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
1) 위대한 낙서(The Great Graffiti) 전
일정 12월 9일~2월 26일 장소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그라피티(Graffiti) 전시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미국 뉴욕현대미술관 등 세계 유수 박물관과 갤러리에서 앞다투어 그라피티 전시를 여는 등 현대 미술의 한 장르로 인정받으며 마니아층이 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팝 아트 이후 동시대를 기록하는 대표적인 예술로 자리 잡고 있는 그라피티의 역사와 현재, 미래의 모습을 담았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라피티 아티스트 7인의 수준 높은 작품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아티스트 중 일부는 한국을 방문해 라이브 페인팅을 선보일 계획이다.
2) 올라퍼 엘리아슨: 세상의 모든 가능성 전(Olafur Eliasson: The parliament of possibilities)
일정 2월 26일까지 장소 삼성미술관 리움
자연, 철학, 과학, 건축, 사회, 정치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예술의 새로운 형태를 표현한 아이슬란드계 덴마크 작가 올라퍼 엘리아슨의 개인전이다. 미술관이라는 인공적인 공간에서 만나는 물, 바람, 이끼, 돌 등의 자연 요소와 기계로 만든 유사 자연 현상, 거울 착시 효과 등으로 오감을 자극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 대해 “세상과 세상에 대한 우리의 감정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나의 작품을 통해 세상과 관계 맺고, 세상 안에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경험했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 도서
1) 내 아버지들의 자서전 (오도엽 저 · 한빛비즈)
시인이자 르포 작가인 저자가 고집스럽게 자신의 일터를 지키며 살아가는 9명의 아버지를 만나 ‘당신에게 일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들은 대답 대신 자신들의 삶을 풀어놓는다.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노동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올려놓기까지의 절절한 사연이 들어 있다.
2) 희로애락 레시피 (무관스님, 혜일스님 공저 · 웜홀)
강원도 횡성의 금수사에서 함께 사는 무관스님과 혜일스님이 만든 레시피북이다. 그들은 “감정도 요리의 재료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두 스님이 직접 고안한 다양한 자연 요리 비법이 기쁨·고마움·분노·짜증·미움·슬픔·즐거움·설렘 등 각각의 감정이 가지는 색깔에 따라 담겨 있다.
◇ 영화
1) 위대한 두 예술가의 40년 우정
개봉 12월 예정 장르 드라마
감독 다니엘르 톰슨 출연 기욤 카네, 기욤 갈리엔, 데보라 프랑소와 등
근대 회화의 아버지 화가 폴 세잔과 의 소설가 에밀 졸라의 특별한 우정을 그렸다. 유년 시절부터 모든 것을 함께하며 지낸 두 사람은 서로를 동경하면서도 때론 냉혹한 평가를 서슴지 않으며 성장해나간다. 포스터에는 폴 세잔의 대표작인 ‘생트빅투아르의 산’의 이미지를 배경으로 폴 세잔과 에밀 졸라가 서로 마주 보며 걷는 모습이 담겨 있다. , 을 연출한 다니엘르 톰슨이 16년간 제작을 염원하며 준비한 신작으로 기대를 모은다.
2) 오감이 즐거운 아름다운 로맨스
개봉 12월 7일 장르 뮤직 로맨스
감독 다미엔 차젤레 출연 라이언 고슬링, 엠마 스톤, J.K. 시몬스 등
배우 지망생과 재즈 피아니스트의 꿈과 열정 그리고 사랑을 그린 뮤직 로맨스 영화다. 주연 배우들이 노래에서부터 피아노, 연주, 탭댄스까지 대역 없이 소화하며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 로 주목받은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신작으로 제73회 베니스영화제 개막작 선정·여우주연상 수상, 제41회 토론토영화제 관객상 수상 등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았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예매 오픈 1분 만에 매진을 기록하는 등 국내에서도 열기가 뜨겁다.
◇ 공연
1) 3색 공연으로 즐기는 따뜻한 12월
일정 12월 24일 , 12월 25일 , 12월 31일 장소 꿈의숲아트센터 콘서트홀
웅산밴드의 재즈콘서트 , 유터피 목관5중주단의 , 서울 페스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팝페라 가수 최의성, 소프라노 윤정인이 들려주는 등 각기 다른 색의 세 가지 공연을 선보인다.
2) 키니와 함께 떠나는 달나라 모험
일정 12월 31일까지 장소 압구정 윤당아트홀
연출 박찬 출연 윤효상, 유수호, 조용민, 권세봉, 박상아 등
크리스마스이브, 혼자 놀다 낮잠에 빠진 주인공 ‘감자’가 꿈속 고무줄 요정들과 산타클로스를 만나고 싶어 하는 물고기 ‘키니’를 만나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관객들은 입장할 때 받은 고무밴드로 배우들과 함께 별, 산호초를 만들어 주인공의 모험을 도와줄 수 있다.
3) 가장 행복했던 그때 그 시절로
일정 2월 5일까지 장소 광림아트센터 BBCH홀
연출 한진섭 출연 남경주, 서영주, 서범석, 전수경, 김선경 등
전 세계를 사로잡은 팝의 거장 닐 세다카의 주크박스 뮤지컬 의 한국 초연 무대다. 1960년대 미국 마이애미 리조트를 배경으로 여섯 명의 주인공을 둘러싼 사랑 이야기를 중·장년 세대에게 친숙한 닐 세다카의 팝송 21곡에 담았다.
4) 반복되는 폭력, 반복되는 아픔
일정·장소 12월 6~15일 나루아트센터 소공연장, 12월 21~31일 대학로 게릴라극장
연출 이해성 출연 강애심, 이영숙, 김동완, 최유송, 유성진 등
일본군 위안부 사건과 한 여배우를 죽음까지 몰고 간 성 상납 사건 등 두 가지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지난 9년간 수요시위에 참석한 이해성 연출가의 절실함과 진정성이 녹아 있다. 제7회 대한민국연극대상 희곡상, 작품상, 여자연기상 등 3관왕에 이름을 올렸다.
◇ Exhibition
1) 태양의 화가 반 고흐: 빛, 색채 그리고 영혼 전
일정 12월 31일까지 장소 apM CUEX홀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새롭게 연출한 전시다. 고흐의 수작들을 디지털 영상 기술과 접목한 최첨단 전시 기법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체험하도록 했다. 인상파와의 교류, 대자연, 고흐의 방, 동양의 색채, 초상, 동생 테오와의 편지 등 8개의 존으로 구성되어 있다. 거대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는 와치아웃 시스템을 이용한 멀티채널과 1만 픽셀 이상의 초대형 화면의 이머시브(Immersive) 시네마 등을 마련했다.
2) 최순우가 사랑한 전시품 전(CHOI SUNU’S FAVORITE)
일정 12월 31일까지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미술학자 최순우(1916~1984) 탄생 100주년을 맞아 기획한 전시로, 그가 생전에 아끼고 좋아했던 작품들을 글과 함께 소개한다. 평생 한국의 미를 탐색하고 박물관을 발전시키는 데 헌신한 최순우의 문화재에 대한 애정과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자리다. 1층 통일신라실에서는 돌함과 뼈단지 등 일제강점기에 약탈됐다가 돌아온 문화재를, 2층 서화관에서는 김홍도서첩, 달마도 등을, 3층 조각·공예관에는 반가사유상, 달항아리 등 15개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3) 코디최 개인전 CODY CHOI Color Painting: Frustration is Beautiful
일정 10월 28일~11월 20일 장소 PKM 갤러리(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7길 40)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출품 작가인 코디최(Cody Choi)의 개인전이 10월 28일부터 11월 30일까지 PKM 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2011년 이후 5년 만에 개최되는 개인전으로 회화와 설치 작업 약 20 여 점이 전시된다. 특히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출품 준비를 위한 기금마련 전시라는 점에서 뜻 깊은 자리다.
1980년대 중반부터 작가이자 문화이론가로서 활동하는 코디최는 현대사회의 문화정체성과 권력관계에 관해 탐구한다. 현시대 다양한 문화가 빚어내는 충돌과 간극에서 태어난 제3의 문화 혹은 혼종문화, 동시대 사회현상에 주목하며 회화·조각·설치 등의 작업으로 표현하고 있다.
LA 아트센터 칼리지를 졸업한 코디최는 LA 현대미술관, 타이페이 현대미술관, 토탈미술관 등 국내외의 주요전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현재 독일 쿤스트할레 뒤셀도르프와 프랑스 마르세유 현대미술관 등 유럽에서 순회 회고전을 진행하고 있다. 20세기 문화 지형도 (2010), 동시대 문화 지형도(2010) 등 현대문화에 관한 전문비평서를 출간했다.
◇ Book
1) 초혼 (고은 저 · 창비)
고은 시인의 3년 만의 신작 시집이다. ‘때’와 ‘곳’에 얽매이지 않는 ‘자가지무(自歌自舞)’ 정신으로 우주와 소통하는 대자유의 세계를 펼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삶을 아우르는 우주적 상상력과 예리한 통찰력이 담겨 있다.
2) 보고 시픈 당신에게 (김광자 외 86명 공저 · 한빛비즈)
전국 한글학교에서 늦깎이로 한글을 배우고 있는 어르신들의 시와 산문을 엮었다. 글자를 익히면서 느끼는 기쁨, 가족에 대한 사랑, 삶의 애환 등이 돋보인다. 손글씨의 느낌을 살려 원문을 그대로 옮기고, 저시력자를 위해 큰 글자로 다시 정리했다.
◇ Movie
1) 기적을 증명한 두 남자 이야기
개봉 11월 3일 장르 드라마
감독 맷 브라운 출연 데브 파텔, 제레미 아이언스, 토비 존스 등
인도 빈민가의 한 수학 천재와 그의 가능성을 알아본 영국 수학자의 특별한 우정을 그렸다. 숫자가 유일한 친구였던 순수한 수학 천재 ‘라마누잔’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해 그의 열정적인 천재성과 삶의 고뇌 등을 담았다. 라마누잔 역을 맡은 배우 데브 파텔이 해외 유수 언론에서 “실존 인물 라마누잔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연기했다”는 평을 받는 등 작품성 못지않게 그의 연기력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개봉 11월 10일 장르 드라마
감독 나가이 아키라 출연 사토 타케루, 미야자키 아오이, 하마다 가쿠 등
시한부 선고를 받은 한 남자가 하루를 더 사는 대신, 세상에서 무언가를 한 가지씩 없애야 한다는 독특한 설정이 돋보이는 영화다. 전 세계적으로 130만부 이상 판매량을 올린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로 제작했다. ‘세상에서 전화가 사라진다면, 당신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까요?’라는 포스터 속 문구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신선한 스토리 전개로 잊고 지낸 것들에 대한 소중함과 인생의 행복을 선사한다.
