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로 떠나는 피서도 좋지만 모래알처럼 수많은 휴가객이 몰려 있을 백사장 광경을 떠올리면 어질어질해진다. 평온한 파라다이스를 원한다면 좀 더 여유롭고 편리한 호텔 수영장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시원한 물놀이와 함께 다양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호텔 수영장을 소개한다.
◇ 서울신라호텔 ‘어번 아일랜드’
서울신라호텔 ‘어번 아일랜드(Urban Island)’에서는 수영과 태닝뿐만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숲과 남산으로 둘러싸인 어번 아일랜드는 해외 휴양지에서 볼 수 있는 럭셔리 카바나(cabana: 수영장 내에 있는 호텔 객실)를 운영한다. 이번 여름에 선보이는 ‘얼리 서머 에피소드 II’ 패키지를 이용하면 비즈니스 디럭스 객실 1박, 어번 아일랜드 2인 입장권, 고급 생맥주 2잔, 실내 피트니스 및 실내 수영장 이용 2인 등을 즐길 수 있다.
요금 33만원, 7월 15일까지, 문의 02-2230-3310, 서울시 중구 장충동2가 202
◇ 롯데호텔제주 ‘스파&가든 해온(海溫)’
따뜻한 바다[海溫]라는 뜻을 지닌 롯데호텔제주의 ‘스파&가든 해온’은 제주의 온화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자쿠지(Jacuzzi:기포가 나오는 욕조 브랜드)에서 따뜻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어린이용 수영장 근처에 식사 공간이 있어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며 맛과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요금 1회 15만원(5~10월), 문의 064-731-4296, 제주 서귀포시 중문관광로 72번길 35
◇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오아시스’
반얀트리 클럽 회원과 호텔 객실 투숙객에게만 개방하는 야외수영장 ‘오아시스’는 이국적인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이번 여름에 출시한 ‘서머 인 오아시스 패키지’를 이용하면 오아시스 무료입장, 호텔 내 업장 할인 쿠폰북 제공과 더불어 다이닝 라운지 조식 뷔페, 실내 수영장 및 피트니스, 오아시스 아쿠아 바 칵테일 또는 청량음료를 즐길 수 있다(각 2인 제공).
반얀룸 1박 기준 54만원부터, 9월 9일까지, 문의 02-2250-8074, 서울시 중구 장충단로 60
◇ 롯데호텔서울 실내 수영장
바다와 요트를 모티브로 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곳이다.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남산 일대 경치를 볼 수 있는데, 특히 해가 지고 난 뒤의 야경이 아름답다.
회원 및 호텔 투숙객 이용 가능, 문의 02-317-7313, 서울시 중구 을지로 30
◇ 파크하얏트서울 실내 수영장
수영장이 호텔 24층에 있어 시내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수영장은 가장자리가 보이지 않는 인피니티 풀 형식으로 제작돼 물이 도심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듯하다.
파크클럽 연간 회원, 호텔 투숙객, 스파 고객 이용 가능, 문의 02-2016-1176,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 606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에어비앤비가 내세우는 여행 방법이다. 친구, 가족이 아닌 현지 주민과 하루 정도 살아보는 건 어떨까? 여름휴가 시즌을 맞아 외국을 가보고 싶었으나, 강원도 영월의 한 에어비앤비를 찾아가 숙박했다. 혼자 떠난 여행. 역시 그곳에는 기분 좋은 만남이 있었다는 사실! 웃음 가득했던 시간이 벌써 그리울 따름이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2시간 달려 영월 시외버스터미널에 오후 2시쯤 도착했다. 때마침 빨간색 ‘붕붕이’를 타고 마중 나온 이번 달 에어비앤비 호스트 장미자(張美子·51)씨.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난 뒤 다짜고짜 “약속이 있으니 같이 좀 가자”하기에 무작정 따라갔다.
친절한 미자씨와 술 빚기
장미자씨를 따라간 곳은 영월청정소재산업진흥원(이하 청정원). 작년부터 이곳에서 술 빚는 동호회 ‘자주동샘’을 조직해 영월을 대표하는 술을 빚고 있다고. 현재는 시음 행사를 열어 선을 보이거나 영월의 벼룩시장에서 소소하게 판매하는 정도지만 정식 법인을 세워 술을 판매할 계획이다. 청정원에 도착해서 할 일은 아침에 빚어놓은 맵쌀죽과 누룩을 버무려 밑술을 만드는 것. 다른 회원들이 시간보다 조금 늦은 탓에 일손을 도울 겸 두 팔을 걷어붙였다. 처음에는 죽 반죽이 뻑뻑하지만 계속 손바닥으로 누르고 치대다 보면 걸쭉한 막걸리처럼 변한다. 치댈수록 달고 맛있는 술이 나온다고 해 열심히 거들었다.
영월 귀농 라이프, 1박2일로는 부족해요
집으로 돌아와서 가방을 숙소인 2층에 휙 던져놓고 장미자씨 일을 도왔다. 물론 쉬어도 상관은 없다. 에어비앤비의 정신대로 뭐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허락만 된다면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마침 호주와 제주에서 농장생활 했던 경험을 살려 장미자씨와 함께 마당에 난 잡초들을 뽑기로 했다. 힘들면 뽕나무 밭에 가서 오디를 따먹기도 했다. 사실 올해 오디 농사는 접었다는 정미자씨. 지난 3월 뜻밖의 한파로 전라도에서 가지고 온 뽕나무가 냉해를 참지 못하고 얼어 버렸다. 그래도 따 먹을 정도는 되기에 이웃 친한 분들이 와서 따가기도 한다.
