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걷다 보면 팔 또는 다리를 잃고 의수 또는 의족을 차고 생활하는 이웃들을 가끔 만난다. 이들을 만날 때면 일상생활에 많은 어려움이 있겠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그렇다. 사지 중 일부를 잃게 되면 삶의 질이 저하되고 이로 인한 우울감을 경험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발생하는 문제가 바로 환상지통(Phantom limb pain, 幻想肢痛)이다. 생소하게 느껴지는 이 증상은 신체 절단을 경험한 이웃 대부분이 경험한다.
환상지통은 사지 중 일부의 절단 이후 발생한다. 실제 존재하지 않는 사지에서 느끼는 통증이나 이상 감각이다. 예를 들어 무릎 아래 절단으로 발을 잃었지만 없어진 발에 통증을 느낀다.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라며 손사래를 치는 독자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하지만 실제로 절단 수술 이후 많은 분이 힘듦을 호소하는 증상이다.
16세기 프랑스 의사 앙브루아즈 파레(Ambroise Paré)가 최초로 환상지통의 증상에 관해 기술했고, 19세기 미국 남북전쟁 시기 의사인 사일러스 미첼(Silas Weir Mitchell)에 의해 환상지통(Phantom limb pain)이라고 명명됐다. 환상지통은 코, 눈, 가슴 등 우리 신체 어느 부위에서도 소실 이후에 발생할 수 있고, 상지와 하지에서 발생 빈도가 높다. 신체 소실 환자 중 많게는 80%까지 경험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만큼 절단 후 많은 분이 피해갈 수 없는 증상이다.
증상은 타는 듯한 통증(작열감),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 칼로 베는 듯한 통증, 꽉 쥐어짜는 듯한 통증 등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절단 환자의 50% 정도는 절단 후 24시간 이내에 발생하고 길게는 수년이 지난 후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증상 발생 후 시간이 흐르면서 호전되는 경우가 많지만 수년간 지속하기도 한다.
신체 중 일부를 잃게 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흔한 원인으로는 당뇨, 외상, 암, 혈관 장애 등이 있다. 2005년 미국의 사지 절단 환자는 160만 명으로 조사됐고, 2050년에는 360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만큼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사지 절단 환자는 늘어날 것이고, 이로 인해 환상지통을 겪는 사람들 역시 많아질 것이다. 과거에는 환상지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자신의 증상을 숨기며 살았다. 없어진 사지에 통증이 있다고 하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치부됐기 때문이다. 이 점이 우리가 환상지통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이유다. 환상지통은 증상 발생 초기에 의료진의 도움을 받는다면 증상 호전을 기대할 수 있다.
환상지통이 발생하는 의학적 기전은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과거에는 정신적인 문제로 여겨졌지만, 현재는 절단 후 발생하는 중추신경계와 말초신경계의 이상 변화를 기전으로 하는 복잡한 증상으로 이해하고 있다. 환상지통은 절단 전 통증이 있었던 사지에서 잘 발생한다. 성별 및 나이에 따른 증상 발현의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스트레스, 우울감, 불안감과 같은 감정적인 요소와 흡연, 지나친 음주, 외부의 차가운 환경에 노출 시 악화하는 특징을 보인다.
환상지통의 치료는 약물적 치료와 비약물적 치료가 있다. 약물적 치료는 환상지통을 초래하는 원인으로 생각되는 중추신경계 또는 말초신경계를 대상으로 하는 약물이 있다. 항우울제, 항경련제, 마약성 진통제 등이 도움이 된다. 비약물적 치료에는 거울을 이용한 재활 치료(시각 훈련), 전기자극치료, 반복적으로 자기장을 이용해 뇌를 자극하는 경두개자기자극술, 침 치료 등이 있다. 약물치료와 병행하면 증상 호전을 기대할 수 있다.
환상지통은 스트레스, 우울감, 불안감 등 감정적인 문제로 인해 증상이 악화할 수 있기 때문에 의료진의 도움을 통한 적극적인 관리가 중요하다. 사지 절단 후 의족 혹은 의수 등의 보조기를 착용할 때도 주의해야 한다. 적절하지 않은 보조기를 착용할 경우 환상지통의 악화 가능성이 있다. 현재 자신이 상태에 맞는 보조기를 적절하게 착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절단지의 근력 강화도 통증 호전에 도움이 된다. 꾸준하고 적절한 근력 강화 운동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증상 발생을 의료진에게 조기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통해 적절한 치료를 즉시 적용함으로써 증상 호전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환상지통은 우리 몸의 신경계가 연관된 복잡한 기전을 통해 발생하는 질환으로 다양한 증상 악화 요인들이 존재하는 만큼 이러한 요인을 이해하고 실생활에서 주의를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렇듯 환상지통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통해 사지 손실에 따른 삶의 질 저하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출신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41)가 지난 16일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출산 소식을 공개했다. 한국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비혼모로 임신하고 출산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는 외국 정자은행을 통해 임신을 했고 일본에서 아들을 출산했다고 하였다. 사유리가 그동안 한국에서 방송인으로 활동해왔기에 우리 사회에 던진 파문이 적지 않다. 사유리가 던진 질문에 우린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언론을 통해 소식을 접하고 솔직히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그 용기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아니 상상을 했더라도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현대 의술의 발달이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앞으로 의술의 발달은 얼마나 더 큰 일을 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현대 의술과 용기가 결합한 결과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동안 사유리는 방송에서도 자유로운 활동을 해왔다. 튀는 듯한 언행은 많은 웃음과 즐거움을 주었다. 그런데 비혼모 출산으로 또 한 번의 화제를 던졌다. 사유리는 그동안의 사정을 이렇게 밝혔다
“한국에서 산부인과를 갔어요. 난소 나이 검사를 했는데 48세라는 거예요. 의사 선생님께서 자연임신이 어렵고 이 수치라면 지금 당장 시험관을 하더라도 성공 확률이 높지 않다고 말씀하셨어요. 지금도 늦었는데 지금 시기를 놓치면 평생 아기를 못 가진다고 솔직하게 말씀하셨어요. 사랑하지 않는 남자랑 결혼해서 급하게 시험관을 하고 아이를 갖느냐, 아니면 혼자서 아이를 기르느냐, 선택지가 두 개밖에 없었어요. 근데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급하게 찾아서 결혼하는 건 어려웠어요.”
그는 한국에서 비혼 여성이 정자 기증을 받아 출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렇다고 사랑하는 사람도 없는데 신체적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연령이 돼가니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고 했다. 개인적인 고민도 고백했다. 사유리TV에서 ″저는 강하고, 남들 눈치 안 보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다”고 말하며 ”아빠가 없는 아기를 낳는 것인데, 솔직히 무섭다”고 했다.
이제 그가 걱정하듯 많을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싱글맘에 대해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빠 없는 빈자리가 클 것이다. 아빠 없이 커야 하는 아이한테 갖는 미안함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주위의 편견도 이겨내야 한다. 그러나 그는 다부지게 말했다. “지금까지 자기 자신을 위주로 살아왔던 제가 앞으로 아들을 위해서 살겠습니다”라고.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다. 엄마로서의 그의 강인한 의지가 보였다.
이미 사유리는 건강한 사내아이를 출산했다. 앞으로 계속 한국에서 살기를 원한다면 이 사회는 그에게 응답해야 한다. 어떠한 방식으로 태어났건 이 땅에 사는 어머니로부터 탄생한 아이다. 한 여성의 아이이기 이전에 이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된 것이다. 한 사람의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사회는 모든 제도적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 정상적인 사내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아빠의 빈자리도 사회에서, 학교 현장에서 채워줘야 한다.
