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개인은 할 만큼 해 봤다. 자기계발도 했고,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의 범위를 최소한으로 줄여 보기도 했다. 죽기 전에 꼭 해 보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실천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삶의 근원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올해 초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힐링을 벗어나 문학 읽기를 통한 삶의 성찰이 출판계의 큰 흐름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해가 저무는 지금 과연 그의 말대로 됐을까.
◇소설의 강세 = 2013년 서점가를 설명하는 키워드로 소설을 빼놓을 수 없다. 작품 수로도, 인기로도 풍년이었다. 인터파크도서가 최근 1년여간 집계한 베스트셀러 상위 20위 도서(2013년 1월 1일 ~11월 30일)를 보면 절반이 소설이다. 그중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이하 색채가 없는)’가 판매량 40만 부를 기록하며 소설의 강세를 입증했다. ‘색채가 없는’은 출판계 대목인 여름방학(7월)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하루키 신작의 그늘에 가려 있던 ‘정글만리’는 꾸준히 베스트셀러에 머물더니 9월 정상을 차지했고, 최근 100만 부(1·2·3권 합계)를 넘었다. 정유정의 ‘28’도 6월 출간 후 베스트셀러에 지속적으로 포진했고 김진명의 ‘고구려’도 눈에 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제3인류’, 댄 브라운의 ‘인페리노’도 인기를 끌었다. 인터파크도서 정지연 대리는 “지난해에는 주목할 만한 소설이 많지 않았다”면서 “올해에는 이름 있는 작가들의 신작이 이어져 소설의 강세가 뚜렷했다”고 했다.
◇중견의 귀환 = 소설의 강세와 더불어 중견작가들의 귀환도 한 흐름을 형성했다. 이권우 도서평론가는 2013년 한해를 “중견 귀환의 해”라고 설명했다. 원로 중견작가 김원일은 지난 9월 아버지의 시대와 아들의 유년을 그린 자전 장편소설 ‘아들의 아버지’로 돌아왔다. 한국일보문학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우경문학예술상 등을 수상한 걸출한 작가의 귀환이었다. 그는 ‘노을’(1978), ‘바람과 강’(1986), ‘겨울 골짜기’(1986), ‘마당 깊은 집’(1988), ‘늘 푸른 소나무’(1993), ‘아우라지로 가는 길’(1996), ‘사랑아, 길을 묻지 않는다’(1998) 등을 통해 한국문학을 살찌운 대표 원로 작가다.
중견작가 김훈과 이외수도 나란히 단편을 발표했다. 김훈은 단편 ‘손’을 계간 문학동네, 이외수는 단편 ‘파로호’를 계간 소설문학 겨울호에 각각 발표했다.
◇TV를 잡아라 = 이제 방송은 출판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돼 버렸다. 그 흐름은 올해도 여전했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기만 하면 베스트셀러가 됐다. 지난 2월 KBS ‘달빛 프린스’ 3회에 이보영이 들고 나온 책 ‘꾸뻬씨의 행복여행’이 대표적이다. 예능치고는 저조한 시청률인 4.2%(닐슨코리아 제공)를 보였음에도 그가 소개한 책은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그리고 100만 부를 넘어섰다. 출판 관계자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겼고 ‘달빛프린스’는 종영돼 ‘꾸뻬씨의 행복여행’을 남겼다”는 우스갯소리까지 했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상속자들’에서 은상(박신혜)이 읽던 책 ‘원더보이’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 9월 예능 프로그램 ‘힐링캠프-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한 이지선씨의 책 ‘지선아 사랑해’의 개정판도 방송 이후 한동안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머물렀다.
이 밖에도 ‘힐링캠프’의 신경숙 작품 ‘무한도전’에서 단 몇 초간의 노출로 폭발적 관심을 불러모은 박인권의 ‘여자전쟁’ 등이 방송의 파급력을 과시했다. 이에 대해 출판계는 반가움과 우려를 동시에 드러냈다. 정윤희 출판저널 편집장은 “시청자들이 TV를 본 후 독서로 이어지게 되는 긍정적 영향이 있다”면서도 “방송 노출이 자본력을 갖춘 출판사들만의 전유물이 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영원한 청년 작가 최인호의 별세= 지난 9월 25일 문학계의 큰 별이 졌다. 1970년대 청년 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대중적 사랑과 문단의 지지를 얻은 작가 최인호가 고인이 됐다. 이는 문화계 전반에 안타까움을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