머루랑 다래랑 따 먹고 살아요
장미자·안종호(安鍾浩·53) 부부는 인천에 살다 강원 영월읍 흥월리로 8년 전 귀농 했다. 작년 4월부터는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됐다. 손님 숙소로 이용하는 곳은 2층 공간 전체. 집을 지을 때 2층에 작은 부엌이 있으면 편할 거 같아 장만해 넣었고, 훗날 장성한 아이들이 살게 되면 편할까 싶어 밖으로 나가는 구름다리를 놓았다. 이 모든 것을 손재주 좋은 남편 안종호씨가 제작했다. 대학 졸업 후 취업한 아들, 대학에 입학한 딸이 외지에 나가는 바람에 공간이 텅 비어 버렸다.
“에어비앤비를 열어 놓고 난 뒤 설마 이렇게 먼 곳까지 사람이 들어오겠어? 했는데 문을 연 지 한 달 됐을 때 첫손님을 맞았어요.”
주말이면 매번 꽉 차는 정도는 아니지만 꾸준히 손님들이 찾아온다.
“바로 어제 왔던 손님은 어디 온천을 예약해 놓고도 저희 집이 좋다고 퇴실 시간이 훨씬 지나 오후 1시가 돼서야 떠나셨어요. 다음에 또 오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꿀맛 나는 식사시간
저녁에는 낮에 열심히 일한 농사꾼을 위해 두툼하게 썬 돼지고기를 넣고 맛있는 김치찌개를 끓여 주셨다. 다음 날 아침에는 직접 잡은 다슬기로 된장국을 끓여 주신 장미자씨. 안 먹어 봤으면 후회했을 맛에 눈이 트일 정도였다. 아침을 먹고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보니 각종 과일과 채소, 산나물이 지천이었다. 손님들도 적당히 먹을 정도만 담아가고 과일도 먹을 수 있어서 좋아들 한다고. 삼시세끼 먹을 것이 끊이지 않는다더니 절대 굶을 일 없는 곳이 바로 장미자·안종호 부부의 집이었다. 언젠가 또 만날 날을 기약하며. 안녕 친절한 미자씨!
우리말을 하는 한, 그 우리말에 한자어가 들어 있는 한 말의 뜻을 정확하게 알고 새기려면 한자의 어원부터 따져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자는 사물의 모양을 본떠 그린 상형(象形)을 비롯해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 전주(轉注) 가차(假借) 등 여섯 가지 방법으로 만들어진 문자입니다. 이른바 육서(六書)입니다.
부모를 잘 섬기는 효도를 말할 때 쓰이는 孝라는 글자는 老[늙을 로]와 子[아들 자]를 합쳐서 만든 회의자라고 합니다. 글자 자체에 아들(그러니까 자식)이 부모를 잘 섬긴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효도를 강조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똑같습니다.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받은 10계명 중 다섯 번째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자녀 된 사람들은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신 계명은 약속이 붙어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 이것은 신약성서 에베소서 6장에 나오는 말입니다.
공자는 위정(爲政)편에서 제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요즘에 말하는 효는 봉양을 잘하는 것에 불과하다. 개나 말들도 집안에서 봉양을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개나 말들과 무슨 구별이 있겠는가?[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 인간의 본성은 아무리 시대가 바뀐다 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던데, 공자의 시대에도 벌써 이렇게 ‘요즘 세태’를 한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날의 효도야 더 말할 게 있겠습니까? 효의 전통이 무너진 지 오래이고 효도를 하려도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게 된 세상이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습입니다. 효도는커녕 부모를 버리는 걸 넘어 살부 살모의 존속살해 범죄가 비일비재한 현실입니다.
중국 상하이에서는 5월 1일부로 강제적인 ‘효도법’이 발효됐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찾아뵙지 않을 경우 신용등급을 나쁘게 매겨 집을 사거나 도서관을 이용할 때 불이익을 당하게 하는 내용입니다. 특히 부모가 불효자식을 고소할 수 있고 양로원이나 요양원 노인들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하는 한편 양로원·요양원 측이 장기간 부모를 방기하는 자식들에게 찾아오라고 연락하는 것도 의무화했습니다.
베이징(北京)과 광둥(廣東)성 장쑤(江蘇)성 등은 이미 2013년부터 노인권익보호법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 법은 정기적으로 찾아뵙지 않고 부모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는 자식들을 고소하거나 정부에 중재를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대 국회에 효도법(이른바 ‘불효자 방지법’) 법안 2건이 제출됐다가 국회 폐회와 더불어 자동 폐기됐습니다. 부모를 잘 모시는 자녀에게는 상속세 증여세를 경감해주고, 재산을 증여받은 자식이 부양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언제든 그 재산을 환수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현행 민법 556조는 ‘부모가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하기로 약속한 경우 자녀가 부모에게 범죄행위를 하거나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는 증여를 해제(취소)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증여를 이미 이행한 때는 증여를 해제(취소)할 수 없다’(민법 558조)는 조건도 달려 있지요.
하지만 사실상 부모가 자녀의 범죄·패륜 행위나 불효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법원이 이미 작성되어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효도계약서 등의 서면 계약을 중시하는 것도 이 같은 현실 때문입니다.
그래서 발의된 개정안은 자식이 부모를 학대하거나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는 물론 현저하게 부당한 대우를 할 경우까지 포함해서, 효도계약서 등의 서면에 의하지 않은 증여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미 증여한 재산도 전부 회수할 수 있도록 보완했는데, 사실상 민법 558조를 없애야 한다는 취지인 셈입니다.
또 형법상의 존속폭행죄에서 피해자가 원치 않을 때는 처벌할 수 없도록 규정한 반의사불벌(反意思不罰) 조항을 삭제하자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우리 정서상 부모가 자식들에게 폭행을 당하더라도 처벌을 원하는 경우는 드물어 현행 법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습니다.