사유리가 던진 질문에 한 발 더 접근할 필요가 있다. 비혼 출산뿐 아니라 혼외출산으로 사회적 편견과 제도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있다면 이제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적극 포용해줘야 한다. 적어도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사회구성원으로 차별받지 않고 소중한 인격체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참 대단한 선택을 한 사유리가 부디 아이와 함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진정으로 바란다.
올림픽공원 정문을 들어서면 88올림픽 때 점화되었던 성화가 아직도 타오른다. 88올림픽 참가국의 국기도 바람에 펄럭인다. 드넓은 공원은 가을의 정취로 가득하다. 이곳 88호수 옆 조각공원에는 소마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동안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개관과 휴관을 거듭하다 다시 문을 열었다. 11월 10일부터 현대 구상조각의 선구자이자 43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천재 조각가 류인(1956~1999)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파란에서 부활로’라는 제목으로 전시되는 이번 기획전은 구상조각의 독보적인 작가로 활동했던 류인 작가의 15년간 예술세계를 살펴볼 수 있다. 예술의전당, 호암미술관 등 여러 곳이 소장하고 있는 류인 작가의 작품을 한곳에 모아 전시를 한다고 하여 찾아가 보았다. 포스터에 담긴 작품 ‘부활-조용한 새벽’은 휘날리는 거대한 망토와 단단한 근육질 인물에서 부활을 꿈꾸는 영웅의 모습을 보게 해준다.
소마미술관(SOMA, Seoul Olympic Museum of Art)은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목재를 마감재로 사용한 지상 2층, 지하 2층의 건물로 야외조각공원과 어우러지는 소통의 미술관이다.
제1전시실의 주제는 ‘흙으로부터’. 류인 작가는 작업할 때 먼저 흙으로 소조를 빚는 전통 방식을 고수했다고 한다. 그에게 흙은 작업의 시작이자 끝을 의미했으며 조각은 곧 삶의 의미와도 같았다. 작가가 말했듯 “인간사와 마찬가지로 조각에서 그 표현 방식들의 긴 여행은, 흙으로 시작해서 다시 흙으로 돌아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제1전시실은 자소상과 목우회 공모전 특상을 받은 여인입상, 심저, 입허Ⅱ 등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제자 원승덕이 스승을 위해 조각한 류인 초상과 작가의 연대기가 그의 생애를 엿보게 한다.
제2전시실에서는 하산과 입산이라는 주제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기하학적 입방체와 사실적 인체를 결합한 작품들은 1980년대 류인 작가의 작품 특성이다. 당시 개인전에 출품한 ‘파란Ⅰ’과 ‘입산Ⅱ’ 등은 신체가 완전체가 아닌 상태로 입방체 속에 갇혀 있으면서 새로운 세상으로의 도약을 알리듯 튀어나오는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신체적 고통을 뛰어넘는 강렬한 생(生)의 의지와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 정신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마치 동시대를 살았던 우리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았다.
제3전시실은 삶의 무대다. 이 무대에서는 한때 쓰레기더미로 산을 이루었던 난지도에 인체 조각을 던져놓거나 벽과 천장에 걸어놓는 등 다양한 실험적 모색을 하며 작품 영역을 확장한다. 작품 ‘난지도’에서 버려진 인체 조각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속성’이라는 작품은, 통관에 들어가 있는 사람을 죽은 사람이 아니라 근육이 불끈 솟아 있는 다리, 들어올린 팔로 표현해, 암울함 속에서도 살아 움직이는 강인한 저항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제4전시실의 주제는 동시대인의 초상. 류인 작가의 조각은 그 시대 우리들의 초상이다. 그의 작품은 현실에 대한 깨우침이며 살아 있음의 확인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가 느낀 현실과 감정의 크기는 같은 시대를 겪었던 우리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또 다른 작품 ‘급행열차’는 열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머리가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제5전시실의 주제는 ‘조각가의 혼’이다. 작가의 생애를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다. 조그만 소품부터 드로잉 작품 하나하나를 감상하다 보면 마치 20년 전의 그가 살아 있는 듯 느껴진다. 그동안 각종 책에 소개되었던 이야기와 류인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성인기까지의 사진이 짧게 살다 간 천재 작가의 발자취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실내를 벗어나 밖으로 나오면 ‘부활-그의 정서적 자질’이라는 작품이 정원에 놓여 있다. 근육질의 몸매, 길게 뻗은 팔, 비장한 표정으로 하늘을 향해 갈망하는 듯 보이는 인체 상은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을 뛰어넘어 부활의 꿈을 꾸고 있는 듯하다.
소마미술관을 찾으면 류인 작가 전뿐만 아니라 한국이 낳은 세계적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도 볼 수 있다. 건축물 중앙에 설치된 ‘미니 쿠베르탱’은 감상만으로도 미소를 짓게 한다. 상설전시관으로 들어서면 백남준 작품의 진수를 볼 수 있는데 사진 촬영이 불가해 아쉬웠다.
이외 소마미술관 주변으로 조성된 조각공원에서는 약 222점의 조각 작품을 돌아볼 수 있다. 대부분 88서울올림픽을 기념해 만들어진 세계적인 조각가들의 작품이다. 현재 생존 작가로 한국을 대표하는 이우환 작가의 작품을 소마미술관 앞쪽 잔디밭에서 만날 수 있는 건 행운이다. ‘관계항-예감 속에서’라는 작품은 자연의 돌과 인위적인 철판을 자연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자신과 돌과 철판의 미묘한 어긋남의 어울림으로 미지의 세계를 나타낸다.
코로나19로 우여곡절 끝에 재개관한 소마미술관을 찾아 코로나 블루를 털어버리는 것도 힐링의 한 방법이 될 것이다. 1956년생인 류인 작가의 작품은 1980년의 암울했던 정치 현실을 보여줘 동시대인 세대에게 작가의 고뇌를 공감할 수 있도록 해준다.
◆ 소마미술관 류인 展
○ 기간: 11월 10일~12월 6일
○ 위치: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424(방이동, 올림픽공원)
○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매주 월요일 휴관)
1920년대 태어난 90대 할머니와 2020년을 사는 20대 손녀. '아흔 살 슈퍼우먼을 지키는 중입니다'(다다서재)는 치매 할머니의 삶의 마지막 과정을 기록한 동시에, 한 세기를 용감하게 살아낸 한 여자의 인생을 그린다. 할머니의 삶과 죽음을 통해 우리 시대 여성의 역사를 더듬고 자신의 삶을 다듬어간 저자 윤이재(27)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할머니의 이야기를 소재로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취업준비생이 되어 집에 갔을 때 할머니는 치매에 걸린 상태셨어요. 그 전까지는 가족, 조부모에게 특별히 관심 있지는 않았죠. 할머니가 몇 년생인지도 몰랐으니까요. 그랬던 제가 할머니와 종일 있으면서 이런저런 ‘말’을 들었는데 전처럼 흘려듣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러다보니 내 할머니가 아닌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산업화시대를 거쳐 현재를 사는 한 명의 사람, 국민, 여성으로 보이더군요. 저는 할머니가 살던 시대를 교과서에서 배웠고, 그 내용을 달달 암기해 수능을 봤어요.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할머니의 입으로 들으니 새삼 충격적이었죠. 역사 속 위인은 아니지만 그 시절을 살아낸 범인(凡人)이 바로 내 할머니구나. 근데 그런 이야기가 할머니의 기억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Q. ‘아흔 살 슈퍼우먼을 지키는 중입니다’ 스스로에게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지요?
