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염에 따른 피해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나타나지 않는다. 노인과 아동, 저소득층, 야외근로자처럼 신체적·사회적 여건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할 역량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람에게 피해가 집중된다.
독일과 일본, 한국은 고령층을 주요 기후위기 취약계층으로 보고 시설 개선과 안부 확인, 냉난방비 지원 등을 추진하고 있다.
2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2026 기후적응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주최하고 한국환경연구원과 국가기후위기적응센터가 주관한 이번 행사의 주제는 ‘모두를 위한 적응: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기후회복력’이다.
이날 세션 1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포용적 적응 정책’에서는 독일과 일본, 한국의 기후위기 적응정책이 소개됐다. 전문가들은 폭염 경보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령층 등 취약계층이 실제로 예방 행동에 나설 수 있도록 맞춤형 지원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 사회복지시설이 기후위험 진단해 적응계획 수립
독일은 취약계층이 이용하는 시설의 기후대응 역량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노인시설을 비롯한 사회복지시설이 폭염과 폭우 등 기후위험을 직접 진단하고 적응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원한다.
코르넬리아 리트도르프 독일연방환경청(UBA) KomPass 연구위원은 독일의 국가 기후적응 전략에 취약계층 보호와 산업안전 등 여러 행동 분야가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아직 충분하지 않아 2028년 개정 전략 발표를 목표로 보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독일은 기후적응 전략을 마련할 때 지방정부와 사회복지기관, 시민 등 여러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독려한다. 시민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전용 채널을 운영하고, 취약계층도 전략 수립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사회복지시설을 대상으로 한 국가 차원의 지원지침도 마련했다. 지원받으려는 시설은 먼저 다양한 기후위험에 얼마나 취약한지 분석해야 한다. 이후 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해 기후적응계획을 세우고, 녹지 조성 등 자연기반 해법을 포함한 대응에 나선다. 기후적응 전담인력에 대한 교육과 고용도 지원한다.
리트도르프 연구위원은 “전체 지원사업의 80%가 어린이집과 고령자시설, 장애인시설, 학교·청소년시설 등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후위기로 큰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시설에 지원이 집중된 것이다.
2021년 연방환경부 주도로 설립된 기후변화적응센터는 중앙과 지방을 연결하는 국가 차원의 지원 허브 역할을 한다. 지방정부와 사회복지시설에 교육과 상담을 제공하고 지역 여건에 맞는 사업을 추진하도록 돕는다. 지역별 기후적응 담당자가 우수사례를 공유하는 교류체계도 운영하고 있다.

일본, 열사병 사망자 80% 이상이 고령층
일본은 고령층을 열사병 고위험군으로 분류하고 가족과 이웃, 지방자치단체가 예방에 함께 참여하는 대응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요시다 유코 일본 환경성 사무관은 일본에서 열사병으로 구급 이송된 사람의 절반가량이 65세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열사병 사망자의 80% 이상도 고령층이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내에서 숨진 사람 가운데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은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이에 일본 정부는 고령층뿐만 아니라 가족과 지역주민을 대상으로도 인식 개선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가족과 이웃이 고령자의 건강 상태를 정기적으로 살피고 에어컨을 적절히 사용하는지 확인하도록 독려하는 방식이다.
일본 폭염 대책의 핵심은 ‘조기경보를 조기행동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일본은 기온뿐만 아니라 습도와 일사량, 복사열 등을 종합한 습구흑구온도지수(WBGT)를 폭염 위험 판단에 활용한다.
2021년부터는 이 지수를 바탕으로 전국에 열사병 경계경보를 발령하고 있다. 일반 경보보다 심각한 건강 피해가 예상될 때는 특별 열사병 경계경보를 내린다. 경보는 일본 기상청과 지방정부 홈페이지, 언론, 민간기업의 디지털 전광판과 애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전달된다.
