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내 생애 최고의 살인 더위였다. 실제 데이터는 아닐지 몰라도 기억과 느낌으론 그랬다. 그 온도의 높이 보다 그 지독한 더위가 낮 뿐 아니라 열대야로 보름 이상 이어짐이 몹시 참기 힘들었다. 그런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일 뉴스에서 전기요금 폭탄이 중요 이슈까지 다뤄지니 에어컨도 마음 놓고 켜기가 두려웠다. 더위를 많이 타는 사람으로서는 가히 지옥을 맛 본 여름이었다.
이런 올 여름 더위를 피할 수 있게 해 주었던 곳. 요금폭탄 걱정 없이 시원함을 만끽하며 보낼 수 있었던 곳. 바로 나만의 아지트 우리 동네 도서관이다.
자전거 타고 가는 길도 예술
서둘러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냉커피를 타서 보온병에 담고 간편한 과일을 약간 준비해 집을 나선다. 우리 집에서 도서관 까지는 자전거로 10 여분 거리. 아파트 단지를 벋어나자마자 시에서 조성한 ‘시민의 강’ 이라는 작은 오솔길을 따라 자전거로 달리게 된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강이라기보다는 시냇물에 가까운 길이지만 제법 자연미도 있고 예쁘다. 물길 따라 나무, 풀, 꽃들이 계절을 느끼게 해주어 평소 저녁 산책을 다니는 길이기도 하다. 그 길 끝에 나만의 아지트 도서관이 있다. 가는 길 중간 중간에 간이 도서관과 벤치도 있다. 날씨만 좋다면 도서관 까지 가지 않고 자전거를 세우고 그 벤치에 앉아서 책을 볼 때도 있다. 봄. 가을에는 그 벤치가 나의 아지트로 도서관을 대신하곤 한다. 필자는 이 길을 자전거로 달려 도서관에 갈 때마다 부천시민으로 지방세를 꼬박꼬박 내는 것이 하나도 아깝지가 않고 뿌듯하다. 그 길을 달려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면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창가 자리가 있다. 통유리로 되어 있고 작은 파스텔 칼라 의자가 놓여 있다. 그 자리에 앉으면 창을 통해 공원이 한 눈에 들어온다.
무더위도 맹추위도 돈 워리, 주말에도 늦저녁에도 오케이, 비가 오면 땡큐
올 여름처럼 살인적인 더위에 가져간 냉커피가 생각이 안날 정도로 에어컨이 말 그대로 빵빵하게 나오고, 와이파이도 팡팡 터지고, 만화책부터 전문서적까지 원하는 책 마음껏 볼 수 있는 곳. 과연 이곳 보다 더 좋은 아지트가 또 있을까? 필자는 이번 여름 거의 매일 도서관에 출근 하다 시피 했다. 그리고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책을 보며 지냈다.
그렇다고 이곳이 어디 더위만 피할 뿐이겠는가? 한 겨울 추위에는 냉커피를 따뜻한 커피로 바꾸기만 하면 된다.
이 고마운 나의 아지트가 평일 금요일 만 빼고 주말에도 문이 열려 있다. 평일엔 저녁 10시까지 이용이 가능하다. 비가 오면 오히려 더 이곳을 찾는다. 통유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준비해간 커피를 마시다 보면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북카페가 된다. 북카페에 음악을 빠질쏘냐? 음악은 핸드폰에 이어폰을 꽂고 들으면 간단히 해결된다. 와이파이가 되니 데이터 사용료 걱정 없이 음원사이트에서 분위기에 맞는 나만의 음악을 찾아서 들으면 뭐 하나 빠짐없는 북카페 완성이다. 실내가 지루할 때 즈음 잠깐 밖으로 나가보자. 문 열고 나가 몇 발자국만 가면 자그마한 인공폭포와 근사한 정자도 있다. 날씨가 너무 덥거나 춥지만 않다면 간단히 준비해간 과일이나 간식을 먹으면서 소풍 기분을 내면 잠시 쉴 수도 있다. 안팎 모두 완벽한 나만의 아지트 이다.
1999년 말에 퇴직 후 영어 번역 일을 시작했다. 박사 학위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해 영어 원서를 번역하는 업무였다. 학위 논문에 원서 내용을 인용해야 하는데 원서를 해독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필자 같은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영어와 실무에 밝으니 필자 만한 전문가가 따로 없었다. 매수에 따라 금액이 올라가므로 밤낮없이 집에서 번역에 매달렸고 수입은 오히려 재직 때보다 짭짤했다. 밖에 나갈 일도 없고 일하는 시간은 마음대로 하면 되니 최고의 직업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어느 날 거울에 비친 필자 모습을 보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수염도 안 깎고 세수도 안 한 채 파자마 차림이었다. 이렇게 늙어간다고 생각하니 오싹함을 느꼈다.
◇남의 사무실 썼지만 불편
집에만 있을 때 가장 문제는 집중이 안 되는 것이다. TV도 켜고 냉장고 문도 자주 열게 된다. 낮잠을 자거나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한다. 무엇보다 세수도 안 하고 옷도 신경 쓰지 않게 된다. 운동 부족 현상도 당연히 생긴다. 외로움으로 우울증이 생길 우려도 있다.
그래서 번역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일단 밖으로 나오기로 했다. 아침밥을 먹고 나면 집에서 나오는 일과를 만들어야 했다. 현역 때 실무 경험과 영어 덕분에 스포츠용품 회사가 많은 서울 동대문 지역에 소일 겸 나가게 되었다. 경영 자문도 해주고 외국인이 오면 통역도 해주었다. 점심은 저절로 해결되고 저녁에는 술자리도 이어졌다. 그러나 영세 기업이라 오래가지 못하고 곧 문을 닫았다. 다른 몇몇 곳에 다시 취업했으나 마찬가지였다.
