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종편 보기다. 그것도 토론 프로그램이다. 평소 드라마 위주로 보던 사람이 매일 시사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으니 남편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래도 재미있으니 어쩌랴. 국가적 중대사를 논하고 있는데 재미를 운운하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지만, 사실 까놓고 얘기하는데 재미가 없다면 그런 프로를 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드라마보다 흥미진진하다. 종편 방송사들도 그 점을 의식했는지 토론을 거의 예능 수준으로 다양하게 꾸미고 OX 퀴즈까지 도입한다. 시청률도 많이 올라 이번 최순실 사건의 최대 수혜자는 종편방송이라
‘동안(童顔)이란 생명력이 왕성해 노화의 증상이 전혀 없는 얼굴’이라는 정의를 내리고 칼을 대지 않는 시술로 본연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래성형외과 김종환(66) 원장. 메디컬아티스트라고도 불릴 만큼 예술을 사랑하고, 행복을 사유하는 그는 스스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노라 자부한다. 철저한 시간 관리와 변치 않는 삶의 철학을 지녔기에 가능한 결과였다고. 김 원장이 이야기하는 성공의 의미와 행복의 미학을 들어봤다. 최고의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성공적인 삶이라고 말하는 김 원장은 요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필자는 좋은 모임을 여럿 갖고 있는데 고등학교나 대학교친구 모임, 그리고 우리 아이 초등학교 때부터 만나고 있는 학부모 모임 등이다. 그중에서 남편 때문에 갖게 된 좋은 모임이 있다. 남편의 대학친구들 모임으로 멤버는 다섯 명이지만 각자의 부인과 아이들까지 합하면 매우 큰 인원수가 된다. 필자가 결혼할 당시 남편과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결혼을 한 분들이었다. 그때는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집으로 초대하여 음식을 만들어 대접을 하였는데 필자가 갓 결혼했을 때 필자는 요리 솜씨가 형편없었다. 그런데 세 명의 부인들은 정말 훌
이제 사진은 대중화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스마트폰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할 수 있다. 아름답게 보이는 장면이 있으면 스마트폰을 바로 꺼내 촬영을 망설이지 않는다. 반면에 사진을 취미로 막 시작했거나, 조금 배운 사람들은 무엇을 찍어야 할지 망설인다. 사진 소재를 제대로 찾지 못하는 것이다. 또 사진을 시작한 지 꽤 됐고 사진 찍기가 취미인 사람들도 촬영지에 가면 주변을 휙 둘러본 후 “찍을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하며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 일쑤다. 하지만 피사체를 보는 마음과 시선을 달리하면 주변
노인의 나이기준이 65세다. 유엔이 정했다고 하지만 왜 하필 65세인가?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1815~1898)가 독일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국민들을 노동현장으로 내몰면서 지금 열심히 일하면 65세 이후부터는 국가가 연금으로 놀고먹도록 해주겠다고 설득한 나이가 노년의 기준이 되었다. 비스마르크는 강력한 부국강병정책을 써서 1871년 독일 통일을 완성한 사람이다. 노인이 되면 국가가 책임진다면 구미가 당기는 말이지만 그 당시 독일의 평균수명이 40대라고 하니 비스마르크 입장에서는 책임지지 못할 거짓말을 했다고 믿기도 어렵다. 아니
유명인들의 작은 생활습관이 그 사람의 업적보다 더 잘 알려지기도 한다. 철학자 칸트의 산책 습관도 그렇다. 칸트의 산책 시간으로 주변 사람들이 시간을 맞췄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칸트의 철학 이론이 거론되는 곳에서는 늘 함께 입에 올리는 이야기다. 필자가 앞뒤 가리지 않고 일만 했었던 시절이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피로해져야 강제적인 휴식을 하곤 했는데 그 휴식시간이 거의 정확했다. 일탈이라도 없으면 모든 정서가 석고화되겠다 싶어 어느 날 바람 따라 나들이를 한 곳이 맨해튼이다. 맨해튼 기차의 종착역인 펜실베이니아 역에서
노후준비에도 6하원칙이 필요한 시대라고 얘기들을 한다. 6하원칙이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를 일컫는 말이다. 즉 who, when, where, what, why, how의 여섯 가지 기본이 되는 조건을 말한다. 얼마 전 서울시 50플러스센터에서 모집하는 모더레이터에 응모해 교육을 받고 있다. 서류 면접과 교육을 거치면 각 캠퍼스에 배치되어 일하게 된다. 현재 서부, 노원, 중부, 영등포, 동작, 도심 캠퍼스에서 3,000명가량의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다. 시니어들을 위한 교육 과정은 스마트폰으로 하는 SNS