증여 해제권 행사 기간도 현행 6개월에서 ‘해제 원인을 알게 된 날로부터 1년 또는 증여한 날부터 5년’으로 늘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은 부모에 대한 배신이나 배은망덕한 행위가 있을 때 부모가 증여한 재산을 1년 이내에 돌려받을 수 있게 하고 있답니다.
이런 ‘불효자 방지법’은 내년이 대선의 해이므로 노인층의 표를 겨냥한 정치권이 다시 국회에 법안을 제출해 더 활발하게 논의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효도법에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겠느냐, 부작용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거지요. 땅 덩어리가 넓은 중국의 경우 부모를 자주 찾아뵙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가 봅니다. 비행기나 열차 교통비 마련은 둘째 치고, 며칠 이상씩 휴가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고비를 받고 대신 찾아가주는 ‘부모님 방문 서비스’라는 신종 사업이 생겨 성업 중이라고 합니다. 한국인들은 영리하니 새 법이 발효되면 이런 것들보다 한층 더 기발한 ‘효도사업’이 생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조선 영조 때의 효자 정방(鄭枋)이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효자가’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전남 담양에 살았던 전우창(全禹昌)의 효행을 읊은 노래입니다. 그 가사 중 “상분도천(嘗糞禱天) 못 다하야/단지용혈(斷指用血) 하는구나”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운명하려 하자 병세를 알아보기 위해 아버지의 대변을 맛보고 하늘에 빌면서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드렸다는 내용입니다.
옛 글에 나타난 효행 중 대표적인 것은 혼정신성(昏定晨省), 저녁엔 잠자리를 보아 드리고 아침엔 문안(問安)을 드리고, 동온하정(冬溫夏凊), 겨울엔 따뜻하게 해드리고 여름엔 시원하게 해드리면서 병이 나시면 상분도천, 단지용혈로 간병을 하다가 돌아가시면 삼년시묘(三年侍墓)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그냥 정성에서 우러나고 자발적인 효심으로만 행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보고 배우고 본받아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까 孝는 본받는다는 ‘效(효)’이면서 가르친다는 ‘敎(교)’일 수 있습니다. 내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걸 내 자식에게 보여줘야 나도 나중에 그렇게 효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부모가 온 효자가 돼야 자식이 반 효자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를 포함해서 실제로 그렇게 잘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이런 글을 쓰기가 어려운 것은 언행이 일치하지 못하면 글에 실속이 없고 거짓과 과장이 섞이기 때문입니다. 겨우 겨우 썼습니다.
20여 년 전 아내, 아이들과 설악산으로 여름 휴가를 떠난 적이 있다. 그런데 당시 휴가는 즐거움보다 불쾌한 기억만 가득했다. 그래서 필자 가족은 그 휴가를 일컬어 ‘화진포 사건’이라고 한다.
이 사건의 시작은 필자 가족이 강원 고성군 화진포해수욕장에서 즐겁게 해수욕하고 있는데 아내가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면서 시작됐다. 근처에 병원에 없으니 속초시 중심가로 가기로 했다. 급히 택시를 잡고 속초로 출발했다. 다급한 사정을 이야기하니 운전사가 8만 원을 달라고 했다. 미터기 요금보다 4배나 높이 부른 금액이니 바가지요금이 분명하지만 대책이 없었다. 택시 타고 가는 중에 아내는 계속 아프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마음은 급한데 길은 막혀 속도를 내지 못하니 짜증 났다. 3명의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즐겁던 상태에서 모든 것이 엉망인 상황으로 순식간에 바뀐 것이다.
요금이 너무 비싸다고 하자 운전사는 선심 쓰듯이 6만 원으로 깎아 줬다. 그러다 중간에 길이 막히기 시작하자 운전사는 기회비용을 핑계 대면서 일방적으로 요금을 다시 8만 원으로 올렸다. 아픈 원인을 생각해 보니 전날 설악동에 숙소를 정하고 회를 먹다 남겨둔 멍게가 아깝다고 아내가 먹었는데 상했을 가능성이 가장 컸다. 빨리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아내에게 나쁜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긴박한 마음에 아내와 같이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무사히 이 위기를 벗어나게 도와주신다면 아내는 그동안 미루던 십일조를 하기로 했고 필자는 독실한 신자의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어렵고 긴급한 상황에 부닥치면 누구나 진지하고 간절해지는 것이 일반적인가 보다.
조바심을 내며 안절부절못하는 중에 시간은 흘러 어느덧 병원에 도착하였다. 기분이 나빴으나 8만 원의 택시요금을 내고 병원 응급실에 들어가려는 순간 갑자기 아내가 견딜 만하다고 하였다. 긴장이 좀 풀렸다. 바로 숙소로 가서 휴식하니 다음 날 상태가 호전되어 위기에서 벗어났다.
아내가 나은 것이 기도의 힘인지 아닌지는 아직 확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아내는 그때부터 작정대로 십일조를 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그 이후로 식성이 바뀌어 아내는 그 좋아하던 멍게를 피하게 되었다. 필자도 반성하고 나름대로 기독교도의 이름에 걸맞게 생활하려고 노력한다.
이 사건은 과연 무엇이 중요한가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금전이 중요하지만 생명에 비하면 가치가 작다. 그 당시 8만 원은 좀 컸으나 그 돈 썼다고 사는 데 지장받는 것은 아니다. 어려운 사정을 이용하여 폭리를 취한 운전사로 인해 나빴던 기분도 시간이 지나니 잊혀졌다. 금전도, 기분도 생명에 비해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은 다들 형편이 좋아졌는지 휴가철이나 무슨 때만 되면 외국으로 나가는 사람들로 인천공항이 북새통이 된다고 한다. 소시민인 필자는 아이가 어릴 적부터 어른이 되어 더는 아빠 엄마와 휴가를 같이 보내려 하지 않게 되었을 때까지 여름휴가나 겨울휴가 여행을 국내, 특히 동해안으로 갔다. 우리나라 곳곳 다 아름답지만, 그래도 한계령을 넘어 설악산으로 가는 구불구불 길이 좋았다. 고개 넘어 맞닥뜨리는 동해의 탁 트인 파란 잉크 빛 바다와 특히 내가 좋아하는 먹거리 해산물이 풍부하다는 점이 그곳을 여행지로 꼽는 첫 번째 이유였다.
