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보는 패션디자이너 히스토리이다. 에르메스, 루이뷔통, 버버리, 구찌, 페라가모, 샤넬, 크리스찬 디오르 등 26명의 명품 역사에 관한 책이다. 2011년 초판을발행하여 2016년에 무려 22쇄를 기록한 책이다. 패션일러스트인 강민지씨가 글과 그림으로 만든 책이며 루비박스에서 출판했다. 책값이 18,900원으로 다소 비싼 편이나 410쪽의 방대한 분량이라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만화가 아니었으면 이 계통의 전문가가 아니면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프랑스처럼 샤넬, 크리스찬 디오르, 루이 뷔통 등 여러 유명 명품을 거느린 나라를 보면 부럽다. 브랜드 매출이 수억 불이다. 브랜드 하나가 어지간한 나라의 섬유 수출 총액을 넘어선다. 그러나 국가적인 자존심도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섬유왕국’이라는 소리를 오래전부터 들었지만 아직 세계에서 알아주는 명품에서는 미약하다는 점은 아쉬운 일이다. 가까운 일본의 이세이 미야케, 요지 아마모토 등도 있고 중국계 미국인인 베라 왕도 있다.
이 책을 보면 명품 탄생의 조건을 알 수 있다. 명품 브랜드들의 탄생은 창립자들의 어린 시절부터 달랐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재봉 일을 하는 부모 영향을 받았거나 백화점, 부티크에서 일한 경험 등이 작용했다. 패션학교에서 배워 이미 20대부터는 각광을 받았다. 그런데 우리 실정은 패션을 그리 촉망되는 직업으로 보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패션을 제대로 배울 환경이 안 되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이 들어 패션에 입문하면 창의성에서부터 늦다.
명품 브랜드가 되려면 마케팅이 중요하다. 스타 마케팅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명품들은 연예계 스타들이나 영화, 아카데미 시상식 등에서 스타들이 입었을 때 입소문을 탄다. 그레이스 켈리, 제인 버킨, 오드리 헵번 같은 유명인들이 가방을 들고 나타나면 금방 유명세를 타고 켈리가방, 버킨 가방 등으로 명명되기도 한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덕분에 프라다는 제2의 도약을 하기도 했다. 영화 ‘애수’ 등에서 주연 배우가 입고 나와 더욱 우명해진 버버리 코트는 어지간한 전쟁 영화에 다 나온다. 윈스턴 처칠을 비롯해 오늘날 조지 부시, 빌 클린턴 같은 사람도 입어서 유명하다. 페라가모는 마릴린 몬로가 ‘7년만의 외출’ 영화에서 스커트가 날리는 유명한 장면 덕분에 그때 신었던 구두로 유명해졌다.
명품은 선진국 부유층의 취향에 맞춘 옷이라야 한다. 아니면 유명 스타들이 입어줘야 한다. 길은 많다. 세계 유명 패션학교의 문을 두드리거나 패션 콘테스트 입상 같은 방법도 있다.
명품들은 맞춤복인 오트 쿠튀르 의상을 연상하지만, 명품들의 성장과정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말안장엣 시작하여 가방으로 유명해진 에르메스도 있고, 모자부터 시작한 샤넬도 있다. 나중에는 향수까지 카테고리를 넓혔다.
이들 명품 브랜드들은 대부분 가족 경영을 했다. 그래야 특성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디자이너를 영입하는 경우도 있다. 명품 브랜드를 여러개 소유한 회사에서 키우는 방법도 있다.
이 책을 보면 명품 브랜드들의 탄생과 성장과정을 알 수 있다.
필자의 아지트는 다락, 길, 집이다.
◇다락은 나만의 공긴
방 세 개, 마루, 부엌 구조의 옛날 한옥에서는 부엌 바닥이 본 건물 다른 부분보다 낮다. 큰방이 부엌과 연결되어 있으면서 큰방 옆 부엌 위가 제법 큰 공간의 다락이 된다. 간혹 사용하는 물건을 저장하는데 필자의 집 다락은 다른 집 다락보다 좀 넓었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 저장하고도 몇 사람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어린 시절 필자의 아지트였다.
혼자서 만화를 보기도 하고 울긋불긋 어린아이의 원색 생각도 펼쳤다. 동무들과 소소한 장난도 이곳에서 했다.
어린아이에게 다락방이 혼자만의 공간일 수밖에 없는 것은 방 세 개의 집에 거주하는 가족이 많은 환경 때문이기도 했다. 그나마 다락방이라도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지금까지도 예쁜 추억의 한 자락으로 남아있는 필자 집 다락방을 무척 좋아하였던 글짓기 잘하던 반 동무가 생각난다. 어린 시절 다락에서 금단의 장난을 하였던 기억은 없다. 단지 손윗사람들의 보호에서 벗어나 독립하고 싶은 장소였다. 인간의 보편심리인 좁고 어두운 장소에 대한 태아적의 향수이기도하다.
◇길은 인간의 영원한 친구다
필자는 길을 걸으며 생각하고, 공상하고, 고민하고, 두려워하고, 꿈꾼다. 모두에게 공개되고 허용된 길은 만인의 것이기에 개인의 것이기도 하다. 간섭도 없다 화가 나도, 슬퍼도, 문제가 생겨도, 친구들과 갈등이 있어도 필자는 길 위에 섰다. 화남도, 두려움도, 희망도, 대책 없이 부풀어만 가는 미래의 설계도도 걸으면서 머리와 가슴과 발로 함께 만든다.
길 위에서는 필자의 모든 생각은 활동사진이 된다. 생각이 깊고 길면 하염없이 걸었다 필자만의 세계로 함몰이 가능하다. 타인은 철저히 사라진다. 그럴 때 필자의 표정은 실시간으로 변화한다. 슬픈 생각을 할 때면 눈물 글썽인다. 우스운 사건을 떠올리면 얼굴 가득 웃음꽃을 피운다. 화를 내기도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고, 심각해지기도 한다.
다양한 표정으로 필자는 주위 사람들에게 이상한 사람으로 오인 받기도 한다. 큰 언니의 친구가 언니더러 “너 동생 길에서 자주 본다, 스쳐 지나가도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하더라. 혼자서 싱글거리기도 하고, 슬픈 표정도 짓고, 집에서도 이상한 행동을 하니” 했단다. 그때부터는 되도록 필자 집에서 먼 곳의 길을 택하여 걸었다.
길 위에서 하는 몰입의 세계에서는 필자 두뇌의 회전도 가속을 받는다. 좋은 생각이든, 우울한 생각이든, 슬픈 생각이든 생각의 속도가 빠르다. 원심분리기처럼 마음의 갈피들을 분명하게 분리할 수 있다. 모든 감성의 문제들은 이 길 위에서 확대와 축소가 가능하다. 현재와 미래의 시간여행도 가능하다, 길은 필자 자아 형성의 기간 인큐베이터 공간이다. 길은 공개적이면서도 은밀한, 안이면서 밖인 완벽한 아지트다.
◇집은 영원한 아지트
가난한 애인들에게는 그들만을 위한 작은 공간이 파라다이스가 될 것이다. 필자는 집 전부가 내 아지트다. 집뿐 아니다. 모든 생활이 필자만이다.
눈을 피하여 하고 싶은 일도 없다. 필자가 하는 일에 방해할 사람도 없다. 집은 필자 생애 가장 넓은 나만의 아지트다.
이태문 일본 통신원 gounsege@gmail.com
◇ 몸에게 묻는 것이 건강관리의 기본
마에다 비바리(前田美波里·영화배우, 1948년 가나가와 현 출생)
더위를 모르고 여름을 무척 좋아하는 마에다 비바리는 이전 주목받았던 화장품 광고 이래 5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젊고 탄력 있는 몸매와 촉촉한 피부를 유지하고 있다.
