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열리는 국제 규모의 영화제는 꽤 많다. 그중 한국의 3대 국제영화제라 일컬어지며 가장 먼저 개최되는 영화제가 바로 4월 말(4.27~5.6)에 열린 전주국제영화제다. 올해로 18회째를 맞은 전주국제영화제는 전주한옥마을의 인기와 더불어 영화보기 좋은 영화제로 입소문 나고 있다. 해가 갈수록 뜨거운 관심을 얻고 있는 전주국제영화제 현장을 다녀왔다. 영화보고 먹기 좋은 여행지, 전주 전주한옥마을이 급부상한 이유에서일까? 첫 방문이었지만 영화를 즐기는 것이 생각보다 쉬웠다. 여행객이 늘어서인지 게
한밤중 나타났다가 아침이면 사라지는 도깨비처럼, 비밀스러운 거래가 일어나던 도떼기시장을 이른바 ‘도깨비시장’이라 부르곤 했다. 이처럼 특정한 날과 시간이 되면 열리는 장이 있다. 바로 ‘서울밤도깨비야시장’이다. 청계천과 한강공원 등 물가 인근에서 열려 밤공기가 선선한 6월이면 산책 삼아 거닐기 제격이다. 서울밤도깨비야시장(이하 야시장)은 서울시에서 출범해 올해로 3회째를 맞이하는 행사다. 3월부터 10월까지 금·토요일(청계천은 토·일요일) 저녁마다 여의도·반포 한강공원과 청계천, 동대문디자인프라자(DDP)
정유년인 올해는 정유재란(1597.1~1598.12) 발발 420주년이다. 임진왜란으로부터는 427주년. 임진왜란이 치욕의 역사였다면, 정유재란은 왜군이 충남 이북에 발도 못 붙인 구국승전의 역사다. 그 전적지는 진주, 남원, 직산 등 삼남지방 곳곳에 있지만 옛 자취는 찾기 어렵다. 뚜렷한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은 왜군이 남해안을 중심으로 농성하던 성터들이다. 주로 경남 중동부 해안에 밀집한 왜성 터들도 오랜 세월 허물어지고 지워져 갈수록 희미해져간다. 왜성이라는 이유로 사적지 지정이 해제된 탓이다. 근래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그
시대를 상징하는 목소리가 있다. 포크음악의 전설 세시봉의 막내인 김세환의 목소리가 바로 그렇다. 1970년대를 수놓았던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노랫말과 귀공자 같은 외모와 함께 어우러져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화려하게 부활한 세시봉의 멤버로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며 새로운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는 그는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변치 않는 사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모습 그대로 천진난만한 긍정의 에너지로 가득했던 그와의 인터뷰. 관과 공연장에서 보던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전혀 그 나이로
광고 속 회사원은 낙하산을 타고 나타난 과장 때문에 상한 속을 인삼으로 달랜다. 주말 예능 프로그램 연기자들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다 지치자 인삼을 찾는다. 또 인삼 관련 매장은 이제 공항 면세점 한쪽을 차지하게 돼, 과거와는 위상이 달라졌다. 이렇듯 인삼은 우리 생활과 아주 밀접한 건강식품이 됐다. 뿐만 아니다. 마트에서 판매되는 음료나 초콜릿 등에도 인삼은 단골 첨가물이 됐다. 피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이렇게 넘쳐나는 인삼을 우리는 제대로 알고 먹는 것일까? 도움말 본디올대치한의원 최철한(崔哲漢) 원장
해마다 5월이면 줄줄이 이어지는 행사가 많아 분주한 느낌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지나고 한숨 돌릴 즈음이면 스승의 날이 이어진다. 이날이 되면 의례적으로 하게 되는 일일 명예교사 일을 빠뜨릴 수 없었는데, 그해 아들의 5학년 교실을 생각하면 자동적으로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그날, 약속된 시간이 되어 아들 녀석의 학교로 갔는데 교실 복도에 다다르자 왁자지껄 우당탕 개구쟁이들이 장난치는 소리가 교실 밖까지 들렸다. 필자는 담임선생님을 잠깐 만나 일일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뒤 수업 시작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연기는 내게 산소이자 숨구멍 같은 의미예요. 배우가 아닌 나를 생각할 수가 없어요. 배우인 게 정말 좋습니다. 가능만 하다면 다음 생에 태어나도 다시 배우를 하고 싶습니다.” 췌장암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는데도 연기에 방해가 된다며 진통제도 거부한 채 드라마 촬영을 마친 뒤 숨을 거둔 연기자 김영애의 말이다. 그녀는 KBS2 주말극 50회 촬영을 끝낸 지 얼마 안 된 4월 9일 66년간 치열하게 수놓았던 지상의 무대를 떠났다. 동시에 46년간의 연기자 삶도 마감했다. 에 함
햇살이 따사로운 봄날,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손관승(58) 전 iMBC 대표를 만났다. 전 MBC 베를린 특파원, 전 iMBC 대표이사, 교수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쳐온 그는 여러 개의 호칭을 갖고 있다. 스스로 부여한 현업(業)은 스토리 노마드, 즉 이야기 유목민이다. 강의와 강연, 기고와 저술을 하는 삶이다. 전반전은 수치와 가치를 추구한 2치의 삶이었다면 후반전은 브런치, 맘대로 시간을 쓰고 배울 수 있는 사치, 그리고 세상의 흐름을 한발 먼저 호흡해야 하는 눈치, 3치의 삶이란다. 그의 3치의 삶에 1치를 덧붙이고 싶다.
