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호에서 손주의 잉태 소식을 ‘생명은 기계가 아닙니다’라는 제목으로 전해드렸습니다. 이제 그 아기를 만나보고 몽골로 돌아왔습니다. 드디어 세상에 태어난 아기를 만나러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따로 따로 버스를 타고 비행기를 갈아타며 다시 빨리 달린다는 열차와 자동차로 이름도 생소한 독일 에어랑엔(Erlangen)의 헤르초게나우라흐(Herzogenaurach)에 밤늦게 도착했습니다.
제 아내, 즉 아기의 할머니는 나보다 먼저 출발했고 할아버지인 나는 한 달 후에 닿은 것입니다. 세 살과 네 살인 아기 오빠는 아직 동생이 생소합니다. 언제라도 뛰어가 안길 수 있었던 엄마의 품안엔 아직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아기가 있습니다. 자기들과 항상 놀아주던 엄마와 아빠가 새 아기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생소하면서도 한편으론 이해가 될 듯도 합니다. 자기들과 비교할 수도 없는 너무나 어리고 여린 생명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예 경쟁을 포기하고 자기들끼리 눈치껏 알아서 노는 데 익숙해지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도 어른들이 보기에 착하게만 굴 수 없는 나이라서 어른들이 챙겨줘야 할 일들은 끊이지 않고 터집니다. 두 녀석의 활기찬 에너지는 언제나 생기가 넘쳐 어른 한두 명이 감당하기가 벅차다는 것은 현장에 도착하기 전 이미 아내의 카톡을 통해 내 머리에 입력되었습니다.
밤늦게 도착해 자고 나서 현장에 투입되니, 역시 내 주된 일이 그 두 녀석과 노는 것입니다. 내가 도착하기 전 아내는 어떻게 혼자서 이 일들을 감당하고 있었는지 존경스럽습니다. 나 혼자서도 만만치 않은 개구쟁이 두 녀석을 돌보는 일을 아내는 짬짬이 하는 곁다리 일로 담당했다니!
몸을 추스르고 있는 며느리가 행여 나중에라도 뒤탈이 있을까봐 아내는 모든 빨래와 집안 정리와 청소, 거기에 세끼의 식사를 정성을 다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단독주택이라 지하층부터 3층 다락방까지 오르내리기를 쉬지 않습니다. 두 녀석 유치원엘 자동차로 데려다주고 데려옵니다. 장을 봅니다. 그 와중에 아이들과 친분이 있는 가족들을 초대해 칭찬받을 대접도 하였습니다. 한국 아줌마의 놀라운 힘을 곁에서 직접 보니 정말 여러 번 혀를 내둘러야 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다 드디어 늦게 일어나도 되는 토요일 새벽입니다. 다 쉬고 있는 새벽입니다. 깊이 자고 있는 저를 깨워 보여줄 게 있다며 아내가 조용히 문을 열고 골목골목을 돌아 데려간 곳은 새벽안개가 피어나고 있는 벌판이었습니다. 삶의 현장을 떠나 갑자기 다른 세상에 온 것입니다. 공간적으로의 이동뿐 아니라 시간의 공백도 느껴졌습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읽은 헤르만 헤세의 시가 정확히 떠올랐습니다. ‘Im Nebel(안개 속에서)’였습니다. 전혀 내 머릿속에는 이미 없을 거라고 당연히 치부하고 있었던 독일어 수업시간이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되었습니다. 정말 기적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며 꿈에도 생각 못했던 독일의 안개 속에 오십 년의 시간적 공백을 느끼며 바라보았습니다.
Im Nebel
Seltsam, im Nebel zu wandern!
Einsam ist jeder Busch und Stein,
Kein Baum sieht den andern,
Jeder ist allein.
Voll von Freunden war mir die Welt,
Als noch mein Leben licht war;
Nun, da der Nebel fallt,
Ist keiner mehr sichtbar.
Wahrlich, keiner ist weise,
Der nicht das Dunkel kennt,
Das unentrinnbar und leise
Von allem ihn trennt.
Seltsam, im Nebel zu wandern!
Leben ist Einsamsein.
Kein Mensch kennt den andern,
Jeder ist allein.
안개 속을 헤매면 이상하여라!
숲과 돌은 저마다 외로움에 잠기고
나무도 서로 보지 못한다.
모두가 다 혼자다.
내 삶이 아직 밝던 시절엔
세상은 친구들로 가득했건만
이제 안개 내려
아무도 보이지 않는구나.
어쩔 수 없이 조용히 모든 것에서
사람을 떼어놓는 그 어둠을
조금도 모르고 사는 사람은
참으로 현명하다 할 수 없다.
안개 속을 헤매면 이상하여라.
인생이란 고독한 것.
사람들은 서로 모르고 산다.
모두가 다 혼자다.
그렇게 그 시를 조금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우리의 나이를 헤아려보며 아내의 손을 조금 더 느껴보았습니다. 조금 더 넓게 보기 위해 구릉에도 올라가 보았습니다. 풀에 맺힌 안개 이슬로 신발과 바지 섶이 젖었습니다. 마을로 되돌아와 아들 집에 이를 때 안개 속에 뿌옇게 떠오르는 해를 보며 조금 더 굽어진 나의 등을 실감하였습니다. 아직 오십 년의 시간을 되돌리고 있는 중이었나봅니다. 아내의 한마디에 정신이 확 깨었습니다.
뭐해? 셀라 트림시키지 않고.
셀라: 지금 독일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둘째 아들의 셋째 아이 이름입니다. 성경 시편에 나오는 ‘멈춰서 들으라, 내용을 묵상하라’는 뜻의 후렴구, 추임새. 셀라! 제 입에 넣고 굴릴수록 너무나 마음에 드는 이름입니다. 셀라.
개인적인 생각을 안개로 전하면서, 우리 대한민국이 자꾸 보고 싶어집니다. 이럴 때 이런 기회에 사랑하는 나의 대한민국에 전하고 싶은 믿음이 제게 하나 자라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겪을 수 있었던 우리의 놀라운 힘입니다.
전 한국전쟁의 비참한 문제들 가운데 자랐습니다. 철이 들면서 4·19를 보았고, 돈벌이를 위해 중동과 해외를 다녀야 했습니다. 6·29선언을 거쳐 IMF를 맞을 때, 세계는 우리 대한민국을 비웃으며 놀렸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놀림이 놀람으로 바뀌는 사건을 현장에서 겪었습니다. 이번에 당면한 놀림거리로도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을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여기 몽골에서는 고려가 몽골의 속국이었다는 징기스칸제국의 지도를 자주 만나는 곳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큰 사랑과 진정으로 몽골이 잘되도록 도와주고 있음을 서로 간에 알고 있습니다.
역사를 배우며 우리는 세상의 비웃음에 처했을 때마다 언제나 그들의 놀림을 딛고 일어나 그들을 놀라게 해왔던 자랑스러운 민족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국가적 부끄러움을 만났지만 이 안개가 걷히면 우리 대한민국의 저력으로 오히려 세계가 놀라게 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소용돌이치는 우리의 힘이 드디어 응집되고 있습니다. 고요히 흐르던 물이 지금 바로 깊고 좁은 계곡을 만났습니다. 급변할수록 우린 서로 끌어안는 힘! 대동단결, 두레의 에너지가 분출되는 한민족이기 때문입니다.