“언제 어떤 역할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어떤 동작도 소화할 수 있도록 늘 몸을 다듬어 놓는데, 피아노의 조율과 마찬가지이다. 여배우로서 건강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여진다는 걸 항상 의식해 몸 만들기에 신경을 써 왔다. 무대에서는 모든 각도에서 사람들이 보기 때문에 어디서 보더라도 좋게끔 해 두고 싶다. 나아가 반듯한 몸에는 제대로 된 정신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서 몸을 만들고 있는데, 특별한 것은 하고 있지 않다. 해야 할 것만 하고 있을 뿐이다.”
특별한 것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매일 습관처럼 하는 노력은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 이상 정성을 기울인다고 하겠다.
“아침에 눈 뜨면 먼저 전신 ‘임파(淋巴) 체조’를 10분, 그 뒤로 온천물을 데워 한 잔 마시는 게 일과이다. 그러고 나서 천천히 신문을 읽고, 아침을 먹는다. 주로 채소 샐러드에 빵과 삶은 달걀 한 개. 그리고 머그컵에 커피를 붓고 코코넛 오일을 우유를 넣어 카페오레로 마신다. 달달한 과자를 군것질로 곁들여. 몸을 깨우는 데는 아침 식사가 중요하다.”
비 바리는 작년 가을 비 오는 날 비탈길에서 미끄러져 어깨를 골절했다. 그때 뼈가 붙자마자 재개한 ‘에고스큐(egoscue) 체조’가 빠른 회복에 크게 도움이 됐다.
“시작한 지 4년 반쯤 되는데, 아침 식사 후 30~40분 에고스큐 체조를 반드시 한다. 근육을 자극하고 단련해 똑바로 움직이고, 몸의 비틀림을 바로잡는 운동이다. 몇 년 전부터는 되도록 차를 이용하지 않고 걷는 생활을 하고 있으며, 1주일에 한 번 수중에어로빅도 하는데 물의 저항이 몸에 좋다. 내부근육도 단련되고, 달랑거리는 팔의 살도 금방 없어지고…”
울퉁불퉁 근육질의 여성스럽지 않은 몸은 아름답지 않기 때문에 기계를 이용한 트레이닝은 하지 않는다. 어떤 운동이 몸의 어느 부분에 효과가 있고, 어떤 결과를 가져다 주는지 이미 파악하고 있다.
“오랫동안 여러 가지 운동을 하면서 연구해 왔는데, 이게 나의 재산이다. 허리가 아프다는 연기자나 스태프가 있으면 내가 가르쳐 주고, 나 자신도 한 달에 한번 에고스큐 선생님과 상의해 새로운 메뉴를 지도 받는다.”
운동 이외에 아름다움과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건강보조 식품과 효소, 온천물 등을 함께 일하는 동료 배우와 친구들이 추천한 게 많은데, 괜찮다고 생각 들면 먹어 보고 자신에게 맞으면 받아들여왔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라는 것은 없다. 수십 년 계속 먹어온 건강보조 식품도 무대 공연으로 피곤할 때는 좀 많이 먹는다든지 그날그날의 몸 상태에 맞게 양을 조절한다. 그렇다고 건강보조 식품에 의지하는 삶은 싫다. 자신의 건강은 자신이 지키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손발이 찬 체질이라 몸이 차가워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는데, 에어컨은 되도록 쓰지 않고 여름에도 샤워만 하는 게 아니라 탕에 들어가 여유 있게 기분전환을 한다.”
욕탕에는 수소 거품이 발생하는 걸 넣어서 수소를 흡입하고, 수소수 물로 머리를 감고, 목욕탕에서 나와서는 바디오일을 바르고 침실은 향수를 뿌리기도 한다. 바닐라, 망고 등을 좋아하는데, 맘이 차분히 가라앉고 잠도 잘 온다.
“자기 몸에 물어보고, 좋다고 생각하는 걸 계속 해 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 어떤 명의도, 명약도 수면 부족에는 진다
유카와 레이코 (湯川れい子·음악평론가·작사가, 1936년 도쿄 출생)
지난 1월 80번째 생일을 맞이한 유카와 레이코는 지금도 아티스트 취재로 국내외를 돌고 있으며, 집필활동 외에도 합창단의 멤버로서 노래하는 등 “지금이 내 인생 중 가장 바쁠지도 모르겠다”며 팔순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바른 자세와 환한 웃음을 잃지 않는다.
음악가를 양성하는 ‘스쿨 오브 뮤직 전문학교’의 명예 교장이기도 한 그녀는 삿포로, 센다이, 도쿄, 나고야, 오사카, 후쿠오카에 있는 학교를 돌며 졸업식과 입학식에 6번 참석해 인사를 했다.
“연설은 내가 1년간 일을 제대로 했는지 안 했는지를 실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살아 있는 음악정보를 말하는 거야말로 젊은 학생들의 마음에 스며들지, 과거의 추억담을 얘기하면 전혀 울림이 없다. 그래서 내년에도 학생들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올 한 해도 더욱 열심히 해야지 하고 생각한다.”
올해 아티스트 취재로 호주와 영국에도 갔다 왔으며, 개인적으로는 한 달에 한 번 4인조 코러스 그룹 ‘스완시스터즈’의 연습에 본인이 단장을 맡고 있는 가스펠 그룹 ‘도쿄여자합창단’의 단원으로서 동일본 대지진 부흥 자선콘서트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음악평론가와 작사가 이외에도 라디오 DJ를 하거나 젊은 사람들을 응원하고 노래하면서 환경과 평화와 관련된 문화활동도 소화하는 등 한마디로 사방팔방 종횡무진 대활약중이다.
“샐러드도 상추만으로는 질리고, 여러 가지 채소가 들어 있으면 맛있듯이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여러 가지 일을 하면 다채롭고 풍부한 삶이 더 즐겁다고 생각한다. 또 늘 앉아서 하는 일의 피로가 노래함으로써 풀리고 위안을 받는다. 자신의 몸과 마음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누구든지 할 수 있다.”
21살 때 급성복막염 수술을 받을 때 수혈로 인해 C형 간염에 감염. 병명을 알게 된 것은 1989년 53세 때이다. 하지만, 감염이 판명되었지만 치료약이 개발되지 않아서 의사는 C형 감염 환자의 87%가 간경화에서 간암이 된다며 아무도 도와줄 수 없으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라고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으니 의사는 술 마시지 말고, 과로하지 말고 적당한 운동을 할 것을 권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충분히 잠을 자라며 어떤 명의도 명약도 수면 부족을 이기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수면이 부족하면 면역력도 저항력도 떨어진다. 그 뒤로 하루에 적어도 8시간은 잠을 자도록 하고 있다. 사실 60대 중반에 건강진단을 받고서 췌장암과 간암이 발견됐었다. 의사는 더 크면 위험하니 수술하자고 했지만 안 했다. 불안은 있었지만, 나이 들수록 어딘가 나쁜 곳이 나오게 되는 법인데, 나는 병과 싸우는 게 아니라 면역력을 높여 병과 공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뒤로 더욱 수면과 식사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결국 규칙적이고 바른 생활이 몸을 지켜준다고 믿게 됐다.”