가수 양희은 씨의 노래처럼 한계령은 나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만 같아 정답고 한계령 올라가는 길에 있는 한옥 민박집이나 바람불이라 불리던 계곡 야영장은 우리 가족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겨주었다.
지금은 어딜 가도 호텔이나 콘도, 화려한 리조트로 쾌적한 숙박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우리 가족은 텐트를 준비해 자연 속에 머무르는 방법을 택했는데 남편이 아들에게 숲 속에서 지내는 낭만을 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고 나도 도심과 다르게 밤하늘의 쏟아질 듯 촘촘히 빛나는 별빛을 볼 수 있고 풀벌레 소리 들리는 야외가 마음에 들었다.
아들이 고사리손으로 제 아빠를 도와 텐트 치는 걸 보는 것도 대견하고 즐거웠다.
아무튼, 우리 가족은 아들이 서너 살 무렵부터 차에 온갖 캠핑 장비를 싣고 여행을 떠났다. 엄마인 나는 휴가 동안 먹을 밑반찬이며 간식까지 완벽하게 준비해 바닷가에서 회를 사 먹는 일 외에는 집에서와 똑같이 먹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요즘은 어디를 가도 그 근처의 특산품이 무언지 맛집은 어디 있는지 찾아다니며 식도락을 즐기지만, 그땐 왜 그리 힘들게 양념 하나까지 준비했는지 아마 그게 현명한 아내와 엄마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우습기만 하다. 자청해서 고생한 거지만 그런 게 또 즐거웠고 준비하는 동안 행복했었다.
승용차에 텐트며 오색파라솔 달린 테이블, 온갖 캠핑 장비를 갖추고 떠나는 날은 가족 모두 들떠서 가슴이 설레었다. 설악산으로 가는 길로 미시령과 한계령이 있는데 미시령 쪽도 휘몰아치는 물살이 시원한, 계곡을 끼고 달릴 수 있는 멋진 길이지만 주로 한계령을 지나서 갔다. 한계령은 필자가 정말 좋아하는 곳이다. 꼭대기에 있는 한계령 휴게소는 그림처럼 아담하고 경치가 좋아 마음에 들었다. 가끔은 온통 안개에 휩싸여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일 때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 맑고 청량한 공기와 둘러 보이는 경치가 너무나 멋졌다.
짙은 갈색의 휴게소 건물도 운치 있고 안으로 들어가 테라스의 나무로 된 테이블과 의자에 앉아 강원도 명물 음식을 맛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으며 특히 테라스 끝쪽에서 사진을 찍으면 구름 위에 떠 있는 듯 정말 멋진 풍경의 사진이 되어서 매번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곤 했다. 그래서 설악이나 동해안에 갈 때는 항상 한계령을 거쳤는데 요즘은 빠른 길이 생겨서 한계령 고개를 넘는 차량이 많지 않다는 소식이 들려 어쩐지 애잔하고 마음이 쓸쓸하다. 한계령에 오르기 전 초입에 시원한 물줄기가 모여 옥빛의 깨끗한 연못을 이룬 옥녀탕이라는 계곡이 있는데 그곳에 나는 재미있는 추억 하나가 있다.
어느 해인가 설악산으로 휴가를 갔을 때였다. 시끌벅적한 동해안 대진항의 분위기도 만끽하고 맛있는 회와 싱싱한 해산물 구경도 실컷 하는 등 좋은 시간을 가졌으며 다음날은 그곳에서 좀 떨어진 동명항이라는 작은 포구에도 들러서 또 다른 맛과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설악산에서는 너무나 피곤했다. 모든 사람이 다 여기로 모인 듯 인파에 뒤덮여 온통 계곡이나 길이 복잡하고 소란스러웠다.
여행 마지막 날에 나는 몸과 마음이 지쳐서 몹시 피로함을 느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예외 없이 한계령을 지나 구불구불 산길을 내려오다가 옥녀탕 앞에 이르렀다. 여기서 잠깐 쉬어가자고 내려서 보니 정말 맑고 깨끗한 계곡 물이 있었다.
필자는 물을 너무 좋아한다. 수영을 그리 잘하는 것도 아니면서 물만 보면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설악산의 계곡에서 실망했던 마음이 옥녀탕을 보니 다 풀어지고 티셔츠와 핫팬츠 차림이었던 나는 옥녀탕 물속으로 뛰어들고 말았다. 정말 시원하고 기분이 좋아서 두 팔로 물을 휘휘 저으며 수영을 했다. 남편이 그만 나오라고 손을 흔들었는데 그때 지나가던 순찰차에서 마이크로 “옥녀탕에 계신 분 빨리 나오세요, 들어가면 안 됩니다.” 라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에서 쉬고 있던 관광객들도 웃으며 빨리 나오라고 손짓을 해 댔고 누군가는 휘파람까지 불었다. 깜짝 놀라서 재빨리 나왔는데 어찌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그곳에 들어가면 안 되는 줄 몰랐고 주변 어디에도 들어가지 말라는 안내판이 없었다고 변명처럼 중얼거렸다. 벌금이라도 내야 하나 걱정했지만, 경찰관을 태운 순찰차는 자리를 떴다.