남의 사무실에 앉아 글이나 쓰고 있는 사람의 존재가 예뻐 보일 리도 없다. 사장과의 친분 때문에 자리 하나 내준 것이지만 새로 신입 사원이라도 들어오면 늘 자리가 흔들렸다.
◇공유 사무실 찾아 대만족
결국 컴퓨터 놓인 책상 하나 사용하는 쉐어 오피스를 물색했다. 혼자 사무실을 임차하면 부담이 크니 여러 사람이 사무실을 공유해서 쓰고 사용료를 나눠 내는 것이다. 비슷한 종류인 소호 오피스는 공동 비서도 쓰고 해서 좋지만 비용이 비싸다. 필자처럼 글이나 쓰는 사람이 비서 월급까지 나눠 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쉐어 오피스는 철저히 월 사용료만 낸다. 월 10만 원부터 20만 원 수준이다. 24시간 사용할 수 있고 주말이나 명절 연휴에도 눈치 안 보고 사용이 가능하다.
다행히 집 근처 거여역 부근에 쉐어 오피스를 찾았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 더웠지만 쉐어 오피스에서 에어컨 빵빵 틀어 놓고 밤늦게까지 글을 써 더운 줄도 몰랐다. 아마 올여름에는 에어컨 사용료만 해도 본전 이상 뽑았을 것 같다. 같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필자가 가장 연장자라 에어컨 틀어놨다고 눈치 볼 필요 없었다. 평일에는 바빠서 자리를 자주 비우지만, 주말에는 혼자 쓰는 아지트이다. 특히 명절 연휴에는 밀린 글쓰기를 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교통도 편리하고 주변 물가도 싸서 모임도 주변에서 자주 한다.
불과 1주일 전만 해도 찜통더위와 열대야로 밤잠을 설쳤다. 더위는 8월의 마지막 주말을 뜨겁게 달구다가 그 끝자락에서 사정없이 곤두박질치더니 9월이 들어서면서 이불을 덮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한순간에 몰락했다. 어쩌다 찔끔거리는 가을비는 북상하는 태풍의 영향을 받아 바람까지 동반하였는데 그 무덥던 시간을 한순간에 날려 보내면서 가을을 재촉하고 있다.
◇에어컨 고장으로 서점 찾아
근년에 보기 드문 무더위에 선풍기 바람으로 견디다 못해 결국은 5년 전에 설치해 두었던 에어컨을 가동하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에어컨은 몇 분간 윙윙거리면서 돌더니 찬바람은 나오지 않고 후덥지근한 바람만 토해내 가뜩이나 열기로 가득한 거실을 더욱 숨 막히게 만들었다. 그동안 에어컨은 장식용으로만 거실 한쪽을 지켜왔는데 바람 잘 통하는 5층 아파트의 거실에 앉아 있으면 웬만한 더위쯤은 별생각 없어 5년간을 버틴 것이다. 그러니 그동안 채 몇 번을 가동하지 않던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것도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다른 방도를 모색하다가 필자만의 피서 방법을 찾게 되었다.
늘 책을 가까이 하던 필자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서점이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한낮에도 성능 빵빵한 에어컨을 가동해 그야말로 시원하기 그지없는 서점은 더위를 피하는 데는 안성맞춤이었다.
여름 내내 시간 날 때마다 서점을 찾아 몇 시간씩 책을 읽곤 했는데, 피서는 물론이고 늘 마음을 닦을 수 있으니 이 또한 일거양득이었다. 이곳 아지트에서의 하루하루는 참으로 뿌듯하고 행복했다.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이 말은 안중근 의사가 1910년 중국 뤼순(旅順)의 일제 감옥에서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서 유묵(遺墨)으로 써서 남긴 유명한 글이다. 안중근 의사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명구로서 실천운동에 참여하면서도 학문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일게다.
가시가 돋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하루하루 좋아하는 책을 읽다 보면 삶의 사유가 넓어지고 여유로워지니 마음은 늘 부자가 된듯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피서에 독서까지 일거양득
어느 날 서울 종로에 볼일이 있어 나갔는데 한 대형 서점 입구 벽면에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 서점 창립자의 책에 대한 철학을 새겨놓은 것인데 신선하고 자신을 일깨우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와 어쩔 수 없이 서점 안으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필자만의 아지트에서 피서도 하고 좋아하던 책도 마음껏 읽었으니 일거양득이요 이보다 더 멋진 아지트가 어디에 있을까? 그토록 무덥던 여름이었지만 필자만의 아지트를 만들어 책을 읽으면서 시원하게 보냈던 시간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이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유별나게 더웠던 올해였지만 세월은 또다시 여름을 밀어내고 천고마비의 계절인 가을을 초대하고 있다. 아직도 한낮의 열기는 뜨겁지만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은 완연한 계절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바야흐로 책 읽기 좋은 가을이 문턱에 와 있으니 더욱 열심히 독서삼매경에 빠져봐야겠다.
눈을 떠보니 여린 햇살이 수줍게 인사를 한다. 어느새 베란다 너머로 선선한 바람이 고통스럽던 여름의 이별을 고한다. 오고 가는 계절, 또 보내려니 아쉬움도 곁든다.
또다시 찾아온 새 달의 첫날 아침이다. 엊그제까지도 그렇게 숨통을 조이더니 잘 참아온 덕에 겨우 살만하다. 참기 힘들었던 시간들만큼이나 새 아침에 햇살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창문을 활짝 열어 싱그러운 바람을 한 아름 안아보았다.
