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명의 각 분야 전문가와 함께, 초고령사회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길을 찾는 책 ‘시니어 트렌드 2025’가 이달 출간됐다.
2025년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0%를 넘을 전망이다. 초고령사회가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하지만 초고령사회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 최고 경영진의 평균 수명이 60세에 달하고, 고객의 연령대도 높아지면서 거대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시니어 트렌드 2025’는 퇴직 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부모님 돌봄은 어떻게 해야 할지, 시니어 시장에 진출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등에 대한 고민의 단서를 제시한다.
책에서는 라이프 스타일, 비즈니스 트렌드, 글로벌 트렌드 분야의 120여 개 키워드를 제시하며, 50명의 고령사회 전문가들이 개인의 노후 설계와 시니어 비즈니스 기획을 위한 다양한 소재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초고령 사회에서 어떻게 위기에 대처하고 기회를 살릴지 ‘더 나은 시니어 삶’의 설계를 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또한 2024년과 2025년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변화를 관찰한 내용을 담았다.
책을 출판한 출판사 시대인은 “실버산업이 국내에 소개된 지도 20여 년이 넘었고 수많은 시도와 실패가 있었으며, 점차 시니어 삶에 대한 이해도 폭을 넓혀가고 있다”면서 이제는 시니어 삶의 방향을 종합적으로, 정확하게, 세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영란 강남대학교 시니어비즈니스학과 교수는 추천사를 통해 “‘시니어 트렌드 2025’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의 초고속 고령화 현상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해설하는 백서”라며 “이 책이 제시하는 120개의 키워드가 초고령사회 담론을 활성화함으로써 불확실한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 특별기획 [고령화에 갈 곳 잃은 교통난민]
제1부 인국절벽에 가로막힌 노인 이동권
제2부 전용 교통수단으로 활로 찾은 일본
제3부 첨단 기술과 공유경제, 미래 이동권의 키워드
일본에서는 운전자의 고령화, 인구 감소 등을 이유로 매년 1000km에 달하는 버스 노선이 사라진다. 지역 주민의 50% 이상이 65세 이상인 마을은 택시 회사조차 없는 곳도 있다. 이에 ‘온디맨드 교통’이 새로운 대중교통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온디맨드(Ondemand) 교통은 수요 응답형, 승차 공유형 등으로도 불린다. 승차를 원하는 사용자가 전화를 걸어 원하는 목적지와 희망 시간대를 말하면 집에서 가장 가까운 정류소로 태우러 간다. 권역을 정한 뒤 그 범위에 위치한 정류소를 필요에 따라 들르고 희망하는 탑승 시간대에 최대한 맞춘다는 점에서 버스나 택시와는 다르다. 또한 주변에서 비슷한 경로로 이동하고자 하는 요청이 들어오면 a, b, c 정류소를 거치며 여러 사람을 태운다는 점에서 택시의 합승과 비슷한 승차 공유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온디맨드 교통을 도입하려는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마다 지역 택시·버스 사업자의 반발이 있지만, 버스 정류장이 멀어 외출을 못 하거나 면허 반납 후 장보기 등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자에게는 생활의 질을 높여주는 대중교통 수단으로 인정받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취재원들은 “온디맨드 교통만으로 고령자 이동권을 해결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면허 반납 후의 생활권을 보장하는 이동 지원 수단으로서의 역할은 충분하다”고 입을 모았다.
◇선두 주자 초이소코
온디맨드 교통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는 10여 개. 그중에서도 ‘AI 택시’로 불리며 온디맨드 교통 시장을 개척한 선두 주자는 초이소코(チョイソコ)다. 초이소코 서비스를 운영하는 주식회사 아이신(アイシン)은 도요타 계열사로 엔진, 자동차 변속기, 내비게이션 등을 만들던 회사다. 버스 노선이 점차 없어지고, 마을버스 역할을 하던 커뮤니티 버스조차 노선을 줄이는 데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것도 어려워 외출하지 못하는 고령자가 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아이신은 2019년 초이소코 서비스를 시작했다.
스기야마 진(杉山仁) 아이신 초이소코 서비스 기획실 실장은 “모처럼 교통을 이용해 외출한 고령자가 병원만 들르고 집으로 돌아가면 아쉽지 않을까 생각해, 밖으로 나가고 싶은 계기를 제공하자는 마음으로 기획했다”며 “지역 교통 불편을 해소하고, 고령자의 건강 증진으로 이어지도록 외출 촉진에 공헌하며, 민간 기업이 운영 주체가 돼 지역 스폰서를 통해 수익성을 높이는 것, 이 세 가지로 지속 가능한 지역 대중교통 체계를 만들어가는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초이소코는 아이신을 중심으로 지자체, 지역 교통 사업자, 지역 스폰서(사업자), 이용자가 함께 만들어간다. 지자체에서 예산을 투입해 서비스를 도입하고, 택시 회사 같은 교통 사업자가 차량과 운전자를 제공한다. 이용자에게는 평균 100~200엔의 이용료를 받기 때문에 병원, 슈퍼, 은행 등의 지역 사업자로부터 받는 협찬금으로 운영비용을 충당한다. 택시 회사는 잠재고객 유치, 고정수익 등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에리어 스폰서라고 불리는 사업자는 잠재적 고객인 이용자 대상 홍보 및 지역 내 이미지 향상 등의 효과를 볼 수 있다. 협찬 금액은 5000엔부터 10만 엔까지 다양한데, 금액에 따라 해당 사업장을 정류소로 지정하기도 한다. 높은 수익을 내는 것보다 더 많은 지자체에서 서비스를 도입하는 것이 목표라는 초이소코는 2023년부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2019년 하나의 지자체로 시작한 초이소코 서비스는 2023년 기준 67개 지자체에 도입됐고, 약 18개 지역에서 2024~2025년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스기야마 실장은 “온디맨드 교통은 정해진 길만 가는 버스와 같은 선이 아니라 면을 커버하는 개념”이라면서 “고령자의 자택에서 정류소까지 100~250m 이내로 설정해 외출을 더 쉽게 만들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초이소코를 이용하려면 회원 등록을 해야 하는데, 고령자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온라인과 우편 신청을 모두 받는다. 이용자의 80%가 우편 접수를 하는 편이라고. 예약해야 하는 교통이라는 특성상 콜센터가 필요한데, 아이신은 전국 지자체의 예약을 본사에서 직접 콜센터를 운영하며 관리한다.
콜센터에서는 AI를 활용한 자체 시스템을 활용한다. 이용자가 전화를 걸면 등록된 회원 정보가 자동으로 화면에 뜨고, 현재 이동 중인 초이소코 차량의 실시간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각 차량의 최대 승차 인원은 8명으로, 운전자가 이용자를 태울 때마다 차량 내 태블릿을 통해 승하차 버튼을 누르면 현재 승차 가능 좌석을 파악할 수 있다. 시스템에 이용자가 원하는 목적지와 시간을 입력하면, 현재 가장 빨리 배차 가능한 노선이나 환승 노선을 알 수 있다.
스즈키 아유미(鈴木歩) 아이신 비즈니스프로모션부 부장은 “나가노현의 경우 산간 지역이기 때문에 끝에서 끝으로 가려면 1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권역을 11개로 나누어, 가고 싶은 곳에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노선을 찾아 환승할 수 있게 안내한다”면서 “택시와 달리 원하는 목적지에 무조건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동승자도 있기 때문에 시간 약속을 잘 지켜야 한다는 점, 원하는 탑승 시간대에서 어느 정도 시간 조정도 이뤄진다는 점을 이용자들도 해가 갈수록 이해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덕분에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며 고마워하는 이용자의 감사 인사를 들으며, 콜센터 직원들은 동기부여를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mini interview
취재 당일 초이소코 시승을 담당해준 운전자 오쿠무라(奥村) 씨. 오쿠무라 씨가 운전하는 초이소코 차량이 달리는 곳은 경사가 많아 걷기가 힘들고, 길이 좁아 버스도 지나갈 수 없는 곳이다.
“손님들에게 고마움의 선물을 많이 받아요. 여기, 달려 있는 장식도 직접 만들어주신 거예요. 차, 커피, 일본식 과자 등을 종종 주시기도 하죠. 아, 정말 곤란한 선물도 있는데요. 더운 여름날, 아이스크림을 까서 주실 때면 정말 당황스러워요. 운전하면서는 먹을 수가 없거든요! 그래도 단골손님들에게 일상의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성공 사례 도요아케시
도요아케시(豊明市)는 가장 성공적으로 온디맨드 교통을 정착시킨 모범 사례다. 국토교통성은 기준을 충족한 지자체에 한해 대중교통으로서 승차 공유 유료 서비스를 운영하도록 인정하는데, 최소 3년을 운영해야 하지만 도요아케시는 실증 2년 만에 성과를 인정받아 2021년 정식으로 서비스를 도입했다.