그저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있는 설악산 계곡이니 들어가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순찰차의 경고를 듣고는 이름 있는 계곡에 무단 침입한 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있던 많은 관광객에게도 무척 부끄럽고 미안했던 기억이 난다. 자연을 아끼고 보호해야 하는데 깨끗한 물이라고 텀벙 뛰어들다니 너무 철없는 행동을 했다. 그후에도 휴가 갈 때 올 때 그곳에 들러 보았다. 들어가지 말라는 팻말이 없어도 물에 들어간 사람은 없으니 많은 사람은 나처럼 지각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반성도 되고 너무 창피하지만, 그래도 나는 설악산 옥녀탕에서 수영해 본 사람이라는 생각에 즐거운 미소가 떠오른다.
필자 가족이 놀러 간 적이 딱 한 번 있다. 5남2녀로 나는 맏딸이다. 엄청난 식구가 놀러 갈 수 있는 차가 있던 것도 아니고, 버스를 타야만 했다. 그 버스도 하루 다섯 차례 다녔다.
필자의 고향은 괴산이다. 그곳에는 쌍곡, 화양동이 있는 휴가지다. 필자 집은 그 곳에서 십 여리 떨어진 곳에 살았다. 사람이 붐비는 휴가철이 되면, 버스에 사람이 꽉 차서 지나가는 것을 보고도 도시사람들이 놀러 가나보다. 그날이 그날처럼 무심하게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해가 서쪽에서 떴다. 필자 가족한테 괴산수력발전소가 있는 개울에 놀러 가자고 아버지가 말했다. 그 곳은 초등학교 때 걸어서 소풍을 갔던 곳이다. 회양목을 서너 그루 캐 가지고 손에, 손에 들고 오던 곳 아닌가. 학교 화단에 심기 위해서다. 필자 형제는 솔직히 아버지가 정신이 어떻게 되었나. 멈칫했다.
꿈은 아니겠지? 자주 놀러 가 본 적이 없어서 우리 가족은 서먹서먹한 기분으로 서로 얼굴을 멀건이 바라보며 별 말 없이 우리 아홉 식구는 버스를 탔다. 내가 고등학생 때 이었으니 막내 동생이 두 살 인가. 상상을 해보라. 두세 살 터울로 일곱 명이 올망졸망 했겠는가. 업고 걸리고 여전 피난행렬 같았다.
비닐봉지도 가방도 없던 시절이다. 보자기에 싸서 간단한 취사도구를 한 가지씩 들고 가는데 여전 거지패가 이동하는 것 같았다. 천신만고 끝에 강가에 다다르자 우리 식구는 강 반대편을 바라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 했다.
김총대! 김총대! 아버지는 엽연초조합에 다녔고 그 담배농사 짓는 집 근처로 놀러갔었다. 총대라는 것은 그 동네에서 담배를 농사짓는 사람 중의 대표되는 사람을 호칭하는 것이다. 아무튼 온 식구가 소리를 질러대니 산에 메아리가 울렸다. 그는 우리를 바라보며 작은 배를 저어 마중 나왔다. 각자 자기 집 손님은 그 쥔장이 나와 실어 날랐다.
식구가 다 배에 오르니 배가 기우뚱 거렸다. 우여곡절 후에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개울에 들어가 올갱이를 잡았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곳에는 바다에서나 볼 수 있는 여전 홍합보다 좀 더 큰 말조개라는 것이 지천이다. 형제들은 서로 시새워가며 조개를 주웠다. 누가 더 큰 것을 잡는가.
그 때 아버지는 돌을 쌓아 화덕을 만들었다. 그 위에 냄비를 올려놓고 불을 지폈다. 집에서 준비해 간 감자를 삐져 넣고 고추와 호박을 넣고 고추장을 풀어 아버지는 고추장감자찌게를 준비했다. 아버지는 소고기 대신 개울에서 잡은 조개를 듬뿍 넣었다. 한소끔 끓인 후 찌개 냄비를 불 옆에 놓았다.
밥을 짓기 위해 쌀을 안쳤다. 뜸까지 다 들인 후 다시 잔불에 감자찌개를 푹 끓였다. 그 구수하고 매콤한 냄새는 지금도 코끝을 맴도는 듯하다. 야외에서는 양념이 많지 않으니 오래 끓이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아버지 월급날에 소고기를 한칼 사오면 무조건 감자찌게를 했다. 그것은 소고기 양보다 좀 더 늘려 먹는 법이다. 고기 첨은 어쩌다가 더러 눈에 띄었다. 우리는 서로 눈치를 보면서 한 숟갈이라도 더 먹으려 했다. 칠 형제이니 밥상에 반찬이 남아나질 않았다. 어쩌다가 용케 걸려 내 입에 들어간 소고기 한 첨은 입에 살살 녹았다. 반찬은 열무겉절이 달랑 하나였으며 냉장고가 없어 끼니때마다 밭에서 뜯어 버무리는 즉석반찬이었다. 거기에 텃밭에서 딴 상추와 쑥갓. 오이와 가지 그게 전부였다. 그 때는 그런 반찬이 싫었는데 나이드니 요즘 내가 여름철에 찾는 반찬은 늙은 오이에 가지, 호박잎만 찾는다. 옛날에 먹던 맛을 용하게 기억하는 내가 참 신기하다.
보리쌀이 넉넉하게 들어간 밥에 감자찌게를 넣고 쓱쓱 섞어 비벼 먹었다. 냄비 바닥을 너무 긁어 바닥이 뚫릴 지경이었다. 두레 반상에 둥글게 옹기종기 앉아 먹었다. 고추장 감자찌개는 여름에 먹는 것이 제격이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아버지는 우리 가족을 데리고 여행은 자주 갈 수 없었지만 집에서 고추장감자찌게 만은 자주 끓여 주었다.
휴가지에서 아버지는 우리에게 고추장감자찌게를 끓여 주었고, 개울가에서 우리 가족은 아주 맛나게 먹었다.