사람은 어쩌면 이리도 간사한 것 일가. 창밖으로 묵은 숨을 길게 내뿜으며 신선한 공기 속에 넋두리를 해본다. 견뎌낸 고통의 대가로 찾아온 축복 같은 계절의 ‘화려한 아침’이다. 향기 진한 모닝커피가 설익은 아침미소로 유혹의 손짓을 한다.
날씨가 추우면 소름이 끼치도록 춥다고, 더울 때는 끔찍하게도 더워서 안달을 했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참지 못하고 지냈던 지난 시간들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조금만 참고 견디면 다 살기 마련이라고 늘 마음먹어왔는데 여지없이 또 참지 못 했다.
지난해 여름은 그런대로 견딜 만 했다. 그러나 올여름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도저히 못 참고 곧 죽을 것만 같아 정신을 못 차렸는데 결국은 또 지나간다. 지나고 보니 어쩌면 어딘가 모를 아쉬움도 남는 것 같다. 아마도 곧 다가올 혹독한 겨울이 남아있기 때문인가 보다.
커피 한 잔을 마주하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람이 성격에 따라 더 못 참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반복되는 계절 속에서도 살아가는 방법이 아주 다양하다. 어떤 이는 에어컨이 있어도 선풍기로만 살려고 하고, 아는 지인은 아예 에어컨도 없다. 참는 법도 살아가는 지혜라는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훗날의 세금 폭탄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단은 살고 보자며 에어컨 바람을 끼고 살기도 한다. 어느 누가 참된 삶의 방법인지는 그 향방을 가리기가 힘들다. 그들 삶의 방향 나름대로의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사는 방식이 다를 뿐이고 모두가 그런대로 다 잘 살아가고 있다.
날씨도 참으로 제멋대로다. 바람이 불고 싶으면 이리저리 불어 마구 흔들어대고, 하늘에서 태양을 내리쬐고 싶으면 힘없는 땅에 맘대로 퍼부어, 찌는 더위로 하소연을 한다. 사람들도 살아가면서 날씨처럼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단지 변덕스러운 그것들에 맞추어야만 살아갈 수가 있다. 추우면 입어야 하고 더우면 벗어야 하며, 비가 오면 우산을 써야 하고 눈이 오면 하얀 눈을 밟아대면서도 쓸어서 깨끗이 치워야 한다. 그것이 조화롭게 대비하는 자연의 순응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도 날씨처럼, 그저 상대에 대한 적응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문득 들었다. 이런저런 사람 생긴 대로, 날씨와 같이 맞춰가며 그럭저럭 살다 보면, 또 한세상 모가 남이 없이 잘 사는 것이 아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어진 삶을 살아가면서, 날씨처럼 맘대로 변화하는 온갖 역경에도 잘 맞추어 묵묵히 살아간다면,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진솔한 마음을 가져본다. 생각과 현실은 결코 쉽지 않은 파트너이지만, 생각의 차이가 현실을 또 이끌어갈 것을 믿으며, 모든 것들은 다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 이리라.
싱싱한 햇살이 반기는 이 ‘화려한 아침’에 모닝커피의 미소가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어준다.
2012년 대한민국 전역은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다. 가뭄은 농업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인 ‘마실 물’의 부족이었다. 당시 가뭄과 극심한 더위로 팔당호와 북한강에 남조류가 대량 번식하면서, 이곳의 물을 수원으로 사용하는 지역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쳤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마음속엔 ‘수돗물이 정말 안전할까?’하는 의문이 커져갔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이런 의문은 실제 숫자로도 증명된다.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수돗물을 끓이지 않은 채 마시는 서울시민의 비율은 4.9%에 불과했다. 그만큼 수돗물을 믿기 어렵다는 얘기다.
서울시는 시민들의 불안을 가라앉히려 2020년까지 개인·공동주택 37만 가구의 수도 노후관을 전량 교체하기로 했다.
다른 지자체들 역시 대안을 내놨다. 각 지자체에서는 경쟁적으로 정수장에 고도 정수처리 시설을 도입했고, 녹조가 발생해도 안심하고 마실 수 있다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치과의사를 중심으로 의료단체에서 추진 중인 수돗물 불소화사업 역시 아이러니하게도 수돗물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는 역할만 하는 셈이 됐다. 불소가 함유된 물이 충치 발생을 막고, 건강에도 해가 없다는 것이 이들 단체의 주장이지만, 일부 환경단체에선 반대하고 있어 논란만 커지고 있다. 실제로 일부 지자체에선 불소 투입을 중단하기까지 했다. 이 논쟁은 수십 년 전 미국에서 점화된 역사 깊은 수돗물 관련 논쟁 중 하나다.
결국, 수돗물에 대한 의문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고, 이 물음표와 함께 성장한 것이 정수기 시장이다. 한국정수기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정수기 시장규모는 2014년에 1조9500억원에 달했고, 올해는 2조2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예상대로 성장이 이뤄진다면 2011년 1조7004억원에서 5년 만에 시장규모가 30%가량 성장하게 되는 셈이다.
이런 성장세에 찬물을 끼얹은 사건이 지난 7월에 있었다. 국내 정수기 대여 1위 업체로 손꼽히는 코웨이의 얼음정수기에서 니켈 성분이 검출된 것. 코웨이 얼음정수기에서 은색 금속가루가 보인다는 소비자 불만이 잇따르자, 당시 코웨이는 시중에서 수거한 얼음정수기 29개 제품을 대상으로 자체 조사를 벌였다. 검토 결과 일부 정수기 내부에서 얼음을 만드는 핵심 부품이 벗겨지면서 금속가루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로 인해 코웨이는 공식 사과 후 리콜과 피해 보상 등으로 분주했다.
