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픈 추억, 벚꽃이 흩어지는 날

입력 2025-09-27 07:00

[‘나의 브라보! 순간’ 공모전 당선작] 인생 2막,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서다

(일러스트 윤민철)
(일러스트 윤민철)


바로 지금, 하루하루 충실하게 오늘을 잘 살자!

어느 누군가의 말처럼 ‘첫 30년은 멋모르게 지나가고, 지나온 30년은 가족을 위해 살고, 이제 남은 30년은 자신을 위해 멋지게 준비하라’고.

제대로 광야에 홀로 설 수 있을 때 발가벗은 나의 모습을 보고서야 참 나를 깨닫고 되돌아보는 기회로 삼는다. 바로 이게 인생 2막이란다.

틀 안에 안주하던 학창 시절, 직장 생활도 후회 없이 모범적으로 잘 살아왔지만, 뭐라고 내 인생사에 꺼내놓을 만한 별난 스토리는 없는 듯하다.

퇴직 이후 이러한 나의 모습을 집중하여 여기에 담아보는 이유다.


인생 2막,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서다

2005년 어느 봄날. 내 인생에 언젠가는 온다는 그날이 드디어 다가왔다. 나름대로 퇴직 후의 나의 모습에 대하여 많은 준비도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 꿈을 찾아보겠다고 다짐했건만, 그게 막상 현실로 닥쳐왔을 때의 당혹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봄바람을 타고 슬며시 다가오는 훈풍이 아니라, 한겨울 삭풍이 되어 대지에 내팽개쳐지는 그 냉혹함을 처음 느껴보는 거라서 더욱 그랬다.

반신반의… 설마? 내가 다니던 회사 매각이라는 구조조정 상황 가운데 고용 승계 대상에서 제외되는 9인의 명단에 속하리라고는 꿈엔들 생각조차 안 해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불명예스러운 상황이 나에게 닥쳐왔다.

그간 승승장구해온 아들을 믿고 계셨던 부모님께 이 소식을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나? 첫 번째 부딪힌 부담스러운 상황은 가족과의 대면이었다. 이른 아침 서둘러 직장에 나갔다 밤늦게 귀가하여 지친 몸을 내던지고, 바깥의 일이라곤 가족과 나눌 수 있는 정다운 얘기는 하나도 없었다. 그저 별일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이 사실을, 내일 아침 해가 떠오르면 갈 곳이 없다는 현실을 고백해야 한다. 수많은 직원 중에 가장 능력 있는 선임으로 임명되어 임원 승진까지 한 나를 하위 그룹으로 평가한 결과에 자존심이 온통 무너져 내렸다. 거기다 등기상 임원으로서 경영 책임도 져야 한다는 명분에 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보라매공원을 가로질러 걸어왔던 이른 봄날. 벚꽃이 바람에 날려 흩어지는 그 모습은 나의 스산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군대에서 제대하던 날 더플백 보따리를 들고 위병소를 나서는 해방의 기쁨도 있었지만, 직장에서 퇴출당해 짐 보따리를 들고 벚꽃 길을 터벅터벅 걸었던 내 모습은 평생 가슴에 오래도록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점점 다가오는 가족과의 운명적인 대면 시간을 늦추려고 택시도, 지하철도, 버스도 아닌 두 발로 걸어서 집까지 왔다.

이제 막 대학교 3학년이 된 딸과 상하이에서 유학 중인 아들 녀석의 학자금 부담도 남아 있었고, 아내에게는 남편의 마지막 자존심이 구겨진 허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죽기만큼 싫었던 이유였다.

아내는 첫 대면에서 불길한 예감을 느낀 듯 차분하게 말을 건네온다.

“그동안 고생 많았고, 내가 하는 일을 당신이 도와서 함께 잘 해나가봐요.”

대학생 딸은 “아빠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라고 의례적인 말로 나를 위로해준다. ‘역시 이런 게 가족이다’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집 안 분위기는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그 봄의 벚꽃은 나에게 참으로 찬란한 슬픔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세월이 지나 되돌아보면 헛헛한 일일 뿐인데, 왜 그때는 태산이 무너지는 심경으로 받아들였을까? 이래서 내가 뒤늦게 철이 들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2016년의 또 다른 봄에 예금보험공사 퇴직 후 6개월여의 세월이 흘러 새로운 인생 2막에 도전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나게 되었다. 삼성은퇴연구소에 재직하는 후배의 권유와 나의 취향에 딱 맞는 한국액티브시니어 전문가 양성과정 프로그램이었다.

나와 동갑내기가 건설업 임원으로 퇴직한 후 처음 개설한 프로그램인데, 평소 직장 생활에서 체득한 인생 라이프사이클을 기반으로 많은 이론적 지식을 접목한 강의 형태였다. 나에게는 친근하고 익숙한 이론이 많아 교육에 흥미를 갖고 솔선수범으로 수업에 임했다. 다양한 경력의 소유자들이 꿈을 찾아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교육이 끝나고 나서 나는 교육의 수료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임을 어필했다.

