황에서도 순산을 거두는 당신도 보통이 아니다.(웃음)
“때로 과한 칭찬을 듣곤 했다. ‘원장님에게서 후광이 비쳤어요. 신의 손길을 느꼈어요.’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가슴이 벅차게 뛰더라. 그러나 난관을 견뎌내고 무탈한 출산을 하는 산모보다 내가 더 낫다고 할 수 없다. 아기 역시 위대하다.”
그녀는 자기의 조력으로 2대에 걸쳐 출산을 한 이들을 잊지 못한다. 차후 3대로 이어지는 출산을 돕고 싶다지. 한 20년은 기다려야 이룰 수 있는 꿈이다. 야생처럼 당당한 자연출산의 조력에 도가 튼 사람의 꿈이 이렇게 야무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