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5월이면 줄줄이 이어지는 행사가 많아 분주한 느낌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지나고 한숨 돌릴 즈음이면 스승의 날이 이어진다. 이날이 되면 의례적으로 하게 되는 일일 명예교사 일을 빠뜨릴 수 없었는데, 그해 아들의 5학년 교실을 생각하면 자동적으로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그날, 약속된 시간이 되어 아들 녀석의 학교로 갔는데 교실 복도에 다다르자 왁자지껄 우당탕 개구쟁이들이 장난치는 소리가 교실 밖까지 들렸다. 필자는 담임선생님을 잠깐 만나 일일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뒤 수업 시작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도무지 멈추지 않았다. 그때 이 소란을 잠재우려는 듯 선생님께서는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풍금 앞에 앉으셨다. ‘갑자기 음악을 들려주시려는 걸까?’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데 이내 마치 파도소리 같은 반주가 시작되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각자 자기 자리에 앉아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인적 없던 이곳에
세상 사람들 하나 둘 모여들더니
어느 밤 폭풍우에 휘말려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바위섬과 흰 파도라네
바위섬 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다시 태어나지 못해도 너를 사랑해~
이제는 갈매기도 떠나고 아무도 없지만
나는 이곳 바위섬에 살고 싶어라~~~♬
마치 아기새가 어미새 앞에서 먹이를 받아먹으려 입을 크게 벌리듯 목청껏 노래를 부르는 듯한 모습이 어찌나 예쁘던지. 창밖으로 보이던 싱그러운 오월의 하늘도 마냥 푸르렀다. 아이들의 노래는 가슴이 시원하도록 온 교실 안에 울려 퍼졌다.
조금은 쓸쓸한 가사였지만 아이들이 노래 부르자 예쁘고 유쾌한 노래가 되었다.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날의 수업은 더없이 흐뭇하고 즐거웠다.
인간적인 풍모가 느껴지는, 흰머리 희끗희끗했던 그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에게 교과서에 나오는 노래 외에도 특별한 장르의 음악 또는 민중적이거나 대중성이 짙은 여러 노래들을 가르쳐줘서 필자도 아들에게서 종종 그런 노래들을 듣곤 했다.
그 선생님은 해맑은 얼굴로 필자에게 이런 말도 했다.
“제 나이가 쉰셋이에요, 요즘은 아이들이나 부모님들이 나이 많은 선생은 싫어한다는데 나는 아이들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아무래도 얼마 동안은 더 하려고 해요.”
회갑이 지나고 또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순진무구함을 끝까지 간직할 것 같은 그 선생님은 그 후 인천의 어느 섬에 있는 학교로 옮겼고 중학생이 된 아들이 그 섬으로 한 번 찾아갔던 적이 있다.
요즘에도 이렇게 참 좋은 선생님들이 있을 텐데 김영란법 대상이 되어 일단 생각을 해보고 찾아봐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고단한 인생길에서 단비처럼 가끔 기억나는 스승들이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고마운 마음도 그리운 마음도 조심하고 계산해봐야 하는 현실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오래오래 아이들과 지내야 할 참 좋은 선생님이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해마다 이맘때만 되면 생각이 난다. 여전히 풍금소리 울리며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여생을 멋지게 보내고 계시리라 믿는다. 마음과 영혼에 기쁨과 감사가 넘치고 욕심에서 해방되어 한껏 즐기는 자유로운 영혼이 참 아름다운 사람. 나이 듦과는 무관한 그 해맑음이 떠오르는 날이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색종이로 카네이션을 만들며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에게는 카네이션을 만들어 가슴 한 쪽에 달아드리면 그게 효도라고 말입니다. 나머지 364일은 그저 철없는 자식이었습니다. 속없는 말썽꾸러기였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부모님이 내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 사는 형편이 어렵다 생각하시는 부모님은 당신의 무능력 때문에 자식까지 고생한다고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자연히 부모님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끝내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어느 날 부모님은 안 계셨습니다.
365일 중 하루 5월 8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은혜에 감사하자는 날이었죠. 이시대의 젊은이들이 부모의 은혜를 방치하고 저버리고 있음을 방증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오죽하면 국가에서 어버이날을 지정하여 하루만이라도 그 은혜에 감사하자며 강제하고 나섰을까요?
저자인 기시미 이치로는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풀어야 할 본질적인 과제로 ‘나이든 부모에 대한 자식의 사랑’을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은 천사였고 슈퍼맨이었고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후원자였습니다. 영원한 내편이었고 인생의 스승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돌보지 않은 부모님은 조금씩 병들어 갑니다. 마침내 몸져 누워 자리를 보전한 부모님은 더 이상 천사도 슈퍼맨도 후원자도 아닌 귀찮고 쓸데없는 존재일 뿐입니다. 이제 부모는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아무 것도 혼자서 할 수 없고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자식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아는 순간 인생의 크나 큰 의미도 함께 깨닫게 됩니다.
기시미 이치로의 부모님에 대한 애정은 각별합니다. 20대에 뇌경색으로 쓰러진 어머니를 학업을 중단하며 간호해야 했고, 50대에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아버지를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어머니 간호에 지칠 즈음 어머니는 위독해졌고 오래도록 곁에 있었지만 임종을 지키지는 못했습니다. 꿈속에 어머니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채 깨닫기 전에 아버지는 기억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치로는 아버지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여겼습니다. 스스로도 늙어 가면서 아버지의 노화를 순순히 받아들였습니다. 나이 들어가는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나이든 부모님을 간병한다는 것도 사랑한다는 것도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더 이상 노령화에 대한 문제를 개인에게 전적으로 맡겨서는 곤란합니다. 국가가 나서야 합니다. 이것이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이지만 틀렸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내일은 대선일입니다. 많은 대통령 후보가 노령화에 대한 대비책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령화 문제를 국가에 떠넘기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수없이 노인요양 병원을 짓는다 해도 삶에 녹아 있는 가치를 찾지 않고는 모두가 헛될 뿐입니다. 기시미 이치로는 설파합니다. 부모님이 나를 몰라본다 해도 부모님의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요즘 동료 의사들이 임플란트 환자가 늘었다는 말을 많이 해요. 보험적용이 되어 비용 부담이 줄어들었고 날이 따뜻한 봄에 치료를 시작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몇십 년 전에는 틀니가 엄청 비쌌는데 이제는 임플란트를 어버이날 선물로 선택할 정도로 대중화됐다.예전에 비해 시술 비용이 많이 저렴해졌고 재료의 국산화, 수면시술 등 기술도 발전했기 때문이다. 건강한 치아는 오복(五福) 중 하나라고 한다. 강남 신사동에 위치한 더페이스치과 이중규 원장에게 치아를 제대로 관리하는 방법과 임플란트 시술에 대해 들어봤다.
65세 이상 시술, 관리가 더 중요하다
40~50대 이후부터 치과 치료를 받는 사람이 많습니다. 치아도 피부나 몸처럼 한꺼번에 노화되는 건가요?
많은 사람이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다가 병원에 옵니다. 치료시기를 놓치면 치료비도 많이 들고 치료도 더 힘들어지죠. 다른 선진국의 경우 대부분 패밀리닥터의 조언으로 정기검진처럼 6개월에 한 번씩 검사하고 조금만 이상이 있어도 치료를 받습니다. 치아 건강에 엄청 신경을 써요.
얼마 전, 치과 임플란트 부작용 분쟁으로 10건 중 4건은 시술이 중단됐다는 기사가 났어요. 이 기사를 접하고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요?
임플란트는 기본적으로 잇몸 절개를 하고 턱뼈에 구멍을 뚫어야 하는 외과적인 진료이기 때문에 부작용이나 후유증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사전에 환자의 상태를 체크해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환자에게 고지해야 하는데 간혹 설명을 안 하는 경우도 있어요. 임플란트는 치료가 간단하게 끝날 수도 있지만 환자 상태에 따라 광범위한 뼈 이식 등 추가 시술을 할 수도 있어서 시술보다 시술 후 관리가 더 중요합니다. 이 점에 대해 환자의 이해를 이끌어내야 좋은 진료가 될 수 있어요.