곧바로 협회 설립에 관한 제안을 하고, 한국액티브시니어협회 설립 이사로 참여하게 되었다. 계속되는 다음 기수 교육생을 지도·관리하면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교수 직함을 갖고 3년여 동안 열정을 불태우며 매달렸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원년이자 대한민국 은퇴 인력의 롤 모델이 되는 협회로서 위상을 갖추도록 전력투구한 보람이 가득했다.

토티 연극단을 창설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문화 활동의 근간으로 삼아, 나의 연극 활동 터전은 바로 한국액티브시니어협회에서 동호인과의 교류였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극단 가교 연출가 고(故) 최연식 님, 이 교육 프로그램 과정에서 만난 이계선 님과의 인연은 나의 민요와 예능의 끼를 이런 진로로 바꾸어놓았다.


5都 2村, 나의 전원생활 15년

퇴직 후 나의 제2의 창업은 학원 사업으로 정했다. 영어 전문 강사로 서울 강북 지역에서 명성과 브랜드를 쌓아 올린 아내를 설득해서 종합 입시 전문학원을 넘겨받았다. 탄탄한 경영을 꾸려가겠다는 의지로 의정부 지역에서 대형 학원을 시작했다. 중등부, 고등부와 대학입시반 지도까지 야심 찬 포부로 30여 명의 학원 강사진과 300여 명의 원생을 넘겨받았다.

그러나 나의 돈키호테적 발상이 엄청난 현실과 괴리에 부딪혀 1년여 만에 폐업하고 말았던 악몽을 회상하고 싶지 않다.

아내에게 가장 미안한 마음으로 용서를 구하며 자책한 대목이다. 혼자서 알차게 잘 이끌어온 전문 경영인을 황량한 구렁텅이로 내몰았으니 말이다.

고통의 시간이 더 길어지면 나뿐만 아니라 아내의 건강마저도 해치지 않을까 하는 노심초사 중에 희망을 일으켜주는 사건이 생겼다.

퇴직 당시 임원으로서 경영상의 책임을 물어 퇴직금 지급을 보류했던 회사와의 법정 다툼 4년여 만에 퇴직금 지급 판결이라는 승소 소식이 전해왔다.

우리 부부는 하나님께 무한 감사를 드렸고, 이제는 지쳐가는 심신을 달래면서 쉼과 신앙을 위해 조용한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꿈꾸어보았다.

바로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오산리 마을에서의 15년째 생활은 우리 부부에게 충분한 회복과 재충전을 위한 안식처가 되었다.

당시에 자녀들은 미혼이었고 직장 생활 등을 이유로 서울에 전세를 두고 있던 터라 주중 5일은 서울에서, 나머지 주말의 이틀은 자연과 함께 지냈다.

2층 주택에서 이웃과 함께 휴식을 즐기고 서울을 오가며 지내는 생활이 우리에게는 맞춤형 치유와 최선의 휴양지가 되어주었다.

덕분에 아내도 활기를 되찾고 신앙과 봉사라는 참된 의미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4년여간의 지리한 소송이 끝나고 예금보험공사 부실금융 구조본부 검사역 경력직으로 재취업했다. 경영 부실,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위한 영업정지, 사후 예금자 보호, 자금관리 업무를 10년 가까이 담당하면서 금융 소외 서민들의 애환을 함께했다. 국가적 사명감과 갈등으로 힘든 시기였지만, 돌아보면 공익을 위한 보람의 터전이었다고 생각한다.


창창창TV, 세상과 소통하다

나의 유튜브 채널, ‘창창창TV’. ‘소통의 창, 시사 기획의 창, 문화예술의 창’이라는 슬로건으로 세상을 향한 유튜브 방송을 통해 많은 사람과 공감하는 창을 마련한 나의 시도였다.

2020년 2월 20일 첫 유튜브 ‛창창창TV’를 개설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성원해주시는 구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5년간 매주 1회, 구독자 500여 명의 참여로 주 관심사에 담긴 사건의 숨겨진 얘기들을 나누었다. 백세시대에 맞는 시니어 대상의 유익한 정보를 나누고 소통하며 꾸준하게 달려와서 2025년 3월 드디어 250회 방송을 맞이했다.

당시 노재환 노년신문사 사장께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노년층 세대에게 더욱 흥미롭고 유익한 정보를 전하기에 종이 신문보다 나은 방송 매체의 여흥과 유머를 살려서 신나는 뉴스 채널을 만들어보자”는 제안과 적극적인 후원으로 ‛창창창TV’로유튜브를 개설했다.

최초 개설 시 공동 진행 메인 앵커로 발탁된 소이 님은 예능감과 민요 전수자로서의 창(唱)이 뛰어난 분이셨다. 이를 활용하여 딱딱한 시사 정보를 보다 흥미롭게 엮어보자는 취지가 일치해 의욕을 불태워 함께 시작했다.

