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 웰니스는 의료의 변방이 아니라 삶의 중심 돼야”

기사입력 2025-05-12 08:45 기사수정 2025-05-12 08:46

이윤환 교수, “노년 삶의 질 높이기 위해 예방 중요”


아프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좋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우리는 여전히 몸의 이상 신호를 감지해야만 병원을 찾는다. 오랜 시간 치료 중심이었던 의료가 예방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고 있다. 그 변화의 한가운데 ‘웰니스(Wellness)’가 있다. “예방은 병을 막는 게 아니라, 나답게 오래 살아가기 위한 전략”이라고 말하는 이윤환 아주대학교 예방의학과 교수를 만나 노년의 미래에 예방과 웰니스가 미칠 영향을 이야기했다. 이윤환 교수는 현재 한국노년학회 회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서로 다른 길 끝에서 만나다

1948년 WHO는 건강에 대해 ‘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안녕한 상태’라고 정의했고, 이를 예방의학은 오래전부터 실천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예방보다 치료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치료보다 예방’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면서 예방의학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과거 비의료적이며 비과학적인 행위, 혹은 사치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웰니스(Wellness)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이제는 의료와 웰니스, 이 둘이 서서히 마주 보며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이윤환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과 교수는 말했다.

“예방의학은 기초의학에서 출발해 건강을 유지하고 질병을 막는 데 초점을 둔 학문입니다. 반면 웰니스는 건강은 물론 삶의 질, 심리적 안정, 환경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훨씬 더 넓고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웰니스로 병을 치료한다는 것은 과학적인 근거가 약하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의료적인 행위라고 보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의료에 웰니스가 일부 포함된 구조로 바뀌고 있습니다.”

여전히 명확한 의학적 근거가 없어 의료 행위로 인정받기 어렵다. 하지만 과학은 조금씩 웰니스의 가능성을 밝혀내고 있다는 것이 이윤환 교수의 이야기다. 글로벌 웰니스 인스티튜트(GWI, Global Wellness Institute)는 명상이나 요가 같은 활동이 실제로 생리적 지표를 변화시키는 사례를 수집하고 있으며, 불면증에 효과적인 인지행동치료(CBT, Cognitive Behavioral Therapy)를 진행하는 병원에서도 웰니스가 활용되고 있다.


‘예방’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

예방의학은 의학의 맨 앞줄에 있어야 할 분야인데, 왜 이제야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된 걸까? 그는 ‘돈과 고령화 때문’이라는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우리나라 의료비 지출은 이제 GDP의 9%에 육박하는 실정입니다. 한 명이 병원에 입원할 때마다 드는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죠. 그러니 치료보다 미리 예방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게다가 이제는 오래 사니까요. 9988234(99세까지 88하게 살다 2~3일 앓다가 죽는다는 뜻의 신조어)라는 말이 있잖아요.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미리 관리하고 예방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판단하게 된 것이죠.”

이 교수는 자신의 전문 연구 분야인 ‘노쇠(Frailty)’를 예로 들며 노인들의 ‘기운 없음’, ‘걷기 불편함’, ‘밥맛 없음’ 같은 변화가 노쇠의 신호로 읽힌다고 설명했다.

“예방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병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노쇠의 신호를 빨리 알아차리고 노화를 천천히 맞이하기 위해서예요. 몸의 회복력이 좋은 사람은 같은 수술을 받아도 그 반대의 경우보다 더 빨리 회복하고, 더 오래 건강하게 지냅니다.”

바로 이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높이는 것이 예방의 핵심이다. 신체뿐 아니라 심리적인 회복력도 포함된다. 긍정적인 마인드, 의미 있는 삶, 사회적 관계 등 우리가 놓치기 쉬운 것들이 건강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라는 이야기다.



의료와의 접점 된 ‘과학적 웰니스

웰니스가 의료라는 제도권에 진입하기에는 여전히 장벽이 존재한다. 웰니스 관련 프로그램이 건강보험 급여로 인정되지 않아 대부분 비용을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게다가 의사 신분으로 근거 없는 행위를 권할 수 없고, 의사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기에 조심스러운 것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이에 이윤환 교수는 “일부 병원에서는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신경과, 정신과, 혈액종양내과, 재활의학과 등에서는 명상, 식사조절, 자가 치유 프로그램을 점차 도입하고 있다. 언젠가는 웰니스가 의료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라며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세계적 의료기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병원인 미국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이 공식적으로 ‘홀리스틱 헬스(Holistic Health)’의 개념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메이요 클리닉은 2024년 1월 발간한 ‘메이요 클리닉 온 헬시 에이징(Mayo Clinic on Healthy Aging)’이라는 책(국내 번역본 출간 예정)에서 ‘홀리스틱 헬스’라는 개념을 별도의 챕터로 설명하며, “건강은 단지 병이 없는 상태를 넘어 몸과 마음, 영혼의 균형 속에서 온전하게 기능하는 상태”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홀리스틱 헬스 개념을 담은 '메이요 클리닉 온 헬시 에이징'
▲홀리스틱 헬스 개념을 담은 '메이요 클리닉 온 헬시 에이징'

