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무(無) 흙수저’로 꽉 찬 운을 뜨다

기사입력 2021-07-05 07:00:10기사수정 2021-07-05 07:00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눈을 감고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의 오톨도톨한 점자혼용 명함을 손끝으로 더듬어본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상생 염원을 담은 정 이사장의 평생 화두 ‘동반성장’ 의지가 명함에도 아로새겨져 있다. 그의 일생은 동반성장이란 궤적을 따라 굵고 길게 이어지고 있다. 관악구 신림동의 ‘동반성장연구소’에서 그를 만나 참 좋은 시절, 그때는 그랬지 추억 속 이야기를 꺼내본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DB )
(브라보 마이 라이프 DB )


운이 꽉 찬 아이, 그래서 운찬이지

‘정운찬’, 이름을 짓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 녀석 운이 꽉 찬 놈이구먼. 사주가 이렇게 좋은데 이름이 뭐 그리 대수라고 식전 걸음을 하셨나? 세상 나올 때부터 운을 가득 차고 나온 놈이니 이름은 운찬이지.”

충남 공주가 고향이지만 7식구가 상경, 도시빈민으로 동숭동 언덕배기 단칸방에서 살았다. 식구마다 칼잠에, 한 사람은 앉아서 자야 할 만큼 방은 비좁았다. 11남매 중 살아남은 5남매의 막내, 그나마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으니 대박 운과는 애초 거리가 멀었다. 하기야 그는 태아 적 자궁이란 방마저 허락되지 않을 뻔했으니 세상 빛을 본 자체가 운이 좋았다고 할지.

당장 밥 한 숟가락이 절실했던 곤궁한 살림에 입 하나 더 느는 것이 무서워 어머니는 독한 약초를 진하게 달여 마셨다. 그런데 하필 그게 시궁창에서 아무렇게나 자라는 익모초(益母草)였으니, 이름 그대로 산모와 태아를 ‘이롭게’ 하여 노산임에도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 그로서는 기가 막힌 첫 운이었다.

그러나 27세 결혼 때까지 운찬은 여전히 ‘5무(無)의 흙수저’로 ‘운 찬’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키가 크나, 인물이 좋나, 부모가 있나, 돈이 있나, 장래가 있나.” 예비 장인 장모의 평가는 가혹했다. 그러나 타고난 운은 그를 저버리지 않아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 프린스턴대 경제학 박사, 컬럼비아대 교수, 서울대 총장, 대한민국 국무총리, 동반성장위원회 초대 위원장, KBO 총재 등 올해 74세에 이를 때까지 그의 운은 숨 가쁘게 펼쳐졌다. 물론 그에게 운이란 성실성, 정직성과 같은 뜻, 다른 말이다.


어떤 학생을, 어떤 식으로, 어떻게 가르치든 대학에 맡겨야

▶서울대 총장 시절 / 2002. 7 ~ 2006. 7

서울대를 없애려던 노무현 정권으로부터 학교를 지킨 것을 비롯, 학원자율화 및 지역균형선발제, 소수정예화 정책을 폈다.

“대학에는 자율권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어떤 학생을 어떤 식으로 선발하여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든 전적으로 대학 재량에 맡겨야 한다는 뜻이지요. 지역 균형을 위해서는 전국 1700개 고교에서 최대 3명씩 추천받아 그중 1200명을 선발하는 지역균형선발제를 실시했습니다.”

또한 서울대 정원을 4000명에서 3000명으로 줄여 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자 했다. 도쿄대나 베이징대학이 3000명대, 하버드대는 1600명대, 프린스턴대·예일대·컬럼비아대는 1300명대인 것을 감안하면 대학 수준이 양질의 교육과 비례하는 것은 자명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 밖에 기초교육 강화를 위해 자유전공학부를 신설하여 재학생들이 여유 있게 진로를 모색토록 했고, 대학 내 건물 증설보다 연구비 후원에 중점을 두었다. 삼성, 웅진 등에서 현금으로 1600억 원을 지원받아 그 가운데 100억 원을 자연과학대에 투입, 생명과학부에서 탁월한 인재를 배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삼성의 도움이 커서 현금으로만 500억 원을 지원받았다. 한편 총장 공관을 부수고 그 자리에 교수 아파트를 증설하여 250여 세대에 삶의 터전을 보급했다. 그 일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칭찬을 받았다고 웃으며 회고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DB )
(브라보 마이 라이프 DB )


세종시 총리 “한 나라에 행정부가 둘로 나뉠 수는 없다”

▶국무총리 시절 / 2009. 9 ~ 2010. 8

그가 국무총리가 된다고 했을 때 서울대 관계자들은 실망했다. 옛말로 하자면 총장은 대제학이고 총리는 영의정인데 자고로 대제학이 더 품위 있는 자리가 아니냐며. 그깟 총리가 뭐라고, 그것도 시시하게 이명박 정부에서 총리를 하냐며.