나를 아끼는 구독자님들은 “지치지 마시라! 구독자 수에 얽매지 말고, 조회수를 꾸준히 늘려가는 시니어들을 위한 실속 있는 유튜브 방송이 되길 바란다”고 격려도 해준다.

첫째 창은 시니어 소통의 창(펼 暢)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시니어들의 속성상, 나름대로 살아온 경험상 자기주장이 강하다. 자칫 고집불통, 꼰대, 세대와 문화의 격차에 고립되기 쉬운 세대를 향해 소통을 위한 노력을 부단히 해나가겠다는 뜻에서의 출발이다. 노년의 삶 가운데 고독감은 정말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소통하며 살아야 한다!

둘째 창은 시사 기획의 창(창문 窓)이 되어야 한다.

유튜브 속성상 극단의 주장과 이념에 매몰된 편향적 방송이 심각한 수준이다.

노년신문사와 함께 시작한만큼 시니어를 위해 정론을 펼쳐간다는 자긍심으로 차별화된 영상 매체가 되겠다. 공영방송으로부터 자유로운 언론 매체임을 활용하여 자극적 표현, 부적절한 어휘 구사는 국민 정서를 갉아먹는 공해다. 특히 어린 자녀 세대에게 끼치는 악영향을 깊이 생각해보는 방송이 되겠다.

가끔 ‘꼰대’라는 지적을 감수하면서도 품격을 잃지 않겠다.

셋째 창은 문화예술의 창(노래할 唱)이라는 의미다.

뭐니 뭐니 해도 방송은 구독자의 관심과 사랑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문화, 예술, 유머가 넘치는 멋이 노래와 창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금상첨화라 생각한다. 구독자 중 많은 분이 연극단 소속 뮤지컬 배우들이고, 시 낭송을 즐기며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다.

다음은 정도 언론인으로서 창창창의 사명을 다하기 위한 몇 가지 나의 다짐이다.

- 시니어들의 소통을 위한 창 역할에 충실하겠습니다.

- 일상의 삶 속 소소한 행복을 함께 나누는 주제를 얘기하겠습니다.

- 자녀 세대, 후대에 짐이 되지 않도록 노년의 지혜를 나누겠습니다.

- 문화와 예술이 흐르는 방송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창창창의 꿈을 펼쳐 보이겠습니다! 구독자 수와 조회수 1000명을 넘어서는 그날까지 여러분의 구독, 협력을 기대하며 창창창 유튜브의 정체성을 갖고 백세시대를 함께 살아가겠습니다. 노후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면서 자녀들과 후대의 모든 이에게 본이 되는 아름다운 인생 2막을 펼쳐나가겠습니다.


자유를 꿈꾸는 내 인생의 일탈(逸脫)

‘누구나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슬로건의 배너 광고를 게시하고, 연극 입문에 주저하는 이들에게 극단 토티와 함께 평생회원으로 가자고 강의실과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당시 상명대학교 연극전공 이화원, 윤기훈 교수와의 만남은 내 인생일대의 전환점이 되어 연극 이론을 충실히 다지게 되었다. 드디어 첫 무대에 서는 설렘을 맞이했다.

지금은 흩어져 지내고 있으나 한분 한분의 이름이 떠오른다. 2016년 12월, 영등포 50플러스센터 텅 빈 강의실에서 꿈을 펼쳐 보이며 이계선, 이혜자, 나기권, 박영서, 서영실, 이상명 등 7명이 모자금 기금에 참여하여 극단 설립의 꿈을 이루게 되었다.

연극에 문외한이면서도 뜨거운 열정으로 첫 대표직을 스스로 맡겠다고 선언하고, 이계선 님을 단장으로 모시고 출발했다. 뭘 믿고 뛰어들었는지 모르겠으나 나 스스로에 대한 도전임은 틀림없었다. 나는 과연 어떤 정체성을 갖고 앞으로 인생 2막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나의 아버님께서는 테니스, 사냥, 낚시, 서예, 동양화 등 만능의 예체능 끼를 타고나신 분이셨고, 학교 재직 시에도 평교사들을 제치고 교장 직분으로 몸소 운동회 준비 예능 연습을 도맡아 해오신 나의 어릴 적 기억이 생생하다.

그 아버지의 아들로서 과연 나의 내면에 흐르는 끼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많은 고심 끝에 예능이라는 인생 후반의 결심이 확고히 굳어져간 것이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자유를 꿈꾸는 내 인생의 일탈이 시작되었다.

아마추어 시니어 연극단을 설립하여 토티 대표직을 8년째 맡아오며 매년 1회 이상 작품을 무대에 올려 10여 편의 공연을 갖게 되었다. 2025년 새로운 작품은 이강백 작가의 희극 ‘내가 날씨 따라 변할 사람 같소’를 대본으로 구성해, 20여 명의 단원들과 함께 지쳐 있는 대한민국을 향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연극을 올가을쯤 무대에 선보일 계획을 갖고 맹연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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