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1

중년에 다시 잡은 붓, 도자기 위에 핀 ‘창업의 꽃’

입력 2026-05-21 07:00

50세에 핸드페인팅 공방 창업 김선희 작가… 온라인서 고객과 만나

▲도도세라믹 김선희 작가.(이준호 기자)
▲도도세라믹 김선희 작가.(이준호 기자)

도자기 표면 위에 꽃이 피었다. 흙의 결이 남아 있는 표면 위로 붓이 지나가자 진달래와 카네이션, 귀여운 고양이 얼굴까지 탄생한다. 도도세라믹 김선희(63) 작가의 작업실에서는 매일 이런 시간이 반복된다. 도화지처럼 하얀 초벌 도자기를 들여와 그 위에 그림을 그리고, 유약을 입히고, 가마에 넣어 굽는다. 이렇게 탄생한 도자기들은 온라인 플랫폼 아이디어스를 통해 전국의 소비자에게 팔린다.

김 작가가 핸드페인팅을 시작한 것은 약 13년 전. 50세가 되면서 새로운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나서다. “원래는 더 일찍 내 일을 갖고 싶었죠. 창업을 고민하던 무렵 갑자기 암이 발견돼 투병하느라 준비 기간이 더 길어졌어요.”

다시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그는 분식집이나 문방구 같은 창업도 고민했다. 그러나 결국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떠올렸다. 그림이었다. 김 작가는 “큰돈은 못 벌겠지만 좋아하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했다.

▲도도세라믹 매장에 김선희 작가가 직접 그림을 그려 완성한 핸드페인팅 도자기들이 전시돼 있다.(이준호 기자)
▲도도세라믹 매장에 김선희 작가가 직접 그림을 그려 완성한 핸드페인팅 도자기들이 전시돼 있다.(이준호 기자)

그가 핸드페인팅을 선택한 이유는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 학창 시절에는 일본 유학까지 계획했을 정도로 미술에 큰 열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던 중 ‘상업미술’ 작업실을 알게 되면서 다시 미술에 뛰어들었다.

상업미술 작업실은 말 그대로 수출용 그림을 그리는 공간이다. 명화를 그대로 옮겨 그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김 작가는 주로 꽃과 자연을 담은 유화를 그렸다. 샘플 그림을 보내면 해외 주문이 이어졌다. 같은 도안이라도 색감과 분위기를 조금씩 달리해 그렸다. 하루 10시간가량 자리에 앉아 그림만 그리는 ‘예술 노동’을 7년가량 이어갔다. 웬만한 작가보다 많은 작업량은 숙련된 감각을 그의 손에 남겼다.

결혼과 육아, 직장생활을 거치며 붓은 한동안 멀어졌다. 그러나 몸이 기억한 감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김 작가는 우연히 TV에서 도자기 위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본 뒤 “저건 내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집 근처에 도자기 페인팅 공방이 있었다. 두 달 정도 기본 과정을 배운 뒤 나머지는 스스로 익혔다. 인터넷을 찾아보고, 재료를 사며 공방 운영자들에게 묻고, 실패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어요. 유화는 큰 그림이었는데 도자기는 작고, 흙은 물감을 빨리 흡수하니까 얼룩도 생겼죠. 그래도 자꾸 하다 보니 노하우가 생겼습니다.”

도도세라믹은 여주와 이천 등에서 초벌 도자기를 들여온 뒤 김 작가가 직접 그림을 그리고 유약을 입혀 굽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가마의 온도는 1250도까지 올라간다. 굽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고, 식히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보통 주말 동안 가마가 돌아가고, 월요일에 완성품을 꺼낸다. 그림만 그리면 끝나는 일이 아니다. 주문 확인, 포장, 발송, 고객 응대까지 모두 공방 운영의 일부다.

창업 초기에는 커피를 함께 팔았다. 주변에 카페가 많지 않던 시기라 커피 매출이 공방을 유지하는 힘이 됐다. 어린이 체험 수업도 열었다. 당시에는 도자기 페인팅 체험이 유행했고, 인근 아이들이 공방을 찾았다. 그렇게 오프라인 공방을 운영하던 중 한 수강생을 통해 온라인 핸드메이드 플랫폼 아이디어스를 알게 됐다.

