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장수시대가 우리 앞에 활짝 열렸다. 지난 삶길 70년보다 더 귀한, 앞으로 살길 30년이 내 앞에 다가왔다. 시니어가 아름답게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할 대목이다. 석양에 휘파람을 부는 시니어가 되어야 한다. 시니어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건강ㆍ고독ㆍ경제ㆍ일자리ㆍ가정 문제가 녹록치 않다. 노인의 빈곤, 복지의 사각지대, 고독사 등 어느 것이나 우리 스스로 해결하여야 하는 사회문제다. 시니어에게 30년은 긴 세월처럼 보이지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한 번 무너지면 다시 일어서기 어려운 때다.
대전시는 이미 2009년부터 경로우대할인 음식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들에게는 음식 값을 최대 20%까지 깎아주는 제도이다. 1만 원짜리 갈비탕이라면 경로우대를 받으면 8000원이 되는 것이다. 시에서 적극적으로 이런 음식점들을 홍보하는 책자까지 만들었다. 서울에도 몇 군데 있는 모양이다. IMF금융위기 때보다 더 불황이라 손님이 없다고 울상인 음식점들은 참고할 만 하다. 지금이 호황은 분명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황이라고 하기에는 무리이다. 손님이 많지 않은 것은 그때보다 음식점들이 더 많이 생겼기 때문일
광활한 사막을 사나이가 홀로 걷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아득한 수평선엔 끝없는 모래와 하늘이 가느다랗게 맞닿아 실눈을 뜨고 있었다. 머리 위의 뜨거운 태양도 간혹 부는 모래바람도 그를 달래주지는 못했다. 발에 푹푹 파이는 모래를 바라보며 걷던 사나이는 돌아섰다. 그리고 비로소 안도했다. 모래 위로 난 자신의 발자국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너무 외로워서 뒷걸음질 치며 자신의 발자국과 같이 걸었다. 사막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오르텅스 블루 - 파리
나와 아내는 술을 못 마신다. 아니 넘기기는 하는데 곧 이상이 생긴다. “우리 막걸리 마실까?” “웬 막걸리요?” “TV서 지금 막걸리들 마시는데 맛있어 보여서….” “그럼 하시죠, 제가 사올게요.” 막걸리가 어울리는 나이도 됐다 싶다. 학창 시절 무교동에 낙지 골목이 있었는데 찌그러진 양은 대접에 술안주라곤 매운 새끼낙지볶음과 단무지가 전부. 단숨에 한잔하고 저어새처럼 휘익 돌려 젓가락에 걸리는 게 있으면 먹고 아니면 젓가락만 빨다가 밥 한 공기 시켜 매운 국물 넣어 비벼 먹었지. 그 밥을 또 안주 삼아 인원수대로 한 주전자씩
초등학교 통지표에 ‘의자에 앉는 자세가 바르지 못하다’는 말과 함께 나오던 단골 멘트는 ‘나름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서 오류가 많다’였다. 필자는 그 시절 자그마한 걸상에 비스듬히 앉아 선생님의 설명을 듣기보다는 마루 사이에 낀 지우개 가루를 쉽게 파내는 방법 따위를 생각하느라 골몰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 말씀이 맞다. 학교에 갔다가 집으로 올 땐,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노량진의 오래된 동네라 구불구불 골목이 많았다. 필자는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새로운 경우의 수를 조합해보느라 분주했다. 가끔은 막다른 골목
지난 3월 14일 한국공정거래위원회 주최로 ‘열린소비자포털 행복드림 설명 및 시연회’가 있었다. 필자는 상공회의소 9층 공정거래조정원 회의실에서 열린 이 시연회가 똑똑한 소비생활을 위해 우리가 꼭 알아둬야 할 많은 정보가 있을 것 같아 기대감을 갖고 참석했다. ‘행복드림’은 상품에 대한 정보 확인과 피해 구제 신청이 원스톱으로 가능한 포털 사이트로서 각 민원을 어느 부처에서 담당하는지 알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 사이트에서 상품의 바코드나 QR코드를 스캔하거나 검색란에 상품명을 입력하면 상품의 정보뿐만 아니라 그 상품의 위해
33년 만에 초등학교 동창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동창생들은 그동안 얼마나 변했을까. 첫 모임 때에는 30명가량이 나왔는데, 다시 각자 아는 동창생들에게 연락을 해서 모일 때마다 인원이 늘었다. 나중에는 전체 동창생 500명 중 200명가량이 모였다. 그런데 덜컥 내가 동창회장으로 추대되었다. 재학 시절 전교 회장을 한 이력이 있어 봉사의 책임감도 느끼긴 했다. 이때부터 전체 모임, 각 지역 모임, 임원 모임, 경조사 모임 등 만남이 잦아졌다. 우리 모임을 계기로 후배들까지 동창회를 결성하다 보니 자동으로 총동문회장까지 맡게
나이가 들어가면서 노여움을 자주 느낀다. 과거 한창때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도 가슴에 맺히고 자꾸 곱씹게 된다. 글쎄 이런 현상이 나이를 먹으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아니면 늙어갈수록 옹졸해져가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여하튼 이제는 남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말도 듣기 싫고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자기 자랑하는 모습도 꼴불견이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마음을 접으며 하나둘 관계가 소원해지더니 이제는 멀어져간 관계들이 꽤 된다. 옛날에는 왜 그리도 잡다한 모임이 많았던가. 다양한 모임들이 모두 나름대로 필요에 따라 결성됐
