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사실인식(진실) 간 틈을 비집고 들어간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회화 세계 ‘포토 페인팅’이 ‘필터 기능’의 시작이라는 것을 2020년 2월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작가 미상’으로 알게 되었다.
영화는 통일 전 동독 사회의 모습을 자주 소재로 삼는 독일인 감독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의 작품이다. 그는 이미 영화 ’타인의 삶‘에서 통제된 사회에 살며 개인의 자유, 창의성을 위해 고뇌하고 행동하는 예술인의 모습을 보여줘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이 영화에서도 나치 정권과 동독에서 성장기를 보낸 후 서독으로 탈출해 ’포토 페인팅‘ 기법으로 화가로 데뷔한 리히터를 모델로 하여 전반부에는 나치와 사회주의 치하에서 국가가 예술을 통제해 발생하는 한계를, 후반부에는 현대미술의 자유로운 창작활동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톰 쉴링, 폴라 비어, 세바스티안 코치 등 독일을 대표하는 명배우들이 흐릿한 시대를 예술로 담은 현대미술의 한 거장에 대한 서사를 풀어간다.
1937년 나치는 ‘국민의 교양을 함양하는 바람직한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독일 미술전’과 ‘국민정신을 호도하는 퇴폐적인 미술작품’을 선보이는 ‘퇴폐 미술전’을 열었다. 나치의 문화 예술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과 검열이 최고조에 이르던 시기였다. ‘퇴폐 미술전’에는 콜비츠, 칸딘스키, 클레, 샤갈, 뭉크, 피카소 등 미술사의 혁신을 이룬 20세기 대표 작가들의 작품 1만7000여 점이 출품되었다. 20세기의 아방가르드 예술이 거기에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작품은 몰수되었고 지목된 작가들은 작품 제작이 금지되었다.
영화는 이 전시회 ‘칸딘스키, 몬드리안의 그림 앞에서 국가중심주의 시각으로 빈정대는 도슨트의 설명으로 시작한다. 어린 쿠르트는 피카소와 칸딘스키의 그림에 시선을 빼앗긴다. 이모인 엘리자베스는 도슨트의 설명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도 이 그림이 좋아”라고 어린 조카에게 속삭인다.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면 좋아해도 된다고 하면서 이모는 말한다. “진실한 것은 모두 아름다우며 아름다운 건 기꺼이 봐도 되니 절대 눈을 돌리지 말라”고.
자유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적 감성이 뛰어났던 이모 엘리자베스는, 그녀의 행동을 일탈로 보는 사회 분위기와 정권에 의해 정신병원에 감금되면서 시대의 희생자가 된다. 유럽 사회는 이미 19세기 후반부터 특정 인종의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우생학 등을 이용했다. 더군다나 나치 정권은 좋은 혈통 유지를 위해 그녀에게 강제 불임 수술을 하고 가스실에서 죽인다. 이모 엘리자베스의 이런 아픔은 나치 신봉주의자인 의사 칼 시반트에 의해 행해진다.
쿠르트는 전쟁이 끝난 후 미술대학에 진학한다. 그곳에서 이모와 이름이 같은 패션과 학생 엘리자베스를 만나 결혼한다. 그는 화가로서 명성을 얻지만, 사회주의 체제의 미술에 대한 통제와 제한된 역할에 염증을 느낀다. 결국 장벽이 세워지기 전 서독으로 탈출한다. 뒤셀도르프대학교로 간 쿠르트는 그곳에서 만난 안토니우스 교수에게 “이 그림들엔 네 것이 없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너만의 것을 해”라는 말을 듣고 강력한 깨달음을 얻는다.
예술가는 내면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길 원한다. 그리고 그 생각과 감정의 원천은 경험에서 나온다. 의식과 무의식 속에 쌓아온 경험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항해하던 쿠르트는 신문기사에서 영감을 받아 전환점을 만든다. 현대 회화에 새로운 전기가 된 쿠르트의 페인팅은 엘리자베스 이모가 추구했던 자유와 아름다움의 발현이었다. 헤드라이트를 켠 여러 대의 버스 앞에 서서 쿠르트가 클랙슨 소리를 듣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쿠르트와 엘리자베스 이모가 함께 예술을 찾아가는 여정을 상징한 것이다.
르네상스 이후 발전해온 회화의 목표는 눈에 보이는 세상을 완벽하게 캔버스 위에 구현하는 것이었다. 가시적인 세계, 눈에 보이는 세계가 중요했다. 미술의 전통적 장르가 그랬다. 영화에서도 “이제 회화는 끝났다”고 현대미술의 속성에 대해 단정한다. 하지만 쿠르트는 그 거대한 파도를 관통해 ‘포토 페인팅’을 창시한다. 지금 여기에서 보는 것을 뛰어넘어 체험이나 학습, 경험 등 과거의 기억을 종합해 사물을 바라본다. 그는 바라보는 매체로 사진을 활용했는데, 사진의 여러 이미지를 회화로 재해석해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특히, 사진의 특징인 선명성을 배제하고 흐릿하게 화면을 뭉개거나 흘리는 스타일을 창안했다. 전에 없던 새로운 회화 양식의 창조였다. 영화 후반부는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한 편의 명강의가 펼쳐진다.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집중 몰입하게 만드는, 구성과 연출이 뛰어난 수작이다. 독일의 드레스덴, 뒤셀도르프 등 도시 풍경이 나오는 영상도 아름답지만, 또 다른 리히터인 ‘막스 리히터’의 음악이 영화의 아름다움을 배가한다. 옷을 벗은 채 바흐의 ‘사냥 칸타타’ 중 ’양들은 편안히 풀을 뜯고‘를 피아노로 연주하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은 광기에 빠진 세상에 대해 저항하는 힘없는 아가씨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치 신봉주의자에서 우연한 기회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줘 전쟁 후에도 의사로 살고, 다시 서독으로 망명해 편하게 사는 칼 시반트의 기회주의적인 삶의 모습에서는 어떤 기시감이 들었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예술은 희망의 가장 고귀한 형태다, 정확하게 초점이 맞은 이미지보다 흐릿한 캔버스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말에는 예술가에게 중요한 것은 휴머니즘적 태도라는 정의가 담겨 있다. 그의 말에 이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영화를 본 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