도요아케시가 온디맨드 교통 서비스 도입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고령자 외출 촉진’이다. 많은 온디맨드 교통 서비스 제공 회사 중 초이소코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당시에는 온디맨드 교통이라는 개념이 알려지지도 않은 데다 도요아케시가 첫 도입을 시도한 지자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지역 교통 사업자의 반발이 컸다. 도요아케시 기획정책과 하야카와 게이스케(早川圭介) 씨는 “2년 동안 철도·버스·택시 회사 관계자, 국토교통성 담당자, 학자 등으로 구성된 교통협회와 도요아케시, 초이소코 담당자가 세 달에 두 번 모여 이용 규칙을 협의해가며 운영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정해진 초이소코 이용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1회 이용 금액은 200엔이며, 환승을 하거나 먼 거리를 가면 400엔이 나오기도 한다. 도요아케시 내 초이소코 정류소는 60곳 정도 있다. 일부 권역은 65세 이상이 아니어도 이용할 수 있지만, 시청 등 공공시설에 해당하는 정류소까지만 갈 수 있다. 그곳에서 다른 목적지까지는 버스 등 다른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연결한다. 2024년 3월 기준 이용자는 2293명, 약 80%가 70~80대다. 이용 목적은 의료 42.8%, 장보기 및 쇼핑 20.8%, 공공시설 이용 17%다. 온라인‧스마트폰 예약도 가능하지만 역시 전화 예약이 대부분이라고.
하야카와 씨는 “온디맨드 교통만으로 이동권 문제를 해결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다”면서 “다만 면허 반납을 위해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는 요인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전했다.
아카사카 교헤이(赤坂京平) 도요아케시 기획정책과 계장은 “초이소코 도입이 정말 고령자의 외출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사업 효과를 산출해봐야 할 것 같다. 현재 2대를 운영하고 있는데, 평균 이용자가 1.5명이어서 2명까지 승합률을 높이고 싶다. 또한 커뮤니티 버스의 1인당 수송 비용이 493엔인데, 초이소코는 1593엔으로 3배 정도 높아 비용 절감 방안도 필요하다”면서도 “이웃 마을로 가는 버스도 아침과 저녁 두 번뿐이고, 커뮤니티 버스도 점차 줄고 있어 슈퍼나 공공시설에 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도요아케시도 80세 이상을 대상으로 택시 승차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온디맨드 교통 방식이 생활의 불편함을 해결한다는 점에서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주민과 함께 히타치시
이바라키현 히타치시(日立市)는 고령자의 이동권 확보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가노 아카네(狩野茜) 히타치시 도시건설부 도시정책과 주사는 “면허 반납 시 이동을 돕기 위해 고령복지과에서는 교통카드 1만 엔권을 80세 이상이면 1000엔, 70~79세는 4000엔에 살 수 있도록 할인 제도를 시행한다. 고령자라면 택시도 기본요금인 740엔권 10장을 나눠준다. 또 고령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를 잘못 눌렀을 때 막아주는 급발진 제어장치를 부착하면 1만 엔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도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가네자와학구 지역 모빌리티’(金沢学区地域モビリティ)라는 온디맨드 교통을 운영하고 있다. 2021~2022년 시범사업을 거친 뒤 2023년 정식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히타치시의 지역 모빌리티 역시 지역 교통 사업자와 경쟁하지 않기 위해 오전 9시에서 오후 4시까지만 운영한다. 4개 권역이 나뉘어 있으며, 권역별로 20~60개의 정류소가 있다. 이용 연령을 정해두지는 않았지만, 65세 이상 이용객이 대부분이다. 역시 회원 등록 후 전화 예약을 통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초이소코의 콜센터 같은 역할을 가네자와학구 커뮤니티센터에서 맡고 있다. 센터 직원은 지역 주민으로 소정의 급여를 받으며 자원봉사 개념으로 센터 업무도 보고 지역 모빌리티 예약 접수도 맡고 있다. 운전사 역시 지역 주민이 담당하고 있다.
2021년 508명이었던 이용자는 2022년 2213명으로 늘었고, 2023년에는 3229명이 됐다. 처음에는 커뮤니티센터에 가려고 지역 모빌리티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제는 쇼핑‧병원 등을 목적으로 이용하는 비율도 늘었다. 가노 주사는 “현재 2대를 운영 중인데, 가네자와학구 외에 운영 지역을 더 늘릴 계획이지만, 택시 사업자의 영업을 압박하는 상황이 될 수 있어 조심스럽긴 하다”면서 “향후 승차 공유(라이드 셰어) 등에 대한 정부 정책 동향을 살피면서 제도를 이어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히타치시에 온디맨드 교통이 정식 도입될 수 있었던 건 커뮤니티센터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주민들에게 이런 정책이 있다는 걸 적극 홍보했다고. 오소노에 요시에이(小薗江義英) 히타치시 총무부 교통방범과 계장은 “시에서 이런 사업을 하고 싶어도, 지역에서 열심히 도와주는 주체가 없다면 활성화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커뮤니티센터를 중심으로 온디맨드 교통이 자리 잡은 건 히타치시의 특징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고령자 이동권을 돕는 여러 정책 중 어떤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 묻자 “병행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가노 주사는 “운전면허 반납 시 제공하는 혜택 제도는 사고를 줄이고 안전 운전을 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온디맨드 교통은 이동이 어려운 분의 이동을 돕는 것으로 두 사업의 목적이 다르다”면서 “이동을 보조해주는 수단이 없다면 면허 반납도 할 수 없을 것이므로, 각 제도가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지 취재 일본 초이소코(チョイソコ) 본사, 도요아케시(豊明市) 시청, 히타치시(日立市) 시청
시니어 케어기업 티에이치케이컴퍼니(THKCompany, 대표 신종호)와 시니어 전문방송 시니어TV(대표 구본일)는 콘텐츠 강화를 위한 전략적 업무협약(MOU)를 체결했다고 7일 밝혔다.
이번 협약은 시니어 세대의 필요와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상호 협력할 것을 목적으로 출시 4개월 만에 20만 다운로드를 달성한 시니어 케어 앱 서비스 ’이로움돌봄’ 운영하고 있는 티에이치케이컴퍼니와 시니어들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전문 콘텐츠를 방영하는 시니어 전문방송 ‘시니어TV’, 두 기업 간의 시너지를 통해 시니어 콘텐츠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전략적 업무협약(MOU)을 통해 양사는 다양한 주요 사항에 대해 협력할 예정이다.
주요 사항은 △ 시니어 세대의 다양한 관심사를 반영한 콘텐츠를 공동으로 기획하고 제작하여 시니어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 시니어 시장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 및 데이터를 공유하여 시니어 세대에 최적화된 서비스 및 콘텐츠 개발하고 △ 공동 캠페인을 통해 시니어 대상 콘텐츠의 인지도를 높이고, 더욱 많은 시청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안 모색 등 다양한 협력을 통해 시니어 생태계를 조성하고 발전할 예정이다.
티에이치케이컴퍼니는 시니어TV뿐만 아니라 경제신문 이투데이가 운영하는 시니어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 와 공동 캠페인을 계획 중이다. 이를 통해 노인장기요양보험부터 올바른 복지용구 사용법 등 사회 전반에 돌봄이 필요한 시니어들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제공하여 지속 가능한 노인 복지와 돌봄 문화를 구축하고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기 위한 활동을 준비 중에 있다.
티에이치케이컴퍼니 관계자는 “고령화 시대에 다양한 협업을 통해 시니어 세대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이를 통해보다 풍부하고 유익한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양사의 협력이 시니어 세대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 특별기획 [고령화에 갈 곳 잃은 교통난민]
제1부 인국절벽에 가로막힌 노인 이동권
제2부 전용 교통수단으로 활로 찾은 일본
제3부 첨단 기술과 공유경제, 미래 이동권의 키워드
‘슈퍼까지 어떻게 가야 하지?’ 취재 장소인 슈퍼까지 택시를 탈 생각이었지만 도착한 곳은 역무원도 없는 아주 작은 지하철역이었다. 이동 수단이 없어 슈퍼를 갈 수 없는 상황이라니. 이처럼 교통 난민과 쇼핑 난민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운전면허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고령자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일본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하나의 대안으로 이동 슈퍼가 등장했다.