공연 취재와 지방 강연회 등으로 바쁘더라도 전날 1박 하는 식으로 7~8시간의 수면을 확보하고 있다는 유카와는 “잠이 안 오거나 도중에 깰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눈을 감고 어쨌든 자는 상태를 유지한다. 안 자더라도 누운 상태만으로도 수면 중의 3분의 1 정도 체력이 회복이 된다고 하니까. 생각하기 시작하면 뇌가 쉬지 못하니까 잠이 안 올 때는 침대 위에서 호흡법을 한다. 단전 아래 3㎝ 정도 떨어진 곳을 의식해 코로 숨을 쉬고 천천히 길게 입으로 내뱉으면 잡념이 없어지고 뇌가 빈 상태로 되는데 그대로 자연스럽게 잠이 든다”며 “해외로 나갈 때도 마찬가지다” 고 밝혔다.
“식사를 하면 위장이 움직이고 몸이 활동 모드에 들어가기 때문에 비행기 안에서는 거의 안 먹는다. 탑승하기 전에 와인 한 잔 마신 후 호흡법을 하면서 마냥 수면을 취한다. 그러면 긴 장거리 비행에도 피로가 안 쌓이고, 시차도 없다.”
60세쯤부터 부교감 신경을 자극해 면역력을 높이는 호흡법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데, 잠이 오지 않을 때뿐만 아니라 전철 안 혹은 책상 앞, 자기 전에도 꼭 한다.
“수면과 호흡법 덕분에 암이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크지 않고 있다. 호흡법은 언제 어디서든지 누구나 할 수 있다. 요즘에는 등골과 관절 등을 움직여 뼈에 적당한 부하를 거는 ‘뼈 호흡 체조’를 한 달에 한 번꼴로 도장에 다니며 지도를 받고 있다. 뼈를 강화해 주고 비틀림을 고쳐주고 대사를 촉진해 준다.”
연예계가 남성 중심의 경쟁 사회라 싫은 일도 많고 낙담하는 경우도 있는데, 고민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오늘 일은 오늘로, 싫은 것들을 내일로 가져가지 않는 게 중요하다. 침대 위에서 호흡에 집중해 푹 자고 나면, 다음 날 기분 좋게 눈 뜨면 그럼 오늘도 파이팅! 하는 힘도 생기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떠오른다.
“끙끙거리고 우울할 때는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 낙담하는 감정은 좌뇌로 거기에 음악의 템포를 부여하면 자동적으로 우뇌가 우선이 되면서 좌뇌의 고민을 잊을 수 있다. 걷는 것도 스트레스 해소가 되니까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리듬에 맞춰 걸으면 그 효과는 몇 배 커질 것이다.”
몸과 마음의 젊음은 음식이 정한다
◇ 우에키 모모코
(植木もも子·관리영양사·국제중국의사·국제중국의약요리관리사, 1953년생)
젊고 똑똑하고 즐겁고 건강하게, 이것이 삶의 주제라고 말하는 우에키 모모코는 서양의 영양학과 동양의 한방학 모두를 섭렵한 전문가로. “늙지 않기 위해서는 식생활을 고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자신이 스트레스에 약한 체질을 알고 평소의 식사습관을 고치고 건강을 되찾았다고 한다.
“사람은 저마다 타고난 체질이 있어서, 생활습관에 개인 차이가 생긴다. 나이 들수록 그 차이는 커지기 때문에 자신의 몸과 마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동양의 한방의학에서는 인간의 몸은 기(氣), 혈(血), 수(水) 세 가지 요소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데, 나이 먹으면 그 균형이 깨지기 쉽고, 몸의 이상이 생기는 원인이 된다. 이 상태로 두면 몸의 노화가 빨라지기 때문에 방심은 금물이다. 기는 영양과 피, 수분을 몸 구석구석에 옮겨준다. 생명 활동을 행하는 에너지, 기가 부족하면 체력이 떨어져 제대로 보충하는 게 중요하다.”
건강의 근본이 되는 기를 보완하는 식재료는 닭고기, 고등어, 양배추, 산마, 꿀 등. 체력은 물론 기력이 저하됐을 때 추천할 만하다.
“적당한 운동도 필요하다. 몸을 움직임으로써 피의 흐름이 좋아지고, 또한 운동으로 땀을 흘리면 체내에 쌓인 여분의 수분과 노폐물이 배출될 수 있다. 덥다고 냉방기를 틀어놓은 실내에서만 지내면 물의 순환이 나빠지며 발이 붓고 관절통 등의 증상도 나타난다. 여름에도 샤워만이 아니라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가 적절히 땀을 흘리고, 음료수와 음식도 따뜻한 걸 권하고 싶다. 기, 혈 수가 잘 돌도록 하는 생활을 계속해 나가면 몸도 마음도 활기차고, 더위도 먹지 않는다.”
필자는 제주를 정말로 좋아한다. 살고 싶은 곳 중에 우선순위다. 그 풍광에 빠지고 싶고 토속적 먹거리와 풍습에 관심이 많다. 제주 사람들을 사랑한다. 90년 초에 다녔던 회사의 지점장으로 발령을 받아 사택을 얻어 1년 동안 살기도 했었다. 지금도 자주 제주의 추억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그런 여건이어도 그곳으로 이주하는 것에 대하여는 꺼려진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사는 정든 곳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최후를 편안하게 맞고 싶어서고, 가까이서 정들어 있는 이웃이나 지인들과의 관계를 멀리하고 싶지 않아서다. 특히 부인들은 더 그런 경향을 띤다. 오랫동안 사귀어 온 이웃과 헤어지기 싫어한다. 몸이 멀어지면, 즉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하면 마음도 멀어지는 인간사를 알기에 말이다. 이웃사촌이란 말이 웅변한다. 우리 세대는 젊은 시절엔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성공을 위하여 생존경쟁을 하며 살아왔다. 제2의 고향을 만든 셈이다.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고 했다.
필자는 전 직장에서 제주지점장으로 근무하였다. 사택을 얻어 살았고 주민등록도 옮겼었다. 그때 새로운 인연을 만들려는 신의 뜻이었는지 제주시에서 주민등록증을 분실하여 재발급받다 보니 제주시장이 발급기관이 된 적도 있다. 정말 제주 사랑에 흠뻑 빠져 살았다. 물론 90년대 초이니 꽤 세월이 흘렀다. 하루에 제주도를 한 바퀴 돌며 일을 하기예사였다. 제주 곳곳에 발자국을 남겼다. 많은 인연도 만들었다. 제주 토박이에게 그들이 가보지 못한 아름다운 곳을 안내하는 진풍경도 연출했다. 그뿐만 아니라 제주방언 사용에도 깊은 관심을 두다 보니 나를 제주 토박이로 착각하는 대학교수도 있었다. 그 분은 제주 출신으로 제주 방언을 학위 논문으로 하여 박사가 되었다. 한마디로 제주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그곳에서 근무한 시간이 20년이 지났지만, 기억이 생생하고 추억도 늘 미소 짓게 한다. 그때 맺은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가끔 제주를 꿈꾸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 태어나고 유소년 시절을 고향을 그리워하기 마련이다. 외국으로 이민한 노인네가 고국을 그리워한다. 향수병에 시달리기도 한다. 노후에 가장 살고 싶은 지역으로 고향을 들고 있다. 관련한 통계에서도 그런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살던 곳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최후를 보내고 싶어한다. 일종의 신토불이 확대 개념으로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어릴 때 자란 환경 속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의 표출이라 할 수 있다. 고향은 아니어도 새롭게 터를 내려 사는 곳에서 후반생을 즐기고 싶어한다. 제주는 분명 살기에 좋고 머무르고 싶은 곳이기는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이주하는 것은 꺼리게 되는 이유다.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자녀들이 쉽사리 다녀갈 수 있는 곳에 사는 것이 좋다. 물론 늘그막에 자식의 눈치를 볼 것은 아니지만, 자녀들이 오가는 데 불편하지 않은 곳에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녀의 숫자도 적지만, 자녀들의 사회적 경제적 여건이 평소에 부모를 찾는 기회를 줄이고 있다. 먹고 살기에 바쁜 세대다. 홑벌이가 아닌 맞벌이를 해야 하는 시대를 산다. 그런 자녀들이 부모를 찾는 시간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런 여건에 사는 자녀가 오고 가는 환경이 불편하다면 부모가 거주하는 본가 방문을 어렵게 만드는 꼴이 된다. 불효자는 부모가 만든다는 우스개가 생긴 이유이지 싶다. 찾아보기 힘든 곳에 사는 그 자체가 불효자를 만드는 원인을 제공해서다. 제주는 비행기나 배편을 이용해야 하기에 절차나 이동 경로가 복잡해진다. 이와 같은 이유로 주거지를 제주로 옮기는 것을 꺼린다. 대신에 우리 부부는 본 주거지는 현재 사는 곳에 두고 간단한 생활도구를 챙겨 제주에 일정 기간, 3개월이나 6개월 정도 집을 빌려 살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그 다음에 다시 풍광이나 공기가 좋은 다른 지역의 평화로운 곳으로 옮겨가는 방법을 구상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국내 지역별 롱스테이로 볼 수 있다.