◇ Stage
1) 연극 재공연, 이웃사촌들의 수상한 진실게임
일정 10월 27일~11월 20일 장소 대학로 선돌극장
연출 이동선 출연 이황의, 김수보, 리우진, 곽지숙 등
지난 3월 초연돼 뜨겁게 주목받았던 극단 몽씨어터의 (작가 석지윤, 연출 이동선)가 11월 20일까지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재공연 된다. 연극 는 치밀한 구성과 전개, 팽팽한 긴장감과 반전, 그 사이를 비집고 터지는 폭소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이웃 혹은 사람 간 의심이 한순간에 누구든지 싸이코패스로 몰아갈 수 있는 현대인의 각박한 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신예작가 석지윤의 독특한 언어, 이동선 연출가의 감각적인 연출에 힘입어 씁쓸하면서도 웃음 터지는 우리시대의 슬픈 자화상과 마주하게 한다.
빌라의 고양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죽어나간다. 주민들은 벌어지는 상황을 진단하고 해결하고자 대책회의를 연다. 그런데 301호의 혼자 사는 남자가 수상하다. 사람들은 그가 분명 고양이를 죽인 싸이코패스가 틀림없다고 믿게 된다. 싸이코패스를 잡기 위한 평범한 이웃들의 위험하고 묘하게 웃긴 진실게임, 바로 연극이다.
2) 천재 시인의 삶과 사랑을 노래하다
일정 11월 5일~1월 22일 장소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2관
연출 오세혁 출연 강필석, 오종혁,이상이, 정인지, 최주리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모던보이였던 시인 백석의 시가 뮤지컬로 재탄생한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모티프를 얻은 작품으로 백석과 그의 연인이었던 김영한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그의 시 노랫말로 표현했다.
3) 꿈과 희망을 위해 링 위에 서다
일정 11월 1일~1월 15일 장소 디큐브아트센터
연출 노우성 출연 신성우, 송창의, 신구, 김진태, 김지우 등
영화 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로 실베스터 스탤론이 직접 제작에 참여하며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박진감 넘치는 권투시합 장면을 무대 위에 생생하게 그려내며 2014년 토니어워드와 드라마데스크어워드에서 무대디자인상을 받았다.
4) 고모와 조카의 예측 불허 동거
일정 11월 22일~12월 11일 장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연출 구태환 출연 하성광, 정영숙
세상을 곧 떠날 것 같다는 고모의 편지 하나에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30년 만에 고모를 찾아가는 조카의 이야기를 담았다. 배우 인생 첫 2인극 도전이라는 중견 배우 정영숙이 고모 그레이스 역을 맡아 섬세한 감정연기를 펼친다.
5)인간의 죄의식과 예술가의 고뇌
일정 11월 20일까지 장소 아트원씨어터 3관
연출 김동수 출연 남명렬, 이명호, 박지일, 김병철, 손성호 등
1995년 제26회 동인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정찬의 소설을 연극화한 작품이다. 같은 해 11월 첫 공연한 이래로 상업성이 짙은 작품들이 주목받는 공연계에서 인간의 존재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통의 밀도를 담아내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장석주(張錫周·62) 시인의 트위터 자기 소개란에는 ‘산책자 겸 문장노동자’라고 쓰여 있다. 그는 현재 자신의 삶을 가장 잘 드러내는 두 단어라고 이야기한다. 장 시인의 하루는 매일 걷고, 읽고, 쓰고, 단순하지만 풍요로운 사색으로 채워진다. 산문집 은 그런 그의 일상에 온유한 자극을 준 책이다.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매일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신간을 살펴본다는 그는 1년에 주문하는 책만 1000권에 달하는 독서광이다. 포털사이트에 그의 이름으로 된 책을 검색하면 100여 권이 나올 정도로 집필 작업도 충실히 하고 있다. ‘문장노동자’라는 별명이 꼭 들어맞는다. 그런 그가 추천한 도서 에는 영미 작가들의 아름다운 산문 32편이 담겨 있다.
“최근 읽은 산문집인데 자연이나 인생에 대한 성찰이 잘 녹아 있어요.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의 글들인데, 훨씬 여유가 느껴지고 글맛이 깊더라고요. 이런 책이 두루 많이 읽히면 좋겠다는 생각에 추천하게 됐죠. 저도 천천히 음미하면서 다시 읽고 있어요.”
길어진 중년, 적당한 긴장감이 필요하다
여러 주제의 산문 중에서도 그는 알도 레오폴드의 ‘산처럼 생각하기’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소나무의 죽음’ 등 자연에 대한 성찰이 돋보이는 글이 인상 깊다고 했다. 평소 자연을 바라보는 풍부한 시선을 따뜻하고 지적인 언어로 표현해온 장 시인다웠다.
“인간의 평안과 안위 때문에 자연이 훼손되고 있잖아요. 그런 데서 오는 생태계 불균형이 결국 고스란히 우리에게 오게 될 텐데, 인간은 너무나 무관심하죠. 글에도 늑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제가 1960년대 서울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늑대 울음소리를 들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런데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게 돼버렸잖아요. 책을 읽고 그런 문제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중년 이후 꽃, 나무 등 자연에 관심을 두는 이가 많다. 그는 “자연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은 나이 들었다는 증거”라며 “생존 경쟁에서 물러나 삶에 여유가 생긴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이 책에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다소 느슨해지는 중년의 삶을 묘사한 ‘오버롤스 작업복’이라는 글이 나온다. 소작농들이 입는 작업복인 오버롤스 세 벌을 각각 초기 중년, 중년, 후기 중년 단계로 설명했는데, 장 시인은 비유가 아주 탁월하다며 감탄했다.
“예전에는 30대 후반만 돼도 중년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마흔이 훌쩍 넘어도 중년이라는 생각을 잘 안 해요. 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인데, 그래서 중·장년기가 상대적으로 더 길어졌죠. 그런 중년의 삶을 세 단계로 나눠 옷에 빗대 설명했는데 정말 참신하더라고요. 새 옷은 솔기도 살아있고 옷감도 견고한데, 시간이 흐를수록 단추도 헐거워지고 천도 닳아서 얇아지죠. 처음에는 깨끗하지만 빳빳해서 불편했던 작업복이 삶의 흔적대로 때가 묻기도 하고 해지기도 하면서 내 몸에 점점 익숙하고 편안해져요. 그런 은유가 중년의 삶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어요. 우리의 인생도 세월이 더해질수록 오버롤스처럼 부드럽고 느슨해지니까요.”
저자 제임스 에이지는 후기 중년 오버롤스를 ‘여전히 제구실을 완전히 해내며 최고로 편안한 단계’라고 설명했다. 장 시인은 나이가 들며 누리는 편안함은 양면성을 지닌다고 말했다.
“삶이 여유로워졌다는 면에서는 좋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권태롭고 의욕이 떨어지기도 하죠. 꿈이나 생의 약동에서 멀어지는데 그러다 보면 아무렇게나 막 살아버릴 수 있거든요. 그러면 삶의 질이나 자기존중감도 떨어지죠. 중년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가장 활동적으로 살아야 할 시기이거든요. 뭔가를 이뤄낼 수 있는 나이에 느슨해지고 희미해지면 안 되죠. 적당한 긴장감을 느끼고 삶을 탄력적으로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길어진 중년의 삶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인생의 가치가 결정된다고 생각해요.”
책 읽기는 뇌의 유산소 운동
그는 삶의 탄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즉 자기성찰을 하라는 말인데, 이를 실천하고 도울 방법으로 ‘책 읽기’와 ‘미니멀라이프’를 제시했다.
“책 읽기는 뇌의 유산소 운동과 같아요. 뇌에도 근육이 있는데, 책을 읽지 않으면 뇌의 유연성이 떨어지죠. 시집과 철학책은 뇌에 좋은 자극을 주고,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줘요. 인간에게는 세 가지 기억이 있어요. 절차기억, 학습기억, 신념기억. 절차기억은 아기가 엄마 젖을 빠는 것과 같은 선천적인 기억이고, 학습기억은 책 읽기나 경험을 통해 얻는 것, 신념기억은 정치나 종교적인 기억을 뜻해요. 그런데 책을 읽지 않으면 학습기억이 줄고 그 자리를 신념기억이 차지하거든요. 그러면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융통성이 없어지죠. 그렇기 때문에 나이 들수록 책을 읽고 학습기억을 키워 균형을 맞춰야 해요. 그래야 다른 세대와 원활히 소통할 수 있습니다.”
책은 많이 읽는 것이 삶에 이롭지만, 그 외의 것들은 최대한 적게, 단순하게 하는 것이 현상의 본질을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최소한의 것으로 최대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다는 그는 적게 소유할수록 크게 생각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너무 많은 것들이 복잡하게 쌓여 있으면 그 물건의 진가가 잘 안 보여요. 겉으로는 풍족해 보일지라도 그 하나하나의 가치는 희석돼버리고 말죠. 불필요한 요소들을 걷어내고 꼭 필요한 것만 남겼을 때, 가진 것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어요. 물건뿐만 아니라 마음도 마찬가지예요. 욕심이나 사심을 비워냈을 때 본인의 가치를 발견하고,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죠.”
비울수록 충만해지는 행복을 경험하고 싶지만, 막상 물건이든 마음이든 비워내려고 하면 쉽지 않다. 수긍이 가는 말들이지만 결국은 실천이 문제다.
“버리는 삶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아요. 무언가를 많이 가지고 있어야 안심하고, 움켜쥐려는 성향이 강하거든요. 옷장을 열면 옷이 가득한데도 입을 옷이 없다고 하죠. 몇 년째 입지 않은 옷들이 걸려 있으니까요. 그러면 버리거나 누구에게 주거나 해야 하는데, ‘언젠가는 입을 거야’라는 생각에 그대로 걸어두죠. 하지만 그 ‘언젠가’는 오지 않을 확률이 높아요. 특히 나이 들어서 갖는 그런 욕망을 노욕이라고 하는데 남들이 볼 때 굉장히 추합니다. 불편하고 쉽지 않겠지만 실천적 결단이 필요하죠. 우리는 단호해질 필요가 있어요.”
삶의 단순화에 대한 장 시인의 시각은 그의 산문집 에 잘 나타나 있다. 모든 군더더기를 없애고 최소화하려 하지만, 독서와 산책만큼은 충분히 즐긴다. 글을 쓰는 게 그의 일이기에 육체보다는 정신적 노동에 과부하가 걸리곤 한다. 그럴 때 산책을 하면 어지럽혀져 있던 생각을 정리하고 비울 수 있기 때문에 정신적 피로를 푸는 데는 효과만점이라고.