임플란트 부작용 환자가 특히 60대 이상에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나이 많은 분들 중에는 골다공증과 당뇨, 심장질환과 같은 전신 질환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높고 임플란트를 지지하는 치조골이 줄어든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당뇨나 심장질환은 대개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체크하고 약을 복용하기 때문에 대부분 관리가 잘되고 있습니다. 반면 골다공증은 치료제를 먹으면 뼈가 단단해지면서 내부 혈관이 줄어들고 턱뼈가 녹고 썩는 괴사 증상이 올 수 있어서 임플란트 치료에도 영향을 미쳐요. 치과 치료를 해야 하는 사람이 골다공증 약을 먹는다면 반드시 의사에게 알려야 해요.
간혹 ‘임플란트 전문의’라는 광고를 봅니다. 임플란트 전문의가 따로 있나요?
현행법상 임플란트 전문의는 없어요. 임플란트는 치아가 없는 턱뼈에 인공치근을 심고 그 위에 치아의 머리를 제작해서 끼우는 시술입니다. 굳이 나누자면 인공치근을 심는 것은 구강외과나 치주과에서 할 수 있고 머리를 만드는 것은 보철과에서 할 수 있습니다. 즉 전반적인 치과 개념이 종합되어야 하나의 진료를 할 수 있어요.
임플란트보다 틀니가 나은 환자도 있어
임플란트 비용이 70만원대에서 200만원대로 다양합니다. 왜 이렇게 비용이 다른가요?
과거에는 수입 제품으로만 치료를 했기 때문에 비용이 높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모든 부품이 국산화됐고 국산 업체가 더 잘 만드는 것 같아요. 또 재료가 다양해지고 임플란트 시술을 할 수 있는 치과의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비용이 전반적으로 낮아지고 있어요. 하지만 치료의 수가는 환자에 따라 난이도가 다르고 의료진의 지식과 노력, 경력이 포함된 것이기 때문에 비용 편차는 있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틀니를 더 많이 했는데, 요즘엔 임플란트 시술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이유가뭘까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현재 국산 임플란트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볼 수 있어요. 또 65세 이상 환자에 대해 건강보험 적용이 되면서 좀 더 대중적인 치료로 자리 잡았어요.
이전에는 만 70세 이상의 어르신들에게 적용되던 치과 임플란트 건강보험이 2016년 7월부터 그 범위가 확대되어 만 65세 이상 부분 무치악(이가 다 빠진 이틀) 환자에게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50%는 본인 부담, 50%는 국가 부담으로 치료받을 수 있어요. 보험적용을 하면 보통 60만원 정도 들고 총 2개까지 가능합니다. 나이가 들면 피부 탄력이 줄어들듯 뼈의 볼륨도 줄어드는 퇴축 현상이 생기는데, 임플란트를 심으면 치조골 퇴축이 안 됩니다. 그것이 틀니와 다른 임플란트의 큰 장점이죠.
임플란트 시술을 받기 어렵거나 임플란트보다 틀니가 나은 환자도 있나요?
임플란트가 좋은 치료이긴 하나 만능은 아닙니다. 아주 드물지만 임플란트가 불가능할 정도로 치조골의 상태가 안 좋은 사람도 있어요. 환자 중 70대 어르신이 있었는데, 이분은 40대부터 틀니를 꼈어요. 치아 없이 30년 정도 틀니를 끼면 치조골이 자연스럽게 퇴축해요. 임플란트는 뼈에다 심어야 합니다. 이런 분들은 모든 치아의 뼈를 다시 만들어야 해서 오히려 부담스러울 수 있어요. 그래서 차선책으로 틀니를 사용하기도 해요. 임플란트의 개수를 줄이기 위해 임플란트에 의해 지지되는 복합형 틀니도 있습니다. 그런데 틀니를 하면 치조골이 줄어들며 헐렁해져 다시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생겨요.
전체 임플란트 식립은 무엇인가요?
임플란트는 힘을 받는 구조가 틀니와는 다르기 때문에 자연치와 아주 가깝죠. 그래서 임플란트가 가능한 환자는 임플란트를 하는 게 나은데, 임플란트 식립은 쓸 수 없는 치아가 전혀 없거나 이미 치아를 모두 상실한 경우 모든 치아의 기능을 임플란트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여러 개의 치아 이식과 광범위한 골 이식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에 전신마취나 수면마취를 통해 편안하게 진료받을 수 있습니다.
노인들의 치아 관리, 이것만큼은 꼭 신경 써야 한다면 뭐가 있을까요?
치아는 오복 중 하나입니다. 건강하게 잘 먹는 것에 대한 즐거움은 평균수명의 증가와 함께 사회적 이슈가 됐습니다. 건강한 치아를 원하신다면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고 정기적으로 치과를 방문해 검사를 받는 게 좋습니다.
또 치과 치료에 대한 공포도 줄여야 합니다. 치과에 가면 돈이 많이 든다고 안 가시는 분도 계신데 보건소로 가면 비용 부담을 조금 줄일 수 있습니다. 예방적 차원에서 자주 치과에 가고 위생관리를 잘하는 분은 치과 치료 비용을 많이 절약할 수 있어요.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효도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 간 인식 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효도를 하여야 하고, 받아야 하는 입장에 선 시니어들은 고민이 깊어간다. 즐거워야 할 가정의 달에 설ㆍ추석 명절 스트레스처럼 ‘가정의 달 스트레스’를 어깨에 짊어진 안타까운 현실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오면 반갑고, 가면 시원하다고 한다. 효도를 받는 입장에서는 이처럼 전통적인 혈연ㆍ정서적 의미의 효도를 바라고 있다. 필자는 쌍둥이 손주와 외손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입이 귀에 붙는다. 옛날 할아버지ㆍ할머니께서 손자들에게 내리 사랑하셨던 것처럼 손주가 있는 자체가 축복이다. 뺨을 비비고 껴안아주면서 따뜻한 체온을 느끼는 것이 행복이다.
효도를 하는 입장인 자녀 세대는 용돈, 비상시 목돈 등 부양료 지급 등을 우선순위로 꼽아 경제ㆍ물질적 지원 의미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지금의 세태다. 지금은 맞벌이하지 않으면 살기 어려운 형편이다. 숨 가쁜 직장생활과 고달픈 육아 등으로 부모가 원하는 효도의 실천이 쉽지 않다. 시니어 세대처럼 전업주부는 꿈꾸기 어려운 옛 이야기가 되었다. 오히려 시니어는 손주들을 돌보는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도맡아야 주어야 한다. 이것이 정서적 교감을 하는 좋은 계기가 된다.
자녀 세대가 효도를 바라보는 관점이 변화하는 것을 단순히 물질만능주의로 해석해서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빛의 속도로 변하는 세상에 효도의 개념도 변하고 있음을 속히 인식하여야 한다. 자녀들이 부모가 필요할 때 미리 알아서 티 나지 않게 보살펴주는 지혜를 익혀야 한다. 내가 필요하다고 부르거나 찾아가는 일을 삼가야 한다. 그들은 시니어보다 더 어렵게 살고 있다고 이해하여야 한다.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은 자식이 그 후에는 부모 봉양을 나 몰라라 해서 결국 효도계약서까지 쓰는 게 세간의 화제였다. 효도의 정도에 따라 자식을 차별하여 상속분쟁ㆍ폭탄이 터져 풍비박산한 경우도 종종 보아왔다. 부모와 자식 세대 간 갈등이 계속 늘어나자 국회에서는 불효자방지법이 발의돼 계류 중이다. 아무리 법으로 효도와 부양 의무를 규정하더라도 효도의 총량을 수치적으로 정의할 수는 없다. 부모와 자식이 평상시 대화를 통해 인식의 차를 좁혀 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
365mc 비만클리닉은 서울365mc병원 김하진 대표병원장이 기부금 1억5000만원을 경북 청송에 위치한 양로원인 ‘소망의 집’에 기부했다고 8일 밝혔다.
365mc측은 기부금 전달식을 4월 29일 서울성모병원 대강당에서 진행했다. 기부금 전달식에는 소망의 집을 운영하는 황금련 원장과 소망의 집 사무국장 김병환 목사도 참석했다.
