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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이브에 간 장례식장
- 크리스천으로 생활한 지 40년이 넘다 보니 크리스마스 하면 교회 성탄절 행사가 우선적으로 떠오른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교회에서 예배드리다가 성탄절에 맞는 성찬식은 의미가 있었다. 성탄절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어서 즐겁게 보냈다. 어릴 적에는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 받는 즐거움도 있었다. 결혼해서 아이들에게 몰래 선물 준 일도 기억이 난다. 이런 기억들 말고 필자에게는 크리스마스에 얽힌 또 다른 추억이 있다. 20대 때 대학원에 다니고 있을 때다. 논문 준비로 부심하던 어느 크리스마스이브 날에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왔다. 형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충격에 아버님이 그만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불행은 어깨동무를 하고 온다더니 겹친 악재였다. 만사 제쳐두고 친구 집에 가서 빈소를 지키면서 밤을 새웠다. 크리스마스인 다음 날 새벽에 발인을 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무척 많이 내렸다. 다른 일이 있어 지방의 장지까지는 동행하지 못했다. 올 것이라고 믿고 연락한 친구에게 고마웠다. 그 후로 그 친구와 더 가까워졌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나 크리스마스이브에 그 친구에게서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다. 우연의 일치인지 같은 날짜에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이다. 아내의 불평을 뒤로 하고 가족과 세운 모든 크리스마스 계획을 포기하고 성내 아산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 영안실에서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 밤늦게 취해 혼자 병원 앞 다리를 건너왔다. 바람이 몹시 불었다. 어려울 때 같이할 수 있어야 친구다. 즐거운 날에 슬픔을 같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친구는 필자가 반드시 올 것이라 믿고 부담을 느끼지 않고 연락을 했다. 그러다 보니 친구와의 신뢰가 더 깊어졌다. 그 친구는 그 뒤 역경을 딛고 성공했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같이 여행도 가고 깊은 속도 털어놓는 관계가 되었다. 친구가 있는 근처에 가서 연락하면 만사 제쳐놓고 나온다. 친구의 행동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인간관계는 주는 만큼 받는다. 풍파 많은 세상이다. 어떤 일을 겪을지 알 수 없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등질 때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다. 그런 친구가 세 명만 있으면 세상살이가 외롭지 않을 것이다
- 2016-11-29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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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 변호사의 법률 가이드] 가정 포기남도 이혼 청구할 수 있나?
- 사례> A는 B와 1968년 초부터 동거하다가 1971년 12월 15일 혼인신고를 마친 법률상 부부로, 둘 사이에 자녀 C를 두었다. A는 B와 서울에서 혼인생활을 하던 중 1981년경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사업을 시작하면서 그곳으로 이주하여 B 및 C와 함께 생활하다가 1987년경 스리랑카로 이주하여 건설업체 생산업체 등을 운영하였다. A는 1995년 3월경 여자 문제로 부부싸움을 한 후 집을 나가 연락을 끊고 스리랑카에서 알고 지내던 노르웨이 여성과 스웨덴에서 동거를 시작하였다. B는 A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자 1995년 6월경 A가 운영하던 사업체들을 정리한 후 귀국하였다. 그 후 A는 귀국하였으나 B의 연락을 피하였고, 2006년경 노르웨이 여성이 사망할 때까지 스리랑카에서 동거하며 생활하였다. A와 B는 A가 최초 가출한 이후 자녀 C의 결혼식장 등에서 잠깐 만났을 뿐 거의 왕래를 하지 않고 16년 넘게 서로 떨어져 별개로 생활을 영위해왔다. A는 자녀 C가 결혼할 때 상당한 돈을 지원하였다. B는 귀국한 이후 시댁 식구들과 연락하거나 시댁을 방문한 적이 없었고, 투병 중인 시아버지를 문병하거나 시아버지를 비롯한 시댁 식구들의 장례식에 참석한 적도 없었으며, 자녀 C도 거의 왕래가 없었다. B는 A와 혼인생활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고, 혼인생활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한 상태다. A는 B를 상대로 이혼청구를 하였다. A의 이혼 청구는 인용될까. 혼인생활의 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원칙적으로 그 파탄을 사유로 하여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이 민법의 기본적인 태도이나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할 수 있다. 위의 사례에서는 장기간의 별거 및 혼인 파탄에 관하여는 다른 여자와 장기간 동거한 A에게 주된 책임이 있으나 자녀에 대해서는 최대한 배려를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위의 사례에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B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A가 가출하여 다른 여자와 동거하였지만, B가 시댁과 따로 생활하면서 B는 물론 자녀 C의 시댁과의 유대관계도 사실상 단절되었다. 또한 B가 그 유대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거나 A로 하여금 가정에 복귀할 수 있도록 갈등원인을 제거하고 관계를 복원하기 위한 시도를 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위와 같이 혼인 실체가 완전히 해소되는 과정에서 피고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보기도 어려우므로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에 대한 인용 가능성을 신중하게 고려할 수 있다.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지를 판단할 때는, 유책배우자의 책임의 양태·정도, 상대방 배우자의 혼인 계속의사 및 유책배우자에 대한 감정, 당사자의 연령, 혼인생활의 기간과 혼인 후의 구체적인 생활관계, 별거기간, 부부간의 별거 후에 형성된 생활관계, 혼인생활의 파탄 후 여러 사정의 변경 여부, 이혼이 인정될 경우의 상대방 배우자의 정신적·사회적·경제적 상태와 생활보장의 정도, 미성년 자녀의 양육·교육·복지의 상황, 그 밖의 혼인관계의 여러 사정을 두루 고려하여야 한다. 위 사례의 경우 대법원은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예외적으로 인정하였다. 따라서 A의 이혼 청구는 인용된다.