“걷다 보면 사유가 깊어지고 자기성찰에 몰입할 수 있어요. 잡념은 사라지고 내면의 기쁨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죠. 물론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요. 무엇보다 걷는 동안 내가 살아 있다는 행복을 오롯이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가장 귀하고 가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 전시
덴마크 디자인 전(DENMARK:DESIGN)
일정 11월 20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카레 클린트(Karre Klint), 한스 베그너(Hans J.Wegner) 등 11명의 거장 디자이너 작품을 만날 기회다. 로얄 코펜하겐(ROYAL COPENHAGEN), 뱅앤올룹슨(BANG&OLUFSEN)을 포함한 11개 브랜드가 참여했다. 덴마크 왕실 도자기, 케네디 대통령이 앉았던 의자, 브릭아트의 대명사 레고(LEGO) 등 덴마크를 대표하는 디자인 작품 200점을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덴마크 근대 디자인의 황금기라 불리는 20세기 이후의 디자인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 전(The History of Korean Abstract Art)
일정 10월 29일까지 장소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우리나라 추상미술의 역사와 관련된 자료를 조사, 발굴, 수집하여 제반 연구 성과를 공개하는 아카이브 전시다. 1957년 이후 연대별로 최근 추상미술 전시와 단색화에 대한 관심까지 아우르며, 미술에 대한 관념과 형식을 뛰어넘고자 한 한국 추상미술의 궤적을 살펴볼 수 있다. 추상미술 단행본, 도록, 팸플릿, 주요 전시 기사, 평론, 포스터, 사진, 작품 등 각종 실물자료를 다양하게 마련했다.
◇ 도서
여행자의 하룻밤 (이안수 저·남해의봄날)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 촌장인 저자가 자신이 운영하는 북스테이 ‘모티프원’에서 일어난 10년간의 에피소드를 담았다. 모티프원에서 하룻밤을 지낸 여행자들이 풀어놓은 진심 어린 이야기가 책에 온기를 더한다. 전 세계 방문객과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각자의 삶을 나누는 경험을 ‘글로벌 인생학교’라 부르며 인생의 공감과 영감을 자아낸다.
마르지 않는 붓 (자유칼럼그룹 저·두리반)
지난 10년간 자유칼럼그룹이 발표한 3000여 편의 글 중에서 24명의 필진이 추린 74편을 담은 칼럼집이다. (재)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인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추천사를 썼다. ‘마르지 않는 붓’이라는 제목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붓, 평생 녹슬지 않는 펜을 들고 살아온 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이 이사장의 추천사에서 따왔다.
◇ 영화
박카스 아줌마의 인생 딜레마
개봉 10월 6일 장르 드라마 감독 이재용 출연 윤여정, 전무송, 윤계상 등
종로에서 노인을 대상으로 성매매하는 이른바 ‘박카스 아줌마’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가난한 노인들 사이에서 ‘죽여주게 잘하는 여자’로 통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주인공이 사는 게 고통스러워 ‘죽고 싶은 고객’들을 도와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죄책감으로 혼란에 빠지는 주인공 역에 배우 윤여정이 캐스팅돼 기대를 모았다. 제6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제20회 몬트리올 판타지아 영화제 등에 초청돼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마음이 먼저 가 있는 곳
개봉 9월 29일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이소현 출연 박삼순, 이소현, 장춘옥 등
어린 시절 함께 살던 할머니의 자살 시도 소식을 들은 손녀가 다시 할머니 집에 들어가 동거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감독인 손녀가 담아낸 할머니와의 가슴 따듯한 이야기로 ‘제41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으며 호응을 얻었다. 투박하지만 정겨운 할머니 집을 배경으로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할머니와 손녀가 서로를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에서 애틋함이 묻어난다.
◇ 공연
국화꽃 향기처럼 아련한 첫사랑
일정 10월 1~23일 장소 충무아트센터 소극장 블루
연출 이성모 출연 박형준, 장덕수, 서지유, 정서희, 황정윤 등
2000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김하인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다. 2014년 이후 1년 8개월 만에 선보이는 이번 공연에서는 여주인공의 입장에서 고민이 극대화됐던 이전 무대와는 다르게 남주인공 ‘승우’의 시선과 심리를 중심으로 극이 전개된다.
우리가 기억하는 왕비의 얼굴
일정 10월 11~23일 장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연출 이지나 출연 김선영, 조풍래, 정원영, 박영수, 이창엽 등
명성황후라는 실존 인물을 새로운 시선으로 재해석한 창작가무극이다. 사진 찍기를 즐겼던 고종과는 달리 명성황후의 사진은 단 한 장도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 착안해 미스터리한 에피소드와 가상의 인물이 주는 신비감을 더했다.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일정 10월 26일~11월 6일 장소 LG아트센터
연출 장우재 출연 이호재, 오영수, 윤상화, 최광일, 이명행 등
조선시대 문인 성현(成俔)이 쓴 기행문 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작품으로, ‘기지’와 ‘경숙’이라는 두 대감이 왕의 질문을 갖고 금강산으로 떠나는 여정을 그렸다. 장우재 연출은 “제목처럼 어두운 세상을 뒤집어 밝게 보려는 마음을 담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햄릿으로 태어나 줄리엣을 꿈꾸다
일정 9월 30일~10월 16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연출 김광보 출연 강신구, 최나라, 이지연, 윤나무, 황성대 등
셰익스피어의 을 바탕으로 만들었지만, ‘여자 햄릿’이라는 독특한 설정이 돋보이는 연극이다. 기본적인 가족 구도와 인물 관계는 유지하면서 햄릿의 고독과 남성적인 복수극 뒤에 숨어 있는 섬세한 여성성에 주목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처럼, 책은 단순한 종이 그 이상의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 같은 책이라도 소장하고 있는 사람마다 그 책에 대한 애정과 추억은 다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철이 지나고 표지가 낡아도 함부로 버리지 못한다. 그렇다고 쌓여가는 책을 가만히 두고 볼 수도 없다. 인생의 보물과도 같았던 책들이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것을 막으려면 선택은 두 가지다. 보기 좋게 잘 정리해 보관하거나, 어디로든 떠나보내거나.
한국정리수납협회 수납전문 정영주 강사
◇ 서재 정리하기
100권 내외의 책을 정리하는 것은 단 몇 시간만 투자하면 어렵지 않게 끝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책에 욕심이 있거나 직업 특성상 책을 많이 두고 지낼 수밖에 없던 경우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런 이들은 대개 개인 서재를 갖고 있는데, 정리하려고 마음을 먹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온 가족을 총동원해도 며칠이 걸릴지 까마득할 정도라면 관련 전문가에게 맡길 것을 추천한다. 인터넷에 ‘서재 정리’ 등 관련 키워드를 입력하면 전문가가 직접 서재 정리를 해 주는 업체를 찾을 수 있다. 규모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통상적으로 서재 한 곳을 정리하는 데 30만~50만원 정도 비용이 든다. 서재가 크고 정리해야 할 책이 많으면 인원이 여러 명 배치되는데, 이에 따라 금액이 좌우된다. 그래도 돈을 들이는 것보다 스스로 정리하는 편이 낫겠다 하는 이들을 위해 한국정리수납협회 정영주 강사의 조언을 담아 봤다.
>>STEP 1 마음을 먼저 비우자
책을 폐·휴지 버리듯 막 대하지 못하는 것은 일종의 ‘미련’이라 할 수 있겠다. 고등학교 수학 교과서, 친구에게서 선물 받은 책, 작가의 사인이 적힌 도서 등 다시 읽어 보지 않더라도 그 책은 이미 그 값어치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몇 가지 기준을 정하고 그에 따라 아쉬움 없이 책을 정리하기로 스스로 약속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막상 그렇게 다짐해도 잊고 지냈던 책을 발견하면 다시 마음이 약해지곤 한다. 그래도 기준을 정했다면 과감히 놓아주도록 하자. 마음을 비울수록 서재는 더욱 가벼워진다.
>>STEP 2 서재의 레이아웃을 파악하자
서재를 정리하려면 먼저 내 서재에 수용할 수 있는 책의 양을 파악해야 한다. 책장에 책을 얼마나 넣을 수 있느냐를 알면 얼마를 버려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대략 한 칸에 들어가는 책 수를 헤아려 칸 수만큼 곱하여 계산해 볼 수도 있겠고, 책장 바깥에 놓아둔 책 수를 어림잡아 짐작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STEP 3 서재의 80%만 채우기
전문가들은 보통 서재에 있는 책을 몽땅 꺼내 한꺼번에 정리하기도 하지만, 일반인에게는 버거운 작업이다. 그보다는 ‘책장의 80%만 채운다’는 생각으로, 20% 정도 책장을 비운 상태로 시작해 보자. 공간을 비운 상태로 정리해야 책을 옮기기도 수월하고 나중에 액자나 상패 등을 장식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책으로만 가득 채운 서재보다는 빈칸이 더러 있어야 보기 좋고 여유가 생긴다.
>>STEP 4 분류하기
시, 소설, 에세이, 과학, 자기계발서 등 자기 기준에 따라 책을 종류별로 분류하고 ‘버릴 것’, ‘기증할 것’, ‘보관할 것’, ‘사용할 것’으로 나눈다. 기증하거나 판매할 책은 따로 모으고 보관하고 사용할 책의 자리를 잡아 준다. 책의 소장 가치가 모호하다면, 헌책방에 가져가 따져 보고 분류하는 것이 좋다. 책이 많을 경우, 책 이름·저자·발행연도·출판사 등 간략한 정보를 적어 리스트를 가져가 대략적인 가치를 가늠해 볼 수 있다.
>>STEP 5 위치 정하기
사용빈도, 책의 크기 등에 따라 책의 위치를 정한다. 자주 보는 책은 눈높이에 맞게 배치하고, 자주 보지 않는 책은 맨 위나 아래 칸 등에 꽂아 둔다. 가벼운 책은 위로, 무거운 책은 아래로 넣는다.
>>STEP 6 보기 좋고 건강하게 보관하는 팁
고서나 추억의 책들은 먼지가 많이 나고 자주 꺼내 보지 않기 때문에 유리문이 달린 책장에 보관하면 좋다. 곰팡이 등에 의해 생기는 호흡기질환을 예방하고, 책을 보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가능하다면 책 높이와 색상을 맞춰 넣어 보기 좋게 정리한다. 대부분 책이 앞코가 맞지 않아 들쑥날쑥한데, 책장 끝에 맞추는 것보다 책 앞코에 맞춰 진열하면 더 깔끔해 보인다. 크기가 작은 책은 이중 수납을 하면 효율적이다.
>>STEP 7 유지하기
‘책장의 80%만 채운다’는 생각을 잊지 말고 책의 총량을 컨트롤해야 한다. 1주일 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날을 잡아 조금씩 책을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면 좋다. 가령 평균적으로 한 달에 10권의 책을 새로 산다면, 매달 10권의 책은 버리는 것을 원칙으로 해 균형을 맞춘다.