농촌에서 태어난 한국의 중·장년층들은 시골생활의 삶에 대한 짙은 향수를 가지고 있다. 최근 수도권에 은퇴자들을 위한 전원마을이 많이 만들어지고, 도시인들의 귀농(歸農)과 귀촌(歸村)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그런 현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귀농과 귀촌을 비슷한 것으로 취급하지만, 내용 면에서 귀농과 귀촌은 상당히 다르다.
귀농은 도시민들이 도시생활을 그만두고 농사를 지으러 농촌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정부는 공식으로 도시에서 거주하다가 농촌의 읍·면으로 이사한 사람 중에서 각종 농업이나 축산업에 관련된 명부에 등록된 사람을 귀농인으로 정의하고 있다.
반면 귀촌은 그냥 시골로 돌아가 생활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귀촌은 시골로 돌아와서 농사를 하는지, 아니면 그냥 은퇴생활을 하면서 노는지 알 수 없는 개념이다. 가장 흔히 사용하는 전원생활이라는 말은 농촌으로 돌아가는 귀촌과 달리 꼭 농촌이 아니라 도시 주변에서도 전원을 가꾸면서 사는 생활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은퇴 후에 도시를 떠나 사는 생활은 크게 귀농과 전원생활 2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 빠르게 늘어나는 귀농·귀촌 인구
농림축산식품부의 조사에 따르면, 2013년 귀농 가구는 1만 923가구(1만 8825명)로 3년 연속으로 1만가구 이상이 귀농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년 전만 해도 귀농 가구는 연간 5000∼7000가구 수준에 머물렀으나, 2011년부터 연간 1만가구를 웃돌 정도로 큰 붐을 이루고 있다. 2013년 귀농 인구들이 많이 이주했던 곳을 살펴보면 경북이 2087가구로 가장 많았고, 전남과 경남, 전북, 충남도 1000가구를 넘어섰다.
또 귀농하는 가구주들의 나이는 평균 53.1세로 나타나 결국 40대와 50대가 귀농 인구의 주력 부대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최근 들어 베이비붐 세대의 귀농이 활발한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과거에 농사를 지은 경험이 있든 없든 간에 노후생활 장소로 농촌을 선택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트렌드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귀농은 앞에서 농사라는 비즈니스를 함께 하는 전원생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소일거리를 겸해서 농사를 짓는 가구들이 아주 많다. 예를 들어 귀농 인구의 작물재배 면적을 보면 0.5ha(1513평) 미만 경작이 전체의 72%를 차지하고 있다. 귀농 인구 10명 가운데 7명이 대략 1000∼1500평 정도의 땅을 경작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편 농사를 짓지 않고 농촌에서 생활만 하는 귀촌 가구도 귀농 가구 못지않게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2013년의 경우 귀촌한 가구수는 2만 1501가구(2만 7665명)에 달해 처음으로 연간 3만명을 넘어섰다. 귀촌 인구가 많이 몰려 간 지역은 경기도가 8499가구(40%)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충북, 강원, 전북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수도권에 인접한 지방자치 단체와 전원생활 여건이 좋은 지역으로 귀촌 가구가 몰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귀촌 가구주는 40~50대가 대부분이다. 50대가 가장 많이 차지해서 전체의 28.5%를 차지하며, 다음으로는 40대가 22.1%, 30대 이하가 17.7%를 차지한다고 한다. 귀농가구에 비해 귀촌가구의 연령대가 다소 젊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직장에서 퇴직하고, 농사 경험이 있든 없든 노후생활을 위해 농촌으로 회귀하는 현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농촌의 생활비는 도시지역에 비해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노후 자금이 부족한 서민과 중산층에게 새로운 은퇴 모델이 될 수 있다. 이들이 간단한 농업기술을 배워 실패 확률이 낮은 농작물들을 재배함으로써 소일거리도 찾고 생활비도 일부 조달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귀농·귀촌은 젊은이들의 이탈로 인구가 급감하고 있는 우리 농촌을 되살리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현상으로 풀이되고 있다.
귀농·귀촌은 ‘사회적 이민social immigration’이라고 할 만큼 개인적인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큰 사건이다. 거주지를 옮기는 단순한 이사가 아니라, 생활양식과 일터, 환경면에서 큰 변화를 동반하는 중요한 결정이라는 뜻이다. 성공적인 귀농과 귀촌을 위해서는 당연히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농사를 겸하는 귀농을 할 때에는 사전 교육을 충실히 받는 등 세심한 준비를 해야 한다.
만약 영농기술과 영농기반 없이 무작정 귀농하거나 귀농 후 마을 주민과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한 언론은 귀농에서 성공할 확률은 20∼30%밖에 되지 않는다고 분석하면서, 가능하면 40대 이전에 귀농하는 것이 실패 확률을 줄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만큼 귀농이 어렵고 힘든 결정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귀농을 추진할 때에는 농사를 통해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소득규모와 자녀교육에 대한 고려도 해야 한다. 시골생활은 도시생활과 교육여건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귀농 후에 농사를 지어 얻는 소득이 생각했던 것보다 적다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특히 무엇보다 올바른 목표 설정이 중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귀농의 목표는 무엇인가? 농업에 정말로 관심이 있나? 이런 질문에 정확하게 답을 해야 농촌생활의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다.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생활하는 것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철저한 준비가 없으면 성공하기가 힘들다. 노후소득의 대부분을 농사로 조달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최근 귀농자가 늘어남에 따라 정부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귀농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진행하는 귀농·귀촌 교육은 무료로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가능하다.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은 서울시농업기술센터(agro.seoul.go.kr), 경기도농업기술원(www.nongup.gyeonggi.kr), 경기농림진흥재단(www.ggaf.or.kr), 각 지자체 산하 농업기술센터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여러 민간·공공기관에서 시행하는 다양한 온·오프라인 귀농·귀촌 교육 과정은 그 선택의 폭이 넓다. 특히 농림축산식품부가 공모를 통해 지원하는 민간 오프라인 교육과정은 내용이 충실하다. 이 과정은 교육비의 70∼80% 를 국고에서 지원받는다는 점이 장점이다. 교육 참여가 아닌, 정보를 알고 싶은 사람들은 농어업인력포털(www.agriedu.net), 농진청 농촌인적자원개발센터(hrd.rda.go.kr), 농식품교육문화정보원(edu.okdab.com), 귀농·귀촌종합센터(www.returnfarm.com) 등을 이용하면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꽃은 본질적으로 여성을 상징하겠지만 해당화 하면 더욱 더 여성적인 맛을 담고 있다.
