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 리스트’, ‘인턴’에 이어 시니어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이다. 우리나라 문화와는 다소 다르지만, 미국에서는 유명인사들은 죽기 전에 자신의 사망기사를 써 놓는다고 한다. 일종의 보도 자료이다. 이를 위해 사망기사 전문 작가도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마크 펠링튼 감독 작품으로 주연에 80세 노인 해리엇 역으로 셜리 맥클레인, 사망기사 전문 작가 앤 역으로 아만다 사이프리드, 흑인 소녀 브랜다 역으로 앤주얼 리 딕슨이 출연했다.
은퇴한 광고 회사 보스 해리엇은 자신의 사망 기사를 미리 확정해 놓기 위해 사망기사 전문작가 앤을 고용한다. 그러나 해리엇의 까칠한 성격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모두 해리엇에 대해 저주와 혹평을 한다. 좌절한 앤에게 해리엇은 사망기사에 담겨야할 자신의 철학을 얘기한다.
‘고인은 동료들의 칭찬을 받아야 하고, 가족의 사랑을 받아야 하며, 사회적 약자인 누군가에게 우연히 영향을 끼쳐야 하고, 자신만의 와일드카드가 있어야 한다’는 4가지 요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렇지 못하니 완벽한 사망기사를 위해 이제부터라도 같이 찾자는 것이다.
까칠한 성격에 막말을 해대서 자신의 회사에서 쫓겨났으니 동료들의 칭찬은 물 건너갔다. 같은 이유로 가족의 사랑도 포기한지 오래이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려면 장애자나 소수 민족에게 베풀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그런 적이 없다. 자신만의 와일드카드는 고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를 말한다. 유명인사라면 몰라도 해리엇에게는 역시 이렇다 할 수식어가 없다.
해리엇은 느긋하게 변한다. 나이든 노인의 여유이다. 그리고 하나하나 4가지 요소를 충족시키기 위해 작전 실행에 돌입한다. 자신의 회사, 전 남편과 딸 등 가족에게도 연락하여 화해한다. 해리엇이 워낙 까칠했기 때문에 돌아 섰던 것이지 본심은 역시 가족이었던 것이다. 딸도 어른으로 성장해 보니 엄마를 그대로 닮더란다. 정신과 의사가 ‘강박성 인격 장애’ 판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문제 흑인 소녀 브랜다를 인턴이라며 데리고 다닌다. 그리고 앤과 브랜다에게 자신의 인생 노하우를 가르쳐 준다. “적극적으로 살 것, 마음을 터놓은 사람이 될 것,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 것, 물속에 뛰어들기를 두려워하지 말 것, 자신의 신념을 두려워하지 말 것” 등이다. 그래서 그것을 지키기 위해 완벽주의자가 되었고 드센 성격으로 인생을 살아온 것이다. 라디오 방송국에도 가서 젊은 디제이를 몰아내고 무보수 디제이를 맡아 음악과 함께 인생의 노하우를 느긋하게 멘트한다.
해리엇은 흥겨운 음악을 틀어 놓고 앤과 브랜다가 춤추는 모습을 소파에 앉아 보며 같이 즐기다가 잠깐 조는 듯 죽는다. 교회에서 가진 해리엇의 장례식은 해리엇이 남긴 막대한 재산을 시에 기증하고 음반은 방송국에 기증하는 등의 선행이 좋은 와일드카드 수식어로 장식된다. 앤은 슬픔의 눈물을 흘리며 원래 써두었던 사망 기사보다 더 인간적인 조사를 한다.
필자의 경우, 해리엇의 사망기사 4가지 요소를 적용해보니 해당 되는 것이 별로 없다. 동료, 가족, 사이는 다른 사람들처럼 별 문제 없을 뿐이다. 장애인댄스를 한 것이 약자에 대한 영향을 끼쳤다고는 할 수 있으나 내세울 만 한 것도 아니다. 죽음은 누구나 맞이하는 것이고 평범한 사람이었으니 조용히 잊혀지기를 바랄 뿐이다.
여행에 대한 정의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이 세상에 살면서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여행 아닐까. 이왕이면 평소 사는 곳과 다른 곳일수록,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일수록 완벽한 여행지가 되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 있지. 하지만 누군가는 별을 보고 있다네”라고 했던가. 살면서 꼭 한 번은 밤하늘에 펼쳐지는 신비로운 빛을 만나보고 싶다. 그 황홀한 광경을 보고 나면 우주는 더욱 위대해 보일 것이고 우리네 삶도 조금은 숭고하게 느껴질 것 같다.
최고의 오로라 관측소, 옐로나이프!
전 세계적으로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 같은 북구의 나라와 미국 알래스카, 캐나다 화이트호스 등을 꼽을 수 있다. 그중 옐로나이프는 나사(NASA)가 지정한 오로라 관측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이다. 여름에도 오로라를 볼 수 있지만 11월에서 4월 사이 밤이 긴 겨울이 가장 좋다.
북극광(northern light) 혹은 극광이라고도 불리는 오로라는 라틴어로 ‘새벽’을 뜻한다. 태양에서 방출된 플라스마 입자가 자석 성질을 가진 지구의 극지방 주변을 둘러싸면서 붉은색이나 녹색, 파랑, 노랑, 분홍 등 다양한 색의 자기 에너지 띠로 나타나는 것이다.
엘로나이프로 향하는 프로펠러 비행기 안. 일본인들과 중국인들, 영국 등지에서 온 유럽인들, 그리고 캐나다인처럼 보이는 가족들도 보인다. 일본은 오로라 여행이 대중화되어 일반인과 신혼여행객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오로라가 뜰 때 아기를 가지면 그 아기가 천재가 될 확률이 높다는 믿음 때문이라지만, 혹한과 어둠을 뚫고 세상에서 가장 보기 어려운 신비로운 빛을 함께 경험하는 일은 두 사람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을 선사할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갑자기 비행기 안에서 엷은 환호가 터져 나온다. “저기… 저기… 오로라다.” 반대편에 앉은 승객이 창 쪽을 가리키며 소리를 지르자 기내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창밖으로 향한다. 나도 벌떡 일어나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깜깜한 하늘에 두 줄기 오로라가 어른댄다.
“아~ 저것이 말로만 듣던 오로라구나.”
순간 가슴이 콩닥콩닥 두방망이질하기 시작했다. 오로라, 그것은 마치 바닷속의 돌고래를 보는 것과 같다. “고래다!” 하고 소리치는 순간 사라져버리는 신기루 같은 존재 말이다.
오로라 빌리지를 통하면 모든 예약이 하나로
오로라를 보러 옐로나이프를 간다면 오로라 빌리지(Aurora Village)를 통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한국에서 비싸기로 유명한 캐나다 구스는 영하 50도까지 내려간다는 이곳 옐로나이프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평소엔 입을 일이 없기에 오로라 빌리지에서 대여해준다. 방한 점퍼와 바지, 마스크, 두터운 신발과 장갑까지 착용하고 나면 마치 우주복을 입은 듯한 기분이 든다. 이제 저 하늘을 둥둥 떠다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옐로나이프 오로라 사진마다 등장하는 아름다운 원주민 텐트 ‘티피(teepee)’ 안엔 따뜻한 화로가 있고 간단한 수프와 빵, 차와 커피, 코코아 등이 준비되어 있어 장시간 오로라 사진을 찍거나 관측하다 꽁꽁 언 몸을 녹일 수 있다.
캄캄한 어둠속을 달려 오로라 빌리지에 도착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밖에서 “스고이”, “스고이”라는 일본말과 외국인들의 환호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뛰어나가 사람들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과연 지상에서 보는 오로라는 어떤 모습일까? 정말 사진에서처럼 그렇게 환상적일까? 깜깜한 밤하늘에서 처음엔 희미한 듯하더니 점점 더 강렬하게 하얀 빛줄기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20초. 마침내 신의 영혼인 듯, 천상의 빛인 듯, 신비롭고 영험한 기운이 내게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잊지 못할 오로라 여행이 시작되었다.