>> 함철훈(咸喆勳) 사진가·몽골국제대학교 교수
1995년 민사협 초청 ‘손1’ 전시를 시작으로,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 2012년 이탈리아 밀란시와 총영사관 주최로 전을 FORMA에서 개최. 2006년 인터액션대회(NGO의 유엔총회)서 사진으로 대상 수상. 저서로 , 등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유혹과 충동 속에서 세상을 살아갑니다. 본능과 욕구를 자극하고 부추기는 것들을 어떻게 슬기롭게 제어하고 다스리면서 남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느냐가 인생의 가장 큰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혹 곤혹 매혹 미혹 유혹, 이런 말에 들어 있는 惑(혹)은 정신이 헷갈리는 상태를 말합니다. 의미상 헤맨다는 뜻인 迷(미)와 같습니다. 인간은 정신이 헷갈리는 상태인 채 아득한 미망(迷妄)의 바다에서 발전과 구원을 지향하며 노력하는 존재입니다. 괴테의 는 바로 지식과 학문에 절망한 노학자 파우스트의 미망과 구원의 노정을 그린 작품이 아닙니까.
에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Es irrt der Mensch, solange er strebt)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니 유혹에 흔들리고, 곤혹을 겪고, 미혹을 이기지 못하는 것은 선한 인간이 더 나아지기 위해 모색하는 온갖 행동이거나 징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공자는 나이 마흔을 일컬어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된다’는 뜻의 불혹(不惑)이라고 했습니다. 나이 열다섯 살에 학문에 대한 뜻을 세우고[志于學], 삼십에 일어서고[而立], 그리고 마흔이 되면 불혹이 된다는 거지요.
그런데, 불혹이란 공자님 말씀처럼 그렇게 학문에 뜻을 세운 뒤 문자와 글에 대해 품었던 여러 가지 의문이나 의심을 치열한 궁구(窮究)를 통해 풀어 나가는 과정에 불과한 것일까? 글이나 책 속에 온갖 유혹이 있고, 그 온갖 유혹을 공부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과연 불혹의 경지인 것일까? 불혹을 지나면 지천명(知天命), 즉 자신의 천명을 아는 쉰 살이 되고, 또 더 지나면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거슬리지 않는 이순(耳順)의 예순 살이 되고, 좀 더 지나면 자기 마음대로 해도 걸릴 것 없고 거리낄 게 없는 불유구(不踰矩)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것일까?
이런 ‘고전의 상식’에 동의하기 어렵고, 오래된 가르침을 배반하고 싶은 것이 오늘날 시니어들의 새로운 유혹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헤르만 헤세는 한 편지에 “모든 유혹 중에서 가장 강한 유혹은 본래의 자기와는 아주 딴판인 것이 되고 싶다고 바라고, 자기의 도달할 수 없는, 또 도달해서는 안 되는 모범이나 이상을 좇는 것”이라고 썼습니다.
알베르 카뮈의 유고에도 “가장 위험한 유혹, 그것은 무엇과 닮지 않겠다는 유혹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말의 색깔이 약간 다르지만 헤세나 카뮈의 말은 자아 정체성의 확립, 독자적 자율성, 단독자로서의 삶, 이런 것에 관한 언급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이나 스승, 역사적 인물들과 다르게 자신만의 얼굴과 특성을 만들어가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현재의 자기와 다른 모습을 추구합니다. 남들이 알고 있는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 욕구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킬 박사의 다른 얼굴이 하이드입니다. ‘동방의 주자(朱子)’ 또는 해동공자(海東孔子)라는 말을 들었던 퇴계 이황 선생은 남들에게 알려진 모습과 전혀 다른 면이 있어 ‘낮 퇴계, 밤 퇴계’라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로마의 신 중에서 야누스의 얼굴은 전쟁과 평화를 다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신의 얼굴을 보는 사람들이 어느 한쪽만 이야기할 뿐입니다.
2천년 교회 역사를 통틀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위대한 스승이라는 고대 서양철학자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성인으로 존경받는 사람이지만 젊어서는 정욕의 노예였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채 15년이나 동거하던 여자에게 아들을 낳게 하고 도둑질도 했던 그는 “눈을 뜨고 있을 때에는 이성에 의하여, 눈앞에 주어지는 정욕의 유혹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지만 잠잘 때에는 거짓된 환상이 나를 유혹한다”고 썼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간과 죄에 관한 질문을 통해 자신을 개조하고, 질문 속에서 새로운 삶을 완성해갔습니다. 그는 질문으로 가득 찬 에서 이렇게 묻습니다. “하느님, 태어나기 전에 나는 어디에 있었으며 무엇이었습니까?” “하느님은 선이신데 왜 악이 존재하며 그 악은 어떻게 생겨났습니까?” 그는 일생동안 ‘죄는 어디에서 오는가?’ 하는 실존적 문제의식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유혹은 어떤 내용의 것이든 거역하기 어려울 만큼 강력하고 치명적입니다. 유방의 군사(軍師) 장량이 받았다는 에는 ‘고막고어다원 비막비어정산(苦莫苦於多願 悲莫悲於精散)’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원하는 게 많은 것보다 더 괴로운 게 없고 늙는 것보다 더 슬픈 게 없다는 뜻입니다. 다원(多願)을 다욕(多慾)이라고 쓴 자료도 있습니다. 구약성서의 잠언에도 “훔친 물이 더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더 맛이 있다 하는도다”(9:17)고 하지 않았습니까?
프란시스 베이컨(1561~1626)은 인간에게는 세 가지 유혹이 있다고 했습니다. 거친 육체의 욕망, 제 잘났다고 거들먹거리는 교만, 졸렬하고 불손한 이기심입니다. 베이컨에 의하면 이 무서운 병에 대해 취해야 할 수단이란 제각기 자기 자신에게 가해야 하는 수양 이외에는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이란 때로는 가장 완성된 상태에 있으며, 또 때로는 가장 부패한 상태에 있으니 좋은 상태에 있을 때 조심하고 그 상태를 지탱해 악한 것을 몰아내라는 게 그의 충고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대체 얼마나 되겠습니까? 파우스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가슴 속엔 아아! 두 개의 영혼이 깃들어서/하나가 다른 하나와 떨어지려고 하네./하나는 음탕한 애욕에 빠져/현세에 매달려 관능적 쾌락을 추구하고,/다른 하나는 과감히 세속의 티끌을 떠나/숭고한 선인들의 영역에 오르려고 하네.”
그러니 아무런 잘못이나 죄도 저지르지 않고,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으면서 남의 모범이 되는 삶을 영위한 사람보다는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온갖 유혹과 정신적 방황을 겪고 인격을 완성해 나간 사람이 더 훌륭하지 않겠습니까?
에서 메피스토펠레스라는 악마는 자신이 “항상 악을 원하면서도 항상 선을 창조해 내는 힘의 일부분”이라고 말합니다. 악마에 대한 내면의 저항은 선을 지키려는 의지를 강화시켜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메피스토펠레스가 하느님에게 파우스트를 타락의 길로 이끌 수 있다고 자신하며 내기를 제의하자 하느님은 “착한 인간은 잠시 유혹에 빠질 수 있지만, 비록 어두운 충동 속에서도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잘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글쓰기이든 운동이든 여행이든 인간의 삶 도처에 유혹이 있고, 가지 않은 길일수록, 해보지 않은 일일수록 손짓해 부르는 게 많습니다. 유혹이나 욕망이란 인간을 발전시키고 인격이 완성되도록 돕고 자극하는 삶의 에너지이며 촉매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을 토대로 지금 자신이 처한 유혹에 정면으로 맞서 잘 이겨나가도록 하십시오.