1920년도에 태어난 할머니와 1990년도에 태어난 제가 겪은 일을 엮은 책이죠. 할머니의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사실 제 이야기이기도 해요. 할머니가 살던 세상과 제가 사는 세상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그 전에는 소위 ‘세대차이’라는 어른들의 생각 차이를 터부시하고 넘어갔었어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책을 쓰면서, 가족과 더 많이 대화하면서 그 시대를, 할머니와 부모님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쳤어요. 특히 할머니, 엄마라는 역할이 아닌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여성으로 보게 됐죠. 동시에 그 분들이 살아온 사회 구조와 편견, 차별이 어떻게 개인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비로소 알게 됐어요. 그것이 다른 형태로 대물림 되고 반복된다는 사실도요. 변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것을 고민할지 성찰할 기회이기도 했죠. 책을 쓰던 중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완성하는 게 감정적으로 힘들었지만 다 쓰고 나니 20대 중반에 꼭 해야 할 일을 해낸 느낌이에요. 이런 시절이 주어졌다는 게 감사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Q. 할머니와 함께한 2년 동안 틈틈이 글감을 마련해온 것 같습니다. 어떤 형태로 글을 남기기 시작했나요?
할머니와 대화하면서 영상을 많이 촬영했어요. 혹여나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그리울까봐, 움직이고 말씀하시는 할머니를 기록하고 싶었어요. 나중에 볼까 싶어서... 그러다가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소스를 모았죠. 동시에 하나의 주제가 될 만한 것들은 글로 남기고 있었고요. 그러다가 영상보다 글로 남기는 게 빠르겠다 싶어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모아놓은 글감에 영상으로 찍어둔 할머니와의 대화로 살을 붙여 글을 작성했어요. 그렇게 브런치에 글을 올리다가 다다서재에서 출간 제안을 해와 책으로 나오게 됐습니다.
Q. 할머니께서는 글을 못 배우신 것이 한이셨죠. 손주가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썼다면 굉장히 뿌듯해하실 것 같은데요. 할머니께서 책이 나온 걸 아셨다면 뭐라 말씀하셨을까요?
사실 저도 궁금하기는 해요.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할머니는 가끔 제 생각과 다른 말씀을 많이 하셔서 감히 예상해 보기도 어렵네요. 그래도 생각해 보면... 제가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은 이정도 인 것 같습니다. “나? 내 얘기를 글로 썼다고? 그런 걸 누가 궁금해 한다고 글로 쓰냐? 그때는 다 그랬다!” “우리 애기가 책을 썼어? 대견하다 대견해!”
Q. 제목에서도 그러하듯, 할머니를 ‘슈퍼우먼’이라 비유했습니다. 내 가족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본 할머니는 어떤 분인가요?
참 ‘사람’다운 분이셨어요. 할머니는 글도 배우지 못하고 학교에 다니지 못했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명하게 알고 행동하셨다고 해요. 할머니는 도덕성, 이타심, 배려심, 인간으로서의 도리 같은 것들을 평생 말이 아닌 행동으로 가르치셨어요. 지금 우리는 할머니보다 더 나은 교육을 받고, 지식수준은 더 높을지언정 정작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가치는 많이 잊고 사는 것 같아요. 어리고 철없을 때는 많이 배우지 않아서, 부유하지 않아서, 역사책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조부모님이 조금은 부끄럽고 원망스럽기도 했는데요. 돌아보니 사실은 더 중요한 것들을 제게 남겨주신 것 같아요. 할머니에게는 언어가 없었지만 언어보다 더 강력하고 의미 있는 행동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존경스럽습니다.
Q. 슈퍼우먼이었던 할머니께서 무기력해지신 모습을 보고 ‘마음의 은퇴보다 몸의 은퇴가 먼저 찾아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할머니를 곁에서 보는 심정은 어땠나요?
많이 안타까웠어요.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서 죄송스럽기도 했고요. 마음의 은퇴를 하고 싶어도 하실 수 없는 세상에서 사신 것 같아서 너무 속상했어요. 여러모로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습니다.
Q. 책에서 할머니를 위한 취미를 찾던 중 ‘소소한 현재의 습관과 취미가 훗날 노인이 된 나를 살아가게 할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런 깨달음을 통해 바뀐 일상이 있다면요?
취미 자체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 할 수 있는 취미도 할머니의 농사처럼 나이 듦에 따라 할 수 없을 수도 있고요. 앞으로 세상에 또 얼마나 재미있는 것들이 쏟아져 나올까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열린 태도, 나이 들어도 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해줄 건강한 신체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은 건강한 20대의 몸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열심히 즐기고 있어요. 동시에 새로운 취미를 탐색하고 있습니다. 후보로는 주짓수, 드럼, 베이스기타 배우기가 있어요. 하고 싶은 취미와 그걸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알기에 하나씩 해볼 예정입니다.
Q. 할머니가 건강하실 때 이야기를 많이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했습니다. 할머니와 다시 시간을 보낸다면 무얼 가장 하고 싶나요?
먼저 “학교가자 할머니!”일 것 같아요. 할머니가 기억을 잊어가면서도 습관처럼 말씀하시던 게 글을 배우지 못해 원통하다였거든요. 그 한을 꼭 풀어드리고 싶어요. 두 번째는 ‘글도 모르는 시골 노인네’가 아닌 할머니 스스로 인생에 자긍심을 가지도록 존경심을 표현하고 싶고요. 세 번째 할머니의 욕망을 찾아드리겠어요. 할머니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할머니의 취향을 더 견고하게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누군가의 어머니로서의 욕망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욕심 부리고 성취할 수 있게 도와드렸음 해요. 마지막으로는 할머니의 죄책감을 덜어드리고 싶어요.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미안해 하셨는데 함께하며 저는 얻은 게 정말 많거든요.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이건 제 욕심인데, 할머니가 직접 말한 언어로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박막례 할머니처럼 유튜브를 할 수도 있고요. 책이 될 수도 있고요. 다큐멘터리가 될 수도 있고요. 할머니의 고유한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더 섬세하게 꺼내고 다듬어젊은 사람들의 시선에 맞춘 의미 있는 콘텐츠로 만들고 싶어요. 이제 할 수는 없지만요.
Q. ‘효녀’라는 말이 칭찬이지만, 때론 그것이 의무감으로 다가와 부담을 느끼기도 했죠. 다른 가족도 있었는데, 유독 자신이 할머니께 마음 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상황이었죠. 할머니가 치매에 걸렸을 때 아주 우연히도 함께 살았던 손녀딸이 직업이 없었던 것이죠. 제가 특별히 착하거나 할머니와의 애정도가 다른 형제보다 더 커서라고 보긴 어려워요. 다른 형제들도 같은 상황이었다면 저처럼 했을 거예요. 제 또래들은 조부모님과 사는 친구들이 거의 없거든요. 저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애착관계가 형성되어 그런지 거부감은 없었어요. 사실 별 생각이 없었어요. 항상 할머니와 살았고, 집에 늘 할머니가 계셨는데, 그런 할머니가 조금 아프셨던 거죠. 다만 조금 용감하긴 했어요. 처음에는 치매 노인이 어떤 행동을 할지, 어떻게 사람이 늙고 죽어 가는지 몰랐기에 용감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정말 밥만 차려드리면 되는 줄 알았어요.