“당시 광우병 사태로 골머리를 앓으면서 탕평책의 일환으로 제가 발탁된 느낌이었어요. 무엇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당신도 서민 출신이고 나도 서민 출신이니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마음을 움직였죠. 경제, 사회 양극화 완화 기회가 아닌가. 어려운 사람 사정을 나보다 더 잘 아는 이가 있을까 싶었던 거죠.”

양극화 완화, 경색된 남북관계 유연화라는 나름의 청사진을 품었지만 취임 6개월 만인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이 터지면서 남북관계는 곧바로 얼어붙었고, 설상가상 세종시 문제가 불거졌다.

그는 임기 시작도 전에 ‘세종시 총리’로 불렸다. 그도 그럴 것이 “반쪽 행정수도 세종시는 원칙적으로 옳지 않다. 한 나라의 행정부가 둘로 나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못 박았기 때문이다. 대신 세종시를 기업도시, 문화도시, 과학도시화하자고 제안했으나 수도의 꿈에 부풀었던 지역민의 반대는 거셌다. 공주 출신인 총리가 되레 고향 발전을 저지한다며 ‘매향노’란 소리마저 들었다.

“그 당시 매 주말마다 15차례 이상 방문하여 지역 대표들을 설득하고, 삼성·롯데·한화·웅진 등에서 기업도시 투자 명목으로 4조5000억 원을 약속받았어요. 그런데 그 안 자체가 국회에서 부결되면서 세종시 구상은 끝내 무산됐죠. 반대파한테서 차기 대권 노림수라는 오해까지 받으며 세종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결국 1년 만에 총리를 그만두게 된 거죠. 제 성정이 모질지 못하고, 무엇보다 정파적 언어를 이해 못 했던 데다 정치적 센스도 부족했다고 봅니다.”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 2010년 5월, 한 중견기업인이 찾아왔다. 연 매출이 7000억~8000억 원 되는데, 대뜸 이민을 가겠단다. 납품가 후려치기를 더는 견디기 어렵다는 것이 사유였다.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그 길로 대통령을 만났다. “중견기업인이 이민 가겠다고 하니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는 오죽하겠냐.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아니면 이 나라 파탄난다”고 직언했다. 그해 9월 경제인들이 청와대에 모였고, 같은 해 12월에 동반성장위원회를 설립, 발족했다. 총리직을 물러난 뒤라 그가 초대 위원장이 되었다.


▲2018년 미국 메이저리그(MLB)
▲2018년 미국 메이저리그(MLB)

▲2012년 동반성장위원회
▲2012년 동반성장위원회


코로나 무풍지대 한국 야구, 110개국에 중계방송

▶KBO 총재 시절 / 2018. 1 ~ 2020. 12

1982년 한국에 프로야구가 생긴 이래 매년 20여 회 야구장을 찾았고, 2008년에는 야구 해설도 했다. KBO(한국야구위원회) 총재가 된 후엔 야구계의 동반성장을 위해 노력했다.

“이대호의 연봉이 25억 원인 것에 반해 무명 선수는 2700만 원에 불과해요. 연 수입이 100배 가까이 차이 나는 거죠. 어떻게든 올려보려고 애쓴 결과 3000만 원으로 타결되어 미약하나마 선수 간 연봉 격차를 좁힐 수 있었지요.”

각 팀 간의 원활한 선수 교류를 위해 자유계약제를 개선하는 등 구단과 구단 간의 동반성장에도 주력했다. 세계야구연맹 총재와 미국, 일본, 대만, 호주의 커미셔너(총재)를 자주 만나 국제화에도 기여했다.