낮 동안의 신나는 북극 체험
전날 밤 오로라를 보고 숙소에 돌아온 시각은 새벽 3시. 이곳에서의 일정은 밤에 오로라를 보기 위한 기다림으로 채워진다. 바쁠 것 없는 아침.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내다보는 창밖 풍경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영화 속 엘사가 살던 ‘겨울 왕국’ 그 자체였다.
밤엔 매일 오로라를 관측하고, 낮엔 다양한 북극 체험을 했다. 얼어붙은 그레이트슬레이브 호수를 걸어보는 아이스로드(ice road) 체험, 시베리안 허스키를 타고 하얀 숲을 달리는 개썰매 체험, 이누이트 원주민들이 신던 스키를 신고 산속을 트레킹하는 스노슈잉(snow shoeing) 체험이 대표적이다. 이런 액티비티한 경험은 어디서도 해볼 수 없는 이색 체험들로 반드시 해보기를 권한다. 노스웨스트 의회 청사나 박물관에 들러 이곳의 역사를 알아보는 것도 흥미롭다. 노슨이미지(Nothern Image)에서는 원주민이 직접 그리거나 만든 예술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마지막 밤, 오로라를 보며 신에게 감사를
드디어 떠나기 전 날 마지막으로 오로라를 보러 가는 길, 호텔 로비의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밤 9시의 기온은 영하 33도, 체감온도는 영하 40도!!!!! 실제로 체험해보기 전엔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 기온이다. 그러나 언제나 상상이 더 무서운 법. 막상 가보면 별것 아니다. 오로라 빌리지에 도착하니 하늘에 별이 총총했다. 오로라도 별이나 달처럼 날이 맑을수록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 티피 안에서 코코아를 마시고 있을 때 밖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4박 6일의 여행기간 중 가장 눈부시고 화려한 오로라가 나타나줬다. 영하 40도의 혹한과 어둠을 뚫고 마지막 날 가장 아름다운 신의 영혼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의 마음이 북받쳐 올라왔다. 좀체 보기 힘들다는 핑크오로라도 볼 수 있었다. 마시초 갓(Mahsi-cho, god)! 원주민어로 “신이시여, 감사합니다”라는 의미다. 사진 속에서만 보던 ‘오로라의 아우라’를 실제로 체험하고 나니 오랫동안 꿈꿔왔던 소원 하나를 이룬 느낌이다. 모든 여행은 눈을 뜨고 꾸는 꿈이라 했는데, 이번에야말로 진정한 꿈을 꾼 듯했다. 지구별이 아닌 다른 행성으로 다녀온 꿈 말이다.
travel tips>>
항공편>>인천-밴쿠버-캘거리-옐로나이프로 연결된다. 밴쿠버에서 옐로나이프로 바로 가는게 없고, 캘거리를 거쳐야 하므로 비행기를 최소한 세 번을 바꿔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가는데만 하루가 소요되는 힘든 길이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오로라 빌리지 예약 시스템>> 옐로나이프 여행의 핵심은 오로라빌리지이다. 모든 여행 시스템은 오로라빌리지를 중심으로 매우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개별여행자는 오로라 빌리지를 통하면 방한복 대여 및 오로라관측에 대한 일체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Aurora village (www.auroravillage.com)4720 Northwest Territories Ltd. Yellowknife, NT, CANADA /Tel 867-669-0006
추천숙소>>
옐로나이프엔 혹한과 어두음을 피해 안락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숙소가 다양하다. 필자의 경우, 더운 나라에 갈때엔 저렴한 게스트하우스 등을 이용하는 편이지만 이곳은 혹한의 환경이라 가장 좋은 익스플로러 호텔을 선택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텔급에서부터 inn, B&B, 게스트하우스, 로지, 콘도스타일까지 다양하므로 취향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숙소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시내 중심의 관광 인포메이션을 제공하는 비즈니스 센터에서 얻을 수 있다.
Explorer Hotel 익스플로러 호텔 엘리자베스 여왕도 묵고 갔다고 해서 로비에 사진도 걸려있는 가장 럭셔리한 호텔이다. 그날그날의 일기예보는 물론 친절하고 품격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며 다운 타운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성이 용이하다. 로비와 방에서 무료인터넷도 가능하다. (www.explorerhotel.ca) P.O.Box 7000, Yellowknife, NT, CANADA Tel 867-873-3531
추천레스토랑>>
극지방에 왔으니 다른 곳에서 먹어볼 수 없는 특이한 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된다. 익스플로러 호텔 1층에 있는 트레이더스 그릴(Trader's Grill) 레스토랑은 극지방에서 잡아올린 신선한 해산물과 원주민 전통요리인 순록 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늑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Address 4823-49th Avenue, Yellowknife, NT, CANADA
Tel 867-873-3531
추천 준비물>>
오로라 사진은 핸드폰으로는 잘 찍히지 않는다. 일정시간 이상 노출을 해야 하므로 오로라 사진을 찍고 싶다면 트라이포드(삼각대)와 수동설정이 가능한 카메라와 광각렌즈(18mm이상)를 준비해가는 것이 좋다.
★여행경비400만원 내외
영화산업의 메카, 영화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곳. 재봉틀 하나로 ‘할리우드’를 정복한 한국 아줌마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바네사 리(48·한국명 이미경). 그녀의 할리우드 정복기는 어떤 영화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공식 타이틀은 ‘패브리케이터(Fabricator)’. 특수효과 및 미술, 의상, 분장 등을 총칭하는 ‘FX’ 분야에 속해 있는 전문직이다. 그녀가 하는 일은 디자이너의 상상 속에 있던 배우의 의상을 현실에서 재현해내는 일이다. , , , 등 슈퍼히어로의 멋진 의상이 그녀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할리우드 최고 몸값의 패브리케이터 바네사 리를 LA 아트 디스트릭에 있는 그녀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할리우드 No. 1 패브리케이터
“패브리케이터라고 하면 한국에서는 생소할 거예요. 번역을 하면 특수의상 제작자 정도가 제일 맞겠네요. 의상뿐 아니라 원하는 모양의 몸집을 만들기도 하는데 팻 슈트(Fat Suit)라고 불러요. 뚱뚱한 몸이나 괴물, 외계인을 만들 때 사용합니다. 개봉을 앞둔 영화 에서 배우 게리 올드만이 윈스턴 처칠 역을 맡았는데 배우의 몸보다 두 배 가까이나 큰 슈트를 제작해야 했어요. 폼 라텍스와 마이크로비즈라는 소재로 처음 시도했는데 정말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어요. 게리 선생님도 마치 최고의 예술품 같다며 인정해주셨죠.”
바네사 리는 현재 할리우드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탑’ 패브리케이터다. 이는 지난 13년 동안 쌓아온 그녀의 필모그래피만 봐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작업한 영화만 100여 편, 제목만 들어도 반가운 , , , , , , , , , , 등이 그녀의 손길을 탔다.
할리우드의 FX 분야는 철저한 ‘그들만의 세상’이다. 제작사에서 FX 부분을 총괄할 숍(Shop)이나 아티스트에게 작업을 의뢰하면, 다시 그들이 의상, 분장, 헤어, 미술팀을 꾸리는데 보통 인력을 공개 채용하는 법이 없다.
같이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나 누군가의 추천을 통해 인맥으로만 구성된다는 것이다. 언뜻 공정하지 않고 불합리하게 보이지만 한 번은 모를까 실력이 없으면 그다음엔 이 바닥에 발도 붙이지 못한다는 것이 이씨의 설명이다.
“철저하게 실력으로만 살아남을 수 있는 진정한 프로의 세계죠. 나는 이 바닥의 이런 속성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요. 생각해보세요. 서른이 훌쩍 넘은 동양 여자가, 영어도 잘 못하고, 더군다나 핸디캡까지 있는 내가 무엇으로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었겠어요? 일 잘하는 거 빼고 미인도 아니고 날씬하지도 않아요(웃음).”