사실 해당은 아름다운 여자를 뜻하기도 한다. 해당화의 '해'가 바다의 뜻이고 보면 더 여성적인 맛이 강조된다. 바다 그것은 부드럽게 대로는 겁나게 굽이치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해당화는 바닷가 모래사장에 피어서, 멀리는 출렁이는 벽감의 파도와 그리고 가까이는 금싸라기처럼 부서져 반짝이는 모래알 햇볕에 어울리는 까닭에 해당화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짐작된다.
그 꽃잎이 너무 부드럽기에 털처럼 나부끼는 바닷바람을 숨쉬기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바위 사이를 스치는 바람은 감당하기 어렵다는 말인가. 해당화는 처음부터 여성스럽다.
흔히 보면 십대는 수줍고, 이십대는 발전적으로 여성답고, 삼십대는 대담하고, 사십대는 거칠고, 오십대는 막무가내로 되어 버리는 여자의 풍속이 있지만 해당화는 적이 이것을 싫어해 왔다. 그러한 변화가 와야만 하는 주변 환경 요인도 생각해 보았고 여성다움을 굳세게 지키지 못하는 그 심리의 밑바탕도 생각해 본 해당화다.
왜 그들은 꽃처럼 끝내 부드럽고 고요하고 찬란하지 못할까. 무엇 때문에 그와 같이 변하지 않고서는 안 되는 것일까.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어느 민족에 있어서나 이것은 같은 경과상황이었을까. 해당화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한평생을 꽃처럼 보내기에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파도처럼 굽이굽이 밀어 닥치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슬픔이 아닐 수 없다. 해당화처럼 지키는 방편은 없을까.
나무 이름에 [海]자가 붙는 것이 많다. 해석류는 동백나무를 뜻하고, 해동화(海桐花)는 상록수며 관목인 돈나무를 말함인데 제주도 동남쪽 섬에 흔이 난다. 바닷가를 즐기고 열매모양이 얼핏 오동나무의 그것에 닮아 있기에 바다오동이란 이름을 얻은 것으로 본다.
주로 바닷가에는 나는 해송이 있는가 하면 중국사람은 잣나무를 해송자로 말하는데 해송자란 송자(松子) 즉 잣을 뜻한다. 앞에 [海]자가 붙은 것은 외국산 또는 다른 나라에서 온 것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화목기(花木記)]에 쓰기를,[나무이름에 바다해(海)자가 들어가는 것은 모두 그것이 해외에서 온 것을 뜻하는 것이다 ] 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잣나무 종자는 중국에 종종 보내졌는데 잣나무가 바닷가에 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해(海)자가 붙은 것은 이러한 뜻에서가 아닐까.
그러나 해변노가주(海邊老柯子)는 바다와 인연이 있음이 뚜렷하다.
해당화에 가장 가까운 인연을 가진 것은 찔레이다. 그꽃의 청초함과 꽃색의 선명함과 보기의 앳됨과 색깔의 정열과 찢어질 정도의 부드러움이 모두 서로 닮아 있다. 줄기마다 가지마다 아니 꽃 대궁에 이르기까지 가시를 달고 털을 내어 무언가
경계하는 듯한 점도 어느 정도는 닮아 있다. 부드러움을 막는 데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좋다. 이처럼 가시와 털은 아름다움을 보호하는 데 쓸모가 있다. 해당화는 가시에도 털을 달고 있다. 털을 무척 좋아하는 것이 해당화다. 해당화의 꽃은 가지 끝에 달리고 붉고 향기가 강하다. 그래서 찔레나 해당화의 꽃잎을 원료로 해서 향수를 만들기도 한다.
정다산 선생이 쓰신[아언각비(雅言覺非)]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해당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즉 서부해당, 도라지해당, 수사해당, 모과해당, 추해당 그리고 황해당이 그것이다. 나무의 높이가 3.5m에 이르는 것이 있다. 창주해당은 줄기 굵기가 두 아름 되는 것이 있다.[화보]에는[서검은 집뜰에 해당을 심고 그 나무위에 원두막을 만들어 손님을 초대하여 등불을 밝히고 그리고 대작을 했다] 이 나무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정다산 선생은 이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은 매괴화를 해당으로 잘못 알고 있으며 금강산 동해 모래사장에 자라고 꽃이 피는 데 선홍색으로서 무척 아름답다. 이것이 바로 해당화라고 하지만 모두 잘못된 것이다.
매괴는 배회화(裵回花)라고도 말하며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가시가 많이 나고 꽃은 장미에 닮아 있다
[진씨화경(陳氏花鏡]에 말하기를 색은 붉은보라로서 모양이 수줍고 향기가 대단하며 건조할수록 향기는 더 강해진다. 이 향기를 부채에 먹이기도 하고 향수주머니 속에 넣기도 한다. 또 흰 설탕을 만들기도 하는데 조선 사람들은 일체 이러한 일을 모르고 있다.
이러한 정다산 선생의 기술에 대해서 생각해 볼만한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로 해당화에 대한 한자명에는 민괴(玟?), 매괴(玟?), 배회화(裵回花), 열구(悅口), 자객(刺客), 이랑초(離郞草, 매괴(??) 등이 있다.
매괴라 하는 것은 겹해당화를 말함이고 드물게 볼수 있는데 관상용으로 식재되고 있다. 정다산 선생의 해당화에 대한 설명중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해당화와는 거리가 먼 것이 있는 듯하다.
그리고 해당화가 대단히 큰 나무로 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아언각비]에 기재된 내용은 중국의 고서에서 그대로 따온 느낌도 없지 않다.
해당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는데 모두 목본이고 한편으로 첩경이라고도 부른다. 꽃색은 진한 붉음이고 꽃이 꽃대 궁위에 바짝 붙어 있어서 첩경 이란 이름을 얻었다. 꽃안에는 황금 색깔의 수술이 다발처럼 많이 나므로 여금속수 또는 수사라는 이름도 얻고 있다. 나뭇가지가 연하고 분홍색의 꽃을 다는 것을 서부해당으로 말한다.또 모과해당이라 하는 것은 굵은 열매가 달리는데 모과에 닮아 있고 먹을 수 있다.
등등으로 설명은 더 이어진다.
그런데 예전의 시제를 보면 해당화는 시로 많이 읊어지고 있다. 그중 추해당, 수사해당 등 더 구체적인 해당화의 종류까지 식별되었던 느낌이 든다.
수사해당의 아름다움을 칭찬한 것에[살랑이는 봄바람이 뜰을 지나는데 하늘의 기틀이 묘해서 선녀의 옷자락을 짜고 있다]는 것이 있다.
이때 선녀의 옷감이란 해당화의 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얼마나 고우면 선녀의 옷감으로 된단 말인가. 아니 넉넉함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선녀의 옷감으로 피어나고 있는 해당화의 꽃잎은 정녕 어울린다.
소식은 해당을 제로 해서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아름다운 빛을 담아 동쪽바람이 실처럼 살랑이고
그윽한 향기는 안개처럼 내려 뿜는데 유난히 달빛 밝구나.
오로지 두려워하는 것은 밤이 깊어져 해당화가 잠에 빠질까하는 것이. 은촛대 촛불 높게 밝혀 너의 붉은 치장을 자랑삼아 보노라.
아름다운 여인에게도 비겨지는 해당화의 꽃이다. 해당이란 이름 아래 많은 시객들은 붓을 들곤 했다. 이곳에 밤의 상황이 해당화에 어울려서 묘사되고 있는데 해당화가 특히 미모의 여인이라면 그것은 밤에 완상하는 것이 옳다는 말이다. 촉대의 불을 높이 쳐들어 분홍색 화장을 즐긴다는 것은 무언가 비유 같은 냄새가 짙다.
