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움에는 끝이 없다. 과거 시니어는 배움을 그치고 그간 익힌 지식을 나누어주는 세대로 여겼다면, 요즘 시니어는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발맞추기 위해 지속적으로 배움을 희망하는 세대다. 이에 따라 시니어들의 교육·문화 모임과 커뮤니티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명함을 주고받으며 네트워크를 형성하던 조찬 모임 같은 전통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연령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관심사를 중심으로 모이는 온·오프라인 모임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성공 향한 열망, 새벽을 깨우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2014년 11월 온라인 기사를 통해 세계미래포럼 조찬회에서 만난 1938년생 이득해 씨의 사연을 소개한 바 있다. 광고회사를 경영한다는 그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조찬회에 참석하며 “피곤해도 공부할 땐 몰라요. (중략) 피곤해도 새벽부터 내내 공부하니까”라며 남다른 학구열을 드러냈다.

조찬 모임은 한국인 특유의 근면 성실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다. 출근 전 조찬을 겸해 강연을 들음으로써 시장의 변화를 남보다 앞서 파악하고, 관계자들과 교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조찬 모임은 조찬회·조찬 포럼·조찬 세미나 등으로 불리며 성공하고자 하는 이들의 욕망을 자극했다. 우리나라 조찬 모임의 역사는 반세기 남짓하다. 고(故) 장만기 회장이 ‘경영자 조찬회’라는 이름으로 1975년 시작한 인간개발연구원의 ‘조찬 세미나’는 이번 5월 2096회를 맞이한다. 한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영원(IMI)의 ‘경영자 조찬 경연’은 1986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주재한 ‘전경련 월례조찬회’가 그 출발점이다.
조찬 모임은 국내외 정재계 인사를 비롯해 현업에 있는 전문가들이 강사로 나서 폭넓은 주제로 양질의 강의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대학 정규 교과 못지않은 성과를 내며 우리나라 기업과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이처럼 CEO 및 고위직 인사들이 모여 경영 정보와 인맥을 나누는 조찬 모임은 시니어들이 사회적 소통과 비즈니스 네트워킹, 자기 계발을 이어가는 중요한 장이었다.
사회 지도층 위주 모임이라는 점과 값비싼 회비, 장소와 규모의 한계 등으로 폐쇄적인 정보 교류 및 인맥 형성 수단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조찬 모임에 변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IGM 세계경영연구원은 2013년 CEO 중심 조찬 모임에서 벗어나 조직 구성원 모두를 교육 대상자로 확대하며, CEO나 임원진이 들은 강의를 부하 직원에게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운용한 바 있다.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어나면서 2010년대 후반부터는 조찬 모임에 여성 참여자가 급증하거나 여성만을 위한 조찬 모임도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런가 하면,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겠다는 취지로 모인 조찬모임도 있다. 대한민국 백강포럼은 “좋은 강의가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윤은기 회장의 포럼 경영 철학에 따라 운영 중이다.


취향 맞춤형 소셜 클럽이 뜬다
요즘처럼 사회 변화 속도가 빠른 시대에 끝없는 자기 계발 욕구가 CEO와 임원진 같은 일부 시니어만의 점유물일 리 없다. 2010년대까지 경제성장 중심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성공의 수단으로 조찬 모임이 이뤄졌다면, 최근 시니어들의 모임과 교육은 한층 더 다채로워지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변화는 온라인 플랫폼의 발달에 따른 디지털 활용이다. 팬데믹과 엔데믹을 거치며 문화·예술·교육 분야 커뮤니티 역시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온라인 플랫폼과 오프라인 모임이 결합된 하이브리드형 모임이 눈에 띈다. 온라인 강의를 듣고 현장 답사를 가는 등의 방식이다. 2021년 한국시니어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시니어 중 약 50%가 스마트폰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다. 즉 디지털 기반의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에도 무리 없이 참여하며 참여율도 증가하는 추세다. 그 여파로 시니어 디지털 커뮤니티 플랫폼 ‘시놀’, 4060세대의 취미 모임 플랫폼 ‘오이’, 4050 여성들을 위한 여행 커뮤니티 ‘노는법’처럼 시니어만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다음은 세분화한 관심사를 깊이 나누기 좋은 소규모 모임의 대두다. 조찬 모임이 한 명의 연사 이야기를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이 듣는 구조였다면, 소규모 모임은 참가자 사이에 더욱 긴밀한 소통을 꾀할 수 있는 구조다. 수평적인 소통을 위해 상호 존중 호칭이나 익명 사용, 리더나 강연이 없는 모임이 생기고 있다. 이를 통해 참석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격의 없는 소통이 이루어지며 새로운 관계 맺기가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시간대의 다변화다. 구글 트렌드를 통해 조찬과 브런치의 검색 관심도를 비교해보면, 2009년 이후 줄곧 브런치의 검색량이 조찬의 검색량을 압도한다. 이른 새벽의 조찬보다는 느지막이 식사하며 여유를 즐기는 ‘브런치’ 문화가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근무 환경 역시 ‘워라밸’이 중시되면서 퇴근 후 문화생활을 즐기거나 자기 계발을 하는 트렌드도 자리 잡고 있다. 독서 모임 기반 커뮤니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트레바리’는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읽고 주제에 관해 토론하는 형식으로 운영한다. 주중 모임은 저녁 7시 40분부터, 주말 모임은 오후 3시부터 220분 동안 진행한다. 2015년 설립 이래 9만 8800명 이상이 트레바리의 독서 모임을 경험했는데, 2030세대가 주를 이루던 모임이 격의 없는 소통의 장으로 입소문 나면서 중장년층의 참여가 점차 늘고 있다.