상처받은 명랑소녀
그녀는 두 살 무렵, 백신 접종 부작용으로 소아마비를 앓았다. 두 다리가 굳어진 어린 딸을 등에 업고 어머니는 매일같이 침을 맞히러 다녔고 찜질을 해주었다. 어머니의 정성으로 3년 만에 오른쪽 다리는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끝내 왼쪽 다리에는 장애가 남게 됐다.
하지만 이씨는 명랑소녀였다. 무역업을 하던 아버지 덕분에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고 쾌활한 성격에 친구도 많았다. 학창 시절 내내 오락부장을 도맡아 할 정도였다. 그러나 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모든 것이 달라진다.
“우리 가족은 정말 빈털터리가 됐어요. 아빠 치료비로 다 쓰고 쌀을 살 돈조차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 집이 망하니까 친구들이 다 떠나버리더라고요. 그때 알았죠. 마음을 다 주지 말아야 하는구나. 현실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 거죠.”
미대에 진학하는 것이 꿈이었지만 형편상 포기해야 했다. 대신 택한 것이 메이크업 학원. 그림에 소질이 있었고 영화를 좋아한 이씨는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의 한국 사회는 장애를 가진 그녀에게 냉혹하기 그지없었다.
“학원을 수료하고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서 메이크업을 해주는 직원으로 취직이 됐어요. 일을 잘하고있는데 일주일 만에 사무실에서 호출이 오더군요. 다리가 왜 그러냐고 묻기에 소아마비를 앓아서 그렇다고 하니까 봉투 하나 내밀면서 다시 연락하겠다고 하더라고요. 한마디로 짤린 거죠.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요. 이후 계속 같은 일이 반복됐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권리
딸이 상처받는 것을 보다 못한 어머니는 과감히 미국 이민을 선택했다. 1993년, 이씨는 그렇게 눈물을 머금고 한국을 떠나왔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그녀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생계 때문에 공인회계사 사무실에 취직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뭔가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신문을 뒤적이다가 패턴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기술을 가르쳐주고 취직도 시켜준다고 하길래 그 길로 등록을 했죠. 낮에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밤에는 패턴을 배웠어요.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더라고요.”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신명나게 하는지, 이씨는 그때 깨달았다고 한다. 실력도 남달라 패턴을 배운 지 6개월 만에 취직이 됐다. 이후 7년간 그녀는 자바(LA 의류산업 중심지)에서 일하면서 고액 연봉을 받는, 소위 잘나가는 패턴사로 자리 잡게 된다.
“자바에서 일하는 동안 남편을 만나 결혼도 하고, 딸아이도 낳고 점점 생활이 안정되어갔어요. 그런데 어느 해 딸이 아파서 잠시 일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그때 조그만 신문광고를 보게 됐어요. 할리우드의 한 숍에서 특수의상 패턴사를 구한다는 광고였는데 그게 제 마음을 흔들어놓은 거예요. 정말 하고 싶은 일이었어요.”
이씨는 다시 자바로 돌아가지 않았고, 시급 12달러를 받으며 밑바닥 영화 일을 시작하게 된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던 이씨의 선택을 두고 주위에서는 걱정과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그때 힘을 준 사람이 바로 남편이었다. 남편은 자신이 투잡, 쓰리잡이라도 뛸 테니 원하는 것을 하라며 용기를 줬다.
“살다 보면 운명적인 선택의 순간이 오는 거 같아요. 나중에 알았는데 할리우드 쪽에서 신문에 구인광고를 내는 일은 전무후무한 일이었어요. 그런데 광고가 나왔고 내가 그걸 본 거예요. 나는 그때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물론 한동안은 돈이없어 정말 고생을 했죠. 딸아이에게 정부에서 나오는 공짜 분유를 먹여야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래도 우리 가족은 행복했어요. 남편과 함께 지금도 이야기해요. ‘우리 그때 진짜 재미있고 행복했지’라고요.”
슈퍼맨을 만드는 여자
지나고 보니 한국에서의 상처도 자바에서의 7년도, 버릴 것 없는 시간들이었다. 강인한 정신력과 빈틈없는 실력으로 무장된 바네사 리는 할리우드에서 깐깐하기로 이름난 넘버원 아티스트들의 애정을 한 몸에 받기에 충분했다.
특수분장계의 대부 릭베이커, FX 디자이너 패트릭 타투포우로스, 특수효과의 거장 스티브왕, 완벽주의 의상감독 콜린 앳우드…. 할리우드를 쥐락펴락하는 이들은 모두 바네사 리의 스승이자 1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동료이며 친구다.
창의력은 기본, 사고의 유연성과 순발력은 패브리케이터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는다. 보이는 모든 것이 의상 재료가 될수 있고 부품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사물을 볼 때 허투루 넘기는 것이 없다.
특수한 원단은 통달하고 있어야 하고, 각종 신소재에 대한 세미나가 있으면 찾아다니며 공부해야 한다. 슈퍼히어로의 전투 의상을 하도 많이 만들어 전쟁이나 무기에 대해 박사가 됐다. 우주선과 우주복에 대해 연구하다 보니 나사(NASA)에서도 일할 수 있을 정도로 해박해졌다. 실제로 에서 그녀가 만든 우주복을 보고 나사에서 연락이 온 적이 있다고.
의상을 맡았을 때, 팔꿈치 장식을 위해 해체한 스키 부츠가 스무 개가 넘고, 샤키 오닐이 입을 라이트 의상에 사용할 특수 라이트테이프를 찾기 위해 전 세계 전기 회사의 신제품들을 뒤졌다. 늘 화학약품을 다루다 보니 스태프와 배우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그 방면으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이 일은 정말 좋아서 미치지 않고는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스포트라이트는 없어요. 그렇게 치열하게 일하고 고작 엔딩크레디트에 수백 명의 스태프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릴 뿐이죠. 아카데미상을 받을 수도 있냐고 묻는데 ‘패브리케이터’ 카테고리는 없어요. 특수효과 부문에 속해 있으니까요. 돈이요? 물론 적지 않게 받죠. 메이저 제작사가 아니면 의뢰를 못하니까요. 하지만 그것도 천문학적인 돈이 오가는 할리우드 제작 환경 안에서 보면 그렇게 대우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에요. 돈을 벌려면 배우가 되는 게 낫죠(웃음).”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비하인드스토리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숨은 즐거움 중 하나이지만 그야말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그들의 사생활 보장은 스태프들의 프로페셔널 정신이기도하다.
유명 배우들과 찍은 사진을 보여 달라고 하는 사람도 많은데 이럴 때는 좀 난감하다고. 이씨는 여간해서는 배우들과 함께 사진을 찍지 않기 때문이다. 함께 작업하는 ‘동료’로서 동등한 관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폼’ 빠지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는 게 이유다. 그래도 좋은 이야기야 어떻겠냐며 하나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친절한 바네사 리.
“게리 올드만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네요. 개인적으로는 게리 선생님이라고 불러요. 내가 만든 팻 슈트(Fat Suit)에 완전히 감동을 받아 먼저 같이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배우와 찍은 유일한 사진이에요(웃음). 딸아이가 연기자가 되고 싶어 한다고 하자 조언을 해주고 싶으니 꼭 촬영장에 데려오라고 할 정도로 자상한 분이에요. 또 배우 매튜 매커트니에게 직접 소개를 해주어서 그가 주연을 맡는 영화 에 참여하게 됐어요.”
숙취 때문에 컨디션이 엉망인 상태에서도 남다른 미모를 뽐내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막내 스태프에게도 깍듯이 인사를 건네던 안소니 홉킨스는 영화 에서 만났는데 무거운 슈트를 입고도 불평 한 번 하지 않던 영국 신사였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그녀가 애써 만든 전자회로 슈트가 아쉽게도 통편집되어 세상에 공개되지 못하자 직접 텐트로 찾아와 아쉬움을 표했다고.
보디슈트를 만들려면 배우들의 정확한 수치가 필요하다면서 나머지는 상상에 맡기겠다는 유쾌한 그녀. 가장 좋아하는 배우인 조니 뎁의 보디슈트를 언젠가는 꼭 만들고 말겠다는 사심(?)도 드러낸다.