메이요 클리닉이 말하는 홀리스틱 헬스는 생활 습관, 감정, 사회적 관계, 목적의식, 환경 등 개인의 전반적인 삶까지 포함한 건강을 의미하며, 명상이나 스트레스 관리, 의미 있는 관계, 인생의 목적을 찾는 과정까지 ‘건강한 노화’의 조건에 포함시킨다. 결국 진짜 건강은 몸 하나만 튼튼한 것이 아니라 균형 잡힌 삶 전체에서 온다는 것이다.

“메이요 클리닉 같은 기관이 홀리스틱 헬스를 언급했다는 것은 이제 ‘비의료적’이라는 이유로 웰니스를 배제할 수 없는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신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료인들도 마음과 삶을 함께 봐야 한다는 걸 느끼고 있죠. 웰니스는 그런 변화를 이끄는 키워드입니다.”

그뿐 아니라 최근 의료계는 혈압·혈당 같은 수치 외에도 환자가 스스로 느끼는 건강상태, 삶의 의미, 만족도 등 ‘주관적 지표(Patient Reported Outcome, PRO)’를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는 단순한 웰빙(Well-being)을 넘어 삶의 풍요(Flourishing)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장되는 셈이다.

“삶에 의미를 느끼는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기꺼이 행동할 수 있는가 같은 질문이 이제 건강 연구에 들어가고 있어요. WHO가 말한 ‘정신·사회적 안녕’의 시대가 정말로 열리고 있는 거죠.”

이 교수는 “의료가 이 모든 흐름을 따라가려면 웰니스의 효과를 입증할 수 있는 표준화된 개입(Intervention), 신뢰성 있는 지표 개발, 의료계의 열린 태도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예방 중심 의료’의 엔진, AI와 데이터

웰니스와 예방의학의 융합 흐름은 디지털 기술과 만나 더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이 교수는 “정밀의료라는 측면에서 AI는 필수 불가결한 기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AI와 데이터 기반 헬스케어가 앞으로 예방 중심 의료의 ‘표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요즘은 어르신들도 워치 같은 웨어러블 기기로 걷는 속도나 심박수, 수면 패턴 등을 스스로 체크하며 사용하지 않느냐”며 “이를 통해 개인의 생활 습관 개선, 영양 관리, 운동 처방 등을 제공해 예방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노쇠의 지표로 사용되는 걷는 속도나 목소리 떨림 등 일상적 변화도 AI 분석으로 조기 진단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말하는 속도, 목소리 떨림, 얼굴 근육 움직임까지 분석해 회복력 저하를 감지할 수 있다면, ‘단순히 병이 있느냐 없느냐’를 넘어 ‘얼마나 잘 회복하는가’를 지표화하고, 개인 맞춤형 예방 전략을 설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제는 웨어러블 기기로 질병의 유무 뿐만 아니라 회복력의 변화까지 모니터링이 가능한 시대다. 메이요 클리닉이 주관적인 행복감과 삶의 의미가 환자의 치료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연구해 치료에 반영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은 수치를 넘어서 사람을 보는 시대입니다. 예방은 단지 질병을 막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더 오래, 더 나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에요. 예방, 웰니스는 의료의 변방이 아니라 삶의 설계이자 건강 전략의 중심축이 될 것입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더 궁금해요0

관련 기사

  • 장수혁명 시대의 ‘뉴노멀 시니어’, 능동적 주체로 부상
    장수혁명 시대의 ‘뉴노멀 시니어’, 능동적 주체로 부상
  • 중장년 경제권의 부상 ‘뉴노멀 시니어’가 온다
    중장년 경제권의 부상 ‘뉴노멀 시니어’가 온다
  • 케어링, 메디컬 특화 프리미엄 요양원 ‘케어링빌리지’ 오픈
    케어링, 메디컬 특화 프리미엄 요양원 ‘케어링빌리지’ 오픈
  • '글로컬 웰니스 관광 선도' 써드에이지, 웰니스캠프와 손잡아
    '글로컬 웰니스 관광 선도' 써드에이지, 웰니스캠프와 손잡아
  • 김미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원장 “노인 일자리, 경험과 역량 자산화가 핵심”
    김미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원장 “노인 일자리, 경험과 역량 자산화가 핵심”
저작권자 ⓒ 브라보마이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브라보 스페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