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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퍼맨을 만드는 여자, 바네사 리
- 영화산업의 메카, 영화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곳. 재봉틀 하나로 ‘할리우드’를 정복한 한국 아줌마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바네사 리(48·한국명 이미경). 그녀의 할리우드 정복기는 어떤 영화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공식 타이틀은 ‘패브리케이터(Fabricator)’. 특수효과 및 미술, 의상, 분장 등을 총칭하는 ‘FX’ 분야에 속해 있는 전문직이다. 그녀가 하는 일은 디자이너의 상상 속에 있던 배우의 의상을 현실에서 재현해내는 일이다. , , , 등 슈퍼히어로의 멋진 의상이 그녀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할리우드 최고 몸값의 패브리케이터 바네사 리를 LA 아트 디스트릭에 있는 그녀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할리우드 No. 1 패브리케이터 “패브리케이터라고 하면 한국에서는 생소할 거예요. 번역을 하면 특수의상 제작자 정도가 제일 맞겠네요. 의상뿐 아니라 원하는 모양의 몸집을 만들기도 하는데 팻 슈트(Fat Suit)라고 불러요. 뚱뚱한 몸이나 괴물, 외계인을 만들 때 사용합니다. 개봉을 앞둔 영화 에서 배우 게리 올드만이 윈스턴 처칠 역을 맡았는데 배우의 몸보다 두 배 가까이나 큰 슈트를 제작해야 했어요. 폼 라텍스와 마이크로비즈라는 소재로 처음 시도했는데 정말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어요. 게리 선생님도 마치 최고의 예술품 같다며 인정해주셨죠.” 바네사 리는 현재 할리우드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탑’ 패브리케이터다. 이는 지난 13년 동안 쌓아온 그녀의 필모그래피만 봐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작업한 영화만 100여 편, 제목만 들어도 반가운 , , , , , , , , , , 등이 그녀의 손길을 탔다. 할리우드의 FX 분야는 철저한 ‘그들만의 세상’이다. 제작사에서 FX 부분을 총괄할 숍(Shop)이나 아티스트에게 작업을 의뢰하면, 다시 그들이 의상, 분장, 헤어, 미술팀을 꾸리는데 보통 인력을 공개 채용하는 법이 없다. 같이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나 누군가의 추천을 통해 인맥으로만 구성된다는 것이다. 언뜻 공정하지 않고 불합리하게 보이지만 한 번은 모를까 실력이 없으면 그다음엔 이 바닥에 발도 붙이지 못한다는 것이 이씨의 설명이다. “철저하게 실력으로만 살아남을 수 있는 진정한 프로의 세계죠. 나는 이 바닥의 이런 속성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요. 생각해보세요. 서른이 훌쩍 넘은 동양 여자가, 영어도 잘 못하고, 더군다나 핸디캡까지 있는 내가 무엇으로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었겠어요? 일 잘하는 거 빼고 미인도 아니고 날씬하지도 않아요(웃음).” 상처받은 명랑소녀 그녀는 두 살 무렵, 백신 접종 부작용으로 소아마비를 앓았다. 두 다리가 굳어진 어린 딸을 등에 업고 어머니는 매일같이 침을 맞히러 다녔고 찜질을 해주었다. 어머니의 정성으로 3년 만에 오른쪽 다리는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끝내 왼쪽 다리에는 장애가 남게 됐다. 하지만 이씨는 명랑소녀였다. 무역업을 하던 아버지 덕분에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고 쾌활한 성격에 친구도 많았다. 학창 시절 내내 오락부장을 도맡아 할 정도였다. 그러나 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모든 것이 달라진다. “우리 가족은 정말 빈털터리가 됐어요. 아빠 치료비로 다 쓰고 쌀을 살 돈조차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 집이 망하니까 친구들이 다 떠나버리더라고요. 그때 알았죠. 마음을 다 주지 말아야 하는구나. 현실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 거죠.” 미대에 진학하는 것이 꿈이었지만 형편상 포기해야 했다. 대신 택한 것이 메이크업 학원. 그림에 소질이 있었고 영화를 좋아한 이씨는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의 한국 사회는 장애를 가진 그녀에게 냉혹하기 그지없었다. “학원을 수료하고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서 메이크업을 해주는 직원으로 취직이 됐어요. 일을 잘하고있는데 일주일 만에 사무실에서 호출이 오더군요. 다리가 왜 그러냐고 묻기에 소아마비를 앓아서 그렇다고 하니까 봉투 하나 내밀면서 다시 연락하겠다고 하더라고요. 한마디로 짤린 거죠.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요. 이후 계속 같은 일이 반복됐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권리 딸이 상처받는 것을 보다 못한 어머니는 과감히 미국 이민을 선택했다. 1993년, 이씨는 그렇게 눈물을 머금고 한국을 떠나왔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그녀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생계 때문에 공인회계사 사무실에 취직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뭔가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신문을 뒤적이다가 패턴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기술을 가르쳐주고 취직도 시켜준다고 하길래 그 길로 등록을 했죠. 낮에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밤에는 패턴을 배웠어요.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더라고요.”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신명나게 하는지, 이씨는 그때 깨달았다고 한다. 실력도 남달라 패턴을 배운 지 6개월 만에 취직이 됐다. 이후 7년간 그녀는 자바(LA 의류산업 중심지)에서 일하면서 고액 연봉을 받는, 소위 잘나가는 패턴사로 자리 잡게 된다. “자바에서 일하는 동안 남편을 만나 결혼도 하고, 딸아이도 낳고 점점 생활이 안정되어갔어요. 그런데 어느 해 딸이 아파서 잠시 일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그때 조그만 신문광고를 보게 됐어요. 할리우드의 한 숍에서 특수의상 패턴사를 구한다는 광고였는데 그게 제 마음을 흔들어놓은 거예요. 정말 하고 싶은 일이었어요.” 이씨는 다시 자바로 돌아가지 않았고, 시급 12달러를 받으며 밑바닥 영화 일을 시작하게 된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던 이씨의 선택을 두고 주위에서는 걱정과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그때 힘을 준 사람이 바로 남편이었다. 남편은 자신이 투잡, 쓰리잡이라도 뛸 테니 원하는 것을 하라며 용기를 줬다. “살다 보면 운명적인 선택의 순간이 오는 거 같아요. 나중에 알았는데 할리우드 쪽에서 신문에 구인광고를 내는 일은 전무후무한 일이었어요. 그런데 광고가 나왔고 내가 그걸 본 거예요. 나는 그때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물론 한동안은 돈이없어 정말 고생을 했죠. 딸아이에게 정부에서 나오는 공짜 분유를 먹여야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래도 우리 가족은 행복했어요. 남편과 함께 지금도 이야기해요. ‘우리 그때 진짜 재미있고 행복했지’라고요.” 슈퍼맨을 만드는 여자 지나고 보니 한국에서의 상처도 자바에서의 7년도, 버릴 것 없는 시간들이었다. 강인한 정신력과 빈틈없는 실력으로 무장된 바네사 리는 할리우드에서 깐깐하기로 이름난 넘버원 아티스트들의 애정을 한 몸에 받기에 충분했다. 특수분장계의 대부 릭베이커, FX 디자이너 패트릭 타투포우로스, 특수효과의 거장 스티브왕, 완벽주의 의상감독 콜린 앳우드…. 할리우드를 쥐락펴락하는 이들은 모두 바네사 리의 스승이자 1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동료이며 친구다. 창의력은 기본, 사고의 유연성과 순발력은 패브리케이터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는다. 보이는 모든 것이 의상 재료가 될수 있고 부품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사물을 볼 때 허투루 넘기는 것이 없다. 특수한 원단은 통달하고 있어야 하고, 각종 신소재에 대한 세미나가 있으면 찾아다니며 공부해야 한다. 슈퍼히어로의 전투 의상을 하도 많이 만들어 전쟁이나 무기에 대해 박사가 됐다. 