40여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지만 아버지가 감자를 씻고, 다듬어 감자찌개를 끓이면 엄마가 한 것보다 더 월등했다. 우리 가족은 그 후 다시 전체가 모이는 가족여행을 가지 못했다. 얼마 후 아버지는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때 보아 두었던 대로 감자찌개를 끓여 보지만 그 시절 아버지의 손맛에는 어림도 없다. 내 손가락은 아버지를 닮아 짤막하게 생겼는데 말이다.
그래서 엄마는 지금도 말한다. 우리 가족이 그 때 괴산발전소로 딱 한 번 놀러 갔었지? 사진도 못 찍었지. 사진기가 흔치 않는 시절이라서 우리 머릿속에만 또렷하게 남아 있다.
휴가철이 돌아오면, 아버지의 고추장감자찌게, 그 손맛이 그립다.
몇 년전 봄에, 언니와 함께 경주의 보문단지로 ‘왕벚꽃’구경을 갔다. 왕벚꽃 구경을 하기에 가장 좋은 날로 골라 관광여행사에 예약을 했다.
필자는 버스만 타면 차멀미를 심하게 해서 관광버스로 갈 수 있는 것도 늘 기차로 간다. 이번에도 KTX를 타고 신경주역에 내리니 우리에게 문화 유적을 설명해 줄 가이드가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12인승 봉고차에 몸을 싣고 달리는 차 안에서 어린아이 처럼 마냥 신바람이 났다. 가이드는 운전하고 가는 내내 보문단지의 왕벚꽃을 은근히 걱정했다. 바로 전날에도 비가왔기 때문에 벚꽃이 다 떨어져 버렸으면 어쩌나 해서다. 잦은 비바람으로 인해 꽃이 피는대로 모두 떨어져 버렸다. 가이드가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 바람에 꽃이 떨어져서 꽃구경이 힘들겠어요 매우 아쉽게 됐네요”하고 말했더니, 그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어느 40대의 여자 관광객이 큰소리로 “괜찮아요, 꽃구경은 집에 가서, 동네에서 하고, 여기서는 경주 구경만 할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저런 멋진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나이 60살이 넘어도 아직까지 저런 아름다운 마음, 저런 밝은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았는데, 그녀는 스스럼없이 나온다.
관광 목적이 ‘왕벚꽃 구경’인데, 꽃구경은 집에가서, 동네에서 한단다. 그 말이 재미있고, 재치있다. 참으로 긍정적이고 밝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녀가 여름날의 이슬을 머금은 청포도처럼 싱그럽게 보인다. 나도 왕벚꽃 구경은 못해도 괜찮다. 그녀를 만난 것만으로도 벌써 관광의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이번 경주여행은 큰 수확을 거둔 기분이다.
다른 사람들은 꽃을 보려고 왔는데, 꽃을 볼 수 없다고 투덜대고 불평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런 사람들은 평소에 부정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들도 보통 이런 사람이다. 그리고 나도 역시 마찬가지다. 앞으로는 저 여인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아! 나는 오늘 젊은이에게 한 수 배웠다.
은퇴한 시니어들이 집을 줄인 것을 후회할 때는 명절이다. 아이들이 많은 딸네에게 안방을 내어주고, 아들 식구는 건너방, 그리고 부부는 서재에서 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며칠 간의 명절을 위해 예전의 집을 그대로 유지할 수도 없다. 그래도 장난감들이 가득한 손자들만의 방을 꾸며 자식들의 방문을 살짝 유혹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오늘날 3대가 같이 자고 먹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그래서 여름휴가철은 시니어에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렇지만 자식들의 휴가 일정에 맞춰 시기를 선택하고 그들이 선정한 장소로 출발하여 그네들이 운전하는 차에 얹혀 돌아오는 휴가는 뭔지 초대받은 손님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이번 여름만큼은 스스로가 휴가계획을 짜서 애들을 소집하는 호기를 한 번 부려보고 싶어진다.
사실 휴가란 자식들에게 또 다른 부담으로 다가온다. 바쁜 직장, 가정 생활 속에서 휴가 여행을 계획하고 진행해야 하는데, 그 와중에 모시지 못 하는 있는 부모님들도 눈에 밟힌다. 이럴 때 한 번쯤은 시니어들이 주도하는 휴가여행을 제시하고 진행한다면, 그네들도 그리 싫지만은 않으리라는 상상도 해 본다. 물론 숙박 경비정도는 지불할 각오는 돼 있어야 하지만.
먼저 자식들의 휴가 일정을 대강 파악해 부담이 가지 않도록 그네들의 일정 중 1박 2일 정도만 할애하도록 유도한다. 사실 2박 3일 이상은 비용과, 만족도라는 측면에서 위험부담이 크다! 말을 꺼내면서 ‘숙박은 내가 예약을 하고 경비도 지불한다’고 하면 대개‘ 마침 저희도 휴가 중 부모님들을 모실 계획이었는데 마침 잘 됐네요’라는 효자성 멘트가 날아온다. 만약 애들 사정으로 못 가게 되더라도 필자는 일단 어른으로서의 폼은 다 잡았다. 이 무산된 필자의 성의는 그네들에게 계속 커다란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므로 결코 밑질 게 없다.
일정이 확정되면, 어디로 가 어디에서 묵을까를 직접 정해야 한다.
먼저 장소다. 그런데 손자들은 무조건 바닷가다. 그러면 바다는 다른 일정에 그네들끼리 가라고 해야 한다. 필자와 떠나는 1박 2일만큼은 계곡이나 휴양림지역이라는 것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 어린 아들, 딸을 데리고 갔던 젊은 시절의 바닷가를 절대 잊으면 안 된다. 광대한 바다에서의 안전사고 위험, 세찬 바닷바람, 젊은이들의 소음, 온몸과 음식에 끊임없이 파고드는 그 모래들…. 그래서 애들을 계속 씻기고 수영복 빨래한 후, 햇볕에 익은 살갗에 연고를 발라주던 밤을 잊을 수가 없다. 이제 이 나이에 파라솔에서 식구들 짐 지키며 햇볕, 모래와 싸우고 싶지 않다.