365mc병원·비만클리닉의 공동설립자인 김하진 대표병원장은 “현대사회의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고향의 자리도 좁아지는 것 같다”며 "마음의 고향과 같은 소망의 집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망의 집은 365mc가 2010년 전달한 기부금 4억원을 기반으로 2011년 10월 건립됐다. 소망의 집은 60세 이상의 노인이 입소할 수 있으며,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는 무료로 입소받고 있다.
달력에 빨간 글자로 적힌 쉬는 날들이 많으면 사람들이 모두 좋아합니다. 놀 수 있으니까요. 자칫 질식할 것 같았는데 ‘숨통이 트인다’는 사람도 있으니 그 좋음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됩니다.
그런데 저는 가끔 정말 누구나 그렇게 좋아할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사사로운 것이긴 합니다만 저는 젊었을 때부터 명절을 포함한 쉬는 날이 두려웠습니다. 현실적으로 잘 감당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돈도, 시간도,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의 긴장도 그랬습니다. 게다가 후유증마저 없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쳇바퀴 돌듯하는 일상이 오히려 편했습니다.
다시 5월입니다. 5월에는 ‘날’이 많습니다. 모두가 반드시 쉬는 날은 아니어도 마음 쓰게 하는 날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한번 제가 아는 대로 짚어보겠습니다. 1일은 근로자의 날입니다. 음력 4월 8일인 3일은 석가탄신일이고, 5일은 어린이날입니다. 8일은 어버이날, 14일은 입양의 날입니다. 15일은 스승의 날인데 그날이 5월 셋째 월요일이어서 성년의 날과 겹칩니다. 18일은 민주화운동의 날, 다음 날인 19일은 발명의 날, 20일은 세계인의 날, 21일은 부부의 날, 25일은 방재의 날이면서 실종아동의 날이기도 합니다. 30일은 음력 5월 5일이니까 단오절이고, 31일은 바다의 날이자 금연의 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올해에만 끼어든, 그런데 어느 날보다 중요한 날이 있습니다. 9일인 대통령 선거일입니다. 그러고 보니 유권자의 날인 10일을 앞에서 빠트렸군요.
살면서 자칫 놓치거나 잊기 쉬운 귀한 가치를 ‘날로 정해’ 새삼 간직하려는 노력은 어색한 표현이지만 ‘기특한 문화’라고 일컫고 싶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사람답기를 기하는 모습이 참 대견스럽습니다. 새삼 사람다움의 긍지를 확인하게 해주니까요.
그런데 그렇다 할지라도 5월은 날이 너무 많습니다. 예부터 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過猶不及] 했는데 이 또한 오랜 경험을 통해 터득한 지혜라 생각하면 우리가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바로 5월은 그 말을 떠오르게 합니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5월의 날들은 대체로 봄의 상징성과 이어져 있습니다. 겨울에 수박을 먹으면서도 계절의 흐름을 못내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삶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단순화해보면 ‘어린이로부터 어른에 이르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들이 다 날로 정해져 있는 것이 5월입니다. 그렇다면 아예 그 여러 날들을 하나하나 떼어 지내기보다 이를 한 다발로 묶어 ‘5월을 한번 5월답게’ 보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연세 지긋한 분들이 이 달을 어떻게 지내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우리는 모두 어른인데 참으로 어른일까?’ 하는 물음을 묻는 달, 그러니까 5월을 ‘어른임을 반추하는 달’로 삼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까닭인즉 분명합니다. 어른이 젊은이보다 많아진 이른바 고령사회가 되었는데도 ‘나이 많은 어른’은 넘쳐도 ‘나이 든’ 어른들은 그리 많지 않아 우리의 가정이, 사회가, 국가가 온통 유치한 모습만을 부끄러움도 없이 다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제가 공부하는 종교학에서는 종교문화의 특징을 기술하면서 이른바 성년식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줄여 말하면 종교란 모름지기 ‘어른 만들기의 문화’라고 해도 좋을 거라고 할 만큼의 비중을 가집니다.
문제는 이른바 ‘어른다움’이란 어떻게 기술될 수 있나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유교 전통의례인 관례(冠禮)나 계례(笄禮)를 들어 설명해도 좋겠습니다만 두루 성년의례의 보편적인 특성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서술해보겠습니다.
우선 어른은 자기의 정체성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 여러 문화권에서는 그 공동체의 전래 신화를 읊곤 합니다. 어리지 않다는 것은 내가 누군지, 내가 왜 사는지, 내 존재 의미가 무엇인지를 자신 있게 천명할 수 있음을 뜻합니다. 이름과 직업과 누구의 자식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만으로는 한참 모자랍니다.
다음으로 어른이란 삶이 물 흐르듯 그렇게 졸졸거리는 것이 아님을 아는 사람을 뜻합니다. 곤경, 좌절, 절망 등의 구비들을 한없이 거쳐야 하는 그런 것이 삶입니다. 그러므로 고통을 회피하려는 것은 아직 어른의 삶의 태도는 아닙니다. 그 모든 부정적인 삶의 정황과 당당하게 직면하면서 마침내 ‘고통에 의미 있다’고 선언할 수 있어야 그가 비로소 유치하지 않은 어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른은 생명의 어버이가 된다는 것과 대체로 함께합니다. 생명을 낳는 존재가 되는 것이죠. 그러므로 생명의 신비에 대해 언제나 외경의 염(念)을 지니고 사는 사람, 생명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 그가 곧 어른입니다.
만약 어른 됨의 이러한 서술에 우리가 동의할 수 있다면 5월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어린이날이면, 아이들을 즐겁게 하고 좋은 선물을 사주는 것도 좋지만, 아이들을 내가 어떻게 키우고 있는지, ‘어른이 되도록’ 키우고 있는지 아니면 ‘어린이로 머물게’ 키우고 있지는 않은지를 되살펴야 합니다. 스승의 날이면 내가 어떤 스승의 모습으로 학생들에게 어떤 가치를 가르치면서 그들을 어른으로 키우고 있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스스로 설 수 있는 어떤 기회도 주지 않으면서 순응만을 강요하지는 않는지, 나 자신의 어른 모습을 단단히 해체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부의 날도 다르지 않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따로 함께’ 살고 있는지, 아니면 ‘함께의 구실’로 상대방을 자신의 영토 안에 철저하게 예속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의 어른 됨을 분석해보아야 합니다.
내가 누군지 모르는 그런 자식들로 이루어진 가정은 희망이 없습니다. 편하게, 쉬운 일만 찾아 살다 조금만 어려워도 주저앉고, 그러다 나이를 먹어 아비 어미가 되긴 하지만 아이가 아이를 낳은 ‘아이의 연쇄’만이 이어질 것이 빤한데, 그 가정이 제대로 된 가정일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유치함의 지속일 뿐입니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의식이 없는 시민들로만 우리의 공동체가 이루어질 때, 그 모습이 어떠할지도 그대로 보입니다. 공직에 들어서면 그것을 곧 내 사적 공간의 확장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유치하고 철딱서니 없는 공인들을 보면 짐작이 됩니다. 그런데 공직 아닌 자리가 삶의 자리에서 있기나 한 것인지요. 나이 먹어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래서 어른이 되어 산다는 것은,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내 삶의 사적 영역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인데, 이를 모르는, 아예 알고 싶지도 않은, 그런 물음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어른들이 이른바 온갖 ‘책임 있는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을 때, 그 공동체의 내일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예견 못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진정한 문제가 아닐는지요.
5월에는 새삼 ‘어른 부재의 문화’에 대한 감각이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네처럼 나이 들 만큼 든 사람들이 조용히 내 안에서부터 이런 감각을 싹트게 하여 내가 있는 자리에서부터 새로운 5월의 색깔이 채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개칠인들 어떻습니까?
너무 구태의연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만 5월. 참 싱그러운 달입니다. 날에 맞추어, 누구나 즐겁고 환하게 행복하게, 그리고 유치하지 않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저도 그렇게 노력하겠습니다.