카페도 편의점도 사람도 많은 도시의 지하철역과 달리, 고요하고 한적하고 사람도 없는 와카바야시역(若林駅)에서 처음으로 ‘어떻게 이동해야 할까’를 고민했다. 역에서 슈퍼인 야마노부(やまのぶ) 와카바야시점까지는 걸어서 15분 남짓이었다. 태풍이 온다는 예보가 무색하게 태양이 아주 높고 뜨겁게 걸려 있었다. 그늘 하나 없는 길을 걸으며 나에게는 15분 걸리는 이 길이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에게는 1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무더운 여름날 이 햇빛을 맞으며 무거운 물품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더욱 힘들게 느껴질 테다.
“집 앞에서 장 보세요”
‘슈퍼가 멀다, 날씨 영향을 받는다, 걷기가 어렵다’는 고령자들을 위해 집 앞으로 슈퍼를 보내주는 회사가 있다. 이동 슈퍼 도쿠시마루(とくし丸)다. 도쿠시마루의 ‘도쿠시’(とくし)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등 사회적으로 좋은 일에 참여하거나 돈을 내놓는 사람이라는 뜻의 독지가(篤志家)의 ‘독지’에서 착안한 이름이다. 앞으로 ‘쇼핑 난민’이라는 단어가 없어질 때까지 이동 슈퍼 차량 수를 늘리겠다는 미션을 가지고 있다.
도쿠시마루는 약 400품목, 1200~1500개의 상품을 경트럭에 싣고 고령자의 집, 대문 바로 앞까지 간다. 이렇게 일본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는 트럭은 2012년 도쿠시마루 설립 이후 2016년 100대를 돌파하더니, 2024년에는 1180대가 됐다. 도쿠시마루 이용자는 약 18만 명에 이른다. 이용자는 대부분 80세 이상 여성이다.
도쿠시마루 커뮤니케이션부 홍보 담당 오가와 나오미(小川奈緒美) 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젊고 건강한 사람은 점포가 크면 클수록 상품이 다양하기 때문에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고령자는 ‘너무 넓어 원하는 상품을 찾기 힘들다’고 한다”면서 “경트럭은 현관 앞까지 가기에 부담 없고, 좁은 주택가를 방문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도쿠시마루는 지역 슈퍼와 제휴를 맺고 지역에서 트럭을 운영할 판매 파트너를 모집한 뒤, 이용자의 신청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판매 파트너가 제휴 맺은 슈퍼에서 물건을 담고 오전 10~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고령자를 방문한다. 이후 남은 물건은 다시 슈퍼로 가져와 저녁 시간대에 할인된 금액으로 판매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보통 하나의 트럭이 하루 10곳 정도 방문하며, 1인당 쇼핑 시간은 10~15분 정도 걸린다. 식품 판매를 하기 때문에 3일에 한 번, 주에 2회 방문하는 것이 원칙이다.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은 반찬이며, 다음으로 채소 등의 신선식품이 인기다.
본사에서 전국을 관리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기업과 제휴를 맺고 일부 운영을 위탁하기도 한다. 취재를 위해 방문한 슈퍼 체인점 야마노부의 경우 포인트 서비스 회사인 블루칩에서 관리한다. 블루칩 담당자는 “전국으로 이동 슈퍼 시스템을 넓히기 위해 도쿠시마루와 협력하고 있다”면서 “야마노부는 중소 정도 규모의 체인이기 때문에 이동 슈퍼로 인한 매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1% 정도지만, 지역에서 한두 개 매장을 운영하는 곳이라면 매출의 30~50%를 차지할 정도로 지역 슈퍼 매출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지역의 슈퍼 역시 방문하는 소비자가 줄어들면 운영이 어려워지는데, 곳곳에 매장을 내기 어렵기 때문에 이동 슈퍼를 통해 새로운 판매 루트를 만드는 것이다.
판매 파트너는 개인사업자로 트럭을 직접 구매하거나 대여해서 이동 슈퍼를 운영한다. 슈퍼 입장에서는 정규직 직원을 고용하지 않아도 돼 운영 부담을 덜 수 있다. 이동 슈퍼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판매하는 모든 물품에는 20엔의 수수료가 붙는다. 판매 파트너는 판매수수료로 수익을 낸다. 도쿠시마루는 신입 판매 파트너를 대상으로 첫해에 4회 교육을 실시하며, 매출이 낮은 판매 파트너에게는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판매 파트너를 채용할 때는 도쿠시마루 창업자인 스미토모 다쓰야(住友達也) 씨의 원칙을 따른다. ‘자신의 부모에게도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이 기준이다.
지역 지킴이, 도쿠시마루
‘도쿠도쿠도~쿠 도쿠시마루~’ 경쾌한 노래가 흘러나오는 트럭이 아파트 입구에 멈춰 섰다. 9년 차 베테랑 판매 파트너인 가쓰미(勝見) 씨가 트럭을 열고 뜨거운 햇빛을 가려줄 천막을 펼친 뒤 어르신들이 편하도록 장바구니를 펼쳐뒀다. 하나둘 나온 어르신들은 ‘지난번에는 왜 안 나왔느냐’며 서로 안부를 묻기도 했다. 65세인 오타 씨는 “노래를 들으면 왠지 나오고 싶어요. 이곳은 주민들끼리 이야기 나눌 커뮤니티가 없어서, 쇼핑도 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는 게 즐거워요. 혼자 살기 때문에 하루에 한마디도 안 할 때도 있거든요. 혹시 내가 아플 때 쇼핑하러 나오지 않으면 누군가 들여다봐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어요”라며 이동 슈퍼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나다 보니, 이용자와 판매 파트너의 관계는 오히려 자녀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된다고 한다. 고령자를 만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대화를 통해 사회관계를 유지하는 것. 이동 슈퍼의 중요한 역할이다. 오타 씨의 말처럼 커뮤니티 역할도 한다. 아파트 단지의 경우 많게는 30명 정도가 모일 때도 있다고 한다. 주택가 역시 도쿠시마루 노래를 듣고 이웃집 주민이 나와보기도 하면서 대화의 장이 열린다.
가쓰미 씨는 “물론 처음부터 어르신들이 마음을 여는 건 아니지만, 자주 보다 보면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까지 나누게 된다”면서 “대화를 많이 하려고 한다”고 했다. 대부분 혼자 살면서 하루 종일 TV만 보거나 한마디도 하지 않는 고령자가 많은데, 대화를 많이 해야 치매 예방에 좋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판매 파트너끼리 뇌를 활성화하는 방법을 공유하거나 할머니,‧할아버지에게 도움 되는 정보를 공유한단다.
이렇게 이동 슈퍼는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다. ‘지역 지킴이’ 역할도 한다. 판매 파트너가 고독사한 어르신을 발견하거나, 생명이 위독한 어르신을 구하는 사례도 있었다. 오가와 씨는 “각 지자체와 미마모리(見守り, 지켜본다는 뜻) 협정을 맺고 있다. 사회복지 협의회, 지역 포괄 센터, 케어 매니저, 민생 위원 등과 협력한다. 이동 슈퍼 이용자는 관심이 필요한 고령자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동 슈퍼는 해당 지역에서 중요한 ‘돌봄’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객과 판매 파트너가 자녀만큼의 신뢰를 구축할 수 있다면, 앞으로 식품 외의 서비스 제공도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며 “도쿠시마루의 최종 목표는 고령자의 요청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준다는 ‘콘세르주(コンセルジュ, 호텔 등에서 고객 만족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가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mini interview
◇야마노부 와카바야시점 도쿠시마루 총괄, 우에다(うえだ) 씨
“우리 지역에 재개발 이슈가 있어서 슈퍼가 없어졌어요. 일종의 사명감으로 도쿠시마루를 도입했습니다. 9년 전만 해도 고령자 비율이 20% 정도여서 ‘이동 슈퍼라니, 10년은 빠르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령자 비율이 점차 늘어났어요. 도입하고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와카바야시에는 10대의 트럭이 운행되고 있어요. 이용을 원하는 분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어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이동 슈퍼가 먼 곳에 혼자 사는 분들이 쇼핑하는 데 문제없도록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 시설, 그러니까 인프라로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역에 이동 슈퍼가 있는지 없는지가 곧 인프라가 좋은지 안 좋은지의 기준이 될 정도예요!”
◇도쿠시마루 판매 파트너, 가쓰미(勝見) 씨
“식료품 관련 일을 하다 어느 날 TV에서 도쿠시마루를 봤어요. 할머니‧할아버지에게 정말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판매 파트너를 신청했습니다. 처음에는 치매에 대해 잘 몰라 치매가 있는 어르신과 말다툼을 한 적도 있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미안하네요. 이 일을 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물건 고르는 즐거움을 드린다’는 거예요. 부탁받은 물건만 전달하는 건 왠지 쓸쓸한 기분이 들거든요. 마지막 순서쯤에 물건이 다 떨어지면 미안해서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실으려고 해요. 특히 채소 같은 신선식품은 상태를 보며 고르는 기쁨이 있었으면 합니다.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일이 아니라, 어르신들을 돌보는 역할도 하고 있어 무척 보람되고 이 일을 이어가는 동기가 됩니다.”