이를 종합해보면 과거에는 사회 지도층 중심의 폐쇄적인 정보 교류의 장이 문화·교육의 커뮤니티를 주도했다면, 오늘날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개방적인 맞춤형 모임이 증가하는 추세다.
세대의 벽 허무는 독서 모독서 모임 플랫폼 ‘트레바리’에서 일하는 직원이자 열혈 참가자이기도 한 한승호, 이유진 크루에게 트레바리의 인기 비결을 물었다.“책을 통해 살필 수 있는 주제는 무궁무진하다. 따라서 모이는 사람들의 관심사도 매우 다양한데, 나이나 직업 등을 떠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트레바리 안에서 자주 목격하고 있다. 주로 사회적 경험이 많은 시니어가 모임의 리더인 클럽장을 맡기도 하지만, 주제에 따라 젊거나 어린 세대에게 시니어가 배움을 얻는 기회도 있다는 것이 트레바리의 장점이다.”
온라인 기반 플랫폼인데도 오프라인 모임을 고집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소규모로 밀도 높은 토론이 오가다 보니, 현장에서만 나눌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높은 만족도를 표하는 참가자가 많다. 그야말로 ‘오프더레코드’ 같은 진짜 이야기가 나온다.”
트레바리에 참여하는 방법이 궁금하다.
“트레바리는 홈페이지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클럽을 선택하고 신청할 수 있다. 수시로 참가자(멤버)를 모집하는 클럽과 4개월간 같은 멤버를 유지하는 클럽이 있다. 각 클럽에서 선정한 책을 읽고 온라인에 400자 분량의 독후감을 남겨야 참가 자격이 유지된다. 디지털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경우, 카카오톡에서 ‘트레바리’를 검색하면 고객센터 채널로 바로 연결되어 안내를 받을 수 있다. 궁금한 점이 생기면 언제든 부담 없이 문의하길 바란다.”
시니어의 참여를 늘릴 방안도 물었다.
“1961년생인 어머니가 실제로 트레바리 독서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독후감을 제출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무리 없이 적응하셨다. 시니어들의 디지털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 온보딩 프로그램(신입이 조직에 적응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갖추는 것도 고민하고 있다.”
여러 세대가 모이는 만큼 지켜야 할 에티켓도 있다.
“연령, 직업, 배경에 상관없이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지위와 친분을 잠시 내려놓고 서로를 ‘님’으로 부르며, 누구의 말이 더 크고 강한지가 아니라 누가 더 잘 경청하고 설득당할 줄 아는가가 좋은 대화를 만든다.”
마지막은 시니어에게 추천하고 싶은 트레바리의 독서 모임이다.
“클럽장이 없는 모임도 있지만, 처음 참여한다면 클럽장의 리드가 있는 편이 좋겠다. 문화, 철학, 인문, 사회 이슈를 다루는 모임이 시니어들에게 인기가 높은 편이다.”
트레바리 시니어 추천 모임
△이럴 때 읽지 언제 읽어, 노벨 문학상 수상작(클럽장 안치용) △AI, 인간, 자연(클럽장 김성완) △명상, 이 맛에 합니다!(클럽장 강민지) △과학자의 눈으로 보는 세상(클럽장 김찬주) △소설가와 함께 쓰는 시간(클럽장 강진) △그래, 도시!(클럽장 황두진) △다중인격 클럽(클럽장 문삼화) △고전문학 오디세이(클럽장 임정일) △실생활에 적용하는 5분 심리학(클럽장 한민) △알아봐 줘서 고마워!(클럽장 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