어렸을 적 제사는 꽤 부산했다. 필자 집이 장손으로 친척들이 다 모였었기 때문이다. 제사는 하필이면 한밤중에 지냈으므로 그냥 안 자고 기다리거나 자다가 깨우면 일어나서 제사에 참여해야 했다. 대부분 잠들었다가 한 밤중에 일어났다. 온수도 없을 때였으므로 찬 물에 세수하는 것이 싫었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쇠고기 산적을 먹을 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쇠고기 산적은 먹기만 하면 한 보름은 위에서 신물이 올라와 고생해야 했다. 고기도 안 먹다가 먹으면 몸에서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어머님이 먼저 돌아가셨을 때는 아들 역할을 자청하던 목사 주관으로 추도식 방식으로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상을 가득 채우던 음식도 없이 간단히 추도식을 한다는 것이 보기에 안 좋다는 반응이 나왔다. 사업을 하는 둘째는 전통방식으로 해야 한다며 반발했다. 그래서 한 동안 제사를 종교별로 1부 추도식, 2부 전통식으로 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다시 전통식으로 돌아 왔다.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우리 형제들이 주관하여 집안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 고조부까지 제사를 지냈으므로 설과 추석까지 하면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제사가 꽤 자주 있었다. 어머니 혼자 제사 음식을 준비하다가 점차 나이가 들자 며느리들이 도와달라고 했다. 그러나 첫째 형님은 돌아가시고 나서 형수님이 혼자 오려고 하지 않았다. 무릎 수술까지 해서 거동도 불편하니 도움도 되지 않았다. 둘째 며느리는 아이들 교육 차 늘 캐나다에 가 있고 셋째인 내 아내는 직장에 다닌다는 이유로 적어도 일박을 해야 하는 제사 음식 준비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넷째 며느리에게까지 차례가 간 것이다.
어머님이 8순이 되자 더 이상 힘들어서 집에서 제사를 모시기 곤란하다고 했다. 장자 역할을 하는 둘째가 모셔가야 하는데 시내 절에서 제사를 치르자는 제안을 했다. 남부터미널 근처의 절인데 회비만 내면 절에서 제사를 집행해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각 형제마다 종교가 달라 불교식 염불에 맞춰 제사를 지내는 것이 불편했다. 둘째 형님은 사업 상 조상을 잘 모셔야 한다며 굳이 고조부 제사까지 모셔야 한다고 고집했다.
그렇게 몇 년을 하다 보니 2세들이 평일 제사에는 직장 퇴근이 늦어 참석이 어려웠다. 청년 취업난시대에 제사지낸다고 일찍 퇴근하다가 밉보이면 안 되니 오지 말라고까지 했다. 어머니도 무릎이 안 좋아서 더 이상 참석이 어렵다고 했다. 우리 형제들만 모이다 보니 제사의 원뜻인 돌아가신 분을 추념하고 그 때문에 모인 산 사람들의 친목을 도모하려는 취지가 무색해졌다. 집에서 제사를 지내게 되면 제사를 지내는 중간에 서로 대화도 한다. 그러나 절에서는 2시간 동안 제사를 주관하는 스님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 하며 숨소리마저 조심해야 한다.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기도 어려운 불경을 따라 읽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이럴 바에는 절에서 지내는 제사를 재고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차라리 제사를 우리 형제들 집에서 돌아가며 단출하게 직계 부모만 지내자고 했다. 형식적인 제사상을 차리지 말고 참석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메뉴로 상을 차리자는 것이다. 그리고 2세들이 모일 수 있게 주말을 택해서 모이자고 했다. 어버이날이나 생일도 그렇게 한다. 당일이 평일이면 모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세대는 우리가 죽고 나서도 2세들에게 제사를 강요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산소도 없고 유골을 산이나 강물에 뿌리기도 한다. 시대가 바뀌어 버린 것이다. 기일에 꽃다발 들고 유골함 모신 곳에라도 와주면 고마울 정도이다.
건강한 가정이 모여 크고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이런 공동체가 모여 국가의 초석이 된다. 하지만 가정 해체가 심심찮게 일어나면서 아동학대, 노인 소외 등 심각한 사회문제로 이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허물어지는 가정 해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우리 사회의 대안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전문가들은 바로 효(孝)라고 말한다. 이번 호에서는 효를 실천하는 3인이 한자리에 모여 이 시대의 효의 진정성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 무크지 을 창간하는 권혁승 백교문학회장(이하 권혁승 회장)
△ 효경영의 리더 상훈유통 이현옥 회장(이하 이현옥 회장)
△ 교육을 통해 효 문화를 정착시키는 최종수 한국효문화센터 이사장(이하 최종수 이사장)
장소 이투데이 6층 회의실
Q.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전통적 가치 ‘효.’ 요즘 효를 얘기하려면 저마다 답답하다고 한탄합니다. 무엇 때문에 시니어들이 분노하는 걸까요?
△ 이현옥 회장: ‘효는 백행지본(百行之本)’이에요.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모든 행동의 근본이죠. 부모가 없었다면 자식들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자신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위치에 섰더라도 이는 모두 부모의 은덕이죠. 부모 모시는 일을 우선으로 해야 하는데 바쁘다, 먹고 살기 힘들다는 핑계로 찾아뵙는 것은 소홀히 하고 전화 한 번 하는 정도로 생색내는 자식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죽는 날까지 자식 잘 되기를 바라고 좋은 소식 있기를 고대하며 밤낮으로 자식 걱정을 하는 게 부모의 마음이죠.
△ 최종수 이사장: 자식들의 마음가짐을 바로 세우기 위해선 교육이 우선돼야 해요. 옛 서당에서는 과 을 기본으로 어려서부터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예절을 가르쳤어요.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비는 아비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각자 직분에 충실하게 하는 밑바탕에는 효가 자리 잡고 있었지요.
이런 이유로 초·중·고교에서 효와 예절, 질서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어요. 학식을 갖추는 것보다 사람이 되는 게 우선이지요.
이러한 일들을 시작하게 된 게 주위에 있는 문화예술인들이 ‘우리 매일 같은 것만 할 게 아니고, 인성과 효에 대한 공감을 통해 새로운 일을 한번 해보자’고 한 것이 계기가 됐어요.
△ 권혁승 회장: 우리나라 효 사상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고, 한국의 가족주의도 전부 없어져 가고 있어요. 이러한 현상을 두고 ‘가정 파괴’라는 말들을 씁니다. 이는 곧 가정의 예절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가정의 예절이란 자식이 부모를 공경할 줄 알아야 하는데, 요즘은 어버이날이나 부모 생신날이라 해서 선물하나 사서 주는데 그건 효가 아니죠. 효 사상이라는 것은 한국인의 정신문화라는 것이고, 물질의 교류나 거래는 아니죠. 부모자식 간에 아파트 사주고 비싼 선물 사주고, 물론 그것도 효도의 한 방법 일수 있지만, 한국의 기본 사상이자 문화 사상은 아니라고 봅니다.효의 출발점을 가정의 예절에 두고, 어른을 공경하는 것부터 아이들을 교육해야 해요. 요즘은 어린이 교육이 잘못돼 개인주의나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해졌지만, 한국 효 사상이 무너져가는 위기 상황이라고 느끼니 씁쓸하죠. 그러한 문제로 우리(3인)가 모인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웃음).
Q. 지금 효는 현실적으로 어떻게 실천되고 있나요?
△ 권혁승 회장: 요즘 대다수 부모는 자식에게 의지하려고 하지 않아요. 그리고 자식들은 부모에게 효도하려는 생각을 안 하고 있죠. 효를 바라지도, 하지도 않는 게 현 상황인거죠. 그래도 지금 우리가 하는 효 운동을 계속 꾸준히 전개해야 하는데, 도움이 필요합니다. 각 시·구 문화원에서 부모에 대한 시 낭송회를 1년에 한 번씩 한다든지, 강의를 한다든지 말입니다. 이렇게 효에 대한 교류를 해야 효심이 생기는 것이죠. 젊은이들에겐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고 날마다 반성을 해나가는 것이 효예요. 아이들이 “학교 다녀 오겠습니다”, “다녀 왔습니다” 인사를 하는 것이 기본인데 휙 갔다가 말없이 돌아오죠. 젊은 엄마들도 다 어릴 적 해본 것으로 신경을 못 써서 그렇지 아이들도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에요. ‘효심’. 그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봤어요. 대한민국 국어사전에 이렇게 나옵니다. 첫 번째, ‘효성스러운 마음’. 두 번째, ‘효심은 엄하게 키운 자식일수록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한 법이다’ 그러니 부모가 애를 잘 키워야 하죠. 적당히 키우면 효도가 안 돼요. 불효라는 것은 아이에게만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고 상대적인 것, 부모자식 간 주고받는 것이거든요.