- 2016-11-2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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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가 만난 사람] 가톨릭관동대학교 국제성모병원 호스피스 담당 이인순 수녀
- 올해에도 노벨문학상 유력 수상 후보로 거론됐던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소설 에서 “죽음은 삶의 대극(大極)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잠재해 있다”고 말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일상과 무관하고, 삶과 거리가 있게 느껴지지만 사실 죽음은 늘 우리와 함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대단히 죽음에 인색하다. 입에 올리는 것마저 거북해한다. 매일 죽음을 접하는 사람은 다르게 느낄까? 이 단순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가톨릭관동대학교 국제성모병원 마리아 병동(호스피스 병동)의 이인순(李仁順) 수녀를 만났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사진 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저는 죽음이 삶의 완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인간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니까요. 하루하루 죽어가는 존재라는 이야기도 있고요. 모든 여정에는 그 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가 던진 우문(愚問)에 이인순 수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도 소인의 입장에선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매일 죽음을 맞닥뜨리는 일이라니. 일이 어렵거나 도망치고 싶을 것 같다고 얘기했더니 이인순 수녀는 되레 의아해한다. 소임받은 일에 의문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인순 수녀가 이 호스피스 병동에 부임한 것은 국제성모병원이 개원한 2년 전.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에서 근무하다 수녀회로부터 소임 이동 명을 받고 이곳 병원의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격이 필요한데, 이 수녀는 간호사이면서도,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 대학원 과정을 이수했다. “물론 이곳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에겐 이곳 일이 쉽지만은 않아요. 다들 젊은 나이이기도 하고요. 24시간 교대근무를 하는 간호사들은 환자와 가족들과의 만남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은데 병동에서 함께 산다고 볼 수도 있죠. 돌보던 환자가 돌아가시면 습(襲)까지는 아니지만 시신을 정성껏 닦고 새 옷을 입혀드립니다. 그리고 장례식장으로 보내드리는 일까지 모두 직접 해요. 스트레스도 적지 않아요. 그래서 함께 일하는 팀원들의 소진 예방을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합니다.” 가족이 치료 대상이 되는 이유 이렇게 어려운 일인 호스피스는 무엇일까?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말 그대로 더 이상 적극적인 치료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보다는 통증 경감과 기타 신체적 증상 조절, 심리·사회·영적 돌봄을 통해 ‘남은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진행되는 의료서비스를 말한다. 완치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죽음만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생의 마감과 가족과의 이별을 돕는 것이 목적이다. 정부에선 지난해 7월부터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국민건강보험 적용 대상으로 지정해 운영 중이다. 국민건강보험에서는 말기 암 환자만을 대상으로 하지만, 앞으로 그 대상이 다른 질환의 환자까지 확대될 예정이다. 현재 이인순 수녀가 있는 마리아 병동에는 33개 병실이 있다. 환자가 머무는 시간은 평균 한 달 정도. 물론 길면 두 달, 짧으면 일주일 이내에서 몇 시간까지 차이가 있다. 호스피스 병동이 일반 병동과 다른 것 중 하나는 바로 ‘가족’에 대한 관점이다. 호스피스 병동에선 가족도 돌봄의 대상으로 바라본다고 이 수녀는 말한다. “‘사별 상실 스트레스’라는 말이 있어요. 말 그대로 가족을 잃은 상실감이죠. 보통은 13개월에서 3년 정도면 사별 상실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다고들 해요. 하지만 그 이상 길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그 정도 되면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죠. 여전히 배우자와의 사별이 가장 큰 충격, 즉 삶의 스트레스 1위이지만 최근에는 형제·자매와의 사별도 그 충격이 매우 큰 것으로 보고되고 있어요.” 이러한 사별을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는 비슷한 고통을 겪은 다른 사람들과 슬픔을 나누는 것이라고 한다. 사별의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에겐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별 상실 스트레스를 겪는 분들이 말합니다. 자녀나 가족들로부터 ‘이제 그 얘기 좀 그만해. 잊을 때도 됐잖아’라는 말을 듣는다고요. 죽음을 터부시하고 외면하고 싶은 심리가 있으니까, 고인에 대한 이야기도 못 꺼내게 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 태도는 사별 가족 모두에게 좋지 않아요. 심한 경우 50년이 지나서 사별 상실의 슬픔이 터져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사별을 겪었던 당시에 상실의 슬픔을 충분히 표현하거나 극복하지 못한 채 마음속 깊이 묻어두고 건드리지 않았던 것이 결국은 표출되고 마는 것이지요. 이러한 슬픔은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나’와 ‘슬퍼하고 있는 그 당시의 나’를 대면하고 인정하면서 극복해나가야 합니다.” 병명 알고 죽음 맞는 환자 적어 현재 호스피스 병동은 말기 암 환자를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일단 입원하면 모든 환자가 암 환자다. 