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더는 책을 모아 애지중지 보관하지 않는다. 책의 편리한 이용을 위하여 디지털화하였다. 책은 기증하여 후세대에 공헌하기도 한다. ◇이사 때마다 속절없이 사라지는 책 젊은 시절 지금처럼 이삿짐센터가 있지도 않았고, 실어 나를 짐도 많지 않았다. 휴일을 잡아 친구끼리 품앗이 이사가 당시의 풍속이었다. 가까운 곳은 손수레로, 먼 곳은 삼륜차에 짐과 사람이 짐칸에 뒤섞여 거리를 내달렸다. 당시 짐칸에 탑승하는 것이 교통경찰의 집중단속 대상이었다. 이사 때면 신줏단지 모시듯 초등학교 때부터 보관하였던 책들은 거의 사망 선고를 받는
‘낮잠 예찬’이라는 말을 들으면 마치 게으름뱅이들의 화려한 변명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나폴레옹, 피카소, 에디슨, 처칠, 루스벨트 등 유명 인사들이 ‘낮잠꾸러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 지도자를 이끄는 원동력 ‘낮잠’ 수많은 낮잠 예찬론자 중 대표적인 인물을 꼽자면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1874~1965) 전 영국 총리를 들 수 있다.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원동력이 ‘낮잠’이라고 했을 만큼 낮
테레사 수녀의 통신에 따르면 ‘인생이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이다. 덧없고 허무한 게 삶이라는 얘기다. 과연 그렇지 않던가? 부평초처럼 떠돌다 허둥지둥 저승에 입문하기 십상인 게 삶이다. 그저 따개비처럼 견고하게 들러붙은 타성의 노예로 간신히 살다가 파장을 보기 쉽다. 어이하나? 저마다 나름의 대책과 궁리가 있을 터인데, 백발의 사진가 이종원씨(72)는 산골로 들어가는 일을 방책으로 삼았다. 내내 도시에서 살았던 그는, 인생의 다양한 골목골목을 편력했다. 공무원으로, 사진가로, 교수로, 언론인으로 뛰며 존재를 돋우길 거듭했다
도종환(都鍾煥·62)의 는 그가 교사직을 그만두고 깊은 산 속 황토 집에 머물며 쓴 산문집이다. 책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그는 가슴 따뜻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시인으로 불렸지만, 10여 년이 흐른 지금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이라는 수식어가 덧붙었다. 그동안 세상도 참 많이 변했고, 그를 향한 몇몇 대중의 눈길도 달라졌지만 그는 여전히 들국화를 좋아하고, 연민의 눈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고자 한다.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10여 년 전, ‘자율신경 실
시골의 한 장터를 배경으로 한 많고 정 많은 우리네 이야기를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한 작품 . 2014년에 이어 극단 ‘수(秀)’의 구태환 연출이 다시 한 번 지휘봉을 잡았다. “따뜻한 시선으로 우리의 가슴을 어루만져 그 아픔을 달래고 싶다”는 구 연출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지난 공연과 달라진 점 2014년 동숭아트센터 공연 이후 2년 만에 작품을 읽으면서 세월이 주는 감성과 메시지가 다름을 인식했고, 그 무게에 다시 놀랐다. 배우들이 달라지면서 그들이 가진 힘으로 새로운 작품의 모습
발이 편한 신발이 필요하다. 인기가 많다고, SNS 평이 좋다고 모두 나에게 적합한 신발은 아니다. 워킹화는 가볍고 편안하면서 튼튼해야 한다. 여기에 세련된 생김새까지 갖췄다면 금상첨화. 기능성 컴포트 릴라릴라 슈즈 숍에서 여봐란듯이 내놓은 워킹화를 체험해 보자. 체험자2060클럽 가재산 회장 jska@unitel.co.kr 발 치수 265mm 9월은 한없이 걷고 싶어지는 때다. 걷기 운동은 튼튼한 두 다리와 신발 한 켤레만 있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가장 쉽고 편한 유산소 운동이다. “신발이야 대충 운동화 아무
계절의 기도 숱한 욕심도 갈등의 여름을 지나, 이젠 가을의 성숙함으로 풍성한 사랑 하게 하소서. 마른 낙엽 굴리고 옷 벗은 기둥에도 삶은 존재 하듯, 차디찬 빈 둥지 초라함에 몸을 떨어도 쌓아온 추억의 두께만큼 오가는 계절, 넉넉한 그리움만으로 푸근한 사랑 품게 하소서. 불어오는 낯선 바람에도 몸 하나로 버틸 아름다운 가난, 허망한 세월이 가져다 준 선물뿐이라 해도, 쓸쓸한 마음 내리는 그 계절 상념의 길을, 한여름 뜨거운 사랑 속에 걷게 하소서. 피어 오르던 봄날, 불타던 여름정열, 잿빛 남긴 하얀 겨울, 그리고 떨려오는 가을
필자 집 작은방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의 아지트이다. 필자는 결혼 후 시댁에서 살다가 아이가 4세 되던 해 분가했다. 서울 장충동 시댁이 저택 같은 큰 집이었지만 독립해서 남편과 아들과 셋이서만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서울 변두리 방 2개짜리 작은 아파트에 망설임 없이 너무나 행복한 마음으로 이사했었다. 시어른 참견 없이 필자가 주체가 되어 가정을 꾸린다는 것에 매우 설레고 기대감에 찼으며 비로소 자기 살림을 하는 어른이 된 것 같아 대견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 실은 친정 가까이 오느라 이 아파트를 선택했
