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선이 서로 의지하며 맞닿은 형태인 사람 인(人)은 책과 또 다른 책을 잇는 징검다리와 같은 모양새다. 역사만화가 박시백도 마찬가지로 시대의 기록과 독자를 생생하게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그와 함께하는 북人북은 고려, 조선, 일제강점기 등 누구도 선뜻 이뤄내지 못했던 역사의 대장정을 펴낸 사람의 자신감과 묵직한 철학을 담았다.
“브라보 독자를 위한 역사책 추천이라, 전부 제 책으로 해도 되나요?”
역사만화가가 품은 책은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말에 대한 대답이다. 농담 반, 진담 반일 테지만 그럴 법도 하다. 500년, 총 2077책. 차례로 쌓아 올리면 아파트 12층 높이라는 ‘조선왕조실록’(이하 실록)을 독파하고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스무 권을 연재하는 데 꼬박 13년이 걸렸다. 밑그림부터 펜 작업, 채색 등 모든 공정을 혼자 작업하며 각 인물의 기질과 분위기를 최대한 구현했다. ‘실록’을 기반으로 한 사실 고증과 명쾌한 박 화백만의 역사적 시각 덕일까.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2003년 첫 권 ‘개국’ 출간 후 바로 그해 대한민국 만화대상 장관상을 받았다. 이뿐이랴. 현재까지 판매 부수 350만 부를 기록하는 성과를 이뤘다.
완독의 힘이 만든 그의 역사
초등학생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다. 형이 사온 갱지를 슬쩍 가져와 장편 만화책을 통째로 따라 그릴 정도였다. 특히 1970년대 유행한 만화 ‘바벨2세’, ‘주먹대장’, ‘요철발명왕’ 등에 푹 빠졌었다. 늘 ‘나는 언젠가 만화를 그릴 거다’라고 다짐했던 그는 1990년대 후반, 신문사에 만평을 연재한다. “일간지에서 시사만화를 그릴 때 재밌기도 했지만 스트레스가 컸어요. 반응이 즉각적이었거든요. 퇴근할 때 엘리베이터를 타면 그때부터 시작이었어요. 신문사 직원들이 ‘어우, 박 화백! 오늘 재미있더라’ 하면 좋아요. 그런데 아무 말도 없거나 ‘오늘 그건 무슨 얘기야?’라고 하면 ‘아, 망했다’ 싶은 거죠.”
이런저런 고민에 잠겨 있던 어느 날, 드라마를 보다 문득 조선 역사를 만화로 제작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된다. 조선 전기 정치 갈등을 그린 KBS 대하드라마 ‘왕과 비’에서 수양대군(세조)의 계유정난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세종의 손자이자 그의 조카인 단종을 비롯해 수많은 신하들을 살해했는데도 말이다. 문제의식을 느끼고 바로잡으려 해도 아는 바가 없다 보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이후 신문사 도서실을 들락거리며 관련 도서를 찾아 읽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책 내용은 대부분 야사와 정사가 뒤섞여 있었다. 조선사에 흥미가 생겼고, 제대로 된 역사서의 필요성을 느껴 4년 넘게 그려오던 만평 연재를 그만뒀다.
그때까지 실록의 한 페이지조차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고, 구체적인 계획도 없었다. 단지 지식이나 정보를 가공하는 만화 작업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자리했다. 아마 날카로운 만화가의 촉으로 조선사의 흥미진진함을 감지해냈으리라.
“우선 국역 ‘조선왕조실록’ CD를 구해 하루 12시간씩 공부했어요. ‘실록’도 역사 기록물이니 담당 사관의 시각이 개입되고 곡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미워하는 당파 쪽의 발언이라 해도 있는 그대로 기록했더라고요. 후손이 당시의 사실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말이죠. 다만 편년체(연대순으로 기록한 역사 서술 방식)로 그날그날 있었던 일이 중구난방으로 적혀 있어 엄청나게 정리했어요. 필기 노트만 120권 정도 돼요. 그걸 다시 보면서 연표를 그리고, 간략하게 한 권짜리 요약본을 만들기를 반복했죠. 핵심은 ‘노가다’예요.”
공인된 맥락에 맞춘 강약 조절
그는 책 내용을 구성할 때 무엇보다도 정사에 기초해 균형을 유지하는 것에 집중한다. 독서광으로 알려진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재미있고 참고가 된다”며 애독했던 책 가운데 하나로 박 화백의 저서를 꼽았다.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을 바로잡아주기도 하고, 적절히 개입해 해설도 곁들인다. 예컨대 황희 정승의 경우, ‘실록’에는 속물이며 권력 지향적이고 주관이 뚜렷한 사람으로 묘사돼 있다. ‘너도 옳고, 너도 옳다’는 식의 두루뭉술함과는 거리가 먼데도 불구하고 신격화된 모습만 남아 있는 게 의아하다는 설명이다. 또 세종 시절을 으레 태평성대라 여기고 박 화백 역시 그를 ‘하늘이 내린 인물’로 평가하지만, 세종의 화폐 개혁은 가난한 조선 민중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한 정책이었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35년’, ‘친일파열전’을 포함해 최근 출간한 ‘박시백의 고려사’도 마찬가지다. 문종 때 완성된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를 한줄 한줄 들여다보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한 사실들을 캐내 바르게 전달한다. “고려시대에 들어서 비로소 우리의 존재가 이웃 나라를 넘어 지구 반대편까지 알려지게 됐어요. 코리아(Korea)가 고려에서 비롯한 것만 봐도 그렇죠. 하지만 고려 역사를 기록한 사료가 조선에 비해 많이 부실해요. 세월을 견디지 못해 소실되거나 의도적으로 지워지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때때로 전후 사정을 조사하고 살을 붙일 때도 있어요.”
박 화백은 수많은 역사적 인물 중 본받을 만한 사람으로 정도전을 꼽는다. 살면서 이상을 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선의 설계자로 알려진 정도전은 고려 말, 새 나라를 세우겠다는 꿈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매섭게 움직인다. “정도전이 이성계를 찾아가던 때 이미 그의 나이 마흔이 넘었죠. 그 당시 마흔은 지금과 다르잖아요. 인생의 정점을 훨씬 지난 나이일 수도 있는데 마치 20대 청년과 같은 기세로 고려라는 틀을 부수려 했고, 결국은 성공했어요. 무모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 추진력은 정말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해요.”
가히 긴 시간이다. 어쩌면 현재보다 과거에 더욱 집중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책의 흐름을 따라 호흡해준 독자야말로 그가 이 마라톤을 버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열심히 했는데 반응이 없었다면 벌써 다른 일을 찾아봤을 것 같아요. 원고를 넘길 때마다 ‘이번엔 별로인 것 같다’면서 불안했지만 독자 덕에 여기까지 왔어요. 저를 이 직업으로 먹고살 수 있게 해준 셈이에요. 굉장히 감사하죠. 근대사든 현대사든 앞으로 다뤄보고 싶은 시대가 많지만 일단 오래 만화를 그릴 수 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