△ 이현옥 회장: 효를 실천하는 방법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 왔어요. 이기주의와 황금만능의 물신주의는 가정의 안녕과 질서의 근원인 효를 경시하므로 해체되는 가정들이 늘어나고 어린이나 젊은이 할 것 없이 절대가치와 기준이 상실되어가고 있는 현실이죠.
자식을 물질적으로 키우면 그게 효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권 회장 말씀대로 엄하게 키우고 가정에 모범을 보여야 하죠.
Q. 지난해 12월 ‘효도계약’을 지키지 않은 아들에게 증여한 부동산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 판결을 놓고 가족모임에서 효도계약서를 쓰는 시니어들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 권혁승 회장: (부모자식 간 효도계약서 등의 문제에 대해서) 나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요. 한국인은 효에 대해 우리 전통문화, 민족문화로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데 개중에는 부모자식 간 효도 계약서를 쓴다든지 하는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 사실상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런 몇몇 사건을 미디어에서 너무 부풀리는데, 그런 것을 줄여야 해요. 부모자식 간 화합하고 소통해야 하는데 불화가 있다면 잘못되는 것이죠. 아이들이 자랄 때 가정 예절이나 인성 교육을 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으니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자식이 잘못했든 부모가 잘못 가르쳤든 소통이라는 것은 쌍방이에요.
△ 최종수 이사장: 효도계약서를 쓰고 하는 효는 결코 효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계약을 하는 것도 문제, 그것을 퍼뜨리는 언론도 문제이지만, 어쨌든 그것은 효가 아니고 효가 될 수도 없어요. 중요한 것은 두 분(권혁승, 이현옥)도 그렇지만 자신의 모든 열정과 재산을 털어 효 문화를 전파하는 훌륭한 분들이 계시는데 국가는 대체 무엇을 하는가 생각이 들어요.
지방자치단체 강령에도 효에 대한 지침 등이 있지만, 지나친 복지로 효가 묻히고 퇴색하고 있어요. 노인, 장애인 복지 등을 위한 비용이 당연히 들겠지만, 그중 일부를 효를 위한 예산으로 책정해 정책을 세워야 합니다. 사람들이 효를 통해 그런 노인과 장애인 등을 돌볼 수 있도록 말이죠.
Q. 효에 관한 교육과 정책 지원이 줄어들고 있다는데요.
△ 권혁승 회장: 예를 들어 우리 어린이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시 낭송회를 한다고 하면 그들도 그 며칠 동안은 아버지 어머니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효가 뭔가 선물만 주는 게 아니라 기본을 익히는 교육을 해야 해요. 이런 말이 적절할지는 모르지만 각 지역마다 문화원이 있어요. 대개 문화 강좌를 한다든가 음악, 미술, 무용 등을 가르치는데 효 문화에 대해서도 강의하면 안 될까 싶어요. 문화원마다 책정된 예산들을 다 그런 예술 강좌에만 써야 할까요?
△ 최종수 이사장: 의 독자들의 나이대를 보면 나라 망하고, 6·25사변 나고 배고프고 살기 어려워서 그런 걸 찾을 수 없는 시대였다 할지 몰라도, 그 와중에도 뜻있는 사람들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어요. 좋은 효자·효부 정말 많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었다는 생각 말고 기본적인 교육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요?
△ 이현옥 회장: ‘효’를 바탕으로 회사를 경영하다 보니 직원들도 만족해하고, 사고도 발생하지 않아요.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가는 직원들에게 홍천 대명콘도와 양양 솔비치콘도 숙박을 지원해 줍니다. 1년에 상·하반기 2번 가능하고, 시댁이나 처갓집 식구들도 함께 갈 수 있게 하는데 주로 직원들이 장인·장모를 모시고 가는 편입니다.
‘너희들이 부모에게 잘함으로써 우리 직장도 건전하게 발전이 되는 거다’라고 자주 말합니다. 매년 5월에는 효 문화 확산을 위해 전 직원이 가족을 데리고 세종시에 있는 효림원(효 마을)을 방문해 효심을 나누고 효 문화행사를 진행하죠.
Q. 효 문화 확산을 위해서는 무엇을 바꾸어야할까요?
△ 최종수 이사장: 효 문화예술 교류 차원에서 학교에 전문 강사가 방문해 효 강의 등을 하는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지만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어머니들의 생각이 좀 바뀌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효에 대해 토론회를 한다고 하면 관심도 없고, 다른 학원에 가라고 하는 등 꽁무니를 빼기 때문이죠. 학생들을 모집하면 3분의 1 정도만 자발적으로 오고, 3분의 1은 학교에서 하라니까 억지로 온 것이고, 또 3분의 1은 참여는 하지만 구실만 있으면 학원에 가거나 빠지려고 해요. 그런 경우에 학생도 학생이지만 어머니들이 적극적으로 인성이나 효, 예절에 관심을 가져야 해요. 인성이 기본이 된 다음에 학력을 쌓아야지 기본도 안 되고 학력만 쌓으니 아이들이 머리만 커지는 것이죠.
효라는 것은 평생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인데, 유가(儒家)에서 배울 때는 부모가 살아 계실 때 모시기를 잘 해야 한다고 하는데, 종교가 달라 많은 부분에 갈등이 생겨나고 있어요. 그런 효가 필요 없다고 하는 단체도 생기고, 내가 효를 안 해도 살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지는 몰라도, 효는 우리나라 정서나 젊은이들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지난해부터 인성교육진흥법을 시행하여 인성교육을 강화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단체가 갈팡질팡하고 있어요. 인성과 예절 교육은 효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권혁승 회장: 효 문화, 이런 운동은 돈이 많다고 할 수 있는 운동도 아니고 시간이 많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어떠한 소명감에 의해서 하는 것이지 이해타산으로 하는 게 아니에요.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라 ‘기브’만 하는 거죠.
요즘 부모는 자식의 효도를 바라지도 않고, 자식도 안 하는 상황이지만 결코 포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에요. 효는 어디 내다 팔래야 팔 수 없는 한국인의 아주 기본적인 사상이자 문화 사상으로 한국인만이 가지고 있는 정서니까요. 2018년에 동계 올림픽을 하는데 외국인들이 많이 왔을 때 ‘한국은 효의 나라다’라는 게 선전되면 얼마나 좋겠어요(모두 웃음).
△ 이현옥 회장: 생전이나 사후에도 예에 벗어남이 없어야 합니다. 즉, 살아 계실 때도 예를 지켜야 하나 돌아가신 후에도 예를 지켜야 합니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자(慈)라면 자식의 부모 사랑은 효(孝)라고 합니다. 부모는 진 땅을 걸어가도 자식은 마른 땅을 걸어가기 바라는 게 부모입니다. 그래서 전체를 바쳐 희생하는 것이 부모입니다.
Q. 효 문화 확산을 위해 인프라 구축이 우선시되려면.
△ 최종수 이사장: 정부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그럴 수 있는 분위기가 먼저 조성돼야 합니다. 내가 과천문화원장을 8년 정도 하고, 전국문화원 회장을 4년 동안 했어요. 그러면서 체계적으로 구축하여 효 문화를 선도하려는 효 문화센터를 만들려고도 했죠. 그러나 주변에서 ‘왜 저렇게 판을 벌이나’하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어요. 그러니 그런 것을 하려고 해도 먼저 주변의 인식과 분위기를 바꾸지 않으면 안 돼요.