온라인상에서 유행하던 신조어를 이제는 일상생활에서도 어렵지 않게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글 파괴, 문법 파괴라는 지적도 받지만, 시대상을 반영하고 문화를 나타내는 표현도 제법 있다. 이제 신조어 이해는 젊은 세대와 자연스러운 대화를 위해 필요해 보인다. 아래 신조어 중 몇 개나 알고 있는지 확인해보자. - ㅇㅈ - 시조새 파킹 - 와우내 - 버카충 - 관종 - 더럽 - 말잇못 - #G - 어이가 아
매주 목요일 저녁. 기타 가방을 메고 드럼 스틱을 든 남자 다섯이 남양주의 한 대형 가구 상점에 출몰한다. 한두 번이 아니다. 이곳에 모여든 기간만 5년째,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같은 목적으로 수도 없이 만나왔다. 이들 중에는 40년이 더 된 사이도 있다. 으슥하고 인적 드문 곳에 자꾸 모여드는 이유는 철들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매주 같은 시간, 조건반사처럼 만나 연주하고 노래한다는 5인조 밴드 ‘철없는 아빠들’이다. 연습이 시작되면 철없는 아빠가 아닌 20대 꽃미남 밴드 시절로 돌아가는 것만 같다. 철없을 때
근래 탄생 100년 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가 줄지어 열리고 있다. 미술 애호가들은 우리나라 현대미술 거장들이 걸어온 길을 작품을 통해 가깝게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생겨 행복하기만 하다. 김환기(金煥基, 1913~1974), 박수근(朴壽根, 1914~1965), 유영국(劉永國, 1916~2002), 이중섭(李仲燮, 1916~1956), 장욱진(張旭鎭, 1917~1990) 그리고 박고석(朴古石, 1917~2002) 등이 그들이다. 그중 가장 최근에 열린 고 박고석 화가의 뜻깊은 전시회를 찾아 나섰다. ‘산(山)의 화가’로
“요즘 재미난 일도 없고 밥맛이 자꾸 없어져.” “남편이 은퇴하고 집에만 있으니 날로 스트레스만 쌓여.” “이제 자식도 다 크고 할 일 했으니 혼자 사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 시니어들이 만나면 흔히 하는 말이다. 몇 년 계획을 세우고 노년 준비를 했지만 자꾸 움츠러드는 기분…. 신체적, 정신적 변화 때문에 오는 우울 증상이다. 취미로 운동이라도 하면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 있지만 이미 그 한계를 벗어난 감정도 있다. 서울 서초구 소재 서울청정신건강의학과 정동청 원장에게 우울증과 치료 방법에 대해 자문해봤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6월이면, 계곡이나 바닷가 인근 지역 축제뿐만 아니라 각종 문화, 먹거리 관련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이러한 축제 일정은 우연히 광고를 보거나 현수막을 발견하지 않는다면 놓치기 십상이다. 흥미롭고 볼거리 가득한 전국 축제 일정을 모아 보기 쉽게 제공하는 앱 ‘헤이페스티벌’을 이용해보자. SNS소통연구소 이종구 소장 1. 앱 다운로드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헤이페스티벌(또는 heyfestival)’을 검색, 무료로 다운로드한다.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계정으로
과거 족보나 문헌들을 조사해보면 고려시대(918~1392년) 임금 34명의 평균수명은 42.3세, 조선시대(1392~1910년) 임금 27명의 평균수명은 46.1세로 나타난다. 왕들의 수명은 40세 전후에 불과했던 셈이다. 조선시대 임금 중 가장 장수했던 임금은 21대 영조로, 현재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을 뛰어넘는 83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그 시대의 장수 비결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필자는 시골에서 홀로 생활하시던 외조모가 몇 년 전 향년 92세로 굴곡 많은 생을 마감하시는 모습을 보며 100세 시대
뭐 대수랄 게 있나? 오히려 추세 아닌가? 설거지하고 청소기 돌리고 또 빨래 개고 등등 그간 하지 않았던 일이라 처음엔 어색했지만 막상 해보니 점차 재미있기까지 해서 ‘체질인가?’ 하며 속으로 놀라기까지 한다. 돌이켜보니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 부엌 근처엔 갈 일이 없었고 밤중에 보채는 아이들 업어줄 일도 없었다. 그런데 요즘 전에 없던 생각이 든다. 한 번이라도 더 안아주고 싶은 아이들, 뭐라도 직접 만들어 주고픈 아내. 소중한 가족이 바로 곁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다는 생각은 나이 탓일까? 깔끔하니 널찍한 공간, 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