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나는 산수 땜에 철저하고 처절하게 망한 놈이다. 학교 다니는 동안 그놈의 산수가 날 어떻게 망가뜨리고 괴롭혔는지는 이미 12년 전에 자세히 쓴 바 있다.
https://blog.naver.com/fusedtree/221961749149
그런데 최근에 또 망신당한 일이 있다. 나는 구성원이 10명인 어느 모임의 회장인지 총무인지를 20년간(정확하지 않음) 맡고 있다. 4월의 월례모임 때 참석자 수를 정확히 알 수 없어 음식점에 대충 여섯 명 자리를 예약하고, 카톡방에 참여를 선동했다. 그랬더니 “6분의 2입니다.” 하는 신고가 첫 번째로 올라왔다. 자기랑 나랑 둘이라는 이야기. 곧 “6분의 3은 채워야제.”라며 한 명이 또 나섰다. 그러자 참가번호 1번이 “성님꺼정 오면 가분수 되것네.”라며 반겼다. 평소 안 오던 사람까지 온다니 여섯 명을 넘을 거 같다는 말이었다.
가분수라구? 여기서부터 내 두뇌 회로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좌우간 “6분의 4 되겠습니다.”라는 댓글에 이어 두 명이 더 늘어 참석자는 여섯 명이 채워졌다. 더 이상은 없었다. 그러자 참가번호 1번이 “아깝다. 가분수”라고 했다. 이에 대해 내가 틀렸다고 지적질하고 싶은 교정본능을 더 참지 못하고 “6명 됐네요. 근디 가분수가 뭐지요? 과분수 말하는 거 아님?” 했다. 다음은 그 뒤 오고간 대화-. “와, 임 머시기 셈본 실력은 나도 못 따라가겠네. 假分數가 아니고 過分數라고라?” “아니야요? 그런 말 웁나? 예상치인 6명보다 더 오면 과분수가 아니라고라고요?” “아이고 헷갈려! 누가 좀 말려 주~!” “3분의 8, 4분의 5, 이런 게 다 가분수야요?”
나의 이의 제기에 대해 “한자에 과도하게 심취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 사람이 있었지만, 너무나 한심했던지 내 마지막 질문에는 아무도 대꾸를 하지 않았다. 식사 중 놀림을 당하다가 아무래도 내가 틀린 거 같아 살짝 검색해보니 세상에 네상에, 과분수라는 말은 있지도 않았다. 착각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망신스러운 사실을 소문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뒤, 집에 돌아와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니 분수에는 진분수, 가분수, 대분수 세 가지가 있었다. 분자가 분모보다 큰 게 가분수, 분모보다 작은 게 진분수다. 진분수의 크기는 항상 0보다 크고 1보다 작다. 진분수 중 분자가 1인 분수를 단위분수라고 한다(이런 걸 왜 따져?).
대분수는 자연수와 진분수의 합으로 나타낸 분수인데, 진분수 앞에 쓰인 자연수가 허리띠를 두른 것처럼 보인다고 ‘띠 대(帶)’를 써 대분수라고 부른다. 나는 가분수를 잘못 알고 있었지만, 대분수도 내가 짐작했던 代分數나 大分數가 아니라 帶分數였다. ‘자연수와 진분수의 합‘이라는 말도 이상했다. 그게 왜 합이지? ’자연수와 진분수로 구성된 분수’라고 해야 정확하지 않나?
다시 설명을 읽어보면 분자의 절댓값이 분모의 절댓값보다 크거나, 분자의 절댓값과 분모의 절댓값이 같은 게 가분수다. 가분수의 가(假)는 거짓, 임시, 가령, 빌려줌 이런 뜻의 글자 아닌가. 그러니 가분수라면 가짜 분수나 임시 분수가 되는데, 분자가 분모보다 큰 걸 가분수라고 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분자와 분모가 같은 것도 가분수라고 하는 이유가 대체 나변(那邊)에 있는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런 주장을 폈더니 그는 한술 더 떠 나를 약 올렸다. 대분수를 읽을 때 3‘과’ 2분의 1 또는 7‘과’ 5분의 3 이러는데, 거기 나오는 ‘과’를 착각해 과분수라고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골프 칠 때 그린과 그린 사이에 ‘과’가 있다더니…. 난 이렇게 반격했다. 그러면 5‘와’ 6분의 1, 9‘와’ 4분의 3은 과분수가 아니라 와분수라고 해야겠네? 내가 언제 와분수라고 하디? 내 착각은 그런 차원 낮은 일이 아니야.
몸에 비해 머리가 큰 아이를 어려서 대갈장군이라고 했다. 그 대갈장군이 바로 가분수인데, 나는 입때껏 과분수로 알고 있었다. 과(過)는 지나치다, 분수를 잃다, 낫다, 잘못하다 이런 글자이니 개념상 과가 맞지. 그래서 ‘가분수’라는 글자를 보면서도 오자라고 생각했다. 이쁜 마누라를 얻은 남편을 놀릴 때 그 아내가 과분하다고 그러지 가분하다고 그러냐? 남들이 막 추켜올릴 때 과분한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하지 가분한 칭찬이라고 하남? 경상도 사람 일부는 어차피 그 발음이 그 발음이겠지만.
나는 분수를 소수로 고치거나 대분수를 가분수로 바꾸는 문제에 부닥치면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60년 만에야 틀린 걸 알고 보니 개념을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은 선생님들이나 수학용어에 ‘올바른’ 말을 붙이지 않은 사람들이 원망스럽고 한심스러웠다. 어디 말해보라. 수학문제는 결국 국어문제 아니던가?
내가 1963년 겨울에 치른 1964학년도 중학입시의 출제과목은 국어 산수 딱 두 가지였다. 산수가 빵점인 나는 그래서 폭망했다. 그런데 그 해괴하고 가증스러운 입시제도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맏딸 근혜를 위해 변경된 것이라는 게 아닌가. 가분수로 망신당한 나를 위로하려고 어떤 이가 보내온 기사에 그렇게 나와 있었다. 난 그런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고, 4년 전에 나온 그 기사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래 기사: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6112915561451878
이런 기사가 왜 [단독]인지 모르겠지만, 읽고 나니 열통 뻗치고 울화통 화통 터져 어쩔 줄을 모르겠더라. 휴지통 깡통 빨래통이라도 걷어차야 화가 풀릴 거 같았다. 박근혜는 이과였지? 그런 시험 치르고 중학교 입학한 뒤, 나중에 서강대 전자공학과 들어갔잖아? 수학을 잘하는데 수학 점수의 비중을 더 높여주려고 그랬던 건가? 나 같은 ‘수포자들’의 한 맺힌 피눈물은 생각지도 않고….
이제 와서 뭘 어쩌겠는가. 다만 내가 산수를 좀 하고 가분수를 옳게 납득했더라면 내 삶에 다른 변수나 길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60년 동안 잘못 알아온 게 수학이나 수학 외의 다른 분야에 또 있을지도 모른다. 설령 그렇다 해도 과분수라는 말의 타당성과 정확성은 양보하지 않겠다. 자리와 감투에 걸맞지 않은 자질과 처신으로 사회에 해를 끼치는 자들, 분모보다 분자가 훨씬 큰 자들이 다 과분수다. 과분수는 지우거나 덮을 말이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