현지 취재 일본 야마노부(やまのぶ) 와카바야시점, 와카바야시(若林) 일대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 특별기획 [고령화에 갈 곳 잃은 교통난민]
제1부 인국절벽에 가로막힌 노인 이동권
제2부 전용 교통수단으로 활로 찾은 일본
제3부 첨단 기술과 공유경제, 미래 이동권의 키워드
2019년 도쿄 이케부쿠로에서 87세 운전자의 운전 미숙으로 모녀가 사망하고 행인 10여 명이 다친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이케부쿠로 폭주 사고’라 불린 이 사건은 일본 사회에 큰 경각심을 불러일으켰고, 같은 해 고령자 운전면허 자진 반납 건수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노인의 나라’ 일본은 고령자의 안전 운전 문제와 면허 반납에 따른 이동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이바라키현(茨城県) 경찰청과 히타치시(日立市) 시청을 방문해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일본 정부는 고령자가 운전면허를 갱신할 때 다양한 검사를 받도록 한다. 면허 갱신 주기는 3년이다. 70세 이상이면 고령자 강습(4륜차 운전자 2시간, 2륜차 운전자 1시간)을 필수로 받아야 한다. 강습은 DVD 시청을 비롯해 실차(주행) 지도까지 이뤄진다. 다만 스가야 준이치(菅谷順一) 이바라키현 경찰본부 교통부 운전면허센터 이사관은 “고령자 강습에 합격 여부는 없다”고 설명했다.
75세 이상이라면 인지 기능 검사를 먼저 받아야 한다. 이 검사에서 ‘치매 우려 없음’ 판정을 받으면 고령자 강습을 받을 수 있다. 만약 ‘치매 우려 있음’ 판정을 받으면 의사의 진단서를 받아서 내거나 재검사를 신청할 수 있다. 둘 중 어떤 방법을 택할지는 고령자가 선택한다.
2022년부터는 75세 이상이면서 최근 3년 동안 교통법규 위반 기록이 있는 사람이라면 운전 기능 검사를 받는 것도 필수가 됐다. 운전교습소에서 자동차 주행 테스트를 해야 하는 것. 합격하지 못하면 면허 갱신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는 고령자 면허 갱신 시 주행 검사는 하지 않는데, 일본은 법으로 이론과 주행 모두 검사하도록 정했다. 스가야 이사관은 “머릿속으로는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이하 액셀)를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해도, 실제로 이를 착각해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가 꽤 있기 때문에 직접 해보고 실수할 수 있다는 걸 스스로 알아차리는 수밖에 없다”며 주행 시험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핵심은 ‘스스로 판단하기’
스가야 이사관의 ‘스스로 알아채야 한다’는 말처럼 일본의 고령자 운전면허 갱신에 대한 여러 제도는 통과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라기보다 인식 제고에 가깝다. 일본 정부가 고령자 면허 갱신 과정을 강화했다고 표현하지만, 면허 갱신 가능 여부의 기준을 높인 것이 아니라 검사 종류를 추가해 스스로 안전 운전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도록하는 데 의미를 둔다. 운전면허 자진 반납 제도는 1998년 처음 시행됐는데, 자진 반납은 첫해 2596건에서 2019년 60만 1022건을 기록했다가 이후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 하지만 경찰청은 자진 반납 건수를 늘리기 위한 별도의 홍보활동은 하고 있지 않다.
네모리 유미코(根守由美子) 이바라키현 경찰본부 교통부 운전면허센터 센터장 보좌는 “테스트를 여러 번 해도 기준 미달이거나 제출한 진단서 내용이 부적합하면 면허 취소가 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검사 결과 부적격 판정이 나오더라도 상태가 좋아져 적격 판정을 다시 받을 수 있다면 면허 갱신은 가능하다”면서 “시험 난이도도 쉬운 편인데, 이는 검사를 통해 고령자 스스로 면허 반납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는 데 의의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면허 반납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강제할 수 없다”며 “면허 반납 제도를 ‘자주(自主) 반납’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일본 내에서 고령자 면허 갱신을 좀 더 어렵게 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사이토 도오루(斉藤徹) 초고령관측소 소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전국적으로 75세 이상의 고령자 면허 갱신 검사 평균 합격률은 90%에 달하지만, 야마나시현 98.5%, 시마네현 72.1%와 같이 현에 따라 합격률에 큰 차이가 있어 공정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최근 고령자 증가로 고령자 강습 수강 대기 기간이 길어져 수개월을 기다리다 면허 갱신 시기를 맞추기 어려운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고령자 면허 갱신 검사가 일정 부분 자각하도록 하는 효과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약해진 신체나 인지 기능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므로 고령 운전자의 사고 발생 원인과 고령자의 기능 저하 사이의 인과관계를 밝혀 좀 더 엄격한 검사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면허 반납 쉬워지려면?
면허 갱신 검사 외에도 일본 정부는 고령자 면허 반납이 쉬워지도록 여러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경찰청은 #8080(シャプ-ハレバレ) 상담 제도를 운영한다. 위 번호로 전화를 걸면 가까운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의 경찰청 상담 창구로 연결된다. 상주하는 보건사(우리나라에는 없는 직업으로 간호사·보건사 국가고시를 봐야 한다)가 ‘과거 큰 병을 앓았고 최근 수술로 손이 잘 움직이지 않는데 안전 운전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등의 고민을 상담해준다.
일부 면허 반납 제도도 있다. 트럭 등을 운전할 수 있는 대형면허 소지자가 이를 반납하고 보통면허만 남기는 제도다. 면허 반납 뒤 신청자에 한해 ‘운전경력증명서’도 발급해준다. 우리나라는 주민등록증이 신분증 역할을 하지만 일본은 주민등록증과 같은 ‘마이넘버’ 제도가 2016년부터 시작됐기 때문에 운전면허증이 신분증 역할을 해왔다. 이에 계좌 개설, 스마트폰 개통 등 일상에서 운전면허증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면허 반납을 고민하는 경우가 많아 증명서 발급을 시작했다.
고령자의 면허 반납 혹은 운전경력증명서 발급에 대해 각 지자체는 사정에 맞게 버스 할인, 택시 승차 티켓 등을 제공한다. 경찰청은 고령자에게 해당 내용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지자체마다 예산 차이가 있고 고령자가 늘어 재정 부담이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바라키현 히타치시의 경우 운전면허 갱신 기간이 되기 전 자진 반납하면 1만 엔(약 9만 원) 상당의 버스카드나 택시권을 제공한다. 오소노에 요시히데(小薗江義英) 히타치시 총무부 교통방범과 계장은 “시에서 운전면허를 반납한 고령자 중 90%가 혜택 제도를 이용하는데, 매년 700만 엔(약 6500만 원) 정도의 예산이 사용된다”며 “1만 엔이 너무 적다는 고령자의 의견도 있지만, 예산을 늘리기에는 시에서도 부담되는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일본 정부는 면허 반납 후에도 고령자가 이동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야 자진 반납이 더 활성화될 것으로 보고 서포트카(サポートカー) 한정면허, 라이드 셰어, 온디맨드 교통, 자율주행차 등 다양한 제도를 도입했거나 검토하고 있다.