아직 찬 기운이 남아 있는 학교 뒷산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진달래와 산수유가 몽우리를 터트렸습니다. 주위 동산뿐 아니라 무겁고 건조한 시멘트 건물마저도 환하게 밝혀줍니다. 무게 없는 분홍색이 땅 위를 떠다니며 곳곳에 봄의 생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물론 자세히 보면 뿌리에 연이은 가지가 있고 다시 더 가는 가지에 꽃이 피어 있다는 것을 알지만 멀리 떨어져 보면 색만 보입니다. 이것을 사진에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사진은 다른 시각예술처럼 사람의 손으로 이미지를 일일이 그려나가지 않고, 카메라라는 어둠상자에 빛으로 상을 맺히게 하고 그것을 화학적이나 전자적 방법으로 정착시켜 서로 나누는 예술입니다. 그 빛을 인정하고 나눌 준비만 되어 있다면 사진의 좋은 점을 많이 알게 됩니다. 우리 맨눈에 잘 보이지도, 드러나지도 않는 것을 사진기에 담을 수도 있습니다.
또 그 과정을 통해 미묘하게 숨어 있는 빛과 다양한 색의 변화를 나름 이해하게 됩니다. 빛의 반응에 따라 사진 속 이야기와 색의 변화는 얼마든지 바뀌며 섬세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나눌 수 있게 됩니다. 이번에는 그중 조리개 값의 변형으로 색의 공중부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진은 만물의 겉모양만 보게 됩니다. 물론 사물을 뚫고 적절한 두께를 선택해 볼 수 있는 엑스레이(x-ray) 같은 사진기구도 있지만, 일반적인 경우에는 색이기도 하고 질감인 그 겉모양만으로 사물의 진위와 그 속을 유추해 냅니다. 질감과 색은 엄밀히 구분하면 일종의 포장입니다. 아주 섬세하고 얇은 겉껍질입니다. 글을 쓰면서도 수채화를 많이 그린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색은 사물에 입혀진 얇고 아름다운 포장이다, 그것은 가장 감각적인 피부이다. 그것은 섬세하고 완벽하기까지 하다. 사물들은 색채 가운데서 가장 찬란하게 빛난다.”
그림만 그린 폴 세잔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색은 인간의 두뇌와 우주가 만나는 구체적인 공간이다.”
그런데 빛은 모든 색을 만나고 전달해 줄 수 있는 대단한 그 무엇임이 20세기 21세기를 거치며 드러났습니다. 우리의 과학이 이젠 빛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빛을 연구하는 많은 과학자들이 빛을 응용하는 많은 첨단 결과물들을 하루가 다르게 세상에 내놓고 있지만, 정작 빛의 본질로는 접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색도 그렇습니다. 우선 빛이 물질인지 아닌지 그 경계를 정하기가 쉽지 않은가 봅니다.
내가 만난 많은 빛은 그 색을 숨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향해 자신이 보고자 하는 빛이 무슨 색인지 그려보면 알게 됩니다. 빛은 자신의 색을 보여 달라는 세상에게 조건을 붙입니다. 너그러운 사랑의 시선으로 찾으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늘에도 색은 존재합니다. 보지 못할 뿐입니다. 이런 빛을 경험한 사람은 그늘 어느 곳에서든 색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사진을 하며, 수많은 곳에서 그늘을 보았고, 담았지만, 나의 사진 어디에도 늘 빛이 그늘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그 빛의 색은 작은 불꽃이 되어 이곳저곳에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긴 겨울을 지나며 피어나는 봄꽃들이 그렇습니다.
빛은 에너지 레벨에 따라 다른 색으로 바뀌는 감정이 없는 물리현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사진 작업에서의 빛에 따른 색의 변화는 문법이 있는 감정의 교감에 논리가 함께한다는 것을 감지하기도 합니다.
봄의 들판과 겨우내 빛은 얼마나 오랜 시간 색들을 기다렸을까요?
많은 기다림으로 만들어낸 세상입니다.
진달래의 원형을 보기 위해 나뭇가지도, 꽃잎의 디테일도 조리개를 열어 지웠습니다. 더구나 초점을 의도적으로 뒤에 있는 흰 꽃에 맞췄습니다. 드디어 무게도 부피도 없는 핑크빛이 디테일 없이 하늘에 떴습니다.
색도 언어입니다.
그것이 어디서 온 것이냐 하는 따짐보다 제가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은 연한 분홍색이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축복된 봄입니다.
22년간 MBC라디오 프로그램 를 이끌어온 방송 작가 박금선의 첫 번째 에세이다. 200만 통에 이르는 청취자의 사연 가운데 일, 사랑, 결혼, 육아 문제로 방황하는 이들을 위한 인생의 교훈 50가지를 추려냈다. 그녀 역시 30년간 엄마로, 아내로, 직장인으로 살며 깨달은 점들을 딸에게 들려주듯 진솔하고 구체적으로 담았다.
◇ Interview:: 의 박금선 작가
책을 펴낸 계기
출판사의 제안을 받고 쓰게 되었는데, 제안을 받고 후배들이 어쩌다 물어오는 몇 가지 질문들을 글로 담아 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일터에서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도 싶었고요.
‘다시 서른 살로 돌아간다면 바로잡고 싶은 것이 많다’고 했는데, 가장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타임머신을 탄다면, 기왕이면 고등학생이 되면 좋겠습니다. 시키는 대로 틀에 맞춰만 살았는데, 좀 더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갖고 싶으니까요. 서른 살로 돌아간다면, ‘조바심’과 ‘후회’, ‘실망’을 조금만 하고 싶습니다. 좋은 엄마일 수 있을까, 좋은 아내일 수 있을까, 이대로 밥벌이는 계속할 수 있을까, 다른 일을 할 수는 없을까, 나는 왜 이리 못났을까, 나는 왜 능력을 키워놓지 않았을까, 그런 조바심과 후회, 실망을 내려놓고, 좀 더 즐겁게 살아볼 것을 말이죠. 후회하고 실망하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쓴 것 같아요.
중년 이후 여자로서 ‘나’를 느끼게 하는 것은?
세대를 막론하고, 모두 자신을 찾아 헤매며 평생을 산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찾기 위해 우리는 일도 하고, 여행도 하고, 책도 읽고, 문화센터에 가서 노래도 하고 그림도 그리는 것 아닐까요? 저 역시도 저를 찾고 있습니다. 오늘도 자아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당신과 제가 우연히 만나거든, 자아를 찾는 동지끼리 하이파이브나 한번 할까요? 내 안에는 내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내가 있음을 믿기에, 일터와 가정에서, 거리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은 계속 될 것이며,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딸과 또래의 독자들에게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 한 가지를 각각 꼽는다면?
제 딸에게는 ‘마음 튼튼’을 강조하는 편입니다. 또래의 독자들에게는 부탁할 게 없어요.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고수는 재야에 있다”는 것을 를 통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철학자, 진정한 작가, 진정한 봉사자 등등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갖춘 분은, 분명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 중에 계실 테니까요.