△ 권혁승 회장: 국내 효 문화를 바로잡고 육성, 창달해야 하지만 아울러서 교양을 갖출 수 있어야 해요. 효는 한국 고유의 문화예요. 이 문화가 옛날 중국이나 일본에서 온 게 아니죠. 물론 서양에서도 방식이 다를 뿐 효도를 잘 하죠. 영국의 역사 철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그의 책에 ‘인류문화 발전을 위해 한국이 크게 기여한 게 있다. 그것이 한국인의 가족제도와 효 사상이다’라고 썼어요. 그는 이러한 효 사상을 전 세계에 번지도록 해 모든 세계인이 가족을 사랑하는 정신이 퍼졌으면 좋겠다는 뜻을 설파했고요. 소설가 톨스토이도 “불효하는 사람은 벗으로 삼지 말라”고 했어요. 미국연방준비제도 의장을 지낸 버냉키(Bernanke)도 미국 프리스턴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이제 여러분은 졸업을 하니 매주 한 번씩 부모님에게 전화해라”라고 말했습니다. 생일에 선물을 사주고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1주일에 몇 번씩 전화 걸어 안부를 여쭙는 것이 한국 효의 기본입니다. 이러한 점이 전 세계에 한국인이 어깨 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랑거리가 될 수 있고, 자부심이라 할 수 있어요.
한국의 효 사상을 세계에 널리 알려서 모든 세계인들이 한국의 효 사상을 본받고 한국하면 ‘아! 효의 나라’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해요. 더 나아가서는 효 문화를 유네스코 문화재로 등록한다든가, 널리 번지도록 힘써야 해요.
△ 이현옥 회장: 이런 분위기를 조성해서 좋은 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여 정부와 언론이 주목하고, 효에 대한 인식이 관철됐으면 합니다.
△ 권혁승 회장: 효에 대한 좌담회는 한국 언론사, 매체 사상 처음 있는 일 아닐까요? 아마 단군 이래 최초일 것 같아요. 오늘로 끝내지 말고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어요. (웃음)
Q. 효 문화 확산을 위해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 최종수 이사장: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타고난 소질과 능력을 개발해 나의 길을 찾고 이웃과 사회를 위한 사랑과 봉사가 바로 ‘효’라는 것이죠. 이를 위해 시대에 맞는 효 문화의 창출이 바로 인성 교육의 출발점이라고 보고 한국효문화센터를 2011년 시작했어요.
한국효문화센터는 효에 관련된 교육과 행사로 우리가 실천해야 할 진정한 효가 무엇인지 되돌아보며 자신에 대한 사랑의 첫걸음을 시작으로 하는 인성 교육과 밝고 건강한 사회 구현이 목표예요.
예술단체장들이 효 문화사업을 하면서 학술회의도 하고, 학생들을 모아 토론한 내용들을 토대로 효 문화를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하는지 단초를 발견했어요. 요즘 고등학생들은 입시에 시달리지만, 그중에서도 고전 등을 훤히 꿰뚫는 학생들이 꽤 있어요.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 하지만, 마냥 그럴 것이 아니라 헌혈도 하고 기증도 해서 사회에 돌려주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의견도 나왔죠. 그러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 시대에 효 문화사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해줬어요. 아이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그들의 수준에 맞는 효 문화사업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렇게 글짓기, 그림 그리기 대회도 하고, 매년 토론회도 열면서 새로운 것을 찾아가고 있어요. 국내 최대 규모의 ‘효’를 주제로 한 문화축제로 1회성 행사로 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지만 그만큼이라도 확실히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상을 받는 아이들과 부모님들을 만나보면 그때만이라도 가족끼리 효에 대해 이야기하고, 부모를 생각한다고 하거든요.
△ 이현옥 회장: 효 문화라는 건 다들 잘 알고 있지만 실천하는 게 어려워요. 어머니가 살아 계실 적에 특히 5형제 중 셋째인 나를 많이 아끼셨고 사랑을 주셨죠. 공직생활 중에도, 사업을 할 때도 어머니가 편찮으시면 달려가 돌봐드리는 등 장남 역할을 했어요. 고향 마을에 1981년 대덕연구단지가 들어서면서 선산을 세종시 조치원으로 이전해 효림원을 조성했어요. 어머니는 그 안에 있는 농가주택에서 4개월 동안 고생하시다 90세에 돌아가셨고, 5일장을 치렀어요. 매년 시묘살이를 하기 위해 내려갔고 거기 가서도 돌아가신 어머니와 대화도 나누고 3년 탈상을 했는데 마을 회장이나 이장이 그 모습을 눈여겨봤나 봐요. 그러다 매년 추모식을 하면서 마을 사람 100명을 초대해 아이들에게 선물도 주고, 면장 추천을 받은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500만원씩 장학금도 수여하는 행사를 진행했죠. 사실 3년만 하고 그만두려 했는데, 막상 해마다 해온 것을 그만두기는 어려웠어요. 나로서는 자식의 도리로 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소문이 나자 군에서 우리 마을을 성균관장에게 추천해 각지에서 몰려와 선전을 해주고, 포상도 받았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마을 사람들이 1만원, 5000원씩 자발적으로 980만원을 모아서 선산 공원 입구에 효비를 들여놓았어요. 마을이 효의 고장이니까 “마을 입구에 ‘효림원’이라고 세워 놨어요. 그때 어머니가 옥색 한복을 입고 꿈에 선명히 나타나시더니 ‘마을에서 이렇게 효비도 세워주고 행사도 열어줬는데, 너도 고마운 뜻을 표시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어요. 작은 유통업을 하던 나는 영농조합 농장을 하나 인수했어요. 그곳에서 생산하는 오이, 토마토, 배 등 농산물을 국가유공자 요양원이나 보훈병원, 군부대 등 10여 기관에 기증하고 있어요.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지역의 소득 증대도 되고, 고용창출도 되니 농민들이 굉장히 좋아합니다.
△ 권혁승 회장: 7년째 백교문학상 효친문학상 작품을 전국적으로 공모하는데, 글과 시 속에 효 사상, 효심 또는 모정이 깃들어져 있는 작품을 심사 기준으로 삼아 상을 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잘 쓴 글이라도 사친과 관계없는 글은 입선이 안 되죠. 자식들은 부모가 그렇게 사랑을 줘도 사랑인 줄 몰라요. 일상에서 공기를 마시듯 깨닫지 못하는 것이죠.
강릉 시골 마을에다가 사모정 정자를 지었어요. 마을의 쉼터가 되라고. ‘사모정’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라 해서, 한쪽에는 도예 조각 하는 교수님의 작품도 세워 놨죠. 정자를 강릉시에 기증했는데 하고 나니까 주변에서 그 정자만 가지고 효 사상이 함양되겠느냐 해서 ‘사친문학상’을 만들라 하더라고요. 그걸 만들어 전국적으로 등단한 문인을 대상으로 작품공모를 하고 있어요. 거기다 이 사상을 전 세계에 알려야 되겠다는 의미를 담아 이라는 책을 만들었어요. 국내 200여 도서관에 비치했고, 영어판을 제작해 65개국 130개 도서관에도 전달했어요. 유엔, 세계은행에도 책이 있어요. 대통령, 교육부장관, 문화부장관 등에게도 돌리고, 오바마 대통령에게도 보냈는데 잘 전달이 됐는지는 모르겠어요(웃음).
작년에 사모정이 있는 공원이 너무 좁다고 해서 확장공사를 1년간 했어요. 높이가 3m인 고석에 ‘효 사상 세계화의 발원지 효향 강릉’이라 쓰고 밑에 영어로도 써놓았어요. 그 옆의 돌에도 효에 대한 글을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로 새겼어요. 오는 9월에 도 창간할 예정입니다.
우리말을 하는 한, 그 우리말에 한자어가 들어 있는 한 말의 뜻을 정확하게 알고 새기려면 한자의 어원부터 따져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자는 사물의 모양을 본떠 그린 상형(象形)을 비롯해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 전주(轉注) 가차(假借) 등 여섯 가지 방법으로 만들어진 문자입니다. 이른바 육서(六書)입니다.
부모를 잘 섬기는 효도를 말할 때 쓰이는 孝라는 글자는 老[늙을 로]와 子[아들 자]를 합쳐서 만든 회의자라고 합니다. 글자 자체에 아들(그러니까 자식)이 부모를 잘 섬긴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효도를 강조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똑같습니다.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받은 10계명 중 다섯 번째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자녀 된 사람들은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신 계명은 약속이 붙어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 이것은 신약성서 에베소서 6장에 나오는 말입니다.
