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 2, 3일은 연휴였다. 9월 말까지 끝내야 할 프로젝트들이 있었다. 다 끝내지는 못했지만 쉬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여름휴가도 못 가고 매진하다 보니 에너지가 고갈되는 느낌이었다.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진 머릿속도 풀어야 했다. 그래서 9월 중순 추석 전에 휴가 계획을 잡았다. 탁 트인 순천만을 보며 가슴을 펴고 싶었다. 시간이 되면 담양 대나무 숲도 보러 가고 싶었다. 이렇게 아무 준비 없이 여행을 떠난 것은 처음이었다. 젊었을 때는 사전조사도 하고 숙소도 미리 예약하는 등 유난을 떨었는데 이제는 다 피곤하기만 했다.
순천으로 떠나는 날, 연휴가 중국 연휴와 겹쳐 관광객들로 붐비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순천시까지는 무난하게 도착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얼핏 본 전통 초가 민박집에서 하룻밤 묵으려고 순천시에서 순천만 쪽으로 출발했는데 도착해서 전화하니 엉뚱하게도 반대 방향이라는 것이었다. 무려 22km나 더 가야 했다. 순천만 쪽에는 민박, 펜션 등이 이미 다 차버려서 난감한 상황이었다.
초가집 연락처는 집 전화밖에 없었다. 할머니가 전화를 받았는데 귀가 안 들리는지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순 전라도 사투리라서 알아듣기도 어려웠다. 낙안읍성으로 오라는데 낙안읍성은 처음 듣는 지명이었다. 게다가 주차장으로 오라며 주차장을 ‘주치장’이라고 발음했다. 상황을 보니 할머니는 ‘펜션’, ‘내비(게이션)’이라는 말은 아예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상호도 없고 세 번째 집이라는데 정말 막막했다. 일단 낙안읍성을 찾아갔다. 정문 옆에 넓은 주차장이 보이길래 도착하자마자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주차장에서 한 시간이나 비 맞고 기다리다가 방금 집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으로 초가집 사진을 보여줬더니 그곳에는 초가집이 수십 채나 된다고 했다. 할머니에게 겨우 전해들은 ‘박물관’, ‘교회’ 등을 물어봐도 모른다고 했다.
날은 어두워지고 비까지 내리는 데 암담했다.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 파출소 불빛이 보였다. 다시 전화를 걸어 이번에는 경찰관과 직접 통화하게 했다. 그제야 경찰관이 직접 데려다 주겠다며 차 시동을 걸었다. 경찰차는 낙안읍성을 향해 갔다. 교회를 지나 작은 다리를 건너고 논길을 지나니 낙안읍성 남문(쌍정루)이 보였다. 그리고 옆에 ‘남문주차장’이라는 작은 주차장이 있었다. 주차장이라기보다는 성벽 밑 공터였다.
그렇게 해서 겨우 할머니를 만났다. 얼굴이 검게 타고 주름이 가득한 80대 중반의 전형적인 농촌 할머니였다. 할머니를 따라 낙안읍성 안으로 들어가니 여러 채의 초가집이 밀집되어 있었다. 할머니 집은 과연 남문에서 세 번째 초가집이었다. 민박집이 성 안에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할머니가 싸리나무로 만든 대문을 열 때 시설이 너무 열악하지 않을까 순간 걱정이 되었다. 전형적인 시골집 구조로, 마당이 있는 ‘ㄴ'자 집이었다. 방문을 여는데 도배는 새로 했지만 창문 하나 없는 작은 방이었다. 화장실도 따로 떨어져 있었다. 할머니는 내가 다른 곳으로 갈까봐 몸이 달아 있었다. 주차장에서 한 시간이나 나를 기다리는 동안 전화를 못 받아 다른 손님을 놓쳤다며 투덜거렸다. 그러나 방이 4개나 되는데 손님이라고는 나밖에 없었다. 숙박료는 5만원이라고 했다. 아침에 돈을 줘도 되지만 미리 줬으면 하는 눈치였다. 흔쾌히 5만원을 줬더니 요즘 가짜 돈이 많다며 의심을 했다. 눈도 어둡고 할머니라 피해 사례가 있었던 모양이다. 칼라 복사기로 정교하게 복사한 위조지폐라면 속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설도 열악한데 5만원이나 받는 게 비싼 느낌이었지만 그냥 짐을 풀기로 했다. 그리고 서둘러 근처 음식점으로 나가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비가 와서 날씨가 좀 쌀쌀하다고 했더니 보일러를 틀어줬다. 아침에 일어나니 할머니의 표정이 훨씬 편안해 보였다. 아침 간식을 좀 나눠줬더니 고마워했다. 전날 저녁의 경계심은 다 풀어지고 어머니 같은 따뜻한 표정이 보였다. 잘 자고 간다니까 마당 감나무에서 감을 따더니 가면서 먹으라며 건넸다. 바로 전라도 인심이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주변을 돌아보니 여러 채의 초가집들이 민박집으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나름대로 예쁘게 꾸며 놓고 있었다. 마당에 잔디가 깔린 집도 있고 방안에 화장실욕실이 있다는 민박집들도 있었다. 일률적으로 숙박료는 5만원인데 가장 열악한 집을 골랐던 것이다. 할머니에게 도움을 줬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왜구의 노략질에 방어하기 위해 만든 읍성으로 읍성 내에 주민이 직접 살고 있다는 점이 다른 읍성과 다르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잠정 목록에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여러 가지 볼거리도 많은 편이다. 바로 옆 근처에 70년대 유명 잡지였던 ‘뿌리깊은나무’ 박물관이 있다. 잡지와 다른 유물들도 깔끔하게 전시되어 있다.
이번 추석 연휴는 바로 뒤에 주말이 있고, 그 전 주말과 연휴 사이에 낀 이틀만 휴가를 내면 9일을 쉴 수 있는 황금연휴다. 쉬는 날이 많으면 해외여행을 떠나는 등 장기 일정을 잡기도 하지만, 여름휴가를 길게 다녀왔다면 어쩐지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마냥 집에만 앉아 쉰다면 손주들은 지루해 몸이 근질근질할 테니, 그럴 땐 아이들을 위해 잠시 나들이 삼아 영화를 보러 가거나 전시장 등을 찾아가 보는 것 어떨까? 글 이지혜 jyelee@etoday.co.kr
판타스틱 뮤직 어드벤처
감독과 제작진이 참여한 애니메이션으로 추석 당일 개봉한다. 뮤지션이 되고 싶은 주인공이 아빠의 반대를 무릅쓰고 꿈을 위해 상경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음악을 주제로 한 만큼 신나고 활기 넘치는 영화 삽입곡들이 듣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개봉 9월 14일
감독 애시 브래넌
목소리 출연 J.K. 시몬스, 루크 윌슨,
에디 이자드 등
창덕궁 속 달빛 세계의 문이 열렸다!