는 어떤 존재인지
‘커다란 학교’같은 존재이자 ‘세상을 향한 창’입니다. 배우고 익히고 생각하게 하고 뛰어놀게 하지요. 또 그 어느 뉴스 프로그램보다 더 생생하게 현실을 알 수 있는 시간이라 세상을 알게 하는 창이지요. 또한 다른 직장인들처럼 ‘밥벌이의 고단함을 실감하는 일터’이기도 합니다.
20여 년간 받은 편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연
기억에 남는 사연은 많지만, 몇 가지를 들기가 어렵네요. 경중을 따지기가 어렵고, 매일 비워내는 것도 저희의 일이라서요. 최근에는 취업준비생인 20대의 젊은 친구들이 부모님께 죄송해하고 좌절하는 편지가 많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또 자영업 하는 분들이 힘들어하는 사연도 요 몇 년 사이 많이 오는 사연이라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청취자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이 있다면?
아마 독자들도 경험하셨겠지만, 저 역시 청소년 시절에 읽었던 소위 세계명작들을 나이 들어 다시 읽으면서, ‘세상에! 그게 이런 내용이었어? 이런 의미였어?’ 하고 놀라곤 합니다. 작년에는 헤르만 헤세를 다시 읽었는데, 감사하고 좋았습니다. 그리고 독자와 같이 읽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책으로 딱 한 권을 들라면, 이 어떨까요? 읽을 때마다 새롭고도 경이롭습니다.
◁ 박금선 작가
22년째 MBC라디오 의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MBC 방송연예대상 작가상(1993)과 교양 부문 한국방송작가상(2005) 등을 수상했다.
이순재, 김형자, 송재호, 김학철 씨 등 실버 연령층에 해당하는 유명 탤런트 네 사람이 등장하는 ㅇㅇ 실버보험 광고를 모르는 분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겁니다.
송재호 : 형! 남자가 나이 들면 필요한 세 가지가 뭔지 알아? 마누라, 집사람, 와이프래!
김학철 : 하하하! 선배님! 진짜 있어야 되는 게 뭔지 아세요?
김형자 : 당연히 ㅇㅇ 실버보험이지! 없을 땐 몰랐는데 있으니까 당당해지는 거 있지?
송재호 : 맞어! 나도 나이 때문에 걱정 했는데, ㅇㅇ 실버보험은 다르더라고…
김형자 : 그치?
김학철 : 보험료 오른다고 자식들한테 손 벌릴 수는 없잖아요. 이건 그럴 부담이 적어서 가입했어요. 고맙습니다 선배님!
이순재 : 제가 아니라 ㅇㅇ 실버버험에 고마워해야죠?
비단 이 실버보험 광고 뿐만이 아니라 은퇴한 실버 세대를 위한 각종 금융상품 광고를 보노라면 이런 상품들에 가입하는 것이 행복한 실버 라이프를 보장해주는 필요충분 조건이라는 잘못된 생각에 빠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런 금융상품들은 있으면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그것들이 행복한 노후생활의 본질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실버 세대에 들어선 사람이라면, 아니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노후생활이 행복한 것이기를 염원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특정 금융상품에 가입하는 재테크 정도로 (행복한) 노후가 보장되는 것처럼, 인기 있는 실버 연기자를 등장시키는 광고를 통해 실버 세대들의 쌈짓돈마저 거두어 가려는 건 별로 아름다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행복한 노후생활이란 어떤 것이고, 그런 생활을 즐기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한 것일까요…
여기서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모든 사람이 염원하는 행복한 삶이란 과연 어떤 삶을 말하는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지난해에 OECD가 ‘한국인의 행복의 조건’이 무엇인가를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56퍼센트가 ‘경제적 여유’ 즉 ‘돈’을 얘기했고, 17퍼센트가 ‘건강’을 얘기했으며, 12퍼센트가 ‘가족관계’를 들었습니다.
한편 60대 이상의 한국인이 자살의 충동을 느끼는 동기로 ‘경제적 어려움’이 38퍼센트, ‘건강 및 질병’이 36퍼센트, ‘외로움’이 12퍼센트, 그리고 7퍼센트가 ‘가정불화’로 나타나고 있어, 실버 세대의 행복과 ‘돈’ ‘건강’ ‘가족관계’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행복의 조건 혹은 자살충동의 이유라고 거론하는 돈 문제가 진정한 행복의 조건은 아닌 것 같습니다. 돈 때문에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답변들을 심층 분석해 보면 ‘돈’ 그 자체보다 ‘상대적 박탈감’이 진정한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즉 ‘돈’이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많기 때문에, 혹은 내 욕망에 비해 가진 돈, 혹은 벌어들이는 돈이 훨씬 적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행복이란 ‘자신이 가진 것을 분자로,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분모로 하는 숫자의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스스로 자신의 욕심을 컨트롤하지 않는 한 결코 행복한 삶에 이를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이 문제에 관해 미국의 철학자였던 벤자민 프랭클린(1706~1790)은 “행복에 이르는 길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더 많이 갖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욕망을 줄이는 것이다” 라는 명언을 남긴 바 있습니다.
특정한 질병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건강에 대해서도 비슷한 얘기가 성립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행복한 삶’이란 어떤 구체적 조건이 충족되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상태를 바라보는 자신의 마음의 상태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행복한 삶이란, 행복이란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 얻어지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오늘’ 혹은 ‘나의 현실’ 속에서 불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행복은 ‘내일’ 혹은 ‘다른 어느 곳’에서 찾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서 한때 독일 시인 칼 붓세의 ‘산 너머 저쪽’이라는 시가 50년 대와 60년 대에 걸쳐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산 너머 저쪽 하늘 저 멀리, 행복이 있다고 말들 하기에.
남들 따라 나 또한 찾아갔건만, 눈물을 흘리며 되돌아 왔네.
산 너머 저쪽 하늘 저 멀리 행복이 있다고 말들 하건만…
그러나 산 너머 저쪽 어느 하늘 아래에서 행복을 찾는다면 눈물을 흘리며 되돌아올 수 밖에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벨기에의 동화작가 메테를링크의 ‘파랑새 이야기’에서 ‘미치르와 치르치르가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나서지만 헛고생만 했는데 결국 파랑새는 자기집 처마 밑에 앉아 있었다’ 는 이야기도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생활 주변에 있다는 걸 암시해 줍니다.
“삶의 순간순간이 아름다워야 우리들의 삶이 아름답습니다. 오늘 하루가 행복해야 내일이 행복합니다” 라는 헤르만 헤세(1877~1962)의 말도 행복은 어디서 시작되는가를 알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지금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내일이 온다고 하여 행복해질 수 없으며, 어렸을 때 혹은 젊었을 때 불행하다고 생각해 온 사람이 나이가 든다고 하여 행복해지기는 어럽다는 얘기가 성립하는 것입니다.
