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흐바르(Hvar)는 유명 여행전문잡지에 ‘세계에서 아름다운 섬’으로 자주 손꼽힐 이유가 충분하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가 자주 찾았던 곳이란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인과 일반인의 여행 시각이 뭐가 다를까? 그저 살아생전 찾아가봐야 할 섬이 흐바르다.
이 섬의 아름다움은 그 어떠한 미사여구로도 표현해 낼 수 없다.
진한 라벤더 향기 머금은 스타리 그라드의 골목길
스플리트에서 배를 타고 2시간 거리. 여객선은 2008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흐바르 스타리 그라드(Stari Grad) 섬으로 다가선다.
한눈에도 볼 수 있는 작은 섬이 눈 앞으로 스르르 다가선다. 선착장에 멈춘 거대한 배에서 우르르 사람들이 내린다.
하선한 관광객과 다시 배를 타고 이 섬을 나가려는 인파로 복잡한 선착장 주변에 라벤더 향기를 가득 담은 난전 두어 개가 펼쳐져 있다. 라벤더의 강한 향기가 코 끝을 ‘훅’ 자극한다. 즉석에서 갈아주는 주스 파는 곳으로 다가간다. 햇살 좋은 섬에서 자란 과일 주스는 맛이 참 좋다. 피자 한쪽을 사서 미처 먹지 못한 ‘아점’도 먹는다. 그러는 사이 북적대던 사람들은 섬 어디론가 흩어져 갔다. 돌아갈 배편을 미리 구입하고 천천히 섬 안으로 발을 옮긴다.
해안 길(riva)을 피해 일부러 민가가 있는 계단으로 올라선다. 해묵은 느낌이 가득한 골목길엔 치즈 빛 담 벽과 반질반질한 돌이 이어진다. 골목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좁은 골목길에서 앙증맞은 숍, 여행사, 호스텔 등의 간판들을 만난다.
강한 향내를 풍기며 유혹하는 라벤더 가게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가게는 가슴골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금발 생머리의 날씬한 판매원을 닮은 듯 예쁘고 현혹적이다. 라벤더 오일, 건제품들은 예뻐서 꼭 사가고 싶은 마음을 불러 일으킨다. 흐바르에 라벤더 가게가 많은 것은 이유가 있다. 이 섬은 ‘라벤더 섬’으로 불릴 만큼 라벤더 재배가 성행한다. 5월이면 온 섬은 라벤더 꽃과 향이 코끝을 간지를 것이다.
수녀가 만드는 알로에 레이스와 하니발 루치치 동상
골목길에서 11세기 베네딕트회 수도원(Benedictine Monastery)을 만난다. 그저 유럽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수도원이다.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지만 이 수도원은 ‘알로에 레이스(Aloe Lacemaking Skill)’를 만드는 곳으로 유명하다. 알로에 화분 하나가 놓여 있고 건물에는 레이스 그림을 새긴 팻말이 있다. 유럽 마을마다 흔히 볼 수 있는 레이스 공예지만 흐바르는 색다르다.
크로아티아에는 3가지 서로 다른 레이스 공예 전통이 전해지고 있다. 아드리아해 연안의 파그(Pag) 마을에서 전하는 ‘니들포인트 레이스 공예(Needle Point Lacemaking Skill)’, 크로아티아 북부의 레포글라바(Lepoglava)에 전하는 ‘보빈 레이스 공예(Bobbin Lacemaking Skill)’, 그리고 달마티아(Dalamatia) 연안의 흐바르 섬에서 전승되는 ‘알로에 레이스 공예(Aloe Lacemaking Skill)’다.
‘알로에 레이스’는 흐바르에 거주하는 베네딕트회 수도원의 수녀들만 만든다. 생 알로에 잎의 심에서 나오는 얇은 흰색 실을 이용해 보드지 뒤에서 망이나 다른 패턴을 짠다. 이렇게 완성된 레이스 작품은 흐바르 지방을 상징한다.
이 수도원 앞에는 르네상스기의 위대한 작가인 하니발 루치치(Hanibal Lucic)의 동상이 있다. 15~16세기 크로아티아의 대표적 작가인 하니발 루치치(1485~1553)는 ‘로비냐’ 라는 서사시를 썼다.
멀지 않은 곳에 르네상스의 시인 페타르 헤크토로비치(Petar Hektorovi?, 1487~1572)의 요새와 트브르달리(Tvrdalj) 성의 안내 팻말이 붙어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시인이었던 그는 이곳에서 나고 죽었다. 그는 어부의 노래를 수집했고, 기행담 등을 친구와 서신으로 대화를 즐겼다. 그가 기록한 해상 및 동물원 용어들은 크로아티아어 표준 언어에 통합되었다. 요새와 성은 직접 설계했는데 현재는 숙소로 이용되고 있다.
스타리 그라드 랜드마크 스테판 광장엔 그리스 흔적이
골목을 비껴나면 흐바르 타운의 중심지인 넓은 스테판 광장이 얼굴을 내민다. ‘U’자 모양의 항구가 있는 이 광장에는 성 스테판(St. Stephen's) 대성당이 있고 1612년에 지어진 유럽 최초의 시민극장 등 유적지가 몰려 있다. 한눈에 봐도 스타리 그라드의 중심지임을 알 수 있다. 오래된 건물들에선 어김없이 레스토랑, 와인바 등이 성업 중이다. 이 광장은 흐바르에 그리스인들이 가장 먼저 정착한 곳으로 아드리아 해안 달마티아 지방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스타리 그라드에 처음 사람이 정착한 때는 그리스 시대다. 그리스가 아드리아해까지 영역을 확장한 시기는 고대 시칠리아 시라쿠사(Siracusa)의 독재자 디오니시우스(Dionysius) 1세(재위 BC 405~BC 367)때부터다. 그는 384년, 일리리아인의 도움으로 비스(Vis) 섬을 정복해 첫 번째 식민지를 세웠다. 10년 뒤, 디오니시우스와 동맹을 맺은 에게해의 파로스 섬 거주민들이 섬을 정복해 식민 도시를 건설했다. 현재 남은 요새, 고대 석담, 건물 골조, 돌로 만든 작은 대피소 등이 그리스 시대의 흔적들이다. 또한 고대 그리스의 토지 구획 체계인 ‘코라(chora)’는 24세기 동안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다 BC 4세기 중반, 시라쿠사 제국이 몰락했고 BC 5~BC 6세기 경 일리리아인의 독립 공국이 되었다. 일리리아인들은 요새를 재사용하고, 여기에 새로운 요새를 구축하면서 번성했다. 데메트리우스(Demetrius)가 왕이 되어 통치하면서 권력을 확장했다. 하지만 로마인들에 의해 식민지화한다. 그때 파리아(Pharia, Faria)라는 새 이름이 붙여졌고, 아우구스투스(Augustus)와 티베리우스(Tiberius) 통치 기간에는 자치도시(municipium)의 지위를 획득했다. 몇몇 로마식 무덤이 만들어지고, 물탱크가 축조되기도 했다. 파리아는 그리스 시대보다는 좀 더 작은 경계로 다시 요새화했다. 이후 12세기에는 기독교 주교의 관할권 아래 있었고, 13세기 중반부터는 베네치아인들에게 정복 당해 1797년까지 정치적인 통제를 당했다. 베네치아 왕국 시대(14~16세기) 때 교통, 군사상 요지로서 번영했다. 15세기부터 교역 중심지 항구로서의 부흥기를 맞이했는데, 당시의 지역명은 캄포 산 스테파니(Campo San Stephani)였다.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19세기 말, 포도나무 뿌리를 썩게 만드는 필록세라(phylloxera) 병이 돌면서 이 섬의 경제는 흔들거렸다. 많은 농부들이 농지를 포기했고 20세기에는 이 섬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포도를 경작하던 남부 마을들은 부분적으로 사라지고, 토지와 도로 대장 체계도 관리 부족으로 명맥만 유지했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이후에는 새로운 위협에 맞닥뜨렸다. 집단농장과 농업의 기계화가 그 원인. 그래도 지금은 다시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조금씩 떠난 농부들이 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흐바르 요새는 천국의 자리
흐바르 스타리 그라드의 백미는 흐바르 요새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는 전망이다. 스페인 요새, 베네치아 요새(Spanjola Fortica, Spanol Fortress)라고 불린다. 스테판 광장에서 북쪽의 산 언덕으로 오르면 된다. 오르는 길목의 모습은 타운과 엇비슷한 골목이다. 돌길을 따라 이어진 주변 화단에는 알로에와 사보텐 선인장이 질긴 생명력을 보여준다.
