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 xx가 너 상병이 일병한테 맞아도 싸! 이런 개xx를 봤나!"
군 시절 일등병인 필자가 순간적으로 화가 나 상급자인 상등병의 귀싸대기를 때렸다. 주위에는 내무반장급인 하사도 있었고 병장 등 고참병사가 수두룩했다. 저녁식사 후 내부반 자유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했던 필자의 하극상 전말은 이러했다.
당시 일등병인 필자는 대대급 부대의 보급품을 다루는 보급사병이었다. 그날따라 상급 부대에서 군화가 몇 켤레 내려왔는데 이를 갖고 산하 중대에 가서 제일 낡은 군화부터 바꿔주라는 임무를 선임하사로부터 받았다.
새것이고 공짜였는데 너 나 할 것 없이 병사들이 필자 주위를 감싸더니 자기 것도 바꿔달라며 떼를 썼다. 하나하나 검증하면서 교체해주던 중 상병 한 명이 슬쩍 자기 신발을 두고 군화를 집어 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대로 묵인하면 질서가 금방 무너질 상황이었다. 순간적으로 화가 폭발해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 없이 뛰어가 상급자인 상병의 따귀를 때리고 군화를 뺏었다. 김 상병과 조 일병 사이에 일어난 물건 도둑질과 하극상 사건이었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었지만 김 상병은 자기가 한 잘못이 있어 대항하지 못했고 상황을 알아차린 내무반장이나 상급 병사들도 모른 척 딴 곳을 바라보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 수습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부정한 행위에 화를 참지 못하고 욱하는 성질로 저지른 행동이었다. 계급절대사회인 군대에서 그것도 여러 병사가 보고 있는 내무반에서 하급자에게 따귀를 맞은 김 상병의 자존심은 그날 엄청나게 구겨졌을 것이다. 서둘러 보급을 마치고 돌아서 나오는데 뒤에서 싸늘한 병사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언젠가 보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생겼다. 두려움은 곧 현실로 나타났다. 김 상병이 유격훈련장 조교로 전출을 갔다. 병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훈련이 유격훈련이라는 것은 군대를 갔다 온 사람들은 다 안다.
몇 달 뒤 우리 중대도 매년 실시하는 유격훈련을 받게 되었다. 틀림없이 김 상병에게 보복을 당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지만 그렇다 해서 유격 훈련에 빠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가 필자를 알아보지 못하거나 운 좋게 직접 대면하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함만이 절실했다.
유격훈련장 두세 코스를 돌고 가장 난이도가 높은 훈련코스가 시작됐을 때 눈앞에 빨간 모자를 쓴 유격 조교가 서 있었다. 김 상병이었다. 순간 그가 저승사자처럼 무서웠다. 그는 필자에게 앞으로 나오라며 까닥까닥 손짓을 했다. 음성은 낮았지만 분노로 가볍게 떨리고 있음이 감지됐다.
“내가 너 오면 죽여버리려고 벼르고 있었다.” 복수심과 증오로 이글이글 타는 그의 눈과 마주쳤다. 유격 조교가 사람을 죽이지는 못하겠지만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무지막지한 신체적 고통을 안겨줄 수도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 그의 표정은 이내 풀어졌다. “막상 너를 보니 내 마음이 풀어지는구나! 훈련 잘 받고 가라. 나는 다른 코스로 갈란다”하며 필자 어깨를 가볍게 툭 치고는 가버렸다. 그는 후임 유격 조교에게 자신이 있던 부대의 후배들이 왔으니 잘 봐주라며 부탁까지 했다. 잔뜩 겁에 질려 있었던 필자는 갑자기 돌변한 그의 태도에도 안심하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김 상병이 복수심으로 화풀이를 했다면 필자의 마음속에는 하극상을 일으켰다는 뉘우침보다는 보급품을 제대로 나누어주기 위한 정상적인 행동이었다고 자신을 합리화하는 일에 급급했을 것이다. 김 상병의 용서로 필자는 상황만 보고 사람을 보지 못하는 잘못은 하지 말자고 뉘우쳤다.
자신의 잘못으로 감옥살이를 하고도 범죄 사실을 신고한 사람에게 앙심을 품고 찾아가 보복을 했다는 섬뜩한 뉴스도 많다. 내 잘못은 덮어두고 남의 잘못만 지적하지 말자. 아무리 억울하고 화가 나도 역지사지를 해보고 숨 한 번 크게 쉬고 다시 들여다보면 이해되고 참을 수 있는 일이 많다. 세상살이를 하면서 원수는 만들지 말아야 한다. 원수는 반드시 외나무다리에서 만나게 되어 있다.
그녀는 상상했던 이미지 그대로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이었다. 내일모레가 환갑인데 이토록 귀엽다니, 나이를 어디로 먹었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희한한 여인이다. “일단 오늘 하루만 남편을 존경하자!” 그렇게 각오하고 사니 평생의 꿈이었던 현모양처가 저절로 되었다고 말하는 개그우먼 이성미. 한여름 오후의 데이트는 분명 귀여운 여인과 시작했는데 끝날 무렵에 보니 작은 거인과 앉아 있었다.
