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절로 들여다본 사회 변화

입력 2026-02-12 07:00

[먼슬리 이슈] 바뀌는 명절, 남아 있는 맛…시대가 바꾼 명절의 풍경들

(이미지=AI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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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의 맛과 풍경은 늘 비슷해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시대에 따라 다른 모습을 품고 있다. 국물 위에 올라간 흰떡, 가족과 둘러앉아 빚는 만두, 정갈한 오세치, 자정의 포도 12알처럼 상징적인 음식과 풍습은 그대로지만, 그것들을 준비하고 나누는 방식은 달라졌다.

명절은 이제 무언가를 해야 하는 시간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과 생활 방식이 더 반영되는 시간으로 바뀌고 있다. 각 문화권의 명절 음식과 풍습을 통해 시대의 가치관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살펴보자.

(이미지=AI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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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 떡국의 맛은 그대로, 설날의 의미는 다르게

한국의 설날 풍경은 음식뿐 아니라 ‘명절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가족들이 큰집에 모여 차례상을 차리고 인사를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가족이 줄고 1~2인 가구가 늘면서 제사를 생략하거나 최소 인원으로 진행하는 방식이 확산됐다.

이동 부담, 경제적 비용 등이 맞물리면서 고향을 찾기보다 여행·호캉스를 선택하는 비중도 높아졌다. MZ 이후 젊은 세대는 명절을 가족 중심의 행사라고 생각하기보다 개인의 삶과 리듬을 조정하는 휴식 시간으로 재정의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명절 음식의 표준이 사라지는 흐름도 눈에 띈다. 설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음식은 떡국이다. 하지만 떡국을 꼭 먹어야 한다는 생각 대신, 브런치를 먹거나 비건(채식) 메뉴 등 새로운 형태의 음식 문화가 등장했다.

또한 과거에는 떡국을 끓일 때 육수부터 시작해 흰 가래떡, 고명까지 직접 준비하는 과정이 설날 명절의 일부였다. 지금은 코인 육수, 밀키트, 편의점 제품 등이 보편화되며 준비 방식이 좀 더 실용적으로 바뀌었다. 흰떡만 고집하던 시절과 달리 최근에는 파스텔 톤이나 꽃 모양 떡 등 다양한 형태의 떡도 판매하고 있다.

물론 떡국과 차례라는 전통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설날을 보내는 방식은 실용성과 다양성을 받아들이며 변화하고 있다. 전통이 사라지기보다 시대에 맞게 재해석되는 흐름에 가깝다.

(이미지=어도비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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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 만두 한입에 담긴 새해 춘절의 기원

중국의 명절 풍경도 변화가 빠르게 확산되는 중이다. 과거에는 ‘춘운(春運)’이라 불리는 민족 대이동이 춘절의 풍경을 상징했다. 기차표를 구하려 며칠씩 줄을 서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매년 뉴스에 등장하곤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재택근무 확산, 대도시 정착률 증가, 젊은 층의 생활 패턴 변화로 인해 귀향을 포기하고, 소규모로 명절을 보내거나 여행을 선택하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특히 중국에서도 명절 소비의 방향이 가정 중심에서 외부 활동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춘절에 여행을 떠나는 수요가 증가하고, 인기 호텔과 관광지 예약은 과거보다 훨씬 빠르게 차오른다.

이러한 흐름은 춘절의 대표 음식인 자오쯔(만두)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예전에는 온 가족이 모여 만두를 빚으며 한 해의 복을 비는 시간이 중요했지만, 현재는 간편식·냉동 만두·밀키트가 이를 대신하면서 준비 과정이 짧아지고 있다.

가족과 함께 만두를 빚는 시간은 줄었지만, 재물운과 풍요를 상징하는 자오쯔의 의미 자체는 여전히 새해 식탁에 남아 있다.

(이미지=어도비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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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 오세치에 쌓인 정월의 마음

일본의 새해인 정월(お正月)을 상징하는 대표 음식은 오세치다. 오세치는 단순한 명절 음식을 넘어서 ‘정월의 가치’를 보여주는 문화적 상징이다. 과거에는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각 재료에 담긴 의미를 되새기며 한 해의 평안을 기원하곤 했다.

건강을 의미하는 검은콩, 기쁨을 뜻하는 다시마 말이, 장수를 상징하는 새우 등 새해의 바람을 담아 ‘주바코(重箱)’라고 불리는 도시락 상자에 정갈히 담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최근의 정월 풍경은 전통 유지보다 일상에 맞춘 효율성을 중시하는 흐름이 강해졌다.

일본 사회 역시 고령화와 함께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명절의 형태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오세치는 가족 단위 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이제는 직접 만드는 일도 줄었고 백화점이나 편의점에서 1인 오세치나 2인 오세치가 빠르게 판매되기도 한다.

또한 정월을 집에서 보내기보다 온천 여행 및 도시형 휴식으로 대체하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확산됐다. 이제 명절을 함께 모여야 하는 날이 아니라 원하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날로 재정의하는 것이다.

오세치의 재료와 의미는 여전히 정월을 상징하지만, 정월을 보내는 방식은 좀 더 자유롭고 현실적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미지=어도비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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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 지역마다 다른 명절의 맛과 풍습

스페인에서는 새해 자정이 되면 종소리에 맞춰 포도 12알을 먹는 풍습이 이어져 왔다. ‘라스 도체 우바스 데 라 수에르테(las doce uvas de la suerte)’라고 불리는 이 풍습은 스페인 사람들에게 새해 첫 순간을 여는 가장 상징적인 의식이다. 포도 12알은 한 해의 12개월을 의미하며, 한알 한알 종소리와 함께 삼키면 다가오는 달마다 행운이 찾아온다고 믿는다. 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카운트다운과 함께 모두가 같은 리듬으로 포도를 먹는 장면은 스페인 명절의 대표적인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이 풍습은 멕시코·포르투갈·쿠바 등 라틴 문화권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각 나라의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한 해의 행운을 기원하며 포도를 먹는다’는 핵심은 그대로 이어진다. 서양에는 한국이나 동아시아처럼 하나의 대표 음식은 없지만, 이렇게 지역마다 고유한 방식으로 명절을 보내는 음식과 풍습이 다채롭게 이어져 왔다.

(이미지=AI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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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 음식을 곁들인 새해의 풍경

미국 남부는 ‘호핑 존(Hoppin' John)’이라 불리는 검은콩 요리를 먹으며 재물운을 기원하고, 이탈리아는 렌틸콩과 돼지고기 소시지를 곁들여 풍요를 상징하는 새해 만찬을 준비한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돼지 모양 과자 ‘마지팬 피그’를 서로 나누며 새해의 행복을 빈다.

그러나 서양의 새해 풍경을 가장 선명하게 만드는 것은 음식보다 행위다. 뉴욕·런던·베를린 등 대도시에서는 거리 카운트다운과 불꽃놀이가 새해의 핵심 장면이고,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여행지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문화도 보편화됐다. 서양의 새해 풍습은 국가마다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각자의 방식대로 새해를 맞이하는 선택적 명절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중국·일본·서양의 명절은 서로 다른 음식과 문화를 품고 있지만, 그 변화의 흐름은 한 방향을 가리킨다. 전통의 상징과 의미는 남겨두되, 그 시간을 보내는 방식은 개인의 선택을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이제 명절은 정해진 절차와 역할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맞이하는 시간이 되고 있다. 가족이 모두 모여야 한다는 전통적 방식보다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보낼지 스스로 결정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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