제품군 다양해 선택의 폭 넓어
현재 시중에서 판매하는 정수기들은 업소용 대형 제품을 제외하면 크게 네 가지이다.
가장 일반적인 제품은 널리 쓰이고 있는 냉온정수기다. 정수기 본체 안에 작은 물통이 있어, 정수된 물이 수조에 담기면, 이를 차갑게 하거나 뜨겁게 가열해 냉수와 온수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얼음을 얼리는 제빙기가 합쳐진 것이 가장 인기 있는 얼음정수기. 최근 중금속 논란이 있었던 모델이기도 하다. 이번 문제가 된 얼음정수기가 모두 가진 구조적 문제라기보다는, 일부 초창기 제품들이 과냉각이 잦아 써선 안 될 곳에 도금 부품을 사용해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전체 문제로 확대되진 않으리라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검찰도 관련 사건을 조사 중이다.
일반 냉온정수기나 얼음정수기는 문제가 된 코웨이와 청호나이스가 전통적인 강자로 꼽힌다. 그만큼 다양한 제품군을 갖추고 있다. 최근 안마의자로 유명한 바디프랜드가 직수형 얼음정수기로 시장 확대를 노리고 있다.
인기가 식을 줄 모르던 얼음정수기가 의외의 암초를 만나 휘청거리는 사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정수기들이 있다. 직수형 정수기다. 직수형 정수기는 자체에 수조 없이 순간적인 냉각이나 가열시스템으로 온도조절을 하기 때문에 수조에서 세균이 번식 가능한 일반 냉온정수기에 비해 안전하다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동양매직이 사용하는 광고 문구 “이제 고인 물 말고 새물 드세요”에서도 이런 특징이 잘 나타난다. 구조도 비교적 단순해져, 크기가 작아진 것도 장점 중 하나다. 직수형 정수기는 LG, 쿠쿠전자, 동양매직, 교원웰스와 같은 정수기 시장의 후발주자들이 강세를 나타내는 분야다.
이외에 언더싱크형 정수기도 일부 사용자들 사이에서 사랑받고 있다. 해외에서 직접 물건 구매를 즐기는 ‘직구족(族)’이나 설치 인테리어를 직접 하고자 하는 ‘DIY족’들이 주로 애용하는 형태다. 싱크대 밑에 설치해야 하므로 이 과정에서 ‘공사’가 필요하고, 밸브 관리가 까다롭다. 온수와 냉수 기능 없이 오직 ‘정수’만 가능하다. 하지만 필터 용량이 커 필터 교체 주기가 길고, 싱크대 아래에 숨기 때문에 공간 활용에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전기소모가 없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국내시장에선 주로 워터피아, 3M, 에버퓨어, 듀벨 등의 제품이 사랑받고 있고, 일부 다단계 기업의 인기 아이템이기도 하다. 상당수 사용자는 필터와 같은 소모품은 아마존과 같은 사이트에서 직구하는 경우가 많다. 샤오미 정수기도 직구족들에게 최근 주목받는 제품이다.
접 관리가 어렵다면 대여형 서비스가 간편
제품을 고를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관리를 스스로 할 수 있는가이다. 내가 직접 정수기를 설명서대로 일부 부품을 꺼내 청소하거나, 필터 교체를 할 수 있는지 따져 봐야 한다. 언더싱크형 정수기는 대부분 설치까지 소비자가 직접 해야 한다.
스스로 할 수 있다면 선택의 범위가 넓어지지만, 만사가 귀찮거나 정수기 관리가 어렵고 복잡하다면 대여형 서비스가 답이다. 정수기는 생명의 근원인 물을 다루는 제품인 만큼 세균 번식도 쉽고, 물을 걸러 내는 필터의 경우 제때 교체해 주지 않으면 되레 물을 더럽힐 수도 있다. 그만큼 정수기는 구매보다는 사후 관리가 중요한 품목이다. 대부분의 대여서비스의 경우 계약 기간 내 정기적으로 업체 직원이 방문해 청소나 필터 교체 등의 업무를 대신해 주기 때문에 특히 시니어에겐 유리하다. 일부 회사의 경우 필터 교체는 소비자에게 맡기는 대신 가격을 깎아 주기도 한다.
가격은 큰 차이가 없다. 직수형 정수기가 월 3만~4만원 수준이고, 얼음정수기는 월 5만~6만원 정도에 대여가 가능하다. 일반 냉온정수기는 보통 월 2만원 이하 수준이다. 계약조건은 3년 혹은 4년 약정 계약에 사용 기간이 5년이 넘으면 소유권이 이전되는 형식이다.
소음과 전기 사용량도 따져 봐야 할 부분. 사시사철 시원한 얼음을 쉽게 먹을 수 있는 얼음정수기는 아무래도 전기사용량이 상대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다. 지난여름 이상고온으로 에어컨 사용량이 사회적으로 전기요금 누진제가 화두가 되면서 정수기도 냉장고만큼 전기 먹는 제품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업계에선 냉장고와 비교할 정도는 결코 아니라고 항변한다.
의외로 소음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사용하지 않아도 자체 살균이나 청소 등의 과정에서 소음이 발생하는 제품이 일부 있어, 사용자들이 항의하는 경우도 있다.
구매 시 계약조건 잘 따져 봐야
마지막으로 따져 봐야 하는 부분은 대여서비스가 합리적인가 하는 부분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대여서비스 민원을 분석했는데, 전체 대여서비스 중 정수기 관련 불만이 50.7%를 차지했다. 그만큼 사용자도 많고, 불합리한 부분도 적지 않다는 이야기다. 민원 유형은 계약 내용 불이행이 44.9%를 차지했고, 품질 불만이 20.3%, 안내 고지 미흡이 14.3%를 차지했다.