10여분 걸음 끝에 만나는 요새는 중세 때, 오스만 투르크 족으로부터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요새 안 박물관에는 부서진 유적들이 있지만 딱히 볼만한 것은 없다. 대신 앞이 환하게 트인 성벽에서 바라보는 발밑 풍경에 넋이 빠진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치를 누군들 반하지 않겠는가? 흐바르 타운과 쪽빛 바다와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을 조망하면서 위치를 가늠해 본다. 흐바르 해협을 사이에 두고 브라치(Bra?)섬과, 비스(Vis) 해협을 사이에 두고 비스와, 코르출라(Kor?ula) 해협을 사이에 두고 코르출라와, 네레트바(Neretva) 해협을 사이에 두고 펠제샤츠(Pelje?ac)섬과 마주 보고 있다. 풍광만으로 흐바르 사랑이 가슴 속 깊숙히 채워지는 곳. 더 이상 말이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오를 때 무겁던 발걸음은 몇십 배 가벼워져 하산한다. 다시 선착장을 기점으로 반대편으로 걸어간다. 물 속까지 들여다보이는, 맑은 쪽빛 바다에는 물놀이 즐기는 사람들의 즐거운 비명이 울려퍼진다. 생선 굽는 냄새에 코끝을 킁킁대며 굴 전문 식당, 와인숍을 한가하게 기웃거리다가 만난 프란체스코(Franciscan) 수도원. 15세기에 코르출라 출신의 유명 석공 가문이 건설했다고 한다. 바다를 정원 삼은 작은 수도원에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포인트를 주고 있다. 수도원 내부는 박물관으로 이용되는데, 특히 마테오 이그놀리의 ‘최후의 만찬’ 등이 눈여겨 볼 그림들이다. 겨우 하루였지만 흐바르의 눈 시리게 아름다운 풍광과 코끝을 파고드는 라벤더 향기는 아직도 가슴 속에 선연하게 박혀 있다.
TRAVEL TIP!
항공편 크로아티아로 바로 가는 직항 편은 없다. 일단 유럽의 주요 도시로 이동한 후 그곳에서 크로아티아로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독일 뮌헨, 오스트리아 잘츠부르그, 헝가리 부다페스트, 슬로베니아 루블라냐,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등의 국제선을 이용해 자그레브 공항으로 갈 수 있다. 근교 도시에서는 버스나 열차를 이용하면 된다. 필자는 슬로베니아에서 열차로 이동했다.
배편 스플리트에서 페리를 이용하면 된다. 페리는 스플리트 항구, 타운 버스 터미널 맞은편에서 일반 페리가 매일 3회 출발한다. 쾌속선은 1시간 5분 정도 소요되지만 보편적으로 2시간 정도 예상하면 된다. 단 시기에 따라서 페리 스케줄이 다를 수 있다. 정확한 스케줄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는 게 좋다. 날씨에 따라 출발이 결정되므로 여유있게 여행 일정을 잡는 것이 좋다.
여행시기 라벤더가 피어나는 5월과 6월 가장 아름답고 한가롭다. 여름 피서철에는 사람이 많아져서 배편, 숙박 이용하기가 불편해진다.
와인 크로아티아의 2대 와인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남쪽은 적포도주, 스타리 그라드와 젤사 사이 중앙 평원은 백포도주 산지다.
먹거리 해물 스파게티와 신선한 새우요리, 그릴에 구운 생선구이 등 바닷가라서 해산물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곳이 많다. 바닷가 옆이나 스테판 광장 쪽에 식당이 많으며 아시안 음식점도 있다. 또 골목 속에 박혀 있는, 작은 레스토랑이나 선술집(konoer)들도 많다.
특산물 흐바르는 라벤더의 섬이다. 난전은 물론 골목에 가게들이 있다.
화폐 쿠나(HRK) 전압 220V, 50Hz(공통)
크로아티아 추천 여행 코스 수도 자그레브를 시작해서 플리트비체-시베니크-자다르-트로기르-스플리트-흐바르-두브로브니크 순으로 여행을 즐기면 된다.
여행 유의점 크로아티아는 한국인이 가보고 싶은 여행지 1위란다. 현지에서도 한국인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크로아티아 일부에서는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제법 많다. 짐 값은 당연히 받고 택시기사의 바가지 상흔도 아주 흔하다. 국내 여행사 상품이 여러 군데 나와 있으니 패키지를 이용해도 좋을 듯하다.
>> 이신화 여행작가
이립(而立)에 여행작가로 시작해 어언 지천명(知天命)에 다다랐다.
그동안 ‘걸어서 상쾌한 사계절 트레킹’, ‘대한민국 100배 즐기기’, ‘on the camino’ 등
여행서 총 14권을 출간했다. ‘인생이 짧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 지난해 홀로 197일간 30개국의 유럽 배낭 여행을 했다. ‘살아 있을 때 떠나자’가 삶의 모토다.
김 현 (전 KBS 연구실장, 여행연출가)
12년간 출연했던 KBS-TV 여행 프로그램 를 비롯해 여러 라디오 및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부터 매스컴의 인정을 받게 되어, ‘대한민국 부부 배낭여행가 제1호’라는 별칭까지 갖게 되었다. 이때부터 아내와 나는 늘 우리 부부에게 따라 붙는 이 별칭에 누가 되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해 왔다. 일단 여행지가 정해지면 주마간산에 그치지 않도록 더 철저하게 준비하고 체계적으로 여행일정을 짰다. 이번에 소개하는 2016년 추천 여행지인 「클린턴 코스 중국여행」 「일본 규슈 기차여행」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 일주」 「미국 서부 LA~샌프란시스코」 「캐나다 중부 그레이하운드 여행」도 여행 기간의 10배에 해당하는 준비기간과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아내와 내가 역할을 분담하여 치밀하게 준비한 것이다. 물론 유명한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도 나름대로 유익한 여행이 될 수 있으나, 남들과는 조금 차별화된 여행을 가고 싶다면 한 가지 테마를 정해 여행지를 결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클린턴 코스 중국여행」은 코스 제목부터 시작하여 우리 부부가 처음으로 기획한 코스로서, 현재까지 시중에 나와 있지 않은 유일한 코스인 동시에 이곳만 둘러봐도 중국을 알 수 있게끔 핵심만 뽑아놓았기에 나름대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김현·조동현 부부의 '특별한 부부여행 코스' 첫 번째 - 「클린턴 코스 중국여행」
일반적으로 ‘서양’ 하면 유럽과 미국이 떠오르고, ‘동양’ 하면 역시 중국이 떠오른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있긴 해도 크기나 역사·문화·풍광 등으로 보아 중국이 동양의 대표주자임을 부인할 수 없다. 중국은 1년을 여행해도 다 볼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광대한 영토와 뿌리 깊은 역사, 볼거리가 많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중국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여행하느냐가 중요한데, 아내와 나는 늘 중국 여행을 좀 더 알차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해 왔다. 그러던 차에 마침 중국과 미국의 수교가 이루어졌고, 1998년 미국의 전 대통령 클린턴이 중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때 중국 정부가 신중하게 고르고 골라서 미국 대통령에게 보여줄 중국을 대표 도시 5개를 선정했다. 이것이 바로 북경 - 서안 - 계림 - 소주 - 상해였다.
우리 부부도 1999년 이 코스를 그대로 밟아서 가보았다. 중국의 역사·문화·환경을 통틀어 핵심만 여행할 수 있는 코스여서 무척 만족했다. 그래서 내가 클린턴의 이름을 따 ‘클린턴 코스 중국여행’이라 명칭을 붙였다. 현재까지 시중에서 상품화된 적이 없는 코스이기도 하다. 물론 그동안 북경이나 상해 등을 비롯해 중국에 여러 번 다녀왔다. 90년 초에는 한국 여행관계자들이 중국의 33번째 성(우리나라로 치면 도)이 된 해남도에 초청받았을 때, 취재 겸 한국 단장 자격으로 5번이나 다녀온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늘 중국을 다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목말라 있었는데, 이 클린턴 코스로 인해 그 갈증이 말끔히 가신 것이다.
클린턴 코스의 첫 번째 도시는 북경이다. 엄청난 역사를 갖고 있는 만큼 볼거리 또한 굉장하다. 중국 민주화의 상징인 천안문 광장부터 시작하여 1420년~1911년 까지 중국 황제가 거주하던 자금성, 북경의 최대 번화가이자 중국의 명동으로 불리는 왕부정 거리,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서커스, 그리고 그 유명한 만리장성과 서태후의 여름 별장인 이화원까지.
두 번째 도시 서안은 중국의 한가운데 위치한 3000년 고도이자, 대표적 중국 문화를 엿볼 수 있다.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는데, 그 발전성과가 눈부시다. 한 농부가 발견한 병마용갱(진시황이 말년에 황릉과 함께 건설한 지하궁전의 일부로 지금까지 발굴 작업이 계속되고 있음)을 비롯하여 유명 서예가들의 필체를 직접 감상할 수 있는 비림, 서안의 인사동으로 불리는 문서거리, 당현종과 양귀비가 사랑을 나눈 로맨스 장소로 유명한 화청지, 중국의 첫 황제인 진시황의 능묘인 진시황릉, 당현종과 양귀비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수상 가무쇼, 서안의 3000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섬서 역사박물관, 아시아에서 제일 큰 음악분수 쇼를 볼 수 있는 대안탑, 소수민족 회족의 전통양식을 볼 수 있는 회족거리, 서안의 명동이라 불리는 종고루 광장 등은 꼭 보아야 할 것들이다.
세 번째 도시인 계림은 중국을 대표하는 수려한 경치를 자랑한다. “계림의 산수는 천하제일이다(桂林山水甲天下).”라는 명성을 들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이다. 카르스트 지형에 속하는 계림은 지각변동에 의해서 바다가 솟아오른 것인데, 마치 물속에 산이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배를 타고 가다 보면 풍광이 너무도 아름다워 꿈속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이다. 이곳에서는 중국 각 민족의 생활풍습과 수공예를 볼 수 있는 세외도화원, 중국과 서양이 만난 이국적인 서가 재래시장, 계림관광의 하이라이트인 장예모 감독의 연출작 공연 계림시내 전경을 볼 수 있는 북파산, 계림 산수갑 천하제일인 이강 유람(관암~양재), 각양각색의 기이한 종유석의 세계인 관암동굴 등이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네 번째 도시인 소주는 또 다른 역사의 도시이다. 수양제에 의해 건설된 대운하가 개통되면서 항주와 더불어 ‘천상천당 지하소항(天上天堂 地下蘇杭)’이라고 불릴 정도로 번영하였다. 운하가 무척 아름답고 옛 문화를 잘 간직하고 있다. 중국의 4대 정원이자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졸정원부터 동양의 피사의 탑이라 불리는 호구탑, 그리고 동양의 베니스인 소주운하에서 배를 타고 유유히 소주만의 정취를 느껴보는 것도, 빠질 수 없는 ‘클린턴 코스’만의 매력이다.