꿈의 공장 ‘슈퍼슈트팩토리’
올해는 바네사 리에게 조금 특별한 해였다. 할리우드에서 일한 지 13년 만에 드디어 자신의 스튜디오를 갖게 된 것이다. 이름하여 ‘슈퍼슈트팩토리(Super Suit Factory)’. 이제 회사의 대표로서 제작사와 FX 숍을 상대하게 되었다. 영화사와 직접 계약을 하기도 한다. 개인으로 활동할 때보다 입지가 훨씬 굳어진 셈이다. 물론 몸값도 뛰었다.
또 하나 강동원 주연의 한국 영화 을 맡게 된 것도 그렇다. 한국 영화가 특수의상에 큰돈을 투자하기란 쉽지 않은데 특별히 은 주인공의 전투복을 위해 할리우드 최고 제작자를 찾았고 이씨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은 아마도 나에게 특별한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워낙 좋아하던 애니메이션이라 잘하고 싶은 욕심도 있고, 최초의 한국 영화라는 점도 큰 의미가 있어요. 한국은 나에게 아픈 기억도 주었지만 솔직히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잘할 수 있었던 부분이 있거든요. 한국인의 근성과 기술은 미국인들이 못 따라와요. 언젠가 나의 경력과 노하우가 한국 영화계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의 팬들에게도 깜짝 선물이 될 만큼, 최선을 다했으니 기대해도 좋습니다.”
한국 배우와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이 늘어나는 만큼, 그녀의 역할도 주목된다. 실제로 이씨는 10년지기이기도 한 할리우드 특수분장 및 헤어 전문가 다이아나 최씨와 함께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언제 그 그림이 완성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원하고 있다는 거지요. 지금은 다이아나도 저도 너무 일이 많아서 스튜디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때가 되면 가능하지 않겠어요? 오늘을 후회 없이 살다 보면 어느덧 내가 바라던 내 일이 되어 있더라고요. 너무 영화 같은 소리만 한다고요? 글쎄요… 뭐 여긴 할리우드니까요!(웃음)”
◇exhibition
다빈치 얼라이브: 천재의 공간
일정 2018년 3월 4일까지 장소 용산 전쟁기념관 기획전시실
예술, 과학, 음악, 해부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류사적 업적을 남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생애를 색과 빛, 음향으로 재조명한다. 전시는 ‘르네상스, 다빈치의 세계’, ‘살아있는 다빈치를 만나다’, ‘신비한 미소, 모나리자의 비밀이 열린다’ 등 총 3개의 섹션으로 나뉜다. 제1섹션에서는 실물 크기로 재현한 다빈치의 발명품을 직접 만지고 체험할 수 있다. 이밖에 베네치아에 보관된 ‘비트루비우스의 인체비례도’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영상을 볼 수 있다. 다빈치의 걸작으로 꼽히는 ‘모나리자’에 관심이 있다면 제3섹션을 확인하자. 세계적 미술 감정 기업인 뤼미에르 테크놀로지가 모나리자 원화를 10년간 분석해 밝혀낸 25개의 비밀을 공개한다. 당시의 색감을 그대로 복원해 재현한 진짜 모나리자를 감상해보자.
더 아트 오브 더 브릭
일정 2018년 2월 4일까지 장소 아라아트센터
전시회의 주인공인 네이선 사와야는 세계 최초로 오직 ‘레고’만을 사용해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다. 지구본, 전화기 등 아기자기한 생활 소품부터 인체의 다양한 움직임을 표현한 작품까지 약 100만 개의 레고를 사용해 제작한 총 1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연인(키스)’,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등 유명 예술가들의 대표작도 만나볼 수 있다.
전시품 관람 이후엔 레고를 활용해 작품을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디 아트 오브 더 브릭’전은 세계에서 꼭 봐야 하는 10개의 예술 전시 중 하나로 소개되었으며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로부터 극찬을 받기도 했다.
◇book
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저·나무생각)
늙은 양치기 엘제아르 부피가 매일 100개의 도토리를 심으며 기적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황량했던 언덕이 생기를 되찾고, 말라버린 하천에 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진정으로 옳다고 믿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언가를 처음 시도하는 사람의 용기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깨닫게 해준다.
환자 혁명 (조한경 저·에디터)
현직 의사가 기존의 의료 상식에 반기를 들었다. 환자를 향해 ‘자기 병에 더 큰 관심을 가지라’고 잔소리하는 저자는 ‘약과 병원에 의존하지 말고 건강 주권을 회복하라’고 주장한다. 성인병 치료의 열쇠는 환자에게 달려 있다며 스스로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쉬우면서도 다양한 ‘혁명’을 제시한다.
◇movie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스타워즈’ 시리즈가 첫선을 보인 지 40년이 되는 올해 또 하나의 시리즈가 탄생했다. “선과 악의 전쟁, 거대한 운명이 결정된다”는 문구가 눈에 띄는 이번 영화는 비밀의 열쇠를 쥔 ‘레이’를 필두로 ‘핀’, ‘포’ 등 새로운 세대가 중심이 되어 운명을 결정지을 빛과 어둠, 선과 악의 대결을 보여준다.
이번 영화는 ‘레아 공주’ 역으로 얼굴을 알린 캐리 피셔가 지난해 작고하기 전 연기한 시리즈로 그의 마지막 ‘레아 공주’를 감상할 수 있다. 전편에서 감독으로 활약한 J.J. 에이브럼스가 제작에 참여하고 향후 시리즈 3부작 연출이 확정된 라이언 존슨이 연출을 맡았다.
개봉 12월 14일 장르 액션, SF 감독 라이언 존슨 출연 마크 해밀, 캐리 피셔, 아담 드라이버 등
아들에게 가는 길
코다(CODA, 청각장애인의 정상인 아이) 가정의 한 장애인 부부가 아들을 키우면서 겪는 문제를 다룬다. 아들의 미래를 위해 시골 할머니 댁에 보내지만 떨어져 지내는 만큼 아이와의 거리도 멀어진다. 진심으로 다가서려 하는 부모와 자신의 말을 듣지 못하는 부모가 답답한 아이.
자식은 어떤 존재이고 부모는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묻고 가족 해체가 가속화하고 있는 이 시대에 가족의 소중함을 제대로 느끼게 해준다. 이 영화로 2016년 제17회 장애인영화제에서 우수상, 관객심사단상을 수상한 최위안 감독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개봉 11월 30일 장르 드라마 감독 최위안 출연 김은주, 서성광, 이로운 등
◇stage
빌리 엘리어트
2010년 한국에서 최초로 초연된 뮤지컬 가 7년 만에 다시 한국 무대에 오른다. 1980년대 영국 북부 탄광촌이 배경이다. 복싱 수업 중 우연히 접한 발레를 통해 꿈을 이뤄가는 소년 ‘빌리’의 여정을 보여준다.
장소 디큐브아트센터 일정 2018년 5월 7일까지 연출 스테판 달드리 출연 천우진, 김갑수, 최정원 등
블라인드
시각을 잃은 후 세상과 단절된 청년 ‘루벤’과 몸과 마음이 상처로 가득한 여자 ‘마리’가 만나 마음으로 서로를 느끼며 교감을 해나가는 사랑 이야기다. 오로지 마음으로만 교감하는 둘의 관계를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봐야 하는 본질이 무엇인지 질문하게 만든다.
장소 수현재씨어터 일정 2018년 2월 4일까지 연출 오세혁 출연 박은석, 이재균, 김정민, 정운선 등
거미여인의 키스
남성 2인극으로, 이념이 다른 두 주인공인 몰리나와 발렌틴이 감옥에서 만나 서로를 이해하며 다가가는 슬픈 사랑을 연기한다. 몰리나 역은 배우 이명행과 김호영이, 발렌틴 역은 송용진과 김선호가 지난 공연에 이어 재연을 확정했다.