정수기를 고르기 어렵다면 대여가격 비교 사이트를 이용해 보는 것도 좋다. 현재 10여 개가 넘는 대여가격 비교 사이트가 있는데, 여러 업체의 제품들의 가격이나 대여조건들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이런 대여가격 비교 사이트들은 엄밀히 말하면 가격비교가 목적이 아니라, 사이트 스스로가 각 회사와 계약을 맺고 제품을 공급하는 양판점 형태의 대리점이라고 보면 된다. 일부 회사 제품의 경우 같은 제품도 계약조건이나 금액이 달라질 수 있는 유통구조를 갖고 있어 이들은 규모의 경제를 이용해 보다 낮은 가격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한다. 사은품 역시 소비자들을 현혹하는 요소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해당 제품이나 제조회사뿐만 아니라 제품을 취급하는 대리점의 사용 후기, 회사 사업자번호를 확인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기본적으로 정수기 대여는 3~4년의 장기 계약이고, 약속한 사은품 증정을 거부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에 안정적인 회사(대리점)인지 확인해야 합니다”라고 조언했다.
가 수학문제 처럼이나 어려워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철 따라 옷을 찾아 입는 일이다. 원래가 둔감해서 그런지 철이 바뀔 때 제철 옷을 입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주로 아내가 챙겨주는 옷을 입어서인지 아예 그 방면엔 촉감이 퇴화하여 버린 듯하다. 오늘도 또 그런 일을 당하고 말았다. 아직 8월 무더위가 지나지 않은 탓도 있지만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열대야 현상으로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사상 최고로 더운 날씨에 낮이나 밤이나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낮엔 낮대로 최하 35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태양 볕은 아예 지구를 달구어 놓았다.
아침저녁으로 수돗물을 가장 차게 해서 틀어 놓고 샤워를 해보지만 돌아서면 다시 덥고, 아예 수돗물도 온천수처럼 미지근한 상태다. 에어컨은 누진세 폭탄이란 말을 듣고 미리 겁을 집어먹고 혼자 있을 때는 돈이 아까워 틀지도 못했다. 따뜻한 바람을 일으키는 선풍기가 힘들게 돌아가지만, 더위를 식히는 데는 무리다. 태풍은 온다는 소식도 멀고 겨우 소나기 한 줄기 국지적으로 잠시 지나가면 그뿐이었다.
그렇게 높았던 기온이 엊그제 내린 소나기에는 한풀 꺽인 듯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고 시원한 바람까지 불었다. 필자는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며칠 전 무더위를 생각하여 반소매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은 상태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무더위는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차가온 기운이 돌며 찬바람까지 몰아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덥기는커녕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어 감기 걸리기 딱 맞은 날씨였다. 아직 8월 여름이라 방심하고 나온 것이 화근이었다. 주위 사람들을 보니 어느새 복장들이 싹 바뀌어 있었다.
모두가 늦가을이나 초겨울 옷을 입고 거리를 다니는데 필자만 판소매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군중 속을 들어 왔으니 모두가 이상한 사람 취급하듯 대하는 것 같았다. 남의 이목이야 어쨌든 자전거 바람까지 맞으니 온몸이 싸늘하게 식는 느낌이었다. 이미 집을 나왔으니 도로 들어갈 수도 없고 낭패였다.
이런 일은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다. 환절기때만 되면 으레 겪는 일이다. 어떤 때는 남들 다 가벼운 옷을 입는데 두꺼운 옷을, 그런가 하면 남들 두꺼운 옷으로 잽싸게 갈아 입었는데 가벼운 반팔을 입어 낭패를 당한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4계절은 그래서 참 혼동스럽다. 그래서 아내의 잔소리가 심하다.
내일은 무엇을 입고 출근할까? 아직 8월 삼복더위가 끝나려면 며칠 남았는데 여름옷을 입고갈까 아님 가을옷을 입고갈까? 오늘 고생한 것으로 봐서는 반소매는 아닌 것 같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들은 옷 입는 데는 아주 노련하다. 옷도 자기가 사서 입는다. 아내의 레퍼토리가 또 나올 만 하다.
아들 반만이라도 닮으라고.
바야흐로 신세대의 세계다. 어느덧 물질문명은 흘러넘치고, 모든 것들은 통제의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 변화의 물결이 새롭다 못해, 구세대의 차오르는 가슴은 조용히 눈을 감으며 삭혀야만 한다.
새로운 세계는 늘 모든 것들이 위대하게 창출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나라가 점점 부강 되어 가는 모습일수 있다. 그러나 그 기본이 튼튼하게 다져져 있지 않은 한나라의 교육성은 장래의 위기를 위태롭게 만들기도 할 때가 있다. 더구나 인성교육의 기본은 그 나라의 근간이 되기도 한다.
필자는 일부러라도 지하철을 타고 외출을 한다. 그 이유는 이리저리 바꿔 타야 할 때마다 걷는 운동이 몸에 긍정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소비되는 시간만큼 운동으로 채워지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다만 사람으로 눌려 터지는 출퇴근 때만은 피하고 싶다. 그 시간은 어찌나 이상한 사람들로 가득 차는지 숨이 막혀 죽을 뻔 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인가, 이른 오후였다.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는 에어컨 바람에 실내의 공기가 아주 쾌적하다. 전철 안에는 사람들도 많지가 않아 분위기는 매우 상큼했다.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예전에는 그나마 귀에는 이어폰을 장착하고도 책을 보는 사람들이 다소 있었고, 간 혹은 신문을 펼쳐 든 이들도 있어 보기가 좋았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남녀노소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 더러는 입을 벌리고 잠을 자는 사람도 있다. 차라리 코를 골지 않는 것도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놈의 스마트 폰이 안겨다 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 단절이다. 앉으나 서나 심지어 걸을 때에도 유별난 행동들은 위험천만이다. 이 시대의 물질문명이 가져다준 만행 일수 있다.