마지막 도시인 상해. 상해는 최근 들어 놀라운 번영을 하고 있는 중국의 심장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의 수도 북경이 정치의 중심이자 가장 역사적이고 남성적인 북방의 도시라고 한다면, 상해는 중국 경제의 중심지인 동시에 강남의 풍치와 함께 여성스런 남방의 도시라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북경 사람은 상해 사람을 촌놈이라 하고, 상해 사람은 자기들이 최고라고 각각 주장한다고. 원래 늪지대였던 상해는 운하로 연결된 도시이기도 하다. 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가 있는 곳으로 우리에게는 뜻 깊은 도시이기도 하다. 경제 중심 도시답게 상해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의 상징인 동방명주 타워가 유명하고, 프랑스 조계지였던 신천지, 예원 등의 옛 거리, 그리고 1919년부터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1932년 까지 사용된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꼭 가보아야 할 곳이다.
충청도는 서울에서 멀지 않은 데다 바다와 산 계곡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 사람들이 즐겨 찾는 여행지다. 그중에서 금강자연휴양림은 금강 젖줄에 자리 잡아 탁 트인 풍경과 아기자기한 골짜기가 어우러져 다양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여름의 끝자락 귀여운 손자손녀들과 금강자연휴양림에서 싱그러운 숲체험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서울에서 출발해 경부고속도로에서 천안-논산고속도로 빠져 다시 당진-대전고속도로 상주 방면으로 길을 틀었다. 1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곳은 공주시 반포면. 충남의 긴 젖줄인 금강이 흐르고 군데군데 울창한 자연습지도 눈에 띈다. 예전에는 황새나 왜가리, 가마우지, 검은머리물떼새 등 다양한 새들이 날아와 사시사철 이들의 날갯짓을 볼 수 있었지만 4대강 공사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아쉽게도 이들의 모습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금강에 가로놓인 빨간 아치 모양의 불티교를 건너면 충남산림환경연구소 간판을 단 금강자연휴양림이 나온다. 정문에 들어서면 넓은 주차장부터 눈에 들어온다. 충청도 사람들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해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수가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에서는 이곳을 생소하게 여기거나 아예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금강자연휴양림은 원목 펜션에서 숙박을 할 수 있는 것은 기본이고 체계적으로 구성된 산림박물관, 동물원을 비롯해 수백 가지 희귀한 식물을 전시하고 있는 열대 온실, 여름이면 피서객들로부터 인기를 모으는 계곡 수영장과 야영 캠프장 등 자연을 테마로 즐길 수 있는 시설은 모두 갖추고 있다.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으니 당일치기 여행보다 주말을 이용해 숙박하는 것이 금강자연휴양림을 구경하기에 여러모로 좋다.
◇ 100명이 먹어도 남는다는 잭후르츠
입구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62ha에 달하는 광활한 면적의 수목원이 나온다. 휴양림과 별도로 주소를 가지고 있을 만큼 광활한 넓이의 수목원은 17개의 전시수목원과 7개의 전문수목원으로 꾸며져 있다. 활엽수, 침엽수, 약용수, 야생화 등과 함께 가을에 찾으면 붉은색으로 갈아입은 울창한 단풍나무 숲이 관람객들을 맞는다니 숲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10월 중순께 이곳을 다시 찾아도 좋을 듯하다.
수목원 한가운데에는 충남산림환경연구소가 자랑하는 첫 번째 보물인 열대온실이 나온다. 마치 유리로 만든 궁전인 듯 둥근 돔의 모양을 띠고 있는 열대 온실에는 전 세계에서 자생하는 500여 종의 다양한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부처님이 득도하셨다는 인도 보리수나무와 성경에 등장하는 올리브나무, 인류 최초로 종이를 만드는 데 쓰인 이집트의 파피루스 등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꾸며진 문화식물원은 인류사에 깊은 의미가 담긴 스토리텔링을 아이들에게 들려주기에 제격이다.
바로 옆 열대화원에는 하와이언 훌라댄서처럼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을 지닌 적도지방의 식물을 볼 수 있다. 전통의상의 재료이자 하와이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선사하는 꽃다발인 플루메리아 등 열대지방 특유의 컬러풀함이 무척이나 이색적이다. 열대과수원에도 관람객들을 놀라게 하는 특이한 나무가 있다. 과일 한 개의 무게가 자그마치 50kg에 달하는 잭프루트는 100여 명이 둘러앉아야만 열매 하나를 간신히 해치울 수 있다. 열대지역에서 식량 대용으로 쓰이는 빵나무는 고구마 맛이 나며, 체리모야, 파인애플, 망고, 파파야 등 열대 과수들의 달콤한 향기가 아이들의 발목을 붙잡는다.
열대온실 바로 위에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산림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전통적인 백제 양식을 따라 지붕의 귀솟음과 기둥의 배흘림을 반영한 산림박물관은 6개의 테마별 전시실을 비롯해 시청각실로 이루어져 있다. 산림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올 때쯤이면 당신도 이미 나무전문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자연체험을 할 수 있는 엘리트 체험코스를 갖추고 있으니 산림박물관에 들어올 때는 필기도구를 꼭 준비하자.
◇ 숲길 걸으며 듣는 생생한 자연학습프로그램
금강자연휴양림이 유명해진 이유는 비단 큰 규모만이 아니다. 숲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양질의 숲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이용객들로부터 높은 만족도를 얻고 있다고 한다. 숲체험은 동절기를 뺀 3~11월 내내 휴무 없이 계속된다. 단 추석연휴에는 숲체험을 하지 않으니 잊지 말고 체크할 것.
숲체험은 자연학습프로그램과 숲해설로 구분된다. 자연학습프로그램은 8세 미만의 어린이들을 위한 유아숲체험교실, 초중고생 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자연휴양림 숲교실, 장애인 및 다문화가정 등 취약계층을 위한 나눔의 숲교실, 일반인과 숲속의집 이용객을 대상으로 매주 토요일에 진행되는 명상의 숲교실 등으로 꾸며져 있다. 이와는 별도로 개별 탐방객을 대상으로 숲해설 프로그램이 1일 3회씩 무료로 진행되고 있으니 관심 있는 독자들은 아이들과 함께 여름이 가기 전에 숲이 선사하는 싱그러움을 만끽해보자.
◇ 숲을 연주하는 동물들의 교향곡
금강자연휴양림에는 식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물마을은 동물의 관람 및 생태 관찰, 특히 어린이들의 생태학습과 다양한 볼거리 제공을 위해 수류와 조류로 구분하고 있다. 하늘의 제왕인 독수리는 거대한 발톱과 부리만 봐도 두려움이 생긴다. 연못을 자유롭게 노니는 오리 떼는 원앙과 백조와 함께 관람객들을 반갑게 맞는다.
두 발로 걷다가도 먹이를 한 손에 들고 그루터기에 앉아 맛있게 점심을 먹는 일본원숭이는 꾀도 많고 호기심도 많다. 사람들이 나타나면 이내 달려와 함께 눈을 맞추며 대화라도 하자는 듯 팔을 내밀기도 한다. 울타리가 쳐진 넓은 들판에서 사는 꽃사슴은 자태가 우아하고 수줍음이 많다. 관람객들이 주는 먹이에 호기심을 보이면서도 이내 먼 곳으로 뛰어가더니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사슴에 비해 키는 작아도 씩씩한 염소와 양떼가 관람객들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으려고 울타리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땅 속에 굴을 파고 사는 귀염둥이 토끼는 소리가 나면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사람들을 발견하곤 굴 안으로 숨기에 바쁘다.
수목원, 박물관, 동물원 등 다양한 시설을 체험하다보면 어느새 해가 저물고 만다. 이제 숙소를 향해 발길을 돌릴 차례다. 숙박시설은 잣나무, 벚나무, 잎갈나무 등 다양한 목재로 지어져 있다. 나무를 비롯해 자연친화적인 황토, 자갈 등으로 만들어져 아늑한 분위기 속에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크기는 작게는 6명부터 30명이 머물 수 있도록 다양하게 꾸며져 여행의 용도에 맞도록 선택할 수 있다. 펜션 내부에는 기본적인 취사 및 취침 시설이 구비돼 있으니 간단한 먹을거리를 준비하기만 하면 된다. 금강자연휴양림은 모두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으니 사전 문의 후 여행일정을 잡아보자. 주말에 이용하려면 가급적 2~3주 전 예약하는 것이 좋으며 9~10월 간절기를 대비해 두툼한 옷을 꼭 챙겨가도록 하자.