장소 아트원씨어터 2관 일정 2018년 2월 25일까지 연출 문삼화 출연 이명행, 이이림, 김주헌 등
타이타닉
타이타닉 사건이 발생한 지 105년, 브로드웨이 초연 20년 만에 한국 무대에 상륙한다. 영화가 이 사건의 비극적인 사랑에 집중했다면 영화보다 앞서 제작된 뮤지컬 은 배가 항해하는 5일 동안의 사건과 인물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장소 샤롯데씨어터 일정 2018년 2월 11일까지 연출 에릭 셰퍼 출연 김용수 왕시명 이상욱 등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The Artist: Reborn)' 영화는 김경원 감독 작품으로 독립영화제에서 매진될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주연에 화가 지젤 역으로 류현경, 갤러리 대표 재범 역으로 박정민이 출연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라는 게 미남 미녀 배우가 나와야 하고 엄청난 물량을 투자해야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류현경이나 박정민이나 그리 잘 알려진 배우도 아니다. 그리고 크게 돈 드는 세트를 만든 것도 아닌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이다.
지젤은 덴마크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귀국했다. 무명 화가인 그녀에게 국내 화단이 싸늘한 대우를 할 것은 빤한 일이다. 그러나 어느 유명 갤러리 대표 재범을 만나고 그녀는 하루아침에 재범의 수완으로 한국 화단의 신데렐라가 된다. 그녀의 그림 값은 천정부지로 뛴다. 그녀는 물론 갤러리도 돈 방석에 앉는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유명인이 되었다 듯이 이제 잘 나가는 화가로 날아갈 일만 남았다.
그런데 갑자기 지젤이 심장마비로 죽는다. 그녀의 그림은 유작이 되어 희소성 때문에 더 뛴다. 재미있는 것은 죽었던 그녀가 영안실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다. 의학적으로는 죽었는데 심폐 소생 시술 후 자동 소생한다는 ‘라자루스 증후군(Lazarus syndrome)’ 이라는 것이다. 기독교 성경에서 예수가 되살린 라자로 (Lazarus)에서 이름을 따 왔다고 한다. 작가들은 이런 의학지식을 잘도 찾아낸다.
무명화가이므로 알려진 것도 별로 없다. 그리고 갑자기 죽었다. 재범은 특유의 마케팅 기법으로 그녀의 작품 값을 높여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다시 살아났다.
그대로 죽어 있으면 그녀의 작품은 날이 갈수록 고가로 팔리게 되는데 그녀가 살아났으니 그간의 마케팅 수법은 더 이상 안 통하게 생겼다. 신비주의는 벗겨지고 희소성이라는 가치도 소멸될 판이다. 재범은 지젤에게 세상에 나타나지 말고 몰래 한 해에 5편 정도만 그리라고 제안한다. 재범은 지젤이 마치 생전에 그렸던 것처럼 화랑에 내걸어 고가에 팔 전략을 내세운다.
그러나 그녀는 그 제안을 거부한다. 작가는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마케팅에 의해 거짓 지젤이 존재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표한다. 재범은 결국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그녀가 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를 목 졸라 살해하려 한다. 죽은 줄 알았던 지젤은 죽지 않고 겨우 살아난다. 두 번 째 살아 난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작품은 고가의 작품만 거는 화랑이 아니라 공공 기관에 희사하거나 거리에서 전시회를 한다.
이 영화는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계의 허구적 마케팅과 작품의 가치 등을 되돌아보게 한다. 예술 작품의 가치는 누가 정하는가, 진정한 예술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같은 명제를 되짚어보게 한다. 요즘 예술은 과거보다 많이 가깝게 다가 와 있지만, 예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볼만한 영화로 추천하고 싶다.
카메론 크로우 감독 작품이다. 주연에 바람둥이 데이빗 에임즈 역에 톰 크루즈, 데이빗의 이상형 여자 소피아 역에 페넬로페 크루즈, 섹스 파트너 줄리 역에 카메론 디아즈가 나온다.
‘바닐라 스카이’는 인상파 화가 모네 작품에서 하늘빛이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담은 것에서 유래되었다. 그러고 보니 빈센트 반 고흐의 풍경화도 비슷한 작법이었다. 그래서 이 생소한 단어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된 셈이다.
남자의 자격에서 인기를 얻은 가수 배다해가 활동하던 그룹 이름이 ‘바닐라 스카이’였다. 한국 영화 ‘루시드 드림’ 감상평을 블로그에 올렸더니 누군가가 꿈에 대한 이해를 위해 이 영화를 보라고 추천했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다소 난해하다. 꿈이라는 소재가 등장하고 바닐라 스카이처럼 시시각각 판단에 따라 인생이 바뀐다는 뜻도 담고 있다.
데이빗은 아버지 유산으로 받은 잘 나가는 출판사 사장이다. 돈 많고 잘 생겨서 주변에 사람이 많다. 여자도 많아서 바람둥이이다. 이미 줄리라는 애인이 있는데 그의 33세 생일 파티 때 운명의 여인 소피아가 나타난다. 첫눈에 소피아에게 반한 데이빗은 그때부터 소피아에게 사랑이 옮겨 간다. 줄리는 질투에 불타서 데이빗을 차에 태우고 질주하면서 동반 자살을 꾀한다. 차량 전복사고로 줄리는 죽고 데이빗은 얼굴을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추한 얼굴이 된다. 그 때문에 모든 것을 잃는다. 여기서 피해 의식이 발동한다. 잘 생긴 외모는 그만큼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추한 얼굴이 된 데이빗은 실의에 빠져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는다. 다행히 의사의 노력으로 데이빗은 제 얼굴을 회복하고 소피아도 옆에서 보살핀다. 그러나 데이빗은 소피아에게서 줄리의 환상을 보며 정신 착란에 빠진다. 소피아를 줄리로 착각하며 질식사 시키고 범법자가 된다. 그리고 난해한 꿈의 세계에 들어간다. 개를 동결시켰다가 해동해서 다시 회생시키는 기술이 등장하는가 하면 어디선가 본 듯한 남자가 나타나 꿈은 편집이 가능하다고 한다. 좋은 것만 남기고 나쁜 기억은 없애는 것이다.
일반적인 평범한 사람에게는 지우고 싶은 나쁜 기억이라는 게 사실 별로 없다. 무난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범인(凡人)이라고 한다. ‘꽃길만 걷고 싶다’는 좌우명을 카톡스토리에 담고 있는 사람도 많다. 범인들에게 인생은 사실 지나온 과정이 모두 꽃길이다. 특별한 고난의 나쁜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데이빗은 줄리에게는 빼앗길 수 없는 백마 탄 왕자였다. 그러나 “행복이 무엇이냐?”는 줄리의 질문에 데이빗은 줄리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데이빗의 사랑은 소피아에게 사랑이 옮겨 갔다. 줄리에게는 데이빗이 행복의 전부였던 것이다. 그래서 동반자살을 꾀한 것이다. 여자는 사랑에 목숨을 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결국 데이빗은 잘 생긴 외모를 잃으면서 인과응보의 죄 값을 받은 셈이다. 지우고 싶은 나쁜 기억이 되는 것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빛처럼 순간의 판단도 그때마다 중요하다.