우연히 창덕궁 속 환상의 세계인 ‘달빛궁궐’로 들어가게 된 소녀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담았다. 개봉에 앞서 8월 29일 국내 최초로 창덕궁에서 야외 시사회를 가져 화제를 모았다.
개봉 9월 7일
감독 김현주
목소리 출연 김서영, 이하늬, 권율,
김슬기, 신용우 등
동물들 섬에 갇힌 인간의 생존기
시리즈로 잘 알려진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엔웨이브 픽처스의 신작이다. 동물만이 살고 있는 무인도에 갇히게 된 로빈슨 크루소의 생존기를 그렸다. 를 모티브로 귀엽고 개성 넘치는 동물 캐릭터가 등장해 재미를 더한다.
개봉 9월 8일
감독 벤 스타센, 빈센트 케스텔루트
목소리 출연 유리 로웬탈,
데이비드 호워드, 콜린 메츠거 등
위기에 빠진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장난감들이 깨어나며 벌어지는 모험 이야기다. 이미 해외에서는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뉴욕 국제 어린이 영화 축제 대상을 받은 기대작이다. 국내에서는 컬투(김태균·정찬우)가 더빙을 맡았다.
개봉 9월 8일
감독 후앙 호세 캄파넬라
목소리 출연 니콜라스 홀트,
아리아나 그란데, 케이티 홈즈 등
미술관 속 모래사장에서 발견하는 관찰 놀이
‘관찰놀이터(Seek&Find)’
기술의 발달로 직접적인 소통과 접촉에 소홀해진 시대에 ‘관찰’이라는 화두를 던지며 새로운 관계 맺기의 방식을 모색하기 위한 전시다. 모래사장을 콘셉트로 꾸민 전시장에서 삽으로 모래를 파내어 숨어 있는 작품 이미지를 발견하는 체험 공간이 마련돼 있다. 아이들과 함께 들을 수 있는 전시 연계 교육 프로그램 ‘관찰과 발견’도 함께 운영한다.
일정 9월 18일까지 장소 블루메 미술관
‘파리도서전’에 간 우리 그림책 130권을 만나다
‘7가지 마음의 모양’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파리 도서전에서 선보인 한국 대표 그림책 130권을 살펴볼 기회다. 기쁨과 즐거움, 노여움과 분노, 슬픔, 두려움, 사랑과 연민, 미움, 욕망 등 7가지 주제로 나뉜 그림책과 그림으로 표현한 마음의 모양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같은 주제의 프랑스 그림책 130권도 함께 전시해 의미를 더했다.
일정 10월 30일까지 장소 현대어린이책미술관
상상 속 자동차를 현실에서 체험하다
‘브릴리언트 키즈 모터쇼’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와 현대자동차가 함께 어린이들이 상상한 자동차를 실제 자동차보다 작은 크기의 모형으로 제작해 전시했다. 펭귄을 도와 얼음집을 지어주는 이글루 자동차, 조개를 연료로 하는 수중 자동차 등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상상 자동차 그림 공모전을 통해 7300여 점 중 선발한 15개의 작품이다. 전시된 자동차는 어린이들이 직접 타고 체험해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일정 2017년 4월 14일까지 장소 DDP 배움터 4층 디자인놀이터
창의력과 꿈을 키우는 국내 최대 어린이 실내 놀이터
‘텔레몬스터 대모험’
MBC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꾸며진 어린이 실내 놀이터로 1만3072㎡(약 4000평) 규모의 체험전시장이다. TV, 컴퓨터 게임 등에서 벗어나 신체 발달 및 지능 발달 놀이 등 아이들의 건강과 성장에 도움이 되는 놀이 테마존 30여 개가 설치돼 있다. 매일 2~3회 마술, 비눗방울, 풍선 공연이 열리고, 각 체험장에서는 미션을 수행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제공한다.
일정 9월 18일까지 장소 킨텍스 제2 전시장
부산에서 만나는 신비한 동물 여행
‘판타스틱 애니멀’
쉽게 만나 볼 수 없었던 희귀 동물들의 생생한 표본 216점을 전시하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체험과 놀이를 통해 동물을 이해하는 ‘사이언스 존’, 흔히 만나는 동물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동물원 존’, 생명의 신비를 느낄 수 있는 ‘사파리 존’ 등 세 가지 테마관으로 구성된다. 척추동물 해부학모형 체험, 동물 페이퍼토이 제작 등을 즐길 수 있다.
일정 9월 23일까지 장소 벡스코 제1전시장
여름 휴가철이 끝나고 날씨는 가을을 향해 가고 있지만, 휴가철 후유증으로 아직 ‘여름 앓이’를 하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그중 대표적인 질환이 ‘족저근막염(足底筋膜炎)’이다. 특히 여름에 샌들과 같은 평평한 신발을 신고 휴가지를 누비고 다녔다면 이 병을 주의해야 한다. 샌들은 이 질환의 주범 중 하나로 꼽힌다. 한 번 걸리면 골치 아프다는 족저근막염에 대해 동탄시티병원의 정형외과 전문의 박정민 원장을 통해 알아봤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족저근막이란 종골(踵骨)이라 불리는 발꿈치뼈에서 시작해 발바닥 앞쪽으로 각각의 발가락을 향해 붙은 두껍고 강한 섬유띠를 말한다. 발의 아치 모양을 유지하고 충격을 흡수해 체중이 실린 상태에서도 발을 들어 올리는 데 도움을 줘 사람이 쉽게 걸을 수 있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족저근막염(足底筋膜炎)은 이 족저근막이 손상을 입어 염증이 생기며 통증이 발생하는 질환.
최근 시니어들 사이에서 이 질환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이 늘고있다. 등산이나 조깅 등을 즐기는 액티브 시니어들이 많아진탓이다. 실제로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족저근막염 환자는 17만9000명으로 2010년에 비해 약 1.4배 증가했다. 월별 진료 인원 현황을 봐도 매년 여름철에 환자가 늘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바닥이 얇은 신발과 야외활동이그 원인으로 꼽힌다.
잘못된 자세와 노화가 원인
족저근막염의 원인은 무척 다양하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노화’. 신체 조직의 탄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다리를 꼬거나 보행 습관이 잘못되었을 때도 이 질환에 걸릴 수 있다. 박정민 원장은 특히 여성, ‘꽃중년’들은 반드시 주의해야 할 질환이라고 경고한다.
