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편지를 받았다. 이런 사연이다. “병원 대기실에 꽂혀 있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이하 ‘브라보’)’를 봤다. 내용이 좋아 시어머니 이름으로 정기구독을 신청했다. 그 뒤 시댁에 갔을 때 냉랭하던 시어머니가 느닷없이 다가와 껴안아 줬다. 결혼식 날 신부로 안겨본 뒤 처음이다. 시어머니 이름이 선명하게 박힌 봉투를 내밀며 ‘네가 구독 신청해 내 이름을 찾아줬다. 결혼한 뒤 내 이름 없이 살았다. 앞으로는 내 이름으로 살란다. 그걸 네가 깨우쳐줬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동안 시어머니와 힘겨룸하던 불편한 일들은 모두 사라졌다. 브라보! ‘브라보’의 힘이다.” 편지는 “내일이 기다려진다”로 끝맺었다. 편지가 거기서 끝나 더는 알 수 없지만, 그동안 시어머니를 만나는 게 두려워 시댁에 가야 할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싶었을 독자의 절망을 짐작케 한다.
독자의 내일은 ‘올 날’이라는 뜻이어서 한자로 ‘내일(來日)’이라고 쓴다. ‘올래(來)’자는 ‘오다’나 ‘앞으로’라는 뜻을 가진 글자다. 본래는 ‘보리’를 뜻하던 글자였다. 갑골문에 보리 뿌리와 줄기가 함께 그려져 있다. 곡식은 하늘이 내려주는 것으로 옛사람들은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점차 ‘오다’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오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지금은 ‘뒤쳐져 올 치(夂)’자가 더해진 ‘보리 맥(麥)’자가 그 뜻을 대신한다. 곡식을 하늘이 내려주는 것으로 여긴 선인들은 내일 또한 당연히 하늘이 열어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내일은 반드시 오는 날이라는 믿음을 갖게 했다.
미래(未來)는 아직 오지 않은 날이다. 아직 오지 않았기에 알지 못한다. 궁금하다. 우리는 다만 오늘보다는 더 밝은 모습으로 오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미래가 희망인 이유다. 미래는 그러면 어떤 모습으로 올까? 그건 현재를 사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어제 내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는 거다. 오늘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내일이 결정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래는 거울이다. 오늘의 내 모습을 보면 내일의 내 모습을 거울 보듯 바로 볼 수 있어서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기 때문이다. 거울은 숨김이나 보탬 없이 오늘을 어떻게 살았는지를 내일의 결과로 보여준다. 신처럼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거울은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내일의 나를 오늘과 다른 모습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다. 내일의 내 모습이 내가 원하는 바람직한 양태로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훨씬 다른 변화를 겪어야 기대할 수 있다. 운명은 그런 점에서 개척하고 바꿀 수 있다. 나를 돌아보는 자성(自省)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기반성을 통해 더 나은 내일을 구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절한 각오로 변신을 꾀하면 내 미래는 지금과는 완전하게 다른 모습으로 꾸밀 수 있다. 거울은 현실 인식과 성찰을 유도해내는 매개물이다. 사람들이 스스로 반성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거울의 향상성 때문이다. 인간은 생후 15개월이면 거울 속 모습이 자기 모습인 것을 안다. 다른 동물은 거울에 관심이 없다. 거울 속 모습을 보여주면 다른 동물로 착각해 별의별 기행을 한다. 거울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을 보여준다.
거울은 진실을 반영한다. 그러나 한계도 있다. 빛의 조합으로 비친 형상이어서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다. 빛이 없이는 거울도 존재하지 않는다. 거울의 복사성은 반사다. 거울 없이 나를 보는 유일한 방법이 타인에게 비춰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면 그와 나의 차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브라보’는 10년 동안 독자들에게 스스로를 꾸준히 비춰봤다. 그래서 얻은 결론이 ‘독자가 먼저다’다.
‘브라보’는 창간 10년을 맞았다. 지난 10년을 발판 삼아 이제는 도약할 일만 남았다. 도약의 10년 법칙이란 게 있다. 성공한 사람들이 새로운 분야에서 큰 성과를 이루기까지 약 10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스톡홀름대학의 앤더스 에릭슨 박사에 따르면,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선 최소 10년의 집중적인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는 하버드대학의 하워드 가드너 등 여러 연구자가 강조하는 바와 일치한다. 10년이라는 시간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우리를 명품 인생으로 이끌어주는 필수 과정이다. 지난 10년 ‘브라보’가 이루어낸 일이다.
겪어보니 ‘10년 법칙’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마음과 두뇌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격렬한 게임이다. 그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10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자신의 분야에서 깊이 있는 지식과 숙련도를 쌓아야 한다. 언제 이 법칙을 실천할지, 그리고 어떤 분야에서 실행할지 결정하는 것은 인생을 꽃피우기 위한 첫걸음이다. 10년 동안 한 가지에 집중하다 보면, 일정 시점에서 우리는 터닝포인트를 맞이하게 된다. 이 시점은 우리의 두뇌 속 도로망이 뻥 뚫리듯 문제 해결 능력, 추진력, 기회를 읽는 능력이 폭발적으로 향상되는 순간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마침내 진정한 전문가로 거듭나게 된다.
‘수급불류월(水急不流月)’. 강물이 제아무리 급히 흘러도 물에 비친 달의 그림자를 쓸어낼 수 없다는 뜻이다. 물살이 급할수록 더 역동적으로 휩쓸린다. 나를 지탱해줄 단단한 뿌리가 있다면 달그림자처럼 중심을 지킬 수 있을 테지만, 현실은 달그림자는커녕 가벼운 부표처럼 둥둥 떠다니며 이리저리 휩쓸리기 일쑤다. 쉽게 흔들리는 것은 단단한 주관이 없기 때문이고,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급불류월’은 제주 돌문화공원 지하 전시실 입구에 걸려 있다. 이 글은 세림보훈(細林寶訓), 중국 호양(胡羊)의 서법과 일본 다도(茶道)의 선어(禪語)로도 쓰는 말이다.
이 성어는 세월이 아무리 빠르게 변한다 해도 초심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새김이다. 사람이 어떠한 위기에 봉착한다 해도 적연부동(寂然不動), 움직이지 않는 자세를 갖춰야 함을 말한다. 세상이 아무리 혼탁해도 나만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의 현대인들이 한 번쯤 새겨볼 만한 글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