◇exhibition
王이 사랑한 보물: 독일 드레스덴박물관연합 명품전
일정 11월 26일까지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독일 드레스덴을 18세기 유럽 바로크 예술의 중심지로 이끌었던 폴란드의 ‘강건왕’ 아우구스투스. 그가 수집한 예술품 중 130점을 총 3부로 구성해 전시한다. 제1부에선 아우구스투스의 군복과 태양 가면, 사냥 도구 등 그의 권력을 상징하는 유물들이 소개된다. 아우구스투스가 수집한 예술품을 공개하기 위해 만든 보물의 방 ‘그린볼트’를 소개하는 제2부에선 당대 최고의 장인을 동원해 제작한 공예품을 선보인다. 각종 보물이 사용된 작품을 통해 화려한 바로크 예술의 진수를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 제3부에선 18세기 중국과 일본의 수출 도자기와 초기 마이센 자기를 한눈에 비교해볼 수 있다. 전시장 내부를 확대사진 기술을 사용해 드레스덴 궁전 내부와 비슷하게 연출한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도그 in 강남
일정 11월 19일까지 장소 강남미술관
반려동물 인구 1000만 시대를 맞이해 동양화작가 곽수연, 사진작가 김현욱, 입체작가 빅터조, 업사이클링작가 엄아롱, 일러스트레이터 이연경, 도예작가 틸다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가 모였다. 반려동물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는 회화, 설치, 사진, 조형 등으로 표현된 총 5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강남미술관이 무료로 제공하는 애견기저귀를 착용할 경우 반려동물도 입장이 가능하다. 반려동물이 있다면 함께 관람해도 좋다. 다양한 작품 외에도 유기견을 입양한 견주들이 보내준 사연을 읽어볼 수 있다. 또 반려동물 관련 서적을 비치하는 등 반려동물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전시장 건물 옥상에는 반려동물과 함께 쉴 수 있는 ‘반려동물 놀이터’가 마련되어 있다.
◇book
걸어도 걸어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저·민음사)
15년 전 물에 빠진 소년을 구하다 세상을 떠난 장남 준페이. 작품 속의 ‘오늘’인 그의 기일을 맞아 온 가족이 모인 하루를 담아낸 이야기다. 가족 간의 쉽지 않은 소통과 그럼에도 연결하고자 하는 욕구를 ‘걸어도 걸어도’ 끝나지 않는 여정으로 그려내며 아스라한 동경과 영원한 그리움의 상대는 가족임을 들려준다.
향기 탐색 (셀리아 리틀런 저·뮤진트리)
고고학자인 어머니를 따라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성장한 저자 셀리아 리틀턴의 향기 탐색서다. 냄새로 기억되는 곳들을 추억하며 향의 발자취를 답사하고 회고한다. 각 나라 특유의 향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향의 기초적인 원료와 재배법, 향수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살펴볼 수 있다.
◇movie
유리정원
칸,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신수원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국내에선 보기 드문 소재와 독창적인 스토리로 다시 한 번 주목을 끌었다. 은 베스트셀러 소설에 얽힌 미스터리한 사건을 중심으로 그 속에 감춰진 슬픈 비밀을 그린 작품이다. 10월 22일에 열린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몽환적이면서도 독특하다”, “신수원 감독의 남다른 상상력을 실감하게 만든다”는 호평을 받았다. 또 숲속의 유리정원에서 엽록체를 이용한 인공혈액을 연구하며 초록 피가 흐르는 ‘재연’ 역을 맡은 문근영이 2년 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한 작품으로 기대를 모았다.
개봉 10월 25일 장르 미스터리, 드라마 감독 신수원 출연 문근영, 김태훈, 서태화, 임정운 등
리빙보이 인 뉴욕
이후 , 시리즈를 연출한 마크 웹 감독이 다시 한 번 로맨스 영화로 돌아왔다. 은 제목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젊은 남녀 간의 로맨스를 통해 도시 뉴욕의 풍경을 스크린에 담았다. 마크 웹 감독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하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도시인 뉴욕의 가장 현실적인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다”며 뉴욕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을 드러냈다. 맨해튼의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인 가을을 배경으로 촬영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국내에선 로 얼굴을 알린 칼럼 터너가 남자 주인공 ‘토마스 웹’ 역을 맡았다.
개봉 11월 9일 장르 드라마, 로맨스 감독 마크 웹 출연 칼럼 터너, 케이트 베킨세일 등
◇stage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드라마와 영화로도 제작된 이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항상 사랑받기를 꿈꾸며 살았던 여인 마츠코의 기구한 삶을 감성적인 연출과 음악으로 그려내며 진정 그녀의 인생이 혐오스러운 삶이었는지 되묻는다.
장소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일정 10월 27일~2018년 1월 7일 연출 김민정 출연 박혜나, 아이비, 강정우 등
도둑맞은 책
인간의 행동은 의지인가 욕망인가. 영화대상 시상식 날 납치된 시나리오 작가 서동윤, 그리고 그를 납치한 보조작가 조영락. 두 사람을 통해 연극 은 인간이 극한 상황에 몰려 사람다움을 포기할 때 얼마만큼 추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장소 충무아트센터 소극장 블루 일정 10월 13일~12월 3일 연출 변정주 출연 이현철, 이갑선 등
에어포트 베이비
미국으로 입양된 조쉬가 친부모를 찾아 한국을 방문하면서 겪는 이야기다. ‘입양’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담백하고 재치 있는 대사로 풀어내면서 감동을 선사한다. 8년 동안 수정과 보완작업을 거친 작품으로 현실적 소재를 잘 소화했다는 평을 받았다.
장소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1관 일정 10월 17일~12월 31일 연출 박칼린 출연 최재림, 유제윤, 강윤석 등
오펀스
새로운 시도와 도전으로 공연계의 독보적인 연출가로 불리는 김태형이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가정과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고아 형제 트릿과 필립, 그리고 중년의 부유한 갱스터 해롤드. 아픔과 상처를 지닌 세 인물을 통해 따뜻한 격려와 위로를 전한다.
장소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일정 9월 19일~11월 26일 연출 김태형 출연 박지일, 손병호, 장우진 등
강화도에 접어들어 관광객이 붐비는 도로를 벗어나 한참을 달리다 보면 앳된 군인이 차를 막아선다. 그가 전해준 비표는 이미 많은 이의 손을 거쳐 낡아 있었지만, 잃어버렸을 때 간첩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쥐어든 손에 힘이 들어간다. 때마침 잘 나오던 라디오 음악에 잡음이 끼어들며 괜한 으스스함을 더한다. 그렇게 언덕을 넘으니 교동대교가 시야에 들어온다. 다리 앞에서 다시 군인의 출입통제 시간에 대한 당부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아름다운 이 섬과 마주할 수 있다. 시간이 멈춘 섬 교동도와 말이다.
키가 큰 오동나무[喬桐]라는 의미를 담아 지은 이름 교동도는 강화도 서쪽에 자리 잡은 섬으로 면적으로는 14번째로 꼽힐 만큼 큰 섬이다. 섬 사이의 물살이 거세 조선시대 때는 탈출이 어려운 유배지로 활용되었다. 연산군은 이 섬에 유배돼 생의 마지막을 보냈고 광해군과 임해군, 고종 황제의 조카 이준용도 교동도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고려 때는 중국과의 교역 중심지 중 한 곳이었지만, 교동도가 무엇보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부분은 고향을 잃은 실향민의 집성촌이라는 것이다.
교동도는 수영으로 바다를 건너오는 탈북자가 있을 정도로 북한 황해도와 가깝게 마주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을 위해 교동도로 월남했던 황해도 도민들이 휴전 후 북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면서 집성촌이 형성됐다. 교동도의 대표적 관광지로 꼽히는 대룡시장을 황해도 연백군의 연백시장을 본떠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러나 이들의 슬픈 사연도 시간의 흐름에 바래버린 것인지 대룡시장에서 만난 한 실향민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제 이 시장에서 실향민은 별로 없어요. 다들 일흔이 넘은 나이이니까요. 많이 돌아가시기도 했고 아이들은 모두 인천이나 서울로 떠나 남은 실향민 가족도 거의 없어요.”
실제로 대룡시장의 명물 중 하나였던 시계방도 이곳을 지키던 주인의 죽음으로 멈춰버렸지만, 이어받은 이가 없어 문을 닫았다. 시간이 멈춘 것이 이 때문인가 싶을 정도다.
실향민의 한, 켜켜이 쌓인 곳
이전까지 교동도는 북한 땅과 맞닿아 있는 탓에 출입제한이 있었고, 강화도에서 건너오는 뱃삯은 차량 편도가 1만6000원이나 되어 관광지로 환영받지도 못했다. 유동인구도 적었다. 이런 외부와의 단절은 시간이 지나도 그 시절을 붙잡아둔 듯 과거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게 만들었다. 약국이며 양복점이며 시계방, 잡화점 할 것 없이 예전 모습 그대로다.
