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중일 관계를 읽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핵심은 ‘호감 상승’보다 ‘분리’다.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불편하게 여기면서도 일본 여행을 가고, 중국 국가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보면서도 중국 음식과 왕홍체험을 소비한다. 가까운 이웃 나라는 이제 하나의 국가 이미지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여행지, 먹거리, 쇼핑, 숏폼 콘텐츠, 연애 서사의 배경으로 쪼개져 일상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요즘 젊은 세대의 한중일 인식을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렵다. 일본은 여전히 역사 문제와 분리되지 않는 나라다. 동시에 가장 가깝고 만만한 해외여행지다. 중국은 정치체제와 국가 이미지에서는 거부감이 강하다. 하지만 마라탕과 탕후루, 중국 차 브랜드, 왕홍 메이크업과 한푸 스냅은 별개의 유행으로 소비된다.
‘중국스럽다’는 의미로 쓰이는 ‘중티난다’는 말에는 본래 조악함과 촌스러움의 뉘앙스가 강했다. 그런데 최근 SNS에서는 이 말이 조금 다르게 쓰인다. 붉은색, 금색, 과장된 장식, 중국식 고전미를 장난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생겼다. 화려해서 부담스럽지만, 그래서 사진을 찍고 싶고 따라 해보고 싶은 스타일이 된 셈이다. 한 언론사는 중국계 차 브랜드의 국내 확산을 다루며 “중티난다”는 표현이 일부 젊은 층 사이에서 밈과 취향의 언어로 바뀌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중일 인식 변화, 좋아졌다고 볼 수 있을까?
최근 한중일 인식 변화는 ‘좋아졌다’보다 분야별로 ‘쪼개졌다’에 가깝다. 과거에는 한 나라에 대한 감정이 비교적 단일하게 움직였다. 일본이라면 과거사, 중국이라면 공산당과 저가 이미지, 한국이라면 한류와 분단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다. 이제는 같은 나라 안에서도 판단 기준이 나뉜다.
한국리서치의 2026년 대중인식조사는 이 변화를 잘 보여준다. 중국 공산당 호감도는 16.8도에 그쳤다. 중국 사람, 제품, 문화콘텐츠, 기업도 모두 50도 미만이었다. 반면 중국 자연경관은 51.1도, 전통문화·역사유산은 47.7도, 음식은 45.7도로 상대적으로 높았다. 특히 18~29세는 중국 음식 호감도가 55.2도로 전 세대 중 가장 높았다. 중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반감과 중국 음식·전통문화·여행 이미지에 관한 호감이 따로 움직이는 것이다.
일본을 향한 인식도 비슷하다. 한국리서치의 2025년 대일인식조사에서는 ‘일본의 과거사 사과는 불충분하지만 우호관계는 필요하다’는 양면적 태도가 55%로 가장 많았다. 사과가 충분하다고 보지는 않지만, 경제·안보·문화 차원에서 협력은 필요하다고 보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이런 변화는 젊은 세대에서 더 선명하다. 일본 제품이나 브랜드는 ‘불매’의 대상이면서도, 짧은 휴가가 생기면 오사카·도쿄·후쿠오카 항공권을 검색해본다. 중국은 ‘싫다’고 댓글을 적으면서도 상하이 왕홍 체험과 마랴샹궈를 먹고 중국 차 브랜드 인증샷을 남긴다. 감정과 행동이 같은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일본 여행과 중국 체험은 왜 계속 늘어날까?
가장 큰 이유는 거리와 가격이다. 인식은 여론조사보다 앞서 항공권, 환율, 카드 결제, SNS 사진에서 먼저 움직임을 보인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2026년 5월 일본을 찾은 한국인은 95만 1300명으로 전년 같은 달보다 15.2% 늘었다. 2026년 1~5월 누계도 488만 8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6% 증가했다. 썸트렌드 분석은 2025년 중국의 ‘왕홍’ 키워드 언급량이 2024년보다 3배 이상 늘었다고도 전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행의 목적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예전의 해외여행은 유명 관광지를 보는 일이었다. 지금은 그 나라의 미감을 잠시 입어보는 일이 됐다. 일본에서는 빈티지 숍과 갸루 체험을 찾고, 중국에서는 왕홍 메이크업과 한푸 스냅을 찍는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도 마찬가지다. K팝 공연만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헤어·메이크업·퍼스널컬러·사진관·성수동 카페를 하나의 일정으로 묶는다.