즉 노후에 행복한 삶을 누리는 사람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이 들어가면서 ‘내려 놓는 삶’ ‘버리는 삶’의 자세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보편적으로 사람은 나이 들어가면서 이해력이 넓어지고,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경향이 있지만, 정반대의 경우도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버의 행복, 즉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려놓는 삶’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그런 자세로 살아가는 훈련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과거에 오랜 기간 고위직을 누리면서 다른 사람들의 대접을 받거나, 이른바 ‘갑질’을 해온 사람들은 스스로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내가 왕년에…’라는 생각을 털어버리지 못하는 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힘들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 자신이 유별나게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도 아니고, 남들에 비해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마음이 불편하거나 속이 상하는 때가 있어도 늘 ‘내게 예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내게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며, ‘나는 행복하다’고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저와 같이 적당히 나이 먹은 사람들이 자신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낄 수 있기 위해 필요한 환경을 저는 대략 다섯 가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배우자라는 존재입니다. 남자가 나이 들면 필요한 세 가지가 ‘마누라, 집사람, 와이프’ 라는 말이 진리라 할 정도로, 나이 들어 배우자라는 존재는 삶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두 번째는 자식들과 손주들과의 관계입니다. 한국 사람에게 자식과 손주들과의 관계를 빼고 행복한 삶을 논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세 번째는 ‘친구’라는 존재입니다. 노후에 좋은 친구라는 존재는 사막을 걷는 순례자의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이지요.
네 번째는 ‘일’입니다. 약간의 용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 없습니다. 봉사의 성격을 띤 일이라면 더욱 좋습니다.
다섯 번째는 건전한 ‘취미생활’입니다. 운동을 겸할 수 있는 취미생활이면 좋겠고, 배우자와 함께 하는 것이라면 금상첨화이겠지요.
우리가 그러한 환경을 만들고, 그 안에서 살 수 있기 위해 미리부터 어떻게 살고 준비해야 할 것인지에 관해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편 끝)
>> 조용경
경상북도 문경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한국은행을 거쳐 포항제철(현 포스코)에서 故 박태준 회장의 비서부장과 홍보부장과 회장 보좌역으로 일했다. 포스코건설 인천 송도신도시사업본부장과 지난 2009년부터 2012년 3월까지 포스코엔지니어링(전 대우엔지니어링) 대표이사 부회장을 지냈다. 현재 포스코엔지니어링 상임고문, 한국트라이애슬론연맹 부회장, (사)글로벌인재경영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라는 말을 흔히 합니다. 동의보감에서 이른바 두한족열(頭寒足熱), “머리는 차게 발은 뜨겁게 하라”고 한 건강의 원리와 비슷한 말입니다. 아기를 재울 때에도 머리는 서늘하게, 가슴과 배는 따뜻하게 해주는 게 육아의 상식입니다.
그러나 ‘머리와 가슴’은 ‘머리와 발’보다 상징하는 바가 더 많고 큽니다. 머리가 지혜·지식·두뇌·슬기·판단, 이런 말과 관계된다면 가슴은 열정·용기 사랑 ·양육 ·포옹, 이런 말로 연결됩니다.
무엇이든 알기 쉽게 둘로 나누는 사람들의 말투를 빌리면 머리는 파란색, 가슴은 빨간색일 것입니다. 머리는 햄릿형·아침형 인간, 가슴은 돈키호테형·저녁형 인간으로 연결된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지와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의 에도 이성적인 나르치스와 감성적인 골드문트가 대비됩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을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관찰하고 판단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무리이며 그럴 경우 문제점과 부작용이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이 세상에는 완벽하게 선한 사람도, 전적으로 악한 사람도 없습니다. 좌우, 동서, 상하, 고저, 장단, 남북, 남녀, 음양, 전후, 장유(長幼), 고금(古今), 귀천(貴賤)과 같은 말은 분별과 조화를 위해서 있는 것이지 대립과 쟁투를 부추기려고 만든 게 아닙니다.
분별이란 참 좋은 말입니다. 서로 다른 일이나 사물을 구별하여 가르는 게 첫 번째 풀이이지만, 세상일에 대한 바른 판단이나 생각, 어떤 일에 대해 배려하고 마련하는 것이라는 뜻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분별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섣불리 휩쓸리지 않습니다. 논어 위령공(衛靈公) 편에는 “군자는 긍지를 갖되 싸우지 않고, 군중과 함께하되 무리를 짓지 않는다(君子矜而不爭 群而不黨)”는 공자의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을 주희(朱熹)는 “자긍심을 가진 군자는 남에게 굴복하지 않되 싸우려 들지 않고, 군중과 함께 어울리되 편협된 무리를 지어 개인의 영리를 구하지 않는다”고 해석했습니다. 또 논어 위정(爲政) 편에서는 “군자는 두루 친하되 결탁하지 않지만(君子周而不比) 소인은 결탁하되 두루 친하지 못한다(小人比而不周)”고 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말은 자로(子路) 편에 나오는 “군자는 남들과 조화롭게 지내지만 동화되지 않고(君子和而不同) 소인은 동화되지만 조화롭게 지내지 못한다(小人同而不和)”는 말입니다. 군이부당(群而不黨)·주이불비(周而不比)·화이부동(和而不同)이 바로 분별과 조화를 강조한 동양의 성어입니다.
김상협 전 고려대 총장이 1970년에 취임사를 통해 제시한 것은 ‘지성과 아울러 야성, 동양과 아울러 서양, 현대와 아울러 원시, 주체성과 아울러 국제성, 한국과 아울러 세계, 치밀한 계산과 아울러 우직한 의리’ 등이었습니다. 이런 이원공간을 대승적 견지에서 자유자재로 왕복할 수 있는 새로운 슈퍼네이션(Supernation)을 만들어 나가자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말들과 너무도 다르게 여러 가지로 갈라져 있습니다. 남북, 동서, 좌우, 계층, 연령, 성별 등 이런 분별의 요소들이 갈등과 대립의 요소로만 작용하고 있습니다. 통합·소통·화해는 이를 수 없는 이상이며 선거공약집에나 들어 있는 문자로 보일 뿐입니다.
영화 ‘변호인’의 내용을 모두 사실로 믿고 새삼스럽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하고 숭배하는 사람들, 영화 ‘국제시장’이 나오자 이를 소재로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훈계하려 드는 세대 간에는 간극과 균열이 너무도 큽니다. 보수 대 진보의 진영논리와 쟁투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머리만 있고 가슴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니, 머리로만 생각하고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않거나 머리에만 있고 가슴에는 없는 것들을 두 군데에 다 있는 것처럼 과장하고 확대, 재생산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머리에 있는 것들은 가슴에 있는 것으로 조절해야 하며 가슴에 있는 것들은 머리에 있는 것으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젊어서 사회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가슴이 없는 것이고 늙어서도 사회주의자인 사람은 머리가 없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젊음은 혁명과 개조를 꿈꾸고 추진하는 도전과 개척의 시기이지만 늙음은 경험과 경륜의 힘을 통해 생의 완성과 사회의 성숙을 지향하는 시기입니다. 젊은이들이 문제의식이 없고 나이든 노인들이 지혜가 없다면 개인과 사회의 불행일 것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다”고 고백했습니다. 김 추기경의 명언입니다. 김 추기경은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는 말도 했습니다.
이렇게 머리와 가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6월이 특수한 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6월은 남북의 달, 이념의 달,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6월 6일 현충일,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6·15 남북 공동선언, 그리고 벌써 65년을 맞은 비극의 6·25전쟁에다 한국 민주화의 역사에 큰 분수령이 된 6·10민주화항쟁과 6·29선언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6월은 정치와 이념으로 들끓는 시기입니다. 구호와 시위로 거리가 넘칩니다.
그러나 정치나 이념보다 끝내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며 현장입니다. 최근 논쟁 중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생계형 성매매 허용 논란이었는데, 집창촌 해체에 앞장섰던 김강자 전 서울 종암경찰서장이 허용을 주장했습니다. 집창촌 해체 과정에서 성매매 여성들의 적나라한 현장을 알게 돼 생각이 바뀐 것입니다.