◇ 금강자연유양림(충남산림환경연구소)
홈페이지 www.keumkang.go.kr
문의 041-635-7400
위치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산림박물관 길 110
숲해설 시간 1일 3회(10:30~11:30, 13:30~14:30, 15:00~16:00)
※추석 연휴엔 휴관하며, 숲속의 집 펜션과 야영장 숙박, 자연학습 및 숲해설 프로그램은 인터넷을 통해서만 예약 가능
◇ 금강자연휴양림 주변 아이들과 가볼 만한 곳
- 석장리박물관
금강을 따라 발달한 선사시대 주거촌의 유적을 전시하고 있다. 구석기와 신석기시대 위주로 선사문화의 이해를 돕도록 체계적인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홈페이지 www.sjnmuseum.go.kr 위치 충남 공주시 금벽로 990(석장리동)
관람시간 09:00~18:00 문의 041-840-8924
- 국립공주박물관
화려하고 찬란했던 백제 문화의 진수를 알아볼 수 있는 공주박물관에는 무령왕릉실, 충남 고대문화실, 야외 정원 등 다양한 시설이 구비돼 있다. 2004년 개관, 효과적인 체험을 위한 첨단시설을 갖추고 있다.
홈페이지 gongju.museum.go.kr
위치 충남 공주시 관광단지길 34(웅진동 360) 문의 041-850-6300
- 무령왕릉
백제 무령왕과 왕비의 능으로 한반도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예술적 완성도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 무령왕릉은 한국 사람이라면 꼭 한 번 가봐야 할 필수 체험 코스. 위치 충남 공주시 송산리 일대
>>>글 임도현 프리랜서 veritas11@empas.com 사진 김남헌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좀 과장해 온 방송이 ‘먹방(먹는 방송)’이고 ‘쿡방(요리 방송)’이다. 정규 편성표를 가득 점령한 본방송에, 채널을 가리지 않고 거의 무한 재생되는 재방송까지 더하면 브라운관에서 요리하고 먹는 장면이 끊이지 않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덕분에 이른바 스타 셰프들이 연일 미디어의 중심에서 활약하고 있다. 어떤 이는 만능 요리 비법을 선보이며 사람들을 주방 안으로 끌어들이고, 또 어떤 이는 허세 가득한 동작과 신출귀몰한 요리 기술로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미디어의 중심에 선 이들 대부분이 남성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심영순, 홍신애 등 여성 요리인 또는 푸드스타일리스트들의 활약이 돋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허셰프’라는 별칭으로 사랑받는 최현석을 비롯해 샘 킴, 이찬오, 레이먼 킴 등 최근의 요리 유행을 이끄는 주동력은 역시 남성들이다.
하필 지금에 이르러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이는 “인간의 대표적 본능인 ‘식탐’을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지나치게 단순한 분석이 아닐까 싶다. 식탐을 자극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최근 들어 갑작스레 만들어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요리하는 남성이 여성에게 성적으로 매력적이기 때문”이라는 추측 역시 마찬가지. 요리 잘하는 남성이 여성에게 인기가 많은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 들어 유독 요리 유행이 도드라진 데는 분명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중심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옮아가는 도중에 필연적으로 생겨난 현상’이라는 분석은 귀 기울일 만하다. 남성의 도움 없이도 생활할 수 있게 된 여성들이 강한 남성보다는 모성적 남성을 원하면서 요리 잘하는 남성의 인기가 더욱 높아지고 더불어 남성들이 요리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는 주장이다.
가족 해체 등의 사회 불안이 이른바 ‘집밥 열풍’의 주요인이라는 설도 설득력을 갖는다. 먹고살기 힘들어지면서 남성들이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을 때와 같은 편안함을 갈구하게 됐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복고주의’라는 견해도 있다. 원시사회 때부터 임신 및 육아가 여성의 몫이었던 반면, 식량 획득과 요리는 남성의 몫이었으므로 최근의 유행은 과거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성적 분업 이론(남성과 여성의 생리학적 특징의 차이에 따라 일이 나뉜다는 학설)에 근거한 주장이다. 개인적으로는, 돌아가려는 시기와 현재 사이의 간격이 터무니없이 멀어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이런 맥락과 비슷한 주장들이 최근 유행과 더불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요리에 진실로 그리워하는 것이 있다
더러는 지겨울 만도 하다. 튀기는 소리, 지지는 소리, 끓는 소리에 맛있다는 호들갑까지 더해진 천편일률적 요리 방송이 시청자들에게 쾌감만 선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백과사전이 ‘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저술가이자 환경운동가’라고 설명하는 마이클 폴란은 저서 에서 현대인들이 직접 요리하지 않고 텔레비전 등 미디어를 통해 요리에 심취하는 현상을 ‘요리의 역설(Cooking Paradox)’이라 지칭했다. 미디어의 영향으로 요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잘난 듯 떠들어대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요리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폴란은 ‘1960년대 중반 이후 미국 가정에서 식사 준비에 필요한 시간은 하루에 고작 27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또 다른 저서 에서는 “우리는 음식의 홍수에 빠져 있지만 정작 ‘진짜 음식’은 드물다. 슈퍼마켓 선반에서 ‘진짜 음식’이 사라지고 ‘그럴싸한 음식’을 가장한 가공식품이 빼곡히 들어찼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최근 요리 유행의 핵심은 손쉬운 요리, 값싼 요리, 다가가기 쉬운 요리다. 폴란은 그런 요리들을 떠받쳐줄 기둥이 그다지 깨끗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라고 다를 리 없다. 음식평론가 황교익 씨는 우리나라 특유의 ‘치맥’ 유행을 ‘값싼 육류를 제공하려는 정부와 산업계의 노림수가 대중에 통한 결과’라고 비판하고, 요리사 겸 저널리스트인 박찬일은 모 언론에 기고한 칼럼 ‘달걀의 운명’에서 달걀이 대량 생산되는 현실을 두고 ‘이 불안한 풍요가 실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불안해한다. 우리 삶에 가장 가까운 닭고기와 달걀의 현실이 이럴진대 다른 식재료는 오죽할까.
요리 방송이 주로 밤 시간대에 편성된 것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유는 간단하다. 먹지 않아도 될 시간에 식욕을 지나치게 돋움으로써 건강상 부작용을 일으킬 소지가 높기 때문이다.
굳이 렙틴(Leptin)이니 글렐린(Glehlin)이니 하는 신경호르몬 이름을 들먹이지 않아도, 요리 방송의 부추김에 떠밀려 맥주 캔과 더불어 기름진 안주거리를 찾은 경험이 누구든 한두 번쯤은 있을 터. “이른바 ‘쿡방’ ‘먹방’의 영향으로 뇌에 내성이 생기고 더 자극적인 음식을 찾게 돼 비만 등 건강에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사들의 진언은 괜한 걱정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바람을 선선하게 느낀다. 갖가지 역효과에 눈 감으려는 무책임함 때문이 아니다. 어떤 잇속이 걸려 있기 때문도 아니다. 무엇보다 나쁜 영향 못지않게 결정적으로 좋은 영향이 분명 그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자에게 요리는 무슨 존재인가
요리 늦바람이 골프나 주식투자보다 재미있고 가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남이 해주는 요리만 먹던 ‘상남자’들이 아내의 전유물로만 여기던 칼을 집어든 이유는 뭘까.
은퇴한 남편이 집에 돌아오는 것과 달리 중년 부부의 경우 아내는 점차 밖으로 활발하게 움직인다. 남자들의 요리는 가정 평화는 물론, 고령화시대에 대비해 반드시 익혀야 하는 필수 학습으로 회자되고 있다.
남자들의 요리는 생의 진실을 담아낸 영화처럼 따뜻하며 때로는 코끝 찡하게 먹먹하다.
결국 우리의 인생이 맵고 짜고 달고 시큼하기 때문일 것이다.
요리는 섬처럼 고립된 개인들을 잇는 역할을 한다. 누군가를 위해 상을 차리고 함께 나눠 먹는 것은 상대방의 입맛과 식습관, 식탁 위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영화 의 주인공 도완득은 언제나 혼자 밥을 먹고 등·하교하며 자신의 삶에 누구도 초대하지 않는 다. 그러나 영화 말미에서 끈질기게 거절하던 반 친구의 “라면이나 먹고 가자”는 말에 “그러자”고 답한다. 그는 이제 누군가와 함께 밥상에 앉는 것을, 자신의 삶에 타인이 들어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영화 은 핀란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주인공과 각자 상처를 지닌 채 식당을 찾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따뜻한 영화다. 카모메 식당은 우리나라의 분식집쯤 되는 작은 동네 식당. 세 여인은 이곳에서 시나몬 롤과 오니기리를 먹으며 각자의 상처를 치유한다.
요리를 하거나 음식을 제공하겠다는 것은 상대와 유대관계를 맺겠다는 적극적 신호다. 어릴 적부터 여기저기에서 자주 들어왔던 “한술 뜨라”는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언어 습관은 바로 그 정신에서 출발했다.
제임스 L. 브룩스 감독의 걸출한 코미디 영화 에서 타인을 거부하던 시절의 주인공 멜빌 유달(잭 니컬슨)은 홀로 식당에서 음식을 사먹기만 한다. 그러다가 이웃집에 사는 게이 화가 사이먼(그레그 키니어)을 받아들이면서부터는 중국식 수프를 나눈다. 편견에 사로잡혀 있던 주인공이 게이 화가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음을 보여주는 장치로서 음식을 선택한 것은, 실로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이다. 음식에는 그런 힘이 분명히 있다.