그 나이에 몸무게가 40kg도 안 나간다. 뭇 여인들에게 몰매 맞기 싫은지 실토했다. “안 먹어서 이래요~ 일할 때 많이 먹으면 졸리고 느긋해져서 집중력이 떨어져 할 수 없이 끼니를 거를 때가 많다”고 자백한다. 내가 젊었을 때는 이성미 또래의 여인들을 할머니로 생각했다. 지금은 필자 이봉규도 60이 되고 보니 이 또래의 보통 여인들이 할머니까지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섹시한 향기가 나는 여인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이성미는 여름철 농익은 살구처럼 귀엽고 섹시하다. 날씬하고 자그마한 체구에 환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서 볼을 꼬집어주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다. 한량 이봉규가 잠깐 정신줄을 놓았다. 프로의식을 되찾아 몰아치듯 인터뷰를 시작했다. “100세 시대에 사랑의 이모작을 위해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를 생각해본 적이 있나?” 이봉규의 다짜고짜 도발에 그녀는 “기운이 있어야 그런 모험이나 상상도 하죠!”라고 말한다. 한숨도 살짝 묻어나온다. 희극인답게 개그처럼 위장했지만 그 속내를 살짝 들출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한때는 션과 정혜영 커플이 부러웠다. 왜 나는 션 같은 남자를 못 만났을까?” 스스로 푸념도 해봤지만 결국 “내가 정혜영이 아니다”라고 스스로 답을 내렸다고 한다. 자신에게 맞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깨닫고 지금의 남편에게 충실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성미 남편은 기자 출신으로 지금은 연예기획사 웰메이드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면서 국제대학교 조교수다. 처음 만났을 당시 남편은 이성미의 열애설을 취재하러 왔다가 그녀에게 푹 빠져버렸다. 인터뷰하고 얼마 후 남편은 “결혼할 생각 없으세요?”라고 물으며 적극적으로 대시했다. 그녀의 반응을 엿본 남편은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저랑 결혼할 생각 없으세요?” 하며 정신없이 파고들었다. 나름 차분한 이성미는 “연하이고 게다가 기자는 싫다”고 잘라 말했지만 싫지는 않았기에 일각의 여지는 남겼다. “부모님께 허락을 먼저 받아와라!” 하며 돌려보냈다. 몸이 후끈 달아오른 남편은 이틀 뒤 찾아와서 “부모님께 결혼 허락을 받았다”며 “6개월과 1년 뒤 언제 결혼하고 싶냐?”고 이성미를 다그쳤다. 남편의 불도저식 박력에 이성미는 항복했고 4개월 뒤 결혼에 골인했다.
우리는 ‘묵은지 부부’
한 이불을 덮고 산 지가 어느덧 25년이 넘었다. 한때 결혼생활이 살짝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잘 극복하고 지금은 너무나 행복하다고 입에 침이 마르지 않는다. 권태기 시절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남편과 거리를 두기 위해 캐나다에서 7년을 살기도 했다. 두 살 연하인 남편을 약간 무시하는 교만함도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 후 생각을 바꿔 자신을 내려놓고 남편에게 맞추기로 마음먹었더니 부부관계가 확 달라졌다. 남편한테 전화가 오면 이성미 휴대폰에 ‘존경하는 남편’이라는 글자가 뜬다. “일단 오늘 하루만 존경하자!” 그렇게 각오하고 사니까 술술 풀리더라는 것. ‘하루살이 인생’이라고 스스로 정의를 내린다.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개구질 것 같은데 의외다. “아직도 방귀를 안 텄다. 여자는 여자다워야 하고 가정을 소중하게 여기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성미의 꿈은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현모양처다. ‘묵은지 부부’라고 스스로 평가한다. “냄새도 나고 매력은 없지만 깊은 맛이 있는 부부관계”라고 ‘묵은지 부부’에 관해 설명한다. 그녀의 현모양처 꿈이 이뤄진 것은 자식들의 평가에서도 엿볼 수 있다. “엄마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 뭐 같니?”라는 이성미의 질문에 아이들이 “하나님, 집, 가족”이라고 대답해서 너무 고마웠다고 술회한다. 그때 비로소 자신이 평생 꿈인 ‘현모양처’가 됐구나 하며 가슴이 벅찼다고 한다. 이성미는 어린 시절이 그리 행복하지 않았기에 현모양처를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그녀를 버리고 떠나 새엄마 밑에서 컸다. 새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또 다른 새엄마와도 살았다. “엄마가 네 명이나 된다”고 웃으며 말한다. 이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삶이 여유로워졌지만 어릴 적 자신이 겪은 불행을 남편과 자식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 깊은 각오가 그녀의 가족을 행복하게 이끌었을 것 같다.
아이들의 성적표를 본 적이 없다
너무 여유로워진 걸까? 가끔 자식들이 말을 안 들을 때는 개그맨답게 “이것들이 새엄마랑 안 살아봐서 이래!” 하며 다그칠 때도 있단다. 그래도 아이들이 잘 자라줘서 너무 고맙다. 외국인학교에 다니는 고2 딸은 연예인이 되고 싶어 한다. 이성미는 “도둑질 아니면 뭐든지 자식들의 의견에 반대하지 않는다”며 은근히 지원사격이다. 그러면서 선배 입장에서 “딸의 성격이 대범해 연예인을 해도 잘할 것 같다”는 평가를 내린다(악성 댓글에도 견딜 수 있는 성품이라야 연예계에서 버틸 수 있다). 이성미가 자식들에게 무턱대고 관대한 것만은 아니다. 큰딸이 대학 1학년 때 입학을 보류시키고 1년간 알바를 시켰다고 한다. 자립심을 키워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밀크셰이크를 만드는 등 이런저런 알바를 하던 중 시간당 3만원 이상을 주겠다는 고액 알바광고 전화가 걸려왔다. 자세히 물으니 “아저씨들 옆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된다”는 꼬임이었다. 세칭 룸살롱, 단란주점 같은 유흥업소로부터의 유혹이었다. 엄마와 모든 것을 숨김없이 상의하는 딸이었다. 그때도 엄마와 상의했기에 딸이 어둠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다. “100% 아이들을 믿는다. 믿는 만큼 아이들도 다 얘기한다”며 딸 자랑을 하는 이성미에게 이봉규가 태클을 걸었다. “글쎄~ 진짜 다 얘기할까? 그 나이 때는 엄마에게 숨기고 싶은 일도 발생하고 상상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도발했더니 그녀는 “우리 가족은 각자 결정하는 일에 스스로 책임을 지는 시스템이다. 걱정은 지들이 하는 거지 엄마는 상관하지 않는다”라고 딱 잘라 말한다. “여태껏 아이들의 성적표를 본 적이 없다”는 충격적인 말도 한다. “흙에서 자란 아이는 용기로 크고, 아스팔트에서 자란 아이는 오기로 자란다”는 말을 20세 때 어디선가에서 듣고는 가슴에 새기고 아이들을 키울 때 금과옥조로 삼았다. 이성미의 집에는 아이들을 위한 ‘용돈 항아리’가 있다. 항상 5만원 정도 비치해놓는데 아이들이 알아서 꺼내간다. 그녀의 ‘믿음 가정교육’에 상당한 공감을 느꼈다. 귀여운 여인 그리고 작은 거인 아름다운 얘기만 하고 인터뷰를 끝낼 한량 이봉규가 아니라서 전매특허 질문을