우주선과 우주복에 대해 연구하다 보니 나사(NASA)에서도 일할 수 있을 정도로 해박해졌다. 실제로 에서 그녀가 만든 우주복을 보고 나사에서 연락이 온 적이 있다고. 의상을 맡았을 때, 팔꿈치 장식을 위해 해체한 스키 부츠가 스무 개가 넘고, 샤키 오닐이 입을 라이트 의상에 사용할 특수 라이트테이프를 찾기 위해 전 세계 전기 회사의 신제품들을 뒤졌다. 늘 화학약품을 다루다 보니 스태프와 배우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그 방면으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이 일은 정말 좋아서 미치지 않고는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스포트라이트는 없어요. 그렇게 치열하게 일하고 고작 엔딩크레디트에 수백 명의 스태프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릴 뿐이죠. 아카데미상을 받을 수도 있냐고 묻는데 ‘패브리케이터’ 카테고리는 없어요. 특수효과 부문에 속해 있으니까요. 돈이요? 물론 적지 않게 받죠. 메이저 제작사가 아니면 의뢰를 못하니까요. 하지만 그것도 천문학적인 돈이 오가는 할리우드 제작 환경 안에서 보면 그렇게 대우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에요. 돈을 벌려면 배우가 되는 게 낫죠(웃음).”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비하인드스토리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숨은 즐거움 중 하나이지만 그야말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그들의 사생활 보장은 스태프들의 프로페셔널 정신이기도하다. 유명 배우들과 찍은 사진을 보여 달라고 하는 사람도 많은데 이럴 때는 좀 난감하다고. 이씨는 여간해서는 배우들과 함께 사진을 찍지 않기 때문이다. 함께 작업하는 ‘동료’로서 동등한 관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폼’ 빠지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는 게 이유다. 그래도 좋은 이야기야 어떻겠냐며 하나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친절한 바네사 리. “게리 올드만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네요. 개인적으로는 게리 선생님이라고 불러요. 내가 만든 팻 슈트(Fat Suit)에 완전히 감동을 받아 먼저 같이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배우와 찍은 유일한 사진이에요(웃음). 딸아이가 연기자가 되고 싶어 한다고 하자 조언을 해주고 싶으니 꼭 촬영장에 데려오라고 할 정도로 자상한 분이에요. 또 배우 매튜 매커트니에게 직접 소개를 해주어서 그가 주연을 맡는 영화 에 참여하게 됐어요.” 숙취 때문에 컨디션이 엉망인 상태에서도 남다른 미모를 뽐내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막내 스태프에게도 깍듯이 인사를 건네던 안소니 홉킨스는 영화 에서 만났는데 무거운 슈트를 입고도 불평 한 번 하지 않던 영국 신사였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그녀가 애써 만든 전자회로 슈트가 아쉽게도 통편집되어 세상에 공개되지 못하자 직접 텐트로 찾아와 아쉬움을 표했다고. 보디슈트를 만들려면 배우들의 정확한 수치가 필요하다면서 나머지는 상상에 맡기겠다는 유쾌한 그녀. 가장 좋아하는 배우인 조니 뎁의 보디슈트를 언젠가는 꼭 만들고 말겠다는 사심(?)도 드러낸다. 꿈의 공장 ‘슈퍼슈트팩토리’ 올해는 바네사 리에게 조금 특별한 해였다. 할리우드에서 일한 지 13년 만에 드디어 자신의 스튜디오를 갖게 된 것이다. 이름하여 ‘슈퍼슈트팩토리(Super Suit Factory)’. 이제 회사의 대표로서 제작사와 FX 숍을 상대하게 되었다. 영화사와 직접 계약을 하기도 한다. 개인으로 활동할 때보다 입지가 훨씬 굳어진 셈이다. 물론 몸값도 뛰었다. 또 하나 강동원 주연의 한국 영화 을 맡게 된 것도 그렇다. 한국 영화가 특수의상에 큰돈을 투자하기란 쉽지 않은데 특별히 은 주인공의 전투복을 위해 할리우드 최고 제작자를 찾았고 이씨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은 아마도 나에게 특별한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워낙 좋아하던 애니메이션이라 잘하고 싶은 욕심도 있고, 최초의 한국 영화라는 점도 큰 의미가 있어요. 한국은 나에게 아픈 기억도 주었지만 솔직히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잘할 수 있었던 부분이 있거든요. 한국인의 근성과 기술은 미국인들이 못 따라와요. 언젠가 나의 경력과 노하우가 한국 영화계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의 팬들에게도 깜짝 선물이 될 만큼, 최선을 다했으니 기대해도 좋습니다.” 한국 배우와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이 늘어나는 만큼, 그녀의 역할도 주목된다. 실제로 이씨는 10년지기이기도 한 할리우드 특수분장 및 헤어 전문가 다이아나 최씨와 함께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언제 그 그림이 완성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원하고 있다는 거지요. 지금은 다이아나도 저도 너무 일이 많아서 스튜디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때가 되면 가능하지 않겠어요? 오늘을 후회 없이 살다 보면 어느덧 내가 바라던 내 일이 되어 있더라고요. 너무 영화 같은 소리만 한다고요? 글쎄요… 뭐 여긴 할리우드니까요!(웃음)”
- 2017-12-1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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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4회 서울대 민족민주 열사 합동 추모제
- 지난 11월 10일 저녁 5시에 제 4회 '서울대 민족/민주 열사 합동 추모제가 서울대학교 84동 백주년 기념관 최종길 홀에서 있었다. 대학 캠퍼스의 단풍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젊은 나이에 공권력에 의해 고귀한 생명을 빼앗긴 열사들이 보지 못하는 단풍을 살아남은 나는 보고 있었다. 그곳에 가는 발걸음이 어찌 무겁지 않겠는가? 밝혀진 열사만 해도 서울대에서만 34명이나 된다.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온 우주라고 설파한 철학자는 파스칼이다. 추모제는 온 우주인 한분 한분의 소중한 꿈과 역사를 되새겨보는 뜻 깊은 자리이다. 우리나라의 잘못된 정치사의 희생자들, 민주 제단에 바쳐진 그들의 피가 헛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살아남은 자들의 책무이다. 바로 잡지 않는 잘못된 역사는 되풀이되기 마련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종철아 잘 가그래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 한 아버지의 이 말이 아프고 또 아팠다. 나는 새끼를 낳은 에미이다. 그 새끼가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데..... 병으로 죽어도 못 보내는 것이 자식인데 공권력에 의해 내 자식이 죽임을 당했는데 할 말이 없다고 하는 아버지의 심정이 어땠을까? 현직 공무원이라 입을 닫을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극심한 고통이 절절이 느껴졌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아들의 뼛가루를 바다에 흘려보내며 한 이 말에 가슴이 미어졌다. 그동안 수없이 울었다. 그 후 서울대 언어학과 박종철 아버지는 공직을 떠나서 아들 대신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분명하다.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행복하게 잘 살도록 하는 것이다. 모처럼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하여 투쟁해온 문재인님이 대통령이 되었다. 지난해 가을부터 민주화의 열망으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꺼지지 않았던 촛불 민심의 승리인 것이다. 그가 끝까지 불망초심하기를 바란다. 사람의 삶은 인사가 만사이다.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 내 코드의 인사를 심으려 하지 말고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여 헌신할 수 있는 인재를 고르게 등용해야만 할 것이다. 모름지기 탕평책을 써야만 한다. 그리하여 참다운 민주주의가 굳건히 뿌리를 내려 국민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국가로 거듭나게 해야 할 것이다.