필자도 가방 속에서 핸드폰소리가 울려온다. 가만히 가방을 뒤적거려 폰을 꺼낸다. 글씨가 너무 작으니 눈이 잘 안 보인다. 잠시를 못 보겠고, 보려고 안간힘을 쓰니 눈이 피로해지고 점점 아파진다. 그리 중요한 일들이 아니니 소리를 진동으로 바꿔놓고, 다시 접어 가방 속으로 밀어 넣는다. 대단한 일도 아니고 나중에 봐도 큰일 거리가 아니다.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저쪽 구석에서 아주 젊은 두 남녀가 서로 껴안고 있다. 필자도 모르게 눈이 갔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도 않는다. 점점 더 가깝게 끌어안고 깊게 포옹을 하기 시작한다. 필자는 민망스러워 고개를 돌렸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다. 잠시 후 다시 필자도 모르게 눈을 돌렸다. 이번에는 더 강도가 심하다.
두 젊은 남녀는 사람들 앞에서 보라는 듯이, 아니 자랑스러운 듯이 당당하게 입을 맞추고 있다. 이번에는 온몸을 애무하며 진하게 얼굴을 맞대고 타오르고 있다. 이게 훤한 대낮에 웬일인가 싶다. 도저히 정상적으로 봐줄 수가 없어 얼굴을 돌렸다. 오히려 필자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언제부터 한국이 이렇게 변하게 됐나 싶었다.
필자가 살고 있던 선진국 미국에서도 그렇게 난하지는 않다. 물론 그들도 포옹이나 허그로 사랑을 가볍게 표현하기는 하지만 때때로 그것들은 오히려 아름답기도 하다. 그들은 진한 사랑의 행동들을 아무 곳에서나 분별 없이, 시도 때도 없이 격 없는 행동으로 그렇게 유치하지는 않다.
이제 막, 조금 살게 된 것 같은 나라에서, 젊은이들의 무질서한 행동들이 마냥 불쾌하게 자극해왔다. 필자는 두말없이 가만히 눈을 감고 삭히며 생각에 잠기게 된다. 과연 그 모든 것들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이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인생을 더 많이 살아온 선배들, 또는 자식을 둔 부모의 입장에서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앞서게 된다.
괜스레 젊은이들에게 말 한번 잘못하면 순간에 봉변을 당하는 세상이라고 한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발전되어가는 세상, 아니 엄청난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물질의 문명의 시대가 도래했다. 모든 것들이 무섭도록 바쁘게 돌아가는 현실의 무작정 세 대라지만, 한 번씩은 돌아보며 잠시 쉬어가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필자의 자식들도 요즈음의 젊은이들이다. 이제는 어느덧 필자의 품에서 벗어나 그들 개체의 인격을 기대할 뿐이다. 모든 젊은이들은 부모의 책임 속에서 길들여져 있다. 그들이 바깥 둥지로 나가기 전에 단단한 사고로 무장된 젊은이들로 거듭나기를 부모는 더욱 노력해야 할 것만 같다.
‘세상에 젊은이들은 거듭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을 되새기면서 하루를 돌아본다.
제3국, 멕시코를 향하여 가는 길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비자를 받기 위한 과정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러나 사람이 막상 닥치고 나면 없던 힘도 생기는 것 같았다. 살기 위한 투쟁은 참으로 위대한 것 같았다.
필자는 미국 비자를 얻기 위해 멕시코로 향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제3국을 향해, 두려운 마음은 있었지만, 일단은 아무 생각이 없이 따라나섰다. 유능한 변호사가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여러 사람들이 함께하니 크게 걱정은 되지 않았지만, 역시 혼자라는 것에 조용히 떨려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드디어 작고 허름한 건물이 눈앞에 보였다. 멕시코의 변두리에 위치한 미국 영사관이라고 했다. 마치 한국의 간이역 건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주변의 모습도 미국과는 확연하게 다르고, 누가 봐도 후진국의 형편없는 일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행은 상기된 표정으로 변호사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도 에어컨은 켜져 있는 듯했으나 실내에서는 특유의 이상한 향수 냄새가 나고, 썩 시원하지도 않았다.
변호사는 구석진 한가한 곳으로 일행들을 데려갔다. 긴 의자에 앉아 모두 조용히 기다리라고 명령을 하고는 두툼한 서류들을 가지고 어디론가 향했다. 일행들은 서로가 침묵으로 긴장을 하며, 미리 적어준 몇 가지 질문에 대한 영어 쪽지 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1시간쯤이나 지난 후에야, 변호사는 밝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약속대로 모든 것들이 잘 진행이 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나쁜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는 사람들을 가까이로 불러 모았다. 오는 내내 차 안에서도 연습을 단행했지만, 또다시 중요한 몇 가지 질문에 대한 예행연습을 영어로 시켰다. 예를 들면 “왜 당신은 이곳에 와서 비자를 만들려고 하느냐?” 라고 물으면, “비즈니스(세탁소)를 하느라고 한국까지 갈 시간이 없다. 가장 가까운 이곳이 가장 적합해서 왔다.” 라고, 대답해야 한다.