지금의 요리 열풍에도 그처럼 명쾌한 힘이 내재돼 있다. 그 동안 우리 가장들은 나쁜 의미에서 독야청청했다. 전통적 가부장제의 영향으로 근엄함과 배타심을 구분하지 못하고 스스로 차단막을 내걸었던 이가 많았다.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가 그로 인해 자기 고립의 함정 속으로 스스로 빠져들고 말았다.
‘삼식이’라는 말을 아시는가? 은퇴 후 삼시세끼를 부인이 해주는 식사로 해결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뉘앙스부터 천박하고 불쾌하기 짝이 없으니 바람직하지 않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생산 가능 인구(15세에서 64세 사이)와 생산 불가능 인구 사이의 비율이 2060년에 이르러 50대50이 된다는 고령화 사회에서 누구도 그 유행어의 비극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쉽게 말해, 한때 배달의 기수였던 남성들이 현대에 이르러 계륵 같은 존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요리 유행은 계륵과 가족 사이에 음험하게 드리워진 차단막을 걷어내도록 하고 있다. 음식을 타인과 나누는 요리의 정신이 계륵들로 하여금 스스로 벽을 허물게 만들고 있다.
최근 요리 열풍의 핵심에 나이 지긋한 남성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차줌마’로 일컬어지는 차승원, ‘백 주부’라는 애칭으로 사랑받는 백종원, 중화요리의 대가라는 이연복 등은 모두 마흔을 훌쩍 넘긴 중년 남성들이다. 그들은 방송의 중심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요리는 어렵지 않다”, “당신도 할 수 있다”고 외치면서 그 동안 요리에서 소외돼 있던 계층, 다시 말해 중년 남성들을 주방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런 점이 오히려 쉽게 요리에 접근하고자 하는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닐까.
백 주부는 자신의 요리를 세발자전거에 비유했다. 어린 아이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자전거를 한 번도 안 타본 사람도 겁내지 않고 타 볼 수 있는 세발자전거처럼 누구나 시작해 볼 수 있는 수준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는 용기를 주어 다음에는 두 발 자전거 타기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주방 안으로, 관심 속으로
최근 은퇴 전후 남자들에게 요리교실이 인기다.
실제로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초문화원의 ‘아버지요리교실’은 정원 25명으로 3개월씩 진행하는데, 은퇴 전후의 50, 60대가 주축이다. 서울대 노화고령화사회연구소와 이화여대 글로벌식품영양연구소, 순창군이 함께 시행하는 ‘골드쿡’ 프로젝트는 은퇴 전후의 중·장년층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요리실습이다. 서울특별시 양천구청이나 강남구청 등이 꾸준히 운영해온 중년 남성 대상의 ‘아버지 요리교실’ 등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남양주 시청의 ‘아버지 요리교실’, 광주광역시 농업기술센터의 ‘아버지 요리교실’ 등 최근의 요리 유행에 힘입어 개설된 아버지 대상의 요리교실 역시 하나둘이 아니다.
고양시 ‘젠틀맨 생활 요리 교실’은 55세 이상의 은퇴 남성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남성을 위한 요리 교실로, 실생활에서 꼭 필요한 간단한 생활 요리법을 전수해준다. 수업 소개란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남성만의 요리 교실로, 새로운 인간관계와 자아를 재정립하고 그동안 소원했던 가족들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익한 강좌’라고.
여기에 경기 부천시, 광명시, 고양시, 충북 음성군, 강원 영월군, 경북 칠곡군 등 군 단위에서 시행되는 남자 요리교실과 ‘시니어 요리교실’ ‘행복남요리교실’ ‘츠지원’ 같은 사설 요리 강좌까지 합치면 중년 남성 대상의 요리 강좌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해외 유명 셰프를 초빙하는 경우도 있고 값비싼 식자재와 조리도구를 사용한다. 8~10명 정도의 수강생만 받아 소수 정예로 운영되는 만큼 전문직이나 높은 사회적 위치와 함께 경제적 여유가 있는 수강생들이 찾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강좌에 참가하는 남성들의 마음은 한결 같다. 가족을 비롯한 사랑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요리를 대접하겠다는 것, 그래서 그들과 좀 더 가까워지려는 것이다.
요리 잘하는 최철주 전 중앙일보 논설 고문은 “나이 먹은 남자들의 요리는 치유일 수밖에 없다”며 “가족을 위해, 혹은 지친 누군가를 위해 배려와 진심을 담아 요리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다”고 말했다. 요리는 다름 아닌, 자신의 진심을 상대에게 전하는 커뮤니케이션의 강력한 한 방법이다.
마이클 폴란은 요리 방송이 요리에 대해 떠들기 좋아하게 만들 뿐 요리 자체로 끌어들이지 못한다고 역설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일고 있는 요리 유행은 그와 양상이 사뭇 다르다. “요리는 어렵지 않다”는 어떤 요리인의 주장에 고무돼 실제로 많은 남성들이 요리에 도전하고 있으며, 적어도 도전하려 하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요리는 사람들의 유대관계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부작용을 여럿 양산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요리가 가족 또는 타인과의 벽을 허물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최근의 요리 유행을 반갑게 맞이하고 싶다.
예나 지금이나 ‘밥’은 중요한 소통 수단이다. 어느 종교 지도자는 밥을 나눈다는 것은 음식과 시간을 함께하는 것만이 아니라 미래의 꿈과 비전도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했다.
중년 남자들이 ‘먹방’과 ‘집밥’을 통해 찾고자 하는 것은 ‘맛’이 아닌 ‘정’이고 ‘온기’가 아닐까. 분명, 요리라는 행위에는 그처럼 명쾌한 힘이 있다.
{ 남자가 가도 괜찮은 요리 수업 }
양천구 ‘아버지 요리 교실’
3·6·9·12월, 1년에 4회 양천구 지역 남성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요리 강좌. 한 달 과정으로 매주 토요일 4회 수업한다. 장어구이, 들깨수제비 등 비교적 난도 있는 요리 수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초문화원 ‘아버지 요리 교실’
10~12월 3개월 12주 과정으로 진행하며, 강의 신청은 10월 31일까지 받는다. 매주 목요일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수업한다. 단호박 밤수프부터 제육볶음, 황태찜, 연어 스테이크 등 반찬과 일품요리를 두루 배울 수 있다.
롱런아카데미 ‘아빠 요리 교실’
분기별로 2개월 8주 과정. 매주 월요반과 수요반 2회 운영한다. 두 강좌 모두 요리의 기본인 계량법과 밥 짓기로 시작해 떡갈비 같은 접대용 음식은 물론이고 생선 손질법과 찌개 끓이는 법 등 생활에 꼭 필요한 지식을 알려준다.
고양시 흰돌종합사회복지관 ‘젠틀맨 생활 요리 교실’
은퇴한 남성이 노후에 자신의 손으로 직접 요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개설한 요리 강좌로 기본적 요리 용어부터 꼼꼼하게 알려준다. 매주 목요일 12회 수업을 진행한다.
‘근대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 푸시킨은 운문소설 에서 젊은 시절에 젊었던 사람은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늙은 시절에 늙은 사람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어떤 것이 젊은 나이에 젊은 것이며 늙은 나이에 늙은 것인지 한마디로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나이와 삶의 단계에 대해서는 공자의 말이 유명합니다. 공자는 40이 불혹(不惑), 50이 지천명(知天命), 60이 이순(耳順), 70이 종심(從心)이라고 했습니다. 마흔이 되면 판단이 흐려지는 일이 없게 되고, 쉰이 되면 천명을 알며, 예순이 되면 생각하는 게 원만해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일흔이 되면 하고 싶은 대로 하더라도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지금 사람들도 과연 그럴까요? 불혹이 아니라 다혹(多惑)이라고 해야 할 만큼 요즘의 마흔은 분별이 모자라고, 천명을 알기는커녕 천명의 존재 자체를 우습게 볼 만큼 요즘의 쉰은 여전히 역동적입니다. 평균수명이 짧았던 옛사람들은 “마흔이 되면 매지근하고 쉰이 되면 쉬지근하다”는 말을 해왔습니다. 예순 일흔에 대해서는 그런 말도 없을 정도였고,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하듯이 일흔을 넘기는 것은 대단한 장수로 치부돼왔습니다.
지금은 생활환경이 나아지고 의료와 복지의 발달로 인해 평균수명이 늘어나 원래 나이에서 20%를 깎은 게 실제 나이라는 말도 합니다. 40세는 청춘의 노년, 50세는 노년의 청춘이라고 말하는 장수시대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50이 불혹, 60이 지천명이라고 해야 할 판입니다. 나이의 Norm(표준)과 틀이 없어지는 세상입니다.
칠순을 넘기면 신선이 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더라고 말한 분도 있습니다. 서른은 가정과 사회에 모든 기반을 닦는다는 이립(而立)의 나이이지만 요즘 서른에 결혼하거나 취직해 삶의 기반을 닦는 젊은이들은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전통적인 나이의 규범에 따라 삶과 세상을 생각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입니다. 루소는 에서 10세에는 과자, 20세엔 연인, 30세엔 쾌락, 40세엔 야심, 50세엔 탐욕을 좇는 게 인간이라고 말했습니다. 60세 이후엔 뭘 추구하나요? 벤저민 프랭클린은 에서 20세에 중요한 것은 의지, 30세에 중요한 것은 기지, 40세에 중요한 것은 판단이라고 했는데, 50세 이후에는 뭐가 중요할까요?
