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잊어" 수자 씨가 산촌에서 딴 두 가지 열매

입력 2025-11-09 06:00

[박원식이 만난 귀촌 생활] 대구광역시 군위군 산골에 사는 김수자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산기슭을 굽이굽이 휘감으며 이어지는 찻길을 달려 도착한 산의 정상부. 높고 고요하고 청명한 곳이다. 산정 바로 아래엔 60여 가구로 이루어진 마을이 있다. 올해로 귀농 12년 차에 이른 김수자(67, ‘자연 닮은 치유농장’ 대표)가 사는 산촌이다. 해발 700m에 있어 일쑤 ‘하늘 아래 첫 동네’라 불리는 이곳을 보자마자 그가 귀농지로 꾹 점찍은 이유는 딱 하나. 풍경의 절묘함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을 어디서든 절경이 펼쳐진다.

만만찮은 고지 산마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예상보다 훨씬 이채롭다. 평면적인 것에서 벗어나 거대한 입체로 다가오는 경관이 빼어나다. 대지의 신하처럼 엎드려 일렁이는 산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하늘과 구름. 발 아래로 지나가는 안개의 대열. 탄성이 절로 나오는 풍광이다. 속세의 소음과 소동이 침범 못 할 오지 타입 산촌이라는 점 역시 김수자의 심금을 울렸다.

그가 귀농을 결행한 건 삶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진부하고 부진한, 또는 괴로운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어서. 요컨대 지친 마음을 좋은 산수 경관에 의지하는 한편, 고역스러운 세파에 덜 시달리며 살 수 있는 곳을 찾았던 것이다. 순수한 자연을 주야로 누릴 수 있는 곳에서 한결 새롭고 당당한 삶을 개척하고자 했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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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에서 오래 살다 시골 생활자로 바뀐 그의 전직은 요식업자. 요리 실력이 뛰어나 알아주는 이들이 많았으며, 사업은 안정적이었다. 그러다 일이 어그러지면서 매사 꼬이기 시작했다. 그 불운한 상황을 방관할 수 없었던 김수자는 2014년, 남편을 대구에 남긴 채 용감하게 단신 귀농했다. 그리고 성난 경주마처럼 달렸다. 노련한 기법으로 갖가지 허들을 거침없이 돌파했다. 즉 ‘삶을 확실하게 바꾸자’ 했던 목적을 깨끗하게 완수했다. 2025년 가을 현재, 그는 잘 영근 빨간 사과처럼 결함 없는 나날을 영위하고 있다. 물론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까지 과정엔 파란이 많았다. 귀농할 때 손에 쥐고 온 자금 총액이 겨우 2000만 원에 불과했다고 하니 알조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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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위한 초기의 분투

적은 자금으로 농토 장만이 어려웠을텐데.

“어렵사리 땅을 사들였다. 이 마을은 1962년 국토개발계획의 하나로 시행된 산지 개간 정책에 따라 개척민들이 이주하면서 형성됐다. 당시 이주 가구당 임야 약 1만 9834㎡(6000평)가 주어졌다. 따라서 매물로 나온 땅 역시 1만 9834㎡짜리였다. 평당 가격은 낮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규모가 커 자력으로 구입하기는 불가능했다. 결국 빚을 내 땅을 샀다.”


집은?

“컨테이너를 거처로 삼아 생활했다. 그런데 칼바람 몰아치는 겨울 추위가 너무 혹독해 힘들었다. 그래 첫해 겨울엔 대구에 있는 딸네 집을 오가며 지냈다. 2년 차부턴 얼어 죽더라도 컨테이너에서 버티자는 각오로 불편을 감수했다. 나약하게 살고 싶지 않아서.”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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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시설이 없었나?

“보일러를 설치했지만 소용없었다. 영하 20℃까지 내려가는 날이 많았는데, 컨테이너라는 철판 상자 안에선 난방을 빵빵하게 하고 이불을 겹겹으로 뒤집어써도 몸이 얼더라. 고마운 건 아침 햇살이었다. 해가 뜨자마자 양지로 나가 앉아 얼음 같은 몸을 녹였다. 해님 덕분에 동사를 모면했던 거다.”(웃음)


농사의 방향을 어떻게 잡았나?

“어떻게든 체험 농장을 만들 작정을 하고 귀농했다. 나름의 경험과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자연 음식, 약선 요리, 꽃차, 천연 염색 등이 어우러진 치유 공간을 조성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건 어느 정도 토대가 닦여야 가능한 일이었고, 우선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상주시에 있는 경북농민사관학교 농어촌관광학과에 입학했다. 당장 먹고사는 일이 급해서 남의 농원에서 한동안 알바를 했다. 이는 귀농해서 만난 첫 소득원이었고, 농촌의 물정과 경제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예전에 농사를 경험하진 않았나? 초심자에겐 고생의 강도가 상상 이상 높아질 수 있는데.

