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사람 사는 곳이었다. 돈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는 곳, 그곳이 선진국 땅이었다. 하기야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이 최고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그러나 거기에도 따라야 할 혹독한 몇 가지 조건이 있었다. 9.11테러가 일어나고 미국 내에 모든 일들이 심상치가 않았다. 이곳저곳 규제가 심해졌고 당연히 이민정책에도 심각한 정체가 일어났다. 더구나 테러범들이 학생비자로 넘어와 수 천명의 사상자를 냈고, 사회는 어두운 혼란 속으로 치달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서둘러 변호사를 만났다. 비자를
한국무역협회 창립 70주년 기념, ‘2016 생생(生生)무역수기 공모전’ 수상작을 책으로 만들었다. 필자가 본 책 중에 가장 고급의 두툼한 아트지로 140쪽의 그럴싸한 책자이다. 여기 필자도 원고를 보내고 우수상을 수상했다. 무역협회는 필자와 인연이 있다면 있는 단체이다. 실질적인 도움을 받은 일은 없으나 몇 년전 무역협회 아이디어 공모전에 공동세무사 제도를 제안하여 1등 수상을 한 적이 있다. 또한 댄스스포츠를 실습이 아닌 이론 강의를 처음으로 한 곳이다. 수상작들을 읽어 보니 각자 생생한 경험담들이라 재미있어서 순
대한한방 골병학회 회장 김산, 수석부회장 조상현 공저의 책이다. 건강 서적은 많이 읽었지만, 뼈에 대해 쓴 책은 전문 서적이 아니고 일반인을 위해 쓴 책으로는 처음이다. “골병(骨病) 들었다”라는 말은 자주 듣는 말이다. 사람들은 “골병들었다!” 하면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정작 크게 놀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통을 동반하는 아주 아픈 병에 ‘골병’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그저 참기 힘든 고통에 붙이는 이름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방에 골병이라고 있다는 것이다.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멀쩡한 사람이 종종 있다고
늘 땀이 많은 체질이다. 군대 있을 때는 잡초 제거 작업을 하던 중이었는데 내가 땀을 많이 흘리자 작업관이 나는 그만하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농땡이 치느라고 땀도 안 났는데 나는 열심히 했으므로 땀이 많이 난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겉보기로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이라 그 덕을 본 셈이다. 피부가 좋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땀이 노폐물을 빨리 빼주기 때문에 그렇다는 설명을 들은 일도 있다. 격한 운동 후 땀을 많이 흘리고 나면 피부가 뽀송뽀송해진 느낌이 나기는 한다. 땀을 많이 흘리면 기분이 상쾌해지기는 한다. 피부온
작은 가슴에 기쁨과 희망, 좌절도 품고 산다. 마치 뷔페식당처럼 한 접시에 담겨 있다. 세 가지 이상의 물감을 섞으면 탁한 색이 나온다. 그래서일까 지하철도 그런 것 같다. 붐비는 시간이었다. 옷차림도 산뜻한 말쑥한 청년이 내 뒤에 섰다. 어디선가 걸려 온 전화를 받는 것 같았다. “ 선배님, 안녕하세요. 아, 그 일은 제가 처리 못 했는데요. 그럼요 제가 해야죠. 당연하죠. 안심하세요. 곧 처리하겠습니다.” 아주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들렸다. “ 아
어른들에게는 누가 봐도 잘못을 범했다는 게 확실한 일인데도 그걸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은 힘든 작업 같다. 미안하다 아니면 용서해달라고 하는 말을 해야만 한다면 나이어린 아이들에게라도 하는 습관을 누구나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나는 믿어왔다. 그러나 그런 어른을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인격에 도달한 사람이 드물다는 증거라고 보인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드라마에서도 자주 등장하지만 정말로 선생님까지도 학생들에게 무릎을 반듯하게 꿇고 사과하는 장면을 봤다.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할 때 나이가 전연 필요하지 않다는 걸
전학한지 한 일주일 되었을 가였을 때, 혼자 집안 청소를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외국에 가서 제일 겁나고 무서운 게 전화 벨 울리는 것이다. 영어는 그래도 배웠다는 게 있어서 그런지 덤벙거리지만 말고 침착하게 잘 듣고 있으면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단어의 뜻이라도 알 수 있어 짧은 대답 장도는 무난했다. 그러나 일어는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었고 상대방이 일어로 말하는데 내 입은 왜 영어로 대답을 하는가 말이다!? 내 영어에 상대방이 놀라 서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게 되고 서로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서 끊게 되었다. 끊고
요즘 젊은 여자들 중에는 발음을 이상하게 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드라마에서도 보이고 커피숍에서도 옆 테이블에 앉은 젊은 여자들 대화에서 종종 들을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전철”을 발음할 때 혀를 전부 사용하지 않고 혀끝만 사용하는 것이다. 목소리는 성대를 울려서 입모양과 얼굴 근육을 이용해서 발음이 나온다. 그런데 얼굴 근육도 안 움직이고 입 모양도 거의 안 움직인다. 성대를 울리기보다 간단히 내뿜는 호흡을 사용해서 발음하기 때문에 영어의 ‘Z' 발음이 난다. 겉멋인지는 몰라도 듣기에 상당히 거북하다. 말투도 빨라서 너무