미인의 아름다움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 눈을 부비면서 반각반수의 모습을 보일 때 돋보인다.
가냘픈 미인의 용모는 이대에 절정에 오른다. 해당수미족(海棠睡未足)이란 바로 이것을 표현하는 말이다. 갓 깨어나서 아직 잠을 더 청하고 싶은 하늘하늘하는 해당화는 여러 가지 의미에 통할 수 있다.
해당화에 아직 잠이 모자란다. 이것은 해당화를 의인화한 것이다. 잠을 더 청하는 여인을 생각해 보면 족하다. 배회화라는 이름이 붙은 연유는 잘 모르겠으나 생각건대 아름다운 여인의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남자의 심정을 가져다 붙인 것이 아닐까 해당화의 가냘픈 아름다움을 잊지 못해 그 주변을 맴도는 어느 인간상을 연상해 본다. 배회하는 그것도 하나의 즐거움일 수 있다. 새들도 저녁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오고 이때 집이 있는 숲을 보면 그 위를 배회하면서 날아본다. 그것은 하나의 즐거움일 수 있다.
해당화가 배회화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대단히 자랑스러운 일이다.
해당화는 장미과(薔薇科 Rosaceae)에 속하는 낙엽 활엽관목으로 바닷가의 모래땅이나 산기슭에 자라고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다. 키는 1.5m에 달하며 뿌리에서 많은 줄기가 나와 큰 군집을 형성하여 자란다. 줄기에는 갈색의 커다란 가시, 가시털[刺毛], 융털 등이 많이 나 있고, 가지를 많이 친다. 잎은 7~9장의 잔잎으로 이루어진 깃털 모양이며 겹잎이다. 잔 잎은 타원형으로 톱니가 있고 주름이 많으며 두껍고 광택이 있다. 잎 뒷면에는 맥이 튀어나와 있고 선점(腺點)이 있다. 꽃은 5~8월경 1개 또는 2~3개가 붉은색으로 줄기 끝에 피는데 향기가 진하며 흰색도 있다. 꽃부리[花冠]의 지름은 6~10㎝이고 넓은 도란형의 꽃잎은 5장으로 끝이 오목하다. 수술은 매우 많다. 열매는 둥글고 붉은 황색의 수과(瘦果)로 익으며 윤기가 난다. 꽃과 열매가 적은 것을 개해당화(var. kamtschatica), 꽃잎이 많은 것을 겹해당화 또는 만첩해당화(for. plena), 가지에 가시가 거의 없고, 잔잎이 작고 좁으며 잎에 주름이 적은 것을 민해당화(var. chamissoniana)라 한다. 각종 해당화와 생열귀나무(R. davurica) 등이 속하는 장미속(薔薇屬 Rosa)의 많은 종(種)이 건위제, 강장제, 통경제로 사용되며 유방염, 당뇨병 등에도 쓴다. 꽃에 방향성 정유(예를 들면 페닐에틸알코올·벤질알코올·제라니올·벤조산)가 많아 향수의 원료가 되기도 하고, 열매의 육질부를 사용하기도 한다. 뿌리는 염료로 사용 한다.
일본사람들은 해당화를 하마나시라고 부른다. 해당화의 분포는 넓은 편이고 사할린, 만주 남쪽 지방, 우스리, 캄차카, 알래스카 등인데 일반적으로 바닷가 모래밭에 잘 난다. 중국에서는 관상용로 재배도 한다고 하며 그 맑은 향기를 숭상해서 꽃을 차에 넣어 마신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붉은 꽃잎을 따서 밥을 지을 때 넣어 색깔을 나게 했고 만주사람들은 꽃봉오리를 차에 넣었고 매괴주를 담는데 쓰기도 했다. 즉 꽃잎을 건조시켜 소주에 넣는데 술색이 분홍으로 되고 술맛이 강렬하다고 한다.
책에[강변에 해당이 많이 나고 꽃잎은 작약처럼 크고 열매는 살구에 닮았고 그 향기가 대단히 짙다]라고 있어서 과일주도 담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해당화의 열매을 잘 먹는다. 그래서인지 식물학자 윌슨은 이 나무이름을 [바닷가 토마토]라고 불렀다. 열매에 비타민 C가 많다고 한다. 해당화의 열매를 한자로는 열구(悅口)라 하는데 그 뜻은 맛이 있고 먹음직하다는 뜻일 것이다.
줄기껍질은 다갈색을 내는 염료로 사용되기도 하고 뿌리로는 더 진한 염색을 할 수 있다. 꽃잎을 짠 물로써도 염색이 되고 다른 물감과 알맞게 섞어서 여러 가지 색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해당화는 물론 일본에도 있다. 일본에 이시카와라는 시인이 있었다. 그는 많은 시를 남기고 27살의 아까운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났다. 그중 해당화의 짧은 시 한편을 이 곳에 옮겨 본다.
바다내음 가득한 북쪽 명사십리
해당화야 해당화야
올해도 피었는가.
올해도 피었는가.
원로화백 박돈(86, 본명 박창돈) 선생의 그림생활 70년을 회고하는 대규모 전시가 4월 5일부터 가원미술관(과천시 문원동)에서 선보인다.
박수근, 이중섭 화백 등과 함께 대한민국 미술사의 한 축을 담당했던 박돈은 몽금포타령과 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황해도 장연(長淵) 출신으로 빼어난 자연환경 속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1948년 해주예술학교 미술과를 졸업한 뒤 해주미술학교 교사를 지내다 남하한 작가는 광택이 없는 흙벽에 그려진 벽화와 같은 느낌이 드는 향토색 짙은 화면을 선보여 왔다.
1970년대 중반부터 전형화된 이 작가의 환상적인 향토적 정서와 상상력의 독특한 화면작업에 그 체험적 잠재의식이 깊이 반영돼 있음을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화면마다에 그러한 내면성이 저절로 형상돼 있기 때문이다.
박돈의 유화작업은 그의 철저한 개성적 기법의 취향인 화면의 광택 배제와 지극히 정적(靜的)인 화면구성, 모든 주제요소들의 선, 형태, 색채 및 형상의 단순화, 간결화 내지 장식적 변용, 그러면서 화면 전체가 시원하고 온화한 정감적 분위기를 조성하게 함으로써 특징을 이룬다. 그 구도는 모두 확연하게 수평적이면서 중심적 시점(視點)의 주제 설정은 하나같이 작가의 마음속의 잠재적 향수와 상상으로 선택되곤 했다.
무엇보다도 박돈 화면이 신비감을 자아내게 하는 것은 화면의 밑바탕을 고운 모래밭 같은 질감으로 각별히 세심하게 조성하는 엷은 황갈색 또는 회갈색조의 농담 분위기에서 느끼게 되는 추상공간의 깊이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는 박돈 화백의 대표작 60여 점이 전시된다. 전시는 오는 5월 6일까지 계속된다. 문의 (02)504-3730
[기사 제휴: 경기일보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서양 문화가 활발히 유입되던 1872년, 일본 도쿄 긴자에 일본 최초의 서양식 조제 약국이 세워졌다. 바로 ‘시세이도’다. 시세이도라는 이름은 중국의 고전인 역경 ‘至哉坤元 萬物資生 乃順承天(지재곤원 만물자생 내순승천:대지의 덕에 의해 모든 사물은 생성된다)’에서 유래됐다. 설립자 후쿠하라 아리노부는 시세이도라는 단어에 만물의 생성 근원인 자연자원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개발해 인간을 아름다움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정신을 담았다.