“완전 문외한이었다. 그래서 농사의 모든 게 어려웠다. 갖가지 작물을 재배했지만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었다. 생계가 위태로울 지경으로 소득이 잘 나오지 않았다. 농사만 힘든 건 아니었다. 이곳은 물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산꼭대기 마을이다. 그래 농업용수는 물론이고 식수조차 제대로 조달하기 어려워 전전긍긍하며 살았다. 게다가 전기 문제, 배수 관리, 돌담 쌓기 등 혼자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참으로 고달팠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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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쯤에서 질겁하고 귀농을 후회하진 않았나?

“뭐랄까, 내겐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에너지를 유지할 기질 같은 건 있다. 사업이 흥하다가 폭싹 망했을 때도 타고난 에너지엔 손상이 없어 쌩쌩했다. 근거 없는 자신감? 그런 것만큼은 놓치지 않고 살았다. 뭐든 남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활로를 찾았다. 기질상 귀농을 후회할 여자가 아니라는 얘기다.(웃음) 애초 한 3년 정도는 고생할 각오로 귀농하기도 했고. 그런데 죽을 지경으로 모진 고생을 한 세월이 예상보다 길어 5년간 이어졌다. 어휴, 남들이 평생을 통해 겪을 고생의 분량을 5년 사이에 모조리 감당했다고 본다. 그러자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거다. 컨테이너 생활을 청산하고 작은 굴피집을 짓기도 했다.”


5년간 여념과 잡념 없이 생존을 위해 젖 먹던 힘을 다해 열일하자 비로소 살 만한 상황이 도래하더라는 얘기다. 기민한 머리, 강인한 정신, 고갈되지 않는 노동력, 낙관적인 태도가 그를 안도할 만한 지평으로 데려다준 것 같다. 생소한 농촌 환경에 신속하게 적응한 대목도 인상적이다. 마을 속으로 깊이 들어가 주민들과 자신에게 공히 유익한 사업을 찾아냄으로써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가령 마을 농부들이 흔히 배추를 생산하는 상황에 착안, 절임배추 사업을 구상하고 공동체를 만들어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그러곤 괄목할 만한 경제효과를 거두었다. 이는 산촌에 홀로 들어와 노상 장화를 신고 일에 빠져 뛰어다니는 그를 ‘뭐지 저 여자?’ 하며 은근히 경계하던 이웃들의 선입견을 깨는 계기로 작용했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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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답게 살래!”

김수자가 농사다운 농사를 처음 경험한 건 가지 농사에서였다. 어설픈 기술력을 가지고 간신히 가지를 재배했지만 “신기하게도 튼실한 가지가 주렁주렁 달렸다”는 게 아닌가. 하지만 공판장에선 최하품 가격을 매겼다. 이에 경악한 그는 블로그를 배워 본때 있게 운영해나갔다. 매우 유능한 마케팅 채널로 키워 유통 리스크를 척결했다. 민박 사업을 개시해 기대 이상의 효능성을 확보하기도 했다. 이렇게 초기 5년을 하품 한 번 할 겨를 없이 내달린 덕분에 비로소 긍정할 만한 상황에 이르렀던 거다. 이후 10년 차쯤엔 마침내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게 됐다.

“10년 차에 이르자 어려웠던 문제들이 싹 사라지더라. 농사 기술 향상, 청토마토장아찌 같은 가공식품 개발, 체험 농장과 민박의 원만한 운영 등에 힘입은 덕분이다. ‘10년 뒤를 내다보는 계획을 세우고 부지런히 뛰면 반드시 성공한다.’ 예비 귀농인들에게 요즘 내가 하는 말이 그렇다.”


마을에 펜션이 많다. 카페도 보인다. 이 외진 산꼭대기 마을에 관광 바람이라도 부는 건가?

“그렇다. 이곳의 특별한 경관이 널리 알려지면서 찾아오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내가 귀농할 때와는 현격히 다른 상황이다. 개벽에 가까울 정도로 급변하고 있다. 덕분에 마을엔 활력이 넘친다. 인구가 유입되고, 직판장을 통한 농산물 거래가 활발해졌다. 도로 사정도 개선되고 있다. 주민들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온 셈이다. 우리 농원 역시 탄력을 받고 있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농사는 난해한 직업이라는 평이 흔하다. 돈을 벌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보기엔 어떤가?

