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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고창군 아산면 산골로 귀촌한 윤정현 신부, 욕심일랑 산 아래 내려놓고 검박하게 살리라
- 산중에 눈이 내린다. 폭설이다. 천지가 마주 붙어 눈보라에 휘감긴다. 어렵사리 차를 몰아 찾아든 산간 고샅엔 오두막 한 채. 대문도 울도 없다. 사람이 살 만한 최소치의 사이즈를 구현한 이 갸륵한 건물은 원시적이거나 전위적이다. 한눈에 집주인의 의도가 짚이는 집이다. 욕심일랑 산 아래 고이 내려놓고 검박하게 살리라, 그런 내심이 읽힌다. 대한성공회 윤정현 신부(64)의 집이다. 그가 이 산중으로 귀촌한 건 3년 전. 귀촌 초기, 윤 신부는 자그만 중고 컨테이너를 산기슭에 앉혀 거기에 살았다. 그러나 불편이 컸단다. 여름엔 찜통처
- 박원식 소설가 2018-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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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신 김금화와 소소한 일상을 나누다
- 예닐곱 어렸을 때부터 아는 소리를 입에 담았다. 열두 살부터 무병을 앓고 열일곱에 만신(萬神)이 됐다. 내림굿을 해준 이는 외할머니였다. 나라 만신으로 불리는 김금화(金錦花·87) 선생의 무당 인생 첫 장을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무당이 된 이후 세상 숱한 질문과 마주한다. 제 인생은 어떻게 될까요? 만사형통합니까? 크고 작은 인간사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신을 모신 지 올해로 71년. 오늘도 내일도, 어쩌면 죽는 날까지도 끊임없이 질문을 받게 될 만신. 그녀와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신의 목소리를 전해 듣는 거
- 권지현 기자 2018-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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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인 전문가 홍익희 교수의 고백, 인생 2막의 반전과 역전 그리고 결전
- 국내 최고의 유대인 전문가인 홍익희 세종대학교 대우교수(65). 그와의 3시간여 ‘인생 2막’ 인터뷰는 한마디로 선입관의 전복이었다. 수치에 밝은 냉철한 전문가일 것 같았지만 인간미 넘치는 인문학자에 가까웠다. 직선의 경력을 쾌속으로 걸어왔을 것 같지만 굽이굽이 곡선의 지각인생, 갈지(之) 자 이력이었다. 경력과 브랜드를 보고서 지레 짐작한 선입관은 무너졌다. 홍익희 교수의 인생은 반전과 역전 그리고 결전의 파노라마였다. 첫째 반전, 홍익희 세종대 대우교수는 32년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생활을 한 뼛속까지 코트라(KOTRA)맨
-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장 기자 2018-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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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세대 커피 명인, 여종훈
- “맛이 서로 싸우는 걸 알아야 해요.” 명인의 한마디는 예사롭지 않았다. 20여 년간 커피와 함께한 삶. 육화된 시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엄살도 없고 과장도 없다. 오로지 그 세월과 맞짱 뜨듯 결투한 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절창이다. 국내에 커피 로스터가 열두 대밖에 없던 시절, 일본에서 로스팅 기술을 배우고 돌아와 그가 문을 연 청담동 ‘커피미학’에는 각지에서 맛을 보러 온 커피 애호가들로 북적였다. “여종훈 커피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비싸다”는 소문에도 아랑곳없었다. 20대 때부터 커피를 달고 살았다. 대부분의
- 전경심 교열편집위원 2018-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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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권호, 그의 금메달이 더욱 빛나는 이유
- 키 157cm의 작은 체구, ‘작은 거인’ 심권호(沈權虎·45)는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아시아 선수권에서 총 9개의 금메달을 쓸어담으며 한 번도 하기 어렵다는 그랜드슬램을 48kg, 54kg 두 체급에서 모두 달성했다. 2014년엔 국제레슬링연맹이 선정하는 위대한 선수로 뽑히며 아시아 지역 그레코로만형 선수 중에선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다. 사람들은 그를 세계 레슬링 경량급의 전설이라고 부른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금메달, 1995년 프라하 세계선수권 금메달, 1995년과