서포트카는 충돌 피해 경감 브레이크, 페달 밟기 실수 급발진 억제 장치, 차선 이탈 경보 장치 등이 적용된 차량을 말한다. 도요타·닛산·혼다·미쓰비시 등 민간 기업이 생산하면 국가에서 인증해주는 방식이다. 위 기술이 후탑재된 차량은 인정되지 않는다. 한정면허는 일반 면허 반납 후 서포트카에 한해 면허를 인정하는 것인데, 2024년 9월 기준 전국에서 한정면허 취득자는 14명뿐이다. 한정면허 취득 후 일반 차량을 운전하면 법규 위반이지만, 일반 면허로 서포트카 운전은 가능하다. 또한 최근 대부분의 차량에 충돌 피해 경감 브레이크(2022년 생산된 차량 중 98%에 적용) 등의 기술이 탑재되기 때문에 굳이 한정면허를 취득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라이드 셰어와 온디맨드 교통은 승차 공유 제도다. 현재는 온디맨드 교통이 일부 지자체에 도입돼 있다. 고령자가 원하는 목적지와 이동 시간을 신청하면 각 요청을 모아 한 대의 승용차가 차례로 태워 이동하는 서비스다. 민간의 서비스를 공공에서 도입하거나, 공공이 운영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라이드 셰어는 우버(Uber)와 같은 유료 공유 차량 서비스다. 일본은 택시 외의 유료 운송은 불법이어서 공유 차량 서비스가 운영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일본 정부는 승차 공유 지역과 시간 등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
사이토 소장은 “새로운 이동 수단이 필요한 지역은 대부분 인구 과소 지역으로 이용자 수는 적고 사업으로 수익을 내기도 어려운 구조이기에, 재정 부담으로 이어져 지속성에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다양한 정책이 강구되고 있지만, 충분한 대책이 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하면서 “정부는 대중교통이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 지역에서만 인정되는 자가용 유상 여객 운송 활용의 규제 완화를 진행하고 있는데, 비용을 낮추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이 운영하는 라이드 셰어가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라스트 마일(ラストマイル)
국토교통성은 2020년 ‘집에서 가장 가까운 정류장과 목적지 사이의 1마일(약 1.6km)을 자율주행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개념으로 ‘라스트 마일 자율주행차량 시스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어 지난해 운전자가 동승하지 않고 운전을 자동화할 수 있는 레벨4의 도로주행 제한을 풀었다. 이에 통신 대기업 NTT와 자동차 기업 혼다는 지자체 보급용 레벨4 자율주행차량과 무인 택시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일본 현장에서 만난 취재원들은 자율주행차가 고령자의 이동을 얼마나 편리하게 해줄지는 의문이라는 반응이었지만, 지역의 이동 수단 확보를 목적으로 자율주행 기술 실용화와 보급을 위한 실험은 진행 중이다.
현지 취재 일본 이바라키현(茨城県) 경찰청, 히타치시(日立市) 시청
일본의 난청 인구는 약 1400만 명, 이 가운데 보청기 착용자는 15%에 불과하다. 양쪽 보청기 착용 시 100만 엔이라는 가격, 정기 점검의 번거로움, 착용 후에도 잘 들리지 않는 문제, 노인 취급 받는 것에 대한 수치심 등이 이유다. ‘미라이 스피커’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한 제품이다.
2021년 3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청각보고서’를 발표하며 전 세계 인구 중 약 16억 명이 청력이 손상된 상태라고 밝혔다. 이어 2050년에는 약 25억 명이 난청을 겪을 것으로 예상돼, 각국 정부가 전 국민에게 청력 보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일본도 난청 인구가 많다. 10명 중 1명이 해당되며, 65세 이상 3명 중 1명이 청각 장애를 앓고 있다. 그럼에도 일반적으로 난청을 자각하고 보청기를 착용하기까지 평균 2~3년, 길게는 6년 이상 걸린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벤처 기업 ‘사운드펀’(サウンドファン)은 난청 인구의 보청기 착용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앙증맞은 스피커를 개발해 특허를 냈다.
볼륨 작아도 또렷한 스피커
“이 제품의 특징은 TV 볼륨을 높이지 않아도 말이 또렷하게 잘 들리며,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잘 들린다는 점입니다.” 사운드펀의 최고마케팅책임자인 가네코 가즈키(金子一貴) 씨가 시연하며 원리를 설명했다.
가네코 씨는 “제가 받침대를 펴고 오르골을 틀어드릴 테니 들어보세요. 소리가 작게 들리죠?”라고 말하더니 받침대를 다시 곡면으로 구부렸다. 신기하게도 오르골 소리가 크게 들렸다. 가네코 씨가 걸어가며 점점 멀어져 보이지 않는데도 소리는 또렷했다.
볼륨을 키우지 않아도 소리를 또렷하게 들을 수 있는 ‘미라이 스피커’가 탄생한 데는 사운드펀 창업자에 얽힌 사연이 있다. 창업자는 대학 졸업 후 IT 업계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영업에 뛰어들었다. 후지제록스, 델(Dell) 등 여러 회사를 거치며 관리직도 경험했다. 50대가 되던 무렵 난청이 있는 아버지가 가족들과 TV 볼륨 문제로 갈등을 빚는 것을 보며 ‘아버지의 난청을 해결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
그는 우연히 음악 치료 교수를 만나 ‘축음기의 곡면’에 소리가 잘 들리는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원리를 응용해 스피커를 만들었고, 보청기를 사용하는 아버지에게 들려주었더니 ‘잘 들린다’고 했다. 그는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2013년 10월, 57세의 나이로 켄우드의 기술자와 함께 사운드펀을 창업하게 된 계기다.
그가 개발한 미라이 스피커는 공항에서 첫선을 보였다. 공항에는 비행기 도착 및 출발 정보, 승객 호출 등 많은 안내방송이 나온다. 당시 공항은 천장이 높고 넓은 공간에서 볼륨을 높이면 반향이 커져 오히려 잘 들리지 않는 딜레마에 봉착해 있었다. 미라이 스피커는 볼륨을 높이지 않아도 소리를 또렷하게 전달하기 때문에 공항의 고민 해결에 안성맞춤이었다. 첫 시도인 하네다공항의 스피커 도입은 성공적이었다. 단숨에 전국 공항으로 보급이 확대됐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신생 기업이었기에 소량 생산만 가능했고, 1대당 10만 엔이라는 높은 가격 때문에 판매량이 급감했다. 제품에 대한 자신감은 있었지만 돌파구를 찾지 못해 지쳐가던 창업자는 과로로 병을 앓게 되었고, 후배인 야마지 히로시(山地浩) 씨에게 회사를 물려줬다.
제2의 사운드펀, 전환기를 맞다
야마지 씨는 창업자의 뜻을 이어받아 미라이 스피커의 가능성과 사회적 의의에 공감하며 제품을 판매할 방법을 고심했다. 그러던 중 당시 인기 TV 프로그램이었던 ‘가이야의 여명’(ガイヤの夜明け)에 제품이 소개되자 방송 다음 날부터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 1000건 이상의 개인 고객 문의가 들어와 전 직원이 전화 응대를 해야 했다. ‘아버님이 TV 볼륨을 높여 가족들이 애를 먹는데 TV 시청에 이용할 수 있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미라이 스피커의 전환점이 된 계기다.
야마지 씨는 시장을 재검토하고 소비자를 대상으로 대전환을 꾀하며 온라인을 통한 판매 방식을 도입했다. 연구 끝에 소형화・경량화・저비용화가 가능한 새로운 곡면 사운드 스피커 개발에 성공했고, 가격도 3만 엔 이하로 낮출 수 있었다. 그의 개혁은 사운드펀의 제2의 창업이나 다름없었다. 2020년 5월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한 결과 1년 동안 3000대 이상 판매됐으며, 현재까지 누적 판매 대수는 25만 대에 이른다.
특허를 획득한 미라이 스피커는 경쟁 상품이 없어 가격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며 수요도 많다고 확신한 야마지 씨는 가격과 마케팅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디지털 마케팅 지식이 풍부했기에 공략에도 자신이 있었다. 가네코 씨는 디지털 마케팅으로 자녀들의 수요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유튜브, 구글, 야후를 통해 마케팅을 하고 있습니다. 고령 친화 제품인데 왜 디지털 마케팅이 중요한지 궁금하실 텐데요. 부모님 생신이나 어버이날 선물로 미라이 스피커를 찾는 자녀들이 많답니다.”
미라이 스피커가 난청 있는 고령자의 불편함을 해결하기도 했지만, 아직 고령 친화 제품에 대한 고령자의 인식이 바뀌지 않은 부분도 있다. 가네코 씨는 자녀들의 선물에 “난 아직 귀 안 멀었다”고 화내며 반품하는 어르신들도 있다고 설명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젊은 감각의 디자인과 다양화
미라이 스피커는 고령자를 대상으로 하는 제품이지만, 시크하고 모던한 디자인이 젊은 감각을 보여준다. 가네코 씨가 이유를 설명했다.
“요즘 60~70대는 마인드와 감성이 굉장히 젊어요. 오히려 노인을 연상시키는 색상이나 디자인을 싫어하죠. 그래서 일부러 고령자를 위한 제품이 아닌 것처럼 젊은 감각에 맞게 디자인했어요. 또 가족이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어떤 연령대가 보더라도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신경 썼습니다.”