◇ 책 팔기
서재를 정리하며 팔거나 기증하기로 마음먹은 책들을 어떤 방법으로 처리할 수 있을까? 가까운 헌책방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온라인 사이트나 스마트폰 앱 등을 이용하면 보다 편리하게 중고 책을 팔 수 있다. ‘알라딘 중고서점’, ‘예스24 바이백’, ‘인터파크 중고서점’ 등에 대해 알아봤다.
>>간단하게 인터넷 중고서점에 책 팔기 ‘알라딘 원클릭 팔기’
알라딘 웹사이트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해 ‘알라딘에 중고팔기’ 메뉴로 찾아 들어가 ‘원클릭 팔기’를 선택한다. 한 권씩 일일이 바코드를 입력하지 않고 박스 수량(1박스에 20권까지, 10kg 이내)만으로 신청 가능한 서비스다. 발송 방법(지정 택배사 또는 편의점), 판매권 수, 박스 수량, 주소를 입력하면 바로 접수 가능하다. 접수 후 번호가 나오면 프린트하거나 직접 적어 해당 박스에 넣어두면 된다. 매입 가능한 도서는 3~4일 내에 계좌 또는 예치금으로 받을 수 있고, 매입 불가한 도서는 폐기처리하거나 다시 돌려받을 수 있다.
>>특별하게 책을 판매하는 방법 ‘한 평 시민 책 시장’
올해로 4년째를 맞이하는 ‘한 평 시민 책 시장’은 서울 시민과 중소 헌책방, 소규모 출판사가 함께하는 중고 책 장터다. 4월부터 10월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펼쳐지는 행사로, 지난해에는 총 20회에 걸쳐 8만4000여 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헌책방과 소규모 출판사가 운영하는 책 판매 부스와 직접 참여하기 어려운 헌책방 운영자들을 위한 위탁 판매의 장도 마련돼 있다. 일반 시민도 참여 가능하다는 것이 특징이며, 신청자들은 한 평에 해당하는 자리를 배정받아 직접 가져온 책들을 판매 또는 교환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과 참가신청은 서울도서관 홈페이지(lib.seoul.go.kr) 또는 한 평 시민 책시장 홈페이지(www.seoul-bookmarket.com)에서 확인할 수 있고, 전화(02-2133-0209)로 문의하면 된다.
◇ 책 기증하기
책을 파는 것보다는 기부를 통해 의미를 더하고 싶다면 다음 두 곳을 추천한다.
>>책다모아 (www.nl.go.kr/sun)
읽지 않는 책들을 모아 ‘책다모아’를 통해 기부하면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지 않은 자료는 영구 보존하고, 이미 소장된 자료는 작은 도서관이나 문고 등 필요로 하는 소외 지역 도서관에 전달한다. 일반도서 외에 학술도서, 연구보고서, 정기간행물뿐만 아니라 멀티미디어 시청각 자료 등도 기부할 수 있다. 기증한 자료에는 기증자 명을 기록해 놓는다.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할 수 있고, 도서관을 방문하거나 우편, 택배 등을 통해 책을 보내면 된다. 문의 02-590-0700
>>사랑의 책 나누기 운동본부 (www.booknanum.org)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젊은 병사들에게 독서와 문화생활의 기회를 선사하기 위한 운동이다. 여러 단체와 개인이 기부하는 책이 전국 76곳의 병영 도서관에 채워지고 있다. ‘사랑의 책 나누기 운동본부’ 사이트에 회원 가입 후 도서 기부를 신청할 수 있다. 문의 02-465-5417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어린 친구들이 쓰는 말로 표현하면 ‘성공한 덕후(마니아)’ 같다고. 다른 분야가 아닌 ‘불교 덕후’. 그러자 웃으며 그가 화답했다. “맞아요. 덕후는 나쁜 표현이 아니에요. 결국 한 분야에 능통하고 깊은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미래를 주도하며 세상을 바꿀 거예요.” 이렇게 스스로를 덕후라 말하고 있는 그는 바로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교수이자 치과의사이기도 한 김성철(金星喆·58) 교수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사진 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들었어? 남일이가 죽었대. 숙명여고 애들이랑 대성리에 갔잖아. 물에서 못 나왔대.”
서울고등학교 1학년 학생 김성철은 친구의 죽음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남일이와 같은 미술반이었던 그 역시 그곳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여학교 클럽과의 비공식적인 교류는 학교에서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동행하지 않았다. 그저 혼나는 것이 겁이 났기 때문에. 처음엔 무덤덤했다. 그저 교실에 빈자리 하나만 눈에 띌 뿐이었다. 죽음이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그 사고로 인해 그해 여름방학에 떠난 학교 해양훈련은 엄격해졌다. 선생님들은 안전사고가 생길까 노심초사하며 엄하게 감시를 했다. 아이들은 수군거렸다. 모처럼 신나고 재미있어야 할 행사가 힘들기만 한 것이 죽은 남일이 때문은 아니냐고. 그런 일들을 겪으며 어린 김성철은 조금씩 죽음이라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죽음이라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구나 하고.
김 교수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표현했다. ‘마음의 병’이 시작된 것은 그때부터였다고.
“그렇게 마음이 무거워지면서 무작정 책을 보기 시작했어요. 사춘기 소년이었으니까. 알베르 카뮈의 이나 장 폴 사르트르의 와 같은 실존주의 문학 작품들이었죠. 또 엠마누엘 칸트의 같은 철학책들도 있었어요. 뜻도 잘 모르는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죠.”
화가가 되고 싶었던 소년
사실 미술반에 들어갔던 것은 화가가 되고픈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 화가를 꿈꾸는 모든 소년, 소녀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가족에게 그 꿈을 털어 놓는 것은 쉽지 않았다. 치열한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놀고먹는’ 예술에 대한 꿈을 이야기하는 것은 ‘죄악’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좋은 학교에 어려운 시험을 거쳐 들어간 우등생이었기에 주변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고3이 된 김성철 학생은 이과인 전공에 미술이라는 취미를 덧대려면 건축학과가 좋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건축이라면 그림에 소질 있는 손재주도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손재주에 대한 담임선생님의 생각은 좀 달랐다. 선생님이 추천한 것은 ‘치과대학’이었다.
그 추천에 반감이나 저항은 없었다. 무엇보다 치과의사가 되면 근무시간이 짧다는 것이 매력이었다. “치과를 하는 친구는 늦게 출근해서 오후 일찍 퇴근한데, 그리고 골프 치러 간다더라”라는 어느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시간에 그림을 실컷 그리면 되겠다 싶었다. 그림을 그리며 먹고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일석이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는 큰 고민 없이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 입학했다.
“치과대에 입학해서도 그림 그리기는 멈추지 않았어요. 학교에서 그림에 관심 있었던 친구들과 함께 아틀리에를 차렸어요. 대학 입학 후 우리가 다니던 화실에 매달 내는 돈만 모아도 월세 정도는 해결할 수 있었거든요. 그렇게 2년을 열심히 그렸어요. 학교가 있는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시작해서, 전공이 다른 친구들 때문에 서대문구 북아현동까지 4번을 옮겨 다녔어요.”
마음의 병에 해답을 얻다
김 교수는 그 와중에서 가슴 한편에 풀리지 않는 무엇이 있었다. 바로 친구의 죽음에서 비롯된 마음의 병이었다. 그러다 만난 것이 이다. 밀교사상과 선종 사상을 설한 대승경전으로, 그는 이 경전을 읽다 죽음에 대한 의문이 조금씩 풀려가는 것을 느꼈다고.
“책에서 변치 않고 죽지 않는 것은 무엇이냐는 파사익(波斯匿)왕의질문에 부처는 이렇게 대답해요. 저 흐르는 강의 모습이 어릴 때와 지금이나 차이가 없듯, 그대 역시 외모는 바뀌었지만 보는 성품은 그대로라고. 원래의 나는 멸(滅)함이 없다는 설명을 듣고 하나의 깨달음과 함께 불교 교리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허겁지겁 불교에 관한 책을 독파하기 시작했다. 그의 ‘덕후’적인 기질이 발휘된 것이다. 그래서 시중에 출판된 불교 관련 책들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더 이상 읽을 만한 책이 없었다. 서점에 나와 있는 책들을 다 읽고 나니 불교에 관해 더 깊이 알 수 있는 책을 구할 수 있는 곳은 국내에 단 한 곳뿐이었다. 불교학의 요람이라 할 수 있는 동국대학교 도서관. 그 도서관을 편하게 들락날락하기 위한 단 하나의 방법은 동국대학교 학생이 되는 것뿐이었다. 불교연구원을 설립한 이기영(李箕永) 교수의 강의를 청강까지 했지만, 그것 가지고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 1987년 동국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했다. 이 교수가 있었던 인도철학과였다.
“치대에서 만난 아내는 처음에 이해를 못했어요. 책 때문에 대학원에 가다니. 그것도 치과의사가 인도철학과에 말이죠. 그래도 2년만 기다리면, 그 이후에는 마음껏 도서관을 다닐 수 있으니 참아 달라고 부탁했죠. 처음엔 학부 출신 학생들에 비해 많이 모자랄 것 같아 걱정했는데, 별 차이가 나진 않았어요. 알고 보니 제가 닥치는 대로 읽었던 책들이 대부분 불교학과 학부생들의 교과서였어요.”
그렇게 대학원을 다녔다. 하지만 불교라는 학문에 대한 갈증은 더 커지기만 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아내는 이번에는 선선히 응해줬다.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당시엔 이미 치과를 차려 개원한 상태였기 때문에, 치과의사와 박사과정 대학원생이라는 두 가지 신분을 유지하게 됐다.
번역서 통해 불교학계에서 ‘주목’받다
그가 불교계에서 이름이 알려지게 된 것은 그가 번역해 1993년에 발표한 이라는 책 덕분이었다. 은 나가르주나(중국에서는 용수(龍樹)라 불림)라는 1800년 전에 활동한 인도의 고승이 쓴 책으로, 나가르주나가 쓴 책들은 대승불교의 뿌리가 된다. 은 인도철학, 불교철학에 있어 매우 중요한 책이지만, 그동안 이 책은 제대로 번역돼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었다. 그가 번역하기 전까지.
“일반 불교학과는 일본어 정도만 할 줄 알면 됐지만, 인도철학과는 산스크리트어와 티베트어까지 할 줄 알아야 했어요. 영어는 기본이고. 그런데 기대 이상으로 언어를 익히는 것을 잘해서, 그간 번역이 안 된 책들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가 불교계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씌어진 원전을 직접 번역하고, 주석을 달아 다른 학자들이 원전과 비교하며 연구할 수 있도록 해놓았죠.”