- 정지은 기자 2018-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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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을 노래하는 가객 최백호
- 접하는 순간 누구나 직관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곧 칠순을 앞두고 있는 최백호(崔白虎·68) 가 부르는 노래에는 수많은 감정이 담겨 있다는 것을. 그 소리는 흐르는 세월 속에서 수만 가지 감각들이 응축되어 만들어진 예술품에 가까운 인상을 준다. 그렇게 자신만의 독보적인 세계를 만들어낸 흔치 않은 예술가의 자리를 갖게 된 그가 이제 영화감독이라는 오랜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멈추지 않고 종합적인 예술인으로서의 자신을 완성해가고 있는 최백호를 만나 미래로 나아가는 그의 모습을 확인해봤다. 청년 최백호는 친구 매형
- 김영순 기자 2018-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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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기 펀치’의 대명사 유명우
- 1980년대 복싱은 한국의 3대 스포츠 중 하나로 손꼽힐 만큼 인기 스포츠였다. 복싱 경기가 있는 날이면 팬들은 TV가 있는 다방이나 만화방에 삼삼오오 모여 응원했고 한국 선수가 우승하는 날이면 다방 주인이 무료로 커피를 돌리는 소소한 이벤트(?)도 열렸다. 1980년대를 풍미한 복싱 영웅 유명우(柳明佑·54)를 그의 체육관에서 만났다. 상대가 빈틈을 보이면 유명우는 어김없이 ‘소나기 펀치’를 퍼부었다. 정신을 쏙 빼놓는 공격에 상대가 무릎을 꿇고 링 위에 쓰러지면 경기장은 함성과 열광으로 가득 찼다. 14명
- 정지은 기자 201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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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화단이 주목하는 작가, 이세현
- 매혹적이다. 그러나 불편하다. 이 찰나의 간극 속에 그의 ‘붉은 산수’가 있다. 하고많은 색깔 다 놔두고 하필 붉은 풍경이라니… 어디서도 마주친 적 없는 역설이다. 사람들은 그의 ‘산수’에서 유토피아를 찾고 디스토피아를 본다. 그가 장치한 은유와 비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탐을 내는 작가 이세현(李世賢·51). 이탈리아 유명 패션 브랜드 페라가모가 러브콜을 보내고 세계적인 미술품 컬렉터 울리 지그가 그를 만나러 영국까지 날아갔다. 붉은색을 화두로 삼은 뒤의 이야기다. 그는 파주 출판단지
- 전경심 교열편집위원 201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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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무 시인, 늙은 나무가 피우는 꽃은 언제나 젊다
- 60년 만에 돌아온 무술년, 환갑을 맞이한 ‘58개띠’ 이재무(李載武·60) 시인. 음악다방에서 최백호의 ‘입영전야’를 듣고 군대에 다녀온 뒤 청년 이재무가 만난 시는 위안과 절망을 동시에 안긴 존재였다. 자신의 20대를 무모한 소비이자 아름다운 열정의 시간이라 말하는 그는 가난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얼른 노인이 되길 바란 적도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이순에 이른 그는 시를 통해 자아를 비춰보고, 지난날을 낭비케 했던 집착과 울컥으로부터의 도피를 바라고 있다. 햇수 나이로 60세에 펴낸 이재무의 시집 ‘슬픔은
- 이지혜 기자 2018-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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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김제 시골에 사는 이경주·지관 부부
- 차갑고 흐린 겨울 한낮. 집 앞 황토 구릉지 쪽에서 불어온 맵찬 바람이 나무들의 몸을 흔든다. 이미 누드로 늘어선 초목들은 더 벗을 것도 떨굴 것도 없다. 그저 조용히 삭풍을 견딘다. 좌정처럼 묵연하다. 봄이 오기까지, 화려한 꽃들을 피우기까지 나무들이 어떻게 침잠하는지를 알게 하는 겨울 정원. 봄이면 화들짝 깨어날 테지.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꽃들이 제전을 펼친다지. 6년여를 공들인 정원이다. 정원의 임자는 이경주(61) 씨. 그녀는 귀촌 이후 거의 모든 날들을 정원 가꾸기에 매달렸다. 애초 근사한 정원을 만들고 싶
- 박원식 소설가 2018-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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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밥바룰라’ 욜로 시니어로 돌아온 박인환