사운드펀은 코로나19 이후 넷플릭스를 시청하며 현장감 있는 사운드를 원하는 고객이 늘어나자 2023년 10월 ‘미라이 스피커 스테레오’를 출시했다. 우아한 곡면을 자랑하는 바 타입으로 TV 아래 받침대 등에 설치할 수 있는 제품이다. 지난 3월에는 ‘미라이 스피커 홈’을 개량해 신제품 ‘미라이 스피커 미니’를 출시했다. 심플한 디자인에 더 가볍고 세련된 제품이다. 사운드펀의 올해 주력 제품이기에 필자도 최근 TV에서 ‘미라이 스피커’ 광고를 자주 보고 있다. 판매점에 들러 직접 테스트해보고 싶어 하는 소비자가 많아, 1800개 판매점에서의 스피커 판매량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세계로 도전하는 미라이 스피커
‘곡면판을 흔들어 소리를 낸다’는 미라이 스피커의 제품 특허는 한국을 포함해 9개 나라에 등록됐다. 가네코 씨는 “현재 해외 판매는 미국이 유일하다”면서 “향후 캐나다와 멕시코 진출 가능성이 높다. 아마존을 통한 온라인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부모님을 위한 자녀의 구매가 많은 반면, 미국은 고령자가 직접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2050년 세계 난청자가 25억 명에 이를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미라이 스피커는 세계에서 사랑받는 제품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친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한 창업자의 정신과 그 뜻을 이어받은 야마지 씨의 소재·곡면 기술에 대한 오랜 연구가 활짝 꽃을 피우지 않을까.
사운드펀 사무실에는 젊은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여름이 되면 2만 발의 폭죽이 터지는 불꽃놀이가 열리고 100만 명이 모이는 스미다강이 그 앞에 펼쳐져 있다. 창업자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 젊은 개발자가 다음 세대에 필요한 신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바다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열심히 고민하는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경제가 쇠락해가는 일본에서 유일한 성장 가능 분야로 꼽히는 ‘시니어 비즈니스’지만, 수익 창출로만 접근한다면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사업이 될까 고민을 해봤다. 효심에서 출발한 가슴 따뜻한 스토리가 녹아든 혁신적인 제품이 세계의 난청자를 웃음 짓게 할 그날이 오길 마음으로 응원했다.
액티브 시니어 플랫폼 시놀이 시니어 세대를 위한 AI 말벗 서비스 '79전화'를 출시했다. 이 서비스는 관계가 제한된 시니어가 언제든지 친한 친구처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AI를 통해 편안한 대화 상대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사용자가 전화를 걸면 AI 말벗 ‘김시연’이 전화를 받으며, "오늘 뭐 했냐"는 친근한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사용자가 대충 답을 해도 AI는 음성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상황에 맞는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어간다. 기존 AI 대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어색한 발음이나 답변 지연 현상 없이 유연하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시놀의 AI 말벗 서비스는 특히 장기 기억 기능이 강점이다. 사용자가 이전에 한 대화를 기억하고, 그와 관련된 질문을 던지면서 마치 실제 친구처럼 개인화된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이 가능하다.
AI 말벗 서비스를 개발한 마인드로직의 조남경 매니저는 "이 서비스가 단순한 대화 입출력 기능을 넘어, 실제 친구와 대화하는 것처럼 응용력이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현재 이 서비스는 한국인 ‘김시연’과 미국인 ‘Amy Williams’ 두 가지 페르소나로 제공되고 있다. 시놀 관계자는 해외에서 거주하다 귀국한 시니어들이나 외국에서 생활 중인 시니어들이 특히 외로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 미국인 페르소나도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시놀의 AI 말벗 서비스는 시놀 앱과 시럽 앱에서 이용할 수 있으며, 직접 전화를 걸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번호도 제공한다. 1분간 무료 체험 후 유료 결제를 통해 계속 이용할 수 있는 방식이다.
김민지 시놀 대표는 "고령화 사회에서 시니어들의 정신적, 정서적 지원이 중요해지고 있다"며, “AI 말벗 ‘79전화’가 시니어들의 일상 속에서 동반자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에이징 커뮤니케이션의 선구자, 홍명신 대표. 그는 에이징 커뮤니케이션에서 케어, 엔드리스 커뮤니케이션으로 연구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인간 발달 8단계에 맞는 커뮤니케이션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 믿으며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에이징 커뮤니케이션의 시작
홍명신 대표는 대학원 재학 시절 에이징 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왜 하필 에이징 커뮤니케이션이었을까.
“제가 대학원 다닐 때는 젊은 사람들도 PC통신을 안 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던 시절이에요. 그런데 PC통신을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엄청 놀랐어요. 바로 이분들의 커뮤니티를 찾아서 만나봤더니 정말 70~80대인 거예요. 신선한 충격이었죠. 그때부터 고령자의 인터넷 이용, 인터넷을 통한 고령자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연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하지만 지도교수를 포함한 모든 주변인이 반대했다. 그럼에도 홍 대표는 뚝심 있게 밀어붙였고, 그렇게 시작한 에이징 커뮤니케이션이 벌써 22년째다. 모두가 반대하며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근본적인 질문에 그는 웃으며 대답한다.
“남들이 한 것을 따라가면 편하긴 할 거예요. 하지만 전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만들면서 나가는 게 좋아요. 겁은 없고 호기심은 많은 데다 새로운 것을 좋아해서 그런 것 같아요. 아무도 안 한 것을 내가 해낼 때 성취감이 있잖아요.”
길의 끝을 예상할 수 없어 느끼는 두려움보다 길을 만들면서 느끼는 짜릿함이 더 크다는 의미일 터. 그렇다면 그가 길을 찾아 묵묵히 걸어갈 수 있도록 하는 원천은 무엇일까.
“내가 특별해서 이런 일을 하는 건 아니고요. 힘든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 길을 걸어갈 후배들이 편하게 걸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처음 모델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힘들어도 가는 거죠.”
그는 타고난 개척자인 셈이다. 이렇게 시작된 에이징커뮤니케이션센터(이하 에커센터)는 개인, 가족, 기업이 어떻게 나이 든 세대와 소통해야 하는지, 질병과 세월을 넘어 어떻게 소통하는 즐거움을 누릴지 연구하고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에릭 에릭슨의 인간 발달 8단계를 보면 노년기는 60세부터 죽을 때까지를 뜻해요. 그때 얻을 수 있는 것을 자아통합이라 정의하는데요. 자아통합을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은 삶의 회고입니다. 노년기 이전에는 계속 앞만 보고 달리잖아요. 노년기가 되었을 때 딱 한 번 뒤를 돌아보는 거예요. 미워한 사람, 나에게 상처 준 사람도 용서하면서 지혜롭게 자아를 통합해야 해요. 그래야 삶이 행복해집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 든 사람과 다른 세대의 소통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제론테크놀로지 같은 비언어적 소통의 비중도 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홍명신 대표. 나이 듦이 ‘그들의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일’인 것처럼,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자아통합을 이루길 바라는 마음으로 에커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치매 케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
에이징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학위를 받은 뒤, 개론서를 집필하고,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강의를 시작했다. 이렇듯 활발히 활동하는데도 사람들은 그를 볼 때마다 ‘에이징 커뮤니케이션이 무엇이냐’고 질문한다며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에이징 커뮤니케이션은 나이 든 사람, 노화와 관련된 모든 커뮤니케이션 제반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는 사람 또는 미디어 이용자가 노인이거나, 대화의 메시지가 노인・노화일 수도 있고요. 연령 증가에 따라 나타나는 커뮤니케이션의 특성과 변화를 다루는 경우까지 모두 에이징 커뮤니케이션 범주에 속해요.”
수년째 에이징 커뮤니케이션 강의를 진행하던 그는 혈관성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위해 모든 것을 중단했다. 오로지 아버지 치매 케어에만 집중했다. 치매는 기억 및 언어 장애를 겪게 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소통의 장벽이 드리워진다. 결국 비언어적 소통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발견하고 케어 커뮤니케이션을 탄생시켰다. 그는 아버지 덕분에 자신의 전문 분야를 케어 커뮤니케이션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었다고 회상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치매 관리의 핵심은 케어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케어 커뮤니케이션은 노화와 질병, 장애 등으로 인해 돌봄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의미하는데요. 치매는 물론 질병이 있는 노인들은 인지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소통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기 어려워요. ‘노년기의 절반이 유병기’라고 하는데, 유병기 내내 소통이 안 되면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감정과 생각을 인정해주는 올바른 케어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엔드리스(Endless) 커뮤니케이션
그렇게 케어 커뮤니케이션을 9년간 연구하던 중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죽음이 홍 대표의 연구 영역을 넓히는 데 또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바로 엔딩 커뮤니케이션이다. 이는 국내에서는 생소하지만 해외에서는 활발히 연구가 이루어지는 분야다.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죽음과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어요. 사후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연구를 준비하던 중 엔딩라이프지원협회(구 엔딩코디네이터협회)의 제안으로 엔딩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걸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홍 대표는 소중한 이와 이별했지만 어떠한 형태로든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엔딩 커뮤니케이션인데, 끝을 의미하는 엔딩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박사 논문을 쓰던 2002년 당시 지도교수님께서 갑자기 암으로 작고하셨어요. 그때 교수님을 기리기 위해 추모 서적 ‘정치 커뮤니케이션 개론서’를 발간한 경험이 있는데요.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는 이들이 이 책을 아직까지 읽는 걸 보고 엔딩이 아니라 영원히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어떠한 형태로든 채널이 있다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뒤 엔딩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엔드리스 커뮤니케이션으로 완성하게 되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기부와 기록이 동시에, 레거시 프로젝트
홍명신 대표는 올해 1월부터 준비한 첫 번째 레거시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레거시 프로젝트란 기억에만 치중한 기존의 회고록이나 자서전 작업과 달리, 기록과 기부를 동시에 진행해 개인의 삶을 사회적 유산으로 기억되게 하는 작업을 일컫는다.