요시다 사무관은 경보 발령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경보가 에어컨 사용과 수분·염분 섭취, 야외활동 조정, 무더위쉼터 개방 등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동과 야외근로자에게는 별도의 대책을 적용한다. 어린이집과 학교는 체육수업 등 야외활동 시행 여부를 결정할 때 WBGT와 열사병 경계경보를 활용한다. 정부는 학교 냉방시설 설치도 지원한다.
일본은 2025년 산업안전보건 관련 규정을 개정해 사업주가 야외근로자의 온열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고 중증화를 막을 대응체계를 갖추도록 했다. 폭염 위험 단계별로 사업주가 시행해야 할 조치도 지침으로 제시했다.
요시다 사무관은 “고령층과 아동, 야외근로자는 서로 다른 취약성에 노출돼 있다”며 “각 집단이 필요로 하는 바에 맞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경로당 냉난방비 지원…보호 대상 법률에 명시
한국도 고령층을 법률상 기후위기 취약계층으로 규정하고 건강관리와 냉난방비 지원 등을 추진하고 있다.
신지영 KEI 국가기후위기적응센터 기후적응정책실장은 한국이 2016년 시행한 제2차 국가 기후변화 적응대책부터 취약계층 보호를 주요 원칙으로 명시했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 취약계층과 취약 부문을 우선 관리하고, 적응정책의 혜택이 형평성 있게 돌아가도록 하겠다는 내용이다.
제3차 국가 적응대책과 적응 강화대책에서는 정책을 더욱 구체화했다. 취약계층의 유형별 분포와 특성을 조사하고, 이를 기반으로 맞춤형 대책을 마련하도록 했다. 야외근로자 등 새로운 취약집단도 정책 대상에 포함했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제4차 국가 기후위기 적응대책에서는 ‘맞춤형 기후회복 안전망 구축’이 주요 정책 방향으로 담겼다. 취약계층 실태조사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정책 수요에 따라 맞춤형 기반시설을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공공·민간 임대주택과 반지하주택에는 침수방지시설을 설치한다. 에너지 소외계층에는 에너지바우처를 지원하고, 고령층이 이용하는 경로당에는 냉난방비를 제공한다. 야외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기후보험 도입도 추진한다.
법률상 보호 기반도 마련됐다. 한국은 올해 4월 탄소중립기본법에 기후위기 취약계층의 정의와 보호 원칙을 명시했다. 생물학적·사회적·경제적·지리적 조건으로 기후위기에 취약하고 대응 역량이 낮은 집단을 정책 대상으로 규정했다. 고령층과 어린이, 저소득층, 야외근로자, 농어업 종사자 등이 포함된다.
다만 보호 대상을 규정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취약계층 실태조사를 정기적으로 시행하고, 조사 결과를 실제 지원사업으로 연결할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신 실장은 “취약계층의 정의와 보호 원칙은 법에 제시됐지만, 이들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대책에 관한 사항은 현재 탄소중립기본법에서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취약계층의 분포와 기후위험 노출 수준, 피해, 대응 역량을 조사해 과학적 데이터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맞춤형 보호대책을 발굴하고, 기후재해 피해지역과 고위험지역을 직접 지원할 근거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기후재해로 피해를 본 취약계층의 생계를 즉각 지원할 수 있는 기후보험 도입도 제안했다. 현재 국회에는 기후변화 적응과 관련된 내용을 담은 법안 4건이 발의돼 있다.
신 실장은 “이미 필요한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만큼 이를 담은 기후위기 적응법이 국회에서 조속히 통과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세 나라의 사례는 폭염 대응이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에어컨이 있어도 사용하지 못하거나 무더위쉼터까지 이동하기 어려운 고령층에게는 가족과 지역사회의 정기적인 안부 확인과 지원이 필요하다. 열악한 주거환경과 냉방비 부담, 복지시설의 대응 역량까지 함께 살펴야 실질적인 기후적응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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