“폐경기 여성의 경우 호르몬 때문에 족저근막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호르몬의 변화로 발의 지방층이 얇아져 체중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죠. 족저근막염은 여성들이 많이 걸리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주로 여성들이 하이힐을 신는 경우가 많고, 다리를 꼬는 습관 때문입니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당뇨병이나 무릎관절염을 꼽기도 한다. 오십견과 비슷하다. 당뇨병이 오래되면, 발바닥 근육을 둘러싸고 있는 막의 신축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무릎관절염 환자들이 족저근막염에 쉽게 걸릴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충격’이다. 무릎이 좋지 않다 보니 걸을 때 발바닥에 체중이 더 실리고, 족저근막이 받는 충격은 더 커진다. 근육 관련 질환 환자들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전문의들은 무리해서 걷거나 장시간 서 있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충격 막는 쿠션 있는 신발 신어야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신발은 족저근막염에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미친다. 박 원장은 족저근막염으로 고생하거나, 이를 예방하고 싶다면 디자인보다는 쿠션이 신발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발이 편안하지 않은 신발은 발에 무리를 줄 수 있습니다. 또한, 키를 높여 준다는 키높이 깔창도 좋지 않습니다. 족저근막염 예방에 좋은 신발은 ‘쿠션’이 있는 것입니다. 발에 체중을 덜 실리게 하려면, 충분한 쿠션이 있는 신발을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닥이 딱딱한 신발은 체중을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이와 함께 또 다른 예방방법은 체중 감량이다. 과체중일수록 발은 체중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 평상시 운동량이 적다면 무리하게 운동을 해선 안 된다. 발이 급작스럽게 충격을 받아 족저근막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운동을 원한다면 꾸준하게 서서히 운동량을 늘리는 것이 좋다.
아플 땐 쉬고 스트레칭해야
족저근막염의 치료방법으로 먼저 고려되는 것은 ‘휴식’이다. 발바닥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운동을 멈추는 일이다. 수술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박 원장은 설명한다.
“수술 치료는 권장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환자는 휴식을 충분히 취하면 호전되므로, 발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활동을 줄이는 것이 좋습니다.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경우 병원을 찾아야 합니다. 먼저 통증을 완화하는 소염진통제를 복용하고, 약해진 족저근막을 강화하는 체외충격파 치료와 물리치료를 병행합니다. 통증이 심하면 주사치료를 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시간이 해결해 주지만, 계속 발바닥이 찢어질 듯 아플 수 있다. 이때는 빨리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아야 한다. 이 질환은 오래될수록 치료가 어렵다.
족저근막염의 치료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스트레칭이다. 발바닥에 통증을 느낄 때 주기적으로 스트레칭을 한다면 통증이 완화될 수 있다고 박정민 원장은 이야기한다.
“추천할 만한 첫 번째 스트레칭은 일어서서 발을 뒤로 최대한 빼는 동작입니다. 발바닥 뒤쪽 근육을 팽팽하게 만들어서, 근육을 풀어주는 효과를 얻습니다. 특히 이 스트레칭은 다리 근육도 함께 풀어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많이 걸으면, 발바닥과 다리에 무리가 가게 됩니다. 다리가 붓고 발바닥이 아픈 사람들은 이 동작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스트레칭은 발바닥을 마사지해 근육을 풀어주는 방법입니다. 특히 발바닥이 심하게 아플 때는 이 방법이 꽤 효과적입니다.”
이번에 부산 노사발전위원회에서 강의 요청이 왔을 때 사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강사료와 교통비는 준다고 했지만 과연 멀리 부산까지 가야한다는데 부담이 생긴 건 사실이다. 더구나 한창 휴가철이다. 거절할 명분도 전혀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처럼 멀리 부산까지 가는데 여름휴가 차 며칠이나 또는 일박이라도 할 생각도 했었다. 부산에는 지금까지 5번 정도 갔다 왔는데 그동안 많이 변해서 볼만한 곳도 많고 도시 자체가 휴양지라서 관심이 있었다.
우선 누구랑 같이 내려가는 방법이 있는데 갈 사람이 마땅치 않았다. 남자들은 아직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 일을 빠질 수 없다. 놀고 있더라도 마침 휴가철이라 이미 휴가를 즐기고 있거나 계획을 짜고 있을 것이다. 또 남자들은 지나치게 과음을 해서 아침에 깨고 나면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몸도 무겁고, 속도 안 좋고, 머리는 아픈데 서울 올라갈 생각을 하면 까마득해진다. 여자의 경우는 남자랑 일박 여행을 할 만한 여자를 구하기는 어렵다. 구한다 해도 방을 따로 잡자니 경비가 2배이고, 같은 방을 쓰자니 여러 가지로 신경 쓰이는 일이다.
혼자 내려가서 부산의 지인들을 만나는 계획도 생각해 봤다. 그간 부산에 내려 간 것은 대부분 일 때문에 내려갔는데 그 때는 내가 갑이었다. 당연히 대접 받을 자격이 있었으므로 잘 먹고 거기서 끝난다.
그런데 지금 부산에 사는 지인들은 갑을 관계가 아니다. 부산 내려 왔다고 하면 반갑게 맞아 줄 사람들은 몇 명 있다. 저녁에 해변 횟집에서 바닷바람 맞아가며 술이라도 곁들이면 즐거운 한 때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서울 올라와서 내게 연락하면 나도 신세를 갚아야 한다. 돈 들어가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그 사람이 연락해 왔을 때 내가 시간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입장이 난처해진다. 내가 시간이 없어서 못 만난다고 하면 대단히 섭섭해 할 것이다. 더구나 내가 부산에 내려 갈 일보다는 그 사람들이 서울에 올라 올 일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혼자 부산 여행을 하는 방법도 있다. 요즘은 관광제도가 잘 갖춰져 있어 지도 한 장 놓고 목적지를 정하고 전철 타고 가면 된다. 그러나 이렇게 폭염 속에 고생하며 과연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어 포기했다.
숙박업소를 찾는 것도 휴가철이라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사시사철 외국 관광객들로 넘치는데 더구나 휴가철 아닌가. 숙박료도 만만치 않을 것이고 혼자 비싼 호텔에서 청승을 떨 생각을 하니 고개가 가로 저어졌다. 잠들면 그만인데 숙박료처럼 허무한 것이 없다. 회사 다닐 때 경비 처리 될 때와도 다른 것이다.
그래서 혼자 바람처럼 내려갔다가 혼자 올라오는 것으로 정리했다. 모처럼의 기회를 몸만 피곤하게 당일로 갔다 온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최선의 판단이었던 것 같다. 남들에게 전혀 부담 안 주고 나도 홀가분하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나마 소득이다. 계절적으로 이렇게 너무 덥지만 않았다면 다음에는 혼자 여행 계획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또 강의 요청이 없더라도 부산에 일부러 여행 계획을 잡아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얘기를 하다 보면 다음에는 먼저 나서서 꼭 같이 가자고 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갑자기 생긴 일이라 미리 염두에 두지 않아서 그렇지, 나도 일부러 관심을 갖고 사람을 찾아보면 같이 갈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경비 일체를 내가 댄다는 조건을 내걸 것이다.