이번 리우 올림픽 경기를 보면서 운동경기에서 키가 작은 선수들은 고전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태권도에서 가까스로 금메달을 딴 김소희 선수도 상대방이 다리를 반 쯤 접어서 견제하자 들어가서 공격하기가 어려웠다. 상대방보다 아래쪽에 있다 보니 수비하기 급급해서 점수를 지키기 위해 소극적인 경기를 한다고 주의 경고를 여러 차례 받았다. 하마터면 연장에 들어가 금메달을 놓칠 뻔 했다. 사실 필자도 태권도, 유도, 복싱을 배울 때 뼈저리게 느꼈던 사실이다. 똑 같이 동시에 팔 다리를 뻗어도 나보다 팔 다리가 긴 상대방
친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재혼하셨다. 벌써 30년 전 일이다. 아버지가 유난히 주사가 심하고 권위주의적이라 우리 형제들은 멀리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참에 아버지가 재혼하셨으니 큰 짐을 던 셈이다. 20년을 같이 사시다가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셨다. 새 어미니가 혼자가 되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당연히 집안 행사 때마다 찾아 갔었지만 보통 때 일부러 찾아 가자니 마땅치 않았다. 우리가 가면 이것저것 먹을 것을 만들어야 하니 움직여야 하는데 폐를 끼치는 것 같고 막상 만나봐야 서먹하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본 것도 아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양 사람들에 비해 눈이 큰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동양계에서는 일본 배우들 중에 눈이 큰 사람이 가끔 있을 정도이다. 서양 배우들은 오드리 헵번부터 앤 해서웨이 등 눈이 큰 여배우가 많아서 눈이 작은 배우를 찾기 힘들 정도이다. 그런데 요즘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눈이 큰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성형 덕분에 눈이 커진 경우도 있겠으나 성형이 아니더라도 어릴 때부터 눈을 크게 뜨다보면 눈이 크게 보이는 것이다. 마치 수리부엉이 눈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과거에는 크게 놀라거나 할 때만 그런 표정이 나왔었
시니어 어르신 한분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건 도서관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라는 말씀이 있었다. 키워드가 되는 단어 시니어, 도서관을 포털사이트 검색 창에 넣어보고 깜짝 놀래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겪은 내용을 올린 글이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는데 선풍기와 좋은 자리는 무조건 막무가내로 시니어 어른(어린학생들은 이런 단어가 아닌 것으로 표현했음)이 차지하고 어린 학생들에게 불편함을 주어서 상당히 불만을 토로하는 예의없는 어르신들에 대한 성토의 글이었다. 시니어들끼리 있는 자리는 물론 나이대가 다양
저는 옷 입는 데는 잠방이입니다. 무신경하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집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걸치고 나왔다가 푸른색 양복 하의에 노란색 스포츠 양말 차림이 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한심한 것은 이 차림이 괴상망측하단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온종일 돌아다녔다는 겁니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서 아내로부터 “패션 테러리스트”란 핀잔도 듣고서야 문제의 본질을 파악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저보다 연배가 위인 시니어들도 옷에 신경을 쓰시는 분들이 많다는 걸 기획기사 ‘내가 패셔니스트, 패셔니스타- 나만의 코디법’ 데스크를 보면
한번 맛을 보면 익숙해지는 것일까? 때로는 아깝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자식들이 주는 선물이니 두말없이 받아들이고, 덥석 따라나섰다. 푹신한 침대에 누워보니 신세계가 따로 없다. 사람이 간사한지라 좋은 맛을 보니 더 나은 것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필자도 알뜰한 사람이라 불필요할 곳에는 쓸데없이 낭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필자의 젊은 시절에는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사람들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에 젊은이들은 그렇지가 않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어지간하면
여러분들도 알고 계셨는지요? 영화도 VIP 영화관에서 보면 마음만은 부자가 따로 없다는 것을. 한 번쯤은 푹신한 의자에 누워 대형 스크린을 즐겨 보니 상류사회의 재미도 그럴듯한 것 같았다. 필자는 미국에서 오랜 세월을 살았지만, 한국에 와서야 영화관람에도 격식이 있음을 처음으로 알았다. 지난겨울, 큰딸은 아직 한국이 낯선 필자에게 영화티켓 예매 문자를 보내왔다. 바깥바람도 쏘일 겸, 남편과 함께 명동에 있는 한 시네마로 이런저런 구경을 하며 전철을 몇 번이나 갈아타고 갔다. 그 옛날의 명동거리는 여전히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