그러나 실제로 병명과 상태를 정확히 알고 오는 환자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이 수녀의 설명이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가족에게 권하는 것이 ‘진실 통고’ 혹은 ‘나쁜 소식 전하기’예요. 환자의 알 권리를 존중하자는 것이지요. 환자에게 병명이나 의료적 상태를 정확히 알리고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보호자, 즉 자녀분들이 당사자들에게 말기 암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아요.” 환자에게 가벼운 병명으로 둘러대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 미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왜 이런 거짓말을 하는 걸까? “‘진실 통고’를 권하면 보호자들 반응이 대부분 비슷해요. ‘아마도 충격을 받으실 겁니다, 얼마 안 남으셨는데 꼭 그런 얘기까지 해야 하나요, 삶의 끈을 놓으실 것 같습니다’ 등등 이유가 많습니다. 하지만 삶의 주인공은 나 자신, 환자 본인이잖아요. 자신의 남은 삶을 삶의 주인이 갈무리해야 하는데, 그것을 자녀들이 막는 셈이죠. 환자의 권리를 앗아가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본인들에게 진단명이라는 이름으로 말기 암을 알리고 현재의 의료적 상태를 알렸을 때 심리적으로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만약 환자에게 진실 통고를 할 때 심적 부담이 된다면, 보호자가 그 짐을 떠안을 필요는 없어요. 원래 그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의료진의 몫이니까요. 가족 중에 말기 암 환자가 있다면 환자는 물론이고 가족 모두가 환자 상태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손주들, 즉 어린아이까지요.” 어린아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이 수녀는 말한다. 어린아이들이 놀란다는 이유로 혹은 어리다는 이유로 부모 사별 현장 또는 조부모 사별 현장에서 배제된다. 결국 남는 것은 기억뿐인데, 부모와의 마지막 추억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수녀의 이야기다. 병명을 확실하게 언급하지 않고 숨기더라도, 환자는 병 진행에 따른 본인의 몸 상태의 변화나 병동의 환자들, 주변 분위기를 보고 눈치를 채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 환자는 자신이 어떤 상태라는 걸 안다는 사실을, 또 가족은 환자가 눈치 챘다는 것을 알아도 입을 닫는다. 서로가 서로를 안타까워하며 현실을 외면하고 숨기는 것이다. 슬프게도. 시한부 환자가 겪는 5단계 그렇게 알게 된 말기 암에 대한, 본인의 몸 상태에 대한 환자의 심리적 반응은 어떨까. “호스피스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zabeth Kubler Ross)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5단계로 설명했어요. 맨 처음엔 부정하죠. 결과를 믿지 않고 다른 병원을 찾아가요. 그러나 같은 결과를 듣게 되지요. 그럼 ‘하필 내가 왜?’라며 자신이나 가족 또는 병원 직원, 더 나아가 신에게까지 분노를 직접적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환자가 존경과 이해와 지속적인 관심을 받으면 격한 분노가 한결 누그러집니다. 진실과 인내가 필요하죠. 그러면서 사실을, 죽음을 인지하지요. 하지만 타협하는 과정을 거쳐요. 종국에는 신과의 타협입니다. 그것이 끝나면 우울해지고 수용하는 과정을 맞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만나는 환자들은 반드시 이 순서대로 감정 상태를 보이지는 않아요. 감정의 기복이 큽니다.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말들이 오갔는지에 따라 완전히 달라져요.” 그렇게 죽음을 수용하는 과정을 거친 후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어떤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은 죽음일까. 또다시 튀어나온 모호한 질문에 이 수녀는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분명하게 해줬다. “그 전에 바르게 사셔야 해요. 잘살아야 잘 죽을 수 있는 것이지요. 흥청망청 살다가 인생 말년에 웰다잉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가족과의 불협화음이 있는 경우의 환자들은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아요. 마지막까지 외롭고 힘든 과정을 거치게 되더라고요. 환자 본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확실하게 의사표현을 해서 정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특별히 경제적인 문제는 남은 가족한테 떠넘기지 말고 본인이 해결하셨으면 좋겠어요. 사별의 아픔을 겪는 가족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남기는 셈이니까요.” 냉정하게 들릴 수 있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죽음 역시 인생의 방점이고 현실이니까. 로맨틱할 이유도, 동정만 할 일도 아니다.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해서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자택 임종’ 하고 싶어도 못해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의학적으로 임종 시기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단다. 때문에 그 시기가 가까워지면 환자를 임종실로 모시고 차분히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가족들과 이별할 시간도 마련한다. “임종실을 해밀방이라고 불러요. 해밀은 비온 뒤 맑은 하늘을 뜻하는 우리말이에요. 해밀방으로 옮겨지면 환자와 가족들이 그간 하지 못했던 말,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라고 권해요. 서로가 청할 것이 있으면 청해서 용서받고, 화해하라고요. 이런 과정은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도움이 돼요. 한번은 의식이 없는 아버지(환자)와 가족 모두가 마지막 인사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환자의 의식이 살짝 돌아와, 네가 했던 말 다 들었다고 하면서 고맙다고 표현하신 거예요. 환자의 큰아드님이 감격스럽고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가셔서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환자는 의식이 없어 반응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귀는 열려서 듣고 있었던 거죠.” 