Q. 그렇게 간접적으로나마 노인의 삶을 가까이 하며 힘든 점도 있지만, 어떤 인생의 깨달음도 얻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땠나요?
감히 인생에 대해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기에는 부끄럽고요. 할머니와 함께 하면서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기는 했어요. 알고는 있지만 간과하기 쉬운 “우리에게는 모두 끝이 있다”라는 사실을 절절하게 느꼈던 것 같아요. 삶의 활력이 가장 충만한 시기에 끝을 생각하면서 지금 제게 주어진 일상과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어요. 지금의 삶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충실하자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요. 어떤 결정을 할 때 효율이나 성공 가능성 보다는 ‘후회를 덜 할 것 같은’ 것을 기준으로 선택해요. 그러면서 스스로에 대한 고민도 많아졌고요. 조금 진부하지만 일상에 감사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Q. 할머니를 지켜드리느라 정작 자신을 돌보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었을 텐데요. 자신을 지키고 돌보기 위해 어떤 방법을 택했나요?
그 당시에는 엄마도 저도 방법을 찾지 못했고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어요. 그래도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오시면서 많이 나아지기는 했는데, 길게 계셔도 4-5시간이거든요. 그 외 시간은 가족의 손길이 필요했죠. 다행이었던 것은 할머니가 자식이 많고 가까이 산다는 거죠. 고모들도 종종 오셔서 돌봄을 나누셨어요. 이런 측면에서는 우리 가족은 특이한 케이스였어요. 동시에 대가족이 아닌 지금의 가족형태에서 돌봄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떤 방식이 될 지 상상이 안 돼서 두려워요. 치매는 정말 누구나 걸릴 수 있지만, 가정에서 개인들이 오로지 감당할 수 있는 병이 아니니까요. 만약 경제활동을 하는 구성원밖에 없으면 요양시설에 가거나, 누군가가 경제활동을 포기하고 전담하는 상황이겠죠. 국가 차원에서 제도적인 정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없는 건 아니지만 더 섬세하게 고민하고 보완해야겠다 싶어요.
Q. 할머니의 죽음을 바라보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달라지고 성장한 부분이 있다면요?
조금 단적으로 말하면 사람이 어떻게 ‘죽어가는지’를 너무나 생생하게 지켜봤어요. 근육이 사라지고 쪼글해진 살이 뼈에 간신히 붙어 있고,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고, 걷지 못하고, 말을 못하고, 누워만 있는 말 그대로 육체적인 노화의 과정이요. 그 과정을 지켜보고 할머니의 장례식까지 치르면서 상상하는 것조차 두려워 외면하고 살았던 부모님의 죽음과 저의 죽음을 상상했어요. 그 상상이 너무나 뻔하고 진부하더라고요. 우리 사회가 ‘죽음’을 말하는 것을 얼마나 터부시 하는지, 그 방식에 대해 다양성이 얼마나 허용되지 않는지 새삼 느꼈어요. 죽음을 고민하지 않고 죽음을 맞이했을 때의 과정이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을 때 단언컨대 저는 “No”거든요. 그런 부분에서의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아직 명쾌한 답을 찾은 건 아니지만 고민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Q. 아쉽지만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지키지는 못하셨습니다. 인터뷰로나마 할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면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요?
“할머니 정말 고맙고 사랑해.”
Q. 끝으로, 치매 가족을 둔 분들, 또는 자신처럼 치매 조부모를 둔 또래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개인적으로 할머니를 돌보며 가장 많이 들었던 위로가 “언젠가 복 받을 거야”라는 말이었는데요. 그 말만큼 공허하고 듣기 싫은 말이 없더라고요. 물론 말의 선한 의도는 알지만 사실 환자를 돌보는 입장에서는 눈앞에 환자가 있고, 무언가 기대를 하면서 돌봄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가족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눈앞에 환자에게 충실한 거였거든요. 딱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지 않도록 지켜드리는 것뿐이었어요. 각자의 사정과 환경이 있는데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이 있을까 싶은데요. 그저 정말 수고가 많고 고생이 많으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우리 가족도 그랬지만 모두 각자의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계시는 것일 테니까요.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기억을 잊어가는 가족을 보는지 치매 환자를 돌본 경험이 있는 가족으로서 이해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눈에 좋은 차라며 메리골드 꽃차 한병을 선물로 주었다. 홍천 산골짝에서 주말 농장을 하는 그녀는 직접 키운 꽃을 말리는 과정을 SNS로 공유했다. 꽃차는 주위 환경이 오염되지 않은 곳에서 키운 꽃으로 만드는 게 중요한데, 그녀가 건네준 꽃차는 청정 자연의 가을 햇살 아래서 키우고 말린 것이어서 더 고마웠다.
메리골드는 국화과에 속하는 쌍떡잎 식물로, 옛날 집 앞 화단에 많이 심었던 꽃이어서 친숙하다. 주황색 꽃 자체가 예뻐 관상용으로도 좋지만 눈 건강을 지키는 대표 성분인 루테인, 지아잔틴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눈의 노화를 늦추고 시력저하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이가 들면 노안이나 백내장, 황반변성과 같은 안과 질환이 생기기 쉽다. 지인들 중에도 눈이 침침하거나 백내장 등이 걱정돼 눈 영양제를 챙겨먹는 사람이 많은데 눈에 좋은 차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항산화 성분이 풍부해 면역력 증진에도 좋으니 코로나19로 면역력이 걱정스런 요즘 같은 때에 마시면 금상첨화겠다 싶었다.
눈이 나빠지면서 일상생활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신문이나 책을 읽는 게 힘들어지고 마트에서 장볼 때 작은 글씨가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리 신체기관 중 노화가 가장 빨리 일어나는 곳이 눈이라고 하더니 현실로 다가왔다. 게다가 컴퓨터,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길어지면서 눈이 쉽게 피로해지고 안구가 건조해지는 등 눈이 보내는 적신호를 모르는 척할 수가 없는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향기로운 꽃차로 눈의 피로를 풀고 눈의 노화를 늦출 수 있다면 열심히 마시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침마다 메리골드 꽃차 한 잔씩 마시기 시작했다. 예쁜 찻잔에 꽃 한 송이 띄우고 따뜻한 물을 부으면 은은한 향기가 퍼지면서 황금빛으로 우러난다. 우러날수록 향이 진하고 구수한 맛이 났다. 향은 향긋하지만 맛은 구수해서 꽃차에 거부감이 있는 나 같은 사람도 부담 없이 마시기에 좋았다.
커피나 녹차처럼 카페인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니 아침저녁으로 따뜻한 메리골드 꽃차를 마신다. 쌀쌀해진 요즘, 눈 건강은 물론 몸도 따뜻해져 감기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 사례 1
김신영(여·64, 가명) 씨는 약 3년 전 목이 점점 뻣뻣해지더니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흔드는 증상이 나타났다. 처음엔 가볍게 머리를 흔드는 정도였지만 증상은 더 심해져 언제부턴가 고개가 완전히 오른쪽으로 굳어졌다. 치료를 위해 침도 맞아보고 재활도 받아봤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잠을 자려 해도 턱이 올라가는 증상 때문에 수면 부족에 시달려야 했고 급기야 남편의 도움 없인 횡단보도도 건널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답답한 마음에 대학병원을 찾은 그는 이름도 생소한 ‘사경증’ 진단을 받았다.
