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모르는 복지용구 시장, 정보 비대칭이 성장 막아

기사입력 2024-12-10 08:05 기사수정 2024-12-10 08:13

정보, 전문가, 성장 동기, 인식 부족... 소비자가 나서 권리 챙겨야

▲국내 대표적 복지용구 관련 전시회인 'Reha·Homecare 홈케어·재활·복지 전시회'의 모습. 사진은 본문과 무관함. (위엑스포 제공)
▲국내 대표적 복지용구 관련 전시회인 'Reha·Homecare 홈케어·재활·복지 전시회'의 모습. 사진은 본문과 무관함. (위엑스포 제공)

“일단, 잘 몰라요.” 현장에서 만난 복지용구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역할도,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을 받는 과정이나 지원 내용도 모른다. 나아가 복지용구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복지용구 시장이 성장하지 못한 이유로 크게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정보, 전문가, 동기, 인식의 부재다.

건강보험료를 낸다면 누구나 부담하는 장기요양보험료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이하 요양보험)의 재원이다. 따라서 필요할 때 요양보험 급여를 받는 것은 국민의 권리다. 급여를 받으려면 장기요양등급 신청을 해야 한다. 신체 상태에 따라 1~5등급과 인지지원등급 중 하나의 등급을 받으면 해당하는 급여를 받을 수 있다. 복지용구는 등급과 관계없이 1년에 160만 원 한도로 지원되며, 대상에 따라 최소 0%에서 최대 15%까지 본인부담금 비율이 있다. 같은 등급이어도 본인의 상태에 따라 구매나 대여 시 지원 가능한 복지용구 물품이 다르고, 18개 품목에 따라 구매할 수 있는 제품 개수도 다르다.

◇정보의 부재

문제는 이 모든 정보를 대부분 잘 모른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복지용구가 대표적인 ‘정보 비대칭’ 시장이라고 말한다. 공급자 중심의 시장이 이뤄져 있고, 이용자가 정보를 찾기 어려운 구조다. 대부분 요양이 필요한 시점에야 해당 정보를 찾아보면서 제도에 대해 알게 된다. 하지만 장기요양등급을 받은 다음에도 정보의 부재는 이어진다. 시니어테크 전문 기업 스핀택 김일준 대표는 “사업소에서 정보를 조회하는 롱텀 시스템은 남은 급여 액수나 사용 가능 품목, 품목별 구매 가능 개수 등을 한눈에 알아보기 어렵게 되어 있다”면서 “또한 대부분의 사업소가 700여 개에 이르는 복지용구 제품을 전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조사가 제공하는 카탈로그를 보여줄 수밖에 없는데, 이조차 공급자 중심으로 작성된 것들이다”라고 지적했다.

등급을 받으면 요양인정번호를 받게 되고 이 번호로 개인별 복지용구 사용 정보를 조회할 수 있는데, 보험 대상자가 직접 이를 조회할 방법이 없어 대부분 보호자나 시설의 요양보호사 등이 복지용구 사업소(이하 사업소)나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에 문의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업소가 해당 정보를 이용자에게 직접 보여주지 않기도 하고, 봐도 알기 어렵다는 게 요지다.

공단은 노인장기요양보험 홈페이지를 통해 제도 안내와 복지용구 제품 안내 e-book 등을 제공하고 있지만, e-book에 안내된 제품 정보는 우리가 물건을 구매할 때 보는 상세페이지와 비교하면 여전히 카탈로그 수준이어서 더 자세한 정보 안내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업계에서는 온라인몰을 통해 복지용구 제품 특성 및 사용 방법 등을 자세히 안내하는 상세페이지와 안내 책자를 제공하거나, 개별 플랫폼을 통해 사업소나 공단에 문의하지 않고도 관련 요양 정보를 알 수 있는 기능을 개발하거나 출시하고 있다. 공단에서도 내년에는 건강보험 애플리케이션에서 해당 정보를 직접 조회할 수 있는 기능을 오픈할 예정이다.

◇전문가의 부재

제조사·유통사·기관 종사자·사업소의 이해관계에 얽혀 정작 이용자는 불필요한 복지용구를 사게 되고, 주어진 금액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또 다른 이유는 현장에 전문가가 없기 때문이다. 요양보험 수급자의 약 80%는 가족이 복지용구를 알아보고 있으며, 가족이 아니라면 시설·기관의 요양보호사·사회복지사가 사업소를 통해 물품을 구매하도록 연결한다. 하지만 이들 중 개인에게 최적화된 복지용구를 추천할 만한 전문가는 없으며, 사업소조차 제품에 대한 숙지가 부족한 상황이다. 즉 복지용구 이용 전반을 지원할 전문 인력이 없는 것.

복지용구 유통·수입사 란달유디케어스 임기웅 대표는 “건강한 보호자가 ‘아마 필요할 것’이라고 예측하여 물건을 구매하는 게 아니라, 전문가가 생활과 자립의 목표를 가지고 이용자의 욕구에 맞춰 어떤 물건을 왜 써야 하는지 짚어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우리나라는 일본과 같은 복지용구 전문 상담원 자격 제도나 케어 매니저라는 직업이 없고, 사업소나 요양보호사 등을 대상으로 복지용구 관련 교육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에게 맞는 물품이 아니라 필요 없는 물품을 구매하게 하는 ‘도덕적 해이’ 현상이 만연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시설·사업소·유통사·제조사 등이 담합해 판매하려는 제품을 정해 그 제품만 보여주거나, 이용자에게 ‘무료’라며 자기부담금은 받지 않고 공단부담금을 사용한 사실을 숨기거나, 편리에 의해 매장 보유 제품만 추천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전문가 육성이 어렵다면, 사업소를 대상으로 전문가 교육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국내 대표적 복지용구 관련 전시회인 'Reha·Homecare 홈케어·재활·복지 전시회'의 모습. 사진은 본문과 무관함. (위엑스포 제공)
▲국내 대표적 복지용구 관련 전시회인 'Reha·Homecare 홈케어·재활·복지 전시회'의 모습. 사진은 본문과 무관함. (위엑스포 제공)