우리 동네 버스정류장에 빨간 우체통이 하나 서 있다. 처음 생겼을 땐 산뜻한 빨강으로 깨끗했는데 요즘은 바로 옆에 생긴 쓰레기통 때문인지 좀 어둡고 지저분해 보여 안쓰러운 느낌이 든다. 편지를 넣는 사람이 드무니 더욱 쓸쓸해 보이는 우체통이다. 어떤 사람은 쓰레기를 넣기도 하고 먹다 만 아이스크림을 집어넣어 안의 편지에 얼룩을 남기기도 하는 몰상식한 일도 벌어진다니 안타깝기만 하다. 편지는 언제나 생각해도 가슴 떨리는 아련한 그리움을 동반한다. 정성스럽게 쓴 편지를 곱게 접어 봉투에 담고 보낼 곳을 적어 우체통에 넣을 때는 가
도시 숲을 헤치고 빠른 속도로 버스가 달린다. 희미하게 햇살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한다. 짙은 갈색 나무 끝이 파란 하늘 배경으로 흔들흔들, 구름의 속도로 움직인다. 작은 버스정류장에 내려 차갑고 신선한 공기와 마주하며 이정표를 따라 걷는다. 곧 다다른 곳은 김수영 문학관. 문체의 자유를 넘어 진정한 자유세계를 위해 끊임없이 저항하고 아파했던 순수시인 김수영의 세계가 구름이 가는 속도만큼 잔잔히 흐른다. 북한산 신선한 공기가 김수영과 어우러지다 중·고등학교 시절 김수영에 대해 그저 ‘한국문학의 대표적 자유시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담은 작품으로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까지 극찬을 받아온 뮤지컬 . 이번 무대의 수장을 맡은 윤호진 연출가가 조명하는 우리 시대 진정한 영웅의 의미를 되새겨봤다. 안중근 의사의 어떤 점을 가장 부각하고자 했는가? 여러 해 거듭한 작품이지만, 새로 올릴 때마다 간과했던 부분을 찾곤 한다. 안중근 의사께서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붓을 놓지 못하고 집필했던 ‘동양평화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동양평화론’은 미처 완성되지 못하고 서론에 그치긴 했지만 젊은 청년이 한 나라의
조선시대 초상화를 보면서 다양한 피부 증상을 확인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조선시대 후기의 걸출한 문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당헌 서매수(戇憲 徐邁修, 1731~1818)의 초상화를 보노라면 심한 여드름 자국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피부과학을 전공한 뒤 그동안 수많은 여드름 환자를 진료해온 필자가 보기에도 서매수 초상화에 묘사된 여드름 자국은 생생하기 이를 데 없다. 서매수 초상화를 처음 봤을 때 필자는 조선시대 초상화에서 흔히 관찰되는 천연두 자국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얽은 자국’이 코, 입 그리고 턱 주위에
“샤오메이즈(小美子, 이쁜아) 넌 죽지 않아. 꼭 살아날 거야. 걱정하지 마.” 오빠는 막내의 손을 꼭 잡으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서해를 넘어 한국까지 날아온 오빠가 동생은 너무나 고맙고 미안했다. 그렇게 오빠의 조혈모세포는 동생 몸으로 흘러들어 생명을 살렸다. 바로 중국 출신의 귀화인 등희하(滕希霞·38)씨의 이야기다. 이 감동적인 만남에는 든든한 후원자 가천대 길병원 혈액종양내과의 박진희(朴眞嬉·51) 교수가 있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사진 오병돈 프리랜서(S
며느리나 사위는 내가 낳은 피붙이는 아니지만 친자식과 함께 사는 자식 같은 존재 관계다. 며느리보고 ‘나는 널 딸처럼 생각한다’ 라는 말은 따지고 보면 딸이 아니라는 말이다. 막역한 친자식관계가 아니라 때로는 눈치도 보지만 때로는 할 말 다 못하고 사는 사이다. 예전에는 출가외인이라 하여 딸은 남처럼 대해야 된다하고 사위는 백년손님 이라 하여 씨 암 닭도 잡아주는 영원한 손님처럼 융숭히 대접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아들의 자식보다 딸의 자식을 키우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친가보다는 처가 가까이에 집을 얻는 젊은
창덕궁 후원에 부용지라는 연못이 있다. 거기 갈 때마다 흐뭇한 추억에 잠긴다. 연못가에 큰 단풍나무가 한 그루 있다. 거기 올라가 찍은 사진이 필자 인생에서 큰 추억을 남기게 되었다. 1972년 대학교 사진반에서 활동할 때의 일이다. 창덕궁 후원에서 전국의 프로 아마추어가 모두 참가하는 ‘전국 사진 촬영대회’가 있었다. 필자의 집에서는 필자가 사진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술 사진을 찍을만한 카메라도 없었다. ‘미놀타 하이매틱’이라는 2안리플렉스 카메라로 기념사진이나 찍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술 사진을 찍기 위해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후배에게 자주 전화가 왔다. 필자가 사는 동네 근처에 오피스텔 분양사무실을 차렸으니 한번 오라는 것이었다. 그리 가깝던 사이도 아니라서 알았다고만 했는데 워낙 자주 연락을 해오니 한번 가보기로 했다. 교통이 좋은 사거리 번듯한 건물에 분양사무실을 차리고 있었다. 강남에 갈 때마다 길거리에서 아줌마들이 분양광고지와 물티슈를 나눠주던 그 광경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그럴싸하게 꾸며 놓았다. 커피도 주고 요즘 추운 날씨에 요긴한 핫팩도 한웅큼 쥐어 주었다. 먼저 모델하우스를 보여줬다. 20층 규모에 총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