언젠가부터 태극기를 아끼자는 캠페인으로 국경일엔 꼭 태극기를 달자는 운동이 있었다. 지난 현충일 뉴스엔 어느 고층 아파트에 한 집도 빠지지 않고 내 걸은 태극기를 보여 주었는데 보는 마음이 뿌듯했다.
수십 층 되는 아파트에 줄지어 펄럭이는 태극기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졌으며 한마음으로 국경일을 기리며 뜻을 모아 태극기를 단 그 아파트 주민들이 돋보였다. 요즘 아이들이 너무나 우리 역사를 등한시하여 3.1절을 삼 점 일절이라 읽었다는 뉴스도 있었던 터라 나라 사랑이나 애국심 고취에 어른들이 좀 더 앞장서서 우리 태극기 사랑까지 가르쳐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세계의 어느 나라든 다 고유의 국기가 있고 각각의 디자인과 색상이 다르다.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은 심플하게 빨간 동그라미 하나가 그려져 있고 별 달 모양을 그려 넣은 나라도 매우 많다. 국기는 각 나라마다 뜻하는 바가 있어 표현된 모양일 것이다. 우리나라 태극기는 참으로 독특하고 예쁘다. 세계 여러 나라 대부분 국기가 심플한 디자인인데 우리 태극기는 건곤감리 복잡하기도 하고 하나하나 가진 뜻도 심오하다. 디자인 때문만이 아니라 필자는 우리 태극기가 참 좋다. 항일 운동 때 독립투사들이 품속에 소중히 지녔다든지 선조들의 숭고한 희생과 불굴의 나라 사랑이 깃들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표식이라는 것만으로도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아파트도 통장님이나 반장으로부터 국경일엔 태극기를 꼭 달자는 의논이 있었다. 아파트는 베란다 중앙이나 왼쪽에 달아야 한다는 정보도 들었다. 5층에 사는 필자는 5.6.7. 층을 맡은 아파트 반장이다.
한 달에 한 번 나오는 우리 구의 소식지를 집집의 우체통에 넣어주거나 아파트 일로 주민 의견을 물어야 할 때 앙케이트 받는 정도의 일을 하고 있다.
반장이 아닐 때도 국경일에 태극기 다는 일은 잊지 않고 있었다.
지난 현충일 점심 무렵 누가 초인종을 눌렀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베란다 뒤편을 산책하다가 땅에 떨어진 태극기를 주웠다며 댁의 태극기 아니냐고 하셨다. 베란다에 가보니 우리 태극기가 없었다. 아침에 분명히 내걸었는데 고정받침이 없어 리본으로 칭칭 동여매 놓았던 게 바람에 풀어졌나 보았다. 아주머니가 떨어진 태극기를 들고 올려다보니 우리 집과 두어 집이 태극기가 없더라고 하셨다. 한 집씩 찾아다니려 했다며 웃으신다. 우리 태극기 맞는다며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이번엔 좀 더 꽁꽁 베란다 난간에 동여매었다. 땅바닥이 말라 있었던지 다행히 더럽혀지지는 않았다.
몇 년 전까지 우리 가족은 동해안으로 여행을 자주 다녔다. 여름이나 겨울 휴가철엔 꼭 동해안을 찾았다. 우리나라 어디든 다 아름답고 멋진 곳이 많은데 우리 아이 아주 어릴 때부터 놀러 다녀서인지 휴양지하면 동해안이 먼저 떠올랐다. 매년 다녔기 때문에 가는 길도 익숙했고 어쩐지 고향에 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동해안은 우리에게 멋진 곳이었다. 동해안 설악산 가는 곳 모두 경치 좋고 공기 맑은 훌륭한 도시지만 언젠가의 기억이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서울에서 인제 원통을 통해 설악으로 가는 길이었다. 거리 곳곳에 국기 게양대가 있고 태극기가 걸렸는데 너무나 불쌍한 모습을 하고 있어 마음이 아팠다.
태극기의 하얀 바탕은 이미 더러운 회색으로 물들어 지저분해 보여 안타까웠다. 차라리 저렇게 방치할 바엔 달지 않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며 강원도 지자체 어디에 신고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땐 좀 젊었고 놀다 보니 잊어버리고 귀찮기도 해서 그냥 걱정만 하고 오게 되었었다. 아마 할머니가 된 지금이면 필자는 분명히 신고했을 것이다. 어디에 더럽혀진 태극기가 있으니 새것으로 교체하고 관리 좀 잘하라고 쓴소리 깨나 했을 것 같다.
지금도 길을 가다가 국기가 걸려 있으면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요즘은 대체로 다 깨끗하게 잘 관리되고 있다. 조금이라도 지저분한 태극기가 보이면 당장 지자체에 전화해서 호통을 치려 한다. 거리에 펄럭이는 깨끗한 우리 태극기를 보면서 강원도 그 자리의 태극기도 지금은 깨끗하고 힘차게 휘날리고 있을 것을 기대해 본다.
올 여름 초복인 오늘은 종일 장맛비가 오락가락 하네요. 한해의 중간에 있는 7월 중순이다 보니 무덥기도 하고 비가 자주 오는가 봅니다. 아부지 계신 곳 날씨는 어떠신지요? 많이 덥지는 않으신지요?
지난주에는 시골집 엄니께 들려서 주변 정리도 해 드리고 텃밭 마늘도 캐서 묶어 매달아 두었지요. 햇 옥수수도 첫 수확으로 따서 쪄 먹기도 했답니다. 엄니 걱정은 하지 마세요.
아부지! 2주전엔 아부지 손자 ‘우태’가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단지로 이사 오려고 매매계약을 했어요. 돌아오는 10월 초엔 아부지 증손자가 태어날 건데 며늘아가가 맞벌이로 직장을 다녀야 하기 때문에 저희한테 아기를 맡기기로 하고 이리로 이사 오려 한거예요. 아부지는 알고 계셨는가 봐요? 그날 밤 제 꿈에 오셨었잖아요. 옆 동네 새로 짓고 있는 전원주택 옆을 지나가며 여러 가지 일러주시던 꿈속 기억이 생생하기만 한데 벌써 멀리 가 계시는군요.
아부지가 26살 되던 해, 제가 4살 때 큰집에서 분가하시며 지으셨던 고향의 옛집! 아부지는 그곳에서 23년을 사시다가 엄니와 우리 5남매 남겨두고 그 곳 멀리로 가셨던 거잖아요. 그 후로도 19년은 더 살다보니 엄니는 점점 늙어 가시는데 여러모로 불편해서, 텃밭을 정비해서 터를 다듬고 지금의 새집을 짓고 이사했던거지요. 그 후로 13년 동안 비워놓다 보니 많이 망가지고 보기도 흉해서 헐어 버리고, 메꾸어 밭으로 만들려고 흙을 받아 쌓아 놓은걸 보니 아부지께서 서운하셨던지 2주전 제 꿈속에 다니러 오신 거 같아요.