다음으로는 묵을 곳이다. 그러면 호텔과 콘도가 먼저 떠오른다. 모두 각종 부대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또 경관이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휴가철의 비싼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예약의 번거로움을 생각하면 망설여진다. 무엇보다 끊임없는 에너지로 계속 들락날락대는 손자들에게 자연을 만끽하게 하고 싶은 생각이라면 제외하고 싶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펜션으로 넘어간다. 최근의 숙박 형태에 대한 한국관광학회 연구보고서(2013년)도 전체 숙박시설 중 펜션, 서비스드레지던스 등의 ‘생활숙박시설’에 대한 선호도가 상승하고 있음을 얘기하고 있다.
펜션의 장점은 먼저 취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콘도에서도 취사가 가능하지만, 넓은 야외 바비큐장이나 독립된 베란다에서 고기를 직접 굽기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복층펜션이나 독립된 방갈로식 펜션의 경우, 다세대가 함께 숙박하면서 한 집 식구라는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콘도의 경우는 어린 아이들이 마음 놓고 자주 바깥출입을 하지 못하는 데 반해 펜션은 문만 열면 마당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펜션들은 마을 속에 함께 자리잡고 있어 해당 지역의 문화를 만끽할 수도 있다. 식사 후 동네 어귀 구멍가게의 평상에 앉아 막걸리 한 잔하며 동네이야기를 푸근하게 들을 수 있어 좋다는 얘기다. 또, 펜션을 운영하는 이들은 거의 다 시니어들이다. 그래서 같은 세대의 공감대와 하룻밤을 묵는 정을 바탕으로 그 지역의 유기농 특산물이나 좋은 식당들에 대한 생생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새로 지은 펜션의 경우는 베란다에 야외욕탕들을 마련한 경우도 많아 하늘의 별을 보며 온몸을 담글 수 있는 한 여름밤의 낭만도 맛볼 수 있다. 다만 부대시설이 미흡하고 소음에 취약하지만, 아직도 사생활 보호(?)를 중시하는 시니어가 아니라면 펜션을 이용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펜션들 중, 제대로 된 펜션을 고르는 방법들은 무엇일까? 시니어의 경우 원거리는 배제하고 2-3시간 거리의 지역을 선택한 후 ‘떠나요닷컴’이나 ‘ 우리펜션’ 등의 펜션관련 사이트에서 실시간 빈방 검색을 한다. 다음으로 풀빌라펜션, 수영장펜션, 월풀, 독채형 등의 유형을 정해 예약을 진행하면 된다.
선정 시엔 먼저 ‘펜션정보’에서 건립연도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일단 최근에 생긴 펜션을 우선으로 선택해야 한다. 전문적인 관리를 하지 못하는 펜션들의 특성상, 호텔이나 콘도에 비해 시간이 갈수록 급하게 시설이 낙후되기 때문이다. 또한 인터넷 사이트에 보이는 펜션들의 사진들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야간 조망사진은 너무 낭만적이라 혹하기 쉬운데, 그 조명발에 절대 넘어가면 안 된다. 그리고 주인들의 셀프댓글들이 많으니 칭찬 일색의 사용후기들도 유심히 봐야 한다. 특히 ‘주인이 직접 재배하신 상추에 삼겹살을 주인 식구들과 너무 맛있게 먹었다’는 글을 보고 그런 상황을 기대하면 마음에 상처만 얻는다. 숙박비는 보통 10만~20만 원 대이지만 대부분 휴가철에는 성수기요금을 따로 책정하고 있어 확인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특급호텔보다도 훨씬 비싼 최고급 펜션들도 많아 선택의 폭이 더욱 넓어졌다.
마지막으로 ‘구매 후 의심’을 버려야 한다. 직접 선택한 것들이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지만 ‘우리 아버님이 펜션 잡아 주셔서 다녀온 휴가’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 함께 먹고 자며, 며느리 민낯 보는 게 어찌 예사로운 일인가! 이런 자신를 대견스럽게 여기며 이런 선택에 대해 절대 후회하지 말자! 사실 겁이 살짝 나기는 나지만….
여름휴가철이 돌아오면 대개는 낭만적인 일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필자는 그런 것과 거리가 먼 사건 하나가 툭 하고 마음에서 일어난다. 지금부터 43년 전 일이나 필자 ‘기억의 창고’에서는 조금도 스러지지 않은 채 생생하게 남아 있다.
대학 3학년 때 일이다. 아르바이트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느라 학교생활은 늘 따분했다. 대학 캠퍼스는 낭만과는 거리가 멀고, 사회는 우리에게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빈번하게 이어지는 데모와 휴교는 더욱 상실감을 느끼게 했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던 것으로 기억난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마음을 모아 여름방학에 경포대로 가기로 했다. 말이 나온 후부터 이미 마음은 바다로 가 있었다. 당시 필자가 탄 기차는 정말 느렸다. 그래도 동해 바다를 보고 싶은 마음에 조금도 지루하지는 않았다.
바다 앞에 서는 순간 가슴이 확 펴지는 듯한 해방감이 들었다.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마음이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대천에는 두어 번 갔지만 바닷물 색깔부터 달랐다.
한참을 눈으로 감상하다가 환상적 물색깔이 보내는 유혹을 참지 못하고 물로 들어갔다. 세 명의 친구가 모두 수영할 줄 몰랐기에 유끼(물 위에 뜨는 돗자리 같은 것)을 띄우고 그 위에 올라앉아 한껏 기분 좋게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유끼가 뒤집어졌다. 누군가 장난을 친 것이다. 셋은 각자 영문도 모른 채 물 밖으로 나오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쳤다.