영국 시인 에드워드 영(1683~1765)은 “나이 마흔에도 바보인 사람은 정말 바보다”라고 말했습니다. 공자는 “40, 50이 되도록 이름이 나지 않는 사람은 두려워할 게 없다”고 했습니다. “20세에 용모 수려하지 않고 30세에 건장하지 않고 40세에 부자가 안 되고 50세에 현명하지 않으면 평생 수려 건장 부자 현자가 될 수 없다”고 한 사람(영국 시인 조지 허버트 )도 있습니다. 83세까지 장수하면서 다방면으로 큰 업적을 남긴 괴테는 “무언가 큰일을 성취하려 한다면 나이를 먹어도 청년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자꾸 초조해집니다. 귀한 생을 받아 이 세상에 왔으니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거나 의미 있는 일을 하고 떠나고 싶은데 세월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꼭 오래 살아야만 이름을 남기는 건 아닐 것입니다. 독일의 극작가 게오르크 뷔히너는 겨우 24세로 죽었지만 그의 작품은 탄생 200년이 지난 지금도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역사상 유명한 천재들 중 요절한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삶을 완성하고 갔습니다. 44세로 사망한 의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는 ‘20세에 취했고, 30세에 파멸했고, 40세에 죽었다.’고 노트에 썼습니다.
천재들은 예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릴케의 에 나오는 말처럼 ‘사람은 일생을 두고 가능하면 아주 오래오래 살아서 우선 꿀벌처럼 꿀과 의미를 모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최후에 가서는 아마 10행쯤 되는 좋은 시를 쓸 수가 있을는지 모르겠다. 시는 감정이 아니라 사실은 경험인 것이다’,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성숙해지고 진보하는 존재일까요? 판단력이 여물면 상상력은 시들어갑니다. 외적 아름다움과 내적 충실을 뜻하는 춘화추실(春華秋實)이라는 말이 있지만 봄의 꽃과 가을의 열매를 동시에 즐길 수는 없습니다. 영화 에서는 라라의 약혼자이자 러시아혁명 주체인 스트렐리니코프가 악덕 변호사 코마로프스키에게 “인간은 연령으로 진보하지 않는다”는 말을 합니다. 코라로프스키가 나이가 들면 관대해진다고 대답하자 스트렐리니코프는 다시 “자기 자신에게만 관대해지는 것”이라고 면박을 줍니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 자신에게만 관대해지고 꽉 막힌 외고집 벽창호가 된다면 그런 나이와 삶은 많고 길어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대개 좋은 것, 유리한 것만 기억하려 합니다. 969세까지 살았다는 성경 속 인물 므두셀라의 이름에서 유래한 ‘므두셀라 증후군’은 지나간 일 중 좋았던 기억들만 남겨 청춘을 ‘좋았던 시절’로 치부해 버리는 성향을 뜻합니다. 아마추어 골퍼들은 자신의 가장 좋은 샷만 기억하거나 가장 좋았던 점수를 평소 실력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런 착각과 교만을 경계하면서 겸손과 배려의 나이를 쌓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92세로 타계한 핀란드 작곡가 얀 시벨리우스는 83세 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최근에야 지상에서 내가 존재하는 시간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우리가 이사 왔을 때 정원의 나무는 아주 작았고,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었다. 이제 나무는 내 머리 위에서 나부끼면서 ‘당신은 곧 떠나겠지만 나는 앞으로도 수백 년을 더 머물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아기 때에는 앞으로 넘어지지만 철이 들면 뒤로 넘어진다고 합니다. 앞으로 넘어졌다가 똑바로 섰다가 뒤로 넘어지는 게 사람의 일생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이는 남이 알려줘야 자기 나이를 알지만 노년에 이른 사람은 힘겹도록 스스로 자기 나이를 압니다. 설날이 들어 있는 2월은 나이와 늙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시기입니다. 되도록이면 똑바로 서서 의미 있는 삶을 완성해 가야 하겠습니다.
미국의 여성 시인 메이 스웬슨(May Swenson 1913~1989)의 ‘어떻게 늙을까’(How to be old)라는 시 일부를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젊기는 쉽지. 모두 젊어, 처음엔. 늙기는 쉽지 않아. 세월이 걸리지. 젊음은 주어지는 것, 늙음은 이루어지는 것, 늙기 위해선 세월에 섞을 마법을 만들어 내야 돼.’
그 마법을 찾아야 합니다.
고려대 독문과,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졸. 한국일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이사대우 논설고문 역임. 현재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한국1인가구연합이사장
오늘은 어제의 미래이며, 내일의 과거가 된다. 즉, 오늘을 잘 사는 것은 과거와 미래를 잘 사는 것과 같다. 계획하는 일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새해. 지난날의 후회도, 다가올 날의 걱정은 버리고 당장 오늘, 바로 지금에 충실해 보는 것은 어떨까?
◇ 지금 이 순간
#라이프 애프터 라이프
“인생을 몇 번이고 다시 살 수 있다면 어떨까? 마침내 제대로 살아낼 때까지” 완벽한 이상향을 향해 펼쳐지는 끝없는 회귀, 반복되는 삶과 죽음 속 오늘의 의미. 삶의 새로운 진화를 꿈꾸는 당신에게, 가슴 저민 시간 여행을 선사 한다
저자: 케이트 앳킨슨 (임정희 옮김) ㆍ 출판사: 문학사상
#일단은 즐기고 보련다
75세에도 하는데 그대들이 못한다고?
그 나이가 어때서! 망설이다가 기회를 잃은 것들을 생각하면 너무 아쉽고 후회스럽다.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일단 문을 열고 나가라. 75세 도보여행가의 유쾌한 삶의 방식
저자: 황안나 ㆍ 출판사: 예담출판사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당신에게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할 때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일도 어렵고, 사랑도 어렵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애써 고민을 숨기며 괜찮은 척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스토아철학의 빛나는 통찰
저자: 변지영 (윤한수 사진) ㆍ 출판사: 카시오페아
#지금 여기 깨어 있기
깨달음을 경전 속에 가두지 마라. 지금, 여기, 이곳에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지금 행복해야 한다. 지금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야 한다. 지금 깨닫고 나머지 인생은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법륜스님이 전하는 깨달음의 길에 이르는 방법.
저자: 법륜 ㆍ 출판사: 정토출판
◇ 2015 한 해를 책임질 도서
#한 줄의 기적, 감사일기
쓸수록 힘이 나고, 매일매일 행복해지는 ‘한 줄의 기적, 감사일기’. 당연하게만 여겼던 모든 일에서 감사와 깨달음을 찾다보면, 어느새 일상은 행복으로 가득해진다.
저자: 양경윤 ㆍ 출판사: 쌤앤파커스
#행복다이어리 ‘Present’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장 최인철 교수가 다이어리에 담은 행복의 조건과 기술. 빡빡한 업무와 스케줄로 가득 찬 다이어리는 이제 그만, 2015년은 ‘Present’에 선물 같은 나의 일상을 채워보자.
저자: 최인철 ㆍ 출판사: 한스미디어
#2015 가계북
부자 되는 사람들의 비밀 노트. 똑똑한 경제생활의 시작. 소득과 지출만 적는 평범한 가계부가 아니다.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알짜 경제 정보는 물론, 연간 월간 스케줄러까지. 끝까지 쓸 맛 나는 종이 가계북의 매력에 빠져보자.
저자: 그리고책 편집부 ㆍ 출판사: 그리고책
#연말정산 완전정복
세금폭탄을 피하고 환급액을 늘리는 초간단 지침서.재테크의 마무리는 연말정산. 손해 보지 않는 연말정산을 위한 핵심 정보와 2015 개정 포인트를 짚어준다.
저자: 유흥관 ㆍ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습관의 재발견
지키지 못할 계획만 세우는 ‘계획중독자’에서 벗어나라. 작게, 사소하게, 가볍게. 못하는 게 더 어려운 작은 습관의 힘. 결심과 포기를 반복하는 이들에게 무조건 실천 가능한 전략으로 작은 습관 프로젝트를 시행하기를 제시한다.
저자: 스티븐 기즈 (구세희 옮김) ㆍ 출판사: 비즈니스북스
◇ 2015 트렌드를 읽어라
#빅피처 2015
2015년은 변곡점의 시대, ‘진화형 어젠다’와 ‘전통 어젠다’를 주목하라. 하버드대 출신 국내 전문가 11인이 말하는 2015 대한민국 주요 이슈와 쟁점들
저자: 김윤이 외 10명 ㆍ 출판사: 생각정원
#2015 생생트렌드
국내 최초 빅데이터 기반의 새로운 트렌드서. 2015년 달라질 비즈니스, 문화, 라이프스타일의 흐름과 액티브 시니어의 영향까지 빅데이터로 분석하고 인포그래픽으로 시각화하다
저자: 타파크로스 ㆍ 출판사: 더난출판
#핫트렌드 2015
산업계 최전선에서 날아온 냉철한 분석과 뜨거운 예측, 글로벌 핫트렌드 25. 저자들이 엄선한 25개 트렌드를 ‘새로운 사람’, ‘새로운 사물들’, ‘새로운 도시들’로 나눠 트렌드의 발전방향을 분석하고, 실무에 적용하는 기술을 제안한다.