아부지 손길과 발자국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고성리 136-2번지 옛 집터 이지요. 기역자로 지어진 초가집에 안방, 윗방, 건넌방에 부엌과 외양간, 뒷간.
처음엔 마루도 없이 문 앞 댓돌에 두툼한 발판을 놓고 드나들었던 기억이 제겐 아직 생생하거든요. 차차 바깥 행랑채를 들이시고 사랑방과 헛간도, 곡간도 늘리고 초가도 걷어내고 슬레이트로 바꾸시며, 천년만년 살 것처럼 단단히 길들이고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고 다듬으셨었죠.
뒤꼍에 펌프 물을 팠다가 가물면 물이 짧아, 다시 안마당에 깊숙이 파고 파이프를 박아 동네에서 제일 달고 시원한 맛있는 샘물 올리는 펌프를 장만 하셨었지요. 한여름 무더위에 논밭에서 땀에 젖어 돌아오시면 치컥치컥 펌프물 퍼올려 흙먼지도 털어내고 등목도 해드리고, 마루 위에서 함께 했던 보잘 것 없지만 푸짐했던 밥상이 목이 메이게 그립습니다.
강 건너 골짜기에 다락 논을 장만 하시고는 배타고 건너다니시며 논농사를 지으셨죠. 이른 봄 뒷간의 재거름을 배에 싣고 건거가 못자리를 만들고, 연장 질 할 큰 소들은 나룻배에 태우고 건너가 갈고 써래질 하여 모내기를 한 후로는, 이틀이 멀다 않고 돌아보며 어린자식들 이밥을 먹이려 애쓰셨던 거지요.
윗마을 너 댓 배미 논도 그 아래 경사진 돌밭도 보리밭으로 콩밭으로 바꾸어 가며 곡간의 항아리를 채우고, 검단 논과 밤나무골 다락 논은 우리 식구 귀중한 식량의 터전 이였지요. 그런 농토를 한 필지, 한 마지기 손수 늘려 가시며 그렇게 좋아하시고 뿌듯해 하셨다는 걸 나중에 엄니로부터 말씀 들어 알게 되었었구요.
아부지! 제가 중학교 시험을 쳐야 할 때나 고등학교 진학하고파 할 때엔 주렁주렁 5남매 자식들 걱정에 덥석 입학원서에 도장을 찍지 못하셨던 거 전 기억하고 있어요. 힘들게 어렵사리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저 혼자 대학에 진학해 보려고 서울에 올라가 애쓰다가, 예비고사에 떨어지고 난 한겨울에, 성남시 어느 버스종점에서 군고구마 장사를 하다가, 툭툭 털고 군대에 간 후로는 휴가, 외출, 외박, 면회도 없는 힘든 부대에 가서 33개월 넘게 아부지 엄니 속 애타게 만들기도 했었지요.
1979년 1월 군대 제대 하던 해 운 좋게 한국전력에 입사하였고, 입사한 후 아부지 친구 분들이나 이웃 분들의 소개를 받아 장가도 들이고 며느리도 보고 싶어 하셨는데, 그 마음 헤아리지 못하고 제 생각대로 살다보니 입사 후 3년 만에 아부지는 제가 뵈러 갈 수 없는 먼 나라로 가신 거예요.
아부지! 49년 젊은 세월 접고 멀리 그 곳으로 가신지가 올해로 33년째 입니다. 이젠 거기서도 터 잡고 재밌게 사시나요? 가끔은 이 곳 생각도 하시는지요? 아부지가 갑작스레 허망하게 떠나가신 후 저는 엄니와 우리 5남매 열심히, 남들 손까락질 안 받고 살아보려고 애썼지요. 아부지가 뿌려 놓으신 삶의 터전에 누가 되지 않으려고, 반듯하게 살려고 했던 거예요.
그 후로 우리 5남매 모두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자식들 낳아 키워가며 가끔씩 만나 옛 얘기도 해가며 ‘배나들이’ 혈육의 정 이어가고 있답니다. 재작년 12월엔 제 딸, 아부지 손녀딸을 시집 보냈구요, 지난해 봄 4월엔 제 아들, 아부지 손자 장가를 보내어 춘천 가까운 곳에 둥지를 만들어 주었답니다. 저희 끼리 잘 살아 갈 거예요. 두 녀석 다 직장에 다니며 나름 생활을 개척해 가고 있거든요
아부지! 이렇게 식구들의 모습이 변해 갈 때마다, 얼마나 아부지가 보고 싶었는지 아세요? 이정도 살아온 것도 다 아부지 덕분이고 가르치심 이었지만, 실은 저 많이 힘들었거든요. 그래도 맘 편히 의논드리고 도움 받아야할 아부지가 멀리 만날 수 없는 곳에 계시다는 게 얼마나 속상하고 야속 하던지요.
아부지의 땀 냄새가 그립습니다. 슬레이트 지붕 용마루로 타고 오르던 아부지의 담배연기가 보고 싶습니다. 데이터 무제한으로 영상통화도 하고 싶습니다. 패밀리레스토랑에 모시고 가서 한 번도 맛보신적 없는 스테이크도 잡숫기 좋게 잘라 드리고, 보랏빛 와인도 조심스레 따라 드려 보고도 싶습니다.
지난 1월에는 엄니 팔순 생신이셨어요. 그러고 보니 아부지는 팔십 둘 되시네요. 우리 자식들하고 혈육 가까운 친척들 모여서 엄니 팔순생신 차려 드렸어요. 이렇게 더운 여름이면 농사일에 진땀 흘리시던 아부지가 더 사무치게 그리워집니다. 자주감자 깎아 썰어 넣은 수제비국으로 허기진 배 채우고 바깥마당에 멍석 펴고 누워 올려다보던 밤하늘의 별 만큼이나 많이많이 보고 싶어요.
자주 편지 드릴께요
안녕히 계세요
초복 날 늦은 밤. 큰 아들 올림
참으로 신기하다. 피는 못 속인다고 세월이 갈수록 자신을 닮아가고 성장하는 자식을 바라보며 웃고 울기도 한다. 어쩌면 나쁜 것은 그리도 부모를 똑 닮아 가는 걸까? 필자도 아이들을 키우며 자신의 지나온 날을 보는 것 같아 반성과 함께 성숙함이 녹 익어간다.
필자에게는 두 딸이 있다. 예전 같으면 딸 딸이 엄마라 시부모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은 며느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달라져 딸이 둘이면 금메달이란다. 오히려 아들 아들이면 똥 메달이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아들이 둘에 더구나 큰아들 같은 남편을 키우는 엄마는 등골이 휘어질 텐데, 현실은 그렇다 하니 차라리 돈 메달이라도 목에 걸어 위안을 주고 싶다.