# 사례 2
박승희(여·69, 가명) 씨는 최근 왼쪽 눈을 찡그린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통증은 없었지만 눈 주변이 떨렸고 심할 땐 눈이 아예 감기기도 했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 그런가 하는 생각에 쌍꺼풀 수술을 하고 보톡스도 여러 차례 맞았지만 증상은 계속됐다. 최근엔 대인기피증이 생길 정도로 심한 스트레스까지 받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신체 일부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치 고장 난 기계처럼 계속 제멋대로 움직이거나 뒤틀린다면 어떻게 될까? ‘근긴장이상증’(근육긴장이상증, Dystonia)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근육이 수축해 신체 일부가 뒤틀리고 떨리거나 비정상적인 자세를 취하게 만드는 질환이다. 아직 일반인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아 간혹 뇌졸중이나 뇌성마비 등으로 오인하기도 한다.
근육 있는 곳이면 어디든 발생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근긴장이상증으로 진단받은 환자는 3만9731명으로 2010년 2만8138명에서 41.2% 늘었다. 여성이 남성보다 약 2배 많고 50~60대에서 많이 나타났다.
그러나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해 다른 질환으로 오인하거나 몸의 뒤틀림 때문에 사회생활을 거부하고 은둔하고 있는 환자까지 감안한다면 실제 환자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근긴장이상증은 근육이 제멋대로 움직여 여러 가지 건강과 정신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질환이다. 근육이 과도하게 긴장해 이완돼야 할 때도 계속 수축한다. 또 자신이 움직이려는 근육 대신 엉뚱한 근육이 수축하기도 한다. 이는 근육의 수축·긴장을 조절하는 뇌신경계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근긴장이상증은 팔, 다리, 얼굴, 목 등 근육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발생할 수 있다. 팽팽함, 경련, 비틀림 같은 비정상적인 자세가 신체의 특정 부위에만 나타나기도 하고 전신에 발생하기도 한다.
아직까지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운동과 연관된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저핵이나 시상부의 손상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이렇게 근육에 힘이 들어간 상태가 지속되면 근육이 떨려 경련이 오고, 뭉친 근육 때문에 통증도 발생한다.
목 근육 문제 ‘사경증’ 가장 많아
근긴장이상증은 크게 전신성과 국소성으로 나뉜다. 국소성 근긴장이상증 중 가장 많이 발병하는 질환이 ‘사경증’(斜頸症)이다. 사경증은 목 근육에 근긴장이상증이 발생한 것으로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목이 한쪽으로 돌아가거나 전후좌우로 기울어 사회생활뿐 아니라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준다. 머리의 비틀림, 경련, 머리 떨림, 목 통증 등이 주요 증상이다.
안면근육에도 발생할 수 있다. 눈 주위의 근육경련과 수축으로 초기에는 눈이 깜빡이다가 점점 눈 뜨기 어려워지고 이후에는 아예 떠지지 않는 ‘안검연축’(Blepharospasm)이 나타난다. 안검연축이 점차 안면부 전체에 발생해 얼굴 양쪽에서 경련과 뒤틀림이 발생하면 ‘메이지증후군’(Meige's syndrome)으로 진단한다.
근긴장이상증은 처음부터 전신 또는 반신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특정 근육에 국소적으로 발생했다가 주변 근육으로 퍼지거나 전신으로 퍼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뇌졸중, 뇌성마비 등으로 오인해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2000년대 초 미국에서 근긴장이상증을 유형별로 분류한 결과 사경증 45%, 안면 근긴장이상증(안검연축, 메이지증후군) 20%, 전신성 근긴장이상증 20%, 경련성 발성 장애 10%로 나타났다.
증상 심하면 ‘뇌심부자극술’ 도움돼
근긴장이상증은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는 질환이지만 제때에 치료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뇌졸중이나 다른 질환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근긴장이상증은 증상이 심하지 않은 초기에는 근육 신경을 차단하는 일명 보톡스 주사로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일시적인 완화 효과일 뿐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수술적 치료 방법에는 ‘말초신경절제술’과 ‘뇌심부자극술’이 있다. 말초신경절제술은 근육을 움직이는 말초신경을 잘라내는 방법이다. 하지만 수술이 매우 복잡해 말초신경이 손상될 위험이 있고 근긴장이상증에 따른 통증이 제대로 조절되지 않을 수 있다.
말초신경절제술을 개선한 것이 뇌심부자극술(DBS, Deep Brain Stimulation)이다. 초소형 의료기기를 뇌에 삽입해 특정 세포에 전기자극을 주는 방법이다. 신경을 잘라내거나 뇌세포를 파괴하지 않는 보존적 치료로 사경증을 포함한 모든 근긴장이상증 치료에 적용한다. 뇌에 이식한 의료기기에 문제가 생기면 기기를 다시 교체할 수 있다.
근긴장이상증은 환자는 물론 의사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질환 자체가 워낙 생소하고 뇌졸중이나 뇌성마비 등 자칫 다른 질환으로 오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긴장이상증은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지는 질환으로 사회생활의 곤란함은 물론 대인기피증, 우울증 등이 자살 충동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질환이다. 조기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홍영재 박사의 삶을 들여다보면 인생에 대해 이해하고 말하기보다는 그저 ‘인생이란 이렇구나’를 느낄 수밖에 없는 지점들이 있다. 그의 삶이 보여주는 다채롭고도 극적인 면모들 때문이다. 국내 최고의 산부인과 의사였고 20년 전 두 개의 암에 동시에 걸려 죽음 직전까지 갔으나 청국장으로 극복했으며, 암을 이기는 청국장 전도사이자 식당 경영인의 삶도 살았다. 그런 그가 최근에 도전하게 된 영역은 유산균, 그것도 김치 유산균이다. 김치 유산균, 청국장 효소와 함께한 홍 박사의 기적 같은 삶과 나이를 잊게 하는 끊임없는 도전의식이 만든 이야기를 들어봤다.
홍영재 박사가 처음 사회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높인 것은 산부인과 의사로서의 명성이었지만, 사실 그는 의사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어릴 적 꿈은 미대를 진학해 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건축가였던 아버지가 만류했다. 당신이 건설업에 몸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예술계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의 만류는 홍 박사에게 묵직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의대에 들어가길 권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의사로서의 삶이나 화가로서의 삶이나 정교하게 손을 써야 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보면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결국 그는 아버지의 권고에 따라 의대에 발을 들이게 됐다.
최고의 산부인과 병원을 만들고 받은 6개월 시한부 선고
의사가 된 후 그는 쉬지 않고 일했다. 연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전문의, 차병원 산부인과 과장, 건대 부속 민중병원 산부인과 과장을 역임하면서 국내 최고의 산부인과 의사로서 나아갔다. 그러나 명성이 높아지는 만큼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건 병원을 갈구하게 되었다. 결국 강남 한복판에 병원을 세우는 또 한 번의 도전을 시도했다. 주위의 반대가 심할수록, 그리고 경영의 어려움을 느낄수록 그는 더 도전했고 치열하게 일했다. 성과가 나아지면 되려 자신을 채찍질하는 이유로 삼았다. 그렇게 일한 만큼 홍영재 산부인과는 대한민국 최고의 산부인과로 거듭났다.