그렇게 환자가 임종하면 이 수녀와 담당 간호사는 고인의 몸을 닦고 준비해뒀던 옷, 생전에 좋아했던 옷으로 갈아입힌다. 이 수녀는 이 과정을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보람 있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에 피를 토하는 환자가 있어요. 그러면 고인의 얼굴을 잘 닦아드리고 정돈된 모습으로 가족과 마지막으로 인사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드려요. 그러면 가족들이 기억하는 고인의 마지막 모습은 피 토한 흔적 없는 깨끗하고 편안한 모습이에요. 그 모습에 가족은 위로를 받아요. 편한 얼굴을 보고 편하게 돌아가셨다고 믿고 싶은 거죠.” 환자들은 생의 마지막 장소로 병원을 어떻게 생각할까. 사실 많은 환자들이 임종 장소로 집을 원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병원이 선택되는 이유는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이다. “집에서 환자를 24시간 간호한다는 것이 쉬운 문제가 아니잖아요. 환자를 돌보는 문제도 있지만,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고 난 뒤에도 문제가 있어요. 사망 확인을 위한 행정적인 절차가 꽤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호자들이 겁을 먹는 경우가 많아요. 죽음의 현장이 자연사임에도 불구하고 죽음 자체가 익숙하지 않고 낯선 것이니까요. 죽음을 터부시하는 문화의 영향이 지배적인 거죠. 현재는 꼭 가정에서의 임종이 아니어도 가정형 호스피스 제도를 통해 호스피스 서비스를 가정에서 받으실 수 있어요. 올 3월부터 시범사업을 시행 중인데, 병원에서와 같은 돌봄을 가정에서 받을 수 있고 돌봄 제공자들이 연계되어 가정으로 방문합니다. 환자들이나 가족들의 반응도 좋아요.” 죽음 앞에서 가족들의 모습은 어떨까. 이 수녀는 예외 없이 모두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수고했다. 고통 없는 좋은 데로 가라”고. “다들 그러세요. 고생 많았다. 수고했다. 고통 없는 데로 먼저 가라고 하면서 덧붙이는 말이 있어요. 다시 만나자고. 아마 우리네 민간신앙이 바탕에 깔렸겠지만, 죽음 너머에는 여기가 아닌 어딘가가 있다고 믿는 것이죠. 그래서 이야기해요. 좋은 곳에 먼저 가 있으라고. 다시 만나자고.” 이 수녀는 마지막으로 잘 죽는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송나라의 주신중(朱新中)이 훌륭한 죽음에 대해 5멸(五滅)의 실천을 이야기했어요. 멸재(滅財), 재산을 남기지 말고 죽을 것. 멸원(滅怨), 원한을 남기지 말 것. 멸채(滅債), 남에게 빚을 남기지 말고 죽을 것. 멸정(滅情), 정분을 남기지 말고 죽을 것. 마지막으로 멸망(滅亡),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죽을 것이라고요. 인생 여정의 붙잡고 있기와 놓아주기를 균형 있게 한다면 하루하루 잘 죽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 2016-11-0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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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직 후 내 옆에는 누가 남을까
- 가수 최성수씨의 ‘동행’이라는 노래 가사입니다. 빈 밤을 오가는 마음 어디로 가야만 하나 어둠에 갈 곳 모르고 외로워 헤매는 미로 누가 나와 같이 함께 울어줄 사람 있나요, 누가 나와 같이 함께 따뜻한 동행이 될까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퇴직 후 급격하게 축소된 활동반경을 느끼며 필자의 인생 마지막까지 누가 동행이 되어줄까 생각해봅니다. 세월 따라 동행인은 변합니다. 어려서 같이 놀던 동네 코흘리개 소꿉장난 동무들은 고향 친구들로 바뀝니다. 학교 다닐 때는 학교 친구, 군대에 가면 군대 친구, 직장에서는 직장 동료, 늙어서는 경로당 친구까지 계속 친구를 바꾸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기차를 타고 갈 때 차창 밖 풍경이 시시각각 달라지듯 우리네 한평생 친구들도 소꿉친구, 직장 동료, 선후배 등 그 이름을 달리하며 지나갑니다. 퇴직하면서 활동반경이 줄어드니 친구 수도 점점 줄어듭니다. 죽고 못 살 것 같았던 고향 친구들도 고향을 떠나나 후 남남이 되었습니다. 직장 사람들하고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을 것 같았는데 퇴직하고 6개월이 지나니 전화 걸고 받는 횟수가 점점 줄어듭니다. 스마트폰에 입력된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니 태반은 연락도 않고 지내는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016, 017 등 옛날 전화번호가 그대로인 사람도 있습니다. '앗! 이 사람!' 하고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걸어보지만 없는 번호라는 기계음만 듣게 됩니다. 너무 무심했음을 자책합니다. 서울대 송호근 교수는 저서 에서 자신의 스마트폰에 750명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이를 분석해보니 아내와 딸 동생과 누이들, 처가 식구와 조카들 등 가족들로 이루어진 가족관계망(Family network)의 전화번호가 30명 정도이고 친한 동료들을 포함해서 일이 있을 때마다 상의하고 어울릴 수 있는 친근 집단인 친밀관계망(Intimacy network)이 50명 정도 있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직장생활을 할 때 공적 관계에 속한 사람들로 사적인 이야기를 하기 어렵고 심리적 거리가 먼 집단으로 퇴직하면 잊혀질 사람이라고 합니다. 서울대 교수를 지낸 분도 관계망이 이렇게 느슨한데 일반인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예전에는 친척 어른들에게 문안인사를 드린다고 집안 조카들이 버스를 타고 20~30리 길을 걸어서 찾아왔지만 이제는 다 옛날이야기입니다. 전화, 문자, 인터넷, 등 연락 방법이 다양해졌지만 마음은 오히려 멀어졌습니다. 집안 결혼식이나 장례식장 등 큰일이 있을 때만 만나서 인사를 나누는 정도입니다. 아주 드물게 정기적으로 친척모임을 하는 집안도 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만 귀한 이야기입니다. 언젠가 더 늙어지면 기억마저 희미해져 반가운 사람을 봐도 누군지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또 정다운 말을 하고 싶어도 그 사람이 이미 저세상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웃음마저 잃어버리고 초점 없는 두 눈으로 허공만 쳐다볼 수도 있습니다. 더 늙어 서로가 볼 수 없는 사람이 되기 전에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 좀 더 정답게 지내야겠습니다.