이른 새벽 4시쯤이나 되었나 보다. 화장실로 향하는 길에 환한 불빛이 방문 밑으로 새어 들어온다.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누군가 하고 궁금했지만 일단은 볼일부터 보기로 했다. 두려움에 방문을 살짝 열고 거실 쪽을 바라다본다. 큰딸아이가 식탁에 앉아 무언가 열심히 쓰고 있다. 필자를 닮아 개성 강한 큰딸이 조심스러워 살그머니 문을 닫았다. 영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어쩌다 보니 잠깐 눈을 붙였다. 다시 눈을 떠보니 동이 터오기 시작한다. 큰아이가 궁금해 다시 방문을 살그머니 열었다. 아이가 없다. 궁금한 참에 일단은 살금살금 식탁으로 향한다. 잠도 안 자고 새벽까지 무슨 짓을 한 건지 몰라 필자는 여간 궁금하지 않았다. 다름 아닌 두 통의 편지였다. 한 장은 ‘사랑하는 엄마에게’ 그리고 나머지는 ‘사랑하는 아빠에게’라고 쓰인 예쁜 편지지였다.
순간 손이 떨려왔다. 어떤 내용인지 빨리 보고 싶지만 당장은 참기로 했다. 걸렸다 하면 난리가 나기에 태연하게 물 한 컵을 마시고 방으로 들어왔다. 역시 큰딸이라는 대견스러움에 가슴이 촉촉이 젖어왔다. 작은 딸은 겉모습이 공주처럼 곱고 예쁘지만, 아빠를 많이 닮아 조금은 냉정하고 담담한 성격이다. 본인에게 불필요하고 소소한 것들은 받아들이지 않는 호랑이띠의 호탕한 대범함을 소유했다. 결국 2살 연하 남을 만나, 언니보다 먼저 결혼해서 가정을 이끌어갔다.
반면에 큰딸아이는 겉보기에 키는 작아도 여자 대장감으로 리더십이 강하고 카리스마가 넘쳤으나, 엄마를 닮아 아기자기하고 속마음이 여리며 눈물이 많았다. 지금도 예쁜 인형들을 좋아하고 소박하지만 화려함을 몸에 달고 산다. 어쩌면 그렇게 커갈수록 부모를 닮아가며 단점들은 모두 배워가는지 모르겠다. 필자의 참지 못하는 성격과 남편의 멍청한 순수함은 꼭 빼어서 골고루 갖고 있었다.
큰딸은 잠깐 다니러 온 부모 집을 떠나면서도, 밤새 써 내려간 편지에 관한 아무런 얘기가 없었다. 다시 부모와 헤어져야 하는 아픔이 대화를 단절시킨 것 같았다. 필자도 무어라 말을 건넬 수가 없어 눈치만 보았다. 이상하다는 생각과 편지를 건네주지 않은 것이 영 답답했지만 묻지도 않았다. 아이를 떠나보내고 집에 돌아와 화장대 앞에 앉았다. 가지런히 두 개의 예쁜 봉투가 나란히 놓여 필자의 마음을 파고 들어왔다. 그것은 필자가 자식들에게 늘 하던 방식 그대로 였다.
필자에게, 그리고 아빠에게 큰딸은 깊은 마음을 담고 있었다. 장녀라는 책임감으로 써 내려간 부모를 향한 마음은 그 어느 것보다 귀한 것이었다. 필자가 애써서 혼신의 힘을 다해 키워놓은 대가는 충분히 넘쳐흘렀다. 더구나 정성 어린 선물도 함께 있었다. 빳빳하게 은행에서 갓 구워낸 몇 장의 지폐가 각각 따로 들어있었다. 필자는 마음에 감동을 오래 간직하고자 서랍 밑 깊숙이 보관해 두었다. 딸의 마음 선물은 하늘만큼 땅만큼 진하게 눈물로 고여 왔다. 애써 자식 키운 보람이 있었다.
엊그제 큰딸은 또 해외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집안을 난리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홀랑 자취를 감췄다. 마지못해, 텅빈 큰아이 방을 치우려 들어가 보니 침대 위에 금빛을 띠우는 예쁜 봉투 하나가 미소를 짓고 있다. 유혹에 걸려들어 내친김에 얼른 열어본다. 백화점 상품권 몇 장이 필자를 기다리며 엄마를 향한 큰딸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봉투를 두 손에 들고 눈을 감고 소파에 앉았다. 깊어가는 자식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에 필자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모처럼 남편과 백화점으로 나갔다. 몇 십만 원하는 고가의 옷을 사려니 사치스러움에 선뜻 내키지 않았다. 필자부부는 수영을 좋아하니 마침 세일하는 수영복을 샀다. 꼭 필요한 소소한 물품들을 이것저것 구입했다. 남편은 꼭대기 식당코너로 가서 특별히 근사하고 맛난 것을 먹자고 했다. 큰 딸자식의 따뜻한 마음으로 필자 부부는 또 호강을 했다. 자식의 부모사랑이 포근하게 다가왔다. 결국, 가족이란 살면서 부딪치고 또 상처받지만, 누구보다 먼저 스스로 회복되며 사랑해 가는 것이었다.
집 떠난 큰딸은 며칠 후면 또 돌아온다. 시집 안 간 처녀 의사의 히스테리는 수준급이다. 필자를 닮아 유별난 성격은 가끔씩 집안을 뒤집어엎는다. 그러나 아직은 함께 데리고 살면서 누구를 탓할 것인가. 그 모습은 영락없는 필자의 붕어빵 모습이었고, 나쁜 것은 부모를 꼭 닮아가며 가슴에 못을 박았다. 다만 부모가 그 감당을 하기 위해서는 여유 있고 넉넉한 충전을 필요로 할 뿐이다.
오늘도 제일 영양가 있는 음식과 글쓰기로 필자는 마음에 양식을 쌓으며 부모는 딸자식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려본다.
‘휴가’라는 단어는 언제나 마을을 설레게 한다. 반복되는 일상의 탈출. 며칠간의 탈출이지만 일상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생각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칠말팔초’가 휴가철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꼭 그렇게 방 구하기도 힘들고 바가지도 절정에 달하는 이때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된다. 물론 이 시기는 장마도 끝나고 더위도 절정이긴 하다. 그러나 요즘은 기후변화로 장마기간도 예측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칠말팔초가 되면 나라전체가 온통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맛있는 음식은 맨 마지막에 먹으면서 식사의 행복한 마침표를 찍듯이 필자는 남들이 다 다녀온 늦가을에 휴가를 간다. 아내는 여름 휴가철에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과 휴가를 다녀오기 때문에 늦가을 휴가는 필자 혼자서 간다. 무작정 떠나는 것은 아니다. 매년 나름대로 주제를 정한다. 최근의 예를 들면 ‘추억여행’이 휴가의 주제인 경우 코스는 다음과 같다. 우선 종로 뒷골목에 남아있는 ‘피맛골’ 좁은 골목길을 걷는다. 그 길은 친구들과의 오랜 흑백사진이 남아있는 길이다. 다음날부터는 청평 안전유원지, 남이섬, 강촌, 춘천 김유정 문학관 등을 돌면서 학창시절 엠티 다녔던 추억을 떠올린다.
