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침묵이 흐른다. 갑작스레 지휘자의 손끝이 하늘을 향한다. 그러자 실내의 모든 눈동자가 그 끝을 좇는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일시에 숨과 함께 소리를 내뱉는다. 소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게, 속도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아야 한다. 그 사이에 그들의 시선은 정면의 손끝과 청중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갔다. 소리와 시선 사이엔 날카로운 긴장감만이 맴돌았다. 직접 목격한 청춘합창단의 공연은 예상 이상으로 진지했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평균 나이 65세’, ‘K
바쁠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한다. 바쁘답시고 1분 1초를 다투다 보면 몇 시간, 며칠이 어느새 지나가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질문 하나. 바쁜 것 말고 우리의 시간을 빠르게 가도록 만드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무엇일까? 재미가 아닐까? 재미있을 때도 바쁠 때 못지않게 시간이 후딱 가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좋은 게 네 가지 있답니다. 첫째는 오래되어 잘 마른 장작이고요, 두 번째는 마시기 좋은 오래된 와인이지요. 세 번째는 서로 믿고 따르는 오래된 친구, 마지막 네 번째는 내가 읽기 좋은 책을 쓰는 나이 든 작가랍니다
◇ 판매 수익 일부를 ‘위안부’ 할머니를 위해 '마리몬드' 마리몬드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한 아이돌 가수 덕분이었다. 지난 1월 걸그룹 미쓰에이 멤버인 수지가 쥐고 있던 휴대폰의 케이스가 네티즌 사이에 화제가 된 것. 꽃을 눌러 제작한 압화 작품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더욱 화제가 된 것은 디자인을 한 원작자가 다름 아닌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였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만든 ‘마리몬드’는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판매 수익을 위안부 할머니를 위해 기부한다는 ‘착한 가게’라는 것이
백제는 삼국 중 한반도에서 가장 풍요로운 땅을 차지한 복 받은 나라였다. 그러나 가장 먼저 망했다. 왜 그랬을까? 백제 땅은 고구려, 신라는 물론, 중국, 왜와도 교류할 수 있는 한반도 서남 요지였다. 북으로 고구려라는 강국이 있었지만 고구려는 대부분의 시기 중국의 위협에 대항하느라 여념이 없어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시절 중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백제를 크게 위협하지 못했다. 약체인 신라는 백제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양국 간의 전쟁에서 백제가 대부분 공세를 취했다. 황해는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백제를 보호하는 안보의 장벽이 되었을 뿐
‘푸른 파도여 언제까지나’라는 영화는 필자가 고등학교 때부터 알던 집사람과 대학교에 들어가 다시 데이트를 시작한 후 두 번째인가 세 번째로 함께 본 영화이다. 1963년 6월 스카라 극장에서 상영한 이 영화에는 최고의 칸초네가수 도메니코 모두뇨가 주인공으로 출연해 여러 곡의 칸초네를 불렀다. 그리고 미녀가수 미나가 주제가 ‘행복은 가득히(Il Cielo In Una Stanza)’라는 칸초네를 불렀는데, 그 후 C.C.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여배우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주연하는 ‘가방을 든 여인’(1961)이라는 영화의 배경
2015년 을미년(乙未年)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올해에도 적지 않은 대중문화 스타들이 대중의 곁을 영원히 떠났다. 특히 신중년들의 젊은 시절을 수놓았고 수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던 중견 스타들이 활동 무대를 하늘나라로 옮겼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의 김광한입니다!”매력적인 저음으로 팝음악 프로그램의 오프닝 멘트를 한 뒤 다양한 팝 음악과 정보를 제공해 1980~1990년대 많은 청취자의 사랑을 받았던 스타 DJ 김광한이 지난 7월 9일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향년 69세. 1980~1990년대
건강팔찌가 한때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음이온이나 원적외선이 나와 건강에 도움을 주는 팔찌다. 그러나 요즘은 그 건강팔찌보다 더 건강에 도움이 되는 팔찌가 있다. 바로 스마트밴드다. 스마트밴드는 손목에 팔찌를 차고 건강을 체크하는 기계다. 손목에 차고 다니면 그것이 우리의 움직임을 기록한다. 스마트폰은 항상 손에 있는 것 같지만 가끔은 가방에 넣어 두거나 잠깐 놓고 어디 다녀올 수도 있는데 손목에 있는 팔찌는 매순간 손목에 있으면서 움직임 하나하나를 기록한다. ◇ 재미있는 경쟁은 내 몸을 춤추게 한다 스마트밴드의
삼국시대에 관해서 제일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왜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하지 못했나? 고구려가 통일했다면 우리의 영역이 만주까지 넓혀졌을 것인데..’라는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의 대외관계를 검토하면 이것은 이루기 어려운 목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 간의 관계에만 주력한 신라, 백제와는 달리 고구려는 중국 왕조들을 비롯하여 만주의 여러 민족들을 상대해야만 했다. 특히 중국의 여러 왕조들은 감당하기 힘든 세력이었다. 연(燕)을 비롯한 하북의 왕조들은 중국 전체 판도에서는 강대국이 아니었지만 고구려에게는 위협적인 존재였다.