- 2017-11-1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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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ADEX 2017’ 국방이 국력
- 지난 달 10월에 정책기자단에서 ‘서울 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2017’ 행사를 보러 갔다. 성남의 서울공항에서 열린 이 날은 햇볕이 뜨겁지 않아 하늘을 올려다보며 첨단 전투기들의 화려한 곡예비행을 보기에 알맞은 날씨였다. 세계 최첨단 항공기 및 방위산업 기술의 현재와 미래를 한눈에 조망해 볼 수 있는 이 행사는 17일 개막하여 22일까지 6일간 개최되었다. 우리가 참석한 날은 비즈니스 데이로 세계 국방부 장관과 각 군 참모총장 등 초청 외빈과의 활발한 군사외교와 비즈니스 상담이 이루어질 것이라 한다. 서울공항에 입장하니 4개 동으로 커다란 막사 안에 최첨단 무기들이 전시되어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수많은 국내외의 방산업체에서 자신들의 개발 무기를 치열하게 설명 중이다. 우리나라는 한화와 LIG그룹이 가장 큰 규모로 전시하고 있었고 군소 방위산업체의 꼭 필요한 군수품이 바이어의 발길을 잡았다.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는 96년도 제1회 서울 국제에어쇼로 개최한 이후 2년에 한 번씩 여는 국내 최대의 종합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비즈니스 전문 전시회이다. 국산 생산제품의 수출기회 확대와 선진 해외업체와의 기술 교류를 목적으로 개최되는데 이번 전시회에는 33개국 405업체가 참가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전시회로 기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축사에서 강한 방위산업 역량을 바탕으로 국가 안보가 지켜질 수 있다며 방위산업 지원을 약속했다. 필자의 작은 소견에도 국방비나 군인을 위한 지원은 충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에 평화를 지키려면 우리의 국방이 탄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전시회장에서 다양하고 많은 무기를 보았다. 미래에는 사람이 직접 싸우지 않고 무기로 조정해 전쟁을 치르게 된다니 미래 전쟁에 대비한 무기 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크고 작은 무기전시품 중에 재난 구조용 착용 로봇이 있었다. SF영화에서 보았음직 한 로봇으로 사람이 착용 후 50kg의 짐을 지고 민첩한 행동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로봇은 전쟁 시 뿐 아니라 재난 상황에서 인명구조를 위해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국내의 우수한 항공기와 지상 방산제품 60종 72대가 전시되는데 성능과 국제경쟁력이 입증되어 수출 중인 KT-1 기본 훈련기와 T-50 고등훈련기의 시범비행, 국내기술로 개발한 K-2 전차 K-9 자주포 K-21 장갑차 천마 신궁 천궁 등이 전시되었다. 전시 기간 동안 항공기 시범과 공중 곡예비행을 통해 해외 참관 전문가들에게 우리나라의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제품의 성능을 알릴 계획이었다. 11시 30분 공중 곡예비행이 시작되었다. 굉음을 울리며 날렵한 전투기 한 대가 필자 곁을 스치듯 날아올라 비상했다. 이곳이 실제 전쟁터가 아니니 멋진 비행에 감탄하며 박수를 보내지만 만일 실제 전쟁상황이라면 얼마나 무서울지 가슴이 철렁했다. 평화와 나라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장병들과 안보를 위해 훌륭한 무기를 연구하고 생산하는 방위산업체에 고마움이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멋진 비행에 탄성을 질렀다. 다이아몬드 대형으로 나르는 모습이나 여러 모습이 매우 정교해서 얼마나 훈련을 많이 했을지 짐작하게 했다. 대한민국 공군 특수 비행팀 ‘블랙 이글’은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B로 구성되어 이번 전시회의 하이라이트였다. 팬서비스하듯 보여준 빨간 하트에 파란 큐피드 화살이 지나는 모습은 모두의 미소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이날 에어쇼를 지켜본 많은 해외 바이어들은 우리의 기술을 눈여겨보았을 것이고 수출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 2017-11-15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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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뇌전쟁으로 치매도 예방하고 여가도 즐기고
- 취미(趣味)란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얻기 위해 좋아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필자는 10대 때부터 지금 60대에 이르기까지 바둑을 취미로 삼고 살아왔다. 바둑을 두는 환경은 인터넷이 들어오면서 급격하게 바뀌었다, 예전에는 상대할 사람이 있어야 하고 도구로 바둑판과 바둑돌이 있어야 했다. 지금은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바둑 둘 상대가 사방 천지에 널려 있다. 심지어 바다 건너 일본 선수 또는 중국 선수하고도 둔다. 말이 필요 없기 때문에 외국어 능력도 필요 없다. 바둑돌과 바둑판은 컴퓨터 화면에 다 있다. 이기고 지는 계가(計家)도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자동으로 계산된다. 다시 돌아보는 복기는 물론 전적과 과거 승패 기록도 고스란히 보관된다. 바둑 취미의 장점은 돈이 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치매에 걸리지 않고 천수를 누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 역사상 최초의 바둑책인 를 쓴 반고(班固)는 “우주 대자연의 음양원리를 원용한 바둑은 상대성을 추구하는 놀이다. 이를 즐기며 체득하는 동안 인간은 우주원리에 순응하는 법을 알게 되고 그로서 수명을 늘려 장수할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필자는 해결책이 없어 짜증이 날 때나 엉뚱하게 오해를 받아 속이 상해 있을 때 바둑을 둔다. 또 원인 모르게 기분이 울적해져 혼자 있고 싶을 때도 바둑이 생각나고 구미가 당긴다. 혼자서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해 바둑 방을 두드리면 비슷한 기력(碁力)의 상대가 덤벼든다. 이제부터 무아지경에 빠지는 바둑판에서 두뇌전쟁이 시작된다. 바둑은 흑백의 돌이 목숨을 걸고 서로 많은 집을 차지하려는 싸움이다. 싸움판은 급박하게 돌아간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도록 몰입을 강요한다. 조금 전까지 우울하던 마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물고 물리고 죽고 죽이는 바둑돌의 싸움에 정신은 통일되고 손에는 땀이 난다. 바둑이 끝나면 피곤하지만 마음은 평온을 되찾는다. 이런저런 일로 울적했던 기분들이 리셋되어 평온해진다. 잡념들이 사라져 다른 일을 해도 손에 잡힌다. 이 맛에 바둑을 둔다. 글을 쓰다가 콱 막힐 때, 기계를 수리하다가 고쳐지지 않을 때, 하던 일을 멈추고 인터넷 바둑을 둔다. 바둑을 두면 머리가 깨끗하게 포맷된다. “바둑돌 죽지 사람 죽나” 필자는 고등학교 때 형님으로부터 바둑을 배웠다. 형님의 기력도 보잘것없는 6~7급의 수준이었지만 초보자인 필자를 골려주기 위해 툭하면 바둑을 두자고 졸랐다. 형님을 꺾기 위해 바둑이론을 공부하고 바둑 월간잡지도 뒤적였다. 군대에 입대할 때는 3급 정도의 기력이 되어 일병이 하늘같은 대대장인 육군 중령과 바둑을 뒀다. 가끔은 대대장 관사에 호출되어갔다. 대대장과 바둑을 두는 필자를 고참 들은 못마땅해 했지만 감히 때리지는 못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바둑을 좋아하는 상사를 만났다. 