어쩌면 이 선택도 가장 ‘덕후’다운 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여하튼 그동안 국내의 많은 불교학자들이 해내지 못했던 일을 현직 치과의사가 이뤘다는 점에서 불교계는 주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1995년 대승불교의 공(空) 사상을 체계화한 개론서인 을 번역해 다시 세상에 내놓는다. 인도의 불교학자 무르띠(Murti)가 영어로 저술한 책이다.
그리고 내놓은 세 번째 책 으로 학계의 찬사를 받게 된다. 은 중론을 쓴 나가르주나가 에 대한 비판을 반박한 책이다. 이 책은 현재 산스크리트어 원전과 티베트역본, 한역본이 남아 있는데, 김 교수는 이 3가지 언어를 각각 우리말로 번역해 정확한 뜻과 번역의 배경을 알 수 있게 했다. 물론 후학을 위한 문법적 해설도 잊지 않았다.
3가지 책에 대한 번역이 끝나 있을 때, 그는 이미 불교학계에서 ‘불교에 관심 있는 치과의사’가 아닌 ‘불교학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치과 폐업하고 대학으로
박사과정을 마치고 나서 그가 준비한 것은, 치과를 쉬고 인도로 유학을 떠나는 것이었다. 불교 발상지에 가서 좀 더 깊은 공부를 하고 싶은 학문적 욕심이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불교학에 대한 욕심’을 멈추게 만든 것은 가족도 치과도 아니었다. 바로 동국대학교였다.
“제가 전공한 공(空)사상 분야의 전공교수님이 건강이 나빠져 퇴직하셨다면서, 그 강의를 맡아 달라고 제안이 왔어요. 사실 그 분야는 논리학과 수학이 바탕이 되어야 해서, 일반 불교학자들 중에도 능통한 사람은 많지 않았거든요. 그것을 인연으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물론 치과는 그만뒀고. 단지 강의를 나가는 것이 아니라 치과의사로, 그리고 서울에서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었지만 주저함은 없었어요.”
공사상은 의 ‘색즉시공’을 떠올리면 쉽다. 물질이 곧 비었고 빈 것이 곧 물질이니 감각과 생각과 행함이나 의식이 이와 같다는 뜻이다. 흔히 공(空)을 무(無)와 혼동하기 쉬운데, 공(空)은 아무것도 없다는 무(無)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흔히 우리가 살면서 큰방, 작은방 이런 표현을 하죠. 하지만 어떤 방을 보고 큰방이라고 부를 땐 이미 우리 기준엔 비교할 수 있는 방이 들어서 있는 거예요. 그런 이분법적 생각이 우리를 힘들게 하죠. 게다가 요즘의 승자가 독식하는 신자유주의는 이것을 더욱 부추겨 우리 삶을 어지럽게 하고 있어요. 늘 비교당하고, 경쟁하는 삶 말이에요. 이 신자유주의는 하나의 경제 원리일 뿐인데 우리는 이것을 행정과 교육, 문화에까지 도입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나 같은 프로그램을 보세요. 예술을 도구로 경쟁하고 있잖아요. 그 프로그램을 통한 폐해가 여실히 드러나죠. 결국 크게 소리 지르며, 성량이 큰 사람이 이기는 구도로 변질되잖아요. 노래라는 예술이 큰소리를 내는 시합이 아닌데, 경쟁을 통하다 보니 결국 획일화되는 것이죠.”
이런 사회적 변화 속에서 가장 외면 받고 있는 세대 중 하나가 바로 시니어들이다. 육체적 수명은 점점 길어지는데, 성과주의로 인해 설 곳을 잃고 사회적 수명은 짧아졌다. 그들에게 김 교수는 어떤 이야기를 해 주고 싶을까?
죽음에 대한 공포도 나름의 노력과 수행이 더해진다면 극복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타적인 삶을 사세요. 우리는 기본적으로 종족을 보전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는데, 자식이 아닌 다른 사람을 돕는 것도 일종의 종족 보전 본능이에요. 나라는 개체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동족을 보존하면서 그 욕구가 충족되는 셈이죠. 거기에 수행을 통해 내가 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면,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아울러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할 수 있는 제2의 삶을 살 수도 있고요. 모든 것이 공하다는 것을 머리로 깨닫고, 수행을 통해 마음에서 욕심, 분노, 교만과 같은 번뇌를 지울 수 있다면 가벼워진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빈자리 채워가며 기여하고파
앞으로 그의 목표는 한국 불교학에서 필요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것이다. 그가 그동안 번역서들을 내놓으면서 기여했던 것처럼.
그가 2014년에 내놓은 같은 책들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진화생물학, 일반적으로 종교와 대립각을 세운다고 여겨지는 ‘진화론’을 불교적 관점에서 해석했다. 최근 각광받는 뇌과학도 불교적 관점에 분석해냈다.
“뇌과학에서 밝혀내지 못한 마지막 키워드는 바로 ‘마음’이에요. 뇌파나 뇌의 기능에 대해서 뇌과학자들은 많은 연구결과를 내놓았지만 ‘마음’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죠. 하지만 불교적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과학적 연구 결과를 모두 포용하면서 마음이나 윤회(輪廻)까지 설명할 수 있어요. 그게 불교학의 힘이죠.”
◇ 전시(Exhibition)
앤서니 브라운 전-행복한 미술관 (Anthony Browne Exhibition-Happy Museum)
일정 9월 25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Anthony Browne)의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그림 200여 점을 만날 수 있는 대규모 전시다. ‘행복한 미술관’이라는 부제로 기획된 이번 전시는 6월 개막 첫 주에 1만여 명의 관객이 다녀갔다. 남녀노소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이색적인 그림들과 더불어 앤서니 브라운의 책들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행복한 도서관’ 코너도 마련돼 있다. 전시장에서 관람한 그림들을 책을 통해 다시 감상할 수 있어 아이들과 함께 즐기기 좋다.
2016 광주비엔날레 ‘제8기후대(THE EIGHT CLIMATE)’
일정 9월 2일~11월 6일 장소 광주 비엔날레전시관, 아시아문화전당, 무등현대미술관 등
‘제8기후대’라는 콘셉트로 열리는 전람회인 만큼 전시 공간마다 온도, 밀도, 분위기, 기압 등 다양한 기후 환경을 연출한다. 절제된 색과 요소들로 표현한 이번 공식 포스터에는 예술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 담겨 있다. 방향성, 발전, 흐름, 변화하는 움직임, 목표를 향한 전진 등을 의미하는 화살표를 통해 ‘예술은 무엇을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37개국 97팀(119명)의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 도서(Book)
세종의 서재(박현모 외 11명 공저ㆍ서해문집)
여주대 ‘세종시대 문헌연구팀’의 심층해제문 중에서 ‘세종시대를 잘 드러내는 문헌’과 ‘세종을 만든 책’을 선별해 담았다. ‘1부-세종시대가 만든 책’, ‘2부-세종을 만든 책’으로 크게 분류해 등 12권의 책에 대해 이야기한다. 문헌별로 전문가들의 해제와 더불어 그 책이 세종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설명한다.
도넛을 구멍만 남기고 먹는 방법(오사카대학 쇼세키카 프로젝트ㆍ글항아리)
도넛을 구멍만 남기고 먹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상식을 의심해 보는 것에서 시작하는 책이다. 수학, 공학, 미학, 역사학, 법학, 화학, 경제학, 정신의학 등 다양한 학문의 관점에서 ‘도넛의 구멍’이라는 개념에 대해 파헤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학문과 탐구라는 영역을 더 흥미롭게 접하고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 영화(Movie)
평범한 50대 주부가 찾은 인생의 행복
개봉 9월 29일 장르 드라마 감독 미아 한센 러브 출연 이자벨 위페르, 로만 콜린카, 에디뜨 스콥 등
2016 베를린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프랑스 신예 감독 미아 한센 러브의 신작이다. 한 가정의 아내·엄마이자, 존경받는 교사로 평범하게 살던 50대 여성이 갑작스러운 남편의 고백 이후 불안한 삶 속에서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평온했던 일상이 파괴되며 새롭게 다가오는 것들을 마주하는 주인공 역에 세계 3대 영화제(칸·베를린·베니스)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던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캐스팅돼 기대를 모았다.
폭탄 달린 경성행 열차에 탄 두 남자
개봉 9월 7일 장르 액션, 드라마 감독 김지운 출연 송강호, 공유, 한지민, 엄태구, 신성록 등
1920년대 말, 일제의 주요 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상하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오려는 의열단과 이를 쫓는 조선인 일본 경찰의 갈등과 우정을 그렸다. 김지운 감독은 과 에 이어 이번 영화로도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 김 감독과 네 번째 영화를 작업하는 배우 송강호가 조선인 일본 경찰 역을,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흥행작 의 주인공 공유가 의열단의 리더를 맡아 미묘한 두 남자의 관계를 연기한다.
◇ 공연(Stage)
부를수록 그리운 어머니의 사랑
일정 9월 10일~10월 30일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연출 이종훈
출연 고두심, 김영옥, 이홍렬, 이종원 등
1998년 세종문화회관 초연 당시 전회 매진을 기록한 작품으로, 1990년대 대표 악극 중 하나다. 올해는 원작 내용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해석과 세련된 무대 연출로 50일간 공연한다. 이전보다 젊은 배우들을 캐스팅해 그간의 신파형 악극을 탈피하고, 우리 춤과 노래를 보강했다.
아름다운 초상화에 가려진 욕망
일정 9월 3일~10월 29일 장소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연출 이지나
출연 김준수, 박은태, 최재웅, 홍서영 등
오스카 와일드의 장편 소설 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불멸의 아름다움을 얻고자 했던 도리안의 삶과 깨달음을 노래한다. 체코 프라하의 이국적 풍경에 몽환적인 색감이 어우러진 포스터가 인상적이다.
20년 전 사라진 그날의 사건
일정 11월 6일까지 장소 충무아트홀 대극장 연출 장유정 출연 유준상, 지창욱, 오만석, 오종혁 등
고(故) 김광석이 불렀던 노래와 더불어 청와대 경호관이라는 인물을 통해 펼쳐지는 미스터리한 전개가 돋보이는 창작 뮤지컬이다. 2013년 초연부터 참여한 배우 유준상과 지창욱을 비롯해 장유정 연출, 장소영 음악감독, 신선호 안무 감독이 함께해 완성도를 높였다.
음악으로 만나는 서울
일정 9월 8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연출 황준연 출연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서울의 620년 역사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관현악 연주회다. 북한산, 청계천 광통교 서화시장, 보신각, 전차 등 서울이 걸어 온 자취와 미래의 모습을 담은 음악들을 감상할 수 있다. 자동차가 달리고 고층빌딩으로 가득한 오늘의 서울, 산과 들, 강이 어우러진 옛 한양의 모습을 담았다.