공자는 위정(爲政)편에서 제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요즘에 말하는 효는 봉양을 잘하는 것에 불과하다. 개나 말들도 집안에서 봉양을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개나 말들과 무슨 구별이 있겠는가?[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 인간의 본성은 아무리 시대가 바뀐다 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던데, 공자의 시대에도 벌써 이렇게 ‘요즘 세태’를 한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날의 효도야 더 말할 게 있겠습니까? 효의 전통이 무너진 지 오래이고 효도를 하려도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게 된 세상이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습입니다. 효도는커녕 부모를 버리는 걸 넘어 살부 살모의 존속살해 범죄가 비일비재한 현실입니다.
중국 상하이에서는 5월 1일부로 강제적인 ‘효도법’이 발효됐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찾아뵙지 않을 경우 신용등급을 나쁘게 매겨 집을 사거나 도서관을 이용할 때 불이익을 당하게 하는 내용입니다. 특히 부모가 불효자식을 고소할 수 있고 양로원이나 요양원 노인들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하는 한편 양로원·요양원 측이 장기간 부모를 방기하는 자식들에게 찾아오라고 연락하는 것도 의무화했습니다.
베이징(北京)과 광둥(廣東)성 장쑤(江蘇)성 등은 이미 2013년부터 노인권익보호법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 법은 정기적으로 찾아뵙지 않고 부모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는 자식들을 고소하거나 정부에 중재를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대 국회에 효도법(이른바 ‘불효자 방지법’) 법안 2건이 제출됐다가 국회 폐회와 더불어 자동 폐기됐습니다. 부모를 잘 모시는 자녀에게는 상속세 증여세를 경감해주고, 재산을 증여받은 자식이 부양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언제든 그 재산을 환수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현행 민법 556조는 ‘부모가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하기로 약속한 경우 자녀가 부모에게 범죄행위를 하거나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는 증여를 해제(취소)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증여를 이미 이행한 때는 증여를 해제(취소)할 수 없다’(민법 558조)는 조건도 달려 있지요.
하지만 사실상 부모가 자녀의 범죄·패륜 행위나 불효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법원이 이미 작성되어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효도계약서 등의 서면 계약을 중시하는 것도 이 같은 현실 때문입니다.
그래서 발의된 개정안은 자식이 부모를 학대하거나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는 물론 현저하게 부당한 대우를 할 경우까지 포함해서, 효도계약서 등의 서면에 의하지 않은 증여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미 증여한 재산도 전부 회수할 수 있도록 보완했는데, 사실상 민법 558조를 없애야 한다는 취지인 셈입니다.
또 형법상의 존속폭행죄에서 피해자가 원치 않을 때는 처벌할 수 없도록 규정한 반의사불벌(反意思不罰) 조항을 삭제하자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우리 정서상 부모가 자식들에게 폭행을 당하더라도 처벌을 원하는 경우는 드물어 현행 법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습니다.
증여 해제권 행사 기간도 현행 6개월에서 ‘해제 원인을 알게 된 날로부터 1년 또는 증여한 날부터 5년’으로 늘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은 부모에 대한 배신이나 배은망덕한 행위가 있을 때 부모가 증여한 재산을 1년 이내에 돌려받을 수 있게 하고 있답니다.
이런 ‘불효자 방지법’은 내년이 대선의 해이므로 노인층의 표를 겨냥한 정치권이 다시 국회에 법안을 제출해 더 활발하게 논의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효도법에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겠느냐, 부작용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거지요. 땅 덩어리가 넓은 중국의 경우 부모를 자주 찾아뵙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가 봅니다. 비행기나 열차 교통비 마련은 둘째 치고, 며칠 이상씩 휴가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고비를 받고 대신 찾아가주는 ‘부모님 방문 서비스’라는 신종 사업이 생겨 성업 중이라고 합니다. 한국인들은 영리하니 새 법이 발효되면 이런 것들보다 한층 더 기발한 ‘효도사업’이 생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조선 영조 때의 효자 정방(鄭枋)이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효자가’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전남 담양에 살았던 전우창(全禹昌)의 효행을 읊은 노래입니다. 그 가사 중 “상분도천(嘗糞禱天) 못 다하야/단지용혈(斷指用血) 하는구나”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운명하려 하자 병세를 알아보기 위해 아버지의 대변을 맛보고 하늘에 빌면서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드렸다는 내용입니다.
옛 글에 나타난 효행 중 대표적인 것은 혼정신성(昏定晨省), 저녁엔 잠자리를 보아 드리고 아침엔 문안(問安)을 드리고, 동온하정(冬溫夏凊), 겨울엔 따뜻하게 해드리고 여름엔 시원하게 해드리면서 병이 나시면 상분도천, 단지용혈로 간병을 하다가 돌아가시면 삼년시묘(三年侍墓)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그냥 정성에서 우러나고 자발적인 효심으로만 행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보고 배우고 본받아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까 孝는 본받는다는 ‘效(효)’이면서 가르친다는 ‘敎(교)’일 수 있습니다. 내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걸 내 자식에게 보여줘야 나도 나중에 그렇게 효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부모가 온 효자가 돼야 자식이 반 효자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를 포함해서 실제로 그렇게 잘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이런 글을 쓰기가 어려운 것은 언행이 일치하지 못하면 글에 실속이 없고 거짓과 과장이 섞이기 때문입니다. 겨우 겨우 썼습니다.
1964년 경제기획원 사무관을 시작으로 경제기획관, 경제기획국장, 재무부 차관보, 재무부 차관, 한국산업은행 총재 등을 거치며 대한민국 경제발전을 위해 살아온 이형구(李炯九·76) 전 노동부 장관. 대개 한 분야에서 탄탄대로 삶을 산 이들은 자기계발서나 자서전을 쓰곤 하지만, 그는 그만의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일생의 사명감을 가지고 쓴 을 통해서 말이다.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2008년 이 전 장관이 출간한 에서 그가 제시했던 문제들에 대한 결론이 담긴 책이 바로 이다. 단순 명료한 책 제목만 보아도 이전보다는 더 포괄적이고 굵직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단순히 경제 관련 일을 해왔기 때문에 책을 낸 것은 아니다. 은 그의 인생에 대한 자부심이자 사명감, 후세대를 위한 바람이 담긴 ‘인생작’과 같다. “이제 내 할 일을 다 했다”며 시원스럽게 이야기하는 그다.
“2005년에 세종대학교에서 교수로 지내면서 준비했던 책이 입니다. 번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조건을 역사, 정책, 문화적 상황에 따라 설명했어요. 그 책을 쓰면서 꼭 그에 대한 결론을 내는 책을 쓰고 죽겠다고 결심했었죠. 한 10년쯤 후에 쓸까 했는데 여러 가지 상황으로 그보다 훨씬 앞당겨 쓰게 됐어요.”
그가 예상보다 책을 일찍 쓰게 된 이유 중 하나가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 사태다. 번영학은 신자유주의의 경쟁을 바탕으로 한 시장 논리와 ‘경제하려는 의지(will of economize)’를 바탕으로 한다. 리먼브라더스 사건은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시장이 왜곡되면서 신자유주의 경제논리를 무너뜨렸다. 갑작스러운 경제 상황의 변화로 그는 하루라도 일찍 펜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인위적인 통화 공급으로 인해 신자유주의가 무너져버렸죠. 여러 가지 발전 전략이나 가치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어요. 신자유주의의 가장 기본이 경쟁이거든요. 발전하려는 의지가 중요한데, 우리나라로 치면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예로 들 수 있죠. 신자유주의의 경쟁체제를 가지고 개발도상국 시대의 발전의 의지를 접목하자. 거기에 정부의 역할이 조금 확대돼야 한다는 게 번영학의 기본이자 의 결론과 같아요.”
모두 다 한번 잘살아 보세~
번영(繁榮)이란 번성(繁盛)과 영화(榮華)를 이른다. 번성은 객관적으로 번창하고 풍성한 상황, 즉 먹고 입을 것이 넉넉한 경제적 풍요를 의미한다. 영화는 주관적으로 느끼는 호화로움과 영예를 뜻하는데, 객관적인 경제적 의미보다는 사회적 의미의 주관적 상황과 개인의 행복을 뜻한다. 따라서 번영이란 경제적으로 풍족한 조건과 더불어 개인의 영예, 행복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할 수 있겠다. 거기에 현재의 번영이 미래에도 지속 가능할 것이냐에 대한 확신이 뒤따라야 한다.
