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니어는 낙상을 피해야 합니다.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시니어들은 모였다 하면 언제든 어디서든 각자의 병고(病苦)를 가장 빈번하게 주제로 삼아 이야기를 나누고, “아무개가 이런저런 수술을 받았는데…”라는 식의 근황을 주고받는다고 합니다.
시니어 그룹에서 이런 주제가 일반화되는 것은 시니어의 생사(生死)와 병고가 관련이 깊어서 언제나 주요 관심 사항으로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필자가 의사 출신이라서, 모임에 가면 노년기의 건강 문제가 더 자주 화제가 되는 점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얼마 전 아들이 지팡이를 들고 집에 와서는 외출할 때 반드시 지팡이를 지참하도록 간곡히 권유했습니다. 아들 친구들이 대부분 50대 후반이고 부모님도 필자처럼 80대 중반 전후이다 보니, 그 부모님들 가운데 여럿이 낙상사고를 당했다 합니다. “아무개의 어머니, 아무개의 아버지가 길에서 넘어져 골절상으로 입원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친구들이 몹시 놀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팡이’가 낙상 방지를 위한 하나의 해결책으로 거론된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저 역시 오래전부터 ‘시니어의 지팡이 필용화’를 주장해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스스로도 지팡이를 들고 선뜻 나서기를 머뭇거렸던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외출할 때면 반드시 지팡이를 들고 집을 나섭니다. 그래서인지 지팡이가 없으면 허전하기도 합니다.
시니어에게 낙상이 초래하는 문제를 학술적으로 수치화한 자료를 발표한 전문가의 귀한 글이 있습니다.
낙상 예상 학술모임에서 강성웅 강남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과 교수이자 대한노인재활의학회 회장은 “암·혈압·당뇨병을 아무리 잘 관리해도 한 번 넘어져서 입원하면 멀쩡하던 노인이 불과 몇 달 만에 사망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만큼 시니어에게 낙상이 미치는 영향이 중차대(重且大)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에 덧붙여 “비교적 건강한 삶을 영위하던 노인도 낙상하여 엉덩이뼈가 부러지면, 그중 절반이 두 달 내에 사망에 이른다”고 합니다. 또한 “만성질환을 아무리 잘 관리해도 낙상을 당하면 소용없을 만큼 시니어에게 낙상은 만성질환보다 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노인 낙상은 이제 개인 삶의 질을 떠나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라는 전문가의 애절한 호소가 실감 나게 다가옵니다.
강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한 해 낙상으로 사망하는 65세 이상 노인은 83만여 명인데, 교통사고에 이어 노인 사망 원인 2위를 차지한다”고 지적합니다. 시니어가 얼마나 큰 낙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 보여주는 통계이자 경고라 하겠습니다.
박중현 강남세브란스 재활의학과 교수도 “노인의 경우 다리가 부러지면 두세 달 만에 돌아가실 정도로 상태가 악화된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한다”면서 “노인은 젊은이와 달리 하루만 누워 있어도 근육 손실이 엄청나다”고 지적합니다. 그와 아울러 근육세포의 생리현상을 기반으로 시니어의 근육 손실이 가져오는 문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근육 감소는 35세부터 매년 0.7%씩 완만하게 일어나다가 60세부터 매년 2%씩 두 배 이상 빠르게 진행된다. 평균 80세가 되면 근육은 60세의 절반 정도가 된다. 그런데 낙상으로 입원하면 근육을 자극하는 활동이 없어 근육량이 급격히 줄어든다. 입원 환자의 근육은 일주일에 10% 이상씩 감소해, 한 달 누워 있으면 입원 전에 비해 50%가 줄어든다.”
낙상으로 가장 많이 다치는 부위는 무릎, 허리, 엉덩관절, 어깨, 발목, 그리고 머리 순입니다. 바로 지팡이가 시니어의 낙상을 예방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얼마 전 필자가 전철에서 하차하려고 출구 가까운 지점에 서 있었습니다. 전철 문이 열리고 막 내리려는 순간 앞서가던 70대 초반 남자가 “앗” 비명을 지르며 정강이를 움켜쥐고 주저앉는 것입니다. 직감적으로 정강이에 근육경련, 일명 ‘쥐(Cramp)’가 발현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필자가 의사임을 밝히고 환자를 부축해 근처 벤치로 옮긴 후 물어보니, 전에는 비슷한 증상을 겪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프기도 했지만 처음 겪는 강한 통증이라 많이 놀랐다고 합니다. 환자가 얼마나 두렵고 놀랐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필자는 환자에게 “통증은 차차 나아지겠지만 가까운 시일 안에 신경내과, 재활의학과 또는 가정의학과 의원을 찾아가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많이 호전될 것이니 너무 놀라지 말라”고 위로했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그런 증상은 일종의 ‘시니어 신드롬’이니, 조금 전과 같은 상황에서 지팡이가 있었으면 크게 도움 되었을 거라며 지팡이의 유용성을 강조했습니다.
20여 년 전 독일의 조용한 소도시를 지나가다가, 서너 명의 중년 여인이 한가한 오후 산책길에 나서는 그림같은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마을 근처 산책길을 거닐던 여인들이 하나같이 등산용 스틱(Stick)을 양쪽 손에 쥐고 활보하고 있었습니다. 신기한 광경이었지만, 참으로 여유 있는 모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활보하는 가운데 지팡이에 의지하면서 양쪽 팔근육도 함께 움직이니 ‘좋은 생각’이라며 바라봤던 기억이 떠오르는 오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