그런데 이분은 너무 승부욕이 강해 반칙을 하곤 했다. 불리하면 바둑돌을 놓을 때 소매로 이미 놓인 바둑돌의 위치를 슬그머니 밀어서 이동시켰다. 그리하여 살아 있는 내 말을 죽게도 만들고 죽어 있는 상사의 바둑돌은 살리기도 했다. 나이와 직급이 있어서 항의하거나 싸울 수도 없었다. 그때 필자의 명언이 탄생했다. 바로 “바둑돌 죽지 사람 죽나”였다. 감사 실장하고도 바둑을 두면서 불합리한 제도로 억울한 처벌 위기에 있는 동료 직원들을 많이 변호해줬다.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장기판의 말은 차, 포, 마처럼 계급 같은 중량감이 있고 가는 길도 다르다. 하지만 바둑은 평등하여 361점 어디에도 비어 있으면 놓을 수가 있다. 하지만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정수도 되고 꼼수도 되며 군사의 매복처럼 암수도 되고 스스로를 옭아매는 자충수도 된다. 아무리 큰 대마라도 두 집을 못 지으면 미생이 되고 두 집을 지어야 완생이 된다. 적을 공격하기 전에 내 말의 안위를 먼저 살펴야 한다. 혼자 떠도는 말은 죽기 십상이다. 아군끼리 연락 체계를 유지해야 안전하고 적을 공격할 때 힘을 발휘한다. 인생도 똑같다. 바둑에 임하는 자세와 작전 요령을 밝히는 열 가지 요령을 위기십결(圍棋十訣)이라고 하는데 모두가 인생살이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주옥같은 말이다. 그 첫 번째가 부득탐승(不得貪勝)으로 승리를 탐하면 이길 수가 없다고 한다. 인생에 있어서도 눈앞의 사리사욕을 탐하다 감옥에 가는 사람도 있다. 열 번째가 세고취화(勢孤取和)로 고립되었을 때는 화평을 취하라는 말이다. 인생도 더불어 살아야지 왕따로는 결코 행복하게 살 수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도 이런 말은 마음속에 크게 간직해야 할 명언 중에 명언이다. 반드시 상대할 사람이 눈앞에 있어야 대국이 가능했던 예전에는 수많은 동호회가 있었지만 요즘은 인터넷 바둑에 접속만 하면 되므로 동호회는 거의 사라졌다. 직장에서도 바로 옆 사람하고 오프라인에서 두지 않고 인터넷에 접속하여 바둑을 둔다. 그 많던 바둑판과 바둑돌도 사라지고 도심의 기원도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인터넷이 세상을 바꾸었다. 바둑을 잘 두려면 바둑교실, 바둑 서적, 바둑전문채널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그러나 바둑으로 생업을 유지하려는 프로가 아니라면 너무 실력 향상에 머리를 싸맬 필요는 없다. 바둑 실력이 하수라면 비슷한 하수끼리 두면서 즐기면 된다. 조급해하거나 승패에 너무 연연해하지 말고 즐겁게 바둑을 두면 된다. 취미는 중독을 경계해야 한다. 도박, 마약, 스포츠, 섹스, 음주와 같이 바둑도 중독성이 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지 모른다는 말처럼 취미에 너무 탐닉하면 건강을 해치거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기도 한다. 밤을 새면서 바둑을 두거나 돈을 걸고 내기바둑을 두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 2017-11-02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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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랑스러운 우리의 천리안 위성을 돌아 보다
- 높고 푸른 전형적인 맑은 가을 날씨가 이어지는 요즘 신대방동의 기상청과 충북 진천의 국가기상위성센터로 천리안 위성을 보러 가게 되었다. 기상청은 우리 생활과 직접 연관이 있는 날씨를 알려주는 곳이어서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는지 호기심과 관심이 컸다. 이상하게도 예전 어릴 때 소풍 가기 전날이면 꼭 비가 왔다. 전날까지도 맑았는데 왜 소풍 당일 날 비가 내려서 즐거운 소풍을 가지 못하고 학교에서 수업을 받아야 했는지 제대로 된 일기예보를 해주지 않은 기상청이 원망스럽기도 했었다. 예전엔 대체로 일기예보를 믿지 않았다. 맑은 날씨라 해서 그냥 나갔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져 낭패를 보았고 비가 내린다는 예보를 믿고 우산을 챙겨 나갔는데 온종일 쾌청해 들고 나간 우산이 매우 거추장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일기예보가 맞는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오후에 비가 올 거라는 예보가 있으면 오후에 꼭 비가 내렸다. 다들 예전과 달리 예보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기상청이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는 우리나라 기상청이 첨단으로 발전해서 필자가 어렸을 때처럼 오보가 많지 않고 정확하다고 알고 있다. 이렇게 우리에게 날씨를 미리 알려주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기상청의 존재 이유가 일기예보만을 위해서는 아니라고 한다. 기상청은 관측과 예보라는 튼튼한 뿌리에 기반을 두고 지진, 화산, 기후변화, 기상 기후산업, 수문 기상, 국제협력까지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기관이다. 국가기상업무는 하늘 땅 바다, 그리고 우주에서 대기와 해양의 상태를 입체적으로 관측하고, 국내외에서 생산된 기상자료를 실시간으로 수집 처리 분배하며, 슈퍼컴퓨터를 활용, 정확하게 분석해 수치예측을 하고, 수집된 다양한 관측 자료와 현재의 기상상태 수치예보모델 결과에 예보관의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으로 예보를 생산하고, 방송 신문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기상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한다. 정확한 기상정보를 국민에게 알려주기 위해 많은 분이 노력하고 열심히 일하는 기상청을 뒤로하고 진천의 천리안 위성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2시간쯤 달려 도착한 국가기상위성센터는 우리나라 최초의 정지궤도기상위성인 천리안 위성을 운영하기 위해 2009년 4월에 신설된 기상청 소속 기관이다. 천리안이라는 명칭은 국민공모를 통해 지어졌다니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위성센터는 높은 건물 등 전파방해시설 때문에 도심에 위치할 수 없어 지방에 유치하였다. 진천센터는 청주와 대전의 위성센터와 협력 업무를 하고 있다고 한다. 기상위성 활용으로 재난재해 분야뿐 아니라 기후변화 분야, 환경 분야, 농업 분야, 해양 분야, 항공분야까지 광범위하다. 하늘을 향한 우리의 꿈은 현재의 상상을 넘어 새로운 미래를 만든다며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도전을 망설이지 않은 국가기상위성센터의 노력으로 천리안위성 1호는 2010년 6월 남미 기아나 꾸르 우주센터에서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천리안위성에서 관측된 기상자료는 천리안 위성을 통해 아시아태평양지역 30여 개 국가에서 수신할 수 있다고 한다. 천리안위성 1호에 이어 더 나은 천리안위성 2A 호가 2018년 우주로 향한다. 차세대 기상 센서가 장착된 천리안위성 2A 호는 광범위한 지역의 기상 현상을 3~4배 향상된 고해상도로 관측한다고 하며 우리 기술로 개발한 우주기상 관측용 센서를 최초로 탑재하여 태양 활동 등 실시간 우주 기상 감시가 가능하고 기후변화, 지구환경 감시, 해양, 항공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하여 세계 최고의 기상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 한다. 천리안 2호와 같은 위성은 미국 일본 한국 세 나라만 보유한 자랑스러운 위성으로 기상위성을 선도할 것이라니 매우 기쁘고 자랑스럽다. 이제 우리나라는 천리안 위성으로 기상위성자료 수혜국에서 기상위성자료 원조국으로 국가의 기상을 높이 세우게 되었다. 날씨예보만이 아닌 기후변화에 의한 국민의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기상청의 활약을 기대한다.