나는 대학에 다니는 동안 민족이념연구회라는 서클 회원으로 활동한 바 있습니다. 4학년이 됐을 때 신입생들이 ‘민족이념’이 뭐냐, 뭐가 우리 민족의 이념이냐고 자꾸 물었습니다. 대답이 궁한 나머지 “거꾸로 가자. 먼저 ‘회’가 뭔지, 어떻게 하면 모임이 잘 될는지 생각해 보자. 서로 잘 어울리는 게 중요하다. 그 다음에 연구를 하고 대화와 토론을 하는 방법을 익히자. 그런 다음 민족이념에 대해 본격적으로 검토하자.”
이렇게 ‘거룩하게’ 말했던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비슷한 취지로 의견을 밝혔습니다. 다시 그 상황이라 해도 그렇게 말해줄 것 같습니다. ‘회’라는 현장, ‘연구’라는 현장을 먼저 알려 하는 게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현장이며 그곳에서 머리와 가슴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에 대해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입니다. 이념이나 결론이 어디에서 어떻게 도출됐으며 얼마나 현장과 깊이 연동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인간이 배제된 이념은 다만 재앙일 뿐입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이념’을 강조합니다.
먼저, 한자를 이용한 측자(測字) 파자(破字) 수수께끼부터 풀어봅시다. ‘아라비안 나이트’를 한자로 어떻게 쓸 수 있을까요? 답은 壬子(임자)입니다. 壬을 파자하면 千一이 됩니다. 子는 한밤중[夜]인데 1001일 동안 밤에 이야기하면 곧 千一夜話(천일야화), ‘아라비안 나이트’가 되지요. 톨스토이의 ‘부활’은 復活이 아니라 甦(소)라고 쓰면 더 재미있습니다. 한 글자에 갱생(更生)이 들어 있지 않습니까? 잠이 깨다, 다시 살아나다, 이런 뜻이 있는 글자입니다.
이번엔 거꾸로 물어, 四季如春(사계여춘)이 무슨 말일까요? 1년은 네 계절[四季]로 되어 있고 봄은 새싹이 푸르게[靑] 자라는 계절인데 늘 봄과 같다니 얼마나 좋을까? 사계여춘은 청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말로 늘봄이라고 아호를 지은 분도 있던데, 그만큼 청춘은 소중하고 값진 것입니다.
청춘이라면 생각나는 게 소설가 우보(牛步) 민태원(閔泰瑗·1894~1935)의 ‘청춘예찬’입니다. 이 글은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잃고 절망의 나락에 떨어져 있던 이 땅의 청춘들을 위한 헌사였습니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보라.” 우보는 청춘이 갖춰야 할 것은 끓는 피와도 같은 열정이라고 했습니다. 시인 고은은 이 글을 읽었을 때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듣고, 그 어떤 바윗덩이도 굴리며 앞으로 나아갈 것 같은 힘이 온몸을 휘감는 느낌”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인류의 중요한 문화유산은 청춘의 열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 대부분이며 청춘과 사랑 자체를 주제로 한 것들이 많습니다. 청춘에 대한 생각은 헤르만 헤세의 소설 ‘청춘은 아름다워라’, 이 제목에 다 들어 있습니다. 청춘은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아리고 아쉬운 것입니다. 청춘이라는 말을 들으면 joyful이라는 영어단어가 늘 생각납니다. ‘기뻐하는, 즐거움을 주는’ 이런 뜻인데 젊음의 낭만과 장난, 유희, 용서될 수 있는 실수라는 의미도 함께 갖춘 말처럼 느껴집니다.
구스타프 말러의 ‘대지의 노래’ 중 세 번째 곡은 ‘청춘에 대하여’(Von der Jugend)입니다. 말러가 ‘편안하고 명랑하게’ 부르라고 한 이 곡은 어느 한가로운 날 작은 연못 한가운데 있는 정자에서 잡담하는 젊은이들을 묘사한 시를 가볍고 산뜻한 악상으로 들려줍니다. 늘 뭔가 새로운 일이 생길 것 같고 ‘어느 갠 날 아침 갑자기’ 온몸을 바칠 만한 사랑이 올 것 같은 예감과 충동 속에 약동하는 청춘의 모습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청춘을 잃는다는 것은 삶의 의미를 잃거나 생명을 잃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단가 ‘사철가’를 봅니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더라. 나도 어제 청춘이러니 오늘 백발 한심허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한들 쓸 데 있나.” 이 노래는 “세월아 가지 마라. 가는 세월 어쩔거나. 늙어진 계수나무 그 끄트머리에다 대란 매달아놓고, 무법도식하는 놈과 부모 불효하는 놈과 형제화목 못하는 놈 차례로 잡아다가 저세상으로 먼저 보내버리고 나머지 벗님네들 서로 모여앉아 한잔 더 묵소, 덜 묵게 하면서 거드렁거리고 놀아보세.”라고 끝납니다.
청춘은 다시 오기 어려우니 즐겁게 마시며 놀아야 할 시기입니다.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리는 게 청춘이라니 그대로 있을 수 없지요. 중국에는 무슨 무슨 춘이라는 술이 많습니다. 당나라 시대에 마신 술을 꼽아보면 대춘(大春) 석동춘(石東春) 부영춘(富永春) 약하춘(若下春) 죽엽춘(竹葉春) 이화춘(梨花春) 등 많기도 합니다. 이 술을 마시면 젊어진다, 젊음이 유지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청춘을 버린다는 뜻인 포청춘(?靑春)은 역설적으로 청춘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술의 대명사입니다. 고산 윤선도는 “산골에 갇힌 뒤부터/길고 긴 한낮이 늘 지겹구나/포춘을 무슨 수로 이어갈까/근매의 옛 다짐이 부끄럽네”[自我囚山後 常嫌白日遲 抛春何計繼 勤買愧前期]라는 시를 남겼습니다. 여기 나온 포춘이 곧 포청춘입니다. 勤買는 부지런히 술을 사서 마신다는 뜻으로 당송 팔대가 중 하나인 한유(韓愈)의 시 ‘감춘’(感春)에 나온 말입니다.
그러나 “석양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느냐”는 노래대로 다시 못 올 청춘을 술로 배웅하며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라고 해본들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내 것이었던 것, 그러나 이제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욕심을 내서는 안 됩니다. 젊음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걸 모르지는 않지만 어쨌든 청춘과의 작별은 아쉽고 슬픈 일입니다. 다산 정약용은 ‘귀양살이의 여덟 가지 흥취’[遷居八趣]라는 시에서 “실버들 천 가지 만 가지/가지마다 모두 청춘/그 가지들 봄비에 젖으면/가지가지 사람 괴롭게 하네”[楊柳千萬絲 絲絲得靑春 絲絲霑好雨 絲絲惱殺人]라고 했습니다. 이 대목은 여덟 가지 흥취 중 맨 마지막 ‘버들을 찾는 것’[隨柳]인데, 반복되는 말 絲絲(사사)에 청청한 버드나무와 자신을 비교하는 다산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윤동주의 시 ‘병원’에는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러나 윤동주가 만난 그 의사가 그런지 몰라도 나이든 사람들이 젊은이의 병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 병을 겪었고, 어떤 형태로든 이기고 살아 오늘에 이른 사람들입니다. 젊은이들이야말로 나이든 이들의 병을 모릅니다.