20여 년 전, 미술평론가 이주헌(李周憲·55)은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유럽 미술관을 순례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은 그동안 14만 부가 넘게 팔리며 대중에게 꾸준히 사랑받았고, 이를 발판으로 그는 미술평론가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지만, 당시 기저귀조차 떼지 못한 한 살, 세 살배기 아이들을 데리고 먼 길을 떠났던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1993년 언론사 기자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던 무렵, 그는 미술평론가로서 대중에게 인정받을 만한 ‘자격’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관련 학위를 더 쌓아 대학교수가 되는 것도 방법이었지만, 그는 ‘책’이 그 자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술평론가로서 활동하려면 기반이 되고 신뢰하게 할 만한 계기가 필요했죠. 때마침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졌는데, 국내에는 서양 미술관을 소개한 책이 단 한권도 없더라고요. 그 전에 일본 서점에 갔더니 그런 책이 10~20권 정도 있었어요. 우리나라 대중에게도 그런 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죠. 해외에 가면 유명한 미술관을 안 들를 수 없는데, 그러면 아무런 정보 없이 가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는 알고 가는 것이 좋거든요. 그런 면에서 해외 미술관 관련 책을 사람들이 선호할 수 있으리라 믿었죠.”
책을 쓰기 위해서라면 혼자 가거나 미술 관련 전문가와 함께 가는 것이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온 가족이 함께, 그것도 한 살, 세 살,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손이 많이 가는 두 아이를 데리고 생고생(?)을 자처한 이유가 궁금했다.
“여행 가는 사람들을 위해 미술관에 대한 책을 쓰더라도 막상 독자가 미술을 어렵고 낯설게 느낀다면 책에 손이 덜 가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때만 해도 미술에 대한 관심은 음악에 비할 수 없이 낮았죠. 무엇보다 미술을 쉽게 접하도록 해야 했고, 그러려면 책을 부드럽게 꾸며야 했어요. 젊은 아빠가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배낭여행을 가면 당연히 좌충우돌 사고가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누구나 예상하고 재미를 느낄 만한 에피소드들을 넣어 준다면 쉽게 책을 다 읽어낼 수 있고, 다 읽고 나면 미술을 어렵지 않게 느낄 것 같았죠. 물론, 바삐 살며 가족에게 소홀했던 것을 만회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요.”
‘미술’, 공부하지 말고, 친구처럼 다가가라
그가 일종의 모험을 감수하며 자신의 체험을 통해 책을 쓴 가장 큰 이유는 대중이 미술에 친근하게 다가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여전히 미술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 이들에게 그는 두 가지를 조언한다. 첫째, 미술을 알려고 하지 말고 먼저 느끼라는 것이다.
“중요한 건 느낌이에요. 대부분이 오해하는 게, 예술적 지식이 없으면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는 게 중요하다고 느끼고 공부부터 시작하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맞지만, 그렇다고 아는 만큼 꼭 느끼게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아이들이 어른보다 지식이 모자란다고 해서 덜 느끼는 것은 아니잖아요. 길가에 핀 꽃을 보고도 어른들은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아이들은 그 꽃을 보고 강렬한 느낌을 받아 꼼짝을 못할 수 있어요. 아주 좋아할 수도, 슬퍼할 수도 있는데 그게 바로 감상이거든요. 감상이란, 느낌을 얻는 거예요. 내가 어떤 대상을 보거나 듣거나 지각해서 내 마음에서 느낌이 일어나고 그 느낌이 나를 완전히 사로잡는 경험을 하는 거죠.”
그는 미술 감상은 지식을 넓히기 위한 행위가 아닌 느낌을 얻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지식을 넓히려면 지금 당장 도서관에 가서 열심히 책에 밑줄 긋고 열심히 공부하면 그만이라는 것. “어떤 사람을 아는 것과 친구가 되는 것이 다르듯, 미술을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며 그는 줄곧 미술을 ‘친구’에 비유했다. 미술을 친구 사귀듯 하라는 것이 그의 두 번째 조언이다.
“세상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미술 작품도 다 알 필요 없어요. 아무리 인기 있는 사람이라도 내가 끌리지 않으면 사귀지 않잖아요. 피카소나 고흐의 작품처럼 유명하다 해도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굳이 알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요. 먼저 내가 어떤 그림에 끌리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죠. 풍경화든, 추상화든, 인물화든 좋아하는 게 뭔지 알고 그 위주로 즐기고 보면 돼요. 그러면서 내가 공부를 안 해도 점점 아는 것들이 생겨요. 그러다 관련된 글을 읽거나 책을 보면 확 이해되고 더 깊이 알게 되죠. 유사한 작가나 작품도 찾게 되고요. 깊어지면 넓어지는 건 순간이거든요. 미술은 그렇게 다가가고 공부하는 거예요.”
그는 책을 보고 하는 미술 공부는 관념의 연장선이지만, 그림을 느끼고 감상하는 것은 관계의 연장선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중·장년에게 미술 감상은 친구를 사귀는 것과 같다고 한다.
“좋아하는 작품을 발견하는 건, 친구가 생기는 거예요. 나이 들수록 나를 든든하게 하는 것 중 하나가 친구잖아요. 대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힘들고 슬플 때 음악을 듣죠. 그림도 마찬가지예요. 예술의 기본적인 기능이 있다고 하면 그건 ‘위로’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전환되는 것처럼 좋아하는 그림을 보면 힘이 나고 위로받을 수 있어요. 좋아하는 그림 전시가 열리면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는 기분으로 가서 보고, 해외여행을 할 때도 멀리 사는 친구를 보러 가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작품을 찾아가 보면 반갑고 즐거워지죠. 저도 힘들 때 마티스나 케테 콜비츠의 그림을 보면서 용기를 얻곤 해요.”
20년 후, 여섯 가족이 함께한 유럽 미술관 여행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에게 미술은 그야말로 ‘절친’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그 못지않게 미술을 가장 친한 친구로 만든 이들이 있으니, 바로 그의 아들들이다. 20년 전 함께 여행을 다녀온 두 형제와, 그 이후 태어난 셋째까지 세 아들은 모두 미술을 전공하고 있다. 그는 책이 나오고 20년 후, 세 아들과 아내, 그리고 막둥이 딸을 데리고 다시 유럽 미술관 순례 길에 올랐다. 늘어난 식구만큼이나 이전과는 사뭇 다른 여행이었다.
“가자마자 달라진 걸 느꼈죠. 예전에는 제가 짐을 가장 많이 들었거든요. 젖병, 기저귀, 유모차까지 보통 짐이 아닌 데다가, 아이들 자체도 짐이나 다름없었죠. 근데 이번에 가보니 애들이 크고 힘도 세져서 제 짐도 들고 다니고 알아서들 잘 다니니 아주 편했어요. 스마트폰 지도 앱을 보고 저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더라고요. 무엇보다 전에 갔을 때는 밤 문화라는 것을 상상도 못 했는데, 이번엔 유명한 펍(pub)이나 바(bar)에 가서 아이들과 이야기도 하고 즐기니까 진짜 여행 온 기분이 들었어요. 여러모로 아이들이 나와 아내를 케어해 주니까 도움이 많이 됐고, 여행의 질 자체가 달라졌죠.”
그의 이야기를 들은 이들이라면 한 번쯤 그처럼 온 가족이 유럽여행을 떠나면 어떨까 생각해 볼 것이다. 경험자로서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부탁했다.
“가족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팀워크’와 ‘프로그램’이에요. 어디를 가서 뭘 즐길 것이냐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좋은 곳에 가도 가족 모두가 행복하게 지낼 수 없다면 의미 없는 여행이 되고 말죠. 가족끼리 가는데 무슨 프로그램을 짜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녀들이 크고 나면 각자 취향에 따라 가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다를 거거든요. 사전에 가족끼리 합의하고 배려해서 프로그램을 짜면 수월한데, 막상 가서 정하려고 하면 밥 한 끼 먹는 거로도 트러블이 생길 수 있어요. 현장에 가서 이러자 저러자 하지 말고, 미리 양보하는 마음을 갖고 서로를 배려해 플랜을 짜면 기분 좋게 여행을 즐길 수 있죠.”
미술관을 테마로 여행을 갈 계획이라면 유명한 명소보다는 작고 한적한 곳을 찾아갈 것을 추천했다.
“루브르처럼 유명한 곳을 가는 것도 좋지만, 그러다 보면 미술관의 참맛을 느끼지 못할 수가 있어요. 관광객이 몰려 복잡하고, 입장하는 데만 시간도 한참 걸리기 때문에 정신없이 관람하고 지치기 일쑤죠. 한적하고 조용한 마을 미술관을 가족과 산책하는 기분으로 간다면 더 여유롭게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거예요. 최근 자동차 테러가 있긴 했지만, 제가 가장 추천하는 곳은 프랑스 니스예요. 니스에 가면 마티스나 샤갈미술관도 있고 인근에도 좋은 미술관이 많아요. 주변 풍경이나 밤바다도 참 아름답죠. 반대로 조금 복잡하더라도 비엔날레 기간엔 베네치아에 가면 시끌벅적하지만 워낙 보고 즐길 거리가 많아지는 시기니까 한 번쯤 가보면 좋아요.”
그는 유럽 어느 지역을 가도 가 볼 만한 미술관 몇 곳은 있기 때문에 미술관을 테마로 계획을 짜면 여유롭고 감성적인 여행을 즐길 수 있으리라 추천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이 함께하는 여행을 권하는 데는 ‘편안함’에 있었다. 가족과 떨어져 여행을 가면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고 그리워하는데 그런 염려 없이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한다. 가족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그에게 언제 또 온 가족이 여행을 갈지, 그리고 10년 후에도 책의 개정판이 나올지를 물었다.
“글쎄요. 10년 뒤에도 개정판이 나온다는 게 쉽지 않으리라 보지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또 다른 방향으로 꾸며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그 자체로도 무척 고마운 일이고요. 가족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해야겠죠. 근데 아이들이 크고 나니까 각자 바빠요. 친구들과 여행도 가야 하고 자기 계획이 있으니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죠. 그래도 언제든 어떤 형태로든 자연스럽게 또 떠나게 되지 않을까요?”
나는 1952년 경남 합천군 초계면의 한 시골 마을 방앗간 집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우리 집은 아들만 여섯인 아들 부자 집이다. 원래 어머니는 아들만 일곱을 나으셨는데 첫 째는 돌도 못 넘기고 잃었다고 한다. 그 후 집안의 귀한 첫 아들로 태어난 나는 태어난 후 사흘 동안 눈을 뜨지 않아 부모님의 애를 태웠고, 어릴 때 비행기만 떠도 놀라서 경기가 드는 아이였다고 한다.
우리형제들은 모두 호적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일 년 씩 어리게 되어있다. 돌까지 살아남으면 호적에 올려주었다. 아마 첫째를 돌전에 잃었기 때문인 듯하다. 이 덕분에 나는 퇴직 시 명퇴금을 1년 치나 더 받을 수 있었다.