홍 대표는 삶과 죽음을 넘어서 영원한 소통을 이루며 삶의 새로운 도약이라는 관점에서 또 다른 새로운 길을 개척한 셈이다. 첫 번째 레거시 프로젝트는 청산리 전투의 영웅 홍충희 지사 가족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담은 ‘나는 홍충희 지사의 딸입니다(글. 홍기옥)’라는 책이다.
그는 “광복절을 맞아 공개되어 좀 더 뜻깊은 프로젝트가 된 것 같다”면서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전쟁기념관에 유물 25점을 기증했고, 도서 판매 수익금으로 독립유공자 및 저소득층을 위해 기부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처음 강의할 당시는 우리나라가 이렇게 고령화사회로 접어들 거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할 때예요. 그래서 에이징 커뮤니케이션 강의를 개설하기도 엄청 힘들었죠. 커뮤니케이션 개론 수업의 한 챕터로 진행하기도 하고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오죽하면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지도교수님 말 들을 걸’ 후회도 했다니까요.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내가 에이징 커뮤니케이션을 포기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말마따나 에이징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연구하며 굳세게 버티지 못했더라면 우리는 레거시 프로젝트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포기하지 않은 그의 뚝심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두 번째 프로젝트는 올 연말 공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기증 규모가 첫 번째보다 훨씬 방대하다. 7개 민간단체에서 소장품 90박스를 기증했고, 서적・서류・예술품 등을 분류해 677점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쟁기념관, 대통령기록원, 국회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외교원 도서관 등에 영구 기증했다. 게다가 영문판으로도 제작될 예정이라 해외로 뻗어나가는 프로젝트가 될 것 같다며 홍 대표는 활짝 웃어 보인다. 이어서 세 번째 프로젝트도 곧 예정이다.
“두 번째, 세 번째 레거시 프로젝트는 물론, 에커센터의 메시지를 알리기 위해 SNS 홍보도 할 생각이에요. 앞으로 우리 사회의 나이 듦과 소통 문화를 바꾸는 새로운 시도를 계속 이어나가겠습니다.”
슈퍼에이저(Super Agers).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40대와 같은 인지기능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뇌의 기능이 퇴화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보통 사람보다 신체 기능도 뛰어나고 사회활동도 왕성하게 하는 사람이다. 슈퍼에이저는 타고나는 걸까?
‘80에도 뇌가 늙지 않는 사람은 이렇게 합니다’의 저자 니시 다케유키는 슈퍼에이저를 ‘뇌와 몸이 늙지 않은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이 중에서도 100세 이상 사는 사람을 ‘백세인’이라고 하는데, 2021년 일본의 백세인은 8만 6510명에 달했다고 한다.
슈퍼에이저는 끊임없이 배우고, 호기심이 왕성하며, 양질의 인간관계를 맺고, 스스로 제약을 두지 않으며, 자유롭다는 특징이 있다고 니시 다케유키는 분석했다. 장수 유전자를 갖고 있어 나이보다 젊게 오래 산다기보다는 이들의 생활 습관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뇌 건강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뇌 노화 주의보
슈퍼에이저와 같은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뇌 노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뜨겁다. 대한신경과학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장기는 ‘뇌’(85%)이며, 뇌졸중·치매와 같은 뇌질환이 가장 걱정된다(63.5%)는 응답이 가장 높았다. 머리가 하얗게 세거나 반응 속도가 느려지는 등의 신체적 노화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 해도, 뇌에 문제가 생겨 자아가 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일 테다.
뇌질환은 생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뇌혈관질환(뇌졸중, 뇌출혈 등)이나 뇌종양, 정신질환 등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퇴행성 뇌질환이다. 알츠하이머, 파킨슨, 루게릭 등으로 통상 치매라고 말한다.
최근 들어 뇌 노화에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는 고령화로 이전보다 오래 살게 되면서 온전한 나로서 노년기를 건강하게 보내고 싶은 욕구가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눈·심장 등 모든 신체기관과 뇌의 세포가 노화를 겪는다. 줄기세포와 함께 세포 간 연결 능력이 떨어지며, 잘못된 생활 습관으로 유발되는 염증 등이 퇴행성 뇌질환에도 영향을 준다. 흡연, 우울증, 사회적 고립, 신체 활동 저하는 노년기 뇌세포 퇴행의 주된 원인이다.
물론 뇌가 노화됐다고 해서 기능이 바로 저하되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이야기나 질문을 반복하거나, 하고 싶은 말이나 단어가 떠오르지 않거나, 길을 잃거나 헤맨 적이 있다면 뇌의 노화를 의심해봐야 한다.
최근에는 치매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지만 치매는 아닌 ‘브레인포그’, ‘팝콘브레인’ 등의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머리에 마치 안개가 낀 것과 같다는 의미의 브레인포그는 질병은 아니지만 집중력과 학습 능력이 떨어지고 이유 없는 만성 피로가 몰려 우울하고 멍한 상태를 말한다. 팝콘브레인은 최근 유행하는 짧은 영상인 숏폼 등을 자주 보는 등 디지털 기기의 강력하고 빠른 자극에 익숙해져, 현실의 약한 자극에 무감각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현상이 주목받는 이유는 무기력이나 우울증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년기에 가장 흔한 정신질환은 우울증이다. 은퇴하거나 사별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등 노년기에 발생하는 스트레스 요인이 있는 데다 각종 신체질환에 노출되면서 우울 증상이 많이 동반된다. 또한 노화에 따른 뇌의 신경학적인 변화도 우울, 불안, 강박 같은 정신 증상 확률을 높인다. 노년기 우울증의 특징은 기억력 저하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90세에도 자라는 뇌신경
뇌 노화와 함께 뇌 건강 또한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건강한 성인의 뇌에는 1000억 개에 이르는 신경세포가 있고, 이 세포들이 주변 신경세포와 최대 1만 개에 이르는 연결부가 있어 시냅스만 해도 1000조 개에 달한다. 뇌가 노화한다는 것은 이렇게 많은 뇌세포들의 연결망이 약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성인이 되면 뇌신경이 생성되지 않는다고 알려졌지만, 1970년대 스웨덴 학자들에 의해 기억과 학습을 관장하는 해마 등에서 새로운 세포가 생긴다는 연구가 처음 등장했다. 이후 70세가 넘어서도, 심지어 90세에도 뇌신경세포가 새롭게 생성된다는, 신경세포도 특정 자극이나 활동을 통해 근육처럼 변화할 수 있다는 ‘뇌가소성’에 관한 여러 연구가 이어졌다. 특히 해마는 경우에 따라 커지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길을 외우는 게 일상인 택시 기사의 해마가 더 크더라는 영국의 연구가 이를 뒷받침한다.
뇌에서 새로운 세포가 생성되는 경우는 한정적인 상황일 뿐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뇌가 변화할 수 있다는 개념은 노년기에도 뇌 건강관리를 꾸준히 하면 슈퍼에이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다. 평소 잘못된 생활 습관으로 망가진 뇌라도 회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뇌 건강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혈관’이다. 뇌를 혈관 덩어리라고 볼 만큼 혈류 순환이 중요하다. 많은 전문가들이 운동을 추천하는 이유다.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심박수를 높이는 운동이 뇌로 향하는 혈액량을 늘려 전반적인 에너지를 높일 수 있다. 운동을 하면 뇌세포가 살아나고 뇌혈관이 깨끗해져 나이 들어서도 건강한 뇌를 유지할 수 있다.
특히 유산소 운동을 우선적으로 해보자. 기억력을 담당하는 해마의 크기를 늘리고, 인지기능 저하와 뇌질환을 예방한다는 연구가 많다. 뇌의 인지기능을 높이고 싶다면 평균대와 같이 균형 잡는 운동을 하거나, 여러 동작을 동시에 하는 협응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여럿이 함께 짝을 지으며 춤을 추는 행위는 최고의 협응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나이 들어 늦었다 생각하지 말고 새로운 악기를 배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외국어 공부를 해보자. 뇌도 근육처럼 지속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요리나 취미 생활을 하고, 남에게 맡기기보다 스스로 하고, 잘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이 뇌세포의 연결망 유지에 도움이 된다. 이와 함께 끊임없는 사회생활도 필요하다. 타인과의 관계가 좋은 사람일수록 건강하고 행복하다. 긍정적인 관계는 뇌 건강의 필수 요소다.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유대감이나 친밀감에서 나오는 도파민과 옥시토신 덕분이다.