“동감하기 어렵다. 초반의 수련기를 제대로 통과할 경우, 얼마든지 안착 가능한 게 농사다. 고생 자체가 성장의 초석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골엔 돈을 만들 재료가 널려 있다. 나는 하다못해 민들레, 비단풀, 뽕잎, 솔방울 등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식물까지 뜯어다 시장에 팔았다. 주변의 오만가지 것들을 다 내다 팔았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양심마저 내다 팔진 않지만.”(웃음)


솔방울까지 따서 팔다니? 그럴 만한 시간 여유가 있나? 세상에서 가장 바쁘게 사는 사람 같은데.(웃음)

“드물지만 때로 여행도 하고 놀기도 한다. 다만 놀더라도 할 일은 해놓고 논다. 그러다 보면 날마다 종일 일에 파묻히게 된다. 휴식엔 최소치의 시간만 쓴다. 일 사이사이에 5~10분쯤 앉아 쉬다가 부리나케 툭툭 털고 일어난다. 이렇게 일에 충성한 결과 농장의 성장이 가능했다. 내겐 몇 차례 사업에 실패한 뼈아픈 경험이 있다. 이제 두 번 다시 망하고 싶지 않다.”


일 욕심이 과한 건 아닐까? 인생은 짧고, 시간은 유한한 자원이다.

“욕심? 시골에서 고생하며 깨달은 게 하나 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란 걸 정확하게 알아차렸다. 그럼 어떡하나? 겸손하게 사는 게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자 욕심을 관리하는 게 쉬워졌다. 난 삶을 바꾸기 위해 귀농했다. 그리고 뜻한 대로 바꾸었다. 돈을 벌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삶을 새로운 눈으로 대하게 된 성향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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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임을 어떻게 알았나? 그 어려운 것을….

“도시에 살 때 난 똑똑한 사람으로 착각하고 활개를 쳤다. 알고 보니 농사에 무지한 사람에 불과했다. 자연의 순리에 맞춰 사는 산골 어른들의 평온한 모습과 대조해도 무지가 드러나 부끄러웠다. 부끄러워, 변하고 싶어, 답을 찾았다. ‘나, 이제부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답게 살래!’ 이런 결심을 한 이후 사는 게 한결 가벼워졌고 재밌어졌다. 귀농으로 심한 고생을 했지만, 그 대가는 너무도 만족스러운 것이라고 할까.”

‘두 번 다시 망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 찾은 인생 해법이 짱짱하다. 경제적 불확실성을 타파한 데서 나아가, 좋은 삶의 비방까지 얻었다는 점에서 일거양득의 본이다. 격심한 고생을 겪은 힘으로 열매 둘을 거머쥐었다. 모름지기 고생을 사서라도 하라는 옛말, 구닥다리 올드 뉴스가 아니다.


김수자가 주는 귀촌 Tip

•서둘러 집부터 짓지 말고, 일단 16㎡(5평) 정도의 임시 거처를 짓거나 빌려 농사를 시작하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착이 가능하다고 판단될 때 메인 주택을 지으란 얘기다. 임시 거처로 컨테이너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지만, 여름엔 너무 덥고 겨울엔 너무 추워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고려하자.

•메인 주택은 가급적 작게 짓는 게 좋다. 너무 큰 집은 관리도 쉽지 않지만 실용적이지도 않다. 농촌 생활은 실내보다 실외에서 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유념하라.

•원주민들과 친하게 지내자. 약간의 사교성만 발휘해도 섞여들 수 있으니 미리 걱정할 건 없다. 마을 경로당에 가끔 음료수 한 박스씩만 넣어드려도 어르신들의 호감을 살 수 있다. 노인들과 담소 기회를 가지는 것도 유익하다. 그들의 서사에 깃든 야생의 지혜 같은 걸 발견하는 재미가 크다.

•내 소유지라고 함부로 말뚝 박지 마라. 그런 행위는 “나는 까다로운 사람이오!”라고 광고하는 격이다. 남의 동네에 들어가 내 것만 챙기려 하다간 소외되기 십상이다.

•시니어 부부라면 330㎡(100평) 정도의 대지 또는 구옥을 구해 허물고 작은 집을 건축하는 게 좋겠다. 텃밭은 필수다. 담장가에 너덧 그루의 유실수를 심어 열매 거두는 기쁨을 즐기라. 생활비는 씀씀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월 150만 원쯤 책정하면 된다. 큰돈 나가지 않는 게 시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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