아무 조건 없이 주는 것이 기부라지만, 주는 것이 있는데 받는 것까지 있다면 훨씬 더 좋은 법이다. 이제는 기부도 그렇게 변하고 있다. 100점 만점에 35점. 전 세계 145개 조사 대상국 중 64위. 11월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이 발표한 ‘세계 기부 지수 2015’에 드러난 대한민국의 기부활동 성적표다. 기부 액수가 아닌 기부활동에 중점을 둔 이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기부에 참여했다’는 응답 비율이 15만 명 중 34%인 것으로 조사됐다. 빼어난 성적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다. 2010년
연애라는 기나긴 여정을 뚫고 마침내 결혼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결혼을 할 때 어떻게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몰라 난감한 경우가 많다. 또 대다수의 커플이 결혼을 준비하는 시기에 가장 다툼이 잦다고 한다. 그래서 준비했다. 결혼 준비에 대한 이야기를 신한은행 WM사업부 김희경 팀장에게 들어봤다. 1. 커플매칭 이후 결혼에 이르는 과정은? 일반적으로 부유층 고객은 자녀뿐 아니라 부모의 기대치도 충족할 수 있는 조건을 다 맞추어야 합니다. 때문에 미팅 한 번 하는 것도 쉽지 않을 때가 많죠.
한 해의 마지막을 제야(除夜) 제석(除夕) 또는 제일(除日)이라고 한다. 흔히 제야라 하면 한 해의 마지막이 없어지니 ‘없앨 제(除)’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이때의 제(除)는 ‘바뀐다[易]’는 의미이다. 강희자전에 의하면 “이때 사용되는 ‘제(除)’는 바뀐다는 의미로, 새해와 묵은해가 서로 바뀌므로 세제(歲除)라 표현하며, 흔히 제석으로도 쓴다[易也 新舊歲之交謂之歲除 俗云除夕]”고 풀이하고 있다. 이러한 한 해의 마지막 날에는 예로부터 밤을 지새우는 풍습, 즉 수야(守夜)가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문제가 약 400년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만나는 암환자의 투병 수기를 보면, ‘어느 날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더니 암 판정을 받았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로 시작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야기는 힘든 암 투병 과정과 함께 슬픈 결말을 맞게 된다. 사실 그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그만큼 암은 무서운 질병이니까. 하지만 간혹 해피엔딩도 나타난다. 첨단 기술과 의료진의 노력, 거기에 약간의 운이 작용하게 되면 이상적인 결과를 나타낸다. 분당차병원에서 만난 김주항(金周恒·63) 교수와 그의 환자 강옥선(康玉善·60)씨의 이야기가 그랬다.
스포츠 올드 팬들에게 우리나라 축구 선수 계보를 살펴보라고 하면 차범근과 함께 빠뜨리지 않고 등장할 인물이 있다. 스포츠 올드 팬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이야기할 한국 축구 선수 계보는 일제 강점기 유일하게 올림픽(1936년 베를린 대회)에 출전한 김용식을 첫머리로 ‘아시아의 황금 다리’ 최정민에 이어 이번 호의 주인공인 이회택(李會澤)을 거쳐 차범근 그리고 신세대 팬들에게 익숙한 홍명보, 박지성, 손흥민 등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회택은 1960~1970년대 한국 축구가 세계무대를 향해 나아가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번번이 좌절했던
가왕 조용필의 히트곡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가요는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5895m)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갖게 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킬리만자로를 오르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러한 공로로 조용필씨는 탄자니아 및 케냐 정부의 초청을 받아 감사장을 받기도 하였단다. 글ㆍ사진 변종경 언론인 지구 온난화로 킬리만자로 정상 부근의 만년설이 녹아 금세기 이후에는 만년설을 볼 수 없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등정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6000m에 달하는 세계 고
1976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한 노신사가 신문에 난 부음을 보고 빈소가 마련된 우리 집을 찾아왔다. 어머니는 그를 한눈에 알아봤다. 대한민국 초대 공보처장을 지낸 이철원 박사였다. 그는 아버지 생전에 신세를 많이 지었다며 이를 잊지 못하여 찾아왔다고 말하였다. 그제야 나는 아버지가 어릴 때 우리 형제들에게 들려주었던 얘기가 생각났다. 손우현 한림대 국제학부 객원교수 일제 말기에 선친은 종로 2가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중년 남자가 고장 난 기계가 있으면 수리하겠다고 아버지 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