- 2016-10-25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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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란법 시행, 물줄기를 바로 잡아라
- 기대와 우려를 안고 김영란법이 시행되었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확 바뀌었다” 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전문가들은 “진통 끝에 새문화가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많은 시민은 연줄문화에서 개인문화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을 바라고 있다. 하지만 실개천까지 뒤져서 송사리를 잡아서야 되겠는가? 세상에 공짜 없다 수사대상 공직자가 있는가 하면, 제자에게 음료수 하나 받아든 교수도 신고 되었다. 골프장 예약이 무더기 취소되고, 식사 뒤 밥값을 각자 지불하려고 줄을 서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접대문화를 이끌었던 기업들은 바짝 몸을 웅크린 채 지갑을 닫았다. 예식장·장례식장을 꽉 채웠던 꽃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김영란법이 몰고 온 폭풍과 같은 변화다. 그러나 실개천까지 품어대는 이런 것들은 눈에 보이는 겉모양이다. 법에서는 원칙적으로 금품수수를 금지한다. 이 법을 제안하였던 김영란 교수도 공직자의 ‘청탁거절법’이라고 설명하였다.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3·5·10제 접대한도를 따질 때가 아니다. 아무리 각박한 세상인심이라고 하더라도 과거에도 이런 것으로 문제되거나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강물을 더럽히다가 줄줄이 엮이는 큰 물고기에게는 관심조차 없는 새 발의 피일뿐이다. 국가개혁을 위하여 ‘세상에 공짜 없다’는 큰 그림을 그리는 의식개조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세상에 ‘순수한 공짜‘가 있다고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인간의 거래에는 항상 계산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거나 무시하다가 공짜함정에 빠져든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각자내기가 살길이다 각자내기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이미 생활화 되었다. 젊은이들도 각자계산을 당연시하고 실천한다. 은퇴자들은 ‘만원의 행복’을 즐기고 있다. 국정감사장 국회의원들이 식사 뒤 밥값을 각자 지불했다는 소식이 왜 뉴스거리가 되어야 하는가? 시·도지사도 조찬 회동에서 예외 없이 각자내기는 당연하지 않는가? 기자들에게 더는 점심이 제공되지 않는다고 한다. 교육계 풍경도 달라졌다. 음료수를 비롯해 교사에게 건네려고 가지고 온 선물을 잠시 넣어뒀다가 다시 가져가라는 취지의 물품보관함이 학교에 설치됐다. 담임교사에게 커피나 빵을 대접하는 것도 불법인 바에야 차라리 문제의 소지를 없애자는 취지다. 큰 물줄기를 바로 잡아야 사회 전체의 권위주의적 조직문화가 청산돼야 김영란법이 정착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 법도 권위주의적 조직문화의 늪에 빠지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갑옷부터 벗어야 한다. 누구도 영원한 갑일 수는 없다. 언젠가는 갑과 을의 위치가 뒤바뀌는 것이 세상사다. 을이라는 반대 입장을 생각하고 실천하면 이 법은 성공하리라 믿는다. 과거 우리나라의 ‘정 문화’에서 선물은 미풍양속이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끈끈한 관계 유지 등을 위해 과도하게 주고받고, 접대하는 것이 문제였다. 이런 문화는 필연적으로 부정부패를 낳거나 준법 시스템의 정상적 작동을 가로막곤 했다. 우리사회의 유별난 학연·지연·혈연 등 연줄문화가 빚은 부정청탁 만연도 문제였다. 부정부패 없는 맑고 깨끗한 사회를 만들자는 합의 속에 태어난 것이 이 법이다. 세상을 확 바꿀 이 법의 시행초기부터 물줄기를 바로 잡아야 한다.
- 2016-10-13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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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운 형제들의 우애
-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자손들은 하얀색, 검은색 상복을 입고 마지막 예의를 갖췄다. 수십 년 전 욕심이 한계를 넘던 어느 날의 이야기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또 살기 위해 끼니를 기다렸다. 김이 퐁퐁 나고 기름이 좌르르 흐르는 하얀 쌀밥을 보자 눈을 크게 굴려가며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어머님을 보내드리는 고된 일정에 온 가족들은 허기가 진 모양이었다. 입고 있는 상복에도 살금살금 음식 냄새가 배어들었다. 삶은 늘 치열한 생존전쟁 같았다. 불과 몇 시간 전, 멀쩡했던 어머님의 육신을 몇천 도의 화기 속으로 밀어 넣었다. 눈앞에 전개되는 생생함에 죽을 것처럼 소리쳐 몸부림치던 가족들은 다시 태연해졌다. 갑작스러운 어머님의 장례식이 얼떨결에 끝나고 수지면 신봉리 시아버님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님 앞에서 가족들 모두는 초췌하게 앉아 풀이 죽어 있었다. 칠순을 훨씬 넘긴 아버님은 어머님의 빈자리를 느끼시며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이윽고 아버님이 단언하듯 조용히 자식들에게 의견을 내놓으셨다. 어머님이 오랫동안 정들이며 살다 가신 그곳, 신봉리 농장에 납골당을 짓고 후손들에게 길이 남기고 싶다고 하셨다. 경기도 신봉리 농장은 어머님과 아버님이 20여 년 동안 갈고 닦은 수천 평의 아름다운 농장이었다. 지난 시절 어머님과 함께한 가족들의 수많은 추억이 깃든 농장은 이른 새벽이면 새들의 울음소리가 아침을 알려오고, 낮이면 방문객들로 하루가 짧았고, 쏟아져 내리는 계곡물 소리는 밤마다 자장가 소리가 되어주던 곳이다. 그런데 아버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느닷없이 하얀 소복 차림의 큰형님(남편 큰형의 부인)이 벌떡 일어나 아버님의 말씀에 감히 반기를 들었다.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아버님 돌아가시면 이 땅을 팔 생각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라고 강하게 말했다. 온 식구들은 깜짝 놀랐다. 있을 수 없는 돌발 상황에 서로를 바라보며 그저 황당해했다. 말도 안 되는 비상식적인 일이 순식간에 눈앞에서 벌어진 것이다. 아버님은 어처구니가 없으셨는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셨다. 잠시 후 아들만 둘을 둔, 가장 혈기왕성한 셋째 형이 밥상을 두들겨가며 바른말을 했다. 어찌 이럴 수가 있냐며 딸만 둘인 큰형에게 큰 소리로 핏발을 세우며 대들었다. 큰 소리들이 오가면서 집안은 순식간에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야말로 초상집 난장판의 한 장면이었다. 하얀 소복, 검은 상복을 입은 남녀 형제들의 재산 싸움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기가 막힌 막장드라마도 없었다. 6남매(4남 2녀)의 막내며느리인 필자는 가만히 밖으로 나와 한숨만 쉬었다. 누구 편도 들어줄 수 없었다. 얼마 후 아버님은 자식들이 걱정이 되는지 슬그머니 안채로 들어가셨다. 그러고는 이 꼴 저 꼴 다 보기 싫으셨는지 불도 켜지 않은 채 아무 기척이 없으셨다. 그런데 잠시 후 아버님이 두런두런 혼잣말을 하셨다. "임자! 나도 같이 가고 싶네. 왜 당신 혼자만 갔소."라고 말하며 나지막이 흐느끼셨다. 막내며느리인 필자는 가슴이 아파 더 이상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어 밖으로 다시 나갔다. 답답한 현실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재산이 아무리 많으면 무슨 소용인가. 어머님을 방금 떠나보내신 아버님 앞에서 자식들의 아귀다툼은 너무나도 큰 불효였다. 그때 깜깜한 밤하늘에 하얀 동정의 까만 소복을 입은 어머님의 모습이 환하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다시 하얀 소복을 입고 또 나타나셨다. 아마도 삶과 죽음이 한순간임을 보여주고 계신듯했다. 어머니는 힘없이 손짓을 하시며 고요하게 말씀하셨다. “빈손으로 떠나가는 인생이다. 욕심 없이 그저 우애 있게 살아라.” 하시면서 멀리멀리 사라지셨다. 그날 이후 집안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재산 욕심은 병과 화를 불러왔다. 형제 우애는 물론이고 분란이 더 크게 일어나 형제들은 아예 왕래가 끊기고 말았다. 그리고 세월도 많이 흘러갔다. 이제 죽음이 코앞에 와 있는데도 피를 나눈 형제들의 마음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저 피해의식 속에 사로잡혀 자기를 꼭꼭 가두고 있는 사람들 같다. 지난 시절, 순수하고 다정했던 형제들의 따뜻한 우애가 그리워지는 하루다.
