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을 시작한 시니어를 수소문하던 중에 지인에게 지오아재를 소개받았다. 초겨울 날씨로 접어든 12월 초, 방배동에 위치한 연습실을 방문했다. 평소에는 주 2회 하루 3시간, 공연이 있으면 3~4회 연습을 한다고 한다. 상상했던 것보다 좁고 허름한 연습실이었다. 지오아재는 동년기자 두 명의 방문을 환영하는 의미로 캐럴을 화음에 맞춰 불러줬다. 지오아재(G.O.Age)는 노익장의 ‘그린 올드 에이지(Green Old Age)’를 독일식으로 발음한 이름이다. 구성원은 테너 박승호(76)와 이규대(67), 바리톤 주정서(67)와 손종
카리스마, 예능 프로그램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초, 그리고 아버지 故 박노식으로부터 이어지는 3대째 배우 가족의 가장인 배우 박준규(56)를 만난 것은 박술녀 한복연구소에서였다. 새해를 맞이해 생애 처음 그가 아내 진송아 씨, 장모(정갑숙), 어머니(김용숙)와 함께 한복 나들이를 한 자리였다. 촬영 현장에서 가족들을 대하며 보여줬던 즐거운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이 사람을 만나면 즐거울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게 되는 에너지가 저절로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우리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드라마에서 보는 그의 모습이 무엇이든, 실제의
“앵커, 명예 졸업합니다. 고맙습니다.” 8년 전 마지막 뉴스를 전하던 날, 유영미(柳英美·57) 아나운서의 마무리 멘트에는 후련함, 시원함 그리고 섭섭함이 담겨 있었다. 그녀 나이 오십. 여성 앵커로서 최장기, 최고령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그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젊고 아름다운 시절에 뉴스 인생을 마감했다. 강단 있는 목소리로 SBS 여성 앵커의 표본이던 유영미 아나운서. 한동안 안 보이나 싶더니 작년 말 ‘2018 아나운서 대상’ 시상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TV 시청자 눈을 떠나 라디오 청취자들과 만나고 있었단다. 그것도 빨간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 2004년 아테네올림픽 은메달 그리고 아시아 최초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이라는 기록의 중심엔 핸드볼 선수 임오경이 있었다. 1990년대 한국 여자핸드볼의 전성기를 이끈 임오경(林五卿·48) 서울시청 여자핸드볼팀 감독을 만났다. 금메달의 밑거름이 된 ‘지옥 훈련’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한국 여자핸드볼팀이 금메달을 딴 직후 여자핸드볼팀의 대대적인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이때 임오경 감독도 국가대표로 합류하게 되면서 태릉선수촌에 입촌했다. 생애 첫 올림픽 무대를 앞두고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가 추천하는 '진정한 삶을 바라보게 하는 도서' 이것이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 저) 이탈리아의 작가이자 화학자인 프리모 레비가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보낸 10개월간의 체험을 기록했다. 저자가 경험한 공포와 불안을 통해 폭력에 노출된 인간의 존엄성과 타락의 과정을 묘사한다. 체르노빌의 목소리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저)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당한 주민들의 아픔을 10여 년에 걸쳐 진행한 100여 명의 방대한 인터뷰를 통해 생생하게 들려준다. 피해자들의 삶과 죽음, 비극을 적나라하게 담으며 미래 세대를
“먼 길 오셔서 뭐라도 건져 가셔야 할 텐데 저는 작업실이 따로 없어요.” 한 땀 한 땀 공들여 바느질하듯 상대를 배려하는 목소리는 촘촘하고 결이 고왔다.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박물관이 조각보를 구입해 소장할 만큼 경지에 이른 솜씨이지만 헝겊 자투리 갖고 잘 놀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소박하게 말하는 이소라(53) 섬유공예작가. 하루에 일고여덟 시간을 앉아 바느질을 해도 지루하지 않다니 그야말로 혼자 놀기의 고수 아닌가. 그녀의 손바느질이 피어나는 공간을 들여다보니 제대로 놀아본(?) 사람의 방이 맞았다. 등받이가 있는 좌식 의자,
‘주님 위의 건물주’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시니어의 로망을 넘어서(?) 이제는 모든 세대가 인생의 마지막 꿈처럼 여기는 듯한 건물주라고 하면, 흔히 일반 상가 소유자나 빌라, 빌딩 주인 등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여기 좀 독특한 건물주가 있다. 김현우 씨, 주한 외교관들에게는 ‘피터 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그는 주한 외교사절들을 대상으로 주거공간 렌트 사업을 하고 있는 흔치 않은 건물주다. 사업을 한 지 어언 30여 년이니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을 만난 생활 또한 그만큼 시간이 흘렀다. 그를 만나서 쉬이 볼 수 없는 삶을 들여
‘아버지를 미워한 힘으로 내 길을 만들었다’고 자신의 생애를 요약하는 최현숙(崔賢淑·62).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모든 사회적 통념과 가치관에 의심을 품었다. 가출을 반복하던 끝에 출가(결혼)해 아이를 낳은 뒤에는 천주교 사회운동을 시작으로 민주노동당과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을 거치며 진보정당 활동을 이어갔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던 수십 년간의 숱한 방황과 기행(奇行). 환갑을 지나 구술생애사 작가로 사는 요즘, 그녀는 이제야 제법 그 쓸모를 알 것만 같다. 진보와 정치의 교착 속 중년기를 보낸 최현숙은 10년 전 요양