‘성지순례’ 가 주제인 경우는 전국에 있는 순교지나 멋진 종교건축을 찾아다닌다. 아주 가벼운 차림으로 카메라와 작은 배낭하나만 준비하면 된다. 이렇게 목적지를 찾아다니면서 가을 곡식이 익어가는 논길을 걷기도 하고 시냇가에 앉아 물소리도 듣고 잠자리와 함께 가을 햇살도 즐긴다. 가는 곳마다 음식은 인터넷에서 미리 다 찾아보고 그 지역에서 가장 특별하고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간다. 혼자 다니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침묵여행이다. 아주 느린 걸음으로 이렇게 며칠 다니다 보면 머리가 맑아지고 가슴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최근 어느 장애인 복지관장님과 여름휴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 중에 장애인복지관에서 작년에 시행한 휴가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복지관은 주간 보호시설이라서 아침에 부모들이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데려와서 맡기고 저녁에 집으로 데려가는 시설이다. 매일 그렇게 반복되기 때문에 장애아들의 부모들은 휴가를 떠날 수 없다. 그래서 작년에 복지관에서 아이들을 야간에 맡아서 보살펴 주는 날을 정하고 그 아이들 부모들을 제주도 여행을 시켜 드렸다고 했다. 여행을 떠나는 모든 분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누구에겐가 아이를 맡기고 부부가 함께 어디 놀러가 본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징하고 울리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자랑처럼 떠들었던 혼자서 떠나는 나만의 휴가가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가 하는데 생각이 미치자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우리는 일상의 당연한 것에 별로 감사하지 않는다. 뭔가 특별하다고 느낄 때에만 그야말로 특별한 감사를 표현 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공기처럼 지극히 당연해서 일상에서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것들이 너무도 소중한 경우가 많다. 이제 또 여름 휴가철이 돌아왔다. 물론 올해도 필자는 늦가을 휴가를 떠날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 없이 홀가분하게 일상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설레고 행복해진다. 주변을 돌아보니 올해도 자유롭게 떠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소중하게 생각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애초에 엄두를 낼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올 여름 행선지는 ‘방콕’으로 정하고 서울에서 버틸 작정이었다. 그런데 딸애가 이미 자유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여행에 필자를 끼워준다니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다. 그런데 자유여행은 돈이 많이 든다는 고정관념으로 살짝 걱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리저리 절약할 구석을 찾아본다면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혼자는 이런 재주를 부릴 재간이 없다. 마침 검색과 계획의 달인인 둘째 딸이 있어 그 덕을 톡톡히 본다. 낳았을 때 ‘또 딸’이라 섭섭하고 슬프기까지 했던 그 딸 덕을 이렇게 볼 줄 그때는 미처 상상도 못 했다. 그 애는 하도 검색을 잘해서 우리 집에서는 ‘다이버’라 부른다. 네이버에 운율을 맞춘 별명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돈 쓰는 방법도 우리 때와 다르다. 몹시 아끼면서도 시간과 안락함을 돈으로 대신할 때에는 아낌없이 쓴다. 우리 세대가 2번 할 것을 1번 하더라도 제대로 즐기겠다는 심사다. 그래도 절약할 방법은 여기저기 잘도 찾아낸다. 그것은 검색과 마일리지 쌓기다. 마일리지 쌓기야 우리도 어렴풋이 따라 하겠지만, 검색은 도통 흉내 내기도 어려운 일이니 일찌감치 단념하는 것이 좋다.
간혹 컴퓨터와 씨름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자발적 도움을 줄 때도 있지만, 그것도 그들이 한가할 때 이야기지 코빼기도 볼 수 없이 바쁠 때는 언감생심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처럼 동행일 때에는 가만히 있어도 알뜰살뜰한 딸의 여행계획에 감탄과 칭찬의 대가만 치르며 따라나서면 그만이다.
우선 우리는 동남아 중 물가가 싼 태국의 방콕으로 여행지를 잡았다. 태국의 하고많은 여행지 중 왜 고작 방콕이냐고 의아해하겠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패키지여행의 단골 메뉴인 코끼리 타기, 악어농장, 게이 쇼, 사원 탐방 등은 이미 다 해보았고 빳따야 푸껫은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우리나라 해변만 못하다. 그러니 편하고 좋은 곳은 우리나라도 서울이듯이 태국도 방콕이다. 약간의 문화적 혜택도 즐길 수 있고 맛있는 음식도 그곳에 있다. 어느 할아버지 말처럼 “해외여행 뭐 별거 있어. 유럽은 성당만 보러 다니고 동남아는 맨 절만 끌고 다니”는 패키지여행에는 이제 좀 신물이 나기도 했다.
비행기와 호텔 예약은 2달 전쯤 하면 거의 1/2 가격이면 된다. 물론 7월 15일부터는 성수기라서 비행기 요금이 오르니 휴가 기간은 그 전에 잡는 것이 좋다. 특히 태국 여행의 경우 팝콘 여행사나 몽키 트레블을 통해 사는 것이 싼 편이다.
여러 날 한 호텔에 묵을 경우 여러 가지 혜택도 끼워주는 프로모션도 까다롭게 검토해 보아야 한다. 어떤 때는 값이 약간 비싸도 프로모션이 많아 더 이익인 경우도 있다. 두 달 후라서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으니 되도록 취소 가능한 것을 고르는 것이 좋다. 취소할 때 위약금이 있나 없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변화를 준다고 이 호텔 저 호텔 나눠서 이용하는 것보다 한 호텔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두 호텔을 사용하면 프로모션도 제대로 받을 수 없고 체크인 체크아웃으로 하루를 그냥 까먹기 십상이다. 그 외에도 호텔이나 비행사 결정은 먼저 이용한 사람들의 댓글이 큰 도움이 된다. 방콕에 가서도 검색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유심칩(USIM chip)을 사서 바꿔 끼면 지금 쓰는 휴대전화가 잠시 태국 전화가 되는 셈이다.
아! 이 그칠 길 없는 검색의 자유여행을 나는 다이버만 믿고 떠났다. 그 다이버가 말했다. “세상이 참 많이 변했어요. 어릴 때 만화나 공상 영화에서 보던 것이 다 현실이 되었어요. 제가 늙으면 어떤 세상이 될까요?” “인공지능 로봇이 가이드가 되는 세상이 되면 여행이 더 즐거울까?”