- 2016-10-11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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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의 대지 (The Burning Plain)
- 길예르모 아리아가 감독 작품으로 제니퍼 로렌스, 킴 베이싱어, 샤를리즈 테론, 등이 나온다. 어린 시절과 성인 시절의 순서를 마구 뒤섞어 놓아 뭐가 뭔지 한참 헷갈리게 하는 영화이다. 장례식이 첫 장면인데 거꾸로 왜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나중에 나온다. 엄마, 딸 마리아나의 소녀 시절, 성인 시절 등으로 여러 여자들이 나오며 배역이 겹치니 더 그랬던 것 같다. 영화는 배경에 미국 남서부의 두 가정이 나온다. 한집에서는 엄마가 또 한 집에서는 아버지가 둘이 만나 바람을 피운다. 엄마를 대신해서 세 명의 동생을 돌보는 마리아나는 한창 사춘기라서 엄마의 행각에 불만이 많다. 마리아나는 엄마의 비밀스러운 통화, 잦은 외출과 자주 변명하며 늦는 것을 수상하게 생각하고 미행한다. 마리아나는 한적한 곳에 있는 트레일러하우스에서 엄마가 다른 남자와 바람피우는 것을 확인한다. 마리아나는 경고의 목적으로 가스밸브를 열고 멀리서 도화선을 이용하여 불을 붙인다. 그러나 트레일러가 한꺼번에 폭발하는 바람에 상대 남자와 함께 엄마가 죽는다. 살이 타는 냄새를 맡은 마리아나는 절규하지만, 자신만의 비밀과 트라우마로 간직하며 산다. 마리아나는 엄마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상대 남에게도 또래의 남자 아이가 있다. 그 남자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알고 싶다며 접근해오자 만나게 된다. 그러다 연민의 정이 들어 버린다. 그 집 아버지도 자신이 죽인 것이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은 것이다. 둘의 행각은 좀 더 대담해진다. 죽은 엄마의 침실에 들어가 같이 자기도 하고 마리아나는 남자의 집에 찾아 가 인사까지 한다. 그러나 둘의 행각은 동네 사람들의 제보로 아버지에게 알려 된다. 아버지는 노발대발하며 그 집 아들에게 달려가지만, 마리아나가 전화로 미리 알려줘 따돌리고 둘은 멕시코로 달아난다. 마리아나는 임신 상태였다. 그렇게 멕시코로 가서 딸을 낳고 살다가 마리아나는 가출한다. 딸이 엄마를 못 알아보는 어린 상태였다. 딸이 소녀로 성장했을 때, 마리아나가 돌아온다. 딸은 어린 자신을 버리고 간 엄마가 원망스럽지만, 받아들인다. 아버지와 둘이 살았는데 어머니의 공백을 늘 결손처럼 느끼고 살았다. 아버지가 농약살포 비행사로 일하다가 추락하여 중상을 입고 있어 누군가의 보호가 필요하기도 하다. 기구한 운명이다. 아버지 입장에서 봤을 때는 상대 남 때문에 아내가 바람을 피웠고 같이 죽었다. 원수처럼 생각하던 시기에 이번에는 딸이 또 그 집 아들과 사귄다니 피가 역류할 판이다. 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두 사람을 죽인 것이므로 상대 남자의 아들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속죄하는 마음에 쉽게 마음을 연 것이다. 제목이 ‘욕망의 대지’이다. 원제로는 ‘Burning Plain'이니 직역하면 ‘불타는 평원’이다. 광활한 미국 남부 농장의 풍경이 볼만하다. 드문드문 사람도 몇 명 살지 않는데 그 와중에 눈이 맞으면 욕망이 불타오른다. 마리아나의 가족은 금발 미국계이고 상대 남자의 가족은 흑발 멕시코 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욕망은 절제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마리아나의 아버지가 성 기능이 떨어져 부인의 욕망을 채워주지 못한 원인은 있다. 제니퍼 로렌스, 샤를리즈 테론, 킴 베이싱어 세 명배우들의 연기가 볼만하다. 여자들의 심리 상태를 잘 그려 낸 영화이다.