- 2017-10-20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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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베리아 한복판 바이칼(Baikal)호수를 다녀오다
- 바이칼호수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깊은 호수임은 독자들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끄는 호수들 중에 하나 일 것이다. 필자는 지난여름 연해주 고려인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 80주년을 맞아 국제한민족재단에서 주관한 ‘극동시베리아 실크로드 오디세이 회상열차’의 일원으로 희망 대장정을 다녀왔다. 극동 블라디보스톡 기차역을 출발하여 카자흐스탄 알마티까지 6,500여 km를 열차로 이어가는 긴 여정 이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블라디보스톡을 출발했다. 아나콘다 구렁이 같은 커다란 몸체가 서쪽으로 서쪽으로 고개를 치켜들고 달려 나간다. 잠시 후 부터 하늘과 벌판만이 펼쳐져 있는 시베리아벌판에 가르마를 내며간다. 가슴은 열차 지붕 위에 올라앉았고 시선은 막힐 것 없는 지평선 위를 나른다. 저토록 청맑은 하늘과 이토록 넓은 벌판은 희뿌연 미세먼지가 아닌 해 저문 어둠만이 덮어 가릴 수 있을 것이다. 4인실 2층 침대 열차안의 일행 네 명이 준비해온 보드카로 궁색하지 않은 술상이 차려진다. 시베리아 벌판이 어둠에 진하게 물들 듯 우리들도, 열차도 보드카에 취한 듯 흔들리며 간다. 어릴 적 시골집 어두운 종이천장 안에서 타닥대며 뛰어 다니던 생쥐들의 달그락거림이 열차 바퀴 덜컹거림으로 울려져 온다. 밤새 쉬지 않고 달려온 열차 차창에 아침이 밝는다. 어둠을 벗어 던진 대륙의 한 기차역에 내려 선선한 공기를 마셔본다. 경쾌하다, 시원하다. 인공양념 섞이지 않은 담백한 초두부 맛이라 할까 삼삼하게 우러난 맑은 동치미 국물 맛이라 할까. 벌판의 풋내 담겨오는 아침공기를 허파꽈리 잔뜩 끌어들이니 허기가 느껴져 온다. 갑자기 오염되지 않은 공기를 마시고 놀란 내장을 매콤한 국물로 중화시켜주고 싶다. 컵라면을 뜯어 뜨거운 물을 채워온다. 밤새 흔들리며 선잠에 웅크렸던 육신을 매콤한 노크로 잠 깨워 본다. 서서히 한반도 토종의 몸 말초신경에 맥박이 뛰기 시작한다. 이틀을 달려온 열차는 아직도 갈길 먼 나그네 이다. 뉘엿뉘엿 햇살이 낮게 지평선위에 걸터앉는다. 차창을 바삐 스치는 늘씬한 소나무 줄기 불그레한 넓적다리가 황홀하다. 취하지 않고는 잠들 수 없어 너 댓 잔 들이키는 보드카 술기운에 젖은 시선이 여전히 흔들거린다. 저녁노을 문지른 적송 줄기의 쭉쭉빵빵 각선미가 몽롱하게 다가왔다가 멀어져 간다. 내 어릴 적 엄마의 흔들리는 무릎위에서 새근새근 잠들던 때처럼 침대열차도 쉼 없이 덜컹거리며 달린다. 내 코고는 소리를 감추어 주며 달린다. 어디쯤 가고 있는지가 중요치 않다. 몇 시 인지도 알 필요 없다. 열차 복도 창에 햇살이 들면 아침이고 침대칸 차창에 석양이 깔리면 저녁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자작나무의 새하얀 피부를 닮아 들안개도 뽀얗게 물들어 깔린 벌판에 아침햇살이 눈부시다. 차창 밖 저 멀리 녹색 벌판이 끝나는 선에 파란 하늘이 이어져 있다. 다만 내 시력이 초록에서 하늘공간으로 건너지 못할 뿐이다. 수십km 밖 아니 수백km 밖까지 펼쳐지는 대지에 내 시선이 이르지 못할 뿐이다. 밤새 흔들던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열차 중간의 샤워장에 갔다. 우리 돈 3천 원 쯤을 내고 생전 처음 달리는 열차 안에서 샤워를 해봤다. 비눗물은 곧 바로 철길 위로 빠져 나갔다. 내 육신의 비늘 조각과 머리카락 몇 오라기를 시베리아 벌판에 뿌려 놓고 가는 것이다. 3일 전 부터 열차는 쉼 없이 서쪽으로 달려왔다. 기울어가는 해를 따라 꿈틀대며 간다. 사흘 반나절을 옆에서 같이 달려온 벌판과 소나무와 자작나무와 언덕과 야생화가 일시에 사라졌다. 검푸른 바다 같은 물결이 차창 옆까지 들이 닥친다. 우와! 바이칼 호수! 그림으로만 보던 말로만 듣던 바이칼! 자작나무의 희멀건 가랑이 사이로 바이칼의 푸른 영혼이 가득 차 쏟아져 들어온다. 어찌할꼬? 저 푸른 호수에 풀쩍 안기고픈 충동은? 내 어릴 적 북한강변에서 첨벙대며 멱 감던 시절아. 열차야 잠시 멈추어 다오. 걸쳤던 옷 훌러덩 벗어 던지고 맨몸으로 알몸으로 부둥켜안고 으스러지고 싶소. 저 호수 건너편 까마득한 수평선까지 물수제비 던져보고 싶소. 바이칼호수도 반갑다고 물결 잠재우고 수 백 수 천 개의 물수제비 받아들고 품에 안고 있는 2600여 종의 동식물들에게 나눠 줄 것이요. 광활한 대자연. 인류가 20년 동안 마셔도 마르지 않는다는 바이칼. 3,000만 년을 얼고, 녹은 바다 같은 호수. 천지의 어머니 바이칼. 우주 밖에서도 보인다는 바이칼. 나는 잠시 두 발을 적시고 갈 뿐이요. 나는 H2O가 70%인 작은 물방울일 뿐이요. 나의 머릿속에서 평생 출렁이고 있을 것이요. 나는 먼지처럼 작아질 뿐이다.