그러나 아무리 발을 흔들어 봐도 발에 걸리는 것은 까마득한 물뿐이었다. 계속 허우적대며 실오기라도 잡으려는 노력은 허사였다. 이제는 기운도 빠지고 이러다 죽는구나 하는 순간 손에 잡히는 게 있었다. 유끼였다. 버둥대며 간신히 그 위에 올라앉은 순간 다른 친구 한 명이 이미 그 위에 누워 눈도 뜨지 못했다. 그리고 곧 이어 다른 친구도 올라왔다. 지쳐서 말할 힘도 없었다. 알고 보니 장난을 쳤던 사람이 필자 일행이 모두 물속에서 나오지 못하는 걸 보고 겁이 났던 모양이다. 유끼를 필자 일행이 허둥대는 곳으로 밀어놓고 모두 올라온 후 백사장 가까이 끌어다 놓고는 어디론가 도망갔다.
같이 갔던 일행 중 다른 두 명은 설악산으로 가려던 계획이어서 바다에는 들어가지 않고 백사장에서 바다를 보며 얘기하는 것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친구들도 처음에는 우리가 장난하는 줄만 알았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하다 여겨 바다 가까이로 왔는데 그제서야 사태를 알게 됐다. 그날 셋은 병이 나서 밤새 고생하고 다음 날 집으로 돌아왔다. 피서.. 바다.. 가슴 부풀게 하는 이 단어가 한순간에 지옥 같은 기억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장난질에 죽음을 생각하는 데까지 갔었다. 얼굴도 제대로 본 적 없고, 항의 한 번 하지 못한 채 고스란히 마음에 쌓인 두려운 기억만 남았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 연못에 있던 개구리가 죽는다는 말이 실감나는 사건이었다.
강원 평창군 대화면 백석산 중턱에 ‘화이트 하우스 온 더 힐(White house on the hill’이란 곳이 있다. 인생의 2막을 코앞에 두고 인천과 서울에 살고 있는 필자를 비롯한 일곱 명의 초등학교 동창들이 특별한 계기에 합심해 언덕 위에 화이트칼라로 아기자기하게 지어놓은 팬션이다. 쉬고 싶을 때는 누구든, 언제든 올 수 있는 곳이다.
어느 해인가는 여름 휴가 때 특별히 부부동반으로 이곳에서 함께 보냈다.
이곳은 말 그대로 별유천지였다. 백석산 줄기에서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물소리는 집 앞 다리 밑에서 폭포를 이루며 장관을 연출한다. 산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 때문에 그냥 마당에 서 있기만 해도 가슴속이 탁 트이고 후련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사방을 둘러봐도 푸르름이 가득해 눈마저 시원하다.
어린 시절, 대개의 농촌 소년이 그랬듯 학교에 다녀오면 바로 뒷산에 올라 소꼴이나 나무 한 등짐씩 지고 내려오곤했다. 그리고 뒷산을 내려오던 중 어스름이 내려온 동네 집집마다 굴뚝에서 저녁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누룽지 익는 냄새가 스멀스멀 코끝을 자극해 오면 내려오는 걸음을 총총 서두르곤 했다.
그런데 어린 시절의 그 친구들이 모였으니 오죽했을까? 각자 일곱 집에서 만들어온 반찬을 펼쳐 놓으니 그야말로 진수성찬이다. 노각으로 오이상치를 만들고 도토리묵을 사다가 김치 송송 썰어넣고 시원하게 묵창국을 만들었다. 파김치와 오이 무침, 그리고 조개젓갈…. 우리가 어린 시절에 맛보았던 반찬들이 한 상 가득 차려지고 적당하게 삶아진 수육이 올라오면 주고받는 소주 한 잔에 우정(友情)이 새록새록 다져졌다.
저녁을 먹고 모두들 마당가에 나와 앉으니 도시에서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유성(流星)이 흐르고 은하수 건너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아 자리, 그리고 전갈자리를 비롯한 별자리들이 눈과 마음을 호강시킨다. 이름 모를 수많은 별을 헤아리고 있자면 밤벌레 소리가 고요한 계곡에 울려퍼지면서 환상의 오케스트라가 연주되고 우리 일행은 관객이 돼 황홀한 휴가지에서의 멋진 첫날 밤을 보냈다.
다음 날, 필자는 동료들과 함께 평창강으로 레프팅하기 위해 출발했다. 간단한 안전교육과 준비체조를 한 다음 평창강의 푸른 물결을 가르며 드디어 보트는 하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천천히 미끄러지듯 내려가다가 급한 물굽이를 만나자 보트가 빙그르르 소용돌이 친다. 모두들 비명인지 환호성인지 모를 소리를 질러댄다. 조금 지나 바위 아래로 물살이 뚝 떨어질 때, 기우뚱! 물보라가 머리 위에서 한 바퀴 휘돌아나간다. 격한 비명을 질러대면서도 상기된 얼굴로 합심해 열심히 노를 젓다가 인접한 보트를 만나면 서로에게 물을 뿌려대면서 흥미를 유발하니 스릴도 있고 재미도 있었다.
레프팅이 끝났을 때에는 아쉬움이 남아 다음엔 좀 더 긴 코스로 가자고 모두들 한마디씩 보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대화면에 들러 허기진 배를 시원한 막국수 한 그릇과 메밀꽃동동주 한사발로 채우고 나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지금도 눈감으면 청정하기 그지없었던 ‘화이트 하우스 온 더 힐’이 스쳐지나간다.
이제는 빛바랜 수첩에서나 꺼내어 볼 추억이 되어버렸지만 머지않아 금년 여름에는 그때의 약속처럼 레프팅 코스가 비교적 길고 스릴 있는 동강의 어디쯤으로 떠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