훅~ 던졌다. “만약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면? 용서할 수 있나?” 몇 초간 정적이 흐르더니 “내가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남편이 바람을 피웠을 것으로 이해해줄 수도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금방 “그런데 아이들 때문에 바람은 피우지 않을걸!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기로 맹세했거든” 하며 마무리 짓는다. 그녀의 표정에 강한 자신감이 묻어나온다. 이대로 물러날 이봉규가 아니다. “아내로서 부족한 부분이 뭐라고 생각하나?”라고 묻자 의외의 답변을 한다. “다정하거나 살갑지 않다. 애교도 없고 사랑 표현도 못한다.” TV 화면에 비치는 그녀의 평소 이미지와는 정반대다. 그렇다면 이성미는 우아한 자태를 뽐내기 위해 수면 아래에서 몸부림치는 백조처럼 귀엽게 보이려고 엄청 노력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말을 들어서일까? 인터뷰하는 동안 그녀의 태도가 지나칠 정도로 진지하다는 점을 감지했다. 현모양처 이외의 앞으로의 꿈을 물으니, 교통부장관을 하고 싶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밝힌다. 뉴스를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고 운전이 제일 무섭다고 말하면서 사람을 살리고 싶다고 부연 설명한다. 교통부장관이 어려우면 사복경찰이라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체구는 작지만 사회봉사에 대한 포부는 무척 크다. 지금은 ‘CH 114’라는 사이트를 만들고 있다. 교회를 찾아주는 사이트인데 올 9월에 오픈할 예정이다.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이 한 달에 1만 명 정도나 된다니 믿기 힘들다. 이성미는 이들이 안타까워 이 같은 사이트를 만들고 있다. 어릴 시절과 젊은 시절 한때의 불행을 슬기롭게 승화시킨 이성미는 현모양처의 평생 꿈을 이룬 것을 넘어 지금은 남 도울 생각에 골몰하며 살고 있다. 인터뷰 시작 때는 귀여운 여인이었는데 끝날 무렵에는 그녀가 작은 거인으로 오버랩된다.
“남편을 변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마세요. 여러분에게 딱 맞게 변화시키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여러분 스스로가 남편에게 맞추는 게 더 쉬워요. 자신의 잣대로 상대를 평가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으려면 조급함을 버려야 합니다.”
초청 신부님 강론이 있었다. 평일의 성당은 대부분 여자들로 채워졌고 열기가 가득했다.
“신부님 말씀 듣고 용서하며 너그러워지려고 노력하는데 미사 끝나고 집에 가서 남편을 보면 열이 다시 뻗쳐 분심이 드는데 어찌해야 하나요?”
“화내고 폭력적인 생각을 한 것이 걸려 고해성사까지 하고 마음을 평화롭게 다스려놓으면 남편이 또 뒤집어놓는데 어찌해야 할까요?”
얼마 동안 우문현답이 심심치 않게 오갔다.
지금까지 살면서 싸움도 해보고, 화도 내보고, 섭섭해서 짜증을 부려보기도 했다. 이런 감정들 때문에 소비한 에너지도 만만치 않다.
이제는 필자가 어떨 때 가장 열 받는지를 알 것도 같다. 이를테면 진정성이 무시되거나 이해받지 못할 때, 필자 마음에 대한 곡해, 또 귀하게 여기는 사람에게서 아무것도 아닌 대접을 받게 될 때 화가 난다.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는 자기중심적인 인간 앞에서도 분노가 일어난다.
가족이 아닌 관계에서는 마음을 쉽게 정리할 수 있다. 가족은 싫어도 죽을 때까지 만나야 하지만 가족이 아닌 관계는 보기 싫으면 안 봐도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인격을 무시당하거나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신의가 없는 사람을 만날 때 분노한다. 화가 일어나는 지점은 거의 비슷하다.
젊은 시절, 모멸감과 함께 인간이 너무 무서웠던 경험이 있다. 그때는 아무도 없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주변에 좋은 사람도 많았지만 상처를 준 사람도 있었다.
요즘은 사람을 볼 때 한쪽 면만 보지 않는다. 선의와 악의를 함께 지니고 있는 동물이 바로 인간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 선의와 악의는 자신에게 편리한 대로 쓰인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늘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사람이라고 해서 늘 나쁜 것도 아니다. 아무리 좋은 품성을 가지고 있다 해도 상대와 코드가 안 맞으면 불편하고 시끄러운 일들이 자주 생긴다. 또 상대의 마음을 자기 식대로 단정해버리며 오해하는 사람도 많다. 주로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들에게서 그런 성향이 나타난다.
갈등이 생기면 상대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흥분하면 아무 말이나 하게 되고 실수를 한다. 그러므로 화가 나면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대화를 하지 않는 게 좋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대결 구도로 가면 서로 상처만 입을 뿐이다.
아무리 나쁜 사이라도 시간이 흐르면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기억에 남는 사람은 배려가 많은 사람이다. 고개를 끄떡여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려는 마음이 가슴에 와 닿을 때 저절로 고개를 숙이고 손을 내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지고도 이기는 법이다.
“문제 삼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데 문제 삼으니 문제가 된다.”