◇설립자 철학 그대로 이어 온 142년= 설립자의 아들이자 초대 사장인 후쿠하라 신조는 시세이도의 정신에 탁월한 미적 감각과 과학적 경영방식을 결합해 오늘날의 시세이도로 발전시켰다. 142년이 흐른 현재 시세이도는 동남아시아, 유럽, 미국 등 전 세계 88개국에 진출해 있는 글로벌 5위의 프레스티지 화장품 브랜드로 세계적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시세이도는 2012년 창립 140주년을 기점으로 여성과 화장품, 문화, 환경 등 3개 분야에서 ‘아름다움 창출’을 목표로 하는 사회공헌 활동인 ‘미라이-츠바키’ 프로젝트를 전개해 오고 있다. 전 세계 시세이도 임직원이 함께 △사람과 함께 관계를 만든다 △진실되고 값진 가치에 감사한다 △아름다움과 건강을 창조한다 등 공통 의무를 지속적이고 진정성 있는 활동을 통해 실천하고 있다. 글로벌 프로젝트를 전개하며 ‘아름다운 내면과 외모를 모두 생각하는 기업’의 정신인 셈이다.
◇뷰티산업의 파격을 이끌다= 진품만을 제공하고, 이 제품의 가치를 고객들에게 제대로 전하는 데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시세이도는 고객을 위한 혁신적 제품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1888년 가루 치약이 유행하던 시대 시세이도는 일본 최초로 페이스트형 치약 ‘후쿠하라 위생 치약’을 선보였고, 모조품이 등장할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후 미용과 화장은 물론 근대 여성들의 패션, 헤어 등 전반적인 스타일링을 다룬 매거진을 출간하거나(1922년), 시세이도 제품만을 판매하는 전문 체인스토어 개설(1923년) 등 실험적 시도로 시장을 장악했다.
특히 1934년에는 현재 뷰티 컨설턴트의 시초인 미스 시세이도 9명을 선발해 근대 미용극, 뷰티 패션쇼를 열며 미용기술과 여성이 갖춰야 할 전반적 교양을 전파하기도 했다.
시세이도는 디자인에 대한 철학도 남달랐다. 1897년 최초로 선보인 화장수 ‘오이데루민’은 당시 파격적으로 향수병을 연상케 하는 유리병에 담아 큰 사랑을 받았다. 이어 1916년 조직된 ‘의장부’는 제품 구성은 물론 패키지까지 전문적 연구부서로, 소비자들에게 품질과 디자인을 모두 만족시켜 제품의 품격을 높였다. 이 의장부는 현재까지 이어져 시세이도 본사에 100여명의 디자이너가 제품 패키지와 광고 등을 만들고 있다.
◇그레이스풀 에이징을 위한 피부과학= 시세이도 화장품의 철학은 ‘아름답고 건강하게 나이를 더해 가며 젊고 건강하게 행복한 인생을 즐기자’다. 바로 소비자의 ‘그레이스풀 에이징’을 만들어 내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한 연구개발에 집중한다. 시세이도는 인간 내면의 건강함과 외면의 아름다움을 융합시켜 행복한 인생을 만들기 위해 스킨케어를 위한 기미와 주근깨, 주름, 탈모, 자외선 차단 등 노화방지를 위한 4가지 테마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일본, 미국, 유럽 등지에 연구개발시설 10곳을 보유한 시세이도는 1989년 하버드 의과대학과 공동으로 ‘MGH(부속병원) 하버드대학 피부과학 연구소(CBRC)’를 설립했다. 이곳에서는 새로운 피부이론에서부터 최신 성분까지 각종 연구가 진행된다. 그 연구 결과를 화장품에 응용해 ‘그레이스풀 에이징’ 실현을 목표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백년미백’ 명성 만든 미백의 산역사= 서양에 문호를 개방한 일본 여성들은 ‘하얀 피부’에 대한 열망을 갖게 됐다. 이로 인해 일본 화장품은 미백 기능을 가진 화장품 연구 역사 또한 오래됐다.
시세이도는 1917년 세계 최초로 오이 성분의 화이트닝 토너 ‘과산화수소 큐컴버’를 출시한 이래 현재까지 100여년간 미백에 대한 심층 연구로 진화된 제품을 선보여 왔다. 특히 가장 최근 출시된 화이트닝 제품에는 진피의 황색화를 막아 얼굴빛의 노란기까지 감소시켜 아시아 여성에게 최적화된 미백을 구현하고 있다.
안티에이징 제품에서도 선도적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기존의 제품들이 이미 노화된 피부를 개선하는 데 주력했다면 시세이도는 공신력 있는 연구시설을 통해 피부 노화의 원인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적극적 개선을 시도했다. ‘퓨처 솔루션 LX’는 세계 최초로 노화의 근원물질(서핀B3)을 발견한 후, 이의 생성을 억제하는 성분(스킨제네셀 1P) 개발에 성공, 안티에이징 제품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친한 사람들끼리만 모이는 '폐쇄형 SNS'가 인기몰이 중이다. 국내에선 네이버의 '밴드', 카카오의 '카카오그룹'이 대표적이다. 네이버 자회사 캠프모바일의 밴드는 2012년 8월, 카카오의 카카오그룹은 2013년 9월에 선보였고 최근엔 다음(Daum)이 쏠그룹을 출시해 경쟁에 가세했다. (Daum은 항상 뒷북이다.)
'국내' 모바일 메신저 시장에선 카카오의 카카오톡이 네이버 라인을 멀찌감치 앞서있지만 폐쇄형 SNS 시장에서는 반대로 카카오의 카카오그룹이 네이버 밴드를 추격하는 양상이다. 기능은 사실상 별 차이가 없다. ‘선점’이 곧 시장 지배력 확보의 지름길인 것이다. 편한 만큼 골치 아픈 SNS세상, 뜨거운 밴드(BAND) 열풍에 대해 잠깐 살펴볼까 한다.
‘우리끼리 BAND' 열풍
스마트폰을 활용한 SNS는 현대인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장점 때문이다. 최근에는 한국인이 주로 사용하는 SNS가 ‘개방형’에서 ‘폐쇄형’으로 옮겨가고 있다. 폐쇄형 SNS로의 전환은 30대 이상 이용자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특히 ‘밴드(BAND)’ 열풍이 거세다. 2012년 8월 출시된 밴드는 최근 글로벌 가입자가 2300만 명을 돌파하면서 상승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이 가운데 국내 가입자가 1천800만명이다. 개별 밴드 수는 800만 개에 육박한다. 해외 사용자는 공동체 의식이 있는 일본, 대만, 태국, 중국 등 아시아 국가 중심으로 늘고 있다.
쉽고 편리한 기능
이토록 밴드 가입자가 급증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우선 밴드는 이용 방법이 간단하다.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으며, 초대를 받고 가입하면 바로 활동할 수 있다. 멤버들끼리 비밀을 보장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그만큼 사생활 침해나 개인정보 유출 등 SNS 부작용에서 자유롭다.
대화를 위한 채팅방 외에 게시판을 별도로 둔 것도 호평을 받고 있다. 중요한 정보가 대화창에서 흘러가 버리는 일이 없어진 것이다. 게시판에는 용량이 큰 사진이나 동영상도 올릴 수 있고, 게시물 중 3개까지 공지로 등록할 수도 있다.
또 사진첩 기능이 있어 사진들을 따로 모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밖에 투표, 음성메시지, 사진댓글 등 색다른 기능이 계속 추가되고 있다.