나는 1973년 신문사 입사시험을 칠 때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연년세세화상사 세세연년인부동)을 ‘해마다 피는 꽃은 비슷하건만 사람은 매년 달라져 가는구나’라고 풀었습니다. 해석문제는 풀었지만 그 문제를 낸 사람의 마음은 알지 못했습니다.
청춘은 세대 간 이해와 공감의 바탕이며 원천입니다. 자신의 청춘은 물론 남의 청춘에 대해 생각해야 할 시기입니다. 아울러 지금 청춘들의 처지와 고통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청춘이 힘겹지 않은 적은 어느 시대에도 없었지만 요즘 청춘은 특히 가엾기 그지없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니,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겠습니까?
1910년 5월 29일에 태어나 2007년 5월 25일에 타계한 금아(琴兒) 피천득선생은 ‘5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라고 썼습니다. 왜 하필 스물한 살일까? 사랑의 고통 때문에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가서 모래밭에 몇 자 써놓은 뒤 죽지 않고 돌아온 나이가 스물한 살이었습니다. 금아는 ‘밝고 맑고 순결한 5월은 지금 가고 있다’고 썼지만, 나는 ‘밝고 맑고 순결한 청춘의 달 5월이 왔다’라고 글을 맺겠습니다.
광복 이후 출판시장은 1950년의 6·25, 1960년의 4·19와 1961년의 5·16, 1972년의 10월 유신, 1980년의 광주민주화운동, 1989년의 현실사회주의의 몰락, 1997년의 IMF 외환위기,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말미암아 대체로 10년을 주기로 많이 읽히는 책의 유형이 달라진다. 광복 이전이 암흑기였다면 광복 이후 6·25가 터지지 직전까지는 민족문화 재건기로 볼 수 있다. 이후 1950년대는 전후 허무주의, 1960년대는 이데올로기, 1970년대는 산업화, 1980년대는 역사성, 1990년대는 대중출판, 2000년대는 글로벌 출판, 2010년대는 디지로그 출판 시대로 정리할 수 있다.
글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사진
◇ 광복~1949년 민족문화 재건
“아버지가 들고 온 『조선역사』란 책에 빨려들어 밤새도록 읽고 모자라 수업시간에까지 읽다가 들켰다. 그 바람에 전교생 앞에서 10여분이나 을지문덕이 수나라의 대군을 무찌르는 대목을 소리 높여 읽는 수모를 겪었다. 그 바람에 학생들은 그 책이 동이 나도록 모두 구입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대 사학과 교수였던 김성칠(金聖七, 1913∼1951)이 보고 겪은 6·25에 대한 생생한 기록을 담은 『역사 앞에서』(창비)에 실린 신경림 시인의 추천사에 나오는 글이다. 신 시인은 한 칼럼에서 『조선역사』가 “한글을 깨치고서 처음 읽은 책”이라고 말했는데 이 책이 광복 이후 최초의 베스트셀러다.
해방 공간 시기에는 우리 역사와 글, 문학을 펴내고자 하는 욕구와 읽고자 하는 욕구가 넘쳤다. 이런 욕구 때문에 『우리말 큰사전』(한글학회, 1947), 『조선어표준말모음』(조선어학회, 1946) 등의 사전과 학술교과서가 인기를 끌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로는 『해방 전후』(이태준), 『내가 넘은 삼팔선』(후지와라 데이, 1949), 『나는 자유를 선택하였다』(크리미센코, 1948),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윤동주, 1948), 『목넘이 마을의 개』(황순원), 『렌의 애가』(모윤숙), 『청록집』(조지훈 외) 등이 있다.
◇ 1950년대 전후 허무주의
1950년대를 상징하는 베스트셀러는 정비석의 『자유부인』이다. 한국전쟁으로 한반도의 전체 인구 3000만 명 중 300만 명이 목숨을 잃은 전쟁의 후유증이 적지 않았을 때에 대학교수 부인의 파탄적 행동을 그린 소설이 1년 만에 10만 부가 팔리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자 이 소설이 “문화의 파괴자로 중공군 50만 명에 해당하는 적군”(서울대 법대 황산덕 교수)이라는 공격이 나왔고, 작가는 열띤 논쟁을 벌여야 했다. 『우리말 큰사전』이 여전히 인기를 끄는 가운에 젊은 세대에게 유머감각을 크게 심어준 『얄개전』(조흔파)이 등장했다. 이 시대의 베스트셀러에는 『슬픔은 강물처럼』(최희숙), 『마음의 샘터』(최요안), 『청춘극장』(김래성), 시집 『사랑이 가기 전에』(조병화) 등이 있다.
◇ 1960년대 이데올로기
1960년대를 상징하는 베스트셀러는 최인훈의 『광장』이다. 소설 속 철학도 이명준은 북에 올라가 북한의 정치체제에 가담해보지만 남의 ‘밀실’과 북의 ‘광장’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방황하다 제3국행을 택한 끝에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 이야기는 4·19의 성과를 5·16세력에게 빼앗긴 경험을 지닌 지식인에게 깊은 허무감을 안겼다. 이 시기의 베스트셀러에는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박계형), 『저 하늘에도 슬픔이』(이윤복), 『석녀』(정연희), 『조선총독부』(유주현), 『거대한 뿌리』(김수영), 『금강』(신동엽) , 『빙점』(미우라 아야코) 등이 있다.
◇ 1970년대 산업화
통기타와 청바지, 생맥주로 대표되는 ‘청년문화’가 등장한 1970년대는 『별들의 고향』(최인호), 『영자의 전성시대』(조선작), 『겨울 여자』(조해일) 등의 이른바 ‘호스티스 소설’들이 한 흐름을 이뤘다. 산업사회로 본격적으로 접어드는 시기에 여성의 상품화 현상을 ‘호스티스’라는 사회적 존재에 초점을 맞춰 다루고 있는 이 작품들은 고도성장의 이면에 숨은 우리 사회의 그늘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그늘은 또 있었다. 부랑노동자의 삶을 그린 황석영의 『객지』와 도시빈민의 삶을 그린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다. 이 시대의 주목할 베스트셀러로는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박완서), 『김약국의 딸들』(박경리), 『서울 1964년 겨울』(김승옥), 『데미안』(헤르만 헤세) 등이 있다.
◇ 1980년대 역사성
1980년대는 이념의 시대이자 불의 시대였다. 대학과 신문사에서 쫓겨난 지식인들이 출판계에 유입되어 변혁이론의 창출과 보급에 앞장섰다. 대표적인 성과로 강만길의 『한국근대사』와 『한국현대사』를 비롯한 근현대사 관련 서적을 꼽을 수 있다. 1980년대는 대하소설의 시대이자 시의 시대이기도 했다. 황석영의 『장길산』, 조정래의 『태백산맥』, 홍명희의 『임꺽정』, 박경리의 『토지』 등은 모두 대중에게 정치적 각성을 하게 만든 ‘역사교과서’였다. 1980년대 내내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이나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등의 이념시나 민중시가 거대한 트렌드였지만 정작 불로 뜨거워진 대중의 몸을 식혀준 것은 쉽게 읽히는 서정시였다. 서정윤의 『홀로서기』,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 이해인의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등의 시들은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대중에게 위안을 안겨주었다. 이밖에 이 시기를 상징하는 베스트셀러로는『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마광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바스콘셀로스), 『숲속의 방』(강석경), 『인간시장』(김홍신) 등이 있다.