조정래의 소설 에 나오는 구절이다.
깊이 공감한다.
체력 저하 때문인지, 환경 탓인지, 호르몬 작용으로 인한 우울증 때문인지, 요즘 시니어들 중에 무기력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몸이 늘어진다는 것이다. 모임에도 안 나오고, 기껏 약속을 해놓고도 막상 그날이 되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약속을 펑크낸다. 질책을 하면 힘없는 목소리로 무기력증 같다며 용서를 구한다. 그러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무기력증의 가장 큰 증상은 체력 저하다. 날씨도 덥고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니 기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당연히 아침에 몸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나잇살로 군살이 여기저기 늘어나 살도 빼야 하는데 입맛이 없어 못 먹으니 에너지 공급도 빈약해진다. 움직이기 싫고 땀나는 것도 싫어 운동을 안 해 체중만 더 늘고 근력은 떨어진다. 30세가 넘으면 근육이 매년 1%씩 감소하고 여성들은 폐경 후 5년 만에 골밀도가 50%나 떨어진다는 얘기가 있다. 이래저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이다.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많다. 호르몬 변화 때문이다. 신나는 일도 없고 낙도 없다. 배우자 하는 짓을 봐도 한심하고 위안도 안 된다. 밖에 나가면 저 잘났다며 설치는 사람들이 시끄럽기도 하고 보기도 싫다. 가족 중에 누군가 지병으로 누워 있거나 치매 걸린 노부모가 속 썩이면 스트레스도 쌓인다.
무엇보다 희망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좋은 일도 없고 즐거운 일도 없으며 기대할 일도 없어서 삶이 재미없다는 것이다. 거울을 봐도 자신의 모습에서 더 이상 성적인 매력을 찾아볼 수 없다. 그것이 더욱 슬프다. 나이 든 사람들이 사진 찍기를 싫어하는 이유다.
혼자라면 무기력증이 더 심해질 수 있다. 독립가구가 늘면서 혼자 사는 사람이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애완동물이라도 기르면서 살면 도움이 되는데 그것도 만만치 않다. 공동 주택이니 옆집 눈치도 봐야 하고 사료 값이며 배변 처리며 뒷바라지에도 손이 많이 간다. 어떤 사람은 아예 연락을 끊고 잠수하기도 한다. 한동안 스마트폰을 꺼버리는 것이다. 혹시 변고라도 당한 것 아닌가 한바탕 소동을 치른 후 물어보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그랬다고 한다.
이런 무기력증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결국 혼자 찾아야 한다. 먼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나하나 실천에 옮긴다. 시작은 우선 잘 먹어서 에너지원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잘 자야 한다. 그다음에는 운동 겸 기분 전환을 위해 가벼운 외출을 한다. 영화관도 좋고 경치가 좋은 야외 산책도 좋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섞여도 본다. 그렇게 지인들과 자주 어울리다 보면 조금이라도 활력을 찾을 수 있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돼서 마음만 동동 구르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의 문을 두드려주셔요. 이번 호에는 시인이자 야생화 사진작가인 박대문님께서 풀꽃들에게 쓴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계속되는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단비를 가득 품은 바람 소리가 쏴 밀려옵니다. 주룩주룩 낙숫물 듣는 소리가 어느 고운 음악보다 감미롭게 들려옵니다.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던 단비입니까?
어제 산에서 만났던 풀꽃, 그대! 참 안타까웠습니다. 오랜 가뭄에 시들시들 연명하듯 버티는 모습이 참으로 애잔했습니다. 게다가 가뭄 탓에 꽃망울과 새순 줄기에 온갖 물것들이 달라붙어 진을 빠는 통에 제대로 꽃도 피우지 못하더군요. 힘겹게 열리는 꽃잎이 처량해 보이기조차 했습니다. 그런데도 시원한 물 한 바가지 뿌려주지 못하고 진딧물 한 무더기 털어주지도 못했습니다.
가뭄과 물것에 시달려 제대로 피우지도 못한 풀꽃, 사람으로 치면 화장기 없는 병색 짙은 민낯에 카메라만 들이댔습니다. 아니 민낯이 아니라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대의 생식기에 확대경을 들이댄 것입니다. 목마른 갈증, 물것의 시달림을 번연히 보고서 도움도 못 주면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대의 은밀한 곳만 훑고 지나쳤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대에게 참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다녔습니다. 삭막하고 황량한 겨울 지나고 이른 봄이 되면 발밑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풀꽃 하나에 넋을 잃고 홀딱 빠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같이 나온 새순이나 꽃망울이지만 좀 더 크고 먼저 핀 꽃에만 카메라 앵글 들이대고 옆에 돋아나는 새싹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밟고 뭉개기 일쑤였습니다.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는 봄날과 초여름이면 작고 빈약한 꽃은 본체만체 제치고 화려하고 멋진 꽃에만 매달렸습니다. 꽃이 귀한 시기에는 발밑의 사소한 풀꽃도 애지중지하다가 여기저기 온갖 꽃이 한창일 때는 크고 화려한 것만 중시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차별하는 변덕을 부린 것입니다. 심지어 예쁜 꽃 곁에 뻗은 다른 줄기를 사진 화면에 잡티 된다며 제치고 꺾기도 했습니다. 어려운 역경 속에 생을 위해 악전고투하는 데도 도움 주지 못하면서 아무런 배려도 없이 은밀한 치부를 사진 찍어 자랑스럽게 내놓고 공개했습니다.
태어난 생체로서 소명을 저버리지 않는 풀꽃, 그대!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선택의 기회도 없이 주어진 최악의 환경일지라도 생을 포기하지 아니했습니다. 온갖 주위 역경과 고난을 감수하며 새싹 틔어 꽃피우고 열매 맺어 씨앗을 남기는 데 전력을 다했습니다.