‘우리가 남이가!!’ 끈끈한 유대감→높은 충성도
밴드는 학연(동창회), 지연, 혈연(가족), 동아리 등이 모임을 만들고 그 안에서 멤버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방식이다. 멤버들 간의 끈끈한 유대 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충성도가 매우 높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무려 21개의 밴드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네이버가 2013년 8월 동창 찾기 기능을 추가한 이후 밴드 체류 시간은 수직 상승했다. 특히 40~50대 중장년층의 유입이 급증하며 과거 '아이러브스쿨'의 돌풍을 재현하는 느낌마저 든다. 중장년층은 향수에 젖어 있기 때문에 밴드를 통해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유쾌 상쾌 통쾌한 경험이 될 수 있다. 물론 그만큼 ‘밴드 중독’에 빠지기도 쉽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개방형 SNS에서는 누군가 자신에게 악성 댓글을 남기면 주눅이 든다. 무심코 SNS에 남긴 말로 구설수에 올라 집단공격을 당하는 사례가 늘면서 ‘SNS 포비아(Phobia·공포)’라는 말도 생겨났다. 그 결과 사람들은 (개방형 SNS에선) 자기 포장에 열중하고 완벽한 모습에 집착한다. 반면 밴드는 아는 사람들끼리만 소통하니 그럴 걱정 없고 마음이 편하다.
네이버는 밴드에 모바일게임 플랫폼 기능을 추가할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한국 모바일 게임 플랫폼 시장은 사실상 '카카오'가 독점적인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 네이버 형제인 라인과 밴드의 협공에 카카오가 어떻게 대응을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번엔, 얼마나 갈까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프리챌, 아이러브스쿨…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서비스들이 변화하는 환경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몰락했다. 2000년대 초반 '도토리' 열풍을 몰고 왔던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이제 국내 SNS시장에서 비주류로 밀려났다. 야후는 한국시장에서 철수했다.
밴드 열풍, 그 바람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나 아는 사실이 있다. 끝은 반드시 온다는 것. IT산업에서 방심은 금물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경쟁업체의 공격에 대한 대비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사람들은 언제든 떠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면도날 위를 걷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비즈니스에 임해야 할 것이다. 변화는 너무 빠르고 시장은 혹독하다.
글=건설워커 유종현
유종현은 취업포털 건설워커 대표, 메디컬잡 대표, (주)컴테크컨설팅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며, 취업전문가, 잡(JOB)칼럼니스트, 뉴스에듀 고문으로도 활동 중이다. 고려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엔지니어링에서 근무하였으며, 1990년대에는 공학 소프트웨어 국제 공인 개발자, 소호 창업전문가, PC통신 취업정보제공자로도 활약했다.
‘지지직….’ LP판에 바늘을 올리자 귀에 익은 잡음과 함께 가수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아래’가 흘러나온다. LP가 돌아가며 음악을 뿜어내니 그 날의 추억이 생생하게 피어난다.
LP판이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며 신기함을 느꼈고 음악으로 감성을 채웠던 그 시절. 모바일 리듬 게임 ‘행복한 피아니스트’는 이러한 추억을 담고자 했다. 그래서 일까. 화려한 3D 그래픽을 구현해 유저들의 시각을 자극하는 요즘 게임과 달리 LP만 덩그러니 놓여져 투박한 느낌마저 든다.
리듬 게임은 음악에 맞춰 위에서 내려오는 노트를 정확한 타이밍에 지정된 위치에 터치하는 방식으로 LP판을 문지르는 듯한 느낌의 사용자 경험(UX)을 구현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행복한 피아니스트 개발사인 아이즈 소프트는 기술력과 트렌드를 담아 세련된 LP 사용자 환경(UI)을 구현했다. 자신이 아는 노래를 기다리는 설렘을 모바일에 담아내고자 심혈을 기울였고, 사용자들은 다운로드수로 부응했다. 두뇌 싸움도, 치열한 공성전도 아닌 지친 심신을 음악으로 달랠 수 있는 힐링게임 행복한 피아니스트를 개발한 아이즈 소프트 임종관 대표를 만났다.
◇음악 게임의 대중화 앞서다= 리듬 게임은 마니아층이 한정돼 출시된 후 단기간에 호불호가 갈린다. 임 대표는 “행복한 피아니스트는 음악 게임의 대중화를 위해 제작됐다”며 “기존에 주로 마니아들 위주로 인기를 얻었던 이 장르를 좀 더 다양한 유저들이 즐길 수 있도록 눈 높이를 맞췄다”고 강조했다.
임 대표가 굳이 피아노를 선택한 이유는 누구나 한 번쯤 배워보고 싶어 했을 법 한 향수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피아노를 전혀 다루지 못한 사람들에게 대리 만족감을 주고 싶었다”며 “위에서 내려오는 붉은 노트를 가볍게 문지르기만 하면 진짜 피아노를 연주하는 듯 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말 그대로 행복한 피아니스트는 일반인들이 쉽게 즐길 수 있다. 경쟁사의 음악 게임이 노트를 맞추지 못하면 끝나는 것과 달리 틀리더라도 한 곡을 완전히 연주(클리어)할 수 있게 했다. 임 대표는 “행복한 피아니스트는 사용자의 귀를 즐겁게 하는 게 목적이지만 능숙한 유저들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별 4.5~5개 난도의 곡도 꾸준히 업데이트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400만 다운로드… 넓은 유저층이 강점= 임 대표는 행복한 피아니스트의 출시도 감성이 풍부한 ‘크리스마트 이브’에 맞췄다. 이 후 22일 만에 400만 다운로드를 기록,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임 대표는 “국민 게임 기준인 1000만 다운로드 달성 전략을 따로 세운 것은 아니지만 유저들이 리듬 게임의 매력을 느끼고,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며 힐링할 수 있도록 꾸준히 업데이트 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행복한 피아니스트에서 제공하는 노래가 8090 세대를 겨냥했지만 유저층은 10~40대에서 25%씩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다. 최근 다양한 TV 오디션 프로그램과 드라마에서 ‘복고’가 유행을 타자 10대들도 그 시절의 명곡에 익숙한 덕분이다.
임 대표는 “특정 연령대를 공략하기 보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가요를 중심으로 선택했다”며 “초반에 수록한 가요들을 의외로 다양한 연령층에서 알고 있었고, 노래에 대한 거부감도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빠른 업데이트로 최신곡을 담아낸 것이 주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가사 삽입도 ‘신의 한 수’= 특히 행복한 피아니스트는 다른 게임과 달리 연주가 시작되면 화면에 가사가 보인다. 귀로 멜로디를 들으며 연주하면 ‘매직아이’처럼 가사가 눈에 쏙 들어온다. 가사의 감성이 또렷하게 전달되는 느낌이다.
임 대표는 “처음엔 망설였지만 퍼블리셔인 넷마블과 숙의해 가사를 넣어봤는데, 주변에서 ‘신의 한수’라고 평가했다”면서 “가사 덕분에 감성 게임이라는 수식어가 완성된 느낌”이라고 의미를 뒀다. 이어 그는 “아이들에게도 부담 없이 권할 수 잇고 가족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어 좋다는 말을 들었을 때 보람을 느낀다”며 “남녀노소 누구나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에 맞게 명곡들을 흥얼거릴 수 있는 대한민국 대표 리듬 게임으로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행복한 피아니스트는 터치 정밀도 부분과 고레벨을 위한 업데이트를 계획 중이다. 임 대표는 “이 게임은 배경음이 재생되면서 피아노 소리를 동시에 재생하는 원리이기 때문에 단말기 사양에 따라 차이가 많다”며 “현재 저사양 단말기를 위한 최적화와 고레벨을 위한 고난도의 곡들에 대한 추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