◇ 1990년대 대중출판
현실사회주의가 붕괴된 직후 시작된 1990년대가 만들어낸 최고의 상품은 ‘개인’이었다. 1990년대 최초의 밀리언셀러인 『세계는 넓고 (내가) 할 일은 많다』(김우중)에서부터 1990년대 말의 서갑숙의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까지 책 제목에 ‘나’는 넘쳤다. 세계화와 정보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컴퓨터 길라잡이』(임채성 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한호림),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스티븐 코비) 등 개인의 성공 욕망을 자극하는 실용서나 자기계발서가 상한가를 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의 출판시장을 휩쓴 『소설 동의보감』(이은성), 『소설 토정비결』(이재운), 『소설 목민심서』(황인경) 등의 역사인물소설 트로이카들도 사실상 자기계발서 역할을 했다.
세계화에 대한 반작용이었던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유홍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김진명), 『일본은 없다』(전여옥),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박영규) 등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책들이 인기를 끌었으며,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박완서), 『물 위를 걷는 여자(신달자)』 ,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천년의 사랑』, 『모순』(양귀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공지영), 『혼자 눈뜨는 아침』(이경자) 등 사랑(결혼)과 일이 충돌하는 모습을 그린 소설들이 인기를 끌었다. 이 시대를 상징하는 베스트셀러로는 『퇴마록』(이우혁), 『드래곤 라자』(이영도), 『여보게 저승갈 때 뭘 가지고 가지』(석용산),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잭 캔필드 외), 『오체불만족』(오토다케 히로타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최영미) 등이 있다.
◇ 2000년대 글로벌 출판의 시대
2000년대는 절대 고독의 개인이 발견되는 여정이었다. 고학력 사회가 되었지만 고학력자일수록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가 양산되는 바람에 성공욕구만 넘쳐났다. 덕분에 베스트셀러의 산실은 자기계발서였다.『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로버트 기요사키 외),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스펜서 존슨),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탄 줘잉),『화』(틱낫한), 『설득의 심리학』(로버트 치알디니), 『아침형 인간』(사이쇼 히로시), 『마시멜로 이야기』(호아킴 데 포사다 외), 『배려』(한상복),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켄 플래차드 외), 『긍정의 힘』(조엘 오스틴), 『시크릿』(론다 번) 『이기는 습관』(전옥표)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에 대중은‘성공’을 버리고 ‘행복’으로 말을 바꿔 탔다. 2000년대의 베스트셀러로는‘해리포터’ 시리즈(조앤 K. 롤링) ,『다빈치 코드』(댄 브라운), 『연금술사』(파울로 코엘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과 같은 블록버스터 소설, MBC 방영도서,‘Why’를 비롯한 스토리만화 등이 있다. 이 밖에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국화꽃 향기』(김하인), 『가시고기』(조창인) 등과 같은 극도로 축소된 인간관계를 다룬 소설들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류시화)도 있다.
◇ 2010년대 디지로그 출판의 시대
1998년의 국지적인 IMF 외환위기와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차원이 달랐다. 전 세계에 불어 닥친 광풍 앞에 개인은 오로지 스스로를 위로하며 대안적인 사람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2010년대 초반에는 ‘셀프힐링’의 책들만이 인기를 끌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혜민) 등 멘토가 던져주는 ‘위로와 공감’의 어록집,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장하준) 등 사회적 어젠다를 담은 책, 대안의 삶, 성찰, 관계나 소통 등을 다룬 책들이 인기를 끌었다. 이밖에 『해를 품은 달』(정은궐), 『미생』(윤태호) 등의 미디어셀러와 『서울 시』(하상욱) 등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다.
이 시대에 인기를 끄는 것은 위로와 공감의 어록, 관계와 소통을 다룬 책들이다. 이제 개인은 오로지 스스로를 위로하며 대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일까.
한기호(韓淇皓)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공주사범대학 국어교육학 학사, 2000년 제41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기획부문 출판상, 학교도서관 저널 대표이사.
구순과 팔순을 맞은 호주 동포 노부부가 동시에책을 각각 펴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호주한국문학협회 노시중(90) 상임고문과 유성자(80) 부회장 부부는 오는 15일(현지시간) 오후 시드니한인회관 대강당에서 ‘부부 저서 출판기념회 및 구순·팔순 잔치’를 연다.
일제 강점기, 광복과 건국, 한국전쟁 등 한국 근현대사의 궤적을 함께해 온 부부는 결혼 54년 만에 노시중 칼럼집 ‘삶의 지혜’와 유성자 시집 ‘나는 마음의 밭을 갈고 있는가’를 나란히 출간했다.
호주 한인사회에서 부부가 동시에 출판기념회를 여는 것은 이들이 처음이다.
호주동아일보를 비롯해 시드니한인회, 시드니한국문화원, 호주한국문학협회, 대한체육회 호주지회, 조국사랑독도사랑호주연합회, 민족문화연구회 등이 이날 행사의후원에 나서 한인사회에서 이들 부부가 차지하는 입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한다.
노 고문은 ‘공산주의와 그 실제’(1950년·일본어), ‘노인 문제와 경로사상’(1980년), ‘오늘과 내일을 위하여’(2008)에 이어 네 번째 저서를 낸 것이다. 유 부회장은 수필과 시로 엮은 ‘아침을 깨우는 새들의 노래’(2011년)를 선보인 바 있다.
경북 문경 출신인 노 고문은 일본 와세다대 정경학부를 졸업하고 귀국해 한성일보사 정치부 기자로 입사했다. 조병옥 박사 기획위원과 윤보선 대통령 비서를 지내는 등 30년간 야당 정치인으로 생활하다가 1980년 호주로 이민했다.
지금도 호주동아일보 칼럼니스트, 호주국민헤럴드 논설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유 부회장은 이화여대 의대에 입학했다가 한국전쟁으로 부산에 피란하면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나중에 숙명여대 상대를 졸업하고 은행에 취직해 일하다 모윤숙 시인의 소개로 노 고문을 만나 결혼했다.
‘통일의 바다’로 계간 ‘시와 늪’의 2011년 봄호 이달의 작가상 수상자로 뽑혔고지난해 ‘문예춘추’ 겨울호에서 헤르만헤세문학상을 받았다.
부부는 매월당 김시습이 남긴 ‘학은 천 년을 살아도 썩은 고기를 먹지 않고, 봉은 만 리를 날아도 오동나무 아니면 앉지 않는다’는 명언을 가훈으로 삼아 자녀 교육을 했다.
영국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유전공학 박사 아들과 심리학 박사 며느리는 미국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출가한 두 딸은 호주에 살고 있다.
노 고문은 “여생은 시드니 전체에 아름다운 향기를 남기고 떠날 것”이라며 “구순의 나이지만 영원한 청춘의 생각을 갖고 후학을 위해 활동적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갈 것”이라고 호주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유 부회장도 “서로 협력하고 사랑하며 모범적인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면서 “문학이 삭막한 이 사회를 아름답게 이끌어가길 바라고, 호주 땅에 귀하고 복된 한국인의 얼이 살아남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이들 부부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한인 차세대들을 지원하기 위해 노 고문의 호를 딴 ‘도암(陶岩)장학회’도 곧 설립할 예정이다. 현재 노 고문은 회고록, 유 부회장은 수필집을 각각 출간하기 위해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