한국에 유행하는 말이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돈을 안 주면 맞아서 죽고, 돈을 다 주면 굶어서 죽는다’는 것이다. 듣는 순간 기가 막혀 말문이 막혔지만, 시간이 갈수록 되돌려 생각을 해보니 대단한 풍자적 명언이다. 부모와 자식이란 무얼까?
아침 새벽 5시 자명종 소리가 곤한 잠을 깨운다. 어젯밤 12시, 잠자리에 들던 큰딸아이가 꼭 깨워줘야 한다며 간곡히 부탁을 했다. 올여름휴가 여행은 독일, 이탈리아로 떠난다고 했다. 필자가 사용 후 적립된 비행기 마일리지를 최대한 자기가 이용하여 성수기 가격으로 간다고 한다. 가족 합산 마일리지는 언제나 간단한 질문 하나로 단번에 그저 딸의 몫이 되고 만다. 부모는 자식이 덤으로 얻은 것을 쓰겠다는데 안 된다고 할 수도 없다. 큰딸은 매년 휴가 때가 되면 해외여행이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라며 전 세계를 누비며 여유를 만끽했다.
며칠 전, 큰딸이 여행가방을 사고 싶다며 필자의 생각을 물었다. 그것도 하얀색으로 사겠다는 것이다. 필자에게는 여러 종류의 가방 세트가 있어 당연히 반대를 했다. 그러나 결국 딸은 일을 저질렀다. 어느 날 홈쇼핑에서 택배가 왔다. 다름 아닌 가방이었고 황당했지만 받아두었다. 필자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큰 딸에게 조심스럽게 ‘왜 또 샀느냐’고 했다. 더구나 하얀색을 샀으니 때가 타서 어찌 감당하려고 하느냐고 했다. 딸은 미안했는지 색깔을 바꾸겠다고 하더니, 생각 해봐서 반품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필자는 돌려보내기 만을 눈치만 보며 기다렸다. 딸은 결국 그 하얀 가방 안에 짐을 하나 가득 챙겨놓았고 필자는 그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35년 세월, 이날까지 김포공항에서 인천공항까지 배웅과 마중은 당연한 가족행사였다. 출국할 때도 입국할 때도 언제나 부모는 당연하게 기사 노릇을 해야만 했다. 오늘은 큰 맘먹고 이제부터는 안되겠다 싶어 공항 리무진을 이용하라고 설득을 했다. 정거장이 집 앞에서 얼마 되지 않은 곳에 있었고, 딸아이는 어쩐 일 인지 쉽게 수긍을 했다. 큰딸도 어느덧 성인이 되었고 엄마의 충고가 합리적이며 경제적이라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필자도 웬일인가는 싶었지만 잘 된 일이라 생각하며 동네 리무진 정거장 앞까지만 배웅을 하기로 했다.
새벽부터 일어나 난리를 쳤지만 어쩌다 보니 훌쩍 시간이 흘렀다. 정해진 아침 시간은 아주 빨리 지나갔다. 딸은 늦을 것 같다며 안달을 했다. 그때, 남편이 옆으로 살짝 오더니 공항까지 데려다 주자고 했고, 필자는 단호하게 안 된다고 했다. 자식들도 자기들이 돈을 벌면서부터 자기 돈에 대한 애착이 상당했고 마음대로 자기 돈을 써댔다. 부모가 쓰는 부모 돈은 당연한 것이고 자기들 돈은 엄청 아까워하는 것도 같았다. 필자도 올해부터는 생각을 달리해야겠다는 생각에 냉정하게 안 된다고 했다. 남편은 필자의 한마디에 아무 말없이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필자도 마음이 조금 불편하기는 했다. 부모가 늘 하던 일들을 중단하려니 어딘가 모르게 편치가 않았다. 그때 남편이 다시 들어왔다. ‘그냥 보내? 안 데려다 줄 꺼야?’ 다시 한번 눈치를 보며 물어왔다. 필자도 잠시 생각을 하다가 ‘여보 돈 내라고 해요. 치사하지만 기름값 3만 원, 2만 원 왕복 통행료까지 5만 원만 내라고 해요.’ 그러면 인천공항까지 데려다준다고 했다.
큰딸이 소리를 질렀다. 무슨 소리냐고 묘한 웃음을 보내더니 싫다고 했다. 엄마 아빠가 어떻게 된 것 아니냐며 그냥 리무진을 타겠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필자는 그러라고 했고 오히려 잘 됐다고 위안을 했다. 공항까지는 왕복 3시간, 그것도 토요일 아침이고 또 이래저래 6~7만 원이 훌쩍 들어간다. 자식들은 자기들 돈은 아깝고 부모 돈은 언제나 공짜라는 생각이 있는 모양이었다.
부모는 자식을 죽기 살기로 키우건만, 자식들은 성공해서 돈 좀 벌기 시작하니 조금씩 생각이 바뀌어 가는 것 같았다. 어릴 적 끔찍하게 약속하던 효도라는 말도 옛말이 된지 오래인듯했다. 그저 부모는 언제까지나 베풀어 주기만 해도 되고 자식들은 이따금씩 하는 명품 선물이 대단한 것으로만 착각을 하는 것이었다. 부모가 있는 것 없는 것 다 털어 최고로 키워 놓으니 가끔씩은 부모 마음을 후벼 파 놓기도 한다. 그리고도 자식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다. 부모는 마음 아프고 속상해 죽을 것 같아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것만 같았다.
전생에 무슨 업보로 인연을 맺었기에 부모는 자식에게 한없이 주어도 차지 않는 것이고, 자식들은 화가 나면 대책 없이 뿜어내기만 한다. 속상해서 울 때면 엄마 아빠가 뭐 해준 게 있냐며 부모 가슴을 있는 대로 후벼 파 슬프게 만든다. 자식들이 제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어서 나 알게 될 것인가 싶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영원한 미련으로 남아 쓸쓸해진다. 한국에 와서 들려온 웃지 못할 이상한 이야기가 실감이 나는 듯해서 필자도 어느 날부터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아침부터 쏟아지는 더위 속에 리무진을 태우기 위해 10여 분을 길거리에 서 있었다. 보내고 돌아오는 내내 필자 부부는 잘한 짓인가 싶어 영 찜찜했다. 긴 시간이 지난 후 잘 도착했다는 카톡 문자를 받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부모라는 자리는 왜 이리도 무겁고 힘든 것일 까. 다 큰 자식을 여행 보내면서도 마음은 편치가 않았다. 필자 부부는 자식들 짝사랑에서 냉정하게 해방되고, 부부의 앞날이나 생각하자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자식과 정 떼기를 하는 불안한 첫걸음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