한국은 더 이상 보기만 하는 나라가 아니다
한중일 인식 변화에서 놓치기 쉬운 대목은 한국의 위치다. 과거 한국은 일본과 중국을 바라보는 쪽에 가까웠다. 이제는 중국과 일본이 한국을 소비하는 장면도 함께 봐야 한다.
한국 역시 중국과 일본 관광객의 주요 여행지가 됐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한국을 찾은 방한 외래관광객은 약 476만 명으로, 1분기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중국 관광객은 145만 명으로 전년 대비 29.0%, 일본 관광객은 94만 명으로 20.2% 증가했다. 숫자는 공항 입국장에서만 확인되지 않는다. 성수동과 명동, 홍대의 사진관과 뷰티숍, 카페 앞 줄에서도 보인다. 한국은 이제 한류를 화면으로 ‘보는’ 나라에 머물지 않는다. 직접 와서 꾸미고, 먹고, 쇼핑하며 하루를 보내는 체험지가 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5년 대한민국 국가이미지 조사에서 외국인의 한국 호감도는 82.3%로 조사 시작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국의 한국 호감도는 62.8%, 일본은 42.2%였다. 두 나라 모두 전체 평균보다는 낮지만, 전년보다 각각 3.6%포인트, 5.4%포인트 상승했다. 한국 호감도에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요인은 문화콘텐츠(45.2%)였고, 한국 정보를 접하는 경로는 동영상 플랫폼(64.4%)과 SNS(56.6%)가 높았다.
이 통계는 한중일 인식의 변화를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다. 국가 이미지는 더 이상 뉴스와 교과서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유튜브 쇼츠, 틱톡, 넷플릭스, 여행 브이로그, 커플 콘텐츠, 음식 리뷰가 국가 이미지를 다시 쓴다. 외교가 국가 간 언어라면, 숏폼은 세대 간 언어다.
한일커플 콘텐츠가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국가 관계가 정상회담이나 과거사 담론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말투 차이, 식문화, 부모님 반응, 장거리 연애, 결혼 준비 같은 일상 소재로 옮겨간 것이다. 한중 콘텐츠에서는 연애보다 체험형 소비가 더 두드러진다. 왕홍 메이크업, 중국 차 브랜드, 충칭 야경, 상하이 스냅은 정치적 중국이 아니라 찍고 공유할 수 있는 스타일 패키지로 소비된다.
싫어하는 마음과 소비가 공존한다
이 변화가 곧 화해를 뜻하지는 않는다. 중국과 일본을 향한 부정적 인식은 여전히 강하다. 역사 문제, 안보 갈등, 경제 경쟁, 온라인 혐오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치·외교 영역에서는 갈등이 더 날카로워질 때도 있다.
다만 생활의 접촉면은 넓어졌다. 예전에는 국가 감정이 소비를 막는 힘으로 작동했다면, 지금은 분야별로 다른 판단이 가능해졌다. 일본 정부는 싫어도 일본 편의점 디저트는 산다. 중국 정치체제는 불편해도 중국 음식은 먹는다. 한류를 좋아하는 일본인과 중국인은 한국 사회 전체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한국의 특정한 콘텐츠와 생활양식을 먼저 접한다.
한중일 세대 인식의 변화는 여기서 출발한다. 젊은 세대가 더 관대해졌다는 뜻이 아니다. 더 실용적이고, 더 분리해서 보고, 더 빠르게 소비한다는 뜻에 가깝다. 국가는 여전히 무겁다. 그러나 취향은 가볍게 국경을 넘는다.
2024년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 공동선언에는 2030년까지 3국 간 인적 교류를 4000만 명까지 늘리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미래세대 교류가 3국 협력의 장기적 토대라는 문구도 들어갔다. 정부의 언어로는 ‘미래세대 교류’다. 일상의 언어로 바꾸면, 이미 젊은 세대는 항공권과 숏폼, 음식과 연애 콘텐츠로 이웃 나라를 다시 배우고 있다.
한중일 관계는 가까워졌다기보다 복잡해졌다. 좋아하는 감정과 싫어하는 감정이 한 사람 안에 함께 있다. 바로 그 복잡함이 지금의 세대 변화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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