▲도도세라믹 김선희 작가가 딸 이빛나 씨와 함께 도자기 위에 그림을 그리며 제품 작업을 하고 있다.(이준호 기자)
▲도도세라믹 김선희 작가가 딸 이빛나 씨와 함께 도자기 위에 그림을 그리며 제품 작업을 하고 있다.(이준호 기자)

온라인 판매는 중장년 창업자에게 낯선 세계였다. 사진을 찍어야 했고, 상품 설명을 써야 했으며, 고객 문의와 후기에 응대해야 했다. 오프라인 공방에서는 얼굴을 마주 보고 설명할 수 있지만 온라인에서는 제품 사진과 문장, 후기 하나가 곧 가게의 얼굴이 된다. 김 작가는 반품 요청이 들어오면 가능한 받아주고 다시 보내주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무작정 불량으로 오해할 땐 속상하기도 해요. 그래도 핸드메이드라는 점을 이해해주는 분들이 많아요. ‘너무 마음에 든다’, ‘오래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써주시는 분들도 있고요. 그럴 때는 이 일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온라인 시장은 소비자의 취향 변화도 빠르게 보여줬다. 처음에는 꽃 그림을 그린 커피잔과 다기가 많이 팔렸다. 최근에는 고양이 머그컵처럼 귀여운 제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김 작가는 “요즘은 거의 고양이”라며 웃었다. 반려동물에 기대는 정서, 귀여운 물건을 통해 위안을 얻는 젊은 세대의 취향이 도자기에도 반영된 셈이다.

이 변화의 곁에는 딸 이빛나 씨가 있다. 이 씨는 4년 전부터 어머니와 함께 일하고 있다. 온라인 판매와 제품 개발에서 김 작가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을 돕는다. 젊은 소비자의 취향을 읽고, 새 제품 샘플을 제안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딸이 젊으니까 확실히 감각이 있어요. 이런 걸 한번 해보라고 얘기해주면 도움이 됩니다. 온라인 판매나 제품 개발처럼 혼자 하면 귀찮고 힘든 일도 많이 도와주고요.”

김 작가에게 딸과 함께 일하는 공방은 단순한 가족 사업장이 아니다. 어머니의 손에는 오래 축적된 그림 기술이 있고, 딸에게는 현재 소비자와 가까운 감각이 있다. 김 작가가 꽃과 선, 색감으로 제품의 기본을 만든다면 이 씨는 온라인 플랫폼 안에서 소비자에게 닿을 수 있는 형태와 이미지를 함께 고민한다. 중장년의 숙련과 젊은 세대의 감각이 한 작업대 위에서 만나는 셈이다.

도자기 시장에는 값싼 수입 제품도 많다. 생활용품 매장에서도 그릇은 쉽게 살 수 있다. 그러나 김 작가는 핸드메이드 도자기의 경쟁력이 안전성과 희소성에 있다고 봤다. 소비자들은 유약이 안전한지, 초벌 도자기가 국산인지 묻는다. 또 같은 그림이 대량으로 찍혀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선물용으로 찾는 이들이 많다. 생일, 결혼, 집들이, 어버이날 같은 날에 손그림 도자기가 선택된다.

▲도도세라믹 김선희 작가.(이준호 기자)
▲도도세라믹 김선희 작가.(이준호 기자)

이 일이 큰돈을 보장하는 창업은 아니다. 중장년 창업에서 중요한 것은 단기간의 큰 매출보다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구조일 때가 많다. 김 작가는 건강을 잃어본 뒤 돈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더 분명히 알게 됐다고 했다.

“젊을 때는 앞만 보고 달린 것 같았어요. 건강을 잃어보니 꼭 돈이 전부는 아니더라고요. 조금 덜 벌더라도 내가 행복한 게 좋은 것 같아요. 돈만 좇았다면 오래 못 했을 겁니다. 좋아하는 일이니까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창업을 꿈꾸는 중장년에게 김 작가는 “잘하는 것에서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카페 같은 건 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막상 창업했다가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너무 생소한 것보다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도 거의 준비 없이 시작했지만, 부딪히니까 헤쳐 나가게 되더라고요. 꾸준히 하면 어느 정도는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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