지금은 어디에 가든 경애하는 마음으로 눈 맞춰 인사하고 이름을 불러주며 가슴 깊이 사랑합니다. 꽃 사진 찍으면서 혹시나 새싹을 밟을까봐 삼각대도 거의 쓰지 않습니다. 특히 이른 봄에는. 또한 옆에 다른 풀과 가지가 끼어들어도 웬만하면 그대로 찍습니다. 그동안 관심 밖에 두고 낮춰 보며 함부로 하고 차별한 것 반성하고 뉘우칩니다. 너그러이 용서하고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지금 그대를 사랑하는 마음만큼 ‘나도 그래’라고.
-2017년 8월 모일, 풀지기 올림
말도 느낌도 통하지 않는 풀꽃에게 편지를 보내다니? 이런 편지를 쓰게 될 줄은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우연히 에서 ‘부치지 못한 편지’를 써보라 하기에 생뚱맞게 용기를 냈습니다.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무료한 일상을 메꾸기 위해 풀꽃에 관심을 두고 탐사활동을 시작한 지 10년이 되어갑니다. 지금은 생활 중 대부분의 관심 사항이 풀꽃에 있어 카메라 들고 산과 들에 나가 풀꽃을 찾고 때로는 멀리 여행도 갑니다.
풀꽃 탐사활동을 하기 이전에는 풀과 나무를 주변에 그저 널브러져 있는, 아무런 느낌도 감각도 없는 사물로만 여겼습니다. 눈에 띄게 예쁘고 화려한 꽃을 피우면 화초, 아닌 것은 모두 잡초로만 여겼습니다. 이름을 안다는 것이 고작해야 농작물과 채소 일부 그리고 과일 몇 종류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뜻하지 않게 직장생활을 생각보다 일찍 그만두고 나서 무료한 일상과 나름 정신적 안정을 찾기 위해 산·들·꽃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언제든지 찾아가면 만날 수 있고 미소 짓는, 앙증맞게 고운 꽃이 마치 나를 반기는 듯 여겨졌습니다. 그러는 사이 차차 풀꽃 이름을 하나둘 알아가면서 비로소 풀꽃과 새로운 관계가 이루어져갔습니다.
아무리 좋고 귀한 것도 내가 관심이 없으면, 즉 내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나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허상입니다. 내가 관심을 갖고 내용을 알아 의미를 두고 보았을 때, 비로소 나와 새로운 관계가 설정되고 서로 의미 있는 상대가 됩니다.
이 세상에 이름 없는 풀꽃은 없습니다. ‘이름 없는 풀’이라며 잡초를 천덕꾸러기 취급하지만, ‘잡초’라는 이름의 풀은 없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그 이름을 모를 뿐입니다. 풀꽃은 좋든 싫든 선택의 기회도 없이 주어진 환경에서 싹을 틔워야 합니다. 선택 없이 태어난 우리 사람과도 같습니다. 오직 살아야 한다는 대명제를 안고 끈질기게 참고 견디며 살아갑니다. 닥쳐오는 시련 모두를 벌거벗은 몸뚱이 하나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역경에 아랑곳하지 않고 꽃피워 결실을 보아야 하는 생체로서의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을 이제야 하나둘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말 못 하고 느낌 없고 귀하지 않다고 함부로 여기고 다루어왔습니다. 알고 보면 이 세상의 생명체 중 가장 막내가 인간이라 합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마치 지구 상 모든 생명체 가운데 으뜸이고 주인인 양 착각하고 있습니다. 지구에 태어난 것으로 치자면 현생 인류는 식물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현생 인류의 탄생은 4만 년 남짓입니다. 고생대 석탄기의 양치식물은 차치하고 꽃이 있고 생식기관으로서 씨방이 있는 속씨식물이 탄생한 것만 해도 약 1억4000만 년 전인 중생대입니다. 감히 대비할 수 없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모두를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멀리 해외에 나가서도 우리 땅에 자라는 같은 풀꽃을 만나면 고향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고 다정스럽습니다. 외국에 있으면서도 고향 땅인 것처럼 푸근한 마음이 생깁니다. ‘오! 너도 여기에 있네.’ ‘천지만물이 나와 함께 존재하고 한 형제[天地與我 竝存, 萬物與我 爲一]’라는 장자(莊子)의 말이 더욱 실감 납니다.
이제까지의 저의 잘못을 반성하고 뉘우치며 한 말씀 올립니다.
“풀꽃, 그대! 사랑합니다. 그대도 한 말씀만 하소서 ‘나도 그래’라고.”
>>박대문 야생화 사진작가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 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다. 저서로 시집 . , 가 있다.
‘겨울 멋쟁이는 얼어 죽고, 여름 멋쟁이는 더워 죽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제 그런 표현은 머나먼 옛말이라 해야겠다. 여름에도 시원하게, 더욱 멋스럽게, 때론 섹시하게 연출할 수 있는 패션 아이템들이 있기 때문이다. 중년패션아이콘을 양성하는 남성 패션 브랜드 ‘헬로우젠틀’의 권정현 대표 도움을 받아 올여름 신중년이 도전해볼 만한 패션 스타일을 꼽아봤다.
헬로우젠틀 권정현 대표 이인규
◇ 주말 나들이엔 청바지에 머스터드 셔츠로 경쾌하게
활동성이 가미된 스타일로 주말 나들이 갈 때 활용하기 좋다. 밝은 계열의 린넨 소재 셔츠로 여름에 다소 더워 보일 수 있는 청바지의 느낌을 중화시켜줄 수 있다.
TIP> 청바지 밑단을 발목까지 걷는 것이 핵심. 위의 스타일에 운동화도 좋지만, 단정한 모습을 연출하고 싶다면 캐주얼한 드라이빙 슈즈를 추천한다.
◇ 서늘한 여름날에는, 캐주얼한 맨투맨 스타일링
긴소매 맨투맨 셔츠를 걷어 올리고, 반바지를 연출하는 것은 옷을 좀 아는 남성들만이 가진 센스다. 거기에 컨버스 운동화까지 매치한다면 캠퍼스를 누비는 대학생이 부럽지 않을 것이다.