코로나 시대 최대 성과는 720회 전 게임을 다 치렀다는 것과 게임 기간 중 1군 선수 가운데 확진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세계 프로 스포츠에서 유일한 경우다. 또한 코로나로 인해 자국에서 경기를 하지 못하자 미국의 스포츠 전문 방송 ESPN이 전 세계 110여 개국에 한국 야구를 중계한 것도 뜻밖의 수확이었다. 임기 동안 2018년 아시아야구대회 우승, 2019년 세계야구대회 준우승을 한 것도 큰 보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2012년 6월 스코필드 박사 동상 제막식 참석차 토론토를 방문해, 보스턴과의 경기에서 시구를 한 이후, 2018년 미국 올스타 게임 때 뉴욕양키스와 뉴욕메츠 경기에서 또 한 차례 시구한 것이 큰 추억이 되었죠. 메이저리그에서 한 팀의 시구자는 연 10명 정도라 제가 운이 좋았던 거죠. 여담이지만 역대 KBO 총재 중 경비원, 미화원들과 함께 식사한 유일한 총재이기도 했습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DB )
(브라보 마이 라이프 DB )


약자에겐 비둘기, 강자에겐 호랑이

▶멘토 스코필드 박사와 조순 교수

캐나다인이면서 3.1운동 민족대표 34인으로 불리는 스코필드 박사와의 만남은 그에게 신의 선물과도 같았다. 스코필드 박사는 1916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한 후 1970년 국립현충원에 묻히기까지 한국의 가난한 학생들과 고아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했다.

“스코필드 박사님이 안 계셨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겁니다. 제게는 아버지 그 이상인 분이셨죠. 중학교 때까지 재정적 지원을 해주셨고 저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치셨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입주 가정교사로 학비를 벌면서 약자에겐 비둘기처럼 자애롭고 강자에겐 호랑이 같은 기개를 보여주신 박사님을 본받고자 했습니다. 제가 평생 추구해온 동반성장의 모본이 되신 거지요.”

그의 인생에 또 다른 멘토는 조순 교수. 조 교수는 한국 대학이 반정부 데모로 어수선했던 1960년대 후반에 경제학에 대한 그의 흥미를 북돋웠고, 미국 유학길도 열어줬다. 모교 강단에 섰을 때도 그의 옆에는 조 교수가 있었고, 반대가 극심했던 결혼도 조 교수가 중간에서 부드럽게 풀어준 덕에 성사될 수 있었다.


코로나 시대, 동반성장이 해법이다

▶48년 해로한 캠퍼스 커플 아내와 가족 간 동반성장도

“2012년 동반성장연구소를 설립한 이래 9년째 그 해법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76차례 현장 포럼을 진행했습니다. 동반성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뿐 아니라 빈부 간, 도농 간, 지역 간, 남녀 간, 세대 간 등 사회 전반에 적용돼야 하는 희망의 가치입니다. 코로나 이후 저성장과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될 테죠. 지금도 재택근무자들은 또박또박 월급을 받는 반면 일용직이나 자영업자들은 고통에 내몰리고 있지 않습니까. 코로나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사회는 동반성장으로 가야 합니다.”

한편 가족은 어떤 동반성장을 해왔을까.

“아버지는 어린 제게도 반말을 안 하셨어요. ‘~ 하게, ~는 아니네’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어머니는 저를 핥으실 정도로 아껴주셨죠. 가난했지만 사랑을 흠뻑 받고 자라서 저도 제 아이들을 민주적으로 대합니다. 48년째 ‘동반성장’을 하고 있는 서울대 미대 출신의 아내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는데, 우리 부부는 아이들을 존중하며 키웠습니다. ‘아빠찬스’를 쓴 적도 물론 없고요. 아들과 딸이 아버지, 어머니를 존경한다고 하니 이만하면 가정 내 동반성장도 이룬 것 아닌가요?”


‘신아연 작가와 나누는 참 좋은 시절’ 다음 호에는 서울신문사 발행인, 한국일보사 일간스포츠 사장, 국민일보 대표이사, 경향미디어그룹 회장 등을 거치고, 한국추리작가협회장을 지내며 400여 편의 장편 및 중단편소설을 낸 베테랑 신문인이자 소설가 이상우 씨를 만납니다.

<이 기사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 2021년 7월호(VOL.79)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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