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고령사회에 대응하려면 구강, 영양, 인지, 삶의 질을 각각 따로 볼 것이 아니라 하나의 노화 과정 안에서 함께 살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노인의 건강 문제는 한 영역에서 끝나지 않고 식사, 신체 기능, 인지 저하, 삶의 질로 이어지는 만큼, 같은 사람을 장기간 추적해 변화를 살피는 국가 단위 연구 기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노년학회는 지난달 29일 세종대학교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6년 전기학술대회에서 국립보건연구원 기획세션을 열고 ‘초고령사회 건강노화를 위한 다학제적 연구혁신과 국가 노화 연구 인프라 발전 전략’을 논의했다. 세션은 초고령사회 노인의 건강과 삶의 질을 다차원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장기 추적 연구 기반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전재필 국립보건연구원 미래의료연구부장이 좌장을 맡았고, 구강노쇠, 식생활, 인지노화, 삶의 질 지표를 주제로 네 명의 발표자가 나섰다.
첫 발표자인 강정현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교수는 구강노쇠를 노화 연구의 주요 지표로 봐야 한다고 했다. 구강노쇠는 치아 수, 씹는 기능, 삼킴 기능, 구강 건조 등 구강 기능 저하가 단순한 치과 문제에 그치지 않고 영양 불균형, 근감소, 신체 노쇠, 낙상, 사망 위험과 연결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강 교수는 일본이 1990년대부터 노인을 장기간 추적한 연구 결과를 축적해 구강노쇠 진단 기준과 정책을 빠르게 발전시켰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이 구강노쇠의 중요성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1990년대부터 진행된 추적 연구 결과들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도 한국형 구강노쇠 진단 기준을 마련했지만, 제도라는 그릇에 비해 내용을 채울 근거 자료는 아직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한국형 구강노쇠 진단 기준을 마련하려는 작업은 진행돼 왔다고 강 교수는 설명했다. 2023년 한국보건의료연구원과 대한노년치의학회는 한국 노인의 특성을 반영한 진단 기준과 관리 방안을 제시했다. 강 교수는 다만 이 기준이 실제 보건 정책과 현장 중재로 이어지려면 더 많은 장기 추적 자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구강노쇠가 신체 노쇠나 사망 위험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확인하려면 국가 차원의 노화 연구에 구강 기능 항목이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 발표자인 임희숙 경희대학교 동서의학대학원 교수는 초고령지역 노인의 식생활과 영양 문제를 다뤘다. 임 교수는 노인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식생활이 중요하지만, 현장에서는 영양 상태를 체계적으로 확인하고 필요한 식사 지원으로 연결하는 장치가 부족하다고 했다. 그는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영양을 평가하고 개입하는 데에는 여전히 소극적인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초고령지역 노인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히 무엇을 얼마나 먹는지뿐 아니라, 식품 안전 정보와 영양 정보를 이해하고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봤다. 특히 식품 보관, 영양표시 이해, 식사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경로 등이 취약한 항목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령친화식품과 맞춤형 식사 서비스도 ‘누가 어떤 식품을 먹어야 하는지’를 판단할 기준이 부족하다고 했다. 임 교수는 “시중에 고령식품은 많지만 그걸 누가 먹어야 되는지에 대한 지표는 없다”며 “저작이 나쁜지, 삼킴 곤란이 있는지에 따라 어떤 식품을 제공해야 하는지 선별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강 상태와 영양 상태, 건강 수준을 함께 판단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지원 서울의대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인지노화와 치매 연구에서 다영역 코호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인지와 정신건강이 구강, 영양, 신체 노쇠, 사회환경 요인이 모이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치매 연구가 뇌 영상이나 인지검사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수면, 우울, 사회적 고립, 행동 변화까지 함께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 교수는 인지노화와 치매 연구에서 기억력 검사만으로는 노인의 변화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다. 수면장애, 우울, 사회적 고립, 행동 변화, 신체 노쇠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연구마다 평가 방식이 다르면 결과를 비교하기 어렵다”며 “앞으로는 같은 기준으로 인지와 정신건강을 평가하고, 혈액검사 자료나 디지털 방식으로 수집되는 생활·건강 정보도 함께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발표자인 이선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노년기 삶의 질 지표체계를 제안했다. 기존 노인 삶의 질 지표가 건강, 경제, 참여, 관계 중심으로 구성돼 왔다면, 앞으로는 역량, 안전, 환경, 존엄과 권리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연구위원은 노년기 삶의 질을 단순히 건강 상태나 소득 수준으로만 볼 수 없다고 했다. 디지털 환경 변화, 사회적 관계의 질, 연령주의 경험, 안전과 권리 보장까지 살펴야 초고령사회에 맞는 지표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기존 노인실태조사 지표 중 정책 활용도가 낮거나 유용성이 낮은 부분을 조정하면서도, 안정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 지표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토론에서는 국가 코호트의 역할과 연구 간 연계 필요성이 강조됐다. 장숙랑 중앙대학교 교수는 구강, 영양, 인지, 삶의 질을 따로 측정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서로의 관계를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정회인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교수는 구강 건강이 건강수명과 밀접한 영역임에도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며, 구강 기능 평가가 노화 연구 안에 더 적극적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임중연 국립보건연구원 유전체역학과장은 세션을 마무리하며 구강, 영양, 인지, 삶의 질을 따로 연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의 관계를 함께 살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국가가 운영하는 노화 연구에서도 현재 빠져 있는 항목을 보완하고, 같은 노인을 장기간 추적해 건강 변화와 삶의 질 변화를 함께 볼 수 있는 연구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