TIP> 청바지를 젊음의 상징이라 여기는 만큼, 컨버스 운동화도 마찬가지다. 슈트나 치노팬츠에 컨버스 운동화만 연출해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질 것이다.
◇ 화이트 팬츠로 센스 넘치는 휴양지 룩
파나마 햇(panama hat)에 시어서커 재킷까지, 휴양지 남성 대표 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은 휴양지가 아니더라도, 도심에서 파나마 햇을 활용한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한다.
TIP> 여름은 일명 빽바지(화이트 팬츠)가 유일하게 용서되는 계절이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비침이 심해 속옷 컬러를 팬츠 컬러와 꼭 맞춰야 한다는 것.
◇ 여름 패턴의 대명사 마린 스트라이프
여름 패턴 하면 단연 스트라이프다. 스트라이프 셔츠에 청바지, 운동화로 스포티함을 연출했다. 스트라이프 셔츠는 청바지, 반바지, 면바지 가릴 것 없이 잘 어울리는 여름 전천후 아이템이다.
TIP> 줄무늬 간격이 클수록 더 시원해 보인다. 여름에는 블루 계열의 굵직한 스트라이프 티셔츠가 가장 인기다. 블랙, 아이보리 등 기본 색을 갖춘 뒤 레드, 그린 등 다양한 색에 도전해보자.
◇ 핑크 린넨 셔츠로 깔끔하고 댄디하게
린넨은 여름에 빠질 수 없는 소재다. 린넨 셔츠에 린넨 팬츠까지 여름 저격용 룩이라고 볼 수 있다. 린넨의 구김은 자연스럽다는 것이 포인트이니 억지로 펴려 하지 말자.
TIP> 남자 셔츠에 반팔 셔츠란 없다. 대신 긴팔 셔츠를 걷어 입자. 밝은 색상의 옷을 고를 때는 지나치게 밝거나 광택이 도는 컬러는 주의할 것. 자칫 아저씨 스타일이 되기 십상이다.
◇ 린넨 재킷으로 모던한 세미나 룩 완성
격식을 갖추는 자리에서 재킷은 필수. 더운 여름, 린넨 재킷은 효자 아이템이다. 시어서커 재킷이 캐주얼하다면, 린넨 재킷은 단정한 분위기다. 격식을 차릴 땐 린넨, 그중에서도 체크패턴을 권한다.
TIP> 구김이 생겼을 땐 바로 다림질을 하는 것보다 옷걸이에 걸어 베란다 등에 잠시 놓아두자. 습기를 머금게 한 뒤 잔주름을 없애는 것이 좋다.
꾸미는 것보다는 자연스러운 걸 좋아하는 편이다. TV 드라마도 너무 만든 이야기가 들어 있어나 판타지물보다는 일상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즉 작가 김수현식 드라마를 좋아한다.
글도 단순하고 꾸밈없는 글을 좋아한다. 흔히들 기가 막힌 경치를 보면 한 장의 그림엽서 같다고들 하는데, 필자는 이런 표현도 별로다. 엽서 한 장으로 어찌 광대한 풍경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냥 ‘말로 표현 할 수 없다’ 정도가 좋다.
사람도 자연스런 사람을 좋아하는데 예를 들면 조영남씨 같은 사람을 좋아한다. 반대로 남편은 그런 나를 보고 미친 ×만 좋아한다고 흉을 본다. 또 솔직하고 담백한 말을 좋아해서 솔직하지 않은 사람과는 대화를 즐기지 않는다. 뭔가 감추고 있는 듯한 사람과의 대화는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아들이 어렸을 때 잠깐 알고 지내다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돈을 많이 벌고 아들은 미국에 남기고 부부만 역이민을 온 아들 친구 부모가 있다. 그 부부는 가끔 우리에게 전화해서 식사나 하자고 하는데 몇 번 만나보니 자기네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지 않고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때운다. 도대체 우릴 왜 만나자고 했는지 모를 정도다. 그러면서도 우리 이야기엔 경청을 한다.
지난번에도 만나자고 전화를 해와 아들 체면을 봐서 웬만하면 나가자고 했지만 남편은 칼같이 끊고 거절을 했다. 우리 나이에 싫은 사람 만날 일 없다며…. 보수적이면서 반듯한 남편은 자신과 성향이 같은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 남편이 필자를 이야기할 때는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표현한다.
필자는 숫자에 대한 기억력이 좋아 아직까지도 아들네를 포함한 온가족의 주민번호, 통장번호도 등 별의별 것들을 다 기억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깜빡깜빡하는 병이 있어 돌아서면 잘 잊는다. 물 먹으러 가다가 안경 벗어놓고 못 찾고, 신발 신다가 꼭 쓰고 나가야 할 선글라스는 잊어버리고 나가는 등 하나하나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런 건망증이 늙어서 생긴 게 아니라 초년 시절부터 그랬다. 이 병 때문에 평생 동안 잃어버린 물건도 많다.
어릴 때부터 구박도 많이 받았다. 신은 하나를 주면서 다른 하나는 빼앗아가는 것 같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맞나보다. 깜빡병 때문에 남편한테 잔소리도 많이 듣고 구박도 많이 받는다. 우스갯소리로 우리 집 도우미 이모가 “아저씨, 언니 너무 구박하면 내가 장애인센터에 ‘장애인 학대’로 신고할 거예요”라고 말할 정도다(나는 10여 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그 후유증으로 장애인이 되었다).
혹시라도 애인이 그랬다면 다~ 용서가 될 텐데 말이다. 세상의 모든 애인은 애처롭고, 모든 아내는 억척스럽다는 말이 있는데 난 애인이 아니고 아내다. 그렇게 심한 구박(?)을 받고도 건재하니 말이다.