그러나 그 ‘일’이 문제였을까. 병원이 자리를 잡고 나니 그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2001년 10월에 강화도를 방문한 그는 갑자기 아랫배에 통증을 느꼈고 서울로 돌아와 진단을 받았다. 결과는 대장암 3기. 더구나 대장암뿐만이 아니라 신장에도 암이 있었다. 하나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암이 두 개나 발견된 것이다. 그의 나이 59세, 환갑을 코앞에 두고 일어난 일이었다.
평소 몸 관리를 철저히 한다고 여기던 그였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피트니스 클럽과 골프 등 주기적인 운동으로 몸 관리를 한 것도 소용이 없었다. 삶의 시련이란 갑작스럽게 가차 없이 들이닥친다는 걸 알려주기라도 하듯, 담당의는 그에게 6개월의 시한부 선고를 내렸다. 바로 수술을 하는 것 외에는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다행히 수술은 문제없이 끝났다. 그러나 진짜 위기는 수술이 끝난 뒤에 왔다. 인생에서 처음 겪는 항암치료. 크나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청국장과의 기적 같은 만남
수많은 암 환자들은 수기를 남긴다. 그 수기들은 하나같이 항암치료 시 겪어야 하는 엄청난 고통에 대해 증언한다. 홍 박사는 현역 의사였기에 그 사실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잘 알기에 더 큰 고통과 공포로 다가왔다. “죽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하지 못하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그의 말에서, 두 개의 암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누구도 겪기 힘든 극한 상황이 짐작됐다.
“77~78kg이던 몸이 61kg까지 줄었고 우울증이 왔습니다. 입과 목의 염증으로 음식을 넘길 수 없었고 구토를 하느라 잠을 못 잘 지경이었습니다.”
그는 그때의 자신을 산송장이었다고 표현했다. 그야말로 하루하루 굶으면서 죽음 가까이 가던 날들이었다. 가족들은 그런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온갖 노력을 했지만 그의 식욕을 되찾아줄 음식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돌아가신 어머니가 끓여주던 청국장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식욕이 돋았는데 신기하더군요.”
마치 운명처럼 청국장을 찾는 그를 위해 이모가 정성을 다해 끓여다 줬다. 놀랍게도 그는 아무런 구토 증세 없이 눈물을 흘리며 청국장을 먹기 시작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그의 배를 따뜻하게 채워줬고, 이후로도 암 투병기간 내내 빠지지 않고 챙겨먹었다. 그는 이때 만난 이모님의 청국장을, 죽음의 코앞까지 갔던 자신의 인생을 또 한 번 전환시켜준 터닝 포인트라 생각한다.
청국장에 담긴 항암 효과를 확신하다
홍 박사는 마침내 암의 굴레에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는 의사이기에, 청국장만으로 암이 나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의사의 진료와 처방을 잘 따르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적극적으로 한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본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청국장은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을까? 그는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몸이 증거라 생각하고, 청국장에 암을 이기게 도와주는 힘이 있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확신을 보완하기 위해 청국장을 연구했고 그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발견한 사실들을 상세히 기록한 책 ‘청국장 100세 건강법’도 출간했다. 이때부터 청국장은 항암 효과를 가진 우리 음식의 대명사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콩에서 올리고당이 발효될 때 특정한 산성물질이 생성되는데, 이것이 대장암을 일으키는 물질을 없애는 역할을 해 장 세포가 암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는다. 콩의 항암 효과는 콩을 발효시켰을 때 더 커진다. 콩이 발효되면 항암 효과가 있는 폴리글루타메이트와 면역력을 높이는 고분자 핵산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증명하듯 세계 각지에서 콩 음식은 건강식품의 대명사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홍 박사 또한 청국장이 지닌 건강식품으로서의 효능을 확신하게 되어 ‘홍영재장수청국장’이라는 이름으로 식당을 개업하고 식당 경영인을 겸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수한 강연을 통해 건강을 지키는 청국장 전도사로서의 삶을 살았다.
김치에서 발견한 유산균으로 새로운 도전
그러나 그의 전통음식에 대한 관심은 청국장에서 끝나지 않았다. 청국장을 재발견하게 된 때로부터 어언 20여 년이 지난 지금, 홍 박사는 우리의 전통음식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했다. 바로 김치다.
“김치는 미국의 유명한 건강 잡지 ‘헬스’(Health)에서 세계 5대 음식 중 하나로 선정했습니다. 사스(SARS)가 우리나라를 피해간 이유로 꼽혔을 만큼 위대한 전통 발효식품입니다. 김치 유산균은 마늘, 고추, 염분 등 산도가 높은 혹독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아 번식하기 때문에 생명력이 그 어떤 유산균보다 강합니다. 따라서 서양인보다 더 긴 장을 가진 동양인 장에서도 살 수 있죠.”
사실 현재 시중에서 판매 중인 유산균 제품들은 유통 및 보관상의 문제로 대부분 캡슐 내 분말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균의 종류도 서양 유산균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분말형 제품은 건조 공정에서 많은 수의 유산균이 사멸하고 인체에 좋은 유기산, 천연비타민, 효소 등을 포함하는 유산균 배양 산물이 거의 없어진다는 게 홍 박사의 진단이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 한국 토종 생유산균에 주목
장내에는 30%의 유익균과 10%의 유해균, 60%의 중간균으로 구성돼 있다. 홍 박사는 장내 질서를 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장에는 면역세포의 70%가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장내에는 유산균 같은 균과 장내 부패를 촉진하고 가스를 발생하는 유해균, 그리고 중간균이 있죠. 그러나 잘못된 식생활로 인해 중간균과 유익균이 몰살되면서 현대인들의 몸이 망가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무너진 장내 질서에는 유산균, 특히 생명력이 강한 한국 토종 김치 유산균이 효과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인에게 유산균은 점점 더 각별하게 필요한 영양 성분이 되어가고 있다. 과도한 인스턴트식품 등에 의존한 식생활, 무분별한 항생제 사용이 중간균과 유익균까지 몰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은 홍 박사가 다시 한 번 더 도전하는 삶을 선택하도록 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김치 유산균으로 만든 ‘닥터홍프로’와 ‘닥터홍구르트’를 출시했기 때문이다.
요즘 면역력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면역력 향상을 위해 가장 먼저 꼽는 것이 ‘腸 건강’이다. 장은 음식물을 흡수하고 배설하는 기능뿐 아니라 체내 면역세포의 70% 이상이 집중돼 있어 신체 면역기능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면역세포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장내 유익균을 늘려주는 ‘유산균’을 섭취하는 게 좋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평생을 건강 아이콘으로 살아온 홍 박사가 김치 유산균 발효액 96.7%를 함유한 ‘닥터홍프로’와 김치 유산균 발효액 93.05%를 함유한 ‘닥터홍구르트’를 만든 건 사람들이 더 건강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비롯됐다.