- 2016-09-26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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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절 스트레스, 한방에 날리기
- 어릴 적에는 설·추석 명절이 행복했었다. 근심 걱정 없이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고 새 옷도 입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명절 증후군, 명절 이혼, 고부 갈등이란 이름의 ‘명절 스트레스’는 점점 커지고 있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명절준비가 제일 큰 문제였다. 이제 명절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리는 큰 결단을 하였다. ◇명절 스트레스의 원인 손수 준비하던 결혼과 장례문화는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변하여 결혼·장례식장이 모든 것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명절과 제사는 아직도 ‘정성들인 음식‘이 필요하다. 대가족 맏이인 아내는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대신하여 40년 넘게 6남매 맏며느리 역할을 묵묵히 잘하였다. 부모님 모시고 형제자매끼리 모이던 명절은 조카들이 결혼하고 손자까지 태어나니 훌쩍 30명이 넘어섰다. 아내는 며칠을 준비하기에 바빴다. 모든 일이 잘 되는 줄 알았으나 눈치 없는 필자만의 착각이었다. 한 해에 몇 차례 모임에 녹초가 된다는 사실을 사화은퇴 후에야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아들과 딸이 먼저 문제를 제기하였다. “아빠, 엄마의 건강과 변화하는 세상을 생각하여 가족모임을 바꿨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래 깊이 생각해보자!”고 대답하였으나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대가족 분가 작전 두 달 전 어머님께서 소천하셨다. 부모님을 하늘나라로 모시고 나니, 필자가 우리가족의 ‘대권’을 이어받았다. 개혁은 집권초기에 번개처럼 하라고 하였다. 장례를 마치고 마무리 가족모임을 가졌다. “부모님 추모회는모두 참가하고, 명절모임은 직계가족끼리 갖도록 하자.”고 어려운 이야기를 꺼냈다. 너무 허전하다는 등 반대의견도 있었으나, 과감하게 ‘분가’를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올 추석부터 대가족 모임이 사라졌다. 아들·딸 가족과 손주까지 9식구만 모였다. “음식준비를 하지 않으니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다.”는 아내의 이야기였다. 멀지 않는 곳으로 소가족 여행을 갔다. 아이들과 어울려서 추석을 즐겁게 지냈다. 가족밴드에 사진을 올려서 가족끼리 재미있게 지내는 동생들과도 대화를 나누었다. ◇과거를 떨치고 미래로 부모님이 계실 때에도 차례나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장로봉직 중인 큰 동생의 ‘예배’가 모든 행사를 대신하였다. 비신도가 필자를 비롯하여 절반이 넘었지만 예배는 30년 넘도록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큰 동생은 올 추석에도 가족과 함께 ‘믿지 않는 형제들을 구해주소서!“ 간절히 기도하였을 것이다. 40년 넘게 진행되었던 가족모임이 없어져 조금 허전하였다. 북적거리는 추석도 이제 한시절의 추억이 되었다. 가족모임 때마다 손자들에게 족보를 펼치시고 조상님 설명에 애쓰셨던 아버님 생각이 났다. 부모님 추모일에는 ‘메모리얼 파크’에서 온 형제자매가족이 꼭 모일 예정이다. 지난 한해의 이야기를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제작하여 ‘가족밴드’에 올려서 공유하기로 하였다. 과거회상만이 아니라 재미있는 내일을 찾는 노력을 하기로 하였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가정은 전통의례를 존중하는 경우도 많다. 위에서 밝힌 이야기는 필자의 조그만 경험이다. 추석이란 명절이 온 가족이 모여 감사절의 의미를 더 되새기는 날이 되면 좋겠다.
- 2016-09-20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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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아풀, 불로초다
- 먹으면 덜 늙게 하는 풀을 불로초라 이른다. 불로초를 생각하면 진시황을 떠올리게 된다. 오래 살기 위하여 몸에 좋다는 약초를 얻으려고 나라 안팎으로 신하를 보내기도 하였다. 제주에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게 오매불망 불로초를 찾았지만, 당신은 49세에 떠났다. 당시 백성들의 평균수명에 견주어 보면 장수한 것이 아닐까 싶다. 비슷한 시대의 조선 왕 평균 수명이 43세였으니 6년을 더 산 셈이다. 오래 살려고 노력한 결과인지 모른다. 조선 왕 평균수명과 비교하면 대략 14% 포인터를 더 살았으니 수리적으로 장수했다고 볼 수 있다. 과연 사람이 먹어서 늙지 않는 풀이 있을까? 나이가 들면 늙어가지 않을 수야 없겠지만, 그 속도를 조금 더디게 할 수 있지 싶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건강 유지다. 수명은 놀라울 정도로 늘어 100세 장수시대에서 100세 건강시대로 바뀌고 있다. 특별한 질병이나 사고가 아니면 대체로 100세를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장례식장에서 만나는 고인들의 나이가 그렇다. 근래에 다녀온 장례식장의 고인의 수명이 대부분 90세 중반이었다. 주변에서 흔히 보게 되는 현실이다. 엊그제 조문한 상가도 백수를 석 달 남겨둔 99세로 세상을 떠난 분이었다. 그것도 건강한 상태에서 돌아가셨기에 “9988234(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 3일 앓다 저세상으로 간다)”였다고 상주가 전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의술이나 의학의 발달로 머지않아 세계인의 평균수명이 120세에 다다른다고 예측하고 있음이다. 식물인간 상태의 수명 연장은 큰 의미가 없다. 다른 사람의 큰 도움이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상태, 즉 건강 나이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타고난 체질과 사주팔자가 한몫을 하겠지만, 자기의 건강관리가 중요하지 싶다. 