◇ exhibition
보그 라이크 어 페인팅: 사진과 명화 이야기
일정 10월 7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창간 125주년을 맞은 잡지 의 아카이브에서 엄선한 이미지들로 패션 사진과 명화의 관계를 재조명한다. 세계 3대 패션 사진작가로 불리는 파울로 로베르시, 피터 린드버그, 어빙 펜 등의 작품들을 통해 고흐, 달리, 클림트 등의 명화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전시했다. 사진의 대상이나 구성, 기술은 피카소의 입체파 회화에서 앤디 워홀의 팝 아트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장르를 아우른다. 특별 섹션으로 마련한 ‘보그 코리아’에서는 전통 수묵화의 절제미와 여백이 드러나는 패션 이미지들을 소개한다.
김영태의 편지들: 문인교신전
일정 7월 12일까지 장소 영인문학관
초개 김영태 시인의 서거 10주기를 맞아, 그가 생전 문인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았다. 아울러 시인으로부터 편지를 받은 이들의 자료까지 대여받아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전시했다. 문인들의 편지인 데다가, 두 사람 간 주고받은 편지가 모두 남아 있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그 의미와 특별함을 더한다. 특히 마종기 시인과 주고받은 편지는 160통에 달한다. 안수길, 어효선, 김구용, 박재삼 등 작고한 문인들의 편지뿐만 아니라 초개 선생이 직접 그린 이병주, 최인훈, 최인호 등의 캐리커처까지 만날 수 있다.
◇ book
인생의 재발견(바버라 브래들리 해거티 저·스몰빅인사이트)
탐사 전문기자로 30년간 지낸 저자가 중년을 둘러싼 8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직접 파헤친다. 심리학, 생물학, 사회학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인터뷰와 상실을 경험한 이들의 사례를 통해 중년 이후 삶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전문가와 함께 준비하는 스마트 라이프 디자인(삼성생명 은퇴연구소·미래의창)
연금, 재테크, 상속 문제에서부터 건강, 여가, 관계, 자기계발에 이르기까지 노후 대비에 관련한 전반적인 정보를 담았다. 중장년은 물론 2030세대에게도 도움이 되는 전문가의 현실적인 조언이 실려 있다.
◇ movie
플립(Flipped)
를 연출한 롭 라이너 감독이 2010년 미국에서 발표했던 영화로, 네티즌의 성원에 힘입어 국내 개봉을 확정지었다. 공식 개봉 전부터 네이버에서 영화 평점 10점 만점의 9.45점을 기록하는 등 호평을 얻었다. 포스터 속 ‘누구나 일생에 한 번 무지개처럼 찬란한 사람을 만난단다’라는 문구는 영화 속 주인공의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하는 대사로 애틋한 감성이 묻어난다.
개봉 7월 13일 장르 로맨스 감독 롭 라이너 출연 매들린 캐롤, 캘런 맥오리피, 존 마호니 등
프란츠(Frantz)
상실을 경험한 독일 여자와 비밀을 간직한 프랑스 남자 사이의 거짓과 진실, 용서와 사랑이라는 미묘한 감정을 그렸다. 프랑스와 독일이 겪은 전쟁의 아픔을 실질적으로 담아내는 등 리얼리즘에 초점을 둔 작품이다.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섬세하고 깊이 있게 표현한 여주인공 폴라 비어는 이 영화로 2016 베니스영화제 신인여우상을 받았다. 흑백과 파스텔 톤으로 담아낸 영상은 클래식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개봉 7월 20일 장르 드라마 감독 프랑수아 오종 출연 피에르 니네이, 폴라 비어 등
◇ stage
김씨네 편의점
캐나다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미스터 김’의 인생 후반전과 가족의 모습을 그렸다. 자신의 인생 이야기가 자식을 통해 이어지길 바라는 부모 세대, 그리고 그런 부모와는 다른 정체성으로 살고자 하는 자녀 세대의 갈등을 유쾌하게 풀어나간다.
장소 백성희장민호극장 일정 7월 13~23일 연출 오세혁 출연 장용철, 최현미, 이화정 등
나폴레옹
나폴레옹과 그의 연인 조제핀, 노련한 정치가 탈레랑, 세 사람을 주축으로 한 나폴레옹의 웅장한 여정이 펼쳐진다. 객석과 무대에 40문의 대포가 설치될 ‘워털루 전투’, 다비드의 명화 ‘나폴레옹의 대관식’ 등 역사적 사건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장소 샤롯데씨어터 일정 7월 15일~10월 22일 연출 리처드 오조니언 출연 임태경, 한지상 등
캣츠
화려한 무대와 음악으로 남녀노소에게 사랑받는 뮤지컬 의 오리지널 팀이 내한한다. 이번 공연은 더욱 역동적인 군무와 더불어 의상의 색깔이나 패턴, 헤어스타일 등이 업그레이드돼 이전 공연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장소 국립극장 해오름 일정 7월 11일~9월 10일 출연 맷 안토누치, 애덤 배일리, 로라 에밋 등
1945
동아연극상에 빛나는 작가 배삼식이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1945년 해방 직후, 위안소를 탈출한 명숙과 미즈코의 역경을 통해 요동치는 시대 속 민족의식과 생존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이들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장소 명동예술극장 일정 7월 5~30일 연출 류주연 출연 박윤희, 김정은, 성여진 등
살면서 어려운 일이 많지만 그중 하나가 인간관계다. 아주 뛰어난 사람 주위에는 도움을 받고자, 아니면 뭐라도 배우고자 모여드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은 스스로 친구를 선택하고 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사람들은 아는 게 많아도 겸손해야 성격 좋다고 말하고, 자기 얘기를 잘 들어줘야 충분히 얘기를 나누었다고 생각한다. 모임에서 종종 겪는 일이다. 수치로 계산할 일은 아니지만 10명이 2시간 동안 모임을 하면 한 명당 12분의 시간이 주어진다. 회의를 하거나 개인 발표 시간이 아닌 일반적인 친목모임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이 있다. 모두가 흥미 있어 하는 이야기인지는 관심이 없고 시간을 독차지하고 혼자 말을 쏟아내는 사람을 보면 이젠 불쌍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런 사람은 상황 파악이 제대로 안 되고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킨다. 게다가 그 내용이 남편이나 아이들 자랑으로 가득하면 듣는 사람의 고통은 극에 달한다. 이런 사람일수록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서 남이 얘기하면 안 듣고 딴짓을 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자신이 부자라는 것을 실컷 자랑하고 나서 돈 낼 때는 딴짓하는 사람과 같은 부류다. 혼자 지겹게 떠들어놓고 말 많은 사람은 질색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모임에 갈 때는 남 얘기를 좀 듣겠다는 생각으로 가야 한다. 모두가 즐거워야 할 시간을 독차지하고 혼자 떠드는 시간으로 만들면 안 된다. 말을 할 때도 요점 없이 비슷한 얘기를 마구 나열하면 듣는 사람이 지치게 된다. 그야말로 고문이 따로 없다. 말할 때, 그리고 글을 보면 세상에 그런 천사들도 없지만 실제 행동은 말과 글에 한참 못 미칠 때가 많다. 자기중심적으로 착하기 때문이다. 정의와 예의를 말하지만 실제 행동은 전혀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가만히 다시 쳐다보게 된다. 왜일까. 자신과 남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다르기 때문인가? 독도를 바라보는 일본과 우리의 입장처럼 서로 다른 기준이 있기 때문일까?