저자: 핫트렌드연구소 핫트렌드 연구위원회 ㆍ 출판사: 호름출판
배롱나무는 백일홍(百日紅)나무 또는 목백일홍이라고도 한다. 꽃이 적은 여름철에 백일 동안이나 피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의 꽃이 그렇게 오랫동안 피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송이의 꽃이 연속적으로 피고지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다. 멕시코가 원산인 초본 백일홍과 구별하기 위해 나무백일홍 혹은 목백일홍이라고 부르며, 배롱나무라는 이름도 백일홍나무에서 배기롱나무를 거쳐서 배롱나무가 된 것이다. 예로부터 ‘열흘 붉은 꽃이 없다(花無十日紅)’ 하여 꽃은 수명이 짧은 것으로 여겼는데, 배롱나무가 이처럼 오랫동안 꽃을 피우는 것이 신기해서 이름 붙인 모양이다. 꽃색이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천일홍(千日紅)이나 여름부터 늦가을까지 화단을 지키는 만수국(萬壽菊)의 작명동기 또한 이와 비슷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에서는 꽃이 오랫동안 피는 것을 보고 이름을 붙였지만, 중국과 일본에서는 비단결 같이 부드러운 수피를 보고 이름을 붙였다. 일본에서는 나무타기의 명수인 원숭이도 이 나무를 타다가 수피가 매끄러워서 떨어진다 하여 사루스베리(猿滑)라고 부른다. 중국에서는 파양수(?痒樹)라는 이름으로 부르는데, 이는 ‘매끄러운 줄기를 긁어주면 모든 나뭇가지가 흔들리면서 간지럼을 타므로 파양수라 한다’라는 중국 명대의 꽃 백과사전 의 기록에서 연유한 것이다. 충청도의 향명에 ‘간지럼나무’, 제주도의 향명에 ‘저금 타는 낭’ 즉 간지럼 타는 나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배롱나무의 매끈한 수피가 여인의 나신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조선시대 사대부집 안채에는 금기시되었던 나무라고 한다. 절에 가면 흔하게 배롱나무를 볼 수 있는데, 이는 이 나무가 나무껍질을 다 벗어 버리듯 스님들 또한 세속의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수행에 용맹정진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종소명 인디카(indica)는 인도가 원산지임을 나타내지만 실제로는 중국남부가 원산지이며, 자주색의 꽃이 핀다 하여 중국이름은 자미화(紫薇花)이다. 중국 사람들은 자미꽃을 매우 좋아하였다. 특히 양귀비와의 로맨스로 유명한 당 현종은 삼성(三省) 중 자신이 업무를 보던 중서성에 배롱나무를 심고, 황제에 즉위한 해에 중서성의 이름을 자미성으로 고쳤다고 한다. 지금도 중국과 대만 여러 도시의 시화(市花)로 지정될 정도로 사랑을 받고 있다.
한여름에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는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소쇄원, 식영정, 명옥헌 등 남부지방의 전통조경공간에서 정원의 화목으로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명옥헌 원림의 연못 주위에는 스물여덟 그루의 붉디붉은 배롱나무가 7월부터 백일 동안 도연명의 무릉도원을 재현한다. 배롱나무의 또 다른 이름인 자미목(紫薇木)은 도교의 선계 중 하나인 자미탄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배롱꽃 만발한 명옥헌은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있어서 선계이자 이상향인 셈이다.
무더운 여름날 속세를 떠나 배롱꽃 만발한 별천지로 떠나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소위 로얄 패밀리, 연봉 2억원 이상, 기업 오너, 자산가와 전문 경영인, 스포츠 스타와 문학인 들이 와서 쉬는 곳. 그러나 오로지 한 손님, 한 가족만을 위한 공간으로서 존재하는 곳. 강화에 위치한 담담각(淡淡閣)은 조용한 자신만의 프리미엄을 누리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해 20년 동안 준비된 공간이다. 그동안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알음알음 알려져 왔던 담담각의 특별한 모습을 담백하게 담았다.
글 김영순 기자 kys0701@@bravo-mylife.co.kr
사진 장세영 기자 photothink@etoday.co.kr
담담각(淡淡閣)의 도우미와 집사들이 바쁘다. 디테일한 취향에 따라 저녁 식사를 위해 더덕구이, 바비큐 숯과 그릴 장비를 준비하고 어디선가 테이블을 가져와 정원에 가지런히 셋팅한다. 바지런히 패 둔 장작을 가져와 벽난로를 피우니 거실이 금방 따뜻하게 데워진다. 손님들을 위해 호박죽, 전복죽으로 건강한 아침이 차려졌다. 게다가 직접 재배한 상추, 딸기, 고구마, 건강한 오골닭이 매일 낳는 담담각표 유정란을 삶아 강화순무김치와 함께 얌전히 차린 아침 테이블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정갈하고 예의 바르게 손님들의 불편함을 해결해 주는 집사ㆍ 도우미들은 다른 어떤 숙소에서도 느껴 보기 힘든 한국식 명품 서비스를 보여줬다.
그들만을 위한 새로운 문화공간, 현대판 아방궁
한국을 방문한 글로벌 기업들이 전통문화를 경험하고자 숙소로 임대하게 된 것을 계기로 일반에 문을 열게 됐다. 집 전체를 대여하는 조건으로 임대료는 하루 150만원 선. 회의룸과 리셉션 장소도로 적합한 영빈관을 제외한 모든 공간을 한 가족이나 한 팀에게 통째로 빌려준다. 한 번 다녀간 사람들이 재방문하기 때문에 굳이 홍보나 광고를 할 필요도 없었다. 현재도 10월까지 예약이 차 있는 상황이다.
“짬짬이 시간 내서 조금씩, 계속해서 만들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담담각의 규모가 크다는데 수십 년의 세월을 함께한 저로서는 규모가 큰지 작은지도 잘 모르겠어요.”
3개의 정원과 2채의 한옥(본채, 행랑채), 3개의 침실과 욕실, 2개의 거실, 별도의 쉼채로 구성된 5000평 규모의 담담각은 완공까지 무려 20년이 걸렸다. 소유주인 지동훈 강화한옥문화연구소 소장이 긴 시간만큼이나 공을 들인 건 소수의 그들만을 위한 완벽한 휴식처로서의 문화공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걸 증명하듯 내부 곳곳에서는 진품 골동품과 미술품이 놓여 있어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격조 높은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덕망있는 분들은 가족 여행을 이곳으로 오는 경우가 많은데, 어른들은 한옥이 정서에 맞는 편이지만 아이들은 불편해 할 줄 알았는데 너무 좋아하고 즐거워 하더군요.”
지 소장은 “불면증인 분들도 여기 와서는 잠도 푹 주무시고 하루 머물다 가면 생명이 연장된다는 생각이 든다고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가실 때 가장 보람이 있다”며 웃는다.
VVIP만을 위한 완벽한 휴식처를 만들다
한옥의 공간이라 빛과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햇볕 몇 조각이 어우러지는 방마다 그의 수집 작품에 터를 잡는다. 저마다 삶과 체취를 품은 작품들은 독특한 예술적 분위기를 뿜어낸다. 왠지 모를 행복감이 밀려온다. 특별한 프라이빗 공간을 나름 재해석하고 연출함으로써 담담각은 럭셔리하게 정취가 물씬 익어가고 있다.
5000평 집 전체를 감싸고 있는 돌담은 지 소장의 수집 인생의 대표 작품이다. 강화도 자연석으로 돌담을 쌓고 한옥 바깥은 원형을 유지하면서 내부는 현대인이 생활할 때 불편하지 않게 재배치했다, 새 둥지도 지방에 내려가서 입수하는 등 꼭두 소품 하나 하나 애정을 갖고 배치하고 천천히 뜯어 고친 결과 우물이 있던 마당이 부엌으로, 거실로 바뀌며 집이 커졌다.
각 방과 거실, 주방 곳곳에 좋은 컬렉터와 좋은 스토리텔링을 보여주고 있는 지 소장은 추억과 취향을 작품 하나 하나에 깃들게 하고 싶어했다.
계단의 장대석은 서울 상왕십리 공사 현장에서 가져왔다. 연개소문 생가에 가서 소나무를 어렵게 모셔와 정원에 심었다. 고재상을 거치지 않고 20년간 직접 발품 팔며 사 모으니 이제 전국에서 고귀한 물건들이 있다 싶으면 지 소장에게 먼저 연락이 온다.
주한 유럽연합(EU) 상공회의소 산하 유럽·코리아재단의 이사장으로도 있는 지 소장은 “월급 타서 아파트·상가 같은데 투자하지 않고 한옥 가꾸는 일에 돈을 쓰니까 사람들은 저 보고 미쳤다며, 시간이며 노동력까지 버리느냐는 이야기를 계속 들어왔다”고 말했다.
1인용 침대와 쇼파가 자유자재로 변하는 북유럽풍 스타일 가구와 뱅앤올룹슨 오디오를 설치한 쉼채는 원래 경기도 용인에 있는 조그만 절의 본당이었다. 도시개발로 철거될 절을 옮겨놓은 것. 지 소장이 담담각에 쏟는 스케일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영빈관 앞 입구 마당도 현재는 주차장으로 활용하고 있으나 조만간 박물관을 꾸밀 생각이다. 또한 이미 논밭을 일구고 있는 담담각 마을 입구 터에도 조만간 카페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1편에서는 정원조성의 1단계이자 가장 중요한 단계인 관찰하기에 대해서 말했다. 콩심은데서 콩나고, 팥심은데서 팥나듯. 관찰하기는 정원의 전체적인 큰 틀을 잡는데 매우 중요한 단계이다. 뿐만아니라 관찰하기는 정원조성이 끝나더라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왜냐하면 정원은 살아 숨쉬는 생명체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1단계인 관찰이 끝나면 이제는 정원에 대해서 상상해 본다.