교동도의 대룡시장이 유명해진 것은 지난 2010년 KBS2 TV 예능 프로그램 을 통해 소개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1970년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모습은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얼마 후인 2014년 7월, 교동대교가 완공되면서 사람들의 높은 관심은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이어졌다. 교동도 토박이들은 아직도 이런 관심에 의아해한다. 대체 이곳에 볼 게 뭐가 있다고 몰려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관광객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 있다. 바로 교동다방이다. 이 마을에 살면서 15년째 다방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장은 섬의 변화를 가장 크게 체감한 이 중 하나다.
“다리가 생기기 전에는 동네 장사였죠.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섬에 사람이 꽤 많았어요. 다들 쌀농사를 크게 지어 풍족했죠. 술 마시다 흥에 겨워 2차, 3차 오는 모임도 몇 개나 됐으니까요. 그러다 사람들이 서울로 빠져나가면서 한동안 섬이 조용했다가, 다리가 생기면서 관광객이 밀려들었어요. 여기 사방에 붙어 있는 메모도 다리가 생기면서 다녀간 관광객들이 하나둘씩 써놓고 간 것들이에요. 장사가 잘될 때는 쌍화탕을 하루에 100잔까지 팔아봤어요. 이후 석모도에 다리가 생기면서 서울 사람들이 그리로 갔고, 요즘은 손님이 좀 줄었어요.”
대룡시장에서 관광객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것은 간식 ‘꽈배기’다. 관광객들의 배를 채울 만한 먹거리가 마땅치 않아 교동도의 한 주민이 만들어 팔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시장의 대표 상품이 됐다. 일부 상인이 놀러온 사람들이 물건은 안 사고 꽈배기만 입에 물고 다닌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최근에는 외지 상인들이 대룡시장의 빈 가게들을 채우면서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복각해 곳곳에 붙여놓은 군사정권 시대의 포스터들도 시장의 옛 모습 위에 개성을 더하고 있다. 1970년대의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진관 등 일부 가게의 수익은 마을 공동체를 위해 쓰인다.
북한과 맞닿은 땅
키가 낮은 시장 건물의 처마를 자세히 살펴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이제는 낯선 제비집이다. 교동도 사람들에게 제비는 지켜야 할 귀한 손님이라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건물 안에 집을 지어도 내쫓는 법이 없다. 바다 건너 고향 연백평야의 흙을 물어다가 집을 짓는 제비를 마치 북한의 가족처럼 대하는 실향민들의 마음 때문이다. 시장 곳곳에는 제비집에 손대지 말라는 안내문까지 붙어 있다. 동네 주민 중 한 사람은 실향민들이 고향 땅을 맘껏 드나드는 제비가 부러워 소중하게 여기는 모양이라며 심지어 이곳 사람들은 간식도 제비콩을 즐겨 먹는다고 말한다.
대룡시장에서 차로 30분 정도 달려가면 망향대를 만날 수 있다. 실향민을 위한 작은 쉼터와 고향을 바라볼 수 있는 망원경 두 대가 설치되어 있다. 섬에 많지 않은 높은 장소 중에 군사시설을 피해 고른 탓인지 접근도 쉽지 않고 전망도 그리 시원치 않다. 그래도 지척에서 황해도 땅을 볼 수 있다는 게 위로가 된다.
북한 땅이 가깝다는 것은 실향민에게는 작은 위안이 되지만 외지 출신 주민들에게는 공포가 되기도 한다. 2010년 바로 옆 연평도에 떨어진 포탄은 이곳 주민들에게도 큰 충격을 줬다. 한 주민은 자다 깨면 눈앞에 간첩이 서 있는 것 같은 환영에 시달리기도 했다며 한동안 불안장애로 신경정신과 치료도 받았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교동도는 다리가 생긴 지금까지도 일부 통제가 이뤄진다. 교동대교는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는 왕래가 완전히 차단된다. 여행지 정보를 미처 챙기지 못한 남녀가 어쩔 수 없이 이곳에 갇혀 밤을 지새울 수도 있겠다는 괜한 걱정이 든다. 섬 안에 대형 숙박시설은 아직 없지만 몇몇 민박집이 운영 중이다.
인력으로 만들어진 평야
교동도의 또 다른 이색적인 모습은 벼 이삭으로 가득한 넓은 평야다. 섬에 무슨 평야가 있을까 싶지만 육지에서도 보기 힘든 대형 농기계들을 길에서 쉽게 마주친다. 섬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정미소가 이곳의 쌀농사 규모를 짐작케 한다. 교동도의 쌀은 맛이 좋기로 소문나 섬 주민의 넉넉한 생활을 보장해주는 수단이 되어왔다.
섬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교동 평야를 가로지르는 도로는 곧고 길게 쭉 뻗어 있어 한국전쟁 때 활주로로 사용되었을 정도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넓게 펼쳐진 논이 바다처럼 보이고, 가운데 작은 동산이 황금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처럼 느껴진다.
교동도가 산으로 둘러싸인 평야, 즉 분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이유는 인공적으로 조성된 땅이기 때문이다. 3개 섬 사이의 바다였던 이곳은 고려시대 때 대대적인 간척이 이뤄져 평야가 됐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최영 장군이 간척을 주도했던 인물로 전해진다.
섬 초입에 자리 잡고 있는 고구저수지와 난정저수지도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고구저수지는 가물치와 베스가 잘 잡히는 낚시 명소로 낚시꾼들이 사랑하는 곳이다. 난정저수지는 농업용 저수지로 지정돼 낚시는 불가능하지만 아름다운 풍광으로 영화,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종종 이용되고 있다.
교동도에서 손꼽히는 관광지로 교동향교와 연산군 유배지가 있다. 교동향교는 고려시대인 1127년에 창건돼 국내에 남아 있는 향교 중 가장 오래된 곳이다. 초입을 따라 펼쳐진 코스모스와 해바라기 군락이 빚어내는 풍광은 이곳이 지역 주민과 관광객들에게 사랑받는 또 하나의 이유다.
교동도를 느긋하게 걸어보고 싶다면 강화군에서 만든 강화나들길 중 두 개의 교동도 코스를 추천한다. 바로 ‘교동도 다을새길’과 ‘교동도 메르메 가는 길’이다. 한 코스당 소요시간은 6시간. 만만치 않은 거리이지만 그래야 교동도의 멋진 풍광을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다.
은 ‘레 미제라블’, 캣츠‘, ’오페라의 유령‘과 함께 세계 4대 뮤지컬로 꼽히는 작품이다. 이것을 1989년 초연에서부터 25년간 전 세계 28개국 300여 개 도시 15개 언어로 공연되다가 25주년에 맞춰 영화로 찍었다. 죽기 전에 꼭 봐야할 작품 중의 하나로 추천할 만 하다.
상영 시간이 무려 175분이다. 거의 3시간에 가까운 상영 시간 동안 잠시도 눈을 못 떼게 하는 대작이다. ‘레 미제라블’, 캣츠‘, ’오페라의 유령‘을 제작한 카메론 매킨토시 작품이다. 출연진은 크리스 역에 앨리스테어 브라머, 킴 역에 에바 노블자다, 킴의 약혼자 투이 역에 홍광호, 엔지니어 역에 존 존 브라이언스가 나온다. 투이 역의 홍광호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배경이 동양이다 보니 한국인이 베트남 남자 역할을 맡은 것이다.
1975년 베트남 전쟁 말기, 그 당시 미군으로 참전한 크리스는 사이공의 클럽 드림랜드에서 킴을 만난다. 비록 성매매로 이루어진 값싼 사랑이었지만, 크리스는 킴과 사랑에 빠지고 베트남 식으로 결혼식까지 올린다. 그러나 전쟁 막바지의 소용돌이 속에 크리스는 킴을 놔둔 채 미국으로 귀국한다. 13살 때 약혼한 투이가 새 정부의 실력자가 되어 킴에게 다시 합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킴은 크리스의 아들 탬 때문에 일편단심이다. 투이가 탬을 죽이려하자 킴은 투이를 총으로 쏴 죽인다. 1978년 킴은 엔지니어와 함께 보트 피플이 되어 태국에 정착한다. 여전히 밤무대에서 생업을 이어가다가 미국에 수소문한 결과 미국여자와 결혼한 크리스와 연결된다. 크리스가 태국에 오고 킴이 크리스의 아들을 낳아 기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킴은 아들 탬을 미국에 데려가 거리의 여인 아들이라는 오명 대신 미국인으로 잘 키워주기를 바라고 자살한다.