옛날엔 바르지 않은 인간들과는 관계단절을 시도하곤 했다. 그러나 나이 들어서는 치명적인 단점이 아니면 한발 물러서서 지켜보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필자도 어느 사람의 오해로 억울한 일을 당한 황당한 경험이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그 사람이 먼저 찾아와 사과한 적이 있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이럴 때 용서를 구하고 또 화해하며 사는 삶이 훨씬 마음 편하고 평화롭다.
필자도 가만히 생각해보니 제대로 사과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 부끄러운 욕심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고 하는 이유를 이제 알겠다. 열 지갑이 여의치 않다고 입을 열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유머를 연구하고 할 말만 조리 있게 하는 것이 더 성숙해 보인다.
그녀는 완벽했다. 아름다운 외모에 성격도 밝았다. 외국어로 부르는 성악을 잘 불러 여러 사람들에게 인기도 높다. 부모에게 받은 유산이 많아 재력도 탄탄하다. 어딜 가나 공주 대접을 받는다. 그런데 결벽증이 있다. 그래서 혼자 산다.
그녀가 결벽증이 심하다는 것은 악수를 거절했을 때 눈치 챘다. 다른 옆 사람들과 차례로 악수를 나눴는데 그녀 차례가 되자 그녀가 악수를 거절한 것이다. 금방 손을 씻었다고 했다.
그녀가 외출한 동안 그녀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친척뻘 되는 집사가 있었다. 차를 마시고 찻잔을 설거지를 하려 하자 집사가 그냥 두라고 했다. 남이 아무리 잘 씻어도 그녀가 나중에 또 씻는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애용하는 특수한 세제가 있다고 했다.
이런 종류의 여성들을 몇 명 알고 있다. 비싸더라도 동네 유기농산품만 사다 먹는다. 일반 시장에서 파는 과일 및 채소류는 농약을 쓰기 때문이란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집에 누가 방문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잠시 앉아 있는데도 늘 옮긴 자리를 걸레로 닦는다. 집안 살림이 번쩍번쩍한다. 외출했을 때는 티슈와 물티슈를 늘 갖고 다닌다. 택배 기사나 고장 난 것을 고치러 기사가 왔다 가면 문고리부터 닦는다. 발자국마다 다 닦는다. 그러니 늘 쓸고 닦고 씻는다. 남들과 같이 식사를 할 때 소리 내면서 먹거나 입가에 음식물이 묻으면 질색을 한다. 찌개처럼 여럿이 같이 떠먹는 음식은 반드시 국자를 달라고 하여 나눠 먹어야 한다. 라면처럼 여럿이 냄비에 달려들어 젓가락으로 떠 가는 것은 용납하지 못한다. 술 냄새가 나거나 흡연 냄새가 나면 질색한다. 심지어 남편과 키스하는 것도 못한단다. 외식을 해도 화장실이 지저분하면 용서 못한다. 재래시장처럼 공중화장실이 있는 곳은 그래서 못 간다. 그래서 음식점 고르기 전에 화장실 청결부터 점검해야 한다.
필자도 중학교 시절까지는 도시락을 싸가지 못하고 매점에서 빵으로 점심을 때웠다. 도시락을 펼치면 밥풀 묻은 젓가락들이 덤벼들어 식욕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비위가 약한 편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본인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본인의 성격이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전생에 북 유럽의 어느 나라 공주였다는 얘기도 한다. 그렇게 믿기 때문에 그 의식이 강하다.
그렇다고 이런 사람을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 그대로 인정해주면 된다. 악수를 꼭 할 필요도 없다. 악수를 하고 안 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냥 그대로 봐주는 것이다.
단체 댄스 레슨에서 첫 시간에 남들과 홀드하는 것을 거부하는 여자들이 종종 있다. 붙잡지 말고 춤을 추자는 것이다. 그러면 바로 돌려보낸다. 체인징 파트너 해가며 같이 춤을 추는데 홀드를 거부하면 자칫하면 사람 무시한다고 싸움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간혹 같이 온 여자끼리만 추겠다거나 장갑을 끼고 춤을 추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것도 어찌 보면 재주이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감염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면역력이 있으면 문제가 없는 것이다. 알면서도 결벽증이 있다면 하기 싫은 것이다. 싫은 것은 싫은 것이다. 그대로 존중해줄 필요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