요즘 젊은 세대는 ‘인스타그램’으로 소통한다. 인스타그램은 사진과 동영상을 공유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이다.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관계를 맺지 않아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일상을 공유하고 게시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팔로우’하며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 젊은이들이 주로 활용하는 새로운 소통 방식에 도전장을 내민 시니어가 있다. “62세 새로운 인생 시작.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 인생은 길고 기회는 누구에게나 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 인스타그램의 고수 김석재(63) 씨다. “‘그레이네상스’라는 표현처럼 시니어가 지는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를 만나기 전엔 그냥 몸이 좋은 사람이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그를 본 순간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83세 보디빌더, 서영갑(徐永甲) 씨를 만났다.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민소매를 입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뿐이었을까. 민소매 밖으로 마중을 나온 근육을 보니 가히 83세의 몸매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서 씨의 자택으로 들어가자 또 한 번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그가 보디빌딩 대회에서 수상한 수십여 개의 트로피와 상장이 벽면을 빽빽하게 채운 걸로도 모자라 바닥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
국민배우 김수미(70)를 모르는 대중이 있을까? 그러나 우리에게 익숙한 그 이름이 예명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지킬 수(守), 아름다울 미(美). 사람의 도리를 지키고 늙을 때까지 아름답게 살자는 결심으로 직접 지은 이름이란다(본명은 영옥). 그 이름에 반하지 않는 삶을 살아왔노라 자부하는 김수미는 최근 ‘한국의 맛을 지키는[守味]’ 문화 전도사 역할까지 해내고 있다. “전 세계에 한국 음식을 알리고 싶다”는 그녀의 원대한 포부는 40여 년 전 어머니를 향한 짙은 그리움에서 시작됐다. ‘2018 제8회 대한민국
오래전 재미있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시험에서 “다음 중 가구가 아닌 것은?”이란 질문에 많은 아이들이 ‘침대’라고 답한 것. ‘침대가 가구가 아닌 과학’이라고 강조했던 인기 광고 영향이었다. 아이들의 이유 있는 오답에 어른들 또한 웃으면서 수긍하고 말았다는 미담이었다. 이 희대의 사건(?)을 빚어낸 주인공을 만났다. 걸어온 길이 한국 광고계의 역사였다고 말해도 아깝지 않은 이 사람, 신강균(申橿均·67). 은퇴했다는데 매일 시간을 쪼개야 하는 연예인급 스케줄에 인터뷰 시간 맞추느라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속내 먼저
지금으로부터 4년 전, 50대 중반의 대기업 임원 출신들이 모였다. 그들은 앞으로 계속 퇴직하는 이들이 늘어날 텐데, 함께 의미 있는 활동을 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그렇게 40명이 뜻을 같이하기로 했고, 이름을 ‘엔슬(ENSL)’이라고 지었다. ‘Executive Network for Second Life’의 약자다. 그리고 법적 실체가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협동조합으로 등록했다. 엔슬협동조합의 탄생이었다. 공덕동 서울 허브센터에 있는 엔슬협동조합의 배영효 이사장, 송덕호 이사를 만나 고수들의 고민과 이념과 가치, 미래 비전을 들
100세 시대가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된 지금, 이제 50대는 청년과 다름없는 역할을 하는 세대가 되어가고 있다. 서울시 50플러스재단은 그 이름대로 서울 시민 50세부터 64세까지인 50플러스 세대의 삶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재단이다. 2016년에 설립된 이후 재취업, 일자리, 교육, 정책 개발 등의 사업을 꾸준히 펼치고 있는 50플러스재단은 지난해 10월 김영대 전 국회의원을 대표이사로 임명해 향후 3년 동안의 사업 전개를 시작했다. 무엇보다 일자리가 최대 화두가 된 시대, 김영대 대표이사를 만나 50플러스 세대의 일과 삶에 대한
한국 여자농구 전성기의 중심엔 강현숙, 박찬숙, 조영란, 정미라, 전미애 등의 스타군단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강현숙은 빼어난 미모와 실력으로 수많은 남성 팬을 몰고 다녔다. 1972년 청소년 대표팀으로 첫 태극마크를 단 뒤 1980년 은퇴할 때까지 국가대표로 맹활약한 강현숙(姜賢淑·64)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재정위원장을 만났다. “돌이켜보면 그때 무슨 생각으로 농구를 하겠다고 손을 들었는지 모르겠어요.” 그가 농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조금 특별하다. 초등학교 5학년, 농구하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에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