다른 질문들도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말 한번 잘못하면, 그야말로 비자는커녕 오히려 수습해야 할, 더 힘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때문에 변호사는 사전에 어떻게든 입단속을 시켜야만 했다. 더구나 영어가 부족한 한국 사람에게는 무조건 외우라고 했다. 그들이 형식적으로라도 묻는 질문에 가장 합당하고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어야만 했다.
물론, 사전에 모든 과정은 다 준비를 해놓고 오는 것만 같았다. 여기저기 연결고리를 통해서, 아주 잘 아는 영사관이 근무를 하는 날짜에 꼭 맞추어서, 암암리에 짜고 접수를 하고 오는 것이었다.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었기에 돈만 집어주면, 다 눈 감고 하는 일이 서로 통하고 있었다. 어쩌면 더 잘 통하는지도 모른다.
단지 변호사에게 가장 큰 문제는 불시에 담당영사관이 바뀐다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들은 수포로 돌아간다. 아니 시작도 할 수가 없다. 당연히 미국에서부터 연결 통로가 있어서, 단단한 조직으로 통해야만 거의 실수가 없다. 그러므로 모든 것들이 끝날 때까지는 마음을 조아릴 수밖에 없다.
영사관 창구에서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일대일로 달려가 무조건 대면을 해야 했다. 대체로 가족의 경우에는 다 같이 함께 부르기도 했다. 앞사람이 동그랗게 원을 그렸고, 결과는 무사히 통과했다는 뜻을 전해왔다. 더 긴장이 됐다. 순간, 필자의 이름을 불러 정신없이 달려갔다. 역시 변호사가 시킨 대로 똑같은 질문을 해왔다. 아마도 공식이었나 보다.
필자는 마구 떨려왔지만, 최대한 미소를 지으며 여유 있고 경쾌하게 대답을 해 나갔다. 미국 영사는 두꺼운 유리 벽 안에서 필자를 위아래로 한번 훑어보더니, 의외로 쉽게 도장을 꽝꽝 찍어준다. 이윽고 비자를 만들기 위한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안도의 한숨이 크게 나왔다. 생각보다 쉽게 일행 모두가 한 번에 다 통과를 했다. 영사관과 딱 맞아떨어진 것이다. 변호사는 그제야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비록 5년짜리 비자를 받았지만, 5년 후에 일은 그때 가서 또 고민하면 되는 것이다. 모든 일행은 어렵게 얻어낸 감격의 기쁨으로 환희에 차 있었다. 사람들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실마리를 풀어 낸 것만 같아 하늘로 날아갈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 또 하나의 문제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일행들은 일단 늦은 점심을 하기 위해 변두리 시내로 향했다.
산다는 것이 참으로 쉬운 일은 없고, 또 겪어야 할 상황은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힘겨운 제3국에서 미국 비자를 취득한 일은 대단한 업적이었다. 그것도 멕시코 영사관에서.
늘 땀이 많은 체질이다. 군대 있을 때는 잡초 제거 작업을 하던 중이었는데 내가 땀을 많이 흘리자 작업관이 나는 그만하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농땡이 치느라고 땀도 안 났는데 나는 열심히 했으므로 땀이 많이 난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겉보기로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이라 그 덕을 본 셈이다.
피부가 좋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땀이 노폐물을 빨리 빼주기 때문에 그렇다는 설명을 들은 일도 있다. 격한 운동 후 땀을 많이 흘리고 나면 피부가 뽀송뽀송해진 느낌이 나기는 한다.
땀을 많이 흘리면 기분이 상쾌해지기는 한다. 피부온도를 낮춰주기 때문이다. 개운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땀이 많으면 불편하기는 하다. 샤워도 자주해야 한다. 땀 냄새도 날 수 있고 옷을 자주 갈아입어야 한다. 운동 할 때는 따로 옷을 가져가서 운동이 끝나면 갈아입기도 한다. 면으로 만든 옷이 피부에 좋다지만 면은 땀을 흡수하여 바로 마르지 않고 땀 냄새가 나는 단점이 있다. 그전에는 여름철이라도 런닝셔츠를 꼭 받쳐 입었으나 몇 년 전부터는 런닝셔츠 없이 바로 셔츠를 입는다. 훨씬 시원하다. 동생에게도 권했으나 과민성대장이라 설사가 난단다. 런닝셔츠도 면이다. 화학 섬유로 만든 옷을 자주 입지만 특별히 피부 트러블이 생기지는 않았다.
90년도 말쯤에 전남드래곤즈 프로 축구단에 옷을 납품한 적이 있다. 경기복도 면으로 만든 옷을 입을 때였다. 필자가 납품한 경기복은 폴리에스터 제품인데 땀을 흡수하면 바로 마르는 속건성 기능을 가진 소재였다. 그 당시 선수들이 처음에는 땀이 많이 나기 때문에 피부에는 면 제품이 좋다며 거부했었다. 그러나 입어 보더니 면 제품은 땀을 흡수하면 무거워지는데 폴리에스터 제품은 가볍다며 그때부터 유니폼에 일대 변화가 생겼다.
폭염에도 자주 걷기 운동을 한다. 극세사로 만들어 속건 기능이 있는 스포츠 타월을 이마, 목, 허리에도 찬다. 목에 두른 타월은 그야말로 땀투성이라 짜면 물이 흐를 정도이다. 그 정도면 육수 소리를 들을 만하다. 스포츠 타월은 여러 종류가 있으나 얇은 것이 좋다.