“만약 내가 현재 연간 소득이 1억원이라 하면, 10년 후에도 1억원이면 되겠어요? 현재보다 발전한 소득수준이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돈이 많다고 행복한가? 그 돈이 영예로워야 한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도둑이 훔친 돈으로 잘 먹고 잘산다고 하면 소득 수준에는 문제없겠지만 내 가족이나 이웃에는 떳떳하지 못하잖아요. 나를 번창하게 하는 그 돈이 영예로워야죠.”
그는 상대방에 대한 인정과 관용을 베푸는 것 또한 중요한 덕목이라고 했다. 그래야 개인의 삶의 질 향상은 물론, 공동체의 행복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
“과거에 우리는 너무나도 가난하게 살았잖아요. 하루 한 끼 먹기도 힘들었는데, 그런 내가 삼시 세 끼 챙겨 먹으면 행복하지 않겠어요? 소위 절대빈곤 타파라 하는데, 그저 세 끼 먹는다고 만족할까요? 매일 채소만 먹는 것보단 고기반찬도 먹고 해야 좋을 거 아녜요. 그게 생활의 질이에요. 그러면 내가 좋은 반찬을 배불리 먹는다고 행복할까요? 이웃도 잘 먹고 잘살게끔 관용을 베풀 줄 알아야죠. 그래야 ‘저 사람 참 훌륭하다’는 인정도 받고 개인이 자랑스러워질 수 있는 거예요. 상대에 대한 관용과 인정이 행복 조건의 중요한 가치입니다.”
현재 삶의 행복 점수, 70점
행복 가치 추구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하는 그에게 자신은 얼마나 행복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70점 정도”라고 대답했다. 이 전 장관은 현실적으로 채우지 못하는 30에 연연하기보다는 소소하게 채워진 70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글을 쓰는 일도 행복하고, 손주를 보는 것도 즐겁죠. 다들 그런 재미로 사는 거 아니겠어요? 집 근처에 서재를 마련했으니 글을 쓰고 싶거나 책을 읽고 싶을 때는 자유롭게 나올 수 있는데 그런 것도 행복해요. 이번에 책을 내고 동료들이 의견을 내서, 실제 관련 일을 했던 이들 중심으로 한국번영학회를 설립하기로 했어요. 6월에 시작하는데, 내가 일을 벌였으니 학회장을 맡았죠. 근데 뭐 그게 일인가요. 이제 나이 들고 편안한 마음으로 하는 거니까 일종의 놀이인 셈이죠. 아주 즐거워요.”
아쉬운 30점에 대해서도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돈을 좀 더 잘 모아둘 걸 하는 마음은 있어요. 그랬다면 더 의미 있는 일들을 해볼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봉사나 기부도 그렇고요. 그런데 내가 재벌이나 기업가도 아닌데 돈이 그렇게 많으면 되겠어요? 그리고 이미 지난 일이잖아요. 그냥 살아가는 거예요. 괜찮습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아주 주관적인 평가거든요. 본인이 기준을 잘 설정해서 만족하고 인정하면 되는 거예요. 나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도 얼마나 많겠어요. 아쉬운 점은 있지만 고맙게 생각해야죠. 나름의 기준은 있어 점수를 매길지는 모르지만, 사실 지금 나이에 그것에 좌지우지되거나 큰 영향을 받지는 않아요.”
현재의 삶이 행복하고 고맙다고 말하던 그는 인터뷰 중 올해 1월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떠올렸다. 인터뷰 전 날이 바로 어버이날이었기 때문이다. 자식들이 잘해주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챙겨드릴 부모님이 이제는 안 계시다는 것이 못내 허전하다고 했다. 해마다 어버이날이면 부모님을 위해 무언가를 해드리려고 노력했던 그다. 그렇지만 마음은 편안하다고. 그가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부모님 덕분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5년 전에, 어머니는 100세를 사시고 금년 1월에 돌아가셨어요. 아버지 어머니는 1990년대에 고향집을 떠나 서울로 오셨어요. 그때부터 같이 살지는 않았지만 제가 사는 여의도에 집을 마련하시고 생활을 하셨죠. 아마 두 분이 계속 시골에 사셨더라면 부모를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이 적었을 것 같아요. 근처에 사시니 매일 보고 이야기도 하고 무엇이라도 해드릴 수 있었죠.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그분들이 나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기 때문에 지금도 마음이 편안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 고마운 일이죠.”
진정한 은퇴 라이프의 시작
3년을 투자한 끝에 출간한 . 자기만족만을 위해 썼다면 그만큼 책임감을 느끼며 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공동체의 번영과 행복, 후손들을 위한 지침서 역할을 하리라는 바람을 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주로 대학교 4학년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그때도 참 보람 있고 좋았어요. 하지만 내 인생의 가장 큰 보람은 사무관부터 시작해 최고위직에 이르기까지 나라 경제계획에 참여했다는 거예요. 힘든 점도 많았지만 가슴 뿌듯한 일이 더 많았죠. 다른 점에서 볼 때 난 그다지 특별한 사람은 안 되지만, 그만큼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많은 일을 한 사람으로서는 특별한 사명감을 느껴요. 개인적으로 나를 위해 했던 일도 아니니 후세대를 위한 무언가를 남겨야죠. 그들이 보고 ‘과거의 경제 계획은 이랬구나. 이러한 이론이 있고 상황은 어떠했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말이죠.”
그는 자신은 잠시도 가만있는 성격이 아니라고 했다. 실제 일을 할 때도 해외 여러 나라를 다니며 일했고, 테니스와 골프 등을 즐겼으며, 요즘도 중국어를 완벽히 소화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학원에 다닌다. 하지만 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3년간은 해외 일정이나 모임 등을 자제하고 원고 작성에만 몰두했다.
“책 출간하느라 바빠서 운동도 잘 못 다니고 해외도 거의 못 나갔어요. 대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흔히들 말하는 은퇴 라이프가 다소 건조하긴 했죠. 한편으로는 그 시간이 오히려 나를 더 충만하게 하고 즐거움을 줬는지도 모르겠어요. 최근까지는 원고를 쓸 때가 가장 즐거웠으니까요. 정말 죽기 전에 꼭 하자 하는 것을 이뤘으니, 이제 죽기 전까지는 좋아하는 책도 읽고 여행도 다니며 지내려고 해요.”
노인이 되지 말고, 어르신이 되라
그가 지금까지 낸 책은 모두 경제와 관련된 전문서적들이다. 그 스스로 이야기할 정도로 남들이 선망할 만한 일을 많이 해왔는데도 자서전을 낼 생각은 없다고 한다. 자신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노년기 삶에서는 자제해야 한다는 것. 그런 데에는 아내의 조언이 한몫했다.
“아내에게 매일 듣는 말이 ‘노인네가 되면 안 돼요. 어르신이 돼야 해요’입니다. 상당히 좋은 충고라고 생각해요. 노인네가 된다는 게 뭐겠어요. 목소리 높이고 잔소리하고 대접받으려 하고 그런 거잖아요.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저 사람 참 잘 늙었구나’해야 어르신이 되는 거죠. 전에는 경제정책 운용과 관련해서 정부가 뭐를 한다 그러면 언론에 글도 쓰고 그랬어요. 근데 요새는 그런 것도 안 하고 있어요. 그렇게 떠들어봐야 늙은이 잔소리니까요.”
그는 최근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에 관한 글을 읽고 본받아야겠다고 느낀 점이 있다고 한다. 김 교수의 사위가 쓴 글이었는데, ‘장인어른은 가족 문제나 자식 일에 대해 절대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 그는 자식이나 손주의 일에 가능한 한 나서지 않고 간섭을 줄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외의 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밥 먹고 생각하는 게 늘 나라 경제 운용에 대한 것이니까, 물론 얘기야 하고 싶죠. 내가 볼 때 잘못됐다고 느낀 것이나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나 왜 없겠어요. 그렇지만 내가 현재의 장관이며 총리며 하는 이들에게 이야기한다고 내 생각처럼 바뀌겠어요? 아니거든요. 결국 잔소리거든요.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은 모두 에 담았어요. 거기에 그동안 살면서 쌓은 경험, 지식, 조언 등이 담겨 있으니 자서전과 다름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