정원을 계획함에 있어서 서두르는 것은 금물이다. 관찰하기가 끝났다고 혹은 좋은 재료를 원예상에서 보았으니 빨리 적용할까라는 생각은 오류로 접어드는 지름길이다. 그렇다고 너무 머뭇거리는 것도 별로 안좋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본격적인 설계에 앞서서 몇가지 미리 생각해야 할 점이 있다.
1. 나는 정원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가
2. 정원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인 무엇인가
3. 정원을 조성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위의 내용은 상상하기의 가장 기본이다. 위의 내용들에 대한 답변의 깊이에 따라 정원의 완성도가 달라질 수 있다.
상상하기에 앞서서 정원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고민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하기때문이다. 정원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보면 “흙·돌·물·나무 등의 자연재료와 인공물 및 건축물에 의해 미적이고 기능적으로 구성된 특정한 구역”이라고 두산백과사전에서 말하고 있으며, 또한 다른 백과사전인 브리테니커에서는 “미관이나 위락 또는 실용을 목적으로, 주로 주거 주위에 수목을 심거나 또는 특별히 조경(造景)이 된 공간”이라 정의하고 있다. 위의 정의에서 보듯이 정원은 미와 실용(기능)이 기초로 된 공간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정원은 아름다워야 하며, 동시에 매우 실용적이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무조건 보기에 좋은 것보다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기호에 맞는 정원을 실용적인 정원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 그럼 보기에 좋고 이용이 편리한 정원인 나만의 정원을 만들기 위해서 나는 정원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해보자. 나는 정원이 만들어지면 정원을 감상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정원안에서 식물들을 가꾸는 것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수확물을 얻기를 위해 땀흘리는 것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말이다.
1. 기능에 대해 고민하기 : 정원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이다. 조그마한 운동장을 원한다면 잔디정원이 어울릴 것이며, 평화로운 티타임을 원한다면 디테일이 아기자기한 시소그네도 좋다. 또한 바비큐를 사랑한다면 안방 창문앞에 파타일로 한껏 치장한 화덕도 괜찮다. 이렇듯 정원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 상상하다보면 정원의 기능은 저절로 정해진다.
2. 형식에 대해 고민하기 : 정원은 일반적으로 형식정원과 비형식정원으로 나눈다. 형식정원은 프랑스의 자수화단이 대표적이고, 비형식정원은 우리나라 전통정원을 생각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규모가 작은 정원은 형식정원의 형태를 이루어야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에 대한 고민은 후에 정원의 전체적인 틀을 정할 수 있다.
※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독자 이기섭(92)씨가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두 아들과 함께 딸과 사위가 있는 오스트리아와 체코 여행기입니다. 이기섭씨 처럼 독자 여러분의 희로애락이 담긴 사연을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항상 기다립니다.
◇ 비엔나에 살고 있는 딸부부
오스트리아 수도 빈(Wien)은 영어로 비엔나(Viena)라고 한다. 유엔기구의 외교관인 사위와 딸이 사는 집은 비엔나 도심지역에 있었다. 움직이는데 지극히 편리했다. 지하철 3개 노선과 귀엽게 생긴 전차를 바로 집 앞에서 이용할 수 있었다. 백년 되었다는 6층 건물의 상층부 2개 층에 살고 있었다.
건물의 겉은 역사 유적 같은 고풍스러운 모습이지만, 내부는 냉난방이 가동되는 최신식 인테리어였다. 6층은 널찍한 거주 공간, 옥상공간을 포함한 7층은 파티 등 여러 사람들이 어울릴 수 있는 모임장소였다.
사위와 딸은 지극히 세심하고 정성스런 스케줄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사위가 준비한 스케줄은 처음엔 강행군, 뒤에 편안한 쉼이 있는 계획표였다. 많은 손님을 접하며 경험해 얻은 노하우 같았다. 첫 3일 동안 오스트리아 서부의 잘츠부르크와 호반지역, 스키산장 그 다음 이틀은 체코 프라하 방문, 그 다음에 딸집에서 편안히 머물며 비엔나 일원을 관광하는 스케줄이었다. 짧은 기간에 비해 기억에 남는 추억이 너무도 많지만, 특히 딸집에서의 편안함과 모차르트 고향 잘츠부르크 그리고 2박 머물렀던 스키산장에서의 기억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다.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고자 한다.
◇ 비엔나 일원
최근 국제기관의 조사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고 아름다운 도시 1위로 비엔나가 뽑혔다고 한다. 경제ㆍ환경ㆍ교육ㆍ인프라ㆍ안전 등의 모든 요소에서 삶의 질이 가장 높았다고 한다. 2위는 스위스 취리히, 3위는 뉴질랜드 오클랜드라고 들었다. 정말로 청정도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미세먼지 없고 맑고 푸른 하루를 마음껏 구경 할 수 있었다. 밤하늘에는 별자리들이 두루 다 보일 정도였다. 수돗물을 거부감 없이 그대로 다 먹고 있었다. 상수원이 오스트리아 남부의 청정 수역이라고 한다.
다뉴브강 연안에 위치해 있는 음악의 도시 비엔나는 오스트리아의 수도로 과거의 화려한 역사를 보여주는 왕궁, 박물관, 오페라극장, 대학 등의 웅장한 건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관광지가 시내중심에 모여 있어 거의 도보나 지하철, 전철로 명소를 둘러볼 수 있었다. 시민들은 일반적으로 느긋하고 우호적이고 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궁전, 도심(성당 등)과 유명한 음악가 동상이 몰려있는 음악공원(마침 모차르트, 슈트라우스 음악축제가 진행되고 있었다) 등을 구경했다. 그리고 오페라「카르멘」관람, 다뉴브강변의 분위기 있는 저녁식사, 경치가 아름다운 드넓은 골프장에서 맛있는 점심식사도 했다.
지하철도 여러 번 타 보았는데, 편도1회에 2유로 10센트였고 우리나라와 같은 환승서비스는 없었다. 검표과정이 없이 그냥 타는데, 가끔 행해지는 조사에서 무임승차가 적발되면 벌금이 100유로라고 한다. 또 한국에선 많이 들었던 ‘비엔나 커피’, ‘비엔나 소세지’란 용어가 정작 비엔나에는 없다고 한다. 전통적인 비엔나 스타일로는 커피에 우유를 섞어 혼합한 ‘멜랑쉐 커피’가 있다고 한다.
◇ 쉔부른 궁전
도심의 슈테판 대성당과 함께 비엔나 관광의 양대 핵심이다. 이 궁전은 옛날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궁전이었다고 한다.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모델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였던 그 유명한 마리 앙투와네트가 결혼 전 15세까지 자란 곳으로도 유명하다. 총 1400실이 넘는 방 중에서 39실만 공개하고 있었다. 특히 6세 때 모차르트가 연주했다는 방이 기억에 남는다. 공개된 방의 설명을 이어폰으로 들으며 한 바퀴 돌고나서 궁전 건물을 나서니 푸르디 푸른 널따란 왕궁 정원이 나왔다. 반듯반듯하게 정리 정돈된 정원과 분수, 조각상들이 한데 어우러진 멋진 전경이었다.
◇ 성 슈테판 대성당
비엔나의 상징이자 영혼인 슈테판 성당은 비엔나의 수많은 랜드마크 중 단연 첫째다.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 양식 건물로 하늘을 찌를 듯한 137m 높이의 웅장한 첨탑이 그 자태를 자랑한다.
343개의 계단을 오르면 발코니에서 비엔나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데, 가까이 사는 딸집도 보였다. 성당 안 곳곳에서 기도하고 있는 관광객을 볼 수 있었다. 사원 앞 광장에서는 관광마차가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있었던 곳으로 유명한데, 성당 안에 있는 지하무덤은 성직자들이 아닌 역대 왕과 왕비들이 석관에 넣어 보관되고 있다고 한다.
◇ 우리나라 서울의 명동거리에 해당하는 케른트너 거리
비엔나 도심에서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많은 곳이 케른트너 거리인데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슈테판 성당에 이르는 약 600m의 대로이다. 비엔나 최대의 번화가이자 보행자 전용도로이다. 노천 카페와 쇼핑센터, 레스토랑들이 즐비해 쇼핑과 휴식이 함께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보행자 천국의 거리로 거리 악사, 행위예술가 등의 다양한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노래를 부르거나 음악회 티켓을 광고하는 사람들도 많아 음악의 도시다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도 있었다. 관광안내소가 있어 비엔나의 커다란 지도를 얻어 여기저기를 확인하며 돌아다닐 수 있어 도심의 분위기를 흠뻑 느낄 수 있었다.
◇ 오페라「카르멘」관람
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집시여인 카르멘을 둘러싼 3각 애정관계를 묘사하면서, 마지막에는 카르멘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몇몇 곡은 귀에 익은 곡도 있었다. 만석인데, 입석도 많이 보였다. 음악도시답게 유학온 음악도들이 싼값에 오페라를 관람할 수 있도록 입석을 배려한다고 한다.
◇ 골프장의 환상적인 경관
딸과 며느리가 쇼핑하는 사이에, 사위의 벤츠차를 타고 간곳이 비엔나 남쪽의 골프장이었다. 캐디도 없이 혼자 또는 몇몇이 골프 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클럽하우스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골프장의 환상적인 경관에 취했는지 기분이 편안하게 풀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