어머님과 아버님은 고향 마을에서 한집 사이를 두고 결혼을 하셨는데 그 중간 집에 사시는 분이 중매를 하셨다고 한다. 우리 부모님은 동네에서 잉꼬부부로 소문난 금슬이 좋으신 분이셨다. 아버님은 엄격하시고 강직한 분이셨다. 반면 어머님은 따뜻하고 정이 많으신 분이셨다. 아들들을 한없이 칭찬하고 격려하시고 보듬어 주신분이다. 우리 형제들은 우리집안의 유일한 여자 분인 어머님을 무척 좋아했다. 지금도 우리 형제들은 돌아가신 지가 15년이 지났지만 모이면 어머니 애기를 자주하고 다섯째는 대기업의 임원이지만 술 한 잔 되면 보고 싶다고 울곤 한다.
할아버지의 손자 사랑은 지극하셨다. 손자들이 많았기에 우리는 돌만 지나면 사랑방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잤다. 할아버지는 손자들 이불을 덮어주시고 음식도 챙겨주셨다. 손자들에 대한 자랑과 자부심이 대단하셨다. 친구 분들이 오실 때면 언제나 불러 인사를 시키셨다. 우리형제들은 그 당시 초등학교에서 형제들 모두가 급장을 다 하던 때라 자랑이 대단하셨다. 내가 나중에 취직이 되어 첫 월급을 새 돈으로 할아버지께 용돈을 드렸는데 돌아가실 때까지 그 돈을 보관하고 계셨던 분이다.
우리 할머니는 연약하신 분이지만 우리 형제들은 모두 할머니 등에 업혀 자랐다. 낳아주신 분은 어머니이고 키워주신 분은 할머니이다. 할머니 등은 손자들의 코 때가 지워지는 날이 없었다. 서울에서 방학 때 내려가면 맨발로 뛰어 나오시던 분이다. 나는 첫 손자로서 조부모님의 사랑을 한없이 받고 자랐다.
우리 집의 가훈은 우애(友愛)이다. 할아버지는 손자들에게 어릴 때 귀가 닿도록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하셨다. ‘조선팔도 다 다녀도 형제같이 화합할까’ 할아버지께서 항상 우리에게 하시던 말씀이다. 우리 형제들은 이 말씀을 어머님 돌아가신 15주기 때 고향 우리 집 정원에 비석으로 새겼다.
나는 초등학교에서 모범생 이었다. 한 학년에 두 반인 작은 시골 학교였지만 나는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6년간 급장을 했고 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부모님도 아들을 자랑스러워했다. 소먹이기, 풀베기, 나무하기 등 집안일도 잘 도와드렸고 어머니가 가지 오이 등을 장에 갖다 팔아야 할 때는 리어카에 실어다 드리는 착한 아들이었다.
나는 1968년 무장공비 김신조가 청와대 담을 넘어 공격하던 해 서울 경기상업고등학교로 유학을 왔다. 경기상고는 시골에서 올라온 가난하지만 우수한 아이들이 많았다. 청운중학교와 같은 교정이어서 청운 중학교 출신도 많았다. 고향 초계중학교에서는 서울로 두 명이 유학을 왔는데, 친구는 배제고등학교를 가고 난 경기상고에 입학했다. 친구는 고모 집에서 다니고 나는 삼촌 집에서 다녔다. 그 후 세월이 흘러 나는 은행원이 되었고 친구는 고대의대를 나와 강릉의 유명한 외과의사가 되었다.
경기상고는 일제 강점기에는 경기도립상업고등학교로 도상이라 불렸던 학교로 일제 때부터 훌륭한 선배들이 많았다. 당시 정·재계에는 태완선 총리, 김종희 한국화약 회장님 등을 비롯한 분들이 포진해계셨고 특히 금융권에는 임원들이 많았다.
내가 경기상고를 선택한 것도 유연이다. 아버지와 서울에 올라와 어떤 학교를 가야할지 고심할 때 삼촌 이웃에 양정고등학교 선생님으로 퇴직한 분이 계셨는데, 이분이 도상을 추천해주셨다. 아버님은 대구상고를 나와 제일은행에 취직한 고향의 내 친구 형으로부터 ‘은행에 취직을 하니 당장 선생님의 월급보다 많더라’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아들을 은행에 취직시키고 싶어 하셨다. 양정고 퇴직 선생님은 상고 중에는 도상이 최고라며 당장 도상을 추천해 연희동에서 청운동까지 버스를 갈아타면서 먼 길을 삼년을 다녔다.
상고에서 은행에 취직하는 것은 인문계학교에서 대학에 진학하는 것과 같았다. 매년 어느 은행에 몇 명이 합격했는지 통계를 내고 홍보하던 때였다. 우리학교는 한 학년이 7개 반으로 6개 반이 취직반이고 마지막 7반이 진학 반이었다. 취업반은 은행 취직을 위한 전략을 세워 공부했다.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은 한국은행, 산업은행, 외환은행 순으로 가고 다음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은행 등을 갔다. 나는 신설된 한국신탁은행을 지원 했다. 신설된 은행이 향후 전망이 나을 거라고 선생님이 추천해 주셨다. 그해 경쟁률이 높아 우리학교에서는 나를 포함해 두 명 만이 합격했다. 대졸 중견 30명, 상고 졸 초급 60명을 모집했는데, 대졸 중견은 서울 대 출신이 반이 넘고, 나머지는 연대, 고대 등 대부분 명문대 출신이 전부였다. 71년 당시는 지금처럼 삼성, 현대, 엘지 같은 대기업이 성장하기 이전 이어서 공무원, 한전, 은행 등으로 인재들이 몰리던 시기였다.
그 당시 은행의 대우는 좋았다. 복지제도가 좋고 각종 수당이 수시로 나왔다. 그러나 입행을 하고나니 아무래도 대학을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건국대학교 경영학과 야간 학부에 시험을 봐 합격했다. 그러나 말단 직원이 대학 수업시간에 맞추는 것이 어려워 포기하고 다시 이듬해 야간 전문대학인 서대문에 위치한 국제대학을 지원 해 입학했다. 이 학교는 야간만 있는 대학으로 저녁 6시에 수업을 시작해 그 당시 인기가 있었다. 나는 경영학과에 입학했는데 정원이 30명으로 우수한 인재가 많았다. 한국은행, 산업은행 등 상고출신이 많았다. 적은 인원의 대학이지만 그 당시 매년 사법, 행정고시, 공인 회계사 등의 합격자들을 배출했던 시기이다. 내 친구도 산업은행에 다니면서 공인회계사 전국 수석 합격했다.
그때는 그야 말로 주경야독을 했던 시기이다. 은행의 업무는 최대한 빨리 끝내고 대학 수업시간에 맞추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동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만 했다. 상사들의 눈치도 봐야 했다. 저녁은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라면으로 때우기가 일수였다. 4년을 그렇게 생활하니 위장병이 생길 것 같았다. 토요일도 근무하던 때라 일요일은 도서관에서 공부해야했다. 그래서 나의 이 시기는 다른 애들처럼 취미생활을 하거나 연애를 할 틈이 없었다.
그 당시 나에게는 큰 짐이 있었다. 둘째 동생이 서울로 올라와 중대 앞에서 자취를 하면서 같이 공부했다. 얼마 후에는 막내를 제외한 세 명의 동생들이 모두 서울로 올라와 동생들과 힘든 시기를 보냈다. 아버지는 학비와 쌀을 올려 보내주시지만 아들들이 공부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기에 나는 힘을 보텔 수밖에 없었다. 나는 75년 2월에 대학을 졸업하고 그해 12월에 군에 입대를 했다. 나 혼자 만의 일이라면 대학 2학년 정도 마치고 군대를 다녀오는 것이 좋겠지만 동생들을 남겨놓고 입대할 수가 없어 4학년을 마치고 친구들이 다 제대를 할 즈음 입대를 해야만 했다. 내가 입대를 해도 은행은 본봉의 월급이 나오는 때라 그 돈으로 동생들은 학교를 다녔다. 지금도 이야기 한다. 동생들이 형의 월급을 받으려 은행에 갔던 시절을…
둘째 동생은 중앙대 법대에 나왔다. 졸업 후 삼성생명에 입사해 항상 전국에서 일등의 업적을 내는 유능한 직원이 되었다. 신한생명 초기에 스카우트되어 신한그룹 최연소 임원이 되어 부사장 까지 승진해 8년이나 임원생활을 하고 지금도 퇴직해서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그 때 동양중학교 학생으로 다니던 다섯째 동생은 한양대 경영학과를 나와 지금은 롯데 칠성의 임원으로 재직 중이다. 필리핀 펩시콜라 사장을 5년 동안 역임했고 우리 동생 중 아직도 떠오르는 별이다. 나머지 두 동생도 대구에서 사업을 잘하고 있다. 힘든 시기를 넘겨 좋은 결과가 있어 보람은 있는 일이었다.
79년 제대를 앞두고 아버지의 권유로 첫선을 보았다. 휴가 중 서울의 작은 다방에서 맞선을 보았는데 단 한 번의 만남으로 결혼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렇게 쉽게 평생의 배필을 선택 했는지 신기하다. 서로의 가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고, 부모님께서 미리 선을 봐 합격점을 준 상태라 하지만 개인적으로 서로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아내는 면장님의 둘째 딸이라 자라면서 큰 힘든 일은 해본 적 없이 곱게 자란 규수였다. 그 당시 나는 장남으로서 결혼 후에도 동생들을 데리고 있어야 할 형편이어서 아내를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대학에서 나를 따르는 여자도 있었고, 은행에서 자취집에까지 찾아온 여자도 있었지만 결혼을 쉽게 결정할 수는 없었다.
79년 6월 제대를 하고 11월에 결혼을 했다. 아버지는 내가 장남이라 전통혼례식을 올리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신부 집에서 아내는 족두리를 쓰고, 난 사모관대를 쓰고 혼례를 올렸다. 동네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멍석을 펴놓고 상위에는 살아있는 닭이 퍼덕 거렸다. 첫날밤은 신부 집에서 보내기로 하는데, 그 날 밤 신랑을 짓궂게 장난을 거는 사람 들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어 나와 아내는 저녁에 해인사로 피신하는 신혼여행을 떠났다. 밤중에 택시를 타고 해인사로 향하던 신혼 여행길에 노루가 튀어 나와 놀라던 추억이 새롭다.