이 작품을 대하는 우리도 편하지 않다. 하필 ‘킴’이 우리나라 성씨 김 씨를 생각나게 한다. 전쟁 말기 미군에게 제발 미국에 데려가 달라고 매달리는 베트남 사람들을 보며 우리도 비슷한 전쟁을 겪은 나라이기 때문에 찡하다. 더구나 우리도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그리고 베트남 여인들과의 사이에서 낳은 수많은 혼혈아들을 놔둔 채 귀국했다. ‘미스 사이공’은 세계적인 뮤지컬 작품이 되었지만, 베트남 사람들이 이 공연을 보면 가슴이 무너질 것 같다. 다른 뮤지컬처럼 단순한 사랑, 이별 얘기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에게는 두 명의 여자가 눈앞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킴이 낳은 자신의 아들이 있다. 두 여자 모두 사랑의 대상이다. 두 여자도 크리스를 사랑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난감하다. 일부일처제의 비극을 보는 것 같다. 모두 같이 살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작품에서는 아들은 미국에 데려가 입양하고 킴에게는 생활비를 보내는 것으로 결론 낸다.
그러나 킴의 입장에서 보면 크리스는 현재 법적인 미국인 처가 있다. 킴의 오빠를 사칭하며 기회의 땅 미국에 가겠다고 매달리는 엔지니어라는 남자가 있다. 킴은 약혼자 투이를 죽인 죄책감도 있다. 그래서 자살을 택했을 것이다. 그 비극적인 마지막 장면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exhibition
덕수궁 야외프로젝트: 빛·소리·풍경
일정 11월 26일까지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올해로 120주년이 되는 대한제국 선포(1897년)를 기념하며 대한제국 시기를 모티브로 덕수궁이라는 역사적 공간에 조형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강애란, 권민호, 김진희, 양방언, 오재우, 이진준, 임수식, 장민승, 정연두 등 한국 작가 9명의 작품 9점이 덕수궁 내에 전시된다.
덕수궁 대한문부터 그동안 일반인에게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함녕전 앞 행각까지 전시는 관람객들의 입장 동선에 따라 이어진다. 특히 함녕전 앞 행각에서는 오재우의 VR 작품 을 행각 내부에서 누워 체험할 수 있다. 9월부터 11월 사이에는 참여작가를 초청해 일대일 토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뿐만 아니라 전시와 연계해 특별강연과 영상 상영, 공연 등이 개최된다.
영국 국립미술관 테이트 명작전:NUDE
일정 12월 25일까지 장소 소마미술관
영국 국립미술관 테이트는 테이트 모던, 테이트 브리튼, 테이트 리버풀,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 등 4개의 미술관을 운영하며 영국 미술을 포함한 세계 최고 수준의 근현대 미술 컬렉션으로 유명하다. 소마미술관은 ‘누드’를 주제로 테이트의 작품을 엄선해 18세기 후반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약 200년 동안의 누드 변천사를 살핀다. 윌리엄 터너, 헨리 무어 등 영국을 대표하는 30여 명의 작가를 포함해 세계적 거장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오귀스트 로댕, 루이즈 부르주아 등 총 66명의 작품 122점을 선보인다. 전시는 ‘역사적 누드’, ‘개인 누드’,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 누드’, ‘에로틱 누드’ 등 누드를 시대별·경향별로 구분한 총 8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book
유토피아(미나토 가나에 저·영상출판미디어(주))
같은 마을에 살면서 소속된 커뮤니티도, 가치관도 다른 여성들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가는 모습을 그려냈다. 등장인물은 표면적으로는 선의를 가지고 행동한다. 하지만 그 선의는 선의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어긋난 배려, 쌓이기만 하는 분노, 반전하는 선의 등 인간의 어두운 심리를 묘사했다.
감정이라는 무기(수전 데이비드 저·북하우스)
감정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수전 데이비드가 보다 단순한 삶에 대해 말한다. 아울러 감정 활용법을 제시하며 우리 사회가 감정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를 요구한다. 감정의 핵심 가치를 약화시키는 부정적 요소를 잠재우면서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법을 사례와 이론을 근거로 다양하게 서술하고 있다.
◇movie
남한산성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등 연기라면 이미 증명된 영화계의 흥행 보증 수표들이 대거 출연한다. 이들은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속 조선의 운명이 걸린 가장 치열했던 47일간의 이야기를 다룬다.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은 신념이 달랐던 두 신하를 중심으로 팽팽한 구도 속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다. 같은 충심을 지녔음에도 다른 신념으로 팽팽히 맞서는 이조판서 최명길(이명길)과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의 팽팽한 대립이 긴장감을 선사한다. 5개월의 혹한을 견디며 1636년 병자호란을 재현한 은 생생한 볼거리를 선보인다.
개봉 10월 3일 장르 드라마 감독 황동혁 출연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고수 등
어메이징 메리
수학 천재인 7세 ‘메리’를 두고 행복한 삶을 위해 수학자의 길을 반대하는 삼촌 ‘프랭크’와 세상을 바꿀 수학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메리의 할머니 ‘에블린’ 사이의 갈등을 그렸다. 에서 세심한 연출력을 인정받은 마크 웹이 메가폰을 잡으며 다시 한 번 영화를 통해 감동을 선사한다. 한국에서는 의 슈퍼히어로 ‘캡틴 아메리카’로 잘 알려진 크리스 에반스가 조카 바보 삼촌으로 변신해 ‘프랭크’ 역을 맡은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실제 천재 수학자들의 인터뷰와 자문을 통해 영화에 사실감을 더했다. 수학적 능력을 지닌 영재들을 스크린 밖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흥미롭다.
개봉 10월 4일 장르 드라마 감독 마크 웹 출연 크리스 에반스, 맥케나 그레이스, 린제이 던칸 등
◇stage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뜨겁게 사랑했던 시인 ‘백석’을 잊지 못해 평생 헤어지던 순간을 기억하며 사는 기생 ‘자야’의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백석의 시와 사랑 이야기로 만들어진 창작 뮤지컬로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한 여운을 선사한다.
장소 대학로 유니플레스 일정 10월 19일~2018년 1월 28일 연출 오세혁 출연 강필석, 정인지등
엘리펀트 송
정신과 의사 로렌스 박사의 실종 사건을 둘러싸고 병원장 그린버그와 마지막 목격자인 환자 마이클, 그리고 그의 담당 수간호사 피터슨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강렬한 스토리, 팽팽한 긴장감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장소 수현재씨어터 일정 9월 6일~11월 26일 연출 김지호 출연 이석준, 고영빈, 고수희 등
M. Butterfly
국가 기밀 유출 혐의로 법정에 선 전(前) 프랑스 영사 버나드 브루시코의 실화를 모티브로 푸치니 오페라의 을 차용해 무대화한 작품이다. 남성과 여성, 서양과 동양 등의 주제를 기반으로 인간의 본질적인 심리와 욕망에 대해 그렸다.
장소 아트원씨어터 1관 일정 9월 9일~12월 3일 연출 김동연 출연 김주헌, 김도빈, 장율 등
사랑해요 당신
연기 배테랑 이순재, 장용, 정영숙, 오미연 배우의 리얼한 부부 연기를 무대 위에서 만난다. 아내와 자식에게 큰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마음과 다르게 항상 퉁명스러운 남편이 아내가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변화하는 과정을 그린다.
장소 대학로 예그린씨어터 일정 9월 29일~10월 29일 연출 이재성 출연 이순재, 장용, 정영숙, 오미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