먹고 마시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영양과 사는 환경에도 영향을 받는다. 공기 좋은 곳에서의 자연 친화적 환경에서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근심 걱정거리를 내려놓고 사는 분들이 의사들도 포기하였던 질병을 이겨낸 사례를 듣곤 한다. 필자도 그런 환경을 찾아 도심에서 가깝지만, 주변이 논밭이고 동산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이사하여 살고 있다. 만 2년이 됐다. 마당에 텃밭을 만들어 그곳에서 채소를 가꾸어 먹는다. 물론 농약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최근에 방아풀이라고 부르는 식물을 빈터에 심어 가꾸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고향 마을에서 먹고 자란 식물이어서 다소 강한 향이 나기는 하여도 좋아한다. 남쪽 지방에서 많이 먹는다. 생선 매운탕 등 비린내가 나는 음식을 조리할 때에 넣으면 비린내를 잡아주기도 하여 자주 활용한다. 특히 부침개를 할 땐 필수 보조 재료다. 상추쌈을 싸 먹을 때 한 잎 곁들이면 향이 입안에 은은하게 베인다. 이 녀석은 다른 보조재료와 달리 음식에 넣어도 주재료의 맛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살려주는 역할을 한다. 이점을 이용하여 지난 여름에 들깻잎 장아찌를 담을 때에 방아풀을 곁들여 그 맛을 관찰해 보았다. 상상 이상으로 깻잎 장아찌의 맛이 방아잎을 넣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좋아졌다. 여러 자료를 조사해 본 결과 이 방아풀의 성분에 노화방지제가 들어 있음을 발견했다. 세포노화방지제는 세포의 노화를 막는 기능이어서 필자는 이 방아풀을 불로초라 부른다. 번식력도 강하고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자랄 수 있다. 손가락 길이 정도의 여러 꽃송이가 달린 꽃대에서 눈에 보일 듯 말듯한 많은 씨가 달리고 땅에 떨어져 다음 해 봄에 많은 싹이 튼다. 옮겨 심어도 잘 자란다. 한 포기만 심어도 한 해가 지나면 텃밭을 이룬다. 다년생이어서 늦가을이면 줄기가 마르고 다음해에 새 싹이 돋아난다. 화분에 심어 키워도 잘 자란다. 햇볕이 잘 드는 베란다에서 키워서 요리할 때 잎을 뜯어 사용할 수 있다. 방아풀 활용으로 젊음을 유지해보자.
- 2016-09-19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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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랜드 파더'... 한국판 '테이큰'
- 최근 상영작이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 ‘덕혜옹주’, ‘터널’ 등 다른 영화에 밀려 별로 주목받지 못한 영화이다. 제목부터 ‘그랜드 파더’라면 영화의 주요 수요층인 젊은 층의 관심 밖이다. 시니어들도 77세의 박근형이 나오는 느와르 영화에 별로 기대를 안 한 모양이다. 그러나 볼만한 영화이다. 외국 영화도 ‘테이큰’의 리암 니슨은 은퇴 노인으로 나온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 나이든 액션 배우도 많다. 이서 감독이 만들었고 박근형, 정진영, 고보결이 나온다. 박근형은 설명이 필요 없는 대배우이다. 날카로운 눈매와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배우이다. 정진영은 늘 왕이나 좋은 배역을 맡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악역을 맡았다. 고보결은 17살이라는데 눈빛이 좋아 장래가 촉망되는 배우이다. 리암 니슨이 나오는 ‘테이큰’ 시리즈를 본 사람이라면 이 정도면 우리 노인들도 액션 영화에 출연할 만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박근형이 체력적으로 다소 힘들어 하지만 통쾌한 복수를 하는 데는 모자라지 않다. 외국영화의 시니어 주인공은 젊은 시절 특수부대 출신이 많다. 그래야 단번에 여러 명의 악당들을 처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영화에서는 과거 사냥꾼 경력, 월남전 참전 용사의 스펙을 부여했다. 그만하면 떨어지지 않는 스펙이다. 일찍부터 떨어져 살던 아들이 갑자기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광(박근형 분)이 장례식장에 가 본다. 장례식장에서 인사를 나눈 정진영과 일파가 어쩐지 불량스러워 보였다. 아들이 일하던 건축회사 사장이다. 월남 전 때 베트콩과 양민을 구별하던 날카로운 육감이 스쳐간다. 아들은 이미 화장까지 마쳤지만, 자살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담당 형사에게 재수사를 호소하지만 귀찮은 일을 다시 꺼낼 리 없다. 기광은 자기 방식대로 하겠다며 복수에 나선다. 손녀딸이 비행소녀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비탄한다. 자신이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기 때문에 가정이 깨지고 아들 부부도 그 모양이 되었다. 누구 탓을 할 수도 없다. 그 원인제공자가 자신임을 알고 있고 손녀도 그 때문에 기광을 사람 취급을 안 한다. 그러나 혈육의 정은 뜨겁다. 손녀를 악의 구렁텅이에서 구해내야 할 책임을 느낀다. 얼마 안 남은 자신의 생에서 할 일이 무엇인지를 결심하게 한다. 노인이 무서운 건 겁나는 게 없다는 것이다. 살만큼 살았으니 삶에 대한 미련도 없다. 사장아들에게 발로 채이고 주먹으로 맞지만, 참을 줄도 안다. 그러나 장도리 휘두를 힘은 있다. 엽총의 방아쇠를 당길 힘도 있고 배짱도 있다. 자본주의는 돈을 숭상한다. 돈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나쁜 짓인 줄 알면서도 내가 안 해도 누군가 할 것이라며 죄의식을 갖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돈이 필요해서 악의 소굴에 스스로 뛰어들었다며 책임을 전가하지만 미성년자는 어른들이 보호해 줘야 할 대상인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데 앞자리에서 본 부부가 “그 여자도 쏴 죽였어야 했는데..”하며 분노를 표했다. 느와를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선악에 대한 호볼호가 분명한 모양이다. 내 생각도 그렇다. 나쁜 인간들은 다 죽였어야 시원했을 텐데 말이다. 느와를 영화를 즐겨 보는 관객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 2016-09-12 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