- “천국으로 들어가기 전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해야 해. 하나는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 또 다른 하나는 당신의 인생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었는가.” 영화 ‘버킷리스트’ 속 대사다. 인생의 기쁨과 타인을 기쁘게 하는 지점이 같은 사람을 찾자면, 그이가 바로 배우 박인환(朴仁煥·73) 아닐까? 평생 연기를 통해 삶의 즐거움을 찾고, 대중에게 웃음을 선사하니 말이다. 데뷔 후 53년 동안 100편에 달하는 작품에 출연하며 숱한 기쁨을 공유해온 그가 이번엔 버킷리스트 달성을 꿈꾸는 시니어들의 유쾌한 행보를 그린 영화 ‘비밥바룰라’로
- 이지혜 기자 2018-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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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터처블한 고전을 터처블하게 만든 강신장 대표
- 강신장(60) (주)모네상스 대표는 지식 디자이너이자 창조 프로듀서다. 지식 속에 숨겨진 창조의 씨앗을 찾아내고 가치를 재해석해 창조의 영감을 생산해낸다. 삼성경제연구소 근무 시절, 대한민국 인문학 열풍을 일으키고, 1만 개에 달하는 5분 동영상 콘텐츠로 1만 명이 넘는 CEO들을 매혹시켰던 그가 2014년 모네상스를 창업, 고전 전도사로 나섰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끝까지 읽지 않은 고전’을 세계 최초로 5분 동영상으로 시각화하는 무모한 작업에 팔을 걷어붙였기 때문이다. 문학뿐 아니라 역사, 철학, 정치 등 비문학에 이
- 김성회 리더십연구소장 2018-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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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동계올림픽은 제가 꾸던 꿈이었습니다. 前 강원도국제스포츠지원단장 박종흔 씨
- 눈보라 속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닦아야만 했으니까. 희망이 보이는가 싶더니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망연자실 고개를 떨어뜨렸지만 초석이 다져졌고 단단한 징검다리가 놓였다. 노력은, 꿈은, 그렇게 현실이 됐다. 한 달여 남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은 ‘삼수(三修) 만에 이뤄낸 쾌거’라고 말한다. 세 번의 도전 동안 수많은 사람의 헌신과 노력, 열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올림픽 또한 없을 것이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위해 발 벗고 나섰던 노장을 기억해냈다. 前 강원도국제스포츠지원단장이자 現 아라웰다잉연구회 회장인
- 권지현 기자 2017-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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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의 전성기를 꿈꾸는 ‘디바’ 임수정
- 취기가 오른 탓일 수도 있겠지만 나의 피아노 선제공격이 먹혔다. 임수정이 바로 옆에서 노래하고 내가 피아노 반주를 했다. 이슬 같은 여자 임수정과 참이슬을 마주하고 흥이 돋는 밤을 보냈다. “무작정 당신이 좋아요~ 이대로 옆에 있어주세요~” 이 노래가 TV에서 흘러나올 때 나는 가사 그대로 무작정 임수정이 좋아 죽었었다. 이 노래가 하루에도 몇 번씩 라디오로 흘러나오던 그녀의 전성기 시절 피가 끓는 청년 이봉규는 마치 그녀가 나에게 옆에 있어 달라고 애타게 원하고 있는 줄 착각하고 입을 헤~ 벌리고 넋을 놓은 적이
- 이봉규 시사평론가 2017-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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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체 사진작가가 된 前 지구과학 선생님 이경훈씨
- “학교는 왜 그만두셨어요?” “8월에 미국에서 있었던 개기일식이 보고 싶어서요.” 정년퇴임 2년여를 앞두고 명예퇴직을 선택한 전 부산과학고등학교 이경훈(李京勳·60) 선생님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이 놀랍고 신선하다.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 하산하듯 선생 자리에서 물러났단다. 은퇴를 앞두고 고민이 많았을 텐데 답변 한번 간단하다. 통쾌함도 몰려온다. 걱정 따위는 잊고 내가 즐기는 삶, 내가 소중한 삶을 살아가는 얘기를 들어봤다. 좌우명 ‘놀자’, 백발소년(白髮少年) 이야기 “개기일식 날짜가 딱 여름방학 끝
- 권지현 기자 2017-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