칡은 시골 아이들의 주전부리였습니다. 동네 친구들 하고 삽과 괭이를 들고 마을 뒷산에 올라가서 칡넝쿨 중 크고 실한 놈을 골라 괭이로 그 주위를 파들어 갑니다. 옆에서 친구들이 칡넝쿨을 잡아 당겨주면 파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낮은 산이어서 큰 칡은 없고 아이들 팔뚝 굵기 정도입니다. 톱으로 5~10cm정도씩 잘라서 입으로 겉껍질을 찢어서 뱉어 버리고 속에 하얀 칡 속살을 씹으면 약간 쓴맛과 단맛의 칡 물이 나옵니다. 껌 씹듯이 한참을 씹어 단물이 다 빠지면 버리고 또 뜯어서 씹고 뱉고를 연이어 합니다. 칡의 물은 시간이 지나면 까
어제도 택배를 받았고 오늘도 배송되어 올 택배를 기다리는 중이다. 전에는 물건은 시장이나 백화점에 가서 사는 것으로 알고 살았는데 이제는 편리하게 쇼핑할 방법이 매우 다양해졌다. 직접 발품을 팔지 않아도 인터넷을 통해 앉은 자리에서 클릭만으로 구매하고 넘쳐나는 TV 홈쇼핑을 보면서는 호스트의 화려한 말솜씨에 홀려 물건을 사기도 한다. 직장인으로 바빠서 시장갈 시간이 없는 사람들뿐 아니라 여러 물건을 비교해 보고 살 수 있는 온라인 쇼핑을 언젠가부터는 누구라도 즐기게 되었다. 필자도 인터넷에 단골로 사용하는 쇼핑몰이 대여섯 군데나
뮤지컬 애호가가 아니라도 ‘브로드웨이 42번가‘라는 제목은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한 작품이다.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공연된 후 5,000회 이상의 장기 공연, 토니상 9개 부문 수상 등 흥행성과 작품성을 갖춘 기념비적 뮤지컬로 세계적으로 유명해 졌고 우리나라도 1996년 초연 이래 20여 년 동안 꾸준히 사랑받으며 무대에 올려졌다. 이번에 국내 초연 20주년을 기념하여 예술의 전당에서 다시 공연을 시작했다고 한다. 로열석의 티켓이 생겨서 친구와 보러 가기로 했다. 먼저 브로드웨이 42번가를 생각하면 현란하고 숨 가쁘게 펼쳐
책을 3~4백 권을 지하실 네 벽 가득하게 정리해서 간직했었다. 네 식구가 서로 필요해서 읽거나 사들였던 책들일 것이었다. 어느 해 여름에 비가 엄청나게 오면서 압구정 우리 집 지하실에 물이 차면서 1층도... 수해를 입은 것이다. 물이 빠지면서 이리저리 엉망으로 물 먹은 책 표지들이 부풀어 올라온 것, 다 찢겨져 나간 것들에 넋을 잃고 물에 젖은 책들과 세간 사리들을 보면서 침통했었고 나는 책을 절대로 모아놓지 말자는 결심을 했다. 그렇게 고이고이 간직해왔던 손때 묻은 책들을 보면서 아까워서 숨이 멎을 듯 했다. 젊음이 고인 감성
이 방과 처음 만나 건 7년 전이 2010년. 누구보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어머니가 혼자 있는 집에 다녀가는 기분보다는 적적함을 나누며 살아가는 게 나을 거 같다는 생각에, 여러 번 이 얘기 저 얘기 나눈 뒤에 쉽지는 않겠지만 이해해가며 살아보자는 의견일치를 보게 봤다. 어느 누구도 주위에서 잘 하는 일이라고 칭찬이나 격려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옛날 어렸을 때처럼 모녀 간이니 적당히 그렇게 지내면 되겠지 하며 일용품과 옷가지들이 섞인 이삿짐이 오던 날 축하(?)주로 짠! 까지 해가며 가지가지 옛날을 회상하는 얘기들을 펼쳐가며 슬픔+
나만의 아지트로 가는 길은 누구도 눈치채기 어렵다. 아니 길이 없다고 하는 편이 좋겠다. 북한산 좁은 등산로를 오르다가 오 부 능선 어느 지점에서 등산로를 살짝 빠져서 큰 나무 사이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약간 경사가 있는 비탈길을 내려간다. 그 비탈길은 나무가 빽빽해서 주변 지형과 하늘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조심조심 내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 마술처럼 눈앞에 넓고 커다란 바위가 나타나고 그 바위에 오르면 시야가 확 트인다. 북한산 인수봉의 거대한 자태가 하늘에 닿아 있고 그 아래로 흘러내리는 수많은 능선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공자가 강조한 중용의 세계는 어떤 것일까? 우리는 생활 중 중용의 중요성에 대하여 수없이 듣고 배어왔다. 중용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중용을 흔히 쉽게 A+B/2=C정도로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중용은 수학적 평균의미를 넘어 심오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 즉 집합 A와 집합 B의 교집합 C와 같은 것이다. A도 B도 아니면서 A와 B를 함께 수용하는 A+B+C의 의미가 있다. 아니 A도 되고 B도 되면서 그 둘만이 아닌 제 3의 세계가 중용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선과 악의 중용은 선과 악을 다 수용하여 나아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