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자식은 네가 키워라”

입력 2026-02-15 07:00

[손주에게 한마디]

(이미지=AI 생성)
(이미지=AI 생성)


직장 다니던 시절, 미국 연수 중 마지막 한 달간은 아내와 함께 지냈다. 일곱 살 아들과 네 살 딸은 곁에 사시는 부모님께 맡겼다. 먼저 떠난 내가 며칠을 고민하다 국제전화로 “한 달만 애들 좀 봐달라”고 말씀드리자, 아버지는 망설이지 않고 응했다. 귀국해 본가로 부모님을 찾아뵈었을 때, 딸은 나를 잠시 낯설어했다. 어색한 침묵을 깨듯 아버지는 집게로 묶은 종이 뭉치를 내밀며 “애들 데리고 어서 가라”고 재촉했다. 집을 나서자마자 딸이 속삭이듯 제 엄마에게 일렀다.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밖에 나가서 막 싸웠어. 오빠하고 베란다 커튼 뒤에 숨어서 다 봤어.” 애들에겐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제 엄마에게 만나자마자 그 일부터 보고했다.

아버지가 건네준 종이 뭉치는 한 달 동안의 양육 일기였다. 애들이 끼니마다 무엇을 먹었는지, 잠은 얼마나 잤는지, 각자 어떤 놀이에 관심을 보였는지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서너 장씩 적혀 있었다. 받아온 그 기록을 밤새 읽었다. 다음 날 다시 부모님을 찾았을 때, 아버지가 꺼낸 첫마디는 뜻밖이었다. “네 자식은 네가 키워라.” 미처 앙금이 가라앉지 않은 어머니가 말을 받았다. “네 아버지는 애 키울 줄 모른다. 애들을 저렇게 가르치면 안 된다.” 어머니는 “아이들이 밥을 안 먹으면 아버지가 일일이 떠먹여 주고, 남긴 밥은 당신이 대신 드셨다”고 했다. 흘린 밥풀들도 일일이 주웠다고도 했다. “밥은 혼자 먹게 해야 한다. 남기지도 말아야 한다. 못된 버릇일수록 쉽게 물들고 평생 간다. 저렇게 키운 애들은 버릇만 나빠지고 아무 데도 쓰지 못한다.” 어머니의 훈육 기준은 분명했다.

아버지도 물러서지 않았다. “애들이 뭘 하려고 하면 네 어머니는 다 치워버린다. 방을 어지럽히고 놀면 모두 치우라고 한다. 어질러놓고 놀면 집중이 깨진다고 한다. 일의 성사는 집중에서 나오는데 집중은 기대조차 할 수 없다. 저렇게 애들을 가르치면 애들이 자기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할 수 없다.” 두 분은 내 앞에서 한 달간 쌓인 육아 갈등을 그대로 재연했다.

잠시 뒤 아버지가 따로 불렀다. “조부모가 손주의 버릇을 들이는 건 우리 때 관행이었다.” 대가족 사회에서 육아와 훈육은 생업에서 한발 물러난 조부모의 몫이었다. 아이가 여섯, 일곱 살이 되면 여아는 안채에, 남자아이는 사랑채로 옮겨 조부나 증조부와 지냈다. 잠자리에 들면 할아버지는 손자의 등에 시조와 조상 이름을 손가락으로 써 내려갔다. 틀리면 할아버지가 손자의 등에 바로 써준다. 전통적으로 아버지와 아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조부모는 한 세대를 건너뛰는 관계인 만큼 조급한 감정 표출 대신 느긋하고 절제된 자세로 대했다. 이른바 격대교육(隔代敎育)의 장점이었다.

아버지는 곧 말을 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너무 변했다.” 자식을 키워봤으니 손주는 더 쉬울 줄 알았지만, 세대차는 생각보다 컸다고 했다. “자식은 얼떨결에 키웠지만, 손주는 더 잘 키워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건 사랑과 정뿐이다. 그것만으로는 지금 세상을 따라가기 어렵다.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게 너무 많다. 모르는 우리는 걸림돌일 뿐이다.” 특히 아버지가 걱정한 것은 일관성의 부재였다. 같은 행동에 엄마와 할머니의 반응이 다를 때 아이가 느끼는 혼란과 불안을 아버지는 걱정했다.

아버지는 “교육은 안에 있는 걸 밖으로 끌어내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밖에서 뭘 집어넣으려 한다”라며 교육에 관한 생각도 덧붙였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교육 방법은 잘못됐다”며 바꾸기도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날 아버지가 펼쳐 보인 책에 적힌 고사성어가 ‘심부재언(心不在焉)’이었다. ‘마음이 여기에 없다’라는 뜻이다. 정신을 한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한 모습을 나타낼 때 쓰인다. ‘대학(大學)’ 정심장(正心章) 편에 나온다. 원문은 이렇다. “마음이 거기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심부재언 시이불견 청이불문 식이부지기미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이것을 일러 몸을 닦는 것이 마음을 바르게 함에 달려 있다고 하는 것이다.” 수신(修身)은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서 시작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버지는 “양육도 다르지 않다. 마음이 빠진 훈육은 말이 많아질수록 공허해진다”면서 “손주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쳐야 할 것도 지식이 아니라 마음의 태도다. 집중하고 스스로 해보게 두고, 기다리는 힘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그러나 그것은 말로 다 가르칠 수 없다. 부모가 자기 삶에서 보여줘야 한다. 남들이 가르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래서 “네 자식은 네가 키워라”라고 말씀했다. 그것은 책임을 돌리라는 말이 아니라, 부모로서 중심을 놓치지 말라는 경계였다. 조부모의 사랑은 보태는 것이지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손주는 돕되, 키우지는 말아야 한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내 손주들이 태어나며 그 말이 자꾸 되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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