내가 아내를 단한번의 선을 보고 선택한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니 내 일생의 가장 잘 한 선택이었다. 아내는 검소하고 강하고 현명한 사람이었다. 지금 형제들이 성공하여 화목하게 잘 지내는 것은 대부분 아내의 공로인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후회스런 일을 꼽으라면 신혼초기 아내가 힘들 때 너무 도와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동생들 뒷바라지에 아이들 키우기 힘들 때 연탄불 한번 갈아준 적이 없고, 아이들 한번 제대로 봐준 적이 없다. 아내는 밤중에 아이가 깨어 울면 남편 잠 못 자 직장생활에 지장을 줄 까봐 아이를 다른 방으로 대려나가 밤새 혼자 방을 새우곤 했다. 아내는 그렇게 자신을 희생하고 오직 나를 위해 정성을 쏟은 그런 여자였다. 그 당시에는 왜 그리 철이 없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은행에 입행해 퇴직을 하기까지 만 38년을 다녔다. 지나고 보니 나는 직장 운은 좋았고 축복을 받은 사람이었다. 은행이란 직장은 안정되고 복지가 훌륭하고 좋은 직장이었다. 아이들 대학까지 등록금을 주고 집을 마련하도록 사원주택 아파트를 주고, 월급날 하루도 늦은 적이 없고 지점장 시절 억대가 넘는 연봉에 퇴직금도 적지 않은 직장이다. 재직 시에도 지점장 명함이면 누구나 신뢰하고 인정을 해주는 곳이다.
나는 초년 시절부터 성실했고 열심히 노력했다. 언제나 상사의 인정을 받았고 지점에서 언제나 대부계 같은 요직을 담당했다. 자기계발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주경야독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88년에는 해외 OJT연수를 미국 시애틀 은행으로 다녀왔다. 그 후 은행의 중요 부서인 종합기획부에 과장으로 근무하고, 카드 사업부, 개인금융부 등에서 차장으로 근무했다. 1998년 지점장으로 나갈 때 까지 황금기의 시절을 보냈다.
카드사업부에 근무할 때는 해외여행의 기회가 많았다. 일본 JCB카드사, 미국 비자사, 마스터 카드사, 유럽 유로페이 등 카드사를 매년 연수를 다니면서 여행할 수 있었다. 특히 시애틀 연수 후 미주, 유럽, 하와이, 동남아, 핀란드, 스페인, 지중해 해협 등 유럽 전역을 장기간 여행한 경험은 좋은 기회였다.
은행 승진도 남보다 늦지 않게 진급했다. 지점장 진급은 아이러니컬하게도 IMF 덕분에 빨랐다. 선배들이 명퇴를 하고 서울은행, 제일은 행이 매스컴에서 회자될 때 오히려 해택을 보았던 셈이다. 하나은행과의 합병 시에도 많은 직원이 퇴직을 했지만 그때도 살아남아 십년이 넘도록 지점장 생활을 하고 임금피크제 까지 일 년을 하고 퇴직할 수 있었다. 당시의 상황으로는 은행원의 천수를 다한 셈이다.
지점장 생활은 10년 동안 시흥남, 관양동, 수원, 서빙고, 부천, 성남 등 6개 점포를 거쳤다.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는 점포는 처음으로 부임한 석수역 앞에 위치한 시흥남지점 이다. 첫 지점장 발령을 받고 휴일 혼자 점포를 찾아가 어떤 전략을 구사할 것인가 많이 고심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아내는 많은 걱정을 했다. 사교성도 없는 고지식한 사람이 점포영업을 잘 할 수 있을 까 걱정을 많이 해, 지점장으로 승진을 했는데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은 듯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지점 실적이 부진하여 평가에 하위 성적을 받으면 명퇴의 우선대상자가 되어 퇴사해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내의 예상외로 난 지점장으로서의 점포경영을 십년이상 훌륭히 잘 수행했다. 내가 부임한 점포는 전임 점포장이 실적 부진으로 불명예 퇴진한 곳이 많았지만 나는 훌륭히 점포를 잘 부활시켰다. 나는 점포 경영의 핵심은 직원들의 관리와 경영 전략에 있다고 믿는다. 점포장의 철학과 의사결정이 중요하다. 그 핵심은 사람의 관리에 있다고 확신한다.
2009년 1월 은행을 퇴직했다. 재직 시에 시간이 없어 못했던 골프를 학교친구들이나 동생들과 같이할 수 있어 좋았다. 5월에는 홀인원을 하는 행운도 누렸다.
양재천과 대공원을 몇 년을 걸으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퇴직 1년 전에 과천어울림 남성합창단에 입단했다. 매주 화요일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연습해서 매년 연말에 시민회관에서 정기공연을 한다. 벌써 정기 공연을 일곱 번을 넘겼다. 7년이 지난 셈이다. 단원이 30명이 넘어 지역사회에서 새로운 친구를 많이 알게 되었다. 플루트는 퇴직 후 시작해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아들결혼식 때 연주하고 퇴직직원 모임 등에서도 연주했다. 지금은 동호회를 만들어 매주 목요일 부림동 문회센터에서 연습하고 레슨도 받는다.
퇴직 후 5년을 쉬고 나니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2014년 새로운 준비를 해보기로 결심을 했다. 자격증을 취득하고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다. 유통관리사를 3개월 동안 과천도서관에 다니면서 공부해 합격을 했다. 그리고 경영지도사 공부를 시작해 지난해 1차 시험에 합격하고 2차 시험을 준비 중이다. 그리고 이듬해 3월 호서대글로벌창업대학원에 입학해 이제 졸업을 위해 논문 준비 중이다
2014년에는 건국대학교 미래지식교육원에서 시니어플래너 과정을 공부하고 같이 공부한 동료들 5명이 KSP교육협동조합을 만들고 나는 이사장직을 맡았다.
다음해는 도심권이모작센터의 열린강사에 선정되어 평생 처음 강사로서 강의를 3차례 해보았다.
2015년에는 KDB 시니어브리지 아카데미 과정을 공부하고 시니어블로거협회에 참여하게 되어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머니투데이 방송에 시니어 악기배우기라는 주제로 방송에도 출연했다. KBS 시니어토크쇼 ‘황금연못’의 패널로도 출연하고 한겨레신문 시니어통신에 기고도 했다. 2016년 3월에는 공무원연금공단 미래설계교육 여가 주거부문 강사로 선정되었다. 매달 2회 제주, 설악산, 수안보, 천안 등에서 퇴직을 앞둔 공무원들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있다.
대학원 동문들과는 석사 박사과정을 마친 24명의 동문들이 참여해 컨설팅프렌즈라는 컨설팅회사를 창업했다. 졸업을 하면 이 멤버들과 할 일이 많아질 것 같다.
퇴직 후 만 7년의 세월이 지났다.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남아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시간의 속도는 더 빨라지는 것 같다. 내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조금은 알 것 같고, 인생이란 직접 경험해보아야만 알게 되는 것이 많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지금부터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가치 있는 일들을 하고 싶다. 아내와 내가 건강하고 아들과 딸은 독립하여 제 몫을 잘하고 있다. 손녀의 재롱이 귀엽고 한 때 어려웠던 시절을 보냈던 동생들과 할아버지의 가훈처럼 화목하게 지낸다. 이러한 가족 간의 사랑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주변의 사람들도 돌아보고 작은 재능이지만 나누는 삶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 믿는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폭염주의보까지 내렸으니 함부로 외출하는 것도 겁난다. 그러나 찜통더위에 에어컨 밑에만 있자니 전기료 걱정에 마음이 편치 않다. 덥다고 집에만 가만있는 것도 답답한 노릇이다. 어디 더위를 피할 만한 마땅한 곳이 없을까
제일 먼저 추천하고 싶은 곳은 관악산 계곡길이다. 관악산 하면 보통 가파르고 험한 산을 생각하지만 등산로와 달리 계곡길은 경사도 완만하고 길이 잘 닦여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걷기 좋다. 실제로 관악산에 가보면 등산복을 잘 차려입은 등산객들도 많지만 반바지에 샌들, 혹은 유모차를 밀고 산책 나온 주민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관악산 입구에 들어서면 한창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시간에도 울창한 숲 속이라 시원하다. 계곡을 따라 걷다 보면 바위에 걸터앉아 책을 읽는 사람, 계곡에 발을 담그고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물소리 바람 소리와 함께 걷다 보면 이보다 더 좋은 피서법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관악산엔 100m나 되는 천연 계곡에 물놀이장이 운영되고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물놀이를 즐기기에도 좋다.
서울 도심에서 더위를 피해 쉴 곳을 찾는다면 청계천 옛 한국관광공사 자리에 새롭게 들어선 K-스타일 허브 한식문화관을 추천한다. 한식을 직접 즐기고, 맛보고, 경험할 수 있는 이곳은 관광객을 향해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한식체험관이 있는 4층으로 올라가면 한식을 맛볼 수 있는 널찍한 식당 안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강된장비빔밥이나 콩비지, 쌈밥, 묵 등 정갈한 한식 외에도 예쁘게 만든 전통 과자와 떡, 약과 등의 디저트, 전통차를 맛볼 수도 있다. 영화배우 송중기가 만들었던 개성약과도 예쁘게 개별포장해 판매 중이다. 시원한 오미자차 한잔, 혹은 전통주를 곁들인 주전부리 하나 시켜놓고 다음 스케줄을 짜보는 것도 좋겠다.
직접 한식을 만들어 보는 한식배움터도 인기다. 이곳에서 불고기, 잡채, 김치 등 우리나라 대표 한식을 만들어 볼 수 있다. 40명이 한꺼번에 요리할 수 있는 주방에서 사전 예약을 통해 유료로 진행된다. 이외에도 한식의 재료와 특징, 철학적 가치를 설명해 주는 한식전시관도 있고, 2층엔 관광안내센터가 자리하고 있으니 서울 여행에 필요한 정보나 지도도 구할 수 있다.
이것저것 다 귀찮을 땐 도서관이 최고다. 잘 살펴보면 집 가까이에 작은 도서관들이 많이 있다. 관악구에 있는 ‘용 꿈꾸는 도서관’은 늘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게 사람들로 붐빈다. 70석의 좌석에 1만7000여 권의 장서를 갖춘 작은 도서관은 이용자들로 가득하다. 관악구청 1층에 자리해 접근성이 좋은 데다가 카페 분위기의 인테리어 덕분에 어린아이에서 70~80대 시니어까지 여기서 책을 읽을 수 있다. 시원한 실내에서 하는 독서는 여름 무더위를 잊게 해준다. 아이스 커피 한잔 마시며 여행 에세이를 읽는 것도 폭염을 피하는 좋은 방법이니 집 가까운 곳에 작은 도서관이 있나 둘러보자.
폭염이 이어지며 사람들이 더위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 이럴 땐 집안에만 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더위를 피할 방법을 찾아보자. 관악산 계곡길을 걷거나 한식문화관을 찾아 한식을 즐기든, 가까운 작은 도서관에서 독서의 즐거움에 빠지든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 여름 무더위를 지혜롭게 이겨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