며느리가 세상을 떠난 지 이제 3개월이 되어간다. 그동안 뭔가 정리가 안 된 듯 미진함이 늘 남아 있었다. 어느 날 영정 사진이 필요하니 찾아놓으라는 아들 전화를 받고 사진을 찾다가 아들 방 한쪽에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는 흰 주머니를 봤다. 뭘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 살짝 열어보니 새하얀 봉투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알고 보니 며느리 장례식 때 조문객들에게 받았던 봉투들이었다. 필자는 그 봉투들을 하나씩 꺼내봤다. 봉투 주인들의 마음이 아주 또렷하게 전달되었다. “감사합니다!” 봉투를 하나씩 꺼내어 거기에 쓰인 글들을 하나하나 조심
“엄마, 이 오빠 알아? 이 오빠 엄마가 엄마 안다던데?” 교회에 다녀온 딸이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얘, 민철이 아니야?” “맞지? 맞지? 오빠랑 얘기하다 우리가 옛날 살던 동네 얘기가 나왔는데 자기네도 거기 살았다고….” 민철이 엄마와 필자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다. 아랫목에 배를 깔고 팝송을 함께 듣고, 디제이가 있는 빵집에 들락날락했던 둘도 없는 친구였다. 친구가 결혼해서 외국으로 떠났다가 여기저기 이사를 다니면서 연락이 끊어졌다. 그런 친구 소식을 딸을 통해 듣게 되니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당장 연락을 하고 단짝
사람은 왜 사는가. 어디선가 홀로 피어나 고통과 울음으로 맞이한 삶의 시작. 살아온 과정이야 어떠하듯 결국은 순서 없이 이별 하는 것을. 그 떠남을 예감치 못하고, 예약 없이 혼자 훌쩍 떠나가는 것을. 그 악다구니로 살아온 짧은 삶의 여정 속에서 과연 쥐고 가는 것은 또 무엇이었을까. 누군가의 삶은 이별의 아쉬움 세상 속에 아주 진한 색깔로 떠들썩하고 어떤 삶은, 조용히 몇몇 친지 들만의 가슴 저 편 속에 묵묵히 들어앉는다. ‘블랙 앤 화이트’ 색깔의 조화처럼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 감회의 눈물은
백만기 아름다운인생학교장 놀 줄 모르는 시니어들은 특별히 즐기는 취미가 없다. 기껏해야 골프 아니면 등산이다. 이것도 그나마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얘기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딱히 즐길 놀이가 없다. 이러니 놀 줄도 모른다고 신세대에게 무시당하는 것이다. 친구가 들려준 얘기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니 거실에서 아이들과 아내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현관에서 인기척이 나자 노랫소리가 딱 그치며 아들 녀석이 꾸벅 인사를 하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딸아이도 엄마와 아버지의 눈치를 보다가
서울이라는 ‘황야’를 누벼 먹이를 물어 나르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새벽 침상에서 와다닥 일어나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에 실려 가는 출근길부터가 고역이다. 직장에선 너구리 같은 상사와 노새처럼 영악한 후배들 사이에 끼어 종일토록 끙끙댄다. 퇴근길에 주점을 들러 소주병 두어 개를 쓰러뜨리며 피로를 씻어보지만, 쓰린 속을 움켜쥐고 깨어난 이튿날 새벽이면, 황급히 넥타이를 목에 동여매고 다시 일터로 달려가야 한다. 이 치열하고도 고단한 양상은 일과처럼 반복되기 십상이다. 그러는 사이에, 세월이라는 도둑은 사람의 청춘은 물론, 꿈과
언제부턴가 필자는 메일로 ‘따뜻한 마음’이라는 글을 받고 있다. 주로 교훈이나 선행에 대한 이야기로 감동적인 내용이 많은데 특히 오늘 받은, 어느 젊은 부부의 이야기는 무뚝뚝한 필자 마음을 뭉클하게 하고 눈시울이 붉어지게 만들었다. 야근하고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돌아온 아내가 있었다. 그런데 매번 침대의 자기 자리에 남편이 먼저 누워 있었다고 한다. 너무 피곤했던 아내는 그때마다 화를 내며 남편에게 비키라고 했고 남편은 배시시 웃으며 자리를 내어주었단다. 어느 날 아내가 병원에 입원할 일이 생겼다. 이런저런 검사를 받고 병실에
세상에 있는 재미난 일에는 물구경, 불구경, 싸움구경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거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사실 남 흉보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입만 움직이면 되는 흉보기는 앞의 재미거리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공개적으로 상사한테 엄청 얻어맞고, 위로하는 동료들과 뒤에서 상사를 욕하면 동료의식도 생기고 속이 좀 풀린다. 돌아가며 상사의 험담을 집어내다 보면 분위기는 어느새 초상집에서 화기애애한 잔칫집으로 바뀐다. 분위기 전환용으로 제 격이다. 흉은 남들하고 같이 보아야 제 맛이다. 혼자 흉을 보면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