- 2017-10-1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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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베리아 한복판 바이칼(Baikal)호수를 다녀오다
- 바이칼호수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깊은 호수임은 독자들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끄는 호수들 중에 하나 일 것이다. 필자는 지난여름 연해주 고려인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 80주년을 맞아 국제한민족재단에서 주관한 ‘극동시베리아 실크로드 오디세이 회상열차’의 일원으로 희망 대장정을 다녀왔다. 극동 블라디보스톡 기차역을 출발하여 카자흐스탄 알마티까지 6,500여 km를 열차로 이어가는 긴 여정 이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블라디보스톡을 출발했다. 아나콘다 구렁이 같은 커다란 몸체가 서쪽으로 서쪽으로 고개를 치켜들고 달려 나간다. 잠시 후 부터 하늘과 벌판만이 펼쳐져 있는 시베리아벌판에 가르마를 내며간다. 가슴은 열차 지붕 위에 올라앉았고 시선은 막힐 것 없는 지평선 위를 나른다. 저토록 청맑은 하늘과 이토록 넓은 벌판은 희뿌연 미세먼지가 아닌 해 저문 어둠만이 덮어 가릴 수 있을 것이다. 4인실 2층 침대 열차안의 일행 네 명이 준비해온 보드카로 궁색하지 않은 술상이 차려진다. 시베리아 벌판이 어둠에 진하게 물들 듯 우리들도, 열차도 보드카에 취한 듯 흔들리며 간다. 어릴 적 시골집 어두운 종이천장 안에서 타닥대며 뛰어 다니던 생쥐들의 달그락거림이 열차 바퀴 덜컹거림으로 울려져 온다. 밤새 쉬지 않고 달려온 열차 차창에 아침이 밝는다. 어둠을 벗어 던진 대륙의 한 기차역에 내려 선선한 공기를 마셔본다. 경쾌하다, 시원하다. 인공양념 섞이지 않은 담백한 초두부 맛이라 할까 삼삼하게 우러난 맑은 동치미 국물 맛이라 할까. 벌판의 풋내 담겨오는 아침공기를 허파꽈리 잔뜩 끌어들이니 허기가 느껴져 온다. 갑자기 오염되지 않은 공기를 마시고 놀란 내장을 매콤한 국물로 중화시켜주고 싶다. 컵라면을 뜯어 뜨거운 물을 채워온다. 밤새 흔들리며 선잠에 웅크렸던 육신을 매콤한 노크로 잠 깨워 본다. 서서히 한반도 토종의 몸 말초신경에 맥박이 뛰기 시작한다. 이틀을 달려온 열차는 아직도 갈길 먼 나그네 이다. 뉘엿뉘엿 햇살이 낮게 지평선위에 걸터앉는다. 차창을 바삐 스치는 늘씬한 소나무 줄기 불그레한 넓적다리가 황홀하다. 취하지 않고는 잠들 수 없어 너 댓 잔 들이키는 보드카 술기운에 젖은 시선이 여전히 흔들거린다. 저녁노을 문지른 적송 줄기의 쭉쭉빵빵 각선미가 몽롱하게 다가왔다가 멀어져 간다. 내 어릴 적 엄마의 흔들리는 무릎위에서 새근새근 잠들던 때처럼 침대열차도 쉼 없이 덜컹거리며 달린다. 내 코고는 소리를 감추어 주며 달린다. 어디쯤 가고 있는지가 중요치 않다. 몇 시 인지도 알 필요 없다. 열차 복도 창에 햇살이 들면 아침이고 침대칸 차창에 석양이 깔리면 저녁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자작나무의 새하얀 피부를 닮아 들안개도 뽀얗게 물들어 깔린 벌판에 아침햇살이 눈부시다. 차창 밖 저 멀리 녹색 벌판이 끝나는 선에 파란 하늘이 이어져 있다. 다만 내 시력이 초록에서 하늘공간으로 건너지 못할 뿐이다. 수십km 밖 아니 수백km 밖까지 펼쳐지는 대지에 내 시선이 이르지 못할 뿐이다. 밤새 흔들던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열차 중간의 샤워장에 갔다. 우리 돈 3천 원 쯤을 내고 생전 처음 달리는 열차 안에서 샤워를 해봤다. 비눗물은 곧 바로 철길 위로 빠져 나갔다. 내 육신의 비늘 조각과 머리카락 몇 오라기를 시베리아 벌판에 뿌려 놓고 가는 것이다. 3일 전 부터 열차는 쉼 없이 서쪽으로 달려왔다. 기울어가는 해를 따라 꿈틀대며 간다. 사흘 반나절을 옆에서 같이 달려온 벌판과 소나무와 자작나무와 언덕과 야생화가 일시에 사라졌다. 검푸른 바다 같은 물결이 차창 옆까지 들이 닥친다. 우와! 바이칼 호수! 그림으로만 보던 말로만 듣던 바이칼! 자작나무의 희멀건 가랑이 사이로 바이칼의 푸른 영혼이 가득 차 쏟아져 들어온다. 어찌할꼬? 저 푸른 호수에 풀쩍 안기고픈 충동은? 내 어릴 적 북한강변에서 첨벙대며 멱 감던 시절아. 열차야 잠시 멈추어 다오. 걸쳤던 옷 훌러덩 벗어 던지고 맨몸으로 알몸으로 부둥켜안고 으스러지고 싶소. 저 호수 건너편 까마득한 수평선까지 물수제비 던져보고 싶소. 바이칼호수도 반갑다고 물결 잠재우고 수 백 수 천 개의 물수제비 받아들고 품에 안고 있는 2600여 종의 동식물들에게 나눠 줄 것이요. 광활한 대자연. 인류가 20년 동안 마셔도 마르지 않는다는 바이칼. 3,000만 년을 얼고, 녹은 바다 같은 호수. 천지의 어머니 바이칼. 우주 밖에서도 보인다는 바이칼. 나는 잠시 두 발을 적시고 갈 뿐이요. 나는 H2O가 70%인 작은 물방울일 뿐이요. 나의 머릿속에서 평생 출렁이고 있을 것이요. 나는 먼지처럼 작아질 뿐이다.