열대야가 계속되니 밤에도 에어컨을 마음껏 틀어 놓고 잔다. 가정용 전기 요금이 누진제로 되어 있어 요금 폭탄을 맞는다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봐야 한 철이다. 몇 푼 아낀다고 에어컨을 끄고 잤다가 더워서 깨면 수면 부족으로 고생한다. 어루러기라고 피부병도 가끔 생긴다. 피부에 있던 곰팡이 균이 피부 산도나 면역력이 떨어질 때 생기는 흔한 피부병이라고 한다. 다행히 집에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아무 피부 연고나 바르면 얼마 안가 낫곤 한다. 대부분 광범위 피부연고라서 어지간한 피부병에는 다 듣는 모양이다. 의사 친구가 있어 물어 보니 세레스톤G나 카네스텐 연고를 교차해서 바르면 둘 중에 하나는 효험을 본다고 했다. 그걸 모르고 피부병으로 고생하던 시절 동대문 근처 유명하다는 피부약국에 갔다가 몇 십만 원 바가지를 쓴 적이 있다.
팬티도 문제이다. 왈츠, 탱고 같은 댄스를 하는 날은 몸에 착 붙는 드로즈 팬티를 입어야 한다. 파트너와 갈비뼈 부분을 붙이고 다리 사이로 다리를 넣어 회전하는 경우가 많아 최대한 남성 돌출 부위를 잡아줘야 하는 것이다. 삼각팬티는 고무줄이 너무 타이트해서 접촉면에 피부 트러블이 생긴다.
트렁크 팬티를 입으면 바람이 잘 통해 좋다. 그러나 너무 헐렁하다보니 제 기능을 못한다. 장거리 걷기를 해보면 사타구니 좌우 피부 접촉 때 피부끼리 마찰이 생기면 아프고 쓰라리다. 그럴 때도 드로즈 팬티가 좋다. 별일 없는 날은 아예 팬티는 안 입는 시도도 해봤다. 겨울철에는 내의를 입을 경우 내의가 팬티 역할을 하므로 굳이 팬티를 입을 필요는 없단다. 그러나 여름철에는 바로 바지와 닿으므로 바지 안쪽의 접어 넣은 불규칙한 원단과 피부가 접촉하게 되어 피부염이 생길 수 있다. 팬티는 그날의 스케줄에 따라 용도 별로 입을 필요가 있다.
8월 중순이 넘어도 무더위는 꺾이지 않고, ‘폭염특보’만 휴대폰을 두드린다.
여름에 시원하여 에어컨 가동이 별로 필요하지 않았던 ‘관악의 전원주택’ 필자의 아파트도 올해는 요금폭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손주와 함께 더위를 쫓으면서 끈끈한 정을 키운 이야기를 펼친다.
◇올 여름 피서하기
올 폭염에 힘들어 보이는 쌍둥이 손녀·손자를 데리고 피서 겸 견학차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족나들이를 갔다. 아이들은 신안해저유물전시관에서는 어마어마한 유물을 보고 입을 닫지 못하고, 어린이 박물관에서 재미있는 놀이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퇴장이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필자가 귀가하면서 “할아버지 집에서 더 재미있게 놀고, 저녁에 할아버지와 같이 자자!“고 제안하였다. 손녀는 머리를 흔들고, 손자의 얼굴에는 망설임이 스쳤다. 바로 옆 가까운 곳에서 살면서 자주 만나지만 여태껏 부모와 떨어져서 할아버지 집에서 자 본 경험이 없는, 몇 번 시도했지만 성공한 일이 없는 큰 숙제였다. 여느 때처럼 ”엄마가 허락하면 그렇게 할게요!“라고 대답하였고, 며느리는 예전같이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하였다.
◇손주와 하룻밤 지내기
공 던지기, 끝말잇기, 가위바위보 게임 등으로 신나게 놀았다. 저녁 식사 후 반전이 일어났다. 아들가족과 손녀는 귀가준비를 하는데 “동생도 할아버지와 자는데, 형이 되어가지고 한 번도 자지 않으면 말이 안 된다.”고 손자가 일성을 발하였다. “초등학생이 되더니 엄청 컸구나!” 모두가 어리둥절하였다.
가까이 사는 5개월 늦은 외손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외손자는 당시 신종 플루 등 감염위험 때문에 필자의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였다. 그래서인지 훨씬 전부터 외할아버지 품에서 잘 잤다.
어려서 부모님의 품을 떠나서 하룻밤을 지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알고 있다. 중학교 진학을 위하여 집을 떠나기 전에는 같은 시골동네 이모님 댁에서도 자기커녕 밥 한 끼 먹지 못하였다. 사촌들과 놀다가도 식사준비 소리가 나면 부리나케 집으로 내달렸던 기억이 지금도 뚜렷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여름으로 기억한다. 이모님과 함께 하루를 걸어야 하는 외가댁으로 처음 갔다. 집을 떠나 본 일이 없는 터에 밥 먹기도 힘들고 잠자기는 더욱 어려웠다. 무서운 꿈만 꾸다가 날을 밝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기억에 남지 않거나 황당한 꿈을 거의 매일 꾸고 있다.
선풍기·에어컨을 교대로 켜면서 손자의 할아버지와의 첫잠을 잘 자도록 밤을 지켰다. 조금은 서늘해진 아침이 터 오르고 있다. 가슴이 따뜻해진다. 아이의 표정에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부모 품을 떠나서 할아버지와의 첫잠을 손자는 훗날 어떻게 기억할까?
◇즐겁게 만나라, 칭찬하라
손자와 훨씬 가까워진 느낌이다. 다음에는 할머니를 좋아하는 손녀와 같이 지내기를 하고자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할아버지, 할머니의 진정한 노력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처럼 격식에 맞춘 보살핌은 아무 소용없다. 가슴에 안고 즐겁게 만나자. 손자는 할아버지의 가슴이 따뜻한지 차가운지 훤히 알고 있다. 책망하지 말고 하루에 3번 이상 칭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