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는 친지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그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코가 꽉 막혔다기에 필자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임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콧구멍이 부었다고 했습니다.
열이 있냐고 묻자, 약 30분 전부터 체온이 오르더니 조금 전부터는 한기를 느낀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곧바로 얼굴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 사진을 보니 상황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잠정적으로 패혈증(敗血症, Sepsis) 진단을 내리고, 곧장 거주지에서 가장 가까운 큰 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간곡하게 권했습니다.
훗날 그 친지가 “코가 간질간질해서 좀 후볐을 뿐인데, 큰일 날 뻔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패혈증은 예나 지금이나 급성으로 진행되는 세균성 질환입니다. 그런데 한문을 잘 모르는 요즘 세대는 ‘패혈’이라는 용어에 담긴 무서운 뜻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영어로 ‘Sepsis’는 병인성 미생물 감염에 따른 전신적 반응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질환입니다. 독일에서는 패혈증을 ‘Blutvergiftung(혈액중독)’이라 부르는데, 그만큼 높은 단계의 경고성을 담고 있는 용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종 시니어들로부터 코나 귀가 가려워 후비는 것과 패혈증이 무슨 상관이 있냐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시니어 나이에 이르면 피부를 비롯한 체내 기관과 조직이 대부분 탄력을 잃어가는데, ‘코털(Nose Hair, Vibrissae)’과 ‘귓속 털(Ear Hair)’은 더 굵어지며 자랍니다. 젊은 시절에는 솜털처럼 ‘보들보들’하던 것이 나이 들수록 뻣뻣해지면서 코와 귀의 점막을 송곳처럼 찌르기도 합니다. 그러면 ‘코점막’이나 ‘귀점막’을 자극해 손톱으로 코안이나 귓속을 후비게 되죠. 때로는 손가락으로 코털이나 귓속 털을 뽑기도 합니다. 이런 행위에 묘한 쾌감을 느껴 습관적으로 코와 귀를 후벼대는 시니어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남 보기에도 좋은 행동이 아니지만, 패혈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므로 절대 금기해야 합니다. 콧속 털이나 귓속 털을 뽑아내면 바로 그 자리에 ‘미세한 구멍’이 생기고, 그 구멍으로 병인성 박테리아가 침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패혈증 사망률은 평균 40%에 이른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특히 응급치료를 받지 못하면 사망률이 70%에 이른다고 하니 실로 조심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좀 다른 에피소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새벽에 LA 여행 중인 친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친구가 그 시간에 결례를 무릅쓰고 전화한 것은 갑자기 발과 종아리가 팽팽하게 부어올랐기 때문입니다. 발가락 사이에서 시작해 발등이 부어오르더니 부기(浮氣)가 종아리로 올라온다고 하기에, 혹시 발가락 사이에 무좀약을 바른 적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친구는 발가락 사이에 무좀이 있어 ‘무좀 연고’를 발랐지만, 제대로 치료한 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체온은 어떠냐고 묻자, 조금 전부터 미세한 오한이 느껴져 겁이 나서 전화한 거라고 대답했습니다.
머릿속으로 패혈증의 모든 조건을 떠올려보았습니다. 1) 완치하지 못한 발가락 무좀 2) 발등의 부종 3) 오한. 이는 전형적인 무좀에서 비롯된 ‘패혈증’이었습니다. 무좀이 있는 발가락과 발가락 사이로 박테리아가 침입한 것입니다. 그래서 현지 피부과 전문의를 찾아가 철저한 치료를 받으라고 권했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코털이나 귓속 털을 인위적으로 뽑으면서 생긴 ‘구멍’을 통해 패혈증을 유발하는 박테리아가 피하로 침입하듯이, 무좀으로 인해 발가락 사이에 생긴 ‘상처’를 통해 패혈증 박테리아가 피하로 침입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좋은 예방책은 무엇일까요? 요즘 다양한 ‘전기 코털 제거기’ 또는 ‘전기 코털 깎기’ 상품이 출시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써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다양하게 특화된 항생제 덕분에 질 높은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무심코 콧속이나 귓속을 후비다가, 발가락 무좀을 치료하다가 패혈증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게 발생합니다. 항생제가 귀하던 1950~1960년대도 아닌 지금의 의료 환경에서 이런 일이 생긴다는 게 왠지 낯설게 느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