◇동기의 부재

국내 복지용구 제품이 더 다양해지지 못한 원인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품목 등록 과정과 가격 제한’을 꼽았다. 현재 복지용구는 먼저 18개로 나뉜 품목에 등재 신청을 한 뒤 통과되면 개별 제품 등록 신청을 다시 해야 한다. 신청 후 등록까지 막힘없이 진행해도 최소 1년 6개월의 시간이 걸리며, 평균 2년 정도 소요된다. 품목 혹은 제품 등록에서 탈락하면 다음 연도의 등록 기간까지 기다려야 한다. 여러 번 등재 신청을 했지만 적합한 품목이 없어 선정되지 못한 제품도 있다.

김정아 한양대학교 간호학과 교수는 “독일의 경우 약 3만 6200개에 달하는 의료 보조기기 및 복지용구를 42개의 상위 품목, 800여 개의 하위 품목, 2600여 개의 제품 유형으로 체계화해 분류하고 있으며, 첨단 IT 기술 접목 제품의 경우 3개월 내에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패스트트랙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면서 제품 등록 절차 간소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까다로운 등록 과정을 거치면 가격 평가가 이뤄진다. 공단에서 해당 제품의 가격을 심사해 결정하는 것. 자율가격제가 아니므로 제조업체들이 좋은 제품을 개발할 요인이 적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시장 성장을 위해 자율가격제를 운영하되 이용자에게 접근이 쉬운 정보를 제공하고, 모니터링을 더욱 확실하게 실시해야 한다고 진단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자율가격제의 경우 같은 제품인데도 판매하는 곳에 따라 1만 ~ 10만 원까지 가격 폭이 크다는 문제점이 있고, 가격상한제의 경우 대부분의 제품이 높은 가격대에 몰리거나 품질이 저하된다는 문제점이 있다”면서 “제도별로 장단점이 있기에, 우리나라와 같은 단일 보험자 시스템에서는 급여 제품의 개별고시가격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품목 관련 제도는 정비에 나설 계획이다. 새로운 기술이 적용되는 신규 제품은 기존 품목에서 등록이 어려운 경우가 있어 ‘복지용구 예비급여 시범사업’을 통해 급여 적정 평가를 진행했으며, 내년에는 현행 18개 품목을 20개로 늘릴 예정이다. 또한 앞으로는 제품으로 등록 신청을 받아 품목 등록도 함께 진행하도록 할 계획으로, 공단 관계자는 “신규 제품 등록 과정을 6개월 정도로 단축하려 한다”고 말했다.

◇인식의 부재

‘복지용구를 언제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에 대한 기관, 업계 관계자, 이용자의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 급여 제도는 대체로 이용자가 나서서 자신의 권리를 찾아야 하는 환경이다. 시니어 라이프 케어 플랫폼 티에이치케이컴퍼니 전현준 서비스사업부 파트장은 “우리나라 장기요양등급 인정자 수는 약 110만 명으로 보호자까지 고려하면 약 220만 명의 이용자가 있는 셈이고,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며 “제도의 변화를 기다리더라도 우선 이용자가 적극적으로 정보를 찾고, 제도를 이용할 권리가 있음을 더 많은 분이 알았으면 한다”고 짚었다.

복지용구 전문가가 없는 상황에서는 사업소의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 복지용구종합센터 굿모닝실버 이건민 센터장은 “사업소가 2000여 개에 달한다지만 실제 다양한 제품을 갖추고 있는 곳은 정말 손에 꼽는다. 제품 특성상 직접 체험해보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오프라인에서 제품을 보여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면서 “사업소에서 제품에 대한 공부도 더 많이 해서 개인에게 맞는 복지용구 제품도 추천하고 제도 안내도 할 수 있는 전문가 역할을 하겠다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요양시설과 데이케어센터 같은 재가시설에서도 복지용구에 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임기웅 대표는 “전국의 요양시설이나 센터도 복지용구 이용 기관으로서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자 해야 한다”면서 “저렴한 복지용구만 찾을 것이 아니라, 더 좋은 복지용구를 구비해 돌봄 종사자의 부담을 줄이고 이용자의 자립도를 높여 돌봄의 질을 높이는 효과를 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공단 차원에서도 복지용구의 올바른 이용 지원을 위해 실효성 있는 정책들을 마련해야 한다. 김정아 교수는 “공단은 노인장기요양보험 인정자에게 복지용구 급여확인서를 통해 내용을 제시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으며, 수급자의 건강상태와 욕구에 맞는 복지용구를 사용하고 있는지 그 과정을 확인하고 결과에 따라 추가 지원을 하는 경우는 미진하다”면서 “수급자의 복지용구 이용 전 과정에 걸쳐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한 모니터링과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로서는 제도도, 인식도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복지용구 시장이다. 최근 업계에서부터 자정 활동을 펼치고 있는 만큼, 공단에서도 시장 투명성과 효과적인 이용자 지원을 위한 정책들을 더욱 강화해야 할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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