건강 연구의 결정체가 유산균 음료로 녹아나다
제조와 생산은 한국 토종균주 전문기업 코엔바이오(대표 염규진)에서 하고 있다. ‘닥터홍프로’와 ‘닥터홍구르트’는 세계 최초로 김치에서 추출한, 지방 및 콜레스테롤 분해력이 뛰어난 균주 류코노스톡 등 다양한 균주를 함유하고 있다. 이들 제품에 들어간 6개 균주는 이미 미국식품의약국인 FDA의 HUMAN OTC DRUG에 등록 완료된 상태다. 닥터홍프로는 김치 유산균에 재래식 시골 청국장 분리 발효균과 발효 물질, 서목태와 하수오, 인삼 등의 한방 원료까지 더해 항암 효과는 물론 면역력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
닥터홍구르트는 망고농축퓌레, 꾸지뽕줄기, 치커리를 비롯한 유기농 천연원료를 배합해 만들었다. 설탕이나 색소, 방부제는 전혀 넣지 않고 천연감미료인 스테비아가 들어갔다. 그리고 분유를 포함하지 않은 100% 식물성 제품으로 유당불내증을 완화하는 효과도 노렸다. 닥터홍프로와 닥터홍구르트는 기존 유산균 드링크가 가진 여러 한계를 극복한 제품으로 보인다. 또한 4만여 명의 아이들을 만났던 산부인과 의사로서, 그리고 암을 극복한 청국장 전도사이자 식당 경영인으로서 살면서 터득한 홍 박사의 노하우가 곳곳에서 느껴졌다. 그야말로 수십 년간 공부하고 고민한 건강 연구의 결정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내하고 나누며, 젊게 살자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최신 기술 영역에서 또 한 번 도전을 시도한 홍 박사를 보면 도전정신이 삶의 한계까지 극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최근 그는 유튜브에 채널을 개설해 인터넷 방송도 하고 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 죽음으로부터 벗어난 이후 여전히 그의 청춘은 계속 달리고 있는 중이라고 봐도 좋을 듯싶다. 그가 의욕적으로 선보이는 새로운 도전이 앞으로 어떤 반응을 얻게 될지 궁금하다.
거듭나는 삶을 살고 있는 홍 박사는 자신의 인생을 이끌어준 사람으로 두 명의 스승을 꼽는다. 한 사람은 홍 박사가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가는 ‘백인’(百忍)이라는 두 글자를 준 아버지다. ‘백인’은 ‘열 번이라도, 백 번이라도 참아라’라는 의미다. 과연 홍 박사의 고통과 그것을 극복한 과정들을 들여다보면 그 말이 좌우명인 게 이해가 간다. 백 번만큼 참아서 얻을 수 있는 결과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스승은 군의관으로서 월남전에 참가했다 만난 맹호부대 포사령관 이셨던 심유선 대령이다. 홍 박사는 삶과 죽음을 오가는 무서운 곳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 그분 덕분에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끝까지 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2년 전에 그는 인구가 35만 명밖에 안 되는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던 중, 국민을 위해 애써준 주인공들을 발표하는 행사장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낸 사람들의 이름을 외치면서 진심 어린 박수를 쳐주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1년마다 하는 행사라는데, “우리는 잘될 거다!” 하며 서로 응원하고 안아주는 그들을 보며 깊은 감동을 받았다.
쉬지 않고 나눔의 자세를 실천하며 세상 모든 이들을 사랑하는 아이슬란드 사람들, 심유선 대령, 선친을 보면서 홍 박사는 자신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깨달았다. 의사로서, 죽음의 고비에서 살아 돌아와 숙명을 받든 자로서, 뜨거운 가슴으로 느끼며 지키게 된 지침이기도 했을 것이다. 홍 박사의 지칠 줄 모르는 삶의 여정은 이제 인류를 향한 애정의 전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젊게 사십시오. 젊음에는 병이 깃들지 않습니다. 우리도 잘될 겁니다.”
노화를 알리는 신체적 신호는 다양하다. 무릎 연골이 마모돼 나타나는 퇴행성 관절염도 그 중 하나다. 무릎뼈 전체를 덮고 있는 약 3mm 두께의 연골은 나이가 들면서 연골기질 성분이 변화하면서 탄력성이 떨어지고 두께가 얇아진다. 연골이 마모되는 것이다. 연골이 마모되기 시작하면 작은 충격에도 쉽게 손상된다. 증상에 따라 적절한 치료를 해주지 않으면 관절염의 진행속도는 빨라진다.
관절염이 진행되면서 뼈와 뼈 사이에서 완충 작용을 하는 연골이 점차 닳아 없어지고, 뼈끼리 부딪히면서 염증과 통증이 심해진다. 따라서 관절염 치료는 연골의 손상 부위가 커지지 않도록 증상과 진행단계에 따른 맞춤치료를 통해 관절염의 진행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 중요하다.
◆ 누구에게나 효과적인 치료는 없어… 증상에 따라 맞춤치료 적용
무릎 퇴행성 관절염은 단계별로 치료 방법이 다르다. 치료시기를 놓치게 되면 나중에 수술을 하더라도 효과가 떨어진다. 또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도 주사치료에만 의존하는 등 단계에 맞지 않는 치료를 지속하면 효과는커녕 진행속도만 더 빨라진다. 관절염 치료는 시기에 맞춰 병원을 방문해 본인에게 맞는 맞춤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관절염 초기에는 무릎이 아프고 계단 오르내리기가 힘들다. 오래 앉아있다 일어서면 무릎에 뻣뻣한 증상이 생긴다. 이때는 소염진통제 성분의 관절염 약을 복용하거나 운동치료, 물리치료를 병행한다. 관절염 약으로 통증이 개선되는 경우에는 꾸준하게 복용을 유지하고, 근력을 강화시켜 무릎 연골의 손상을 예방하는 치료에 초점을 맞춘다.
중기 단계에 접어들면 염증이 심해져 무릎이 붓거나 물이 차고, 열감 등이 나타난다. 걷거나 계단을 오르내릴 때 초기보다 통증이 더 심해지고 양반다리를 하거나 자세를 바꿀 때 통증이 나타난다. 이때는 약물치료나 물리치료로 더 이상의 호전이 없으면 주로 관절내시경을 이용해 치료를 한다. 내시경 카메라 기구를 관절의 내부로 삽입해 관절 속 손상된 연골 부위를 제거하고 찢어진 부위를 봉합하거나 울퉁불퉁한 표면을 다듬어 40~70도의 고주파를 쏘여 관절표면을 매끄럽게 정돈하기도 한다. 또 건강한 연골을 떼어내 손상된 연골 부위에 이식하는 치료법도 있다.
무릎의 안쪽 연골만 닳아 다리가 O자로 변형된 관절염일 경우에는 무릎 아래 종아리뼈를 바로 잡아주는 근위 경골 절골술을 시행한다. 이때 환자에 따라 손상된 부위에 제대혈에서 뽑은 타가 줄기세포 치료제를 이식하기도 한다.
목동힘찬병원 최경원 원장(정형외과 전문의)은 “중기 단계에서 환자에게 맞는 적절한 치료를 시행하게 되면 인공관절수술 시기를 더 늦출 수도 있고 나아가 관리를 잘하면 추후 인공관절 수술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최근 언급되는 각종 주사치료나 자가 줄기세포치료는 아직 연구가 더 필요한 치료법으로 모든 환자들에게 효과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통증의 기전은 환자마다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증상과 단계에 따라 가장 적합한 치료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말기가 되면 심한 통증으로 일상생활이 힘들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한다. 이때는 인공관절수술이 최선의 치료법이다. 인공관절수술은 기존의 관절을 대체하는 인공 구조물을 끼워서 만들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수술 결과가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이다. 최근 활용되고 있는 로봇 시스템은 인공관절수술 시에 수술 오차를 줄여 수술 정확도를 더욱 높였으며 빠른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 자가진단 말고 조기에 병원 방문
최경원 원장은 “무릎이 아플 때는 통증의 원인을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다. 무릎에 물이 차 붓는 경우, 물만 빼고 치료를 받으러 오지 않는 환자들이 많은데, 무릎에 물이 차는 것은 질환으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이기 때문에 단순한 증상만 치료할게 아니라 근본적인 질환을 치료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환자가 스스로 증상을 판단하거나 진통제를 먹으며 가볍게 넘기기보다 조기에 병원을 방문하는 것이 좋다. 병원 방문 시기는 무릎의 통증이 한 달 이상 지속되거나 특정 각도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증상이 있을 때, 무릎 안쪽으로 통증이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볼 것을 권한다.