건강한 생활 습관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흡연은 뇌를 망가뜨리는 지름길이라고 할 만큼 뇌 건강에 영향을 주며, 술은 아주 소량으로도 뇌세포를 손상시켜 뇌질환 발생률을 높인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흡연과 음주를 가장 먼저 멈추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한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같은 기저질환 관리를 소홀히 하면 안 된다. 뇌혈관을 공격하는 질환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인지기능에 영향을 주는 청력을 보존해야 한다. 귀가 안 들리면 관계가 단절되고 인지기능이 저하되며, 평형 기능 감소로 낙상 등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청각세포는 한번 손상되면 다시 회복되지 않으므로 소음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일본의 화가 고토 하쓰노는 73세에 문화센터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해 82세에 현대동화전 신인상을, 96세에 현대동화전 교육부 장관 장려상을 받았다. 113세에 생을 마감한 그녀는 112세에 일본의 전통 카드놀이인 가루타 초단을 취득할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고토 하쓰노의 사례처럼 뇌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싶다면 늦은 때란 없다. 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기 때문이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건강하게 먹고, 움직이고, 생활하면 된다. 지금부터 뇌를 관리하며 슈퍼에이저처럼 나이보다 젊게 살아보는 건 어떨까.
도움말 김영보 가천대 길병원 신경외과 교수, 손유리 서울정형외과신경과의원 원장(‘평생 젊은 뇌’ 저자)
여러 가지 질환에 대한 진단, 치료, 사후 관리까지 가능한 의료 AI가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퇴행성 뇌질환인 치매에서 의료 AI의 발달은 반갑다. 뇌 MRI 분석, 음성 분석, 인지, 안구 운동 등 디지털 바이오마커를 통해 치매를 진단하는 AI 기술이 얼마나 정확하며, 상용화 시점은 언제쯤일까?
치매는 퇴행성 뇌질환으로 60세 이상 고령자에게 가장 두려운 질병이다. 치매가 한번 발병하면 완치할 수 없기 때문에, 조기 검진을 통해 예방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방법이다. 급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됨에 따라 치매 환자 역시 지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중앙치매센터는 65세 이상 노인의 치매 유병률은 2020년 10.3%, 2030년 10.6%, 2040년 12.7%, 2050년 16.1%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와 더불어 치매 관리 비용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2020년 18.8조 원에서 2050년 106조 원으로 6배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다.
이처럼 치매 환자가 급증함에 따라 인공지능(AI)을 이용해 환자의 음성 혹은 행동 지표 등을 활용한 치매 관련 디지털 바이오마커(몸속 세포·단백질 등으로 변화를 알아내는 지표) 개발은 치매 분야 스마트 헬스케어 영역에서 수년 전부터 주요한 연구 주제였다. 하지만 대부분 연구 목적으로 활용될 뿐 아직 임상 목적으로 쓰이지는 않고 있다.
음성 분석, 뇌파 분석 등의 방식은 근본적으로 뇌 병변을 확인하기에는 분명한 한계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최종적인 진단 도구로 사용되기보다는 인지기능 저하 환자를 선별하는 용도나 기존 치매 검사의 보조용으로 활용돼 왔다. 뉴로핏의 뇌 MRI 분석 제품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최근 디지털 기기에 치매 관련 소프트웨어를 연동하면 뇌의 인지기능 저하와 치매 발병 가능성 등을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이 앞다투어 개발되고 있다. 그동안 인지기능 검사는 대면 지필 검사 방식으로 진행됐지만, 디지털 환경에서 적용할 수 있는 검사법이 개발되고 채점까지 자동화되고 있다.
또한 검사 대상자의 음성, 움직임, 수면 등의 패턴을 분석해 치매 고위험군을 선별하는 인공지능 기술도 속속 나오고 있다.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업체인 하이, 바이칼에이아이 등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와 같은 연구기관의 기술이 대표적이다.
AI 기반 뇌 노화도 분석
뉴로핏의 AI 기반 뇌 노화도 분석 전문 소프트웨어 뉴로핏 아쿠아와 뉴로핏 스케일 펫은 이미 의료 현장에서 사용하고 있다. 이는 국내 주요 대학병원과 함께 검증 연구가 진행된 믿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2022년 일본 후생노동성으로부터 의료기기 인증을 받은 바 있다.
최근 뉴로핏은 알츠하이머협회 국제콘퍼런스(AAIC 2024)에서 주요 기능이 업데이트된 ‘뉴로핏 아쿠아 AD’를 데모 시연하기도 했다. ‘뉴로핏 아쿠아 AD’는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관련 최첨단 뇌 영상 분석 기술의 집합체인 항아밀로이드 치료제 처방 치료 효과 및 부작용 모니터링 소프트웨어다. 현재 한국과 미국, 일본 등 주요 국가의 의료기기 인증을 준비 중이다.
디지털 바이오마커 측정 통해 치매 진단
하이(HAII)는 지난 4월 음성, 안구 운동, 인지 반응 이상 세 가지 디지털 바이오마커 측정을 통해 치매를 진단하는 디지털 의료기기 알츠가드(Alzguard)를 개발했다. 알츠가드 개발을 위해 전반적인 프로토콜 및 콘텐츠는 이화여대 목동병원, 진단 알고리즘 설계는 상명대학교, 안구 운동 관련 바이오마커는 비주얼캠프와 협업이 이루어졌다.
이후 식약처로부터 확증적 임상시험 승인을 받았다. 국내 임상 진행과 동시에 글로벌 임상도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하이 담당자는 “미국 FDA의 치매치료제 승인으로 치매 진단 분야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며 “가까운 시일 내에 누구나 알 수 있는 해외 유망 기관과 미국 및 글로벌 시장 개척을 위한 공동 연구에 관해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말소리 분석으로 건강상태 판단
바이칼에이아이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음성을 분석해 치매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바이칼에이아이가 선보인 ‘맑은 내 친구’는 말소리가 사람의 건강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시그널이라는 윤기현 대표의 철학에서 비롯됐다. 말소리를 분석해 여러 가지 건강상태를 진단해주고, 언어습관까지 분석해준다. 그뿐만 아니라 이용자의 인지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트레이닝 서비스도 함께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말을 많이 할수록 인지기능이 좋아진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복합지능연구실 역시 음성 대화를 분석해 치매를 예측하는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했다. 세계 최초로 알츠하이머 치매 예측을 위한 기존의 음성·텍스트 분석 기술에 대형 언어 모델(LLM)을 결합한 형태다. 이 AI 기술은 노년층의 대화를 분석해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 및 치매 고위험군을 선별해낼 수 있다. 이 기술의 정확도가 87.3%에 달해 해외에서 개발한 기술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TRI 연구진은 이를 바탕으로 태블릿 기반의 앱 개발을 완료하고, 한국전기연구원 연구진과 함께 노인복지센터 등에서 실증을 계획 중이다.
AI 기술로 치매 관리, 긍정적 영향 미쳐
최호진 한양대학교구리병원 신경과 교수는 “현재 AI 기술을 활용한 진단의 경우 뇌 영상 자료 판독 등과 같은 시각화가 가능한 자료로 진단하는 부분에서는 빠른 속도로 활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면서 “기술의 발달이 계속 이루어진다면 치매 분야에도 AI 기술이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치매 관리에 디지털 기술이 등장하면서 의료산업과 치매 환자의 삶에 여러 가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 교수는 “2013년 FINGER Study의 성공을 통해 비약물 치료인 운동요법, 두뇌 자극 활동 활성화, 식단 개선, 만성질환 관리 등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 환자의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되는 것을 확인했다”며 디지털 기술 발달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러한 비약물 치료를 디지털 치료기기에 담아 진행하고자 하는 많은 시도가 있으며, 이미 식약처 허가를 위한 확증 임상을 다수 회사에서 시행하고 있다. 확증 임상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경우 내년, 적어도 내후년에는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AI의 진단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 아직 AI 진단 알고리즘은 연구 과정에서 수집한 자료 범위 내에서만 높은 정확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즉 AI 기술로 질환을 진단할 때 데이터의 외부 검증(External Validation)과 교차 검증(Cross Validation)을 면밀히 검토할 수 있도록 수많은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확보해 정확성을 끊임없이 업데이트해야만 100%의 정확성에 가까워질 수 있다.
향후 AI 기술 상용화를 통해 치매 치료를 위한 국가・사회적 비용을 절감하고 글로벌 디지털 치료제 시장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