- 2017-10-13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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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선(酒仙)들께 드리는 소수자의 변(辯)
-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씀드린다면 안 마시는 것이 아니라 못 먹습니다. 대체로 제 이러한 태도에 대한 반응은 그 까닭이 종교적인 데 있으리라는 짐작으로 채색됩니다. 그래서 때로 저는 뜻밖에도 힘들게 순수를 유지하는 경건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 짐작이 저를 겨냥하는 것을 넘어 제가 속한 종교와 그 교조와 그 종교의 신에 대한 격한 비난을 수반하기도 합니다. 저 때문에 특정한 종교의 2000년 역사와 문화가 한꺼번에 처참하게 모욕을 당합니다. 그런데 어느 편이든 그것이 제 ‘사정’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아닙니다. 제가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은 순전히 생리적인 탓이기 때문입니다. 맥주 한 잔이면 아슬아슬하게 괜찮습니다. 그런데 두 잔을 마셨다가 무척 혼이 난 적이 있습니다. 한창 젊었을 때 일입니다. 손발 끝이 자리자리하고 머리가 이상하게 흔들린다고 생각하면서 서둘러 집에 돌아가 잠자리에 들었는데 새벽에 깨지듯 아픈 두통 때문에 잠이 깼습니다. 그 순간의 괴로움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는지요. 어쩌면 카프카의 에 나오는 벌레가 된 그레고르 잠자의 아침이 이러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조금은 경멸의 분위기를 담고 꽤 살기 힘들었겠다고 말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어떻게 그 몰골로 이제까지 살아남았느냐고 연민의 정으로 저를 바라보는 친구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술 한 잔도 마시지 못하면서 어찌 감히 인생을 알겠다는 학문의 자리에서 고개를 내밀고 다니느냐고 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정직하게 말씀드린다면 불편한 것도 없지 않았고, 힘든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괴로운 것은 술을 마시고 싶다는 희구를 넘어 마셔야만 한다고 스스로 다짐해본 적이 있는데 몸이 견디지 못해 이를 감행하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면서 스스로 느낀 좌절감입니다. 까닭인즉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인류의 아득한 역사, 그것도 종교사를 살펴보면 술이 없는 의례는 없습니다. 그렇게 단언해도 좋을 만큼 술은 ‘종교적’입니다. 무릇 종교라는 문화는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삶 속에서 절감하면서 그 한계를 넘어 바로 그 유한성에서 비롯하는 문제를 무한성 속에서 풀려고 하는 꿈을 구체화한 것인데, 그 넘어섬의 가장 직접적인 것이 다름 아닌 지금 여기의 나로부터 벗어나는 일입니다. 엑스터시(ecstasy, 脫自)라고 하죠. 일상에서는 겪지 못하는 황홀경의 경험이라고 서술되기도 합니다. 문제가 사라지는 거니까요. 종교의 가르침은 대체로 초월적인 개념, 신성한 언어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벗어나는 일은 어떤 ‘비일상적인 힘’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종교에 따라 신(神)으로, 기(氣)로, 옴(Om)으로, 우주적인 원리 등으로 제각기 다르게 묘사됩니다. 하지만 결국 ‘신비스러운 힘’에 의한 것임을 표현하고자 한 것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힘의 간여를 기다리기 이전에 인간은 탈자적인 경험을 초래하는 일을 스스로 마련했다는 사실입니다. 술이 그것입니다. 그 술을 소마(soma)라고 일반화하여 일컫는데, 이는 고대 인도의 베다시대 의례에서 마시던 즙의 이름을 차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성급했는지, 아니면 신의 간여가 너무 더뎠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중요한 것은 탈자의 황홀경을 인간은 술을 통해 스스로 마련하면서 그것이 낳는 ‘더 이상 문제없음의 희열’을 미리 몸으로 경험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이에 근거한다면 술 취함은 술을 마시는 사람이 의식을 하든 않든 가히 ‘종교적’ 경험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이런 사실은 최근에는 이른바 ‘화학적 엑스터시(chemical ecstasy, 음주)’와 ‘종교적 엑스터시’가 과연 같을까 다를까 하는 격한 논쟁을 일으키면서 이제는 이 주제가 뇌과학을 중심으로 한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의 새로운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종교학을 공부한다는 주제에 술을 먹어야, 술에 취해봐야겠다는 욕심을 감히 부릴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끝내 이루지 못했습니다. 술을 먹지 못해 경험한 좌절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술을 못 마시는 소수자의 자리에서 음주문화를 바라보는 ‘재미’도 없지 않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술은 종교적이다’라는 맥락에서 제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술 취함’이 아니라 ‘술에서 깸’입니다. 깸은 황홀경의 파괴이고 문제없음에서 문제있음에로의 회귀임에 틀림없는데 ‘왜 취함에 머물지 않고 깸에로 되돌아오는가?’ 하는 멍청한 질문을 하고 싶은 겁니다. 이른바 주선(酒仙)을 기리는 그 숱한 향기롭고 그윽한 운문(韻文)들이 동서고금을 망라하고 쌓이고 쌓였는데 그 내용인즉 거의 깸에 대한 아쉬움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예 거기 머물면 어떻습니까? 아주 못된 작위적인 질문인 줄 저도 압니다. 그러나 취함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아쉬움을 지닌 채 깸의 자리에 돌아와 여전히 취함에서의 경험, 곧 ‘자기를 벗어난 자기’의 정서를 지니고 거기에서 비롯하는 논리와 판단과 결정으로 일상을 구축해 나가는 모습이 저에게는 감히 ‘보인다’고 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게 취함과 깸으로 점철하는 주체들 간에는 그 나름의 독특한 유기적인 관계가 구조화되어 그렇다고 하는 자의식조차 없을지 몰라도 저 같은 소수자의 눈에는 어쩐지 ‘취함의 풍토’에서 온갖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삶이 누구나 속한 삶의 틀 전체의 아귀를 뒤틀리게 하지는 않는지 염려스러워지는 것입니다. 종교의 문화사를 훑어보면 소마를 마시는 일은 일반적으로 의례에서만 허용됩니다. 그런데 의례는 일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일상을 단절하고 넘어서는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저어해야 할 것은 ‘사건을 일상화’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된 자리에서는 자칫 ‘병든 인식’만이 지어지기 때문입니다. 황홀한 즐거움에 흠을 낼 뜻은 하나도 없습니다. 실은 술 마시는 일이 은근히 부럽습니다. 그러나 동성애자의 인권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술 못하는 소수자에 대한 관심도 가지시면서 이런 발언도 한 번쯤은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나 저는 술을 마시지 못한 제 생애를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학교에서 은퇴할 때 다음과 같은 후배의 ‘헌사(獻辭)’를 받은 바 있기 때문입니다. “정 교수가 10여 년 전에 단란주점과 룸살롱이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을 때 나는 참으로 당황한 가운데 ‘거기에는 수업료가 필요하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그 후에도 몇 번 그런 말이 오고갔지만 우리 사이에 아직 수업료가 오간 적은 없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정 선배에게 이렇게 대답하려 한다. ‘이제부터는 수업료도 필요 없다’고. 정 교수는 수업료를 내본 적이 없는 인문학자의 표본으로 남아 있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저녁 회식자리에서 막걸리 몇 잔에 거나해지면 ‘사랑의 미로’를 그럴 수 없이 달콤하게 부르던 이 헌사를 읽어준 후배 교수는 벌써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닙니다. 진작 수업료를 내고 단란주점이든 룸살롱이든 함께 갔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새삼 저를 아프게 합니다. 아무래도 소수자는 소수자일 수밖에 없어 소수자인지도 모릅니다. 이른바 주선(酒仙)을 기리는 그 숱한 향기롭고 그윽한 운문(韻文)들이 동서고금을 망라하고 쌓이고 쌓였는데 그 내용인즉 거의 깸에 대한 아쉬움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예 거기 머물면 어떻습니까?