관절염을 예방하고 더 이상의 진행을 늦추기 위해서는 평소 운동을 꾸준히 해 하체 근육을 향상시켜야 한다. 무릎 주변의 근육은 무릎에 전해지는 체중 부하를 줄여주고, 무릎 관절이 잘못된 방향으로 운동하는 것을 막아준다. 운동은 무릎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하체 근육을 강화시킬 수 있는 실내자전거나 수영을 추천한다. 반대로 등산이나 마라톤 등은 무릎에 부담을 줄 수 있어 권하지 않는다.
노년기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치매다. 치매는 단순한 하나의 진단명이 아니라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나타나는 인지기능 저하 및 일상생활 수행 능력 저하를 뜻한다. 원인에 따른 치료 전략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조기검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조기검진에는 뇌영상, 인지기능평가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치료되지 않은 우울증은 치매로 이어질 위험성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증상만 봤을 때도 우울증이 마치 치매처럼 보이는 경우가 매우 흔하게 관찰된다.
가장 많이 알려진 치매 증상은 기억력 저하다. 임상적으로는 기억력 저하뿐 아니라 다양한 증상으로 내원하는 사람이 많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치매를 포함한 노년기 정신건강의 주요 포인트를 짚어보겠다.
사례 1 ▶ “옛날 기억은 정확하게 하는데, 최근 일들은 깜빡깜빡 잊어버려요.”
사례 2 ▶ “갑자기 치매가 온 게 아닌가 걱정이 돼요, 수술한 뒤에 자주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
사례 3 ▶ “사소한 일에 자꾸 짜증을 내고 고집을 피워요.”
사례 4 ▶ “몸이 여기저기 아픈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면 별다른 이상이 없대요.”
사례 1의 경우는 인지기능 저하를 평가하러 어르신을 모시고 온 보호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치매는 최근의 기억 저하가 주된 특징으로 나타난다. 과거에 대한 기억이나 어린 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한다고 방심해서는 안 된다. 최근 일을 기억하는 게 유난히 어려워지고, 익숙하게 쓰던 단어나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지체 없이 전문가를 찾아가 상담을 받는 게 좋다.
사례 2의 경우에서 가족들이 가장 많이 걱정하는 것은 ‘갑자기 찾아오는 치매’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발병하는 치매는 극히 드물다. 다양한 신체적, 환경적 변화가 있거나 약물 등을 사용할 때 동반되는 일시적인 섬망일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봐야 한다.
사례 3과 4에서 명심해야 할 부분은 우울증이나 신체화증상에 대한 평가다. 기억력이나 인지기능 감퇴 없이 성격 변화를 보이는 치매도 있다. 신체화증상을 주로 호소하는 노년기 우울증에 대한 적절한 평가 및 개입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사례 4는 동네병원이나 타 과에서 검사를 하면 이상이 없는데 본인은 몹시 괴로운 경우다. 이러한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우울증이나 화병 같은 심리적, 정신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
“괜찮겠지, 나이 들면 다 그런 거지” 하며 진료를 미루면 안 된다. 미리 전문가를 찾아 인생 후반전의 정신건강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게 백세시대를 사는 시니어들의 올바른 자세다.
대상포진에 걸렸을 때 치료시기를 놓치거나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치매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는 역학적 연구결과가 나왔다.
서울아산병원 감염내과 김성한·배성만, 의학통계학과 윤성철, 정신건강의학과 김성윤 교수팀은 국민건강보험공단 표본(02~13년)을 이용해 대상포진으로 항바이러스제 치료를 받은 집단과 치료를 받지 않은 집단의 10년간 치매 발생률을 분석했다.
그 결과 대상포진을 치료하지 않은 집단에서 실제 치매가 발생한 비율이 치료집단에 비해 1.3배 높았다. 반면 대상포진을 앓았어도 항바이러스제로 치료 받은 집단에서는 추후 치매에 걸릴 위험이 4분의 1 정도 감소했다고 최근 밝혔다.
대상포진은 어릴 때 감염된 수두 바이러스가 신경세포에 잠복해 있다가, 신체 면역력이 떨어질 때 신경 주변으로 퍼져서 발생한다. 수포와 통증이 느껴지면 72시간 내에 항바이러스제로 치료를 해야 한다. 치료가 늦어지면 물집과 발진이 사라진다 해도 이차 감염이나 만성 신경통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연구팀은 대상포진 바이러스의 신경 침해적 성질이 국소부위 또는 전신의 염증과 면역체계 이상을 유발해, 치매 발병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대상포진 바이러스는 세포 안으로 침입할 때 인슐린분해효소(IDE)를 수용체로 이용한다. 이는 알츠하이머 치매의 주요 원인인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인데, 대상포진 바이러스로 인해 효소 활성이 차단되면서 대뇌에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 침착이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분석이다.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 자체가 대상포진 바이러스에 항바이러스 효과가 있다는 기존 연구결과도 있다. 연구팀은 대상포진 바이러스 감염에 대항할 목적으로 신경세포들이 만들어내는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역설적으로 치매 발병에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했다.
이번 연구에는 인구 기반의 대규모 국민건강보험공단 표본 가운데 2002년부터 2013년 사이 새롭게 대상포진 진단을 받은 50세 이상 환자 3만4505명의 빅데이터가 사용됐다. 환자의 84%는 항바이러스제 치료를 받은 집단, 나머지 16%는 치료를 받지 않은 집단으로 분류됐다.
연구팀은 비교집단 간에 성별·나이·기저질환은 물론 경제적 수준 등이 유사하도록 두 집단을 1:1 성향점수매칭에 따라 5618명으로 보정한 뒤 치매 발생률을 분석했다.
10년의 추적관찰 기간 중 대상포진 치료집단에서 매년 새롭게 치매가 발생한 환자 수는 인구 1000명 당 9.36명꼴이었다. 반면 대상포진에 걸렸지만 치료를 하지 않은 집단에서는 매년 치매 환자가 인구 1000명 당 12.26명꼴로 발생해, 치료집단보다 1.3배 많은 양상을 보였다.
대상포진을 앓았어도 항바이러스제로 치료한 환자는 치매에 걸릴 위험도가 24%, 약 4분의 1 감소했다. 사망 위험도도 39% 낮아진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책임자인 김성한 서울아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이번 연구는 흔하게 발생하는 대상포진과 완치가 불가능한 치매의 역학적 연관성을 빅데이터를 이용해 밝혀낸 점에서 의의가 있다. 다만 두 질병의 인과관계를 확정적으로 입증한 것은 아니므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상포진에 걸렸을 땐 항바이러스제 치료를 받을 것을 권장한다. 백신을 접종하면 대상포진에 걸릴 확률을 60% 가까이 줄일 수 있다. 면역력 저하로 대상포진에 걸리기 쉬운 50세 이상 성인은 미리 백신을 맞고 평소 충분한 영양섭취와 수면 유지, 스트레스 관리를 통해 면역력을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결과는 ‘유럽 정신의학·임상신경과학 아카이브’(European Archives of Psychiatry and Clinical Neuroscience) 최근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