- 2017-09-2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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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지표 나이에 맞게 바꿔야
- 얼마 전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봄에 받은 생애전환기건강진단결과에 대한 상담이었다. “건강관리를 열심히 하였다.”면서 경계선을 넘나든 두어 가지 건강지표를 지적하였다. 보관하고 있는 지난 몇 년 동안의 국가건강검진결과를 살폈다. 세월이 흘러도 보험공단의 건강목표가 변동되지 않았음을 발견하였다. 학계에서는 건강목표의 개선을 위한 논의가 활발하다. ‘우리의 실정과 많은 차이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지 오래 되었다. 사회에서는 지표기준을 병원ㆍ의사마다 다르게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관심이 많은 체질량지수를 비롯하여 혈압ㆍ당뇨ㆍ고지혈증 대사증후군도 건강목표가 변하지 않았다. 젊은 시절에 날씬했던 몸매는 나이가 들면서 풍만해진다. 장년을 지나 노년기에 들면 다시 야위어 간다. ‘만물이 생성ㆍ소멸하는 우주의 이치’다. 힘은 사그라지고 키도 점점 줄어든다. 몸도 가벼워지지만 그 속도가 키의 그것을 따르지 못할 뿐이다. 몸 상태는 나빠지지 않았는데도 결과적으로 체질량지수는 수치상으로는 조금씩 오른 상태다. 국민은 자신의 건강을 지나치게 걱정하게 되는 지점이다. 국가검진을 신뢰하기 위하여 나이에 따라 건강지표를 바꿔야 하는 이유다. 나이가 들면서 누구나 건강 걱정이 앞선다. 날마다 체중계에 오르고 피를 뽑아서 당뇨 체크를 하고 혈압을 잰다. 이제는 심근경색, 뇌졸중 등 돌연사도 혈압과 상관관계가 크지 않다는 연구결과를 접한다. 모두가 생각하고 있는 고정관념은 무너지고 있다. 국가적 차원 연구개발로 돌연사 원인을 찾아야 한다. 변화하는 세상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여야 한다. 최근에는 위암환자에게 한두 잔의 막걸리가 좋다는 소식도 들었다. 암환자에게 금기시 되었던 음주문제다. 필자가 대장암 확진을 받았을 때다. “친구들과 모임에서 술 한 잔도 못한다면 너무 삭막할 것 같다‘고 의사에 말했었다. ”적당한 음주는 괜찮다.“는 답변을 들었다. 귀를 의심할 지경이었다. 막걸리 한사발로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얼마 전 암학교 5년을 졸업하였다. 국가검진에서 흡연과 음주는 공공의 감시대상이다. 필자는 20년 전에 금연에 성공하였다. 그후로 담배를 한 개비도 피우지 않지만 지금까지도 과거흡연을 문제로 지적한고 있다. 금연하고 몇 년을 지나야 하는가. 음주를 보자. 알콜 분해 능력에 따라 개인별 음주량 차이가 많다. 맥주 한모금도 못하는 사람이 있고 상당량을 들이켜도 까딱없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평가기준은 같다. 보험공단은 국민건강을 관리하면서 데이터도 많이 축적하였다. 건강지표를 나이에 따라 20ㆍ50ㆍ60대 등 세대별로 세분화하거나 소년ㆍ청년ㆍ장년으로 구분하여 설정할 필요가 있다. 자기 몸에 맞는 목표가 필요하다. 보험공단이 정한 획일적인 목표가 아닌 적어도 나이별 건강지표가 마련되어야 한다. 우리국민은 그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 세계 최고수준의 국민건강복지에 감사한다. 대한국민의 긍지를 갖는 대목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건강지표 나이에 맞게 바꾸라’고 촉구하면 지나칠까.
- 2017-09-08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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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을 낭비한 죄
- 영화 에서 주인공(스티브 맥퀸 분)이 꿈속에서 무죄를 주장한다. 재판관은 이렇게 판결한다. “너의 가장 큰 죄는 인생을 낭비한 죄다.” 영화 대사이지만, 인생을 살면서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 않은지 고민해볼 필요성이 있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을까? 마냥 바쁘게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제대로 살고 있는지 의문이 갈 때가 있다. 너무 사소한 일에 매달리기도 한다. 때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간다는 단순한 의미에서 세태를 받아들인다. 그중의 하나가 SNS 사용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혹자는 SNS 친구가 8000여 명이라고 자랑하기도 한다. 그 많은 친구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SNS 사용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자기의 SNS 계정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자기도 상대에 관심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조사(2017, 1)에 따르면 스마트 폰 사용시간이 20~30대는 2시간, 40대 1시간 30분, 5060대 1시간 40분이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 식사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 등 생리적 필수 시간과 근무시간, 은행 가는 시간 등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에 사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은 4시간 정도에 불과하다. 자기 인생을 위해 써야 할 그 시간 중에서 절반인 2시간을 스마트 폰 사용에 할애함은 생각해 볼 문제다. 서양인의 격언에 이런 문구가 있다. “나쁜 포도주를 마시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SNS 사용이 나쁜 일은 아니어도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내용을 단순히 옮기는 일이라든지 상대방이 이미 알고 있거나 바라지 않는 정보를 생각이 없이 퍼다 나르는 일이 그렇다. 소통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카톡이나 밴드에서도 비슷한 일이 비일비재하다. 너무 많은 시간을 불필요한 데 쓰고 있다. SNS 사용의 장점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사용하지 않아도 될 일에 시간을 쓴다면 귀중한 인생을 낭비하게 된다. 4차 산업혁명의 변화가 눈앞에 다가온 오늘날 전문가로 성공한 사람들은 스마트 폰 사용시간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점을 관심 있게 보아야 한다. 인공지능의 세계적 전문가이며 의 저자로 유명한 인공지능의 세계적 전문가 유발 하라리 교수는 아예 스마트 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다. 카카오 이사회 의장 김범수 씨도 비슷하게 산다. “나는 카카오톡 등 SNS를 최대한 안 한다. 검색에 의한 지식과 정보는 잡식이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대신에 “매일 1시간 정도를 온전히 책 읽기에 할애한다.”라고 말한다. 인간은 주어진 인생을 제대로 쓸 의무가 있다. 의무를 소홀히 한다면 죄를 짓는 바와 진배없다. 영화 대사처럼 인생을 낭비하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SNS 뿐만 아니라 과연 우리는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 않나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수명이 길어졌다고는 하나 우주의 억겁 시간에 견주